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에서 시작해 환갑을 넘기까지, 신라문화제의 걸음
신라문화제의 뿌리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음력 8월 17일, 황성공원에서 삼한시대 진한 6부 촌장에게 제를 올린 ‘신라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틀이 만들어진 것은 1962년 4월 ‘신라문화제 경주시준비위원회’가 운영제도를 갖추면서부터이고, 이때를 제1회로 헤아린다.
1977년 제16회까지는 해마다 열리며 지역 대표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흉년(1978·1980년)과 도민체전(1982년) 같은 사정이 겹치며 격년으로 열리게 됐고, 1984년부터는 아예 격년제로 바뀌었다. 1998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와 연계해 매년 열기 시작했으나 한 해는 크게, 이듬해는 작게 치르는 식이어서 사실상 격년제나 다름없었다. 그러는 사이 축제의 매력도 서서히 빛을 잃었다.
다시 일어서려는 시도는 2018년 민선 7기와 함께 시작됐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2020년에는 행사가 취소됐고, 2021년 제48회는 규모를 줄여 비대면으로 치러졌다. 2022년 제49회에 이르러서야 코로나19 이후 첫 대면 행사가 열렸고, 이때부터 시민프로듀서와 서포터즈로 꾸려진 시민축제운영단이 본격적으로 닻을 올렸다.
신문 속 ‘아쉬움’, 올해는 얼마나 풀렸을까?
2021년 경주신문 칼럼은 신라문화제가 ‘관 주도의 축제, 변화와 창의력이 없는 축제, 백화점식 축제’라는 말을 좀처럼 떨쳐내지 못했다고 짚었다. 한때는 행사 항목이 최대 47개에 이르렀다. 올해는 어떨까. 화백제전, 실크로드페스타, 화랑힙합페스타, 달빛난장 등 4개 축으로 한결 단출해졌다. 칼럼이 제안했던 민간 중심 운영, 경주만의 역사성, 야간 중심 축제라는 방향도 상당 부분 현실이 된 모습이다.
2024년 평가보고회에서 나온 숙제도 하나씩 풀렸다. 당시엔 월정교의 안전 문제로 개막공연을 대릉원으로 옮겼다가 문화유산 보호구역이라는 제약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제 ‘화백제전’은 다시 월정교 수상무대로 돌아왔다. 계단식 수상 객석을 없애 관람 공간을 월정교 3면으로 넓혔고, 스탠딩 관람도 함께 운영했다. 약 100명이 출연한 ‘신라, 하나의 빛’은 박혁거세와 알영의 신화를 미디어아트와 프로젝션 맵핑, 3D 플라잉 공중극, 드론과 불꽃으로 풀어냈다.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을 건너온 제사가 첨단 기술을 입고 돌아온 셈이다.
안전 대책도 눈여겨볼 만하다. 2024년 화랑힙합페스타에 경찰 추산 약 2만명이 몰리며 안전 우려가 컸던 만큼, 올해는 스탠딩 구역 출입구를 2곳으로 늘리고 경찰·소방과 합동 안전관리체계를 꾸렸다. 의료 인력과 구급차도 현장에 배치됐다.
숫자로 읽는 최근 3년
시민 참여 규모는 지난해 가장 컸다가 올해 조금 줄었고, 그중에서도 서포터즈 감소폭이 눈에 띈다. 반대로 거리예술 공연은 늘었고, 다회용기를 쓰는 친환경 운영은 3년째 이어졌다. 2024년에는 방문객이 전년보다 44.9% 늘었고 전체 소비의 42.9%가 외지 방문객에게서 나와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된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 성과도 같은 잣대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숙제, 이렇게 풀어보면 어떨까
첫째, 데이터로 축제를 키우는 일이다. 2024년 빅데이터 분석에서 20·30대 방문객이 가장 많았던 만큼, 올해도 같은 방식으로 분석해 해마다 비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둘째, 시민 참여의 ‘양’보다 ‘질’이다. 시민프로듀서들이 제안해 온 프로그램 간 충돌 줄이기와 활동 공간 넓히기를 제도로 담아야 한다. 서포터즈가 줄어든 이유를 살피는 일도 필요하다. 참여자에게 보람과 경험이 돌아가고, 쌓은 노하우가 다음 해로 이어져야 시민 축제는 오래간다.
셋째, 모두가 즐기는 축제다. 젊은 층과 가족 중심으로 자리 잡는 사이, 외곽에 사는 중장년과 어르신을 위한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강동·건천·용강·감포를 찾아간 ‘문화예술 르네상스’처럼, 읍·면·동 단위 프로그램을 본 축제와 이어 보는 방안을 생각해 볼 만하다.
넷째, 안전과 상생이다. 달빛난장은 6개 상권이 판매공간 36개소를 꾸리고 약 1300명이 앉을 취식공간을 마련했다. 붐비는 인파 속에서도 안전을 지키고, 소상공인 수익과 균형을 맞추는 세심한 운영이 뒤따라야 한다.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는 축제로
2021년 경주신문 칼럼은 신라문화제를 ‘사춘기’에 비유했다. 좋다고 흥얼대다가도 좌충우돌하고 속앓이도 하는 때라는 것이다. 5년이 지난 지금, 그 말은 절반쯤 맞아떨어졌다. 백화점식 나열은 사라졌고, 월정교에는 신라의 탄생 신화가 펼쳐졌으며, 시민은 구경꾼에서 기획자로 바뀌었다.
다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덩치가 커지는 일이 아니라 오래 이어 가는 힘을 갖추는 일이다. 서포터즈의 빈자리는 작지만 소중한 신호다. 관객이 많이 모이는 것이 곧 성공이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얼마나 오래, 얼마나 안전하게, 얼마나 경주답게’를 물어야 할 때다. 1933년의 제사에서 출발해 격년제의 긴 침체와 코로나의 단절을 건너온 신라문화제가, 한 해 반짝이고 마는 불빛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 속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축제로 자라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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