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事是貴人(무사시귀인) 있는 그대로가 귀하다.但莫造作(단막조작) 일부러 꾸미려 하지 말라. 임제종(臨濟宗)의 개조 의현(義玄) 스님의 법어집인 『임제록(臨濟錄)』에 있는 구절이다. 불국사는 미사여구로 치장할 필요가 없는 사찰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보아야 한다. 미혹과 번뇌의 세계인 현세를 차안(此岸)이라 한다면 피안(彼岸)은 해탈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간이 존재하는 미혹과 번뇌의 세계를 차안이라 하고, 이에 대해 번뇌의 흐름을 넘어선 깨달음[열반(涅槃)]의 세계를 피안이라 부른다. 미혹의 차안에서 깨달음의 피안에 도달하는 것이 도피안(到彼岸)으로 산스크리트어로는 파라미타인데 한자로는 바라밀(波羅密) 또는 바라밀다(波羅密多)라고 한다. 바라밀에는 육바라밀이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 등을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보시는 조건 없이 기꺼이 주는 것, 지계는 계율을 잘 지키는 것, 인욕은 곤욕을 참는 것, 정진은 꾸준히 노력하는 생활, 선정은 고요한 정신 상태에 이르는 것, 지혜는 사물을 바르게 보는 정신적 밝음이다.
이 가운데 보시·지계·인욕은 타인을 위한 이타(利他)의 생활인 자비의 실천으로, 보통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생활이라 한다. 정진·선정·지혜는 자신을 위한 자리(自利)의 생활로서, 지혜를 추구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생활이다.
즉 보살은 아래로는 깨닫지 못한 중생을 제도하고, 위로는 자신을 위해 깨달음의 지혜를 구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곳 불국사 경내에서 일주문, 반야교, 천왕문, 해탈교, 구품연지가 있던 자리까지 차안의 세계라면 청운교과 백운교를 올라 자하문을 지나고, 연화교와 칠보교를 올라 안양문을 통과하면 도피안 즉 부처님의 나라인 불국에 이르게 된다.
가람배치는 불교의 세계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도상적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종교적 배경과 당시 궁궐에 버금가는 최고의 건축으로서 엄격한 권위를 표출하고자 하는 사회적 배경, 그리고 자연 지세에 어울리게 건물을 배치한 지리적 배경에 따라 구성 배치된다. 불국사도 이러한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반영됐다. 즉, 신라인이 그린 불국의 이상적인 피안 세계를 크게 3개의 영역으로 구성했으니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석가여래의 사바세계, 극락전에 모신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토,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비로전에는 불국을 총괄하는 비로자나불의 화엄장세계가 펼쳐진다.
그 외의 부속 전각으로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과 부처님 제자들을 모신 나한전이 있다.
극락전과 나한전 사이에는 복원되지 않은 또 다른 건물지가 있다. 얼마 전까지 이 건물지는 법화전터로 안내돼 있었는데 지금은 표지판을 없애버렸다. 임진왜란 당시 왜구들에 의해 불국사 경내 2000여 칸의 건물이 불에 타 버렸다고 한다. 이후 1604년부터 1805년까지 2백여 년 동안 중건됐는데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쇄락을 거듭하다가 1969년 발굴조사를 하고 1970년부터 4년에 걸쳐 복원 공사를 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불국사고금창기』에 나와 있으나 현재 복원되지 않은 건물로는 극락전 일곽(一廓)의 광학장강실(光學藏講室) 등 2동, 관음전 일곽의 동서남북의 행랑, 현재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지장전 일곽의 지장전을 비롯한 10개 동, 이외에도 그 위치를 알 수 없는 45종의 건물이 나열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32간 규모의 오백성중전, 25간의 천불전을 비롯하여 시왕전, 16응진전, 문수전, 동당, 서당, 동별실, 서별실, 청풍료, 명월료, 왕자문설성당(王子問說禪堂), 객실, 영빈료, 심검당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불국사고금창기』에 나오는 전각 등과 그 부속건물을 머리 속으로 그려본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가람이다. 진정 부처님의 나라, 불국의 장엄한 모습에 숨이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