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거의 간판(옥외광고물)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옥외광고물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간판은 상업적인 홍보의 수단으로서 도시경관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협소한 도시환경에서 간판은 각 업소 홍보에만 주력해 도시경관의 종합적인 이미지와의 조화를 간과하고 있다. ‘타 업소 보다 더 크게, 더 많이, 더 화려하게’ 일변도로 무질서하게 난립된 간판들이 도시미관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해왔던 것이 현실이다.
점포주들은 가장 강력한 홍보수단으로 남들보다 크고 많은 간판을 설치하고자 애쓰는가하면, 광고업체도 건축물과 간판의 조화가 중시되는 상호관계에 대한 심도 있는 고려와 관련법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도 간판난립의 원인이 되고 있다.
디자인으로 먹고 사는 세상이다. 트렌드로 지속가능한 영역의 최일선에서 디자인은 기능하고 있다. 통일성을 가지면서도 정체성을 드러내고 조화로운 간판디자인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에, 경주시는 ‘디자인 경주’에 주목하며 2012년부터 2019년까지 간판개선사업에 중점을 두고 14개 거리 834개 업소의 노후화된 간판과 원색의 돌출간판을 정비해 역사문화도시 경주의 정체성을 살린 도시경관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경북도비와 경주시비(한 사업구간당 3억~3억5000만원으로 총 43억원)를 확보해 7년간 지원 받고있는 예는 전국에서도 경주가 유일하다. 경주시 도시계획과 도시디자인팀(임경석 도시계획과장과 도시계획과 도시디자인팀 이강식 담당자)을 찾아 간판 경관 사업시행전과 후, 현재 진행중인 정비현황과 향후 진행될 사업, 좋은 간판의 사례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무질서한 대형 돌출 간판 대신 주로 소형 돌출 간판으로 유도, 시원함 확보하고 건물 본연의 모습이 잘 드러나게 해 시는 ‘도시경관과 조화로운 옥외광고물 개선’이라는 목표로 간판개선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도시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간판개선을 통해 가로환경을 개선하고 쾌적한 거리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그간 추진한 간판개선사업은 도시미관 개선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 사례들을 몇 가지 살펴본다.
중앙시장에서 봉황로에 이르는 골목의 경우, 무질서한 대형 돌출 간판을 철거하고 주로 소형 돌출 간판으로 유도해 시각적으로 시원함을 확보했다. 동대로의 사례에서도 건축물을 과하게 뒤덮고있는 간판들을 제거하고 각 건축물에 따라 통일성을 기하며 작은 폰트(font)나 작은 크기의 간판으로 유도해 건물 본연의 모습이 잘 드러나게 했다. 경주읍성 거리의 경우는 워낙에 낙후된 기존 건물이라 간판만 바꾸기에는 제약요소가 많아 건물 전체를 청소하고 새롭게 도장한 뒤 간판을 교체 정비한 예도 있다. 큰 간판을 떼고 난 자리는 노후화 돼있는 경우가 많아 세척과 정비처리를 한 뒤 건물을 되살리는 바탕위에 간판을 다시 달고 있다고 한다. 또 상호 자체를 점포주와 협의해 바꿔 점포의 고유성을 강조해주는 사례도 있었다.
읍성 주변은 현재 계속 진행중인 사업으로 행정안전부가 선정하는 ‘2018 간판개선 시범사업 대상지’에 선정돼 노후 간판에 대해 주민과 상인들의 자율적 참여와 의견수렴을 통해 테마가 있는 거리로 정비하고 있다. 디자인은 옥외광고센터 온라인컨설팅에도 자문을 구하고 행정안전부 지정 자문관의 자문도 경주시와 함께 반영한다. 총 4억1000만원을 투입해 84개 업소의 간판을 교체하고 노후 간판을 철거하고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로 간판과 건축물을 돋보이게할 수 있는 장치 등)를 설치하고 기존의 형광등 간판을 친환경적인 에너지 절약형 LED간판으로 교체하는 등 경주읍성의 역사와 문화적 특성이 반영된 간판으로 정비하고 있다.
이강식 담당자는 “이 경우도 주민과 협의기간만 6개월 걸렸습니다. 사업 시행은 지난 10월 말경 시작했고 내년 1월말까지는 준공할 예정입니다. 이 지역은 도심재생 뉴딜 사업 구간에 포함되므로 도심미관 개선대상으로서 특히 간판 경관개선은 가장 돋보이는 변화가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사유재이면서 공공재인 간판, 도시경관과 더욱 조화롭고 차분하게 어울리도록 디자인 이들 시범대상일지일 경우는 시에서 100%전액 지원하고 있으나 간판의 갯수나 크기, 눈에 띄는 원색 등이 줄어드는 측면에서 점포주들이 여전히 불만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강식 담당자는 “간판정비에 대한 주민설명회를 가지고 사업계획 취지와 설명부터 합니다. 설득을 해도 반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판도 사유재이기 때문이죠. 조율과정에서 그 점이 가장 힘드는 부분입니다. 한 점포당 스무 번 넘게 찾아가 설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라면서 “간판의 변화는 시각적인 효과와 함께 주민과 점포주, 건물주의 간판에 대한 문화인식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더욱 큰 것 같아요. 향후 그들이 점포를 옮기더라도 지나친 간판디자인(돌출 입간판 등)을 지양하고 간판 디자인에 대해 고심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상업수단으로서의 간판은 점포주나 광고업체 등 개인이 자비를 들여 설치하는 엄연한 사유재 성격이기도 하지만 도시경관 구성요소로서의 옥외광고물은 도시이미지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공공재 성격을 지니므로 도시경관과 더욱 조화롭고 차분하게 유도하고 있다고.
한편 정비된 소형 돌출 간판이 다소 획일적이라는 기자의 지적에 대해서는 “주민과의 협의과정에서도 간판 디자인이 혹시 획일화 될 우려가 있는 점을 가장 조심합니다. 그래서 지역의 문화와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저희와 디자인업체보다 먼저 점포주의 말에 귀 기울입니다. 주민 주도의 벤치마킹(선진사례)과 주민설명회 등을 가지고 간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주민들에게 디자인이나 업소명과 업소정보 등의 특징을 물어 도출된 자료로 경주시가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해서 제시하고 다시 표준가이드라인을 제안하는 식입니다. 이 중에서 상호 협의를 거쳐 최종결정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임경석 도시계획과장은 “무엇보다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담으려면 주민 자율에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여계획단계부터 추진, 관리단계에 이르기까지 주민협의체를 구성하고 사업추진을 통해 업주의견 수렴 및 자율적 참여 유도를 하는 것입니다” 라고 했다.
이렇게 협의하고 조정하고 결정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업소당 평균 10회 정도의 과정을 거치지만 수년간, 혹은 수십년간 일해 온 업소의 정체성(identity)이 드러나게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었다. 관련 전문가와 함께 디자인적인 관점에서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오래된 간판에서는 그 점포의 얼굴이자 정체성이 나타난다. 업소의 흔적과 역사가 담긴 간판이면서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경우는 원래의 상태를 보존하는 범위내에서 정비를 하고 있다.
-아름다운 간판사업 위한 2019년 새로운 시도... 3개 읍·면·동 간판개선, 좋은 간판 공모전 아름다운 간판사업의 일환으로는 먼저, 2019년 1월부터 번화가나 관광지가 아닌 간판개선이 필요한 읍면동 소외된 지역의 가로 및 건물에 대해 순수 경주시비(1억 5000만원)로 읍·면·동으로부터 대상지 공모신청을 받아 3개 지역에 적용할 예정이다. 이들 지역의 문화적 특색을 살린 간판으로 개선해가는 것으로 지역민들의 간판디자인에 대한 의식전환의 계기도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경상북도 2018 에너지절약형 간판개선사업’ 공모사업으로 선정된 경주역전 일대 에너지절약형 간판개선사업의 착수다. 경주역전 삼거리에서 팔우정해장국거리까지 원화로는 경주를 찾는 관광객의 관문이자 역전 중심상권과 전통시장, 주요사적지로 이어져 시민과 관광객의 통행량이 가장 많은 구역 중의 하나다. 상가건물과 노후화된 간판이 난립해 있는 이 구간이 테마가 있는 특화된 간판거리로 거듭나는 것. 이곳은 도비 9천만원을 포함한 사업비 3억원을 투입하고 지난 11월부터 진행중이다.
또 한가지 추진될 사업으로는 좋은 간판의 다양한 디자인 사례를 개발하고 디자인 역량을 강화시키기위해 ‘2019년 경주시 좋은 간판 공모전’을 가진다. ‘좋은 간판’은 경주시 내 제작·설치된 간판을 대상으로, ‘창작간판’은 기존 간판을 대상으로 새로운 디자인이 적용된 도안에 대해 공모하는 것이다.
-“주민과 꾸준한 소통으로 공유하며 지역 정체성 반영한 디자인이 개발돼야” 디자인 마인드로는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야 하고 도안 및 제작의 관점에서는 디자인과 적절한 소재의 사용, 그리고 폰트의 적절한 적용을 예로 들면서 황리단길의 사례를 들었다.
“특별한 기교 없이 적절한 소재와 폰트의 결합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간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황리단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주민 스스로가 애착을 가지고 그들이 고심했던 디자인의 간판을 주문외뢰해 개성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간판개선사업은 단기간에 효과가 나는 사업은 아니다. 이 사업을 통한 시민의식 변화와 선진광고 기술 역량강화 등 광고산업의 진흥이 뒷받침돼야 하는 장기적인 도시미관 프로젝트다. 이강식 담당자는 “간판개선사업은 도시재생사업 및 전선지중화 등 각종 경관사업을 연계해서 추진하므로 아름다운 가로환경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이는 지역상권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겁니다. 간판개선사업은 지역의 가치와 문화적 상징성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옥외광고문화는 주민과 꾸준한 소통으로 공유하며 지역 정체성을 반영한 디자인이 개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