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여자들을 두고 하는 농담도 있다. 그녀들의 우선순위는 신발, 가방, 보석 아니면 거꾸로 정도가 아닐까 한다. 일반화의 오류인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우리 와이프나 그 친구들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썩 틀린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실없는 소리를 한 꺼풀만 벗겨내 보면 제법 묵직한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가장 앞에 두고 살아가고 있나?’
조건을 바꾸면 답도 다양해질 것이다. 가령 평온할 때 늘어놓는 우선순위라면 한마디로 ‘욕망의 목록’에 가깝겠다. 정말로 제대로 매긴 우선순위라면, 모든 것이 위태로워지는 극한의 순간에야 그 속살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본 건데, 인도의 어느 농장에서 개를 쫓던 암사자가 그 개와 함께 깊이 15m나 되는 우물에 빠져버린 일이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해외토픽에나 나올 법한 웃기지만 슬픈 상황이다. 보통이라면 사자에게 개는 한 끼 식사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그것도 좁고 깊은 우물 속에서 무려 다섯 시간 동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암사자는 송곳니조차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사자의 최우선 순위인 사냥 본능도 완전히 멈췄고, 바로 앞에서 입맛을 다셨을 사자를 바라보는 개도 도주 본능은 꽁꽁 얼어붙는다. 욕망을 억제한다는 게 맹수한테도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둘은 하염없이 우물 입구만 쳐다보더란다. 학자들은 이 상황을 ‘필요에 의한 휴전(truce of necessity)’의 좋은 사례라고 분석한다. 2011년 호주의 대홍수 때 한 나뭇가지에 나란히 피신한(‘사이좋게 껴안고 있는’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해 보이는) 비단뱀과 청개구리처럼, 생존이 최우선 순위인 지경에서는 잔인한 먹이사슬도 멈춰 서나 보다. 생명체에게 생존이란 두 글자는 모든 DNA 속에서도 분명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새겨져 있지 않겠나 한다.
다만 이 휴전에는 냉정한 단서가 붙는다. 만약 구조가 하루만 늦었어도 사자의 이성(?)이 본능을 여전히 제어했을지는 장담 못 하겠다. 허기를 못 이긴 사자는 불쌍한 먹잇감을 먹지 않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짐승의 평화는 도덕이나 명분이라기보다는 계산이며 유효기간이 있을 거라 믿을 뿐이다.
이 와중에 짐승의 셈법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 이어 소개한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이 충돌하던 무렵에 실제 벌어진 사건이다. ‘폴리마켓(Polymarket)’같은 온라인 예측시장에서는 공습 시점과 인명 피해까지 ‘베팅’ 대상으로 삼았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지(紙) 소속 종군기자 에마뉘엘 파비안(Emanuel Fabian)은 “미사일이 빈터에 떨어졌고 인명 피해는 없다”라고 사실을 보도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거짓말처럼 전쟁 같은 협박이 그에게 빗발쳤다. 이유는 예상대로다. ‘10일에 공습이 벌어진다’는 쪽에 걸린 판돈이 무려 1400만 달러(210억원)이란다. 누군가에게는 최! 최! 우선순위가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액수다. 기사 한 줄 때문에 돈을 잃게 된 이들이 기사를 고치라며 기자와 그 가족의 목숨까지 위협한 것이다. 사람의 생사마저 베팅의 정산 항목이 되었으니, 사자와 개의 동거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병원 응급실에는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들이 즐비하다. 입원을 해 본 사람은 다 안다. 큰 욕심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단 하나의 바람은 그저 걸어서 퇴원하는 것이라는 걸. 그러고 보면 삶의 우선순위는 어쩌면 소박하고 사소한 건지도 모르겠다. 삶이 고달플수록 바람은 단순해진다고들 한다. 건강할 때는 신발, 가방이며 베팅 적중까지 따지다가도, 막상 병상에 누우면 욕망의 목록은 딱 한 줄로 줄어든다. ‘그저 무탈하게 지금을 살아내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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