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하자, 실제 단종의 유배지였던 영월 청령포를 찾는 방문객이 10배 이상 급증했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단순한 관광 증가를 넘어, 지역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단종의 동선을 따라가는 순례형 관광 코스를 만들고, 어수리 나물 정식과 메밀전병, 올치국수 같은 향토 음식에 ‘단종의 식탁’이라는 스토리를 입혀 관광 상품으로 확장하고 있다. 콘텐츠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지역경제로 이어지는, 이른바 ‘K-콘텐츠의 낙수효과’가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코 낯설지 않다. 과거 드라마 『겨울연가』는 촬영지인 남이섬을 드라마 밖 세트장으로 탈바꿈시키며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바꿨고, 작년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상영되면서 서울과 국립중앙박물관의 방문객이 급증하며 관광상품과 뮷즈(뮤지엄 굿즈)가 개발되었다. 최근 BTS 공연이 광화문 일대에서 열렸을 때 역시 도시 전체가 하나의 콘텐츠로 작동했다. 이제 콘텐츠는 더 이상 스크린 속에서 소비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직접 보고, 먹고, 머무르는 경험을 위해 스크린 밖 현실 공간으로 이동한다. 콘텐츠는 ‘이동을 유발하는 힘’이 되었고, 도시는 그 경험을 담아내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냉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모든 지역이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될 수는 없다. K-콘텐츠 유치 경쟁만으로 지방소멸이라는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전략은 분명 한계를 가진다. 그렇다면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유치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인가”다. 영화 속 단종과 엄홍도의 이야기가 힘을 가지는 이유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 한 줄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사람의 감정과 기억을 자극하는 서사로 재구성되었고, 동시에 지역이 이를 발 빠르게 관광상품과 경험 콘텐츠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다시 경주를 떠올린다. 경주는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신라 금관이 상징하는 역사성과 국제행사의 결합은 강력한 이미지 효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APEC의 진정한 의미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그 이후 무엇을 지속가능한 자산으로 전환하느냐에 있다. 도시는 단발성 이벤트를 넘어 지속적으로 방문하고 머물고 싶은 이유를 설계해야 한다. 경주는 2025 APEC으로 무엇을 남겼는가?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전국 229개 시군구 중 89곳이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되었고, 지방소멸은 더 이상 추상적인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정부는 취득세 감면 확대, 지역사랑상품권 지원 강화, 반값 여행 정책,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책만으로 지역의 미래를 담보할 수는 없다. 정책은 조건을 만들 뿐 사람들이 찾아오고 머무르는 ‘이유’를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결국 그 이유는 지역 스스로가 설계해야 한다.
최근 지역 간 유치 전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유배지 유치 경쟁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략이지만, 과열될 경우 특정 지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지역 이기주의적 현상인 핌피 현상(PIMFY, Please In My Front Yard)으로 흐를 수 있다. 반대로 지역에 부담이 되는 시설을 기피하는 님비 현상(NIMBY, Not In My Back Yard)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경기북부 5개 시군은 각자도생을 폐기하고 연대를 선택하며 ‘방산클러스터’ 국책사업 공동 유치에 나서고 있다. 또한 SMR 1호기 건설과 같은 대형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경주시와 기장군 등을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 간 경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역은 ‘유치의 이익’과 ‘수용의 책임’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요구받게 된다.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기대와 안전·환경에 대한 우려가 충돌하는 상황은 영화 속 유배지가 ‘대박’이 될지, ‘부담’이 될지를 다시 묻게 된다.
결국 다시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경주는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경주의 미래 먹거리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산업 구조의 문제가 아니다. 경주라는 도시가 앞으로 어떤 도시로 기억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K-콘텐츠의 시대, 유배지조차 관광자원이 되는 시대에, 경주는 더 이상 과거의 유산에만 머물 수 없다. 유산을 어떻게 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오고 싶고, 머물고, 살고 싶은 도시’로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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