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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선 캠퍼스, 경주의 다음 30년을 여는 열쇠

경주신문 기자 gjnews21@hanmail.net 1741호 입력 2026/07/30 10:40 수정 2026/07/30 10:42
신경주대 부지, 관광·문화유산 교육·연구 거점으로

정주영 (사)경주발전협의회 부설 경주발전연구원 연구위원확대
정주영
(사)경주발전협의회
부설 경주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7월 3일 대구회생법원은 신경주대학교를 운영해 온 학교법인 원석학원에 파산을 선고했다. 파산관재인이 선임되었고, 재단 보유 부동산의 매각 절차가 곧 본격화된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사실이 하나 있다. 매각은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부지가 조각조각 팔려 나가고 나면 이 땅을 도시의 미래와 연결할 문은 조용히 닫힌다. 지금은 그 기회의 문이 아직 열려 있는 짧은 시간이다. 주목할 것은 이 대학의 뿌리다. 신경주대의 전신은 1987년 문을 연 한국관광대학이다. 경주대를 거쳐 서라벌대와 통합해 오늘에 이르렀지만 출발점은 ‘관광’이었고, 지금도 전국에 몇 없는 문화유산·관광 계열 학과의 전통이 남아 있다. 약 8만6000평 부지에 17개 동 건물이 서 있어 새로 짓지 않고도 바로 쓸 수 있다. 이것을 용도를 잃은 빈 건물로 볼 것인가, 정체성을 되살릴 자산으로 볼 것인가.

앞선 글에서 짚었듯, 세계적 관광도시에는 예외 없이 세계적 관광대학이 있다. 관광도시의 경쟁력은 관광자원의 총량이 아니라 그것을 연구하고 인재를 길러내는 기반에서 나온다. 경주에도 동국대 WISE캠퍼스의 40년 관광교육과 문화유산 연구 역량, 위덕대의 관련 학과라는 씨앗이 이미 있다. 문제는 이 자산이 도시의 미래 전략과 충분히 연결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때마침 여러 변화가 겹치고 있다. 정부는 제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준비하고, 경주시는 역사문화관광특례시 지정과 국가유산청 유치를 시정 방향으로 내걸었다. 도시의 방향과 국가의 정책, 한 대학의 운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은 드물다.

이 구상이 막연한 꿈이 아니라는 근거도 있다. 흔히 국가유산청을 ‘유치’한다고 하지만 정확히는 ‘확대’다. 국가유산청은 이미 경주에서 50년 넘게 일해 왔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와 신라왕경 복원·정비 추진단이 그 기반이고, 부여에서 한국전통문화대학교를 운영해 온 선례도 있다. 없는 것을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미 뿌리내린 거점을 키우는 일이다.

이제 발상을 바꿀 때다. 신경주대 부지를 관광·문화유산·컨벤션(MICE) 분야 전문대학원과 관련 공공기관·연구기능이 함께 들어서는 국가 차원의 교육·연구 거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문화유산의 발굴·연구·보존·활용을 잇는 ‘유산산업’을 도시의 성장동력으로 삼자는 구상이다. 최근 검토는 한 가지 가능성을 새로 확인했다. 부지를 쪼개 파는 것보다 학교를 존속시킨 채 새 기능을 얹는 편이 채권자와 지역사회 모두에게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학위 수여 기능과 교원·재학생이라는 무형의 자산까지 이어받는 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그림도 가능하다. 신경주대만 따로 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에 흩어진 관광·문화유산 교육·연구 기능을 동국대의 축적된 역량을 구심으로 통합·연합해 하나의 특성화 거점으로 키우는 길이다. 최근 정부의 지역대학 정책도 통합·연합을 통한 거점화를 지향한다. 대학 지원의 주도권이 지자체로 넘어오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시행으로, 경주시가 지역 고등교육을 도시 전략과 연동해 설계할 여건도 마련됐다.

관건은 어느 한 주체가 모든 부담을 떠안지 않는 구조다. 자산 확보는 공공과 민간이 함께하는 컨소시엄이 맡고, 이전해 오는 공공기관이 유휴 건물을 임차해 초기 재원을 만들며, 교육과 연구는 역량을 갖춘 지역 대학이 담당하는 방식이다. 이 구도에서 동국대는 재정을 떠안는 인수자가 아니라 40년 역량으로 교육·연구를 이끄는 학술 파트너가 된다. 경주시는 세 과제를 하나로 묶고 용도 계획과 조례로 공공성을 지킨다. 여기에 시민이 뜻을 모은다면 이 땅의 향방은 더 넓은 합의 위에 놓일 것이다. 재원과 법률, 역할 분담 등 과제가 적지 않기에 지금 심층적인 검토를 시작해야 한다. 매각이 끝난 뒤에는 검토할 대상 자체가 사라진다.

경주가 이미 치른 경험도 되짚을 만하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가 옮겨 왔을 때 기대만큼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로 흔히 꼽히는 것이 교육과 의료를 비롯한 정주 여건의 미비였다. 기관을 데려오는 일과 사람이 정착하는 일은 다르다. 이번 구상이 교육을 한복판에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이전기관 종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주시민의 정주 여건을 개선해 인구 유출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설령 구상이 당장 실현되지 않더라도 검토 자체가 남기는 것이 있다. 관광·문화유산 교육 거점이라는 도시의 비전, 부지 활용의 청사진, 교육을 매개로 한 정주 전략은 결과와 무관하게 경주에 남는 자산이다. 천년의 수도 경주는 유산만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이제는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관광산업을 혁신하며, 인재를 길러내는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멈춰 선 캠퍼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경주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하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세계적인 관광도시에는 세계적인 관광대학이 있다. 경주가 그 길을 여는 첫 결정을, 지금 함께 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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