재경산내향우회(회장 손순태)가 지난 13일 서울 한일장에서 송년모임을 갖고 한 해를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기해년 힘찬 출발을 다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산내향우회 손순태 회장, 손영식 상임고문, 김광수 명예회장, 재경경주향우회 백승관 회장 등 40여 명의 향우들과 내빈이 참석했다. 손영식 상임고문은 “징기스칸의 명..
경주 봉황로 문화의 거리 일대가 빛의 거리로 변신했다.경주시는 24일 도심권 관광객 유치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봉황대를 중심으로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봉황로 문화의 거리에서 경관조명 점등식을 가졌다.이번 사업의 시작은 주낙영 시장이 지난 10월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주낙영 경주시장이 도심권에 역사문화도시와 ..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21일 경주를 찾아 주낙영 시장과 함께 월성 발굴현장과 이거사지, 서악서원 일원 등 현장을 시찰했다.정 청장의 이날 현장시찰은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사업추진단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공동 주최하는 신라왕경사업 관련 학술대회 참석 후 이뤄졌다.정 청장은 먼저 주 시장과 함께 이거사지를 찾았..
경주시가 경북도 2018년 식량생산 시책평가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경북도는 쌀 안정생산량 확보, 농업인 역량강화, 농산시책 추진 등 3개 분야를 대상으로 평가한 결과 경주시가 우수기관에 올랐다.벼 재배면적 1만2025ha로 도내 두 번째인 경주시는 쌀 적정생산을 통해 쌀 시장 수급 및 안정을 도모했다는 평가를 받..
월성원자력 내 각종 사고 시 신속대응을 위한 ‘비상대응설비 통합 보관고’가 20일 준공했다.한국수력원자력(주) 월성원자력본부(본부장 박양기)는 지난 20일 시공사 및 월성본부 직원들과 함께 국내 전체 본부 중 가장 먼저 완공된 통합 보관고 준공기념식을 가졌다. 이는 극한재해에 의한 다수 호기 동시 사고발생 시 ..
국도 31호선 경주시 감포읍 구간 공사가 완료돼 오는 24일 오전 11시 전면 개통한다. 개통에 따라 매년 여름철 성수기 때마다 반복되던 감포읍 내 교통혼잡이 크게 해소될 전망이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 따르면 동해안 해변 국도31호선 경주시 감포읍 구간은 지난 2009년 4월 착공해 24일 개통한다. 감포읍을 우회하는 총..
경주시선거관리위원회는 내년 3월 13일 실시되는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입후보 예정자 A씨를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주선관위에 따르면 A씨는 기부행위 제한기간 중인 지난 10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조합원 7명에게 결혼 축의금으로 각 10만원씩 총 70..
■ 문화 예술 공연 ‘사랑의 피아노’ 일시 : 12월 22일(토) 오후 2시, 23일(일) 오전 11시, 오후 2시 장소 : 경주예술의전당 원화홀경주시립극단 앵콜공연 ‘사랑의 피아노’가 추운겨울 가슴 따뜻해질 이야기를 전하러 경주시민들을 다시 찾는다. 공연시간은 70분이며 24개월 입장 가..
한국수력원자력(주) 월성원자력본부가 국민권익위원회 2018년도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 결과 국내 5개 원전 본부 중 ‘외부 청렴도 부문’에서 1위를 달성했다.국민권익위는 매년 공공기관 직원 및 일반국민에 대한 설문조사와 부패사건 발생현황 등을 종합해 공공기관 청렴도를 측정, 기관별 등급을 지정해오고 있다. 올해 ..
우체국 직원들이 산타클로스로 변신, 지역아동센터 아동들이 원하는 선물을 전달해 훈훈한 연말을 만들어가고 있다. 경주우체국(국장 최정규)은 지난 20일 경주 마루지역아동센터 아동 20여 명을 대상으로 행복배달 소원 우체통 나눔행사를 펼쳤다.이는 지역아동센터 내 설치된 소원우체통에 아이들이 갖고 싶은 선물을 소..
사방초 주변 도로가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학생들의 등하굣길 안전을 확보하게 됐다.사방초는 교문과 도로가 인접하고, 대형 트럭이 자주 드나들어 학생 안전을 위한 도로정비가 필요한 상황이었다.이에 따라 사방초는 경주시에 ‘어린이 보호 구역’ 지정을 신청해 지난 18일 학교 주변 도로의 ‘어린이 보호구역’ ..
1960년대 초에 평론가 원형갑 선생이 경주에 오게 되었다. 당시 경주에 계시던 김해석 선생께서도 경주 K중고 교감이셨던 손진수 선생의 부탁으로 대구에서 보낸 엽서 한 장이 인연이 되어 경주에 있는 이 학교에 발령을 받은 것이다. 그 시대는 그 만큼 서로 믿는 시대였고 엽서 한 장으로도 신뢰하던 때였다. 원형갑 선생은 그때 우리 문단에 이름 있는 평론가였었다. 경주에 오신 원형갑(한성대 총장역임)선생은 아늑하고 조용한 경주 고도에 한껏 취해 밤이면 경주의 문인들과 만나 쪽샘에서 술을 마시고 밤늦도록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술에 취하면 원형갑 선생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었다. “양키 X만 X냐, 한국 X도 X다”하고 노래를 부르며 밤새도록 길거리로 돌아 다녀도 누가 뭐라고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좋은 경주였었다. 일찍이 처용이가 “셔블 밝은 달밤에 밤늦도록 노닐다가.....”라는 ‘처용가’처럼 60년대 초의 경주 문인들은 달 밝은 서라벌 달밤에 밤늦도록 취하여 다녔다. 1961년에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62년 4월에 군정시대의 공보부 주최 제1회 신라문화제가 개최되었다. 혁명정부가 주최 주관하여 베푸는 신라문화제는 반월성에 제단을 마련하고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직접 참석하였으니 그때의 신라 문화제의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인산인해(人山人海)가 되어 거리와 성터를 메우고 ‘안압지’에는 특설무대를 만들어 국악을 연주했다. 그 때의 모든 주선은 경주문총(예총의 전신)에서 했으며 진행도 역시 경주 문총이었다. 그 후 1964년 9월 17일 원형갑, 김해석, 박종우, 김영식 오경환, 이런 분들에 의해 한국예총 경주지부의 인준을 받아냈던 것이다. 당시 예총 회장은 월탄 박종화 선생이었는데, 경주는 <신라문화제>라는 특수성 때문에 우선 3개 지부로써 예총이 인준되었다. 이런 일에 대한 공로는 전적으로 원형갑 선생의 노력이었다. -정민호(시인. 동리목월문학관장)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거의 간판(옥외광고물)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옥외광고물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간판은 상업적인 홍보의 수단으로서 도시경관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협소한 도시환경에서 간판은 각 업소 홍보에만 주력해 도시경관의 종합적인 이미지와의 조화를 간과하고 있다. ‘타 업소 보다 더 크게, 더 많이, 더 화려하게’ 일변도로 무질서하게 난립된 간판들이 도시미관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해왔던 것이 현실이다. 점포주들은 가장 강력한 홍보수단으로 남들보다 크고 많은 간판을 설치하고자 애쓰는가하면, 광고업체도 건축물과 간판의 조화가 중시되는 상호관계에 대한 심도 있는 고려와 관련법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도 간판난립의 원인이 되고 있다. 디자인으로 먹고 사는 세상이다. 트렌드로 지속가능한 영역의 최일선에서 디자인은 기능하고 있다. 통일성을 가지면서도 정체성을 드러내고 조화로운 간판디자인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에, 경주시는 ‘디자인 경주’에 주목하며 2012년부터 2019년까지 간판개선사업에 중점을 두고 14개 거리 834개 업소의 노후화된 간판과 원색의 돌출간판을 정비해 역사문화도시 경주의 정체성을 살린 도시경관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경북도비와 경주시비(한 사업구간당 3억~3억5000만원으로 총 43억원)를 확보해 7년간 지원 받고있는 예는 전국에서도 경주가 유일하다. 경주시 도시계획과 도시디자인팀(임경석 도시계획과장과 도시계획과 도시디자인팀 이강식 담당자)을 찾아 간판 경관 사업시행전과 후, 현재 진행중인 정비현황과 향후 진행될 사업, 좋은 간판의 사례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무질서한 대형 돌출 간판 대신 주로 소형 돌출 간판으로 유도, 시원함 확보하고 건물 본연의 모습이 잘 드러나게 해 시는 ‘도시경관과 조화로운 옥외광고물 개선’이라는 목표로 간판개선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도시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간판개선을 통해 가로환경을 개선하고 쾌적한 거리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그간 추진한 간판개선사업은 도시미관 개선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 사례들을 몇 가지 살펴본다. 중앙시장에서 봉황로에 이르는 골목의 경우, 무질서한 대형 돌출 간판을 철거하고 주로 소형 돌출 간판으로 유도해 시각적으로 시원함을 확보했다. 동대로의 사례에서도 건축물을 과하게 뒤덮고있는 간판들을 제거하고 각 건축물에 따라 통일성을 기하며 작은 폰트(font)나 작은 크기의 간판으로 유도해 건물 본연의 모습이 잘 드러나게 했다. 경주읍성 거리의 경우는 워낙에 낙후된 기존 건물이라 간판만 바꾸기에는 제약요소가 많아 건물 전체를 청소하고 새롭게 도장한 뒤 간판을 교체 정비한 예도 있다. 큰 간판을 떼고 난 자리는 노후화 돼있는 경우가 많아 세척과 정비처리를 한 뒤 건물을 되살리는 바탕위에 간판을 다시 달고 있다고 한다. 또 상호 자체를 점포주와 협의해 바꿔 점포의 고유성을 강조해주는 사례도 있었다. 읍성 주변은 현재 계속 진행중인 사업으로 행정안전부가 선정하는 ‘2018 간판개선 시범사업 대상지’에 선정돼 노후 간판에 대해 주민과 상인들의 자율적 참여와 의견수렴을 통해 테마가 있는 거리로 정비하고 있다. 디자인은 옥외광고센터 온라인컨설팅에도 자문을 구하고 행정안전부 지정 자문관의 자문도 경주시와 함께 반영한다. 총 4억1000만원을 투입해 84개 업소의 간판을 교체하고 노후 간판을 철거하고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로 간판과 건축물을 돋보이게할 수 있는 장치 등)를 설치하고 기존의 형광등 간판을 친환경적인 에너지 절약형 LED간판으로 교체하는 등 경주읍성의 역사와 문화적 특성이 반영된 간판으로 정비하고 있다. 이강식 담당자는 “이 경우도 주민과 협의기간만 6개월 걸렸습니다. 사업 시행은 지난 10월 말경 시작했고 내년 1월말까지는 준공할 예정입니다. 이 지역은 도심재생 뉴딜 사업 구간에 포함되므로 도심미관 개선대상으로서 특히 간판 경관개선은 가장 돋보이는 변화가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사유재이면서 공공재인 간판, 도시경관과 더욱 조화롭고 차분하게 어울리도록 디자인 이들 시범대상일지일 경우는 시에서 100%전액 지원하고 있으나 간판의 갯수나 크기, 눈에 띄는 원색 등이 줄어드는 측면에서 점포주들이 여전히 불만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강식 담당자는 “간판정비에 대한 주민설명회를 가지고 사업계획 취지와 설명부터 합니다. 설득을 해도 반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판도 사유재이기 때문이죠. 조율과정에서 그 점이 가장 힘드는 부분입니다. 한 점포당 스무 번 넘게 찾아가 설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라면서 “간판의 변화는 시각적인 효과와 함께 주민과 점포주, 건물주의 간판에 대한 문화인식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더욱 큰 것 같아요. 향후 그들이 점포를 옮기더라도 지나친 간판디자인(돌출 입간판 등)을 지양하고 간판 디자인에 대해 고심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상업수단으로서의 간판은 점포주나 광고업체 등 개인이 자비를 들여 설치하는 엄연한 사유재 성격이기도 하지만 도시경관 구성요소로서의 옥외광고물은 도시이미지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공공재 성격을 지니므로 도시경관과 더욱 조화롭고 차분하게 유도하고 있다고. 한편 정비된 소형 돌출 간판이 다소 획일적이라는 기자의 지적에 대해서는 “주민과의 협의과정에서도 간판 디자인이 혹시 획일화 될 우려가 있는 점을 가장 조심합니다. 그래서 지역의 문화와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저희와 디자인업체보다 먼저 점포주의 말에 귀 기울입니다. 주민 주도의 벤치마킹(선진사례)과 주민설명회 등을 가지고 간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주민들에게 디자인이나 업소명과 업소정보 등의 특징을 물어 도출된 자료로 경주시가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해서 제시하고 다시 표준가이드라인을 제안하는 식입니다. 이 중에서 상호 협의를 거쳐 최종결정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임경석 도시계획과장은 “무엇보다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담으려면 주민 자율에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여계획단계부터 추진, 관리단계에 이르기까지 주민협의체를 구성하고 사업추진을 통해 업주의견 수렴 및 자율적 참여 유도를 하는 것입니다” 라고 했다. 이렇게 협의하고 조정하고 결정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업소당 평균 10회 정도의 과정을 거치지만 수년간, 혹은 수십년간 일해 온 업소의 정체성(identity)이 드러나게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었다. 관련 전문가와 함께 디자인적인 관점에서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오래된 간판에서는 그 점포의 얼굴이자 정체성이 나타난다. 업소의 흔적과 역사가 담긴 간판이면서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경우는 원래의 상태를 보존하는 범위내에서 정비를 하고 있다. -아름다운 간판사업 위한 2019년 새로운 시도... 3개 읍·면·동 간판개선, 좋은 간판 공모전 아름다운 간판사업의 일환으로는 먼저, 2019년 1월부터 번화가나 관광지가 아닌 간판개선이 필요한 읍면동 소외된 지역의 가로 및 건물에 대해 순수 경주시비(1억 5000만원)로 읍·면·동으로부터 대상지 공모신청을 받아 3개 지역에 적용할 예정이다. 이들 지역의 문화적 특색을 살린 간판으로 개선해가는 것으로 지역민들의 간판디자인에 대한 의식전환의 계기도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경상북도 2018 에너지절약형 간판개선사업’ 공모사업으로 선정된 경주역전 일대 에너지절약형 간판개선사업의 착수다. 경주역전 삼거리에서 팔우정해장국거리까지 원화로는 경주를 찾는 관광객의 관문이자 역전 중심상권과 전통시장, 주요사적지로 이어져 시민과 관광객의 통행량이 가장 많은 구역 중의 하나다. 상가건물과 노후화된 간판이 난립해 있는 이 구간이 테마가 있는 특화된 간판거리로 거듭나는 것. 이곳은 도비 9천만원을 포함한 사업비 3억원을 투입하고 지난 11월부터 진행중이다. 또 한가지 추진될 사업으로는 좋은 간판의 다양한 디자인 사례를 개발하고 디자인 역량을 강화시키기위해 ‘2019년 경주시 좋은 간판 공모전’을 가진다. ‘좋은 간판’은 경주시 내 제작·설치된 간판을 대상으로, ‘창작간판’은 기존 간판을 대상으로 새로운 디자인이 적용된 도안에 대해 공모하는 것이다. -“주민과 꾸준한 소통으로 공유하며 지역 정체성 반영한 디자인이 개발돼야” 디자인 마인드로는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야 하고 도안 및 제작의 관점에서는 디자인과 적절한 소재의 사용, 그리고 폰트의 적절한 적용을 예로 들면서 황리단길의 사례를 들었다. “특별한 기교 없이 적절한 소재와 폰트의 결합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간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황리단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주민 스스로가 애착을 가지고 그들이 고심했던 디자인의 간판을 주문외뢰해 개성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간판개선사업은 단기간에 효과가 나는 사업은 아니다. 이 사업을 통한 시민의식 변화와 선진광고 기술 역량강화 등 광고산업의 진흥이 뒷받침돼야 하는 장기적인 도시미관 프로젝트다. 이강식 담당자는 “간판개선사업은 도시재생사업 및 전선지중화 등 각종 경관사업을 연계해서 추진하므로 아름다운 가로환경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이는 지역상권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겁니다. 간판개선사업은 지역의 가치와 문화적 상징성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옥외광고문화는 주민과 꾸준한 소통으로 공유하며 지역 정체성을 반영한 디자인이 개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조선 정치의 모든 것을 담은 ‘승정원일기’를 재미있고 쉽게 아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3부로 이루어진 책이다. 1부에서 유네스크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승정원일기’에 대한 이야기, 2부는 승정원과 승정원일기를 쓴 사람들에 대한이야기, 3부는 ‘승정원일기’에 담긴 이야기로 나뉘어져있다. 세계 최대의 역사 기록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승정원일기’의 힘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사실만을 그대로 적은 직필과 올바른 역사를 전달하기 위한 기록을 담당한 관청인 승정원과 실무자인 승지와 주서들 노력에서 이루어졌다 말할 수 있다.
안락정은 1780년에 세워진 서당으로 양동마을 어귀인 성주봉 기슭, 양동초등학교 맞은 편 언덕위에 자리한다. 마을에서는 외진 곳에 지어 자손들을 빼어난 환경 속에서 공부시켰다. 안강들을 지나 경주 가는 길, 형산강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이 편안해 보이는 아주 전망 좋은 곳으로 동북쪽으로는 인동리와 연결된다. 안락정은 이씨 문중의 서당인 강학당과 더불어 양동마을을 대표하며 안락정 손영순의 후손들이 매입하여 정자로 삼았다. 안락정은 “내가 편안해 하는 것은 농부들의 편안하기 때문이요, 내가 즐기는 것도 그들의 즐거움이다.(吾所安者 野人之安 吾所樂者 野人之樂)”이라고 한 말에서 ‘안(安)’과 ‘락(樂)’에서 연유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더우기 마을에서 바라보는 넓은 들판과 아름다운 산은 편안해지는 순수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유교에서는 편안(安)해야 어질고(仁)’, 즐거우면(樂) 도리(義, 옳고 의로움)와 통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안락은 행복(happiness)으로 사람의 행복은 말과 행동이 같아야만 느낄 수 있듯이... 안락정은 건물의 앞쪽과 양옆은 반듯하게 담장을 쌓고 뒤로는 풍수해를 막기 위해 돌로 축대를 쌓고 그 옆에는 성주봉을 향하는 길을 내었다. 건물은 막돌로 쌓은 기단 위에 일자형 건물을 지었는데 가운데는 넓은 마루를 두고 양가에는 온돌방을 둔 것이 서원건축과 흡사하다. 건물은 학교의 기능에 알맞게 한 것으로 본다. 건물 앞은 전체적으로는 툇마루를 깔고 대청 뒤에는 쪽마루를, 방 뒤쪽은 벽장을 달아냈다. 필요에 따라서는 방문을 열어 전체가 다 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지었다. 이는 ‘따로, 또 같이’란 말처럼 건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바로 현재의 건축이 본받아야할 요소가 아닌가 싶다. 양반가의 집이나 정자에 현판이 없을 수 없다. 대청 앞면에는 ‘안락정’, 뒤벽 가운데는 ‘성산재’가 있는데 그 뜻은 ‘안락정은 성주봉 아래에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방문위에는 ‘성산팔경(聖山八景)’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는 안락정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경치를 말한다. 칠언절구로 가을의 밝은 달, 새벽기운, 해오름, 아침 안개가 걷히고 있을 때, 고기잡이배, 철도, 들판의 농부들을 주제로 삼았다. ‘술선당(術先當)’현판을 살펴보자. ‘술’은 ‘잇다’란 뜻으로 ‘선인들의 덕을 잘 이어 간다’는 의미로 문중어른들의 뜻을 잘 받들겠다는 각오를 나타내고 있다. 동쪽방인 사검실(師儉室)은 사마천이 쓴《사기》〈蕭相國世家〉에 나오는 말로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의 나라(秦)를 멸망시키고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친구이자 재상으로 한나라의 개국공신중의 하나인 ‘소상국’을 말한다. 유방이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 논공행상을 할 때 전장에서 공을 세운 무신들이 자신들보다 문신인 소상국을 으뜸으로 인정하자 유방은 ‘사냥할 때 들짐승을 잡는 것은 사냥개지만 개 줄을 풀어 방향을 알려주는 것은 사람’이라며 소하의 역할을 짚어주었다. 그 후 한나라가 통일이 되자 소하는 집은 외딴 곳에 두고 담장도 짓지 않았다. 그리곤 ‘후세가 어질면 나의 검소함을 배우고, 어질지 못해도 세도가에게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다’(後世賢 師吾儉不賢 毋爲勢家所奪’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조선 말기가 되면서 어지러운 사회상, 관리들이 백성을 수탈하는 것을 풍자하는 듯하다. 마당 한 쪽에는 석가산(돌을 모아 산 모양으로 만들어 정원의 일부로 구성, 조산으로도 부른다.)을 두어 생활공간을 신선이 사는 듯 꾸몄다. 고개를 들면 담장밖에는 오래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호위하듯 안락정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예전과는 달리 안락정의 넓은 마루에 올라도 반겨주는 벗도 한명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윤동주 시인이 어릴 적 친구들을 그리워하듯 나도 학창시절의 친구들이 생각난다. 마음만 맞으면 열차타고, 버스타고 도심을 벗어나곤 했던... 마을입구에는 역사도 없어 외로움에 떠는 양동마을역이 있다. 한때는 붐볐던, ‘칙칙폭폭...’ 굉음에 귀를 막던, 지금은 외롭다 못해 말라가는 곳에 스며있는 친구들의 따뜻한 온기... 철길 옆, 이름 모를 들꽃과 코스모스는 바람에 흩날리고... 올 한해도 가네...
병풍처럼 두른 산 아래 자리한 경주시 산내면. 경주시 산내면 의곡리 일대의 산내면사무소 주변으로는 산내면민들의 발이 돼주고 있는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산내면 버스정류장도 여느 시골의 정류장처럼 이용객이 급감하면서 낡은 기존의 건물을 헐리고 작지만 말끔하게 단장한 새로운 정류장 건물이 지난해 들어섰다고 합니다. 지난 10일, 이곳을 찾았더니 어린 시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담고있던 시골 버스정류장에서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이곳 정류장 부지 근처 중심으로 형성되는 산내면 5일 전통장은 산내와 청도 노선의 버스에서 내리는 주민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아침 일찍부터 시골장의 시끌벅적한 면모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산내면 일부리, 내일리, 감산리, 우라리, 내·외칠리, 신원리 등지에서 장을 보러 오는 주민이 이곳 버스정류장을 찾고 이용하면서 주민들의 발길도 잦아집니다. 산내면 버스정류장에는 대여섯 분의 어르신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어르신들이 이곳을 이용하는 것일테지요. “파도 사고 물미역도 사고 신발도 사왔지요” 라는 할머니 한 분은 오케이 OK목장 올라가는 동네인 소태리에 사는 분인데 근처 회관 앞에 내려서 집으로 가신다고 했습니다. 하루에 두 대 오는 마을버스를 타야하는 것이죠. 산내면 어르신들은 5, 10일이 장날인 건천장날에 맞춰 병원도 다녀오고 혹은 병원 가는 걸음에 건천장에 들러서 장을 보고 오기도 합니다. 건천장에서 볼일을 보고 이곳 버스 산내면 버스정류장에 와서 기다렸다가 다시 각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건천장에라도 다녀올라치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합니다. 기다리던 번호의 버스를 기다리는 눈길은 자꾸만 벽시계 쪽을 향하고 타야할 버스가 들어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시계 보는 시간은 더욱 잦아집니다. 몇 개의 보따리에는 건천장에서 사온 먹거리들이 단단히 동여매져 있었구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새로 비치된 대형 텔레비전을 보거나 아는 이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게 전부입니다. 몇 대의 대형버스 사이로 마을버스(경주 수요응답형 버스)가 차례로 한 대씩 시간에 맞춰 손님들을 태우고 떠났습니다. 긴 기다림 끝에 이윽고 버스에 오르는 손님은 기껏해야 서너명씩이지만 그들에겐 소중한 교통편입니다. 버스정류장은 개개인의 기억들이 혼존하는 곳인 것 같습니다. 떠났고 만났고 다시 기다림이 반복되는 장소로 말이지요. 아직도 하루에 두 세대 밖에 없는 버스를 기다려야 집으로 갈 수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림=김호연 화백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경북 경주시 탑동에 위치한 나정(蘿井)은 시조 박혁거세 탄강설화(誕降說話)가 얽힌 곳으로 천년 신라의 상징성을 갖는 공간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新羅本紀)」에 의하면, “조선의 유민들이 산골짜기 여기저기에 나뉘어 살면서 여섯 마을을 이뤘는데, 첫째는 알천(閼川)의 양산촌(楊山村), 둘째는 돌산(突山)의 고허촌(高墟村), 셋째는 취산(觜山)의 진지촌(珍支村)[혹은 간진촌(干珍村)], 넷째는 무산(茂山)의 대수촌(大樹村), 다섯째는 금산(金山)의 가리촌(加利村:加里村),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의 고야촌(高耶村)이다. 이것이 진한 6부가 되었다”전하며,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셋째의 취산과 넷째의 무산(茂山) 순서가 다르게 기록한다. 또 『삼국유사』「기이(紀異)」에는 “노례왕(弩禮王) 9년(32)에야 비로소 여섯 부(部)의 명칭을 고치고, 또 그들에게 여섯 성(姓)을 주었으니, 양산촌은 급량부(及梁部) 이씨, 고허촌은 사량부(沙梁部) 최씨, 대수촌은 점량부(漸梁部) 또는 모량부(牟梁部) 손씨, 진지촌은 본피부(本彼部) 정씨, 가리촌은 한기부(漢岐部) 배씨, 고야촌은 습비부(習比部) 설씨로 신라 여섯 성씨의 시조가 되었다”전한다. 조선에 이르러 선왕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종묘를 제안하며, 시조를 모신 조선 팔전(八殿)을 전국의 탄강지에 설치하였는데, 팔전 가운데 무려 경주에만 3곳(숭덕전:박혁거세, 숭신전:석탈해, 숭혜전:미추왕)이 존재한다. 앞서 신라의 종묘 제도는 제2대 남해차차웅 3년(6)에 처음으로 시조 박혁거세의 사당을 세웠고, 제22대 지증마립간 때 시조의 탄강지인 내을(奈乙) 나정에 신궁(神宮)을 건립하였고, 제36대 혜공왕 때 5묘(廟)와 제37대 선덕왕 때 사직단(社稷壇)을 세웠다고 전한다. 하지만 『삼국사기』에는 신궁이 제21대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9년(487) 2월에 신궁을 건립하였다 전하고,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1741~1826) 역시「영동사(詠東史)」에서 “신라 혜공왕이 처음으로 5묘를 세웠다. 미추왕은 김씨의 시조가 되고, 태종무열왕과 문무왕은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하는데 큰 공덕이 있어서 불천위(不遷位)가 되어 조묘(祖廟)와 예묘(禰廟)까지 합쳐서 5묘가 되었다. 박씨는 아달라왕에서 그치고 벌휴왕부터는 석씨와 김씨가 번갈아가며 즉위하였다”며 신라왕의 사당건립과 변천에 대해 언급하였다. 하지만 신라건국의 핵심배경인 6부촌장에 대해서는 국가적 대우와 국민적 관심이 매우 미비하였다. 다행스럽게도 현대에 이르러 비로소 신라6부촌장을 모신 사당이 건립이 추진되었는데, 양산재는 신라건국이념의 실천과 상징적 의미를 갖는 소중한 공간으로 인식된다. 박정희대통령 시절 1970년 김창곤 경주시장이 국가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신라 시조의 탄강지 나정 주변에 6부촌장을 모시는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였고, 1978년 다시 시장직을 역임하면서 10여년의 오랜 기간을 거쳐 공사가 마무리되었으며, 올해 초에는 추가로 강당을 건립 중에 있다. 당시 최숙 보존회장과 회원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건립에 맞춰 1981년 한학에 조예가 깊은 내남의 류석우(류시민의 백부)가 기문을 적었다. 필자 역시 6부촌장을 기리기 위해 그 기문을 풀이하여 소개한다. 양산재기(楊山齋記) 도읍의 사람들이 그 땅에 육부의 촌장을 위한 사당을 세우려고 논의한 지가 오래되었다. 김창곤 경주시장이 뜻을 논의하고 협력하여, 경술년(1970) 가을에 공사를 시작했다. 박경원 내무장관과 김수학 경북도지사도 이 말을 듣고 기뻐하였고, 국비와 도비를 얻어 공사를 도왔다. 제사는 시의 도움으로 비로소 제사를 지냈는데, 신해년(1971) 가을부터 기미년(1979) 봄에 공사를 마쳤다. 사당을 ‘입덕묘(立德廟)’라 하고, 삼국유사의 “덕이 있는 자를 왕으로 삼아 나라를 세우다(覓有德人 爲之君主 立邦設都乎).”에서 뜻을 취하였다. 신문(외삼문)을 ‘홍익문(弘益門)’이라 하고, 단군의 홍익인간에서 뜻을 취하였다. 정문을 ‘대덕문(大德門)’이라 하고, 중용의 “대덕을 구현하는 자는 반드시 명을 받는다(大德者必受命).”에서 뜻을 취하였다. 동재·서재를 ‘익익재(翼翼齋)’라 하고, 시경 대아편의 “대대로 빛이 나는 밝은 덕이여, 그 계획 그 생각이 이루어지네(世之不顯 厥猶翼翼).”에서 뜻을 취하였다. 당을 ‘윤적당(允廸堂)’이라 하고, 서경 고요모의 “진실로 그 덕을 따르라(允迪厥德).”에서 뜻을 취하였다. 전체를 ‘양산재’라 이름하였으니, 지명을 따랐다. 하루는 보존회장 최숙(崔淑)이 이 일은 오직 우리 고을의 성대한 일일뿐 아니라 진실로 나라의 역사와 백성의 떳떳함과 관련있기에 기문이 없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여 나에게 기문을 부탁하였다. 나는 글이 부족하지만, 다만 간략하게 그 일의 전말을 갖추노라. 단기 4314년(1981) 4월 풍산 류석우 삼가 적다.
‘메뚜기도 여름이 한철’이라고 누구나 전성기는 따로 있다. 공연도 마찬가지다. 오페라 ‘라 보엠(La Boheme)’과 발레 ‘호두까기인형(The Nutcracker)’은 12월에 유난히 잘 나가는 공연이다. 특히 호두까기인형은 연말공연의 달러박스다. 미국의 발레단들이 호두까기인형의 연말공연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수입의 약 40%에 이른다고 한다. 호두까기인형은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곡 중 하나로 쳐준다. 하지만 189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극장(지금의 마린스키 극장)에서의 초연은 참담한 실패였다. 안무의 신 프티파가 초연 3개월 전에 몸져누운 악재도 있었다. 곧바로 극장의 레퍼토리 목록에서 사라진 호두까기인형은 거의 반세기가 지난 1934년에서야 같은 극장의 바실리 바이노넨(V.Vainonen)의 안무 수정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된다. 호두까기인형이 오늘날처럼 크리스마스 시즌의 캐시 카우(cash cow)가 된 건 전적으로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1904-1983) 덕분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인 그는 발레 뤼스의 안무가로 유럽에서 활동하다 발레단이 해체되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발레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가 만든 뉴욕시티발레단은 1954년에 호두까기인형을 성탄 시즌 작품으로 무대에 올려 소위 ‘대박’을 치게 된다. 당시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게 이 공연은 연말에 꼭 봐야 할 ‘머스트 해브(must have)’ 아이템이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호두까기인형은 여러 극장에서 연말의 레퍼토리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다. MBC 방송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최초로 9연승을 달린 하현우의 가면을 기억하는가? ‘우리동네 음악대장’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 가면은 바로 호두까기인형에 모티브가 있다고 한다. 여기서 퀴즈 하나! 호두까기인형으로 호두를 어떻게 부술까? 망치처럼 인형을 내려쳐 호두를 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래도 깨지긴 하겠지만 적절한 사용법은 아니다. 전통적인 호두까기인형은 카이저수염을 한 정복 군인의 모습이다. 군인의 입에 호두를 넣고 뒤쪽 레버를 내리면 호두가 먹기 좋게 깨진다.
無事是貴人(무사시귀인) 있는 그대로가 귀하다. 但莫造作(단막조작) 일부러 꾸미려 하지 말라. 임제종(臨濟宗)의 개조 의현(義玄) 스님의 법어집인 『임제록(臨濟錄)』에 있는 구절이다. 불국사는 미사여구로 치장할 필요가 없는 사찰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보아야 한다. 미혹과 번뇌의 세계인 현세를 차안(此岸)이라 한다면 피안(彼岸)은 해탈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간이 존재하는 미혹과 번뇌의 세계를 차안이라 하고, 이에 대해 번뇌의 흐름을 넘어선 깨달음[열반(涅槃)]의 세계를 피안이라 부른다. 미혹의 차안에서 깨달음의 피안에 도달하는 것이 도피안(到彼岸)으로 산스크리트어로는 파라미타인데 한자로는 바라밀(波羅密) 또는 바라밀다(波羅密多)라고 한다. 바라밀에는 육바라밀이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 등을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보시는 조건 없이 기꺼이 주는 것, 지계는 계율을 잘 지키는 것, 인욕은 곤욕을 참는 것, 정진은 꾸준히 노력하는 생활, 선정은 고요한 정신 상태에 이르는 것, 지혜는 사물을 바르게 보는 정신적 밝음이다. 이 가운데 보시·지계·인욕은 타인을 위한 이타(利他)의 생활인 자비의 실천으로, 보통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생활이라 한다. 정진·선정·지혜는 자신을 위한 자리(自利)의 생활로서, 지혜를 추구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생활이다. 즉 보살은 아래로는 깨닫지 못한 중생을 제도하고, 위로는 자신을 위해 깨달음의 지혜를 구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곳 불국사 경내에서 일주문, 반야교, 천왕문, 해탈교, 구품연지가 있던 자리까지 차안의 세계라면 청운교과 백운교를 올라 자하문을 지나고, 연화교와 칠보교를 올라 안양문을 통과하면 도피안 즉 부처님의 나라인 불국에 이르게 된다. 가람배치는 불교의 세계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도상적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종교적 배경과 당시 궁궐에 버금가는 최고의 건축으로서 엄격한 권위를 표출하고자 하는 사회적 배경, 그리고 자연 지세에 어울리게 건물을 배치한 지리적 배경에 따라 구성 배치된다. 불국사도 이러한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반영됐다. 즉, 신라인이 그린 불국의 이상적인 피안 세계를 크게 3개의 영역으로 구성했으니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석가여래의 사바세계, 극락전에 모신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토,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비로전에는 불국을 총괄하는 비로자나불의 화엄장세계가 펼쳐진다. 그 외의 부속 전각으로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과 부처님 제자들을 모신 나한전이 있다. 극락전과 나한전 사이에는 복원되지 않은 또 다른 건물지가 있다. 얼마 전까지 이 건물지는 법화전터로 안내돼 있었는데 지금은 표지판을 없애버렸다. 임진왜란 당시 왜구들에 의해 불국사 경내 2000여 칸의 건물이 불에 타 버렸다고 한다. 이후 1604년부터 1805년까지 2백여 년 동안 중건됐는데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쇄락을 거듭하다가 1969년 발굴조사를 하고 1970년부터 4년에 걸쳐 복원 공사를 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불국사고금창기』에 나와 있으나 현재 복원되지 않은 건물로는 극락전 일곽(一廓)의 광학장강실(光學藏講室) 등 2동, 관음전 일곽의 동서남북의 행랑, 현재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지장전 일곽의 지장전을 비롯한 10개 동, 이외에도 그 위치를 알 수 없는 45종의 건물이 나열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32간 규모의 오백성중전, 25간의 천불전을 비롯하여 시왕전, 16응진전, 문수전, 동당, 서당, 동별실, 서별실, 청풍료, 명월료, 왕자문설성당(王子問說禪堂), 객실, 영빈료, 심검당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불국사고금창기』에 나오는 전각 등과 그 부속건물을 머리 속으로 그려본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가람이다. 진정 부처님의 나라, 불국의 장엄한 모습에 숨이 막힌다.
한국수력원자력(사장 정재훈)이 20일 본사에서 양성평등 실천 다짐대회를 열었다. 한수원 양성평등위원회 주관으로 개최된 이날 행사는 경영진 및 노동조합 간부, 본사 직원 등 230여 명이 참석했다. 직원 대표의 양성평등 실천 다짐문 낭독, 즉석 양성평등 인식조사, CEO와 직원과의 양성평등 토크 등으로 진행됐다. 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