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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펀딩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48호 입력 2026/10/01 10:12 수정 2026/10/01 10:13

박성철 교수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확대
박성철 교수
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
최근 2030 세대 사이에서 새 유행이 일어났다. 이름하여 ‘생일 펀딩’이다. 이름 그대로다. 가령 원하는 선물과 목표 금액을 지인들에게 공지하면, 각자 형편껏 계좌로 ‘축하금’을 보내는 식이다. 기사에서 읽은 건데 어느 직장인은 ‘손목에 애플워치 채우기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포스터까지 제작해 지인들에게 싹 돌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생일이 아니라 크라우드펀딩 스타트업 피칭에 가깝다. “목표 달성률 87%, 마감까지 D-3” 식의 문구만 없을 뿐이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제법 합리적인 유행이 아닌가 싶다. 우리 집만 해도 그렇다. 선반에는 텀블러만 네 개가 있다. ‘내돈내산’도 있지만 선물로 받은 것만 세 개다. 나라면 안 골랐을 성싶은 색상이지만 선물이라는 수동성을 감안해서 일단은 잘 모셔뒀지만 왠지 사용할 것 같지는 않다. 그 옆에는 좋은 향기가 나는 초 선물도 포장지로 싼 박스째로 잘 모셔뒀다. 심신 안정에 효과가 좋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향초를 피워본 적이 없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선물을 받으며 억지 미소를 짓던 경험들을 떠올려 보면 생일 펀딩이야말로 혁신적이고 매우 인간적인 진화가 아닐까 싶다.

새로 유행하는 편리함이지만 살짝 서운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선물이 선물다울 수 있었던 건 사실 그 ‘비효율성’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상대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백화점 매장을 몇 바퀴씩 돌았을 테고, 보기 좋게(!) 엉뚱한 걸 선물로 전해줬을 테지만 그 어설픔 속에는 “난 너를 생각하고 있어” 하는 마음이 녹아 있었더랬다. 펀딩으로 마련한 선물에 그런 마음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어설프고 쭈뼛대던 그 모든 헛수고가 말끔하게 제거되어 버린 다음 느껴지는 허전함이랄까.

적절한 단어마저 떠오르지 않은 이 느낌이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더치페이 문화도 현재 진행 중이다. “누가 더 냈네, 덜 냈네” 하는 은근한 신경전을 없애기 위해 각자 몫을 계산하는 더치페이의 확장판이 생일 펀딩인 셈이다. 예전엔 “오늘은 내가 쏜다!” 한마디로 퉁쳤을 인심도 이제는 정확한 액수로 공지되고 송금된다. 관계의 회계 감사가 갈수록 꼼꼼해진다고, 이걸 꼭 삭막하다고만 볼 일은 아니다.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배려가 깔려 있기에 ‘딱! 떨어지는 계산’이라기보다 ‘정을 지키기 위한 계산’ 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여태 생일 펀딩이 ‘삭막한 개인주의’로 비칠까 봐 주저리 말이 많았는데, 이 유행이야말로 한국 특유의 확장된 가족(big-familism) 개념으로 볼 수도 있지 않나 싶다. 케이크 위의 초를 홀로 불고 있는 것처럼 쓸쓸한 생일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생일 펀딩은 그래서 사적인 하루를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 생일’로 슬그머니 바꿔놓는 힘이 있다. 위에서처럼 포스터를 만들고, 수시로 목표 금액을 채워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고, 십시일반 참여하는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집단 이벤트다.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이고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모이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왁자지껄한 잔치며 파티다.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맵고 힘겨웠던 코로나 시절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각자 집 소파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켜놓은 채 맥주를 함께 마셨던 적 있다. 언뜻 처량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흥과 사람 사는 맛이 있었다. 인간은 참 신기한 존재라서 어떤 제약이 주어지든 그 한계 속에서 기어이 그럴듯한 문화를 만들어내곤 했다. 함께할 수 없었기에 모니터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선물 고를 시간조차 줄어들자 함께 하고픈 마음을 계좌(!)로 모았다. 형식은 계속 바뀌지만 축하하는 마음 하나만큼은 집요하게 살아있다.

그러니 생일 펀딩을 두고 “요즘 애들은 정이 없다”라고 혀를 찰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왕 계좌로 마음을 보낼 거라면, 송금 메모란에 짧은 속마음 정도는 남겨두면 어떨까. 무미건조하게 “생일 축하해” 보다는 “너의 얇은 손목에 애플워치 잘 어울리길” 정도가 좋겠다. 효율성은 지갑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겠지만, 손을 잡아야 느껴지는 그 온기만큼은 우리 스스로가 챙겨야 할 몫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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