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0일 강원 원주에서 열린 ‘기후도시 포럼:원주’에서 한 참가자가 70대 어머니에게 자주 한다는 말을 전했다. 더위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는 어머니가 언제 쓰러지실지 걱정이라며, 평생 아껴 온 세대에게는 쓸 때는 쓰라고 알려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책상 위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일상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기후도시는 온실가스 배출과 기후리스크를 줄이면서 동시에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도시를 말한다. 원주는 시민들이 바라는 기후도시를 함께 그려보자는 취지로 녹색전환연구소가 기획한 연속 포럼의 첫 순서였다. 시민 5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는 폭염·한파 쉼터를 24시간 열자는 아이디어에 한 참가자가 여성 공간과 남성 공간을 나누자고 덧붙였다. 밤을 보내는 곳이라면 누구나 맘 편히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주인이 고쳐주지 않으면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살아야 하는 대학 자취생은 허락 없이 붙였다 뗄 수 있는 방한 커튼과 문풍지를 나눠주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이 제안들을 원주시에 어떻게 전할지 고민하자 시민들은 머뭇거렸다. 한 참가자는 “민원은 공무원에게 따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신고나 접수만으로도 조사가 이뤄지면 좋겠다”고 했다.
다른 참가자는 원주천 공사 현장의 멸종위기종 물고기 보호 대책을 요구했던 경험을 말하며 “친절한 민원, 민원인이 되자”로 말을 맺었다. 행정의 부담부터 헤아리는 배려이지만, 자기 목소리가 어디로 가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길을 모르니 스스로 검열하고, 친절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떠안는다.
제안을 받는 쪽은 어떨까. 이튿날 안동 포럼에서 그 답의 일부를 들었다. 포럼을 공동주최한 한 시의원은 동네를 돌면 대부분 주차장 증설 민원이라며, 버스와 자전거 민원도 빨리 올라와 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버스 때문에 서러운 시민은 많지만 뭉쳐서 공적으로 말해 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민원이 될까 조심하던 바로 그 목소리를, 정치는 기다리고 있던 셈이다.
토론에 나선 안동시 환경관리과 과장은 행정의 고민을 말했다. 시민 요구의 상당수가 기후위기 대응이지만 행정은 균형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전거 지원을 늘리면 자동차 운전자의 불만이 커진다고 했다. 그런데 차 댈 곳이 없다는 불편은 곧장 민원이 되지만, 주차장을 늘릴 때 보행자의 불만은 좀처럼 접수되지 않는다.
쌓인 민원의 수가 정책의 우선순위가 되고, 판단 근거가 그것뿐인 공무원은 숫자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창구에 접수되지 않은 이날의 목소리는 어디로 갈까. 한 참가자가 비난받기 쉬운 자리에 나와 준 과장에게 고마움을 전한 뒤 물었다. “(시청에) 돌아가셔서 시장님이나 윗선에 이런 내용들을 보고하십니까? 아니면 과장님 혼자서만 삭이고 마는 건가요?”
명확한 답은 들을 수 없었다.
원주와 안동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선의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같은 문제를 걱정하는 세 사람이 서로를 비껴간다. 민원 창구는 한 사람의 불편을 한 건씩 접수할 뿐, 여럿이 함께 말하고 답을 주고받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창구 대신 둘러앉는 자리를 만들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다. 시민들이 함께 배우고 토론해 정책 권고안을 만드는 ‘기후시민회의’다. 올해 5월 국가 기후시민회의가 출범했고 제주와 경기도에서도 비슷한 자리가 열렸다. 하지만 권고안조차 담당자의 수첩에서 멈춘다면 도돌이표다. 누가 받아 어떻게 검토하고 언제 답할지까지 정해져야, 시민은 기후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친절한 민원인’이 되자는 배려는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그 부담을 시민에게만 지울 수는 없다. 이제 의회와 행정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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