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년대의 트로트를 들을 때면 나는 아주 오래된 장면으로 돌아간다. 취학 전, 아직 ‘박자’라는 말을 알기 전의 일이다. 아버지는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박자에 맞추어 입으로 칫칫 소리를 내셨고, 어린 나는 그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춤 추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의 뜻은 잘 몰랐지만, 노래가 흘러나오던 그 방안의 온기와 아버지의 웃음만큼은 지금도 감각에 또렷하다. 그래서 어떤 노래는 지금도 음악이 아니라 기억으로 들린다. 멜로디보다 먼저 고향의 풍경과 부모의 얼굴이 떠오르는 이유다.
문제는 그 기억의 통로가 어느 순간 나만의 것이 되어 버렸다는 데 있다.
여느 모임의 회식이 끝나고 어쩌다 여흥을 가질 때, 노래를 고르려 하면 내 또래에게서조차 “그런 노래는 모른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왜 하필 그렇게 오래되고 나이 든 노래를 택하느냐는 타박도 뒤따른다.
가족 안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아내는 내 취향이 아직도 저급한 대중가요에 머물러 있다고 말하고, 아들은 “고속도로 휴게소 음악 같다”며 능숙하게 중립을 택한다. 세대의 감각이 만든 안전한 거리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휴게소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자음이 과하게 덮인 리듬, 속도만 남은 편곡에는 노골적인 거부감이 든다. 젊은 가수가 트로트를 목청과 가창력 좋게 불러도 마음이 머물지 않고, 어린아이의 능숙한 트로트는 더더욱 그렇다.
성인가요란 삶이 스며든 목소리여야 한다는, 어쩌면 다소 완고한 기준을 나는 아직 버리지 못했다. 나훈아를 좋아하지만 그의 전 생애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1975년 이전, 사춘기 무렵 고향에서 들었던 청아한 고음과 맑은 저음의 노래들만이 내 기억의 문을 연다.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노래를 고르는 동시에 취향에 경계를 긋고, 나도 모르게 서열을 매기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이 개인의 자연스러운 선택이 아니라, 계급과 교육, 문화자본이 만들어 낸 ‘구별의 장치’라고 말한 바 있다.
같이 놀아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무엇을 좋아하는가는 곧 내가 누구인가를 말해 주며, 동시에 누구와 거리를 둘 것인가를 드러낸다. 취향은 사적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위계를 재생산한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그 노래들은 유행을 견디지 못할지라도 기억을 배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취향이 계급이 되는 순간을 경계하면서도, 한 인간이 어디에서 길러졌는지를 증언하는 기억의 힘만큼은 존중하고 싶다.
결국 취향은 선택이자 고백이다. 나의 노래는, 내가 자라난 경주 건천의 소 몰던 언덕과 흑염소가 민첩하게 뛰어다니던 그 비탈진 계곡, 푸르던 여름 들판과 눈 덮인 하얀 겨울 산자락 언저리를 아직 떠나지 못했다는 고백이다.



홈
오피니언
기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