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동아시아문화도시 경주’가 오는 25일 오후 7시 월정교 특설무대에서 개막한다. 동아시아문화도시는 지난 2014년부터 한·중·일 3국이 각 나라별로 개최도시를 선정해 다양한 문화교류행사를 추진하는 행사로 올해 8회째를 맞는다. ‘찬란한 신라 문화, 실크로드로 이어지다’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2022 동아시아..
재단법인 감포장학회는 감포 초·중·고등학교 출신의 대학 재학생 9명에 100만원씩 총 9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22일 감포장학회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일반 장학생 7명, 특별 장학생 2명 등 9명을 선발해 장학금 수여식을 가졌다. 하원 (재)감포장학회 이사장은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국이지만 건강과 학업에 충실..
온정(溫情) 고전적인 주전자에 관심이 많아서 옛 주전자를 살펴보며 재현 해보려던 것이 어느새 여러 모양의 주전자를 만들게 되었다. 주전자는 술주(酒)자를 쓰기는 하지만, 꼭 술만 담는 것이 아닌 차를 끓이거나 데우는데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앞으로도 더 다양한 모양의 주전자를 만들어 보고자 한다. 왠지 주전자를 보면 따뜻한 차 한잔이 마시고 싶다.
지난 13일 기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경주지역 도난문화재 정보에 따르면 1993년부터 모두 29건의 지정 또는 비지정 문화재가 도난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3년 이전인 일제강점기 때 도굴·반출된 중요 문화재는 포함되지 않았다. 도난 시기로 보면 1990년대 6건, 2000년~2009년 사이 18건으로 집중돼있고, 2010년대 3건, 2021년 2건 등을 합쳐 모두 29건이다. 근래 들어서도, 특히 지난해 2건의 비지정 석조문화재가 도난되면서 문화재 당국의 관리가 허술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도난당한 문화재 중 기림사 감지은니묘법연화경 등 2점은 지난 1988년 11월 4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지 불과 5년 후인 1993년 12월 5일 잃어버렸다. 또 사적 제311호 창림사지 내 ‘석탑재’ 2점은 2008년, 경북 문화재자료 제345호인 왕신리 운곡서원 내 문짝 1점은 2004년, 경북도 유형문화재인 이조리 경모각 내 최진립 유품 조각품 2점은 2002년 각각 도난당했다. 나머지 25건은 모두 비지정문화재로 일부 회수된 것도 있지만, 대다수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도난된 문화재 형태로 보면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 이전까지는 고문서, 탱화, 병풍 등 실내 소장 문화재들이 주를 이룬다. 이후 2000년대 후반부터는 야외에 존치된 석조문화재가 주로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황룡사지 서쪽 외곽부근 석조물 1점, 황남동 ‘숭혜전 하마비’, 보문동사지 석물 2점 등이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도난된 천관사지 내 석등 상대석, 석등 하대석, 북사지 비지정문화재 석탑 부재 하층기단석 등 4점도 야외에 방치되다시피한 비지정 석조문화재다. 근래 들어 설치된 CCTV가 증가하면서, 이를 피해 비교적 범행이 쉬운 석조문화재를 노리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기준으로 재평가하면 지금까지 도난 된 비지정문화재들이 국보 또는 보물로 승격될 수도 있을 것이다. 행정력의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비지정문화재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지금이라도 비지정문화재에 대한 실태 파악 및 문화재 당국의 책임관리가 선행돼야 함이 마땅하다. 더 이상의 도난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문화재 관리가 가능한 향토박물관 건립 등도 검토해야 할 때다.
구 황남초등학교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오랜 전통을 지닌 황남초가 용강동으로 이전한 뒤 빈 터로 남아 있던 학교 건물을 개축·리모델링해 최근 ‘발명체험교육관’과 ‘경북웹툰캠퍼스’로 개관하면서다. 발명체험교육관은 경북도교육청과 특허청이 공동 추진해 문을 연 국내 최초 발명전문 교육기관이다. 총사업비 236억2000만원을 들여 3개동 연면적 5837㎡ 규모로 구 황남초 건물을 개축했다. 발명을 기반으로 하는 발명채움관, 도전혜윰관, 미래키움관 등 3개 전시·체험공간과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어울림광장, 기존 학교 운동장을 활용한 주차장을 조성했다. 경북도, 경주시, 경북콘텐츠진흥원가 추진한 경북웹툰캠퍼스는 유망 웹툰작가나 지망생을 대상으로 맞춤 교육과 다양한 전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 경북웹툰캠퍼스는 지상 2층, 연면적 801㎡ 규모로 입주실 17개(개인실 15, 기업실 2), 교육실, 전시실, 만화방, 쉼터 등과 웹툰 창작과 교육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축했다. 발명체험교육관은 발명 꿈나무를 미래 혁신가로 키우는 발명의 메카로, ‘경북웹툰캠퍼스’는 웹툰 전문 인력 양성과 저변 확대, 지역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것으로 보여 기대가 크다. 그동안 국내 발명교육센터는 아이디어 발상·구현에서 특허까지 확보하는 발명교육 전 과정을 체험하기에는 규모면으로 한계가 있었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시설과 시스템을 최초로 갖춘 곳이 바로 발명체험교육관으로, 향후 경주가 명실상부한 발명의 메카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되는 점이다. 지금 전 세계에 웹툰 열풍이 불고 있는데 그 진원지는 바로 우리나라다. 우리나라 웹툰은 K팝, K드라마 못지않은 한류열풍을 일으키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에 문을 연 경북웹툰캠퍼스에 거는 기대도 크다. 이곳에서 많은 작가들이 소통을 통해 새로운 한류를 이끄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경주에서 이제 막 운영을 시작한 발명체험교육관과 웹툰캠퍼스가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산실로서, 또 미래 콘텐츠산업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기반이 되길 바란다.
세월에 빗장을 걸 수 없다. / 둔중함과 더딤… / 그저 하찮은 존재로 살다갈 수밖에 없나? 나도 뭔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불타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숨과 체념이 늘어간다. 내 피를 뜨겁게 달구던 흥분은 사라지고, 몸은 점점 중력의 힘을 크게 느끼게 된다. 그리스의 작가 메난드로스는 노래했다. 노년이여! 너는 인류의 적이구나. 모든 형태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것은 바로 너다. 너는 신체의 화려함을 둔중함으로 바꾸고 날렵함을 더딤으로 바꾸는구나. 몇 날, 몇 달, 심지어 몇 년도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다. 시간에 빗장을 걸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결국 삶의 더 큰 가능성에서 등을 돌리고 안락과 타협만 좇는 나약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대로 우주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다시 삶을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몸이 힘들고 정신이 몽롱해지기 전에 삶을 다시 추스르는 일을 지금 이 나이에 서둘러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이런 나약함과 나태함을 쫓아낼 수 있을까? 세익스피어의 《소네트》에는 “5월의 싱그러운 환희 속에서 눈을 그리워하지 않듯, 크리스마스에 장미를 갈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5월에는 5월의 환희가,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이 있다. 천천히 흘러가는 인생 후반기의 시간에는 그 시간만이 지니는 즐거움이 있다. 호기심을 꺼트리지 않고 무언가에 집중해 자신을 맡길 때 여생의 시간은 빛난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호기심 많은 로멘스 그레이를 꿈꿔보자. 꿈꾸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기쁨과 놀라움 같은 감정에 인색해진다. 호기심과 유희성도 점점 사라진다. 이와 같이 나이 들면서 사라지는 어린아이의 특성을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하면 젊게 나이 들 수 있다. 어린아이들처럼 활기차게 유쾌한 반란을 시작해보자. 노화는 피할 수 없지만 젊게 나이 들 수는 있다. 젊음의 유전자를 일깨우면서 산다면 세월과 함께 늙는 것이 아니라 날로 새로워질 수 있다. 아일랜드의 위대한 시인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예이츠는 <비잔티움으로의 항해>라는 시에서 관능적인 젊은이들의 삶에 문제를 제기하고 노년의 삶을 사랑한다. 그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물질적인 것에서 벗어나 영적이고 지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가상의 시인을 내세워 노년의 초월적인 세계를 동경했다. 저곳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 서로를 부둥켜안은 젊은이들, 나무에 앉은 새들 / - 그 죽어가는 세대들 - 은 노래를 부르고 / 연어 떼가 튀는 폭포, 고등어가 우글대는 바다에서는 / 물고기, 들짐승, 날짐승이 여름 내내 / 잉태되어 태어나 죽어가는 모든 것을 찬미한다. / 모두가 관능적인 노래에 취해 / 늙지 않는 지성의 금자탑을 홀대한다. 노인은 그저 하찮은 존재, / 영혼이 손뼉 치며 노래하지 않는다면 / 썩어 없어질 모든 누더기를 위해 / 소리 높여 노래 부르지 않는다면 / 노인은 막대기에 걸린 누더기일 뿐, / 영혼의 장엄한 금자탑을 탐구하지 않는다면 / 노래를 배울 곳은 어디에도 없다. / 그리하여 나는 바다를 건너 / 거룩한 도시 비잔티움으로 왔다. 먹는 나이야 어찌하겠는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이 들어감을 받아들이면서 노년의 삶을 살아갈 궁리를 해보자. 이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마음을 편하게 갖고 저녁놀처럼 아름답게 노년을 살아가자. 노년에는 물질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시각보다 우주적이고 초월적인 시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좋다.
대통령 선거는 끝났다. 이제부터는 지방선거다. 지방선거는 순수 정치인을 뽑는 것이 아니라 지방행정을 통해 경주발전을 견인하고, 지역 살림을 꾸려나갈 일꾼을 선택하는 선거다. 특히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 후 처음 치러지는 이번 지방선거에 거는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동안 대선에 가려 예비후보 등록조차 자유롭지 못하면서 유권자와 후보자 모두 피해를 보는 ‘깜깜이 선거’가 우려되기도 했다. 지난 2월 18일부터 시작된 시장, 도·시의원 예비후보 등록에는 대선 전까지 시의원 5명만 등록하는데 그쳤다. 주요 정당이 대선 후 예비후보 등록 등의 제한을 걸면서 공천을 희망하는 정치 신인들의 불만도 터져 나왔다. 지난 16일 오전 기준으로는 시장 1명, 도의원 1명, 시의원 16명 등 모두 18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하면서 이제야 지방선거 열기가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오는 5월 10일 예정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전국선거인만큼 여야가 총력전을 펼칠 태세다. 제20대 대통령선거후 불과 3개월 만에 치르게 되는 선거로, 대선 결과가 경주지역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좀 더 앞을 내다보면 오는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선거여서 여야 모두 긴장하고 있다. 이번 자치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자칫 여야 중앙당의 정치쟁점으로 묻혀버리지는 않을까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열어갈 ‘지방자치 2.0시대’의 취지가 훼손되지는 않을지 염려스런 목소리도 있다. 군부 정치로 중단된 지방자치제는 1991년 지방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재개돼 31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지방자치가 가야할 길은 멀다. 자치분권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지난 1월 13일 본격 시행되면서 전국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지방의회의 인사권 독립으로 그동안 시장이 가졌던 지방의회 직원 인사권은 의장에게 옮겨졌다. 또 지방의회는 자치입법·예산심의·행정사무감사 등을 지원할 ‘정책지원관’을 도입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권한이 많아지는 만큼 전문성을 갖고 의원 역할에 충실히 하라는 의미도 담겼다. 주민참여권 보장과 주민참여제도도 강화됐다. 주민이 의회에 직접 조례를 발의할 수 있는 ‘주민조례발안제’ 도입과 지방자치법에 근거를 두는 주민소환·주민투표의 청구요건 등도 완화해 주민들의 실질적인 참여가 이뤄지게 된다. 이처럼 지방의회와 주민참여제가 강화되는 ‘자치분권 2.0시대’가 열린 만큼 지역정치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이는 유권자가 지방자치제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실천에 옮길 사람이 누구인지 판단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경주의 경쟁력을 연결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계획을 잘 짜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특히 보수성향이 강한 경주는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있어, 정당은 지방선거를 통해 누가 어떻게 경주발전을 일궈낼 것인가라는 확고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치열한 경선 경쟁이 불러오는 네거티브로 후보들의 정책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선거가 재연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지방선거에 도전하는 예비후보들의 등록이 더욱 본격화될 전망이다. 각 정당은 앞으로 누구를 공천해야 할지 고심하고,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에 이어 다시 한 번 누구를 뽑아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결국 주민자치의 기반인 지방자치의 본질을 지켜내는 일은 유권자의 몫이다. 선관위는 예비후보 등록자들의 학력, 경력, 학력 등을 사항을 공개하고 있다. 이것만으로 충분치는 않지만 민주시민의 기본자질과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후보의 자질부터 가리고, 정치권의 거대담론과 후보들의 휘황찬란한 공약 사이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지역공약, 민생 공약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유권자들이 ‘자치분권 2.0시대’를 열어가는 주체임을 인식하고, 누가 경주발전을 이끌어 낼 적임자인지 관심만 가진다면 투표하고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경주만큼 원사정재(院祠亭齋)의 고건축물이 많은 곳이 드물다. 현존하는 건축물도 상당하지만 허물어져 기록으로만 전하는 것들까지 감안하면 거의 경주시 전역에 가득하였을 것으로 판단되며, 건축물의 수만큼 인물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도 병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주시 강동면 단구리에는 경주이씨 이세기(李世基)를 주벽(主壁)으로, 좌우에 국당(菊堂) 이천(李蒨,1274~1349)과 송와(松窩) 이종윤(李從允,1431~1494)을 배향하는 단구서원(丹邱書院)이 있다. 유림과 문중의 공의로 1862년에 이종윤을 제향하는 모현서당(慕賢書堂)으로 건립되었다가 훼철되었고, 이후 1926년에 새롭게 지었으며, 1983년에 중창하였다. 『안씨가훈(顔氏家訓)』「모현(慕賢)」을 보면, “천 년에 성인(聖人) 한 분이 나와도 마치 아침저녁 사이 같고, 오백 년에 현인(賢人) 한 분이 나와도 마치 어깨를 나란히 하여 연이어 나오는 것 같다”라 하였다. 이는 성현을 만나기가 어렵고 뜸하기가 이와 같다는 말이다. 만약 세상에서 보기 힘든 뛰어난 인물을 만나게 된다면 어찌 그를 따르며 흠모하지 않겠는가? 이에 어진 이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慕賢’의 이름을 빌어 선조의 덕을 숭모하는 공간의 명칭으로 삼은 곳이 많다. 배향인물을 살펴보면, 이세기는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으로, 이천의 부친이다. 이천은 1299년에 국자감시(國子監試)에 급제하였고, 첨의평리상의(僉議評理商議)로 원나라에 가서 교사(郊赦)를 축하하고 돌아왔으며, 우사보(右思補)·동지공거·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등을 역임하였다. 이종윤(李從允,1431~1494)은 1462년 생원·진사에 합격하였고, 1468년 문과에 급제하여 영창전참봉(永昌殿參奉)을 거쳐 예빈시경력(禮賓寺經歷)에 제수되었다. 이후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예조좌랑·제용감첨정(濟用監僉正)·사옹원부정(司饔院副正)·시강원보덕(侍講院輔德)·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하였고, 1490년 여름에 제주목사로 부임해 백성의 칭송을 얻었다. 서애 유성룡은 「무오당적(戊午黨籍)」에서, “남계(藍溪) 표연말(表沿沫,1449~1498)과 교유한 이는 모두 한 시대의 유명한 선비이다(所與交遊 皆一時名士)”며 이종윤의 인물됨을 간접적으로 피력하였고, 남계는 김종직의 문인으로 1498년 무오사화에 화를 당하였지만, 이세윤은 이미 1494년에 세상을 떠나 연좌의 화를 면하였다. 단구리에 세운 단구서원은 이미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사당(祠堂)을 1926년에 새로이 서당(書堂)으로 고쳐 편액하였고, 이종윤의 행장을 지은 지역학자 손제익(孫濟翼)선생이 그 기문 등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모현사서당기(慕賢祠書堂記) 모현서당(慕賢書堂)은 목사(牧使)를 지낸 송와(松窩) 선생 이종윤(李從允) 공을 배향하는 곳으로, 예전에는 모현사(慕賢祠)였다. 무릇 선조의 덕스러움을 설명할 수 있고, 업적을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세대의 멀어짐과 자손의 마땅함에 달려있다. 제사를 지낸 것은 철종 계해년(1863)으로, 공의 남은 후손들이 비로소 새로운 사당을 지었다. 은혜에 보답하는 제사를 지내며 비록 사사로이 배향하였으나, 의론을 내어 온 마을의 선비들이 빠르게 도왔었다. 하지만 고종 무진년(1868)에 나라에서 금하는 일을 당해 훼철되어 남은 빈터는 황폐해졌고, 다스리지 못한 지가 58년이나 오래되었다. 후손들이 그 옛터를 지나며 풀만 무성함을 견디지 못하고, 개미가 썩은 고기에 모이듯 더욱 절실하였으니, 향의에 따라 사당 터에 한 칸의 집을 건축하였다. 비로소 을축년(1925) 봄에 시작해 정묘년(1926) 가을에 공사를 마쳤고, 이미 모현서당(모현사(慕賢書堂)이라 편액하였다. 나에게 기문을 부탁하였으나, 나는 늙고 글이 부족하여 어찌 어진 자를 사모하는 뜻을 다 말하겠는가. 살펴보면 보덕공(輔德公:이종윤)의 어진 행적은 남계 표연말 선생이 지은 묘갈문에 이미 후사를 징험하기에 충분하고, 약남(藥南) 이헌락(李憲洛,1718~1791)의 유사와 정헌(定軒) 이종상(李鍾祥,1799~1870)의 훌륭한 가장(家狀)은 드러냄에 부족함이 없다. 그가 조정에 있을 때의 큰 절개와 어진 정치가 저들과 같고, 그 어짊은 마땅히 후세의 사모하는 마음 끝이 없도다. 다만 예전에는 모현사(慕賢祠)였다가 지금은 모현당(慕賢堂)이 되었고, 은혜에 보답해 제사지내는 예는 당(堂)이 사(祠)만 못하지만, 어짊을 사모하는 마음이 어찌 사와 당으로 간격을 두겠는가? … 그 사모하는 자가 다만 사모함에 그치지 않을 따름이니 힘쓰지 않겠는가?
드로잉 시작! 학생들 손이 분주해집니다. 5분도 채 안 되는 사이, 김유신묘를 수호하던 십이지신상들은 학생들의 스케치북에서 기품 있고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대학시절 불교미술을 전공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한 번씩 야외 스케치를 나갔고, 김유신묘와 경주박물관, 남산 등 경주의 곳곳은 그렇게 우리에게 훌륭한 모델이 되어주었습니다. 지난 주말, 완연한 봄날이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봄의 기운을 듬뿍 느끼고 싶었습니다. 남편은 20여년 전의 추억이 가득한 김유신장군묘를 제안했고, 흔쾌히 아이와 길을 나섰습니다. 대학시절 같은 과 선후배로 만난 우리 부부는 목적지 설정과 동시에 풋풋했던 대학시절 추억을 소환시켰습니다. 김유신묘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따뜻한 날씨 탓인지 주차장에는 이미 차들로 가득했습니다. 연애시절 남편과 자주 즐겼던 커피 자판기도 여전히 자리해 있었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흙은 향긋하고 풋풋한 냄새를 풍기며 아련한 옛 시절 향수를 끄집어냅니다. 대학시절 빠질 수 없는 추억 중 하나는 야간작업입니다. 그 시대를 풍미했던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동기들과 실기실에서 밤새 작품에 몰입하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혹시라도 늦게까지 작업을 하던 ‘차 있는 선배’라도 마주치는 날에는 새벽녘 김유신묘 주차장에서 자판기 커피까지 얻어 마시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었습니다. 남편도 그 자판기 커피와 분위기를 공감했습니다. 새벽녘에 즐기는 김유신묘 자판기 커피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미술과 관습이라고 했습니다. 김유신묘를 향하는 소나무 숲길을 따라가는 동안, 봄 향기 가득한 신선한 공기는 우리 가족을 즐겁고 경쾌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나들이 나온 아이도 신이 났는지 지치지 않고 재잘거립니다. 사실 대학시절에 보았던 김유신묘는 저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10분, 5분, 3분 점점 빠른 드로잉을 요구하는 교수님 덕분에 그림을 그리고, 스케치북을 넘기기 바빴습니다. 그 이후에도 지인들과 김유신묘를 찾을 때면 대학시절 중요하게 여겼던 십이지신상에만 집중했습니다. 예전 TV프로그램 스펀지에 방영돼 이슈가 됐던 ‘글자가 변하는 비석’이 그 곳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저의 관심은 오롯이 십이지신상에만 꽂혀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바뀐 사회 분위기 탓인지, 조급함을 내려놓을 수 있는 나이 덕분인지 이번에 찾은 김유신묘는 조금 달랐습니다. 묘 사방에는 봄빛이 완연했고, 주변을 감싸고 있는 소나무와 그 너머 보이는 산들은 파릇파릇 생동감이 흘러넘쳤습니다. 그곳을 찾은 관광객들의 표정에도 여유가 느껴집니다. 돌기둥 난간에 드리워진 그림자마저도 운치를 더합니다. 2022년 봄에 만난 김유신묘는 저에게 그랬습니다. 송화산 중턱에서 늠름한 자태를 뽐내는 김유신묘는 저에게 정겹고, 개성이 충만한 공간이었습니다.
베토벤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다. 술 때문에 목을 망쳤다. 그래서 성악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장남인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는 너무나 가혹하게 피아노 연습을 시켰다. 거의 학대나 마찬가지인 가르침 때문에 어린 베토벤의 성격은 점점 삐뚤어져 갔다. 훗날 베토벤이 괴팍한 성격을 갖게 된 건 아무래도 아버지의 영향이 큰 듯하다. 베토벤은 모차르트처럼 신동으로 인정받진 못했지만, 그래도 청년 베토벤의 음악은 점점 깊이를 더해 갔다. 늘 취해있어 가장 노릇을 못했던 아버지는 베토벤 나이 22세(1792년)에 죽고 만다. 청년 베토벤은 또래 음악가들 사이에 제법 잘 나가는 피아노 연주자였다. 작곡도 곧 잘 했다. 고전파의 대선배인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력이 베토벤의 초기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젠 꽃길만 걸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아직 창창한 20대에 귀가 먹다니! 청천병력도 유분수지. 베토벤은 빈(Wien) 인근 휴양지인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에서 유서를 쓴다. 그이 나이 32세(1802년) 때다.
영화 지존무상(至尊無上)은 미국영화 직배가 처음 시작될 무렵 우리나라 영화계가 미국영화에 대항한다는 허울 아래 무분별하게 홍콩영화를 수입하던 시기 들어온 홍콩 르와르 영화다. 이전에 수입된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 등 홍콩 영화가 다분히 일상적 폭력조직 간의 암투를 다룬 데 비해 지존무상은 도박이라는 새로운 장치를 둠으로써 색다른 재미를 추구한 영화이기도 했다. 이 지존무상의 흥행으로 인해 이후 홍콩으로부터 수입된 도박영화들이 대거 러시를 이루었고 지존무상만 해도 지존무상2, 지존무상3에 이르도록 속편이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지존무상이 유덕화와 알람탐, 관지림과 진옥련 등 신선한 배우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성공했고, 특히 유덕화의 인지도와 인기를 급상승 시킨 영화로 기록됐다. 한국환경공단 최철식 시설본부장이 본지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영화가 바로 이 지존무상이다. 정부공공기관 최고위직으로 중책을 맡고 있는 최철식 본부장이 도박영화라 할 수 있는 지존무상을 추천했을 때 순간 귀가 의심됐다. ‘그거..., 도박영화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최 본부장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박영화가 아니고 남자들의 영화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남자의 의리를 다룬 영화이지요!” 지존무상을 본 영화팬들이라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법하다. 극중 ‘아해’로 나오는 유덕화와 ‘아삼’으로 나오는 알람탄은 극 전체에서 남자의 의리를 가득 뿜어낸다. 특히 아해는 친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시아에서 제일간다고 알려진 자신의 손을 포기하는 의리를 보여준다. 심지어 일본 야쿠자 도박단과 마지막 한판을 벌이기 위해 도박판에 나갈 때, 아삼에게 동참을 강요하지 않기 위해 아삼이 늘 선택하는 문양으로 앞뒤를 똑같이 만든 동전을 만들어 내기를 거는 의리를 보여준다. 일본 야쿠자 두목과의 독배 마시기 대결에서는 독을 마시고도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들며 기어코 아삼의 연인인 카렌을 야쿠자들의 소굴에서 구해내기도 한다. 1989년 11월에 개봉한 이 영화는 최철식 본부장이 한창 대학 막바지이던 시절이다. 대학원 진학과 취업을 두고 고민하던 시기 최철식 본부장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우리의 의리는 어느 정도 투철할까?’ 가늠해 보곤 했다고 술회한다. 영화에 나타나듯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의리인지 무모한 객기인지를 따져보았고 영화에서 장열하게 묘사한 아해의 죽음이 의리를 주창한 듯 하지만 사실은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목숨까지 거는 허접한 만용을 다루었을 뿐이라 판단했다고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지만 인생에서 단 한 명이라도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만큼 복된 일이 없겠지요. 지존무상은 한 번쯤 그런 바로미터를 우리 속에서 작동해보라는 권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최철식 본부장은 이 시기 관지림과 진옥련의 아찔했던 미모에 대한 추억도 빼놓을 수 없다고 열을 올린다. 특히 아해를 구하기 위해 야쿠자들에게 뛰어든 관지림이 어이 없이 총에 맞아 죽을 때의 아련함은 지금까지도 가슴에 뚜렷이 남을 만큼 안타까운 장면이었다고 회고한다. “그 이전에는 홍콩 여자배우 하면 ‘왕조현’이 대세이자 총아였지요. 그런 판도에 관지림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지요” 최철식 본부장은 또 하나, 지존무상이 인생영화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파한다. “다 떠나서, 그때 한창 혈기왕성하던 시절,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남자의 의리를 논하던 그 유치했던 청년시절이 지금은 그 어떤 순간보다 그리운 것이겠지요. 유덕화나 관지림도 그때는 정말 풋풋한 시절이었잖아요. 아마 유덕화도 그 시절이 많이 그리울 겁니다” #최철식 본부장은 지난 해 2020년 본지 셔블&서울 란에 초대될 당시 한국환경공단 수생태시설처 처장을 맡고 있었으나 4월 1일자로 사무기술직 1급으로 승진했고 이어 2021년 9월부로 환경시설본부장으로 승진했다. 한국환경공단의 최고위직으로 우리나라 환경보전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혼신을 다해 업무에 임하고 있다.
경주를 한 번이라도 와 본 관광객에게 ‘경주’하면 떠오르는 가장 분명한 기억은 무엇일까? 아마도 불국사 아니면 첨성대일 것이다. 불국사는 어디에 내놓아도 빠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고 첨성대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유적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전에 만든 천문대라는 설명도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경주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수학여행의 메카였던 도시다. 서울과 제주도를 제외하면 딱히 갈 만한 곳이 없던 시대, 경주는 대한민국 역사와 ‘통일’이라는 그 시대 아젠다를 충족시키는 유일한 여행지였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경주 수학여행이 장려됐을 것이다. 경주를 다녀간 학생들의 추억담을 들어보면 교과서에서 첨성대를 처음 본 그 시대 학생들은 실물 첨성대를 보고 다소 실망했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높이 9.5m 정도로 1400년 넘게 지탱해온 명성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졌을 법하다. 거기에다 천문대라면 으레 높은 산이나 높은 단 위에 만들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평지에 작게 축조된 첨성대를 더 하찮게 보는 시각이 됐을지도 모른다. 해방 이후 첨성대에 대해 ‘제단’이니 불교 관련 건축물이니 하는 이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 역시 바로 이런 평지의 작은 구조물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천의 유명 페부커 정윤영 씨가 학창시절 첨성대를 만난 이후 무려 55년 만에 다시 경주를 찾아 첨성대 앞에 선 소감을 밝혔다. 55년 전이면 첨성대 주변이 온통 논으로 둘러싸였고 지금처럼 포장로도 없었을 때이니 첨성대가 더 초라해 보였을 것이다. 게다가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학생들의 첨성대 경사면으로 기어올라 사진을 찍어도 누구 한 사람 나무라거나 제지하지도 않을 때였다. 가뜩이나 작은 첨성대가 더 위축되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50년 지나 첨성대를 다시 마주한 정윤영 씨 눈에는 첨성대가 예쁘고 자랑스럽게 보인다. 아내의 허리 시술로 울산의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잠시 들런 첨성대였으니 착잡한 심경이었을 수 있지만 첨성대의 단단한 모습에 힘을 얻지는 않았을까? 55년 세월이 지나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아주는 첨성대는 비록 체구는 작을지 몰라도 우리 국민들의 심상(心想)에 가장 친근하게 각인된 경주의 이미지일 것이다.
무학산·자옥산·도덕산·화개산 골 깊은 산새가 병풍처럼 둘러쳐 안온한 옥산서원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나뭇가지 진을 치는 새소리 맑은 기운에 세월 덧 될수록 운치가 묻어난다. 일생을 성리학에 뜻을 펼쳐 영남학파의 학맥을 잇고, 격동기의 순간마저 덕망으로 살았던 문원공 회재 이언적. 동방 5현으로 불천위문묘에 배향되기까지 인(仁)의 학문으로 다스린 삶의 행장은 치열하고 관대하다. 성리학을 완성시킨 퇴계 이황, 율곡 이이도 생전에 뵙지 못한 회재 선생의 저서를 스승삼아 더 높고 넓고 깊게 정진했다. 그 당시 시대배경의 인간적 감동이 설화처럼 전해지는 신도비 이야기 내막은 가슴 뭉클하다. 경주부윤 동악 이안눌(李安訥 1571~1637)은 회재 선생을 양재역벽서사건에 모함시켜 귀양살이 시킨 이기가 증조부다. 이안눌은 평소 증조부의 과오를 부끄럽게 여기던 중 경주부윤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회재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옥산서원을 참배하려 죄진 마음으로 서원 길목에 이르니 회재 후손들이 길을 막았다. 이안눌은 수레에서 맨발로 걸어 나와 증조부가 범한 잘못을 머리 숙여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이에 감동한 회재 후손들은 길을 열어주었다. 옥산서원 역락문 앞 용추바위 위에 고봉 기대승이 지은 신도비명 중에, 이기가 회재선생을 모함한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고 적혀있었다. 이안눌이 못 보게 천으로 덮어 씌웠는데, 비문을 보여 달라 간청하자 천을 벗겼다. 비문을 읽어가던 이안눌은 그만 신도비를 붙들고 통곡하였다. 선조에 관한 내용만 지워줄 수 있다면 자신의 이름을 옥산서원 노비안(奴婢案)에 올려도 사양하지 않겠다고 간청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내, 원하는 그 내용을 지운 흔적이 어렴풋하다. 신도비는 오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읽히는데 목적을 두지만, 이안눌의 진심어린 호소에 서원 안으로 옮겼다. 경주부윤인 이안눌은 옥산서원과 회재선생 고택을 수리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아낌없이 지원하였다 한다. 옥산서원 너럭바위 자계천 외나무다리 밟고 가는 독락당(獨樂堂) 봄빛 수더분하다. 벌써 봄을 타는지 가슴으로 달겨드는 봄바람에 안기는 길섶이다. 옥산서원 강학공간에서 700m 거리에 터를 이룬 독락당, 세속의 관직에서 물러나 고독의 쉼을 즐겼던 살림집 사랑채이다. 중종(中宗)과 사돈이 되는 김안로의 중용(重用)의 부당함을 반대하다가 모함으로 파직된 후 별장과 서재로 거처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영혼을 방해받지 않고 홀로 학문과 자연을 품었던 천상의 가옥이다. 꿈꾸는 시인이 꿈꾸는 소담스런 옛 집 대청마루에 앉아, 한참을 말갛게 넋을 놓아본다. 자계천 담장 쪽으로 살창을 달아 대청에서 홀로 즐기는 유유히 흐르는 물의 이치를 삶의 철학으로 승화시켰을 풍류가 은근하다. 독락당에 딸린 관어대(觀魚臺) 반석위에 절경인 계정(溪亭)은 한석봉이 쓴 현판이다. 논어의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에서 취한 글귀다. 선생이 갈구하던 인(仁)의 근본을 우주의 자연이치와 인간의 심성을 관조성찰 하면서 성리학에 침잠해갔을 공간이다. 계곡의 물소리 바람소리에 치유되어 승화되는 도학(道學)의 경지가 삶의 철학으로 지펴지는 정자다. 소박함 속에 품격이 도드라진 멋진 터전에 봄 햇살 가득하다. 회재 선생은 41세(1531년)에 귀향해 독락당(獨樂堂) 집을 짓고, 자연을 벗 삼아 유학의 심오한 이론을 연구 발전시켜 나아갔다.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을 맡고, 낙향했다가 다시 복직되는 굴곡의 삶을 학문으로 평정했다. 시냇가에 운치가 깃던 소박한 집을 짓고 굳건히 공부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자연과 일치되어 유학의 핵심개념 중의 하나인 태극(太極) 학설 논쟁을 펼쳤다. 47세(1537년)에 다시 관직에 나아갔다. 중종 임금에게 옳은 정치를 열 가지 덕목 “일강십목소(一綱十目疏)” 상소문을 올렸다. “군주의 마음이 바르면 만사가 다스려진다.”는 뜻이다. 유교사상의 철학적 학문, 위기지학과 수기치인 정신을 표현한 문장이다. 이언적은 성균관 대사성, 사헌부 대사헌 등 고위 공직을 역임했다. 1547년 을사사화 때 파직을 당하여 억울하게도 평안도 강계로 유배를 당했다. 녹록하지 않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학문의 기백을 곧추세웠다. 『구인록(求仁錄)』 책을 저술했고 유교의 성리학 학술을 심도 있게 다졌다. 63세 귀양지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무잠계면 무회재(無潛溪 無晦齋) 회재의 혈손 이전인(李全仁1516~1568) 호이다. 일생을 인(仁)을 구하던 회재선생의 뜻이 아들 이름에도 새겨져있다. 효자아들 잠계공은 유배지 평안도 강계에서 임종한 시신을 수습하여 수 천리 빙판길을 눈물로 운구했다. 동상으로 피폐된 몸을 가누며 부친의 정신이 스민 유품들을 고스란히 모셔왔다. 아버지의 유서와 자신이 쓴 친서로 죄인으로 모함된 부당함을 증명하였다. 지극정성 학덕과 효심은 부친의 사후 명예를 존귀하게 회복시켰다.
나이가 들수록 소나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런 생각이 확연해진다. 소나무를 좋아하게 될 나이가 되면 삶도 어느 정도 관조적으로 내다볼 시기가 되었다는 것일까? 가르쳐주기라도 하는 듯 소나무는 늙어갈수록 그 품격이 더 해진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소나무에 인격을 부여하였다. 속리산 ‘정이품송’과 그이 부인이 되는 ‘정경부인송’ 그리고 부동산을 소유하고 세금까지 내는 예천의 ‘석송령’이 그렇듯 소나무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함께해 왔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소나무 산지는 첫째, 울진 소광리나 봉화 춘양목등 금강산에서부터 백두대간에 이르는 아름드리 금강송 나무들은 궁궐을 비롯한 건축용 용도로 사용되어왔다. 둘째, 부안 변산반도와 태안 안면도의 소나무는 해안 방풍림 역할과 배를 만들거나 건축용이었다. 마지막으로 경주 왕릉 주변 소나무를 들 수가 있다. 물질적 유용성 위주의 다른 지역 소나무와는 달리 경주 소나무는 정신적 상징성을 지닌, 형이상학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소나무 가지를 타고 하늘에 닿도록 심어졌고, 왕릉 주위를 지키는 호위무사처럼, 죽어서도 함께하기로 작정한 신하들처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로 하여금 경주 왕릉의 소나무는 설화나 전설 속 이야기를 곁들이며 들릴 때마다 이상야릇하고 오묘한 느낌과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소나무를 보기 위한 의도적인 여행은 아니었지만 울진, 봉화, 안면도, 변산 등 소나무로 유명한 지역들을 두루 둘러보았다. 하지만 경주 소나무만큼 서정적이고 정감을 가져다주는 소나무는 없었다. 2005년 5월 22일은 획기적인 사건이 하나가 있었다. 팝가수 엘튼 존이 배병우 작가의 소나무 사진을 2700만원에 구입한 내용을 우리나라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하였다. 엘튼 존은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고, 세계에서 5번째로 음반판매량이 많은 가수이기도 하다. 배병우가 세계적 작가로 인정받게 되고, 우리나라 사진이 대외적으로 처음 인정받게 되는, 그리고 사진가격 결정의 기준점이 되는 역사적 일이었다. 소나무 사진은 다름 아닌 경주 남산 삼릉숲 소나무 사진이었다. 배병우 작가는 이곳 삼릉 소나무를 찍기 위해 2년간 10만km를 달려 경주를 수도 없이 오고 갔다. 소나무 사진을 찍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녔지만, 경주의 왕릉 소나무가 최고임을 술회했다. 그의 사진집 ‘청산에 살어리랏다’는 김영삼 대통령이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책 속에는 분명 삼릉숲 소나무들이 한국미를 뽐내고 있었을 것이다. 오래전 삼릉 근처 박대성 화백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뒤뜰을 통해 삼릉 소나무 여럿을 방안으로 들여다 놓고 있었다. 밤낮으로 수묵화 속으로 소나무들이 걸어 들고 걸어 나오는 듯하였다.
국가보훈처가 지난 제103주년 3.1절을 맞이해 발표한 219명의 독립유공자 포상자 중 경북 출신 독립운동가 16명이 포함됐다. 이중 경주 출신은 3명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경북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으로 이번에 독립 독립유공자로 확정된 16명이 서훈을 받으면서 경북의 독립유공자는 2394명으로 증가했다. 전국 1만7285명의 13.9%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번에 새롭게 서훈을 받게 된 독립유공자 중 의병활동을 한 5명은 경주 출신 김순도(金舜道, 미상~1910, 건국훈장 애국장)·이훈구(李勳久, 1869~1947, 대통령표창), 청송 출신 남석구(南錫球, 1875~1911, 건국훈장 애국장), 영일 출신 정내의(鄭來儀, 1872~미상, 건국포장), 경산 출신 권병호(權炳瑚, 1885~미상, 대통령표창) 등이다. 이들은 1906년 3월부터 1910년경까지 경북 영천, 청송, 영일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부대 산남의진(山南義陣)에서 활약한 인물들이다. 또 3.1운동에 참여한 6명은 성주 출신 김명준(金命俊, 1896~미상, 대통령표창)·김숙이(金淑伊, 1899~미상, 대통령표창), 칠곡 출신 김팔봉(金八奉, 1900~미상, 대통령표창), 청송 출신 이육상(李陸相, 1900~미상, 대통령표창), 예천 출신 장기남(張基南, 1905~1971, 대통령표창)·장세환(張世煥, 1901~1982, 대통령표창) 등이다. 이들 중 이육상은 봉화 내성공립보통학교 촉탁교사로서 학생들과 태극기 66매를 제작하고 내성장날 독립만세시위를 벌이는 활동을 하다 체포된 인물이다. 국내항일 4명은 안동 출신 남준섭(南俊燮, 1906~1933, 건국훈장 애국장), 경산 출신 박재천(朴在千, 1920~1968, 건국훈장 애족장), 상주 출신 윤기석(尹基錫, 1909~1991, 대통령표창), 청도 출신 이심동(李深洞, 1889~1964, 대통령표창) 등이다. 이 가운데 이심동은 국민당(뒤에 다물단) 서동일(1893~1965,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의 군자금 모집 계획에 협력해 여러 차례 군자금을 제공한 여성 독립운동가다. 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경주 출신 이화석(李華碩, 1900~미상, 건국훈장 애족장)은 1919년 중국 봉천성에서 한족회 활동을 했고, 1920년 군자금을 모집하고 친일파 한인 처단을 시도하다가 체포돼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뤘다. 박세은 경북도 사회복지과장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존경하고 예우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보훈선양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진영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은 “앞으로도 역사 속에 묻혀 있는 더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조사·발굴해 그들의 애국정신을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북도와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광복 후 지금까지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의 공훈을 찾아내기 위해 2020년부터 독립운동가 발굴사업을 적극 추진해오고 있다.
경주시가 출퇴근이 어려운 산업단지 내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청년들에게 교통비 지원사업을 시행한다. 하지만 이 사업이 정부의 청년 기준인 만 15세부터 34세까지로 한정돼 있어 경주시 청년 조례 대상인 만 39세까지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경주시는 12월 말까지 강동·건천·내남·외동·서면·안강·천북 등에 위치한 24개 산업단지와 농공단지 내 중소기업에 재직하는 만 15세~34세 청년 근로자에게 교통비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지원되는 교통비는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과 자가용 유류 구입에 사용할 수 있으며, 월 5만원 씩 연간 최대 60만원을 지원한다. 이 사업에는 국비 4억240만원, 도비 3018만원, 시비 7042만원 등 총 5억3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신청은 청년 근로자 본인이 온라인 시스템에 신청해야 하며, 선정되면 청년동행카드를 발급 받고 교통비는 바우처 형태로 지급된다. 다만, 경주시에서 정한 청년 나이와 정부의 청년 나이가 달라 경주시 청년 조례 나이까지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에서는 ‘청년’을 만 15세~34로 정했지만 경주시는 ‘경주시 청년 기본 조례’에서 ‘청년’을 만 15세~39세까지로 정의했기 때문. 청년 단체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만 15세부터 18세까지는 근로를 하지 않기에 혜택 대상을 경주시 조례대로 만 39세까지 확대하는 것이 맞다”면서 “시에서 청년의 해를 선포한 만큼 지역의 많은 청년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정부 관련부처와 지원사업 대상 확대에 대한 논의를 빠른 시일 내에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청년교통비 지원사업 정부지침에 만 15세부터 34세로 정해져 있다”면서도 “사업 진행 중 의견 조회 기간에 만 39세까지 확대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는 지난 15일 친절한 경자씨(경주의 친절한 자원봉사자) 10여명과 함께 울진군을 방문해 잔불 진화작업 중인 소방대원들을 위한 급식 자원봉사를 다녀왔다. <사진> IBK기업은행에서 후원하고 있는 ‘참! 좋은 사랑의 밥차’는 지역의 취약계층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19년 강원도 고성 산불피해지역과 2020년 전남 구례군 집중호우 피해지역 이재민들에게 급식나눔활동을 실천했다. 특히 지난 8일 울진군을 찾아 소방대원들에게 2000인분의 식사를 제공하는 등 전국의 재난재해 발생 시 현장에 긴급 투입되어 따뜻한 식사를 전하며 도움의 손길을 나누고 있다. 이날 식사를 받은 소방대원 김모(43)씨는 “코로나 감염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따뜻한 밥을 제공해 주시니 감사하다”며 “따뜻한 식사만큼이나 경주시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경주시민들에게 더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경주시자원봉사단체연합회 최상춘 회장은 “오랜 산불진화로 다들 몸과 마음이 지쳤을텐데 따뜻한 식사 드시고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손을 보탤 준비가 되어있으니 함께 재난을 이겨내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노인요양시설과 재가시설 등 장기요양시설 돌봄인력에 1인당 20만원씩 지급하는 한시지원금 신청이 이달 28일 시작된다. 대상자는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장기요양기관에서 올해 1월부터 직접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장기요양요원(요양보호사, 사호복지사, 간호(조무)사, 물리(작업)치료사, 치과위생사) 약 36만명이며, 가족관계인 수급자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지원금 신청은 오는 28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장기요양정보시스템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장기요양기관 종류와 기관기호 끝자리별에 따라 신청일을 분산한다. 신청방법은 소속된 장기요양기관에 개인정보활용 동의를 포함해 ‘장기요양기기관 돌봄 인력 한시지원 신청서’를 제출하면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장기요양기관이 소속 장기요양요원에게 지원금 신청 안내 등 사전에 준비할 수 있도록 3월 24일부터 장기요양정보시스템을 통해 대상자 여부를 조회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지급시기는 신청일로부터 3영업일 이후인 3월 31일부터 순차적으로 지급대상자로 선정된 신청인 금융계좌로 한시지원금을 지급하고 문자메세지로 지급된 내용을 안내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그간 코로나19 어려움 속에서 애쓰신 장기요양요원들이 한시지원금을 신속하고 편리하게 받으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장기요양기관도 신청 기간에 적극적으로 한시지원금을 신청해 달라”고 말했다.
420장애인차별철폐경주공동투쟁단(이하 공투단)은 지난 14일 경주시청에서 경주시 행정 공익감사청구 결과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2008년 경주푸른마을 장애 청소년 사망 사건을 시작으로 선인재활원, 혜강행복한집에 이르기까지 장애인거주시설 내 심각한 인권유린과 비위행위, 공익신고자 탄압 문제가 있는 해당 시설에 대해 경주시에 지속적으로 자체 관리와 처벌을 요구해왔다. 그동안 경주시는 ‘사법처분 결과에 따라 조치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공투단은 지난 2019년 경주시민들을 대상으로 거리 서명을 진행, 경주시가 범죄시설 봐주기 행정을 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한 1901명의 공익감사청구 서명을 모아 지난해 3월 ‘경주시 소극적 행정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청구 10여년 만에 ‘관계 법령 및 규정만 위반하지 않으면 문제없다’는 조사결과가 통지됐고, 대다수 의혹과 문제들을 종결처리 됨과 동시에 이 결과야말로 경주시의 ‘범죄시설 봐주기 행정’의 실체를 솔직히 드러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감사원 측이 ‘위법·부당한 조치는 없었다’면서 경주시의 소극적·미온적 행정 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판단하지 않은 결과를 통지했다. 행정의 조치가 지연되고 처분이 미뤄지는 동안 인권유린 현장이 방치되고, 사태 책임자들이 시설운영권을 지속 행사는 결과를 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관계 법령 등만 위반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행정편의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감사원의 조사결과가 경주시의 행정이 ‘법’만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매우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만 작동되어 왔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경주시의 개입과 처분이 미뤄지는 동안 책임자들은 자진사퇴로 면피하고, 이해관계를 대변할 측근들이 시설에 투입됐다. 법과 규정은 관련자들이 책임을 면하고 새로운 퇴로를 확보하는 데에 활용됐을 뿐 시설 내 가장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존엄과 생명을 보장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 행정의 조치도 보호도 기대할 수 없는 조건에서 내부 고발에 나선 공익신고자들이 공범에 내몰려 벌금형을 받자 즉시 징계요구서를 통보했던 경주시 행정이 유독 시설관계자 일가에게는 관대했다고 주장했다. 공투단은 “공익신고자들에 대한 보호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공익을 위해 노부고발을 한 신고자들에게 징계요구서를 통보했던 경주시가 1심 유죄 선고까지 받은 시설 책임자들에게는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이것은 경주시가 시설 책임자들과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관리책임을 물을 의지가 없는 것이다. 경주시는 장애인들을 학대하는 시설에 대해 즉각 폐쇄하고,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고 장애인들의 존엄한 삶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유가 폭등 등 국내 경제에도 타격이 일어나는 가운데, 경기도가 수출입 피해 등 경영 애로를 겪고 있는 도내 중소기업을 위해 긴급 자금 수혈에 나섰다. 경기도는 지난 15일 총 200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사태 피해지원 특별경영자금’을 신설, 도내 피해기업에 대한 신속 지원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번 특별자금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와 대(對)러시아 제재 본격화로 수출입 피해, 원자재 가격 상승, 대금결제 지연 등이 예상되는 만큼, 도내 피해기업의 자금경색 완화와 경영난 해소를 신속하게 지원하고자 마련됐다. 다만 책정된 자금이 소진되면 일찍 지원을 끝낼 수도 있어 해당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원 대상은 「중소기업기본법」 제2조에 따른 도내 중소기업 중 우크라이나 사태와 그 분쟁 여파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기업이다. 이중 직접 피해기업은 △현지법인(지점)·공장설립 등 분쟁지역(러시아 또는 우크라이나) 진출 기업 △021년 이후 분쟁지역 수출·납품실적 보유 또는 수출·납품 예정 기업 △2021년 이후 분쟁지역 수입·구매실적 보유 또는 수입·구매 예정 기업을 말한다. 간접 피해기업은 △정부·공공기관 등이 발급한 피해사실 확인서 제출기업 △기타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경영애로 발생 확인 기업이 해당한다. 이번 특별경영자금의 융자한도는 업체 1곳당 최대 5억원으로, 1년 거치 후 2년 균등분할 상환조건이다. 융자금리는 경기도의 이차보전 지원으로 은행에서 정한 대출금리보다 1.5%를 낮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담보가 부족한 중소기업의 상황을 고려해 경기신용보증재단에서 전액보증서(보증비율 100%)를 발급하고, 보증료율을 1.0%(고정)로 우대 적용하는 등 원활한 대출 실행과 금융 비용부담 완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이 긴급 지원은 지난 16일부터 시작됐으며, 자금소진 시 조기 종료될 수 있다. 지원 희망 기업은 온라인 자금관리 시스템(g-money.gg.go.kr) 또는 경기신보 25개 지점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경기도의 이 같은 선제 지원안은 향후 타 지역에도 모범사례일 수 있어 향후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정책이 수립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