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십 곳의 주민대책위가 바로 이런 과정을 겪은 뒤에야 만들어졌다. 어떤 마을에서는 평범한 공장이 들어서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폐기물 소각장이었고, 어떤 곳에서는 ‘산업단지 조성’이라는 이름 아래 폐기물 매립시설이 함께 계획되고 있었지만 주민들은 한참 뒤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문제는 이것이 예외적 사례가 아니라, 지금의 제도 아래서 매우 당연하게 반복된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것은 막을 수도 없다
난개발 문제의 출발점은 정보의 부재다. 대도시와 산업단지에서 발생한 산업폐기물은 발생지 책임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 경기, 충북, 전북, 경남, 경북의 면 단위 농촌으로 흘러간다. 영리기업들은 땅값 싼 농촌에 매립장과 소각장을 세워 돈을 벌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철저히 배제된다. 업체는 토지 소유주만 조용히 접촉하고, 인허가 절차는 밀실에서 이뤄진다. 주민이 알게 됐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이야기가 전국 어디서나 반복된다.
숫자가 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익연구센터 블루닷이 환경부의 2022년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 통계를 분석한 결과, 경상북도는 전국 산업폐기물 매립량의 무려 36.9%(148만8000톤)를 처리하고 있다. 의료폐기물 소각 처리량도 전국의 25.2%(6만2000톤)로 가장 많았다. 경북 전체로 보면 의료폐기물의 발생량 대비 처리량이 7배가 넘는다. 자기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폐기물이 전국에서 밀려들어 온다는 뜻이다.
왜 경북에 이렇게 폐기물이 집중될까. 현행 환경영향평가법은 시·도가 조례를 통해 환경영향평가 대상을 법령 기준의 50%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인접한 경남은 이에 따라 환경영향평가 조례를 제정해 평가 대상을 확대했고, 경기, 제주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경북은 이러한 환경영향평가 조례 자체가 없다. 법령이 정한 최소 기준만 적용되니, 그 기준에 미달하는 시설은 아무런 검증 없이 허가가 나는 것이다. 이렇게 규제가 느슨한 곳으로 사업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세 겹의 차단막-주민은 왜 배제되는가
폐기물 업자들은 이렇게 지역으로, 농촌으로 몰려오고, 지역 주민의 삶을 파괴하는 난개발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현행 제도에서 주민이 난개발에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세 겹의 구조적 차단막 때문이다.
첫 번째 차단막은 ‘정보의 부재’다. 우리 동네에 폐기물 매립장이 추진되어도 행정이 주민에게 알려주는 절차가 없다. 알지 못하니 대응할 수도 없다. 주로 마을 이장에게나 알음알음 알려질 뿐이고, 그마저도 ‘산업단지’의 외피를 쓰고 있어 정확히 무엇이 들어서는지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 차단막은 ‘폐쇄적인 의사결정 과정’이다. 개발 사업의 인허가를 심의하는 각종 행정위원회는 비공개로 운영된다. 사업자는 ‘사업 설명’을 이유로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낼 수 있지만, 그 시설 옆에서 살아갈 주민은 그런 회의가 열리는지조차 모른다. 회의록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다.
세 번째 차단막은 ‘제도의 사각지대’다. 현행법은 하루 100톤 이상 소각시설만 환경영향평가 대상으로 정한다. 이를 악용해 하루 99톤으로 허가를 받는 꼼수가 전국에서 반복된다. 고형연료(SRF) 소각시설은 ‘재활용’으로 분류돼 아예 평가에서 제외된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하루 100톤이나 99톤이나 다를 바 없는데, 숫자 하나 차이로 검증 절차 전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 세 겹의 차단막이 결합하면 결과는 명확하다. 이익은 업체가 가져가고, 피해는 주민이 떠안고, 사후 처리 비용은 행정이 부담하는 악순환이다. 화성시, 당진시, 제천시, 성주군 등에서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방치돼 주민들이 악취와 침출수 피해에 시달린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차단막을 허무는 7대 조례
전국 80개 환경·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난개발·환경오염 방지 및 주민알권리 조례 운동본부’는 이 세 겹의 차단막을 허물기 위한 7대 표준 조례안을 마련했다. 기초와 광역자치단체에서 의지를 보인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방안이다.
정보의 차단막을 허무는 조례가 두 가지다. ‘갈등유발예상시설 사전고지 조례’는 환경 피해 우려 시설의 인허가가 접수되면 7일 이내에 인근 주민에게 문자와 서면으로 알리도록 의무화한다. 폐기물처리시설뿐 아니라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공장, 발전시설, 토석채취 사업 등도 고지 대상에 포함돼 공장이나 산업단지라는 이름 뒤에 숨은 유해시설도 더이상 주민 몰래 추진할 수 없게 된다. ‘환경피해 예비조사 지원 조례’는 환경오염 피해가 발생했을 때 입증 책임을 주민에게만 지우는 구조를 바꿔,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예비조사를 실시하고 노출 주민의 건강검진을 지원하도록 한다.
의사결정 과정의 차단막을 허무는 조례도 두 가지다. ‘위원회 회의 공개 조례’는 지자체 산하 모든 위원회의 회의를 원칙적으로 공개하고, 7일 전 안건 공표, 7일 이내 회의록 공개를 의무화하며, 이를 위반한 회의의 의결 효력을 무효로 한다. ‘주민 참가 보장 조례’는 도시계획위원회 등 개발 관련 위원회에서 이해관계 주민이 참관하고, 발언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제도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조례가 세 가지다. ‘환경영향평가 조례’는 평가 대상 기준을 법령의 50% 이하로 낮춰 99톤 꼼수를 차단하고, SRF 소각시설도 평가 대상에 포함시킨다. ‘환경정책위원회 조례’는 환경오염 우려 시설의 인허가 전에 민관 공동운영 환경정책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의무화한다. ‘도시·군 계획조례’는 폐기물처리시설이 주거지, 학교, 하천 등으로부터 직선거리 2000m 이내에 입지할 수 없도록 이격거리 기준을 강화한다.
이 조례들의 공통된 원리는 간명하다. 주민에게 먼저 알리고,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고, 환경 피해를 사전에 검증하라는 것이다.
알권리가 주민자치의 출발선이다
2026년 6월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장밋빛 개발 공약들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개발 이전에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그 과정에서 주민의 알권리는 보장되는가. 주민이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가. 피해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는가.
1995년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31년이 지났지만, 우리 동네에 쓰레기장이 들어서는지조차 알 수 없다면 주민자치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이다. 알권리가 주민주권의 출발선이기 때문이다.
운동본부가 주장하는 7대 조례는 거창한 요구가 아니다. 알려달라, 공개해달라, 발언할 기회를 달라.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역 현장에서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후보자들에게 바로 이러한 약속을 받아내는 계기가 돼야 한다.



홈
오피니언
기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