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26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 시작됐다. 경주지역에서 처음으로 확진자가 나온 지난해 2월 22일 이후 정확히 371일 만이다. 일상으로의 회복을 위한 경주 1호 접종자는 공병렬(57) 굿모닝요양원 원장과 김종희(54) 부원장 부부다. 공 원장은 접종 직후 “요양원 어르신들과 직원들이 행여 백신 안전성에 대해 ..
경주상공회의소 제24대 회장에 ㈜월성종합개발 이상걸 회장이 선출됐다. 경주상공회의소는 25일 경주라한호텔에서 2021년 제1차 임시의원총회를 열고 만장일치 합의 추대로 이 회장을 제24대 경주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선출했다.신임 이 회장은 앞으로 3년간 경주상공회의소를 이끌어가게 된다.이날 총회에서는 또 부회장..
코로나19 백신 ‘아스트라제네카’가 25일 경주에 도착했다. 이날 오전 11시 20분경 백신을 실은 운송차량이 군 병력과 경찰의 삼엄한 호위 속에 경주시보건소에 입고됐다. 백신 첫 접종은 26일 오전 9시부터 시작되며, 경주지역 요양병원·시설 만 65세 미만 입소자와 종사자 등이 그 대상이다. 이날 경주에 도착한 백신..
밤의 찬란함 변함없는 동해, 그 바다를 지킴이로 성스러운 그곳 어두운 밤에도 빛난다 김선희 작가 010-5654-4742/zeng72zeng@naver.com 한일교류전(2016), 아트두바이(2018), 광저우아트페어(2018), 파워코리아표지모델(2019,1), ‘쌀독 및 그 제조 방법’ 특허출원(2020) 대능원돌담길미술관(2021) 현 한국미술협회 경주지부, 신라공예협회, WAG(세계예술기구) 회원 도예 공방 ‘서후’ 운영
코로나19 장기화 여파로 경주를 찾은 관광객이 급감한 가운데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을 적게 받는 일부 관광명소는 방문객이 별 차이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경주관광의 새로운 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최근 공포한 경주지역 주요관광지점 수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4곳의 입장객 수가 전년 대비 평균 50% 넘게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신라역사과학관은 94.2% 감소해 최대 감소율을 기록하는 등 주요관광지점 19곳의 입장객 수가 크게 줄었다. 특히 경주의 간판 관광지로 매년 100만명 이상 찾던 동궁과월지, 대릉원, 불국사 등 경주지역 대표 관광지 3곳의 입장객 수가 절반 가까이 급감했다. 반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상대적으로 가능한 국립공원과 산 등 자연유형의 관광지 5곳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주 토함산(불국사 탐방로 제외)은 지난해 81만9668명이 찾은 것으로 집계돼 전년 19만259명 대비 3배 이상 크게 증가했으며 경주 남산 역시 전년보다 6.2% 늘었다. 이외에도 단석산, 구미산 입장객 수가 전년 대비 각각 42.5%, 49.2% 증가했다. 오릉도 지난해 5만3338명이 찾아 전년 대비 8.2% 늘었다. 전 세계에 확산된 코로나19로 불국사와 석굴암은 90%에 가까이 감소하는 등 지난 1년간 경주방문 외국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의 경주 관광은 새로운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천년고도 경주는 이번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관광객들이 여유롭게 문화유적을 탐방하고 자연 속에서 힐링을 할 수 있는 최적지임이 증명됐다. 특히 노천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경주의 역사문화자원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관광자원은 앞으로 더욱 각광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더 이상 코로나19 이전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경주가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최적화된 관광정책을 수립하고 관광객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주가 코로나19 위기에 잘 대응해 포스트 코로나시대 관광산업을 주도하는 기반을 구축하길 기대한다.
저출산, 학령인구 감소가 가속화되면서 전국의 지방대학들이 ‘벚꽃이 떨어지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위기는 경주지역 대학들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같은 원석재단인 경주대와 서라벌대학은 심각하다. 경주대는 최근 신입생 충원율이 30% 이하로 떨어지면서 이제 존폐위기에 내몰렸다. 구 재단의 비리논란으로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지정된 경주대는 2016년 72.6% 충원율을 기록했지만 2017년에는 56.1%, 2018년도에는 32.9%, 2019년에는 20.5%, 2020년도에는 25.1%로 급감하고 말았다. 재학생 충원율도 2018년 45.5%, 2019년 36.7%, 2020년 34.1%로 매년 감소했으며 중도탈락률 역시 2017년 13.1%에서 2018년 15.6%로 10%대를 유지하다 2019년에는 32.1%로 급격히 상승했다. 지금 경주대는 신입생, 재학생 충원율 감소에다 중도 탈락학생까지 증가하면서 삼중고를 겪고 있다. 그동안 신입생 충원율이 높았던 동국대 경주캠퍼스도 올해는 249명의 신입생을 추가 모집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덕대도 신입생 충원율은 90%이상 유지되고 있지만 중도탈락학생 비율이 10%이상을 기록하는 등 재학생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사학비리 문제로 지역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왔던 경주대는 지난해 12월 같은 원석재단인 서라벌대학과 통합을 위한 MOU를 체결하고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재도약을 모색하기로 했지만 재단과 학교 내부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히면서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방사립대의 경우 저출산과 학령인구 감소에다 수도권 대학 선호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신입생 모집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지방대학의 위기는 지역경기 침체와 지방소멸을 가속화 시킬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방대학의 문제를 풀기 위해선 먼저 정부의 공공적인 개입이 요구된다. 현 정부는 지방자치분권을 매우 중요시 여기고 주요 정책을 펴고 있다. 정부가 지방자치제를 공고히 정착시키려면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방대학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제도를 보완하고 적극 지원해야 한다. 재단과 학교관계자, 지역사회도 대학이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경주대와 서라벌대학의 통합은 미룰 수도 거스를 수 없다고 본다. 앞에서는 통합해야한다고 하면서 뒤에서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면 대학을 살리는 길은 요원하다. 시민들은 경주대와 서라벌대학의 통합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재단과 두 대학 관계자들이 의지만 확고하다면 통합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경주사회에 역할을 해 온 두 대학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비극만은 없어야 한다.
며칠 전에 청년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의 간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이미 창업을 해서 어느 정도 탄탄한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거나 창업에 관심이 있고 좋은 콘텐츠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예비창업자로서 기회를 만들고 있는 청년들이 자리를 함께 한 자리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즐거웠고 신선한 아이디어들도 많았다. 특히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일자리 지원사업 등에 대한 의견들도 나왔고, 그 와중에 창업지원금 등으로 창업을 하고 난 후 지속하는 것이 어렵다는 토로가 있었다. 시작은 하지만 자립이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콘텐츠는 있는데 지속적인 수요는 없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그러면서 이구동성으로 기업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서 일자를 제공하면 되는데 굳이 국가에서 창업에 대한 독려를 계속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한동안 기업가정신이라는 이름 아래 창업 열풍이 불어닥쳤다.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한 창업만이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는 거대한 담론으로 창의성에 대한 교육이 활발했었다. 하지만 코로나 19의 여파로 자영업자들의 기가 꺾이고 창업을 한 개인사업자들보다 일반기업에서 근무하는 안정적인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고 그런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점점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와중에 닥친 코로나 사태는 급속하게 줄어든 일자리로 청년들과 기성세대들에게 당장 먹고살 것에 대한 걱정이 커졌다. 이 와중에도 주식과 부동산, 가상화폐 등으로 일확천금의 수익을 올리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더불어 나만 투자에 뒤처지지 않는가 하는 불안으로 영 끌(영혼을 끌어모아서 투자)이나 빚 투(빚을 내어서 투자)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더욱 확산시키는 사태에 이르렀다. 23일 한국은행의 ‘2020년 4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 발표를 보면, 분기 가계 빚이 1726조로 신용대출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대라고 발표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가계신용대출이 증가한 이유도 있지만, 주식 및 부동산 자금 수요증가가 크다고 한다. 코로나 사태가 가속했을 뿐이고 진행형이었던 사실이다. 실체없는 부에 매달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볼 때, 노동없는 부 사회의 7대 악의 하나라고 했던 간디의 말을 떠오른다. 정부는 지난해 일자리 예산으로만 25조5000억원을 편성했지만, 고용지표는 더욱더 낮아지고 실업률은 높아져서 대다수 청년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라 생각을 할 것이다. 이렇듯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의 효과가 미비한 만큼 또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단기적이면서도 지원금 위주로 정부에서 주도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짚어보고자 한다. 현재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비롯해 노인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 등 일자리 창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1년의 단기계약직의 일자리 창출이나 연 단위의 프로그램 등으로는 자발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가기 어렵다. 일자리 창출의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국가가 직접적으로 혹은 기업을 통해서 하는 일자리창출은 수요자중심이 아니다. 평생직장이나 가치실현을 할 수 있는 원하는 분야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제는 직접적인 금전지원보다는 취업수요자들이 어떻게 하면 자발적이고 주도적으로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개인 주도적이라면 실패를 하더라도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모임에서 자발적인 청년들인 당장 큰 수익은 되지 않더라도 재미있다고 했다. 일확천금을 얻는 것이 아닌 노동을 통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일들 수행하고자 하는 청년들은 또 다른 방법들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소수이다. 다수의 자발적 취업수요자를 양성하기 위해서 정부의 일 년 일자리 예산으로 취업아카데미를 만들기를 제안한다. 기술이나 기능 혹은 역량을 증가시키는 스펙을 쌓아가는 지원은 물론이고, 변화의 시대에 적응하는 근성을 기르고, 협력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각자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새로운 개념의 사관학교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 시대는 비대면 마케팅이 주가 되고, 그에 따른 감성과 기술적 능력이 중요해졌다. 좋은 콘텐츠만 있다고 창업이나 취업이 가능한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예전처럼 혼자 부지런히 뛴다고 될 일도 아니다. 각자가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능력을 갖추고 협업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현 트랜드와 소비심리를 연구하는 연구팀과 기술적 부분을 담당하는 기술협력팀 그리고 홍보팀, 영업팀등이 함께 꾸려져야 가능한 시대라는 것이다. 취업사관학교는 청년들이나 수요자들이 직접 인적플랫폼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는 곳이다. 한 해 25조 정도의 예산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소비성의 일자리 창출을 뛰어넘은 창조에 융합을 더하며 인간연대를 만들어 주는 취업사관학교는 졸업을 유예하고 취업 때까지 학교에 이름이 남아있어야만 하는 청년들에게도 황금알을 낳도록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어르신, 연세도 있으신데~~” 듣는 어른 참 서운하다. 황혼도 서러운데 나이까지 들먹이니. 하늘이, 구름이, 노을이 예쁜 날이다. 콧바람 투어나 해야겠다고 집을 나섰다. 버스에서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이놈 봐라, 내가 노인으로 보이나?”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만약 안 비켜주고 딴 짓하고 있었으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이런 괘씸한 생각이 들었을 게 분명하다. 나이 들면 이렇게 몽니를 부리게 되는가보다. 노인 대접! 받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요즘 부쩍 “내 나이 황혼이지만, 연세가 아니고 나이야!”라고 젊게 봐달라는 노년들이 많아졌다. ‘나이는 못 속이지’ 보다는 ‘아직도 청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도 하다. 미국 미네소타주 의학협회에서는 ‘호기심도 이상도 없이, 매사에 무관심으로 영혼이 주름진 사람’을 노인이라고 정의했다. 스스로가 늙었다고 생각하고,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하고, “이 나이에 그깟 일은 뭐하려고”라고 말한다면 그냥 노인이다. 그러나 “더 이상 젊지는 않지만 늙은 것은 아니다. 인생에 배움은 끝이 없다. 아직도 해보고 싶은 재미난 일이 너무나 많아”라고 말한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노인이 아니다. ‘젊을 때는 철학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되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철학하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되오. 자신의 영혼을 보살피는 데는 너무 이른 때도 너무 늦은 때도 없는 것이오’ 철학하는 데는 늙었다는 것이 아무 상관없다는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이다. 오히려 여유로운 노년은 생각하기 좋은 시기가 아닌가. 햇볕 화사한 날에는 경치 좋은 곳에 여행을 가고,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날에는 책 한권 펴고 빗소리를 들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정원의 꽃을 가꾸고 손자들과 놀기도 한다. 가끔은 배우자와 함께 영화나 연극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린다. 날씨가 맑으면 맑아서 좋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고, 개구리가 울면 개구리가 울어서 좋지 않은가. 노년에는 젊었을 때보다 푸른 하늘이 더 잘 보인다. 분주하게 사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다. 머리는 비울수록 똑똑해지고 생각은 버릴수록 채워진다고 했다. 비우고 버리는 삶도 괜찮을 것 같다. 노년에는 현직의 많은 걱정거리를 내려놓을 수 있어서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래도 걱정거리가 있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중남미의 과테말라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인디언들 사이에는 ‘걱정 인형’이라는 것이 전해 내려온다. 어떤 문제나 고민이 있으면 잠들기 전에 인형에게 말한 뒤 베개 밑에 넣고 자는데, 잠든 사이 인형이 주인의 걱정거리를 멀리 내다버린다고 믿는 것이다. 쓸 데 없는 걱정을 지워버리려는 인디언들의 지혜다. 이제 노년의 걱정거리를 모두 이 ‘걱정 인형’에게 말하여 멀리멀리 내다 버리자. 노인의 말을 들어보라! 그가 살아온 과거를 말한다. 젊은이의 말을 들어보라! 장래의 일을 말한다. 청춘에 힘을 실어주는 그럴듯한 시 구절이다. 그런데 젊었더라도 추억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늙었더라도 미래의 희망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살아온 기간이나 남은 인생의 길이에 따라서 획일적으로 단정할 것은 아니다. 인생이 남은 세월이나 이두박근의 힘만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온화한 노년의 얼굴에 살아온 햇수만큼이나 지혜가 또렷이 쓰여 있다면 진정으로 존경받을 만한 노년이다. 여생을 ‘그냥 남아 있는 날’이 아니라 ‘새롭게 열리는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이는 그냥 숫자일 뿐이다. 노년은 노년일 뿐, 괄시 받을 일도 대접 받을 일도 아니다. 도움 받을 일 있으면 도움 받고 도움 줄 일 있으면 도움 주면 된다. 어눌한 만큼 현명하다. 그냥 그대로 노년으로 살면 된다. 이렇듯 행복한 삶을 원하는 사람에게 황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젊음은 젊음대로, 늙음은 늙음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학은 오리 다리가 짧다며 늘리겠다고 덤비고, 오리는 학의 다리가 길다며 자르겠다고 덤벼서는 안 된다. 다른 것은 그저 다를 뿐이다. 젊은이든 늙은이든 저마다 자기의 삶을 살 뿐, 모두가 제 몫의 인생을 사는 주인공이다. 지금 행복해지고 싶으면 나이를 잊어라!
경주 내남 이조리 출신의 도와(陶窩) 최남복(崔南復,1759~1814)은 1784년 아름다운 기암괴석이 가득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방리마을 연화산에 백련정을 지어 백련서사를 경영하며 경주의 구곡문화를 전한 인물이다. 그가 남긴 『도와집(陶窩集)』권1,「시」․「백련구곡도가 병소서십수(白蓮九曲櫂歌 幷小序十首)」는 경상도 구곡문화의 중요한 사료가 되며, 경주최씨가 반구대 골짝에 은거하면서 운암(雲巖) 최신기(崔信基,1673~1737)는 포은대 주변에 집청정(集淸亭)을 짓고, 최남복은 대곡천 상류에 백련정(白蓮亭) 등을 경영하며 산수를 즐겼다.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길 자처한 최남복의 산수관은 제암(霽巖) 최종겸(崔宗謙,1719~1792) 그리고 조부 가은(稼隱) 최종한(崔宗翰,1713~1761)과 부친 삼락당(三樂堂) 최찬(崔瓚,1732~1785) 등 가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모친은 영천의 병와 이형상의 증손인 이제송의 따님으로 외가 역시 학문이 깊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육본(六本:여섯가지의 근본)을 보면, 효의(孝義), 애례(哀禮), 용례(勇戰), 농정(農政), 사국(嗣國), 역재(力財) 등을 언급한다. 이 모두가 중요한 덕목이겠지만, 예나지금이나 효도와 우애는 긴밀한 관계가 있어왔다. 최남복 역시 1792년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는 관심 없고 부모봉양에 힘을 쏟았다. 생전에는 지극하고, 돌아가신 후에도 묘소 아래에 집을 짓고 살면서 부모자식 간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였다. 공자는 인생 세 가지 즐거움으로 공부와 친구 그리고 나를 알아주는 일 등을 통해 평생의 즐거움으로 살았고, 이외에도 현자들이 언급한 다양한 세 가지 즐거움은 지금도 타인의 모범이 되어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특히 도와 최남복의 부친 최찬은 스스로의 즐거움을 첫째, 선대의 뜻을 받들어 삼락당을 지은 일, 둘째, 세상에 부끄러움이 없는 일, 셋째, 선대의 유지가 후손에게 이어지는 일 등 소소한 즐거움을 확립하였다. 인간으로 태어나 자신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를 위해 헌신하는 자식의 삶은 진정한 순리의 행동이었고, 혼탁한 세상의 벼슬아치보다 자연을 관조하면서 부모를 모시는 소소한 즐거움은 대대로 이어졌다. 삼락당은 부친의 호를 말하면서 선대의 유지(遺志)가 서린 공간이다. 최남복은 가학을 계승하고 선대의 유업을 지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삼락당기」를 남겼다. 삼락당기(三樂堂記) 조부 가은(稼隱) 최종한(崔宗翰) 공은 행실과 학문이 빼어났으나 영달(榮達)을 구하지 않으셨고, 물러나 농사짓고 밭을 일구며 사는 것으로 스스로의 즐거움으로 삼았다. 거처로 도모하여 기초의 재목이 이미 갖춰지고, 먼저 조부께서 ‘花溪’ 큰 두 글자를 빌어 걸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부친 최찬(崔瓚)이 당구(堂構)를 받들어 권면하였으나, 삼가 두려웠고, 계사년(1773) 겨울에 장인(匠人)을 불러 상의하고 의논하여 3년여에 완성하였다. 그 규모는 2가4영(二架四楹)으로 동쪽에 당(堂), 서쪽에 실(室)을 두었고, 북쪽에 작은 누(樓)가 있어 고서(古書)와 유문(遺文) 수천권이 소장되었다. 이에 부친 최찬이 지족(知足:분수에 만족함)의 글을 청하여 삼락당(三樂堂)으로 편액하였다. 자녀를 둘러보고는 “삼락(三樂)의 의미를 아느냐?”하자, “부모가 다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는 것과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맹자의 삼락입니다(父母具存兄弟無故 不愧不怍 得英材敎育 鄒夫子三樂也). 그리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과 남자로 살아가는 것과 장수하는 것은 영계기(榮啓期:榮聲期)의 삼락입니다. 그리고 안자(顔子)의 삼락은 밭을 일궈 의식을 해결함과 거문고를 연주함과 스승 공자를 배우는 일입니다”라 대답하였다. 부친 최찬은 “그렇기도 하지만, 나는 스스로의 즐거움이 따로 있다. 어린 너희들이 어찌 나의 능함을 알겠는가? 마침내 선대의 뜻을 받들어 이 삼락당을 지은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여기저기 옮겨 살면서 세상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후손들이 뜻을 지키고 깨뜨리지 않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너희들은 명을 듣고 물러나 감히 기록으로 남겨, 우리 후손들이 알도록 하라”하였다.
지역에서 근대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경주에서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건은 2006년 12월 등록문화재 제290호로 정식 지정된 일본 전통사찰 서경사와 같은 해, 등록문화재 제292호로 지정된 강동면 국당리에 있는 우안양수장으로 단 두 건 뿐입니다. 물론, 근대문화유산은 이들 외에도 불국사역과 경주역을 비롯한 지역내 간이역 역사(驛舍)들과 경주역 내 취수탑, 경주경찰서 맞은편의 화랑교육원, 황오동과 진현동 철도관사촌(일제강점기 경주역에서 근무하던 철도원들을 수용하던 대규모 주거 단지), 감포 적산가옥 등이 지역 내 산발적으로 분포해 있습니다. 이들 근대건축물들은 이국적 건축 양식이 남아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근대로 회귀하는 듯한 감성을 일깨워 줍니다. 고대 경주에 가려진 근대 경주의 시·공간적 지층을 간직하고 있어 더욱 매력적이고요. 근대문화재 두 점 중 경주시 서부동 93번지에 있는 구 서경사(西慶寺) 또한 식민치하에서 일본인이 지은 건축물이지만 오늘의 우리들 역사의 한 단편이겠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일본식 전통사찰인 서경사는 당시 보기 드문 우뚝한 건물로, 혹은 이국적 풍광을 함께 선보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경사는 도심에서 만나는 근대 건축물 중에서 유일한 근대문화재 입니다. 서경사는 문화재청이 2006년 12월 등록문화재 제290호로 정식 지정한 것으로 1936~1937년 사이에 건립한 일본불교 정토진종의 불교사찰입니다. 얼핏 보아도 우리의 한옥과는 사뭇 다른 외관의 건축물로 이 일대에서 단연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목조 팔작지붕의 일본 전통 불교 양식 건축물로서 문화재청은 부분적으로 근대적 건축 요소가 가미된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일본 불교계에서 경주 지역을 포교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지붕이 건물 높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정면과 측면의 길이가 일대일 비율에 가까워 위에서 바라본 건물의 평면이 정사각형이며, 정면의 지붕이 돌출되어 있는 등 일본 전통 불교 건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근대문화유산은 우리 근대사의 아픔도 함께합니다. 특히 일본인이 지은 건물에 대해서 극심한 반일감정 때문에 유지나 보수보다는 쉽게 허무는 것이 국민 정서에 더 부합되어 왔던 것이 현실이었죠. 경주의 근대 자산도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지은 건축물이 대부분이지만 그 시대의 흔적은 이제 경주의 근대 역사이자 하나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현재, 서경사 옆 부지에 경주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이 완공돼 그동안 판소리 전수관으로 활용된 서경사 건물은 리모델링을 통해 공연 및 전시공간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도시는 과거의 유산과 흔적을 보존하면서 새로움을 덧붙여 나갑니다. 오늘의 서경사는 도시역사의 시간의 단면을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그림=김호연 화백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산물로 탄생한 오페라는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를 중심지로 명맥을 이어갔다. 100여년이 흐르는 동안 귀족에서 평민으로 관객층이 확산되고, 심각한 내용에서 벗어나 장난스러운 이야기도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서정적 비극이라 불리는 고유의 극예술을 갖고 있던 프랑스에 이탈리아산 오페라 부파가 침투하면서 평지풍파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18세기 오페라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프랑스식 오페라인 서정적 비극은 자국의 전통 연극에 발레를 버무린 형태다. 부퐁논쟁을 통해 그 약점(부자연스러움)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한편 이탈리아 오페라(세리아)는 고질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다. 극의 내용보다는 성악적 기교를 중시했다. 당대의 아이돌 스타였던 카스트라토의 인기에 편승했던 것이다. 오페라의 나이가 백 살을 넘어서면서 개혁의 필요성이 점차 대두된 것이다.
소나무는 여러 면에서 의미 깊은 나무로 해석된다. 선비의 절개를 나타내고 오래 사는 특성상 십장생도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해발 3000미터 이상인 미국의 화이트 마운틴 산맥에는 4000년 넘는 브리슬콘 파인(Bristlecone Pine)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나무는 견고하고 습기에 강하며 뒤틀림이 적어 연교차가 심한 우리나라 지형에 잘 어울려 주요 전통건축의 소재로 널리 사용됐다. 특히 소나무는 황제의 나무로 알려져 신라 때부터 왕릉 주위로 소나무를 많이 심었고 이 전통이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도록 전해져 지금도 경주나 서울의 왕릉 주변은 소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 가장 널리 분포하는 수목인 소나무는 이름도 각양각색으로 불리며 곳곳에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런 귀한 소나무를 특별히 중점적으로 SNS에 올리는 경주사람이 신석택 씨이다. ‘기계면’이 고향인 신 씨는 어렸을 때부터 고향의 ‘서숲’을 보며 자라 소나무에 대한 친근감이 남다르다. 얼마나 소나무를 좋아했던지 울산대학교 이창형 교수로부터 송계(松溪)라는 호를 얻었고 페이스북 대문 사진도 해안의 절묘한 소나무 사진을 실었을 정도다. 당연히 신 씨 페이스북에는 경주 삼릉이나 황성공원, 각종 왕릉 주변 등 곳곳의 유명한 소나무 숲 풍경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이렇다 보니 주변의 지인들이 자신이 찍은 소나무 숲이나 소나무 사진을 일부러 보내주기도 해 이제는 전국의 소나무 숲과 소나무 사진들도 수시로 올라오고 있다. 지난 22일자 페이스북에는 양남면 상계1리의 서왕마을(석왕마을) 소나무 사진을 올렸다. 이 사진은 신 씨의 페이스북 친구인 김영백 씨가 보내준 사진인데 수령이 무려 600년에서 1000년 사이로 알려져 있다고 소개됐다. 특히 이 소나무는 대부분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산나무가 느티나무인 것에 반해 서왕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의 역할을 한다고 하니 이 역시 특별한 사례다. 보통의 SNS가 일상이나 흔한 ‘먹방’을 다루는데 비해 이렇게 자신의 관심분야를 꾸준히 다루어 정보와 우호의 창구로 사용하는 신 씨는 ‘소나무’라는 특별한 테마를 중심으로 꾸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나무 전문 페이스북이 된 모습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소나무를 통해 스스로 힐링하고 사람들과의 각별한 정도 넓혀가는 신 씨의 페이스북에는 솔향기가 물씬 풍긴다. 경주와 전국의 싱싱한 소나무 숲이 보고 싶다면 페이스북 검색창에 ‘신석택’을 검색해 보기 바란다.
최근 경주의 많은 문화재 안내문이 교체 됐지만 경주시 안강읍 두류리에 있는 금곡사지 원광법사부도탑은 현장 확인결과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금곡사지 원광법사부도탑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7호로 지정된 문화재이지만 현장에 설치된 문화재 안내문에는 보물 제126호로 설명되어 있다. 보물 제126호는 경주 무장사지 삼층석탑으로 원광법사 부도탑과는 전혀 무관한 지정번호인 만큼 경주시의 빠른 수정이 요구된다.
송림으로 에워싼 낮은 언덕배기로 겨울을 갈무리하려는 빛 부신 햇살이 깔려있다. 해묵은 소나무 잎 푸른 솔가지 사이로 새떼가 노래를 얹어놓는다. 매화가지 연분홍꽃잎을 물고, 생강나무 꽃빛노랑 둥근 구슬을 꿰찬 종달새 지저귐 왕릉을 들썩인다. 소나무 아래 흙살거름으로 깔린 퇴색한 솔가리를 걷어보면 여린 들풀 쏙쏙 싹을 틔웠다. 봉분 앞 남남동 방향으로 살짝 치우쳐 안상무늬 장식을 한 사각상석(床石)도 봄을 기다리는 심정이다. 가늘고 얇게 음각한 안상문(眼象紋)이 앞뒤와 양 측면에 새겨져있다. 맨 아래 큼직한 받침돌 위에 놓인 상석의 높이는 120㎝이다. 천년세월 세파에 시달린 흔적 멀쩡하게 보존상태가 탄탄하다. 【삼국사기】 ‘4년 봄 독서삼품과를 설치하여 벼슬을 주었다. 예전에는 활쏘기만으로 인물을 선발하던 것을 이때에 와서 바꾼 것이다’ 무술연마로 채용하던 벼슬을, 학문으로 실력을 인정했다. 일종의 과거제도로 인재를 등용한 것이다 ‘6년 벽골제를 증축하였다. 전주 등 일곱 주의 사람을 징벌하여 이 공사를 하였다’ 농사를 지울 때 가뭄을 대비한 효율적인 방법으로 저수지를 건설한 것이다. 저수지를 축조할 때도 각지의 실력 있는 기술자를 뽑아서 쓴 신중함을 알 수 있다. 원성왕 당시 ‘풍속은 신의를 중시하고 지조는 바르며, 유교의 풍습을 받들어 예법이 성행하고 나라가 평안하게 다스려졌다’는 기록들이 전해진다. 나라의 번영과 백성의 안정을 향해 국정을 실천하는 예지의 왕임을 실감한다. 【삼국유사】 ‘일본 왕 문경이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치려다가, 신라에 〈만파식적(萬波息笛)〉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군사를 물리치고 금(金) 50냥을 사자(使者)에게 주어 보내서 피리를 달라고 요청했다. 왕이 이르기를 “나는 들으니 상대(上代) 진평왕 때에 그 피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이듬해 7월 7일에 다시 사자를 보내어 금 1천 냥을 가지고 와서 청했다. “내가 그 신비로운 물건을 보기만 하고 그대로 돌려보내드리겠다”고 하였다. 왕은 역시 먼저와 같은 대답으로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은(銀) 3천 냥을 그 사자에게 주고, 보내 온 금은 돌려주고 받지 않았다. 8월에 사자가 돌아가자 그 피리를 내황전(內黃殿)에 감추어 두었다’ 흔들림 모를 책임감과 지혜로운 기백이 꽉 찬 원성왕의 뜻이 얼비치는 대목이다. 능원을 거닐다 만나는 4마리의 석사자들은 동서남북으로 고개를 향하고 있다. 눈과 코의 형상이 큼직하다. 갈퀴와 털은 섬세한 선으로 나타냈으며 꼬리는 엉덩이에 붙여 표현했다. 대좌 위에 앞발을 세우고 엉덩이를 땅에 댄 자세, 오른쪽 발은 땅을 짚고 왼쪽 발은 땅을 파헤친 자세 등 천진난만한 표정들이다. 용맹성의 생동감보다는 귀 쫑긋 세운 해학적 요소에 쓰다듬어 주고픈 돌사자들이다. 사자(獅子)라는 용어는 기원전 3세기경 인도에서부터 쓰여 졌다. 아쇼카왕의 석주(石柱)에 형상화 되면서 불상의 대좌에도 사자좌(獅子座)가 표현된다. 범어로 simha라고 하며, 불교경전에서는 사자(獅子)를 사자(師子)로 쓴다. 석가모니를 수호하는 성수(聖獸)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 중국 당나라의 능묘제도를 수용하면서 불법의 수호자로서 사자상이 도입된다. 불상의 대좌를 비롯하여 능묘, 불탑, 부도, 석등, 수미단, 귀부 등 석조물에 등장한다. 다양한 자세로 나타나는데 좌상(坐像), 입상(立像), 도무상(跳舞像) 등이다. 원성왕릉 봉분에서 전방 80m 거리에 있는 석사자 위치를 두고 논의가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진홍섭, 변영섭, 이근직은 괘릉의 4사자상도 흥덕왕릉처럼 원래 능의 네 모서리에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어느 때 옮겨지지 않았을까 추론하고 있다. 42대 흥덕왕 능묘를 조성할 때 38대 원성왕 능묘를 본받았다고 추정하는 까닭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를 달아보는 땅 넓은 능의 품안이 처연하다. 팔뚝 굵은 덩치의 힘센 남정네들이, 돌로 굳어 꿈쩍 않고 서있는 원성왕릉이다. 서역인 사나이는 곱슬머리 이마에 머리띠를 매고 짙은 눈썹에 부릅뜬 눈이다. 광대뼈 불거진 뺨으로 주먹코 주걱턱을 가졌다. 구레나룻수염 각진 험상궂은 표정이다. 몽둥이를 거머쥔 화강암 굳은돌로 포부가 불끈한 인상파 사나이들이다. 하지만 이국만리 떠나온 향수를 더 감추지 못하고 구겨 넣는 쓸쓸함을 신라여인에게 그만 들키고 말았다. 내 어린시절 울할매 설빔으로 꿰매준 헝겊쪼가리 복주머니와 흡사한 손바닥만 한 산낭(算囊)주머니를 뒤춤에 차고 있다. 눈은 움푹 들어가고 코는 튀어나온 심목고비(深目高鼻) 석인상이다. 머리에 중앙아시아 터번을 두르고, 키 2.4m 거구의 서역인이다. 물건을 저울질할 때 쓰는 통나무저울을 꽉 쥐고 있다. 뒤 허리춤에는 돈을 셈할 때 사용하는 계산기 산낭주머니를 차고 있다. 이역만리 이별도 꿰차고 산 넘고 바다건너 신라 땅까지 돈 벌러 왔지 싶다. 이 석인상에 대해서는 페르시아인·아라비아인·이란인·오만인 등 추측이 분분하다. 역할에 관해서도 무인상, 무역상, 병사상, 등 학자마다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강우방은 실크로드Silk Road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소그드Sogd인으로 보았다. 통일신라는 동아시아 문화의 중심지였던 당(唐)과 활발히 교류하였다. 630년 서역(西域)까지 영토를 확장한 후 수도인 장안(長安)은 국제도시로 탈바꿈했다. 신라는 외교사절과 외래문화를 적극 수용했다. 중앙아시아의 소그디아나 출신 상인들과도 밀접하게 교류했던 것이다. 그 역사의 흔적들을 싣고 가는 원성왕릉이다. 안타깝게도 1926년, 1946년 도굴미수사건이 있었다.
경주는 삼국의 신라가 발전해 통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설과 역사적 사건들의 무대가 되었다. 삼국통일 이후는 한반도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서 왕궁과 사찰, 수많은 탑과 불상 등의 건축이 이뤄지면서 화려한 도시로 번영했으나 신라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왕경은 경주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화려한 왕경의 터전이었던 산천은 옛 모습 그대로였지만 신라의 왕과 귀족들이 누렸던 도시의 화려함은 잡초가 무성한 폐허로 변했다. 이 폐허의 자취는 후세 사람들이 신라의 번영과 몰락을 추억하고 감상하는 소재가 되었다. 고려와 조선의 많은 이들이 경주를 찾아 신라의 옛 터전을 답사하고 시와 기행문으로 그 감상을 남겼다. 그 중에서 경주를 다녀가면서 남긴 대표적 한시 몇 수를 살펴보면서 조상들이 감상했던 신라왕경 경주의 다채로운 모습을 이해하고 옛 사람들과 우리들을 이어주는 감상의 연결고리를 찾아보기로 한다. 본 기사는 두 편으로 구성되며 고려와 조선의 우리 조상들이 경주를 여행하고 남긴 한시(漢詩)와 옛 사진 등을 담아 경주의 중요 유적을 소개한 ‘우리 조상들이 다녀간 신라왕경, 경주(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19)’에서 발췌하고 인용해 재구성했음을 밝힌다. 이번호에서는 도심속 신라무덤인 ‘봉황대’, 신라 최초의 왕비에 대한 ‘알영정’, 신라 궁궐과 그 주변인 첨성대, 월성, 월지, 옛 절터 황룡사구층탑 등 시내 일대의 유적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들 유적지는 걸어서 갈 수 있는 시내권에 위치한다. 고려와 조선의 문인들이 시로 읊었던 유적들은 당시의 분위기나 상황은 물론, 지금과는 다른 유적의 위치나 경관 등을 미루어 상상할 수 있었다. 특히 ‘황룡사 탑을 오르다(登黃龍塔)’는 황룡사를 직접 올라가보고 전체적인 풍경을 읊은 시여서 더욱 귀했다. ‘우리 조상들이 다녀간 신라 왕경, 경주’ 발간을 기획했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전경효 주무관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물론, 고려와 조선으로 갈수록 경주 관련 문학작품이 많았고 그 중에서 한시가 많았습니다. 옛 사람들이 남긴 유적을 상상할 수 있는 매개로는 문인들이 남긴 한시가 좀 더 적합했습니다. 오늘의 현대인들이 다녀가는 문화유산유적지들은 고려와 조선의 당대 사람들도 다녀간 유적지들입니다. ‘신라’라는 왕경은 사라졌지만 경주라는 정체성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궤를 통해 흐르는 유적지에 대한 공통의 감정을 옛 한시를 통해 느껴본다면 훨씬 감상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려시대의 ‘동경’, 조선시대의 ‘경주’가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와 유적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발견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 것입니다”라고 했다. -‘봉황대(鳳臺崇)’ 읍성 교외로 이은 탁 트인 거리 通衢連紫陌 그 가운데 높은 봉황대가 있네 中有鳳臺崇 안팎으로 뻗은 산하는 웅장하고 表裏山河壯 들판에 넘치는 물색도 풍요롭네 郊原物色豐 천문 살핀 곳 벽돌 기운 삼엄하고 氣森觀祲甓 새벽 알리는 종소리 마음 상쾌하네 心爽戒晨鐘 천 년 전 그 흥망성쇠의 한 千古興亡恨 눈길 속으로 모두 들어오네 都輸望眼中 #이현일(李玄逸, 1627~1704) 이 시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이현일의 갈암집 권1에 수록된 시다. 그는 22세 회시에 낙방한 후 학문에 전념하던 중 1654년 경주를 방문한다. 봉황대를 비롯해 옥산서원, 김유신묘, 분황사 등을 유람하며 신라 천년의 흥망성쇠와 자신의 가문을 회고했다. 경주 시내에 자리잡은 옛 무덤들은 경주 읍성 남쪽으로 뻗은 봉황로를 중심으로 동서로 나뉜다. 길 동쪽에 있는 고분군 가운데 가장 큰 무덤이 봉황대(노동동 125호분)다. -‘알영정(閼英井)’ 우물에 나타난 신룡이 낳은 여자 아이 井現神龍誕女兒 늙은 할멈이 거두어 길러 왕비가 되어 老嫗收養作王妃 하늘이 내린 어진 덕 규중의 법도를 세우니 千生賢德成閨範 두 성인이 한마음으로 지극한 정치 펼쳤네 三聖同心致至治 #성여신(成汝信, 1546~1632) 조선 중기의 학자 성여신의 시문집인 부사집 권1에 실린 시다. 그는 글씨와 문장에 뛰어났으며 산수유람을 즐겼다고 한다. 노년엔 지방지 편찬을 주도해 역사에 남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중년에 경주를 유람하고 경주의 유적을 소재로 27수의 절구를 남겼다. 이들 시에는 역사를 거울삼아 현실을 구제하려는 경세(經世)사상이 반영돼 있다. 오릉의 숭덕전 뒤편에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비를 세워놓은 건물이 있고 건물 뒤쪽에 알영정으로 전하는 우물이 있다. 남쪽에는 ‘신라시조왕비탄강유지비’가 있으며 뒷면에는 비석을 세운 내력을 기록했다. -‘첨성대(瞻星臺)’ 첨성대는 월성 안에 우뚝이 서 있고 瞻星臺兀月城中 옥피리 소리 그 옛날 교화 머금었네 玉笛聲含萬古風 문물은 시절 따라 신라 때와 달라도 文物隨時羅代異 아! 산수만은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네 嗚呼山水古今同 #정몽주(鄭夢周,1337~1392) 고려 말기 문신이자 학자인 정몽주의 문집인 포은집 권2에 시린 시다. 성균대사성, 동지공거, 수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그는 시문에 뛰어나 많은 시조와 한시가 전한다. 한편 ‘동경유록’에서 이덕홍은 ‘첨성대는 곧 당시에 별의 형상을 관찰하던 곳이다. 가공한 돌을 쌓아서 높이가 수십 장이고 형체는 둥글고 덮개는 네모나며 가운데는 넓고 목 부분은 좁다. 허리 쪽 구멍으로 들어가서 가운데에서 위를 올려다본다’라고 썼다. -‘반월성(半月城)’ 외로운 성은 약간 굽어 반달을 닮고 孤城微彎像半月 가시덤불은 다람쥐 굴을 반이나 가렸네 荆棘半掩猩鼯穴 곡령의 푸른 솔은 기운이 넘쳐나는데 鵠嶺靑松氣鬱蔥 계림의 누른 잎은 가을엔 쓸쓸하다 鷄林黃葉秋蕭瑟 태아검 자루를 거꾸로 잡은 뒤로부터 自從太阿倒柄後 중원의 사슴은 누구 손에 죽었던가 中原鹿死何人手 강가의 여인들 부질없이 옥수화를 전하고 江女空傳玉樹花 봄바람은 얼마나 금제의 버들을 흔들었나 春風幾拂金堤柳 #이인로(李仁老, 1152~1220) 고려 후기의 문신 이인로의 시로 동문선 권6에 실려 있다. 그는 고려시대 문인들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대가중 한 사람으로 특히 시문학의 역량과 수준은 당대에도 인정받았다. 반월성을 소재로 한 가장 오래된 작품이기도 한 이 시에서 많은 고사를 활용해 부질없는 세월과 현실에 참여할 수 없는 슬픔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월성에 대한 발굴 조사는 1979년부터 시작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조사결과 월성 내부는 4세기서부터 8세기 이후까지 존속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안하지 옛 터(安夏池舊址)’ 못을 뚫어 물을 채우니 물고기 소라 자라고 鑿池爲海長魚螺 물길을 당겨 중심에 대니 콸콸 흐르네 引水龍喉勢岌峨 여기서 놀이하다 신라는 나라를 잃었는데 比是新羅亡國事 지금은 봄물로 좋은 벼가 자라나네 而今春水長嘉禾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조선초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김시습의 매월당시집 권12의 유금오록에 실린 시다. 21세 계유정난 시 스스로 승려가 되어 전국의 역사고적을 찾고 산천을 보며 많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다 세조 11년(1465) 경주 남산의 용장사에 금오산실을 짓고 7년간 칩거하면서 금오신화 및 명승고적을 둘러보고 많은 시를 지었다. 이 시의 ‘안하지’는 월지다. 신라 멸망 이후 폐허가 된 월지를 불렀던 명칭으로 보이며 조선 후기에는 건물터와 호수 정도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임해정’이라는 전각이 세워졌고 해방 이후 주민들의 낚시터로 이용되기도 했다. -‘황룡사 탑을 오르다(登黃龍塔)’ 한 층을 보고나서 또 한 층을 보니 一層看了一層看 걸음걸음 높이 올라 눈길이 점점 넓어지네 步步登高望漸寬 지면은 깎은 듯이 널찍이 평평하여 地面坦然平似削 지친 백성들 무너진 집도 평탄하니 볼 만하네 殘民破戶平堪觀 #혜심(惠諶, 1178~1234) 고려 후기의 승려 혜심의 시로 ‘무의자시집’에 실려 있다. 지눌의 뒤를 이어 수선사의 제2세 사주가 돼 교세를 확장했다. ‘무의자시집’은 혜심의 시인으로서의 감수성과 수행에 정진하는 수도자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준다. 한편, 황룡사 탑은 구층목탑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혜심의 ‘한 층을 보고나서 또 한 층을 보니 걸음걸음 높이 올라 눈길이 점점 넓어지네’라고 한 부분에서, 김극기의 시에 ‘층계로 된 사다리는 빙빙 둘러 허공에 나는 듯 1만 산과 1천 강물이 한 눈에 트이네’라는 부분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매일 만나던 가족보다 더 가까운 가족 같은 경로당 회원들이 계셔 살 맛 납니다. 또한 어른답고 건강하며 함께 더불어 잘 늙어가고 생을 다할 때까지 창조적이기를 바라며 자신의 위치를 잘 알기를 바라고 원합니다. 이제는 등산도 할 수 없는 나이로 걷고 또 걸으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경로당을 위해 ‘팬데믹 시기에 우리 잘살아보자’는 인식개선에 앞장서 보겠습니다” 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 황성분회 김덕환 분회장은 농산물품질관리로 32년의 공직생활을 보내고 새롭게 봉사라는 이름으로 평생현역의 삶이 재밌고 보람이 있다고 입을 열었다. #노력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며 7~80대들이 기쁨을 나누던 경로당. 그러나 최근 경로당 문화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경로당에 대한 고정관념은 어르신들의 활동 공간으로 매우 좋지만 진취적이지 않고 활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해 이마저도 누릴 수 없게 됐습니다. 예전처럼 북적북적 넘치는 활력 있는 곳으로 끌어올리기란 회장과 경로당 임원만으로는 감당하기 역부족입니다. 적절한 업무분장으로 연락도 자주 하지만 지회와 시청의 통보에 귀 기우리고 모두가 협조해야 즐겁고 행복한 경로당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비대면의 일상을 떠받친 그들을 사랑합니다. 칭찬합니다. 급속한 고령화는 노인일자리 사업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회에서 올해 새롭게 시작한 공공형 노인일자리는 어르신들에게 새로운 활기를 주고 회원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빠른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주1회 이상 행복도우미의 철저한 방역소독은 물론 노인일자리 참여자의 살뜰한 청소는 코로나가 얼씬도 못하게 됩니다. 지난 한 해는 경로당 코로나 방역은 잘 되고 있는지, 경로당을 둘러보느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보냈습니다. 임원들과 전화통화로 혹은 걸어서 경로당은 잘 폐쇄됐는지 함께 코로나 확산을 막아낸 일들이 지나고 보니 보람입니다. 우리지역 뿐만 아니라 23개 분회 경로당어르신들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서로서로 노력하고 마음을 나누며 생활방역을 자 지켜 준 덕분이 아닌가 여깁니다. 지회 임직원을 비롯한 시내 모든 어르신을 칭찬합니다. #우리 황성동분회는 황성분회는 경로당 27개소, 아파트 경로당이 22개소이며 740여명의 회원들이 함께합니다. 현재 사회적거리 1.5단계로 조정되어 경로당 문은 열었지만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여전히 답답한 실정입니다. 22개소가 아파트 경로당으로 규모 또한 크지 않으며 남녀가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 많아 대부분 여성분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경로당을 수시로 순회하다 어르신들이 병원 혹은 요양병원을 가지 않고 마을 내에서 건강히 100세까지 사시도록 돕는 것이 경로당 문화입니다. 코로나가19가 속히 종식될 것을 대비하며 정리정돈 등 청소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고령화가 되면서 무릎, 다리, 허리의 통증으로 좌식생활을 힘들어 하는 분들이 계셔 여건이 되면 입식으로 바꿔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봄부터 시작되는 황사와 미세먼지로 고생할 때 전 경로당에 공기순환기를 보급되어 청정한 공간으로 안심하고 드나들 던 곳이라 지금의 현상이 더욱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지난해 노창수 지회장이 당선되면서부터는 지회와의 소통이 매우 빠르며 작은 일들도 누구나 소통할 수 있도록 달력에 전화번호를 기재하여 전체 경로당에 배부해 궁금한 사항은 언제든지 문의가 가능합니다. #운영 철학과 임기 중 꼭 하고 싶은 것은? 경로당에서 노인이 좀 더 편안하게 지내도록 도와드리는 게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그런 점에서 겨울에 따듯하고 여름에 시원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우리 어르신들 또한 평생현역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바람직한 사회적 역할을 스스로 몸에 익힐 수 있도록 꿈만 꾸고 생각만이 아닌 실제 한번이라도 더 움직이고 실천하자고 거듭 강조합니다. 조금은 느린 동작이지만 봉사의 마음으로 남에게 의지 하지 말고 스스로 움직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3월부터 경로당을 순회하며 생활 속 운동을 다시금 강조할 것이며 우리 농산물을 더욱 많이 잘 챙겨 먹자고 소리높일 겁니다. 우리농산물을 사람하고 많이 먹어야 건강하고 건강해야 주변도 긍정적으로 보고 도울 일도 찾게 되며 더 즐겁거든요. 어르신들의 외로움과 고독감 해소 등에 이바지한 경로당 문화. 어르신들이 노후를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야 할 경로당,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삶 속에 잠재해 있고 지속해서 홀몸 노인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 맞춰 특화된 프로그램 기획 또한 다양한 노인맞춤형서비스가 절실히 필요하다.
단체의 행복보다 개인의 만족이 더 중시되는 세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50대 중반 이하 대부분 연령층들에서 고루 나타나는 이런 개인주의적 경향은 혈연이나 지연, 학연 등 서열이 강조되는 모임들일수록 급격히 노령화되는 현상을 보여주는 근본적인 이유다. 반면 동호인이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모임들은 연령고하를 막론하고 활성화되고 있어 오히려 세대의 벽을 무너뜨린다. 경주 출향인 사회도 대부분 지역 향우회들과 동창회들이 이 같은 노령화 현상에 직면한 채 단절된 젊은층의 유입을 걱정하고 있는 형편이다. 천편일률적인 얼굴 내세우기식 행사문화와 서열을 중심으로 극소수가 독점하는 축사, 격려사, 인사말로 꾸며진 진행방식은 젊은이들의 철저한 외면을 받고 있다. 이런 세태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10여 년 이상 어느 행사에서나 기꺼이 ‘막내’ 역할을 감수하며 적극적으로 출향인 사회의 주역이 되고 있는 보기 드문 40대 사업가가 있다. 교육 컨설팅 사업가 손주석 대표가 주인공이다. 손수석 대표는 경주중·고서울동창회 분과팀장과 산악회 재무를 비롯, 재경경주향우회 총무, 고려대경호회 사무국장, 옥돌문학동인회, 국제라이온스 클럽 들에서 총무를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FC화랑, 경주고동북부동문회, 경주발전포럼, 셔블독서회, 국제라이온스클럽 총무경주중고서울동창회와 재경경주향우회, 고려대 경주동문회인 경호회, 경주발전포럼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열혈회원이며 자녀들의 학교운영위원회 회장과, 본인의 이름을 건 손주석장학회 회장까지 맡고 있다. 이유를 묻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다. “선친께서 30대부터 새마을운동 및 각종 단체에서 장을 맡으시면서 경주를 위해 열심히 활동을 하시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봉사하면서 사는 것이 마음의 부자가 되고 행복해진다’는 말씀을 어린 시절부터 듣고 깨달았습니다” 손 대표는 향우회 관련 모임들에서 젊은이들이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친한 사람도 없고 도움도 안 된다’는 말로 서슴없이 진단한다. 그러면서 선배들에 대해서는 수직적인 문화를 자제하고 후배들을 중점적으로 배려하는 문화가 필요하고 젊은이들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즐기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상부상조하고 정보를 얻는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출향인 사회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진 손주석 대표는 특히 문학적 열정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주고 재학시절 전국 문학공모전이나 백일장에 참가하여 여러 번 장원을 수상했고 고교 재학시절 시집을 냈을 정도다. 대학도 문학과 시를 좋아해 고려대학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고 현재도 시 쓰는 활동을 하고 있다. “작년에 작고하신 서영수 선생님으로부터 ‘다른 문학 분야에서 호칭으로 ~소설가, ~론가 등 ‘가’로 불리지만 시인은 자신의 가치관과 사상을 함축적인 언어로 자신의 영혼을 잉태하므로 ‘사람인(人)’을 쓴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박목월, 유치환, 서영수 선생님처럼 유명한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현재 옥돌문학동인회에서 총무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문인협회 광진구지회에 회원으로 있다. 향후 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공부해 대중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시집을 출간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낸다. 손 대표는 그림과 글씨도 수준급이다. 중학교 시절에는 미술부로 활동했을 정도. 그런 만큼 은퇴할 시기쯤 시화전이나 미술작품 전시회를 열어 장학기금을 조성, 불우한 이웃들과 학생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제는 자신만의 재능과 특기가 성공하는 시대, 초등 때 재능 찾고 중학 때 좋아하는 분야 과감히 투자해야 손 대표의 이런 꿈은 자신의 사업과도 관련이 깊다. 손주석 대표는 2008년 이후 고입·대입 컨설팅 전문회사인 ㈜하나교육연구원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손 대표는 쉬운 예로 지난해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SKY 캐슬’에서 ‘김주영 선생’의 역할을 예로 들며 대치동 학부모들도 모르는 극소수 최고의 입시 코디네이터. 베테랑 전문가들이 학교종합생활기록부, 내신 성적관리, 자동봉진(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는 물론 학생들의 교우 관계와 심리 및 건강까지 관리해 주는 교육 전문회사라고 소개한다. 특히 손대표는 한 번의 컨설팅에서 그치지 않고 1년 이상 충분히 학생을 관찰해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을 찾고 스스로 자기주도 학습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하나교육연구원 컨설팅의 핵심 비법이라고 설명한다. “학생들의 꿈과 미래를 설계하고 구체화 시켜주는 것이 저희 회사의 주된 사업목적입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에 진출해 나를 찾아와 고마워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특히 손 대표는 공부 잘 하는 학생들도 중요하지만 재능과 특기를 살려 그에 맞는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제는 공부로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자신의 재능과 특기를 어릴 때부터 발견해 남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기술과 예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의 성공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생들의 재능을 찾아 꿈과 희망을 실현하도록 도움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손 대표의 눈은 아직도 학부모와 학생은 물론 학교 선생님들조차 현재의 대학 입시 제도의 방향을 빠르게 따라가지 못 하는 것으로 진단한다. 과외를 시키고 학원을 보내는 데만 급급할 뿐 자녀의 재능과 특기를 어린 시절에 찾아주는 것을 등한시 한다는 것. 때문에 손대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다양한 분야의 독서와 체험을 통해 자녀들이 무엇에 흥미를 갖는지 어디에 재능이 있는지 찾고 중학교 때는 자녀가 좋아하는 분야에 과감히 투자해 다른 학생들과 차별화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같은 교육철학을 좀 더 공고히 사회저변에 알리기 위해서하도 손주석 대표는 경영하고 있는 교육 컨설팅 회사를 좀 더 성장시킬 예정이다.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사훈처럼 앞으로 학생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대학교 다닐 때 가정형편이 어려워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때 너무 힘들어 저의 형편을 손 편지로 써 여러 장학재단에 보냈는데 ‘해성문화재단’과 인연이 돼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영향으로 손 대표는 결혼과 동시에 ‘손주석 장학회’를 만들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시작했는데 그게 벌써 10년째다. 앞으로 이 장학기금을 더 키워 지금보다 많은 학생들과 이웃을 돕고 나눔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계획을 밝히며 활짝 웃는다. “나눔의 돈은 일시적이지만 나눔의 행복은 영원한 것이지요!” 한편 손 대표는 젊은 참여자의 눈으로 보는 경주 관련 출향단체들에게도 진심어린 제언을 아끼지 않는다. 향우회나 동창회 등의 기금이 경주시나 모교의 발전을 위해 사용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기왕이면 경주시나 모교에서 기금을 관리하는 분들이 기금의 사용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좋겠다고 토로한다. 그래야 더 많은 향우와 동문들이 더 흔연한 마음으로 고향과 모교에 대해 기부하고 헌신할 것이라고 믿어서이다. 이렇듯 개인적이기보다 단체와 사회의 화합과 발전에 관심 많다보니 고향에 대해서도 남달리 각별한 정과 의무감을 느끼는 손주석 대표다. “경주는 말 그대로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며 어릴 적 추억이 영화처럼 선명히 떠오르는 곳이지요. 삭막한 서울에 살면서 가끔 부모님 계시는 경주에 가면 답답한 마음이 힐링됩니다” 경주는 세계적인 관광 문화도시요 불교문화의 정수와 같은 곳인데 이런 경주가 아직은 세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는 손주석 대표, 고향 발전을 위해 가슴 속에 여러 가지 계획들을 세우고 있는데 때가 되면 그런 계획들을 하나씩 실천해 경주에 기여하고 싶다는 꿈을 밝힌다. 나눔과 봉사를 꾸준히 이어가다 보면 경주에도 좋은 일들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손 대표의 꿈이 푸르고 싱싱하다.
지난 주 서울 근교의 모 아파트 모델하우스 공개행사에서 뜻밖의 기계를 만났다. 코로나19와 관련, 체온측정과 QR코드 체크를 끝내고 행사장을 들어서려는데 직원들이 또 다른 절차로 안내한다. 안내된 절차는 신발을 튼튼한 비닐로 감싸는 것. 신을 신은 채 비닐이 깔린 기계에 발을 올려 힘을 주면 바닥이 내려가고 동시에 발 주위로 고속의 바람과 함께 고온의 열이 나와 비닐을 살짝 녹여 자연스럽게 신발을 감싼다. 불과 3초 정도 걸리는 이 과정을 통과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신을 신발을 그대로 신은 채 행사장을 둘러볼 수 있다. 신발을 덧씌운 비닐 두께는 0.5밀리 정도로 두꺼워 부드러운 카펫이 깔린 행사장에서는 종일 돌아다녀도 닳지 않을 만큼 튼튼하다. 비닐을 녹이지만 잘 계산된 각도와 적절한 온도로 발에는 뜨거운 느낌이 전혀 없다. 행사장을 둘러보고 나올 때는 비닐의 한쪽을 힘 줘서 잡아당기면 누구나 쉽게 벗을 수 있을 정도다. 행사장을 빠져 나온 사람들은 신발을 벗거나 슬리퍼를 갈아 신는 불편 없이 비닐 커버만 벗으면 그만인데다 신발이 없어지거나 남들이 신던 찝찝한 슬리퍼를 신지 않고 다닐 수 있으니 기분이 개운하다. 행사장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실어 나를 법한 흙이나 먼지를 방지할 수 있으니 훨씬 쾌적하게 행사장을 관리할 수 있다. 기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장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되면 가축들을 기르는 농장이나 유통 과정 등에서도 항구적으로 사용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등 가축들에 대한 세균성 전염병을 옮기는데 사람들의 출입이 중요한 매개가 될 수 있고 그게 보통 신발에 의해 전달된다고 볼 때 이런 비닐 커버 사용은 매우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어서다. 뿐만 아니라 미세한 세균이나 먼지를 차단해야 하는 의료현장이나 첨단 산업에서도 이런 신발 커버는 훨씬 적극적으로 권장할 만해 보인다. 보통 방진 의료나 마스크는 많지만 신발에서 묻어나오는 방제에는 소홀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 어쩌면 이런 기계가 행사장에 나와 있을 정도면 이미 필요한 분야의 소비가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람 많고 행사 다양한 서울이다 보니 어느 곳보다 먼저 기기류의 사용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눈길 끌 만한 새로운 기계가 있어 소개해 보았다.
194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육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이 균형을 이루는 온전한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의학에서도 제일 중요한 개념이 ‘항상성(Homeostasis)’이다. 이는 다른 말로 ‘동적 균형(Dynamic Equilibrium)’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육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를 ‘삼위일체 건강법’이라고 부르며 쉽게 접근해 보고자 한다. -자연스러운 것이 최고! 좋은 식습관과 육체적 건강 사람들의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매체 속 건강 프로그램과 식품 광고들이 무분별하게 많아지고 있다. 그로 인해 ‘건강한 식습관과 음식 궁합’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게 된다. 하지만 건강에 좋은 특정한 음식이 있고, 그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해서 건강에 실질적인 ‘벼락 효과’가 있지는 않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처럼 모든 것이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이 좋으며,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을 균형 있게 골고루 먹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문제가 되는 것은 설탕과 지방으로 범벅된 고칼로리 인스턴트 음식들이 우리 가까운 곳에 파고들어 와 있는 것이다. 시니어를 위한 특별한 식습관이 있다기보다 과거 어르신들의 기본 밥상이 오히려 요즘 말하면 ‘좋은 식단, 좋은 식습관’이라고 할 수가 있다. 동양 문화권의 음식은 채식 위주로 다양한 산나물과 된장, 김치 등 발효 음식들이 많아 요즘 건강식으로 많이 추천한다. 또한 요즘 유명하다는 셰프들은 ‘어떻게 하면 농약이 없는 유기농 식재료를 구하느냐’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식재료를 자신의 농장에서 직접 만들어 공급하는 식당들이 생겨날 정도이다. 이를 통해 건강한 식재료의 중요성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82세인데 건강 수명은 65세라고 한다. 평균 17년을 병원 신세를 지는 삶을 영위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건강한 노년을 위해 우리보다 먼저 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과잉의 시대인 현 생활에서 ‘소식’과 ‘운동’을 강조하고 있다. 운동도 과도한 것이 아닌 집이나 자신의 주변에서 손쉽게 꾸준히 할 수 있는 걷기와 계단 오르기 등을 추천하고 있다. 젊을 때부터 걷기와 계단 오르기, 스쿼트 등을 권해 노년에도 잘 걸을 수 있도록 하체 근육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몸 건강을 위한 마음 건강 현대 사회는 과도한 스트레스의 사회라고 한다. 요즘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구글, 애플 등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명상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는 스트레스 줄이기가 바로 건강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뇌과학적으로 보아도 스트레스는 시상하부와 뇌하수체, 그리고 부신피질을 연결하는 축이 활성화되면 자율 신경계와 호르몬계 모두가 연계되어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부신피질 호르몬을 분비하는 다소 복잡한 시스템이다. 이는 정신계와 물질계가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우리의 정신 상태가 우리 몸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으며 시상하부는 식욕, 성욕 등 우리의 본능을 조절하는 자율신경계의 중추이므로 몸 건강을 위해서도 우리의 마음 조절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사회적 건강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교육계, 정치권, 의료계 할 것 없이 모두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코로나19 상황을 보더라도 우리가 사는 자연환경이 전 지구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인류가 기후 변화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을 찾고, 개인적으로는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등 작은 실천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도 행동이 필요한 시대이고, 나 자신의 작은 식습관이 전 지구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 되었다. 논어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단어가 일직선이 아닌 원의 형태로 배열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결국에는 건강도 육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이 서로 연결되어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 항상성)’를 잘 이루고 있어야 유지되는 것이다. 자료제공 : 한국건강관리협회 경상북도지부 (대구북부건강검진센터) 글 : 김영보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2021년 2월호 발췌
도톨도톨 퐁퐁! 팝콘팝콘 팡팡! 바나바나 붕붕! 도치의 마법 주스를 마신 친구들의 방귀 소리와 함께 달콤한 동심의 세계가 마법같이 펼쳐진다. ‘스트로베리베리팡팡’과 ‘코튼캔디캔디뿅뿅’의 그림책 작가 하선정의 ‘달콤 말랑한 상상’ 전이 3월 2일부터 7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 갤러리 달에서 개최되는 것. 하선정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스트로베리, 코튼캔디 그림책 원화와 ‘마법 세상의 유니콘’ 시리즈 4점 등 총 21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남녀노소 색다른 웃음과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다. 하선정 작가가 꿈꾸는 유니콘 세상은 시간에 따라 신비롭고 다양하게 변해간다. 온 세상이 핑크빛으로 물드는 시간, 알사탕 왕국은 유니콘들이 뿜어내는 간식들로 가득 채워지며 푸르른 빛으로 물들어가는 시간에는 잠들어있던 밤의 친구들이 깨어나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때로는 고소한 치즈 향 가득 치즈 왕국으로 때로는 꽃향기 가득한 보랏빛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유니콘, 달콤한 알사탕 한 알에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이 펼쳐진다. “저의 꿈은 많은 어린이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전하는 것입니다.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그림책이란 매체를 선택한 거죠” 달콤한 케이크, 솜사탕, 마시멜로, 젤리 등 달달한 음식은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고 기분전환이 된다는 작가는 달콤함, 마법, 동화, 상상 등의 키워드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치유가 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제 자신이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은 좋은 작품을 위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밝고 순수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고 있죠(웃음)” 작가는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이 마음껏 상상하고 치유 받을 수 있길 희망한다. “앞으로 귀여운 동물 친구와 달콤하고 흥미로운 마법 세계들을 더 단단히 구축해 갈 계획입니다. 제 작품을 접한 모든 사람이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마법 세계 안에서 마음껏 상상하고 미소 짓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봄 꽃내음 가득한 계절, 입 안 가득 알사탕을 굴리며 달콤 말랑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하선정 작가는 영남대에서 디자인과 회화를 전공했다. 저서로는 그림책(글, 그림) ‘스토로베리베리팡팡’과 ‘코튼캔디캔디뿅뿅’이 있으며 오는 5월 ‘a bear is born’ 그림책(그림)을 출간할 예정이다. 서울, 강원, 진해, 김포 등의 다수의 도서관 및 학교에서 원화전을 진행했으며, ‘스트로베리베리팡팡’은 2017년 한국어린이교육문화연구원 으뜸책으로 선정된 바 있다. 현재 초등 방과 후 미술 수업 및 다양한 그림책 강연자로 활동하며, 젤리멜리 마법상점(스토아팜)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이번 전시는 2021년 (재)경주문화재단 지역예술인 지원사업 ‘전시공간 지원프로젝트 공유’ 선정 전시로 하선정 작가의 전시를 시작으로 갤러리 달에서는 내년 1월 3일까지 38개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