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등장인물
● 선덕여왕
백제에게 서북쪽 40여 개의 성과 전략적 요충지인 대야성을 빼앗기고 신라를 위기의 상황에 빠뜨리기도 했지만, 첨성대와 수많은 사찰, 황룡사 9층 탑을 성공적으로 건축하였다.
● 아비지
주인공 비목랑의 목수 스승이며, 삼국의 대목장 중 최고의 목조건축 장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선덕여왕의 초청으로 황룡사 9층 탑을 짓는 대목장으로 일했다.
● 주인공 비목랑
신라에서 학자로서 명성이 높았던 조부의 영향으로 학문에 관심이 있어 당나라에 공부하러 갔으나, 당나라 수도 서안에 있는 대당부용원의 본당을 보며 목수가 되기를 결심하고 백제의 아비지 상단에 입문하여 재능을 인정받고 최고의 도편수가 된다.
● 비담
여자가 왕인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구 귀족 세력들을 규합해서 ‘여주불능선리女主不能善理 -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는 말을 내세워 선덕여왕에게 도전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 염종
그는 진골 출신으로 관직은 대아찬이며, 비담의 책사 역할을 한다. 황룡사 9층 탑의 순조로운 건립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방해하고, 왕권이 강화되는 것을 두려워한 구귀족 세력들을 규합하여 비담과 함께 반란을 주도한다.
● 김용춘
선덕여왕은 그에게 황룡사 9층 탑 창건의 국가 총책을 맡겨 화백회의 귀족들과 협상 창구 역할을 하게 한다.
● 대목장 순정
비목랑의 아버지이자 창덕조의 당주다. 신라 최고의 도편수 중 한 사람으로, 창槍 대패의 달인이다. 그는 서라벌에서 목수를 양성하는 학숙學塾을 운영했다. 그의 독특한 교육 방법으로 수많은 목수 인재들이 배출된다. 아들 비목랑은 그의 수제자 중 한 사람이다.
● 비형랑
비형랑은 진지왕이 퇴위된 후 낳은 아들이며, 귀문鬼門의 수장이다. 황룡사 9층 탑의 건립을 보이지 않게 지원한다.
● 연지
아비지 대목장의 고명딸이다. 팔등신에 가까운 미모를 지녔다. 주인공 비목랑이 아비지 대목장에게 도제 수업을 받을 때, 그와 첫사랑을 한다.
여왕의 서거<1>
오랫동안 굽이치며 흘러온 형산강이다. 그 물결이 오늘따라 바람 부는 대로 요동친다 . 서라벌은 전쟁의 살벌함으로 밤하늘마저 을씨년스럽다.
염종의 호위무사 추울, 찰갑札甲 속에 감춰진 몸집도 크지만, 근육질로 다부져 보인다. 꽉 다문 입술에 수북한 검은 턱수염과 짙은 눈썹 밑의 억실억실한 눈매는 살기로 번뜩인다. 그는 활쏘기와 검법에도 뛰어나지만, 표창 던지기의 명수다. 그가 던진 표창에 지금껏 누구 하나 비켜 선 이가 없다. 한 번 충성을 맹세하면 누구든 배신한 적이 없다. 그는 타고난 살수였다.
금방이라도 피비린내가 날 것 같은 으스스한 밤공기를 맞으며 염종이 그를 불러 은밀히 지령을 내린다.
“추 장군.”
염종은 그를 장군이라 불렀다. 그만큼 그의 임무가 막중했기 때문이었다.
“이 전쟁은 우리에게는 일생일대의 도박이자 기회네. 유약한 여왕을 몰아내고 비담 공을 왕으로 추대하여 나라다운 나라를 세울 기회가 왔네. 이제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열릴 것이야.”
염종은 가슴속에 거친 파도가 일어났다. 그렇지만 최대한 절제된 말투로 누구에게 들키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추울은 고개만 끄덕이며 결행의 의지를 나타냈다. 지금껏 염종이 지시하는 일을 실수 없이 수행하여 염종은 비밀리에 행하는 중대사를 늘 그에게 맡겼다.
“이날을 위하여 은밀하게 준비해 놓은 사병의 수도 수천 명이네. 모두 장군의 손에 운명이 달려 있으니 실수가 없도록.”
염종은 비담의 휘하에서 김춘추를 옭아매는 여러 계책을 폈던 비담의 책사다. 이번 대란도 은근히 대권을 갈구하는 비담을 부추겨 그가 일으킨 내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대는 왕실 호위병으로 위장해서 은밀히 궁으로 잠입해야 하네. 또 다른 병사들을 수라간의 음식 재료를 나르는 수레꾼들로 위장해서 보내줄 테니 그들과 접선하게.”
“네, 어르신.”
그날은 사방이 온통 칠흑 같은 어둠으로 채워진 그믐밤이었다. 먹색의 캄캄한 밤하늘에 총총한 별들만 천지를 덮고 있었다. 별빛의 장막같이 보였다. 땅으로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반짝이고 있었다. 염종은 사위를 살펴 가며 별자리의 방위와 움직임을 관찰했다.
“거사는 자시를 넘겨서는 안 되네. 자시 전에 하늘에서 큰 유성이 떨어질 것이네.”
여왕의 서거<2>
달 없는 하늘에 바람이 숨을 죽였다. 형산강 물결도 멈춘 듯 고요하다.
추울은 밤의 짐승처럼 움직였다. 머리에는 낮은 갓을 쓰고, 어깨에는 낡은 짐승가죽을 걸친 채였다. 외견상 그는 수라간을 드나드는 노역꾼과 다를 바 없었다. 허리에 맨 광주리에는 채소와 고기가 가득 담겨 있었지만, 그 속엔 날렵한 표창 열두 자루와 짧은 도검 하나가 천천히 숨 쉬고 있었다.
궁문을 통과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염종의 검은 손이 이미 궁 안 깊숙이 뻗어 있었다. 문지기 하나가 문득 눈을 흘기더니, 익숙한 듯 고개를 까딱했다.
“식재료 조달 명부 확인해라.”
“예, 대정隊正.”
겉치레 절차였다. 추울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광주리를 내밀었다. 쉰 듯한 목소리로 이름을 대고 허리를 굽혔다. 문지기는 형식적으로 명부를 넘겨보다가 조용히 말끝을 흐리며 그를 통과시켰다.
그 순간 추울의 눈동자가 사납게 빛났다. 그는 익숙한 듯 궁궐 안 복도를 통과했다. 서라벌 궁은 수백 개의 전각과 복도로 엮여 있는 미로였다. 그러나 추울은 갈 길을 알고 있었다.
과거 전장에 나가기 전 염종이 그에게 내밀었던 ‘왕궁 수라간 물류 동선 지도’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신발 소리가 나지 않는 가죽 덧신을 장착한 그의 걸음은 문지기도 궁녀도 알아채지 못했다. 궁 뒤편의 은밀한 문을 지나니, 왕실 호위병으로 위장한 자 둘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이미 병사복으로 갈아입고, 말 없이 한 벌의 갑옷을 건넸다.
추울은 망설임 없이 짐승가죽을 벗어던지고 검은 내의 위에 호위병의 갑옷으로 갈아입었다.
갑옷 안에는 염종이 몰래 조작해 위조한 황실 호위병들이 사용하는 인장이 숨어 있었다.
“내가 앞장서겠다. 반월문을 통해 여왕의 침전으로 간다.”
추울은 함께 온 살수들에게 말했다.
자정 직전, 하늘에 유성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그는 여왕의 침전을 향해 포획물을 노리는 살쾡이처럼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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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서라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