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거대한 박물관이자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잠재력을 품은 도시다.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산은 신라의 찬란한 정신을 오롯이 전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영감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유산이 과거의 흔적으로만 보존해서는 안 된다. 역사가 첨단 기술과 만나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할 때, 경주는 비로소 활력을 얻고 세계로 향한 길을 밝힐 수 있다. AI시대, 경주는 역사와 기술이 융합된 문화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와 이야기를 모두 갖춘 곳이다.
최근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흐름은 전통과 현대의 결합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준다. 넷플릭스 K-POP 기반 애니메이션 ‘데몬 헌터스’는 전통적 미학과 현대 대중문화를 융합해 전 세계 팬을 사로잡았고 국립중앙박물관은 디지털 기술과 창의적 전시로 관람객 경험을 혁신했다. 경주 역시 첨성대의 공간정보를 바탕으로 천문 데이터 복원, 신라 전역의 가상현실 구현, 화랑도의 리더십 교육을 메타버스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 전 세계인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경주를 체험하도록 만들 수 있다.
어릴 때 필자에게는 작은 의문이 있었다. 왜 하필 가장 작은 나라인 신라가 삼국통일을 했을까. 삼국통일의 역사를 말할 때 종종 등장하는 ‘고구려 중심 통일론’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 보고 중국 시안을 직접 방문해 보니 일부에서 주장하는 고구려 중심 통일론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삼국을 통일한 주역은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였다. 김춘추는 국가의 위기 속에서 당나라 수도 시안까지 직접 가 동맹을 맺었고 연합군을 이끌어 한반도의 판도를 바꾸었다. 그러나 외세의 힘에만 의존하지 않고 당나라의 야욕을 분쇄하며 주권을 지켰다. 이 과정에서 구 고구려·백제의 무신 중심의 부패한 지배계층은 몰락했고 신라는 새로운 문화·경제적 통합 질서를 확립했다. 역사는 경주가 삼국통일의 실질적 주역이자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든 중심지임을 증명한다. 땅의 크기가 아니라 꿈과 희망의 크기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당시 신라는 국토와 자원이 열세였지만 체계적인 교육, 강한 결속력, 문화적 자긍심으로 결핍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그 중심에는 도덕·예술·군사 능력을 겸비한 화랑도가 있었다. 화랑도의 리더십은 국가를 하나로 묶었고 국제무대에서도 자주성을 지켜내는 원동력이 됐다. 오늘날 경주는 이 화랑도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할 수 있다. 국제 청소년 리더십 아카데미, 글로벌 문화 축제, 메타버스 역사 체험관 등은 신라의 가치와 문화를 세계에 전하는 훌륭한 수단이 될 것이다. 그리고 화랑도의 역사적 뿌리와 교육 철학을 감안할 때, 화랑도를 가르치는 육군사관학교 이전의 최적지가 바로 경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경주는 역사·문화 자산을 넘어 글로벌 교류의 무대로 나아가야 한다. 그 출발점은 APEC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국제회의, 세계 문화 포럼, 글로벌 청소년 리더십 대회, 유소년 축구대회, 신라문화대전 등 현재 준비 중인 지역 행사를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러한 행사는 관광과 경제 효과를 넘어 경주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도시를 ‘세계 문화수도’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문화 콘텐츠 창작자들의 세계 진출을 돕는 일도 중요하다. 한류의 영향으로 유럽의 작은 도시에도 K-푸드가 진출해 있다. 최근 웹소설 플랫폼 노벨피아에서 활약 중인 신뒤 작가의 아버지가 경주 출신이듯, 경주의 문화 DNA는 여전히 전 세계로 뻗어갈 잠재력을 품고 있다. 신라대전 출신 화가 김명조 화백의 ‘쉴만한 물가’ 시리즈처럼 이미 국내외에서 인정받을 예술가들이 더 큰 무대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창작자들의 활약은 경주의 문화 브랜드 가치를 한층 높일 것이다.
첨성대는 과거 신라인들이 별을 읽으며 계절과 운명을 가늠했던 창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 별을 다시 헤아려 AI시대의 미래를 밝히고 경주를 세계 문화의 중심으로 세울 답을 찾아야 한다. 전통과 현대, 지역과 세계, 기술과 문화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날, 첨성대는 다시 한번 경주의 밤하늘과 인류의 미래를 환히 비추며 과거의 영광을 넘어 새로운 천년의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이다. 고향 경주의 큰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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