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손 선수는 10여 일 전 첼시와의 경기에서 발목 부상을 입은 상태임에도 주장 완장을 차고 왼쪽 공격수로 나섰다. 이날 토트넘과 사우샘프턴과의 경기 결과는 2-2 무승부. 손흥민은 선발로 출전하여 후반전에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으나 득점에는 실패했고 평점은 6점대의 저조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주장으로서 팀 성적, 선수단 화합, 자신의 컨디션 조절 등 1인 3역 이상을 해나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손 선수가 팀을 떠난 지 2주가 지난 시점에서 영국과 유럽의 축구전문가의 반응은 하나같이 팀의 중심인 토트넘이 그의 공백을 메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게리 네빌(Gary Neville, 전 맨유 선수 겸 축구 해설가)은 손흥민이 토트넘 공격의 핵심이자 팀의 ‘영혼’ 같은 존재였다고 평가하며 “프리미어리그에서 손흥민 만큼 꾸준하고 결정적인 선수가 드물었다. 그의 부재는 토트넘에게 큰 손실이다. 팀은 새로운 공격 자원을 찾아야 하며 단기간에 그의 빈자리를 완전히 메우기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LAFC로의 이적은 손흥민에게 커다란 도전이자 MLS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내가 경주신문 첨성대에 기고문을 시작한 지도 벌써 4년이 가까웠다. 2021년 9월 30일 영화 DP에 관해 글 쓴 것이 처음이었는데 이제 마지막 기고문을 쓰려니 감회가 새롭다. 당시 서울지사장 역을 맡고 있던 고교 시절 동창의 권유로 시작했었는데 경주신문에서 지면을 허락해 주어 고마웠다. 멀리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이셨던 이종룡 선생님께서 경주신문 사장을 맡으시면서 많은 업적을 남기시기도 해서 나의 필진 참여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더욱이 지도의 맨 끝 마을 이곳 대서양 연안의 아일랜드에서 경주의 독자들에게 이곳 소식과 문화를 전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 시간 고교시절 은사님이셨던 故 이종룡 선생님을 떠올리게 된다. 선생님께서는 6.25가 한창이던 때 북한 공산치하에서 벗어나 월남하셨다. 80년대 말 친구와 함께 은사님을 찾아뵈었을 때에는 월남하시면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고 넘기시며 경주에 정착하시게 된 계기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정식직원으로 채용되기 힘든 상황임에도 정식 교사로 봉직하게 된 일화를 말씀하시면서 눈시울을 붉히셨다. 선생님은 학교가 끝나면 야간학교인 한림학교로 나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어 많은 학생들이 당당한 사회인으로 우뚝서게 도움을 주셨다.
이러한 공로가 인정되어 5공화국 초기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는데 수업을 핑계로 그 자리에 참석조차 하지 않으셨던 일화는 제자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더욱이 평교사로서 정년퇴임을 하신 이후부터는 경주신문의 대표로서 십 년 이상 봉사하셨다고 들었다. 이처럼 선생님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사셨다. 선생님은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숲의 왕이라 칭송받는 참나무(Oak Tree)에 비견될 만한 지역사회, 나아가 대한민국의 큰 어른이셨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게재할 수 있도록 지면을 할애해 주신 경주신문 관계자분들과 독자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제 그 의미 있는 글쓰기를 마무리하면서 두 가지 바람을 가져본다. 우선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경주의 가치를 드높이는 행사로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경주를 다시 찾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멀리서나마 기원한다. 마침 이곳 아일랜드에서 지난 1년 6개월 동안 온라인 강의를 통해 진행해온 한국어 이론과 실습을 진행한 끝에 국가평생교육원으로부터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강사 2급’ 자격증을 받게 되었다. 한국어 강사로 영어권 학생들을 가르치며 힘들 때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은사님의 사랑과 헌신을 되새기며 이겨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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