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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노래> 공동체 상영회를 마치며...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입력 2026/07/30 15:05 수정 2026/07/30 15:25
- 우리는 무엇을 보고 듣는가 -

지난 6월 5일 ‘나무의 노래’ 상영회에 참석한 경주시민들. <사진=숲을>확대
지난 6월 5일 ‘나무의 노래’ 상영회에 참석한 경주시민들. <사진=숲을>
중남미 니카라과 섬에 한 여인이 서 있다. 이름 모를 80대의 여인. 젊은 시절 부푼 꿈을 안고 1969년 뉴욕으로 온 그녀는 생화학 전공자로서의 삶을 뒤로한 채 나무를 심는 사람으로 살기로 다짐하게 된다. 세포라는 작은 세계 속에서 거대한 우주를 떠올리던 그녀는 영화 속에서 이런 이야길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누릴 수 있는 산소를 선물로 남기고 가고 싶어요.” 지구에서 받은 걸 돌려주고 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그래서 나무를 심는다 한다. 죽기 전까지 100만 그루의 나무를 니카라과 섬에 심고 가는 게 마지막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 듣다, 보다.

그녀는 숲에 머문다. 바라본다. 듣는다. 느낀다. 오감을 넘어 육감으로. 하나의 감각마저 열린 상태로 머물다 보면 나무의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잘 자라주렴’ 하고 말을 걸어본다. 나무는 그러마 하고 대답한다. 나무와 대화하며 동시성(synchronicity)을 더 깊이 느낀다. 유심히 보면 들리고, 또 유심히 보다 보면 들린다는 그녀의 이야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삶의 신비가 아니겠느냐고 그녀는 말한다.

그러다 그녀는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나무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꽃이 필 시기가 아닌데 꽃이 피고 벌이 날아들 틈을 주지 않고 하루아침에 져버린다. 10여 년 같은 곳의 나무를 관찰했지만 유래에 없는 일이라고. 나무는 “내가 느끼는 계절은 너희가 느끼는 계절과 점점 달라지고 있어”하고 이야기한다. 자연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알아차릴 수 없으나 유심히 관찰해온 그녀는 이상한 변화를 알아차리게 된다. 인간의 지배욕과 욕망으로 인해 자연은 그전의 루틴을 잃고 기후변화라는 큰 재앙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자연을 본다지만 제대로 본 적이 있는가. 관념은 인간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의 노예가 되고 거기에 인생을 건다. 자기만족, 자기 상실은 인간을 이토록 자연에서 멀어지게 했다.

 

관객들고 소통하는 진재운 감독(오른쪽). <사진=숲을>확대
관객들고 소통하는 진재운 감독(오른쪽). <사진=숲을>

- 메멘토 모리

숲속 생명들의 순환을 바라보면 태어남과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누구나 죽음으로 하루하루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가야 하는 길인 것이다. 그녀는 이야기한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사는 삶, 그것을 의식하고 느끼며 사는 삶의 마무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모두들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지만 삶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지내는 삶은 다른 차원의 삶일 것이다.


속도에 중독된 현대인들에게 그녀가 던지는 한마디가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그녀는 흰말 순이에게 말한다.

“slow down, slow down. 천천히 가자. 순이야.“

어쩌면 방향을 잃은 우리에게 건네는 말이 아닐까? 방향 전환에 앞서 속도부터 줄이라는 메시지는 아닐까.


- 생명의 곁에서...

나무의 노래 상영회의 감독과의 대화 진행을 맡았던 나는 앞서 감독과 미리 통화로 서로 인사했다. 진재운 감독의 첫인사가 흥미로웠다. “혹시 나무와 대화를 하십니까?” 잠시 멈칫했던 나는 그저 나무 곁에 자주 머문다고 답했다.

영화 상영회에서 만난 감독님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계속해서 자연이 하는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을 것이라고 했다.

‘본다는 것’의 참 의미는 무얼까.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나와 마주 앉은 90석 영화 관람객들의 눈을 바라본다. 뭇 생명들의 곁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져본다. 영화 속에서 이야기하는 동시성.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연결을 믿으며 생명에 경탄하는 하루를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영화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출연에 세이바 나무, 포초타 나무... 아메리카쏙독새, 흰꼬리사슴, 줄무늬다람쥐. 그들의 이름이 오른다. 영화 속 여인은 이름도 없이 그저 ‘나무 심는 여인(88세)’이라 나온다. 그것도 동물과 식물, 새들의 이름과 함께. 그렇다. 사람은 그저 수많은 생명 중에 하나일 뿐 결코 우월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것이다. 생명의 곁에서 그 목소리를 들어보자. 오래 듣다 보면 보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명활동가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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