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처님은 일요일에 다녀가셨다. ‘왜 하필 일요일이냐!’고 직장인들의 투정 어린 원성도 있었다. 늦었지만 부처님 오신 날을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그 의의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진리란 뭘까? 한 번에 깔끔하게 정의 내리기는 어렵지만, 얼핏 생각에도 몇몇의 조건들이 떠오른다. 먼저 시간적 조건이다. 과거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럼 진리일 수 없다. 옛날엔 몸속 벌레를 없애려고 일부러 담배를 피웠다는데, 지금의 과학 상식으로 보면 정말이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이야기다. 그래서 과거에도, 현재에도, 나아가 미래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그 무엇이어야 진리다. 장소도 불문이다. 우리가 사는 아시아나 저 멀리 유럽이나 아프리카나 어디서든 똑같이 유효해야 한다. 당연히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한다. 왼손잡이, 당뇨병 환자라서 안 된다면 진리일 수 없다. 이상의 시간적·공간적·대상적 엄격성으로 진리를 불변성(不變性)으로 요약해도 되겠다.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의 염원은 그래서 불변(不變)과 영원(永遠)함이다. 우리에게 진리는 그렇다. 무엇보다 나를 통해 반복 검증이 가능해야겠다. 죽음이 그래서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거다. 지구 상에 “어제 모처럼 죽어봤는데 좀 힘드네...” 이런 이야기 하는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도 엄격히 따지면 타인의, 간접적인 경험일 뿐이다. 우리는 죽거나 살아있거나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그럼 뭔가? 간단한 동작으로 한번 알아보자. 일단 고개를 좌에서 우로 돌려보면 뭐가 보이는가? 지금 글을 쓰는 내 눈에는 저기 저 도자기로 만든 코끼리 한 쌍이 보인다. 어머니가 “이거 놔두면 부자 된다”시며 기어이 놓고 가신, 그때의 추억이 문득 떠오른다. 고개를 돌려보니 하얀색 무릎 히터가 보인다. 진작 잘 닦아서 창고에 넣었어야 하는데 귀찮아 아직도 저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 고개를 돌리니 창문 너머로 226동 아파트 옥상이 보인다. ‘저긴 남향이라 우리보다 햇빛이 잘 들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 세 가지 경우 뒤에 놓인, 이를테면 법칙을 찾을 수 있을까? ‘나’라는 인식 주체, 인식대상,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인식 내용이 반복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이들의 역할 관계를 이렇게도 비유한다. 주체라는 한 손바닥이, 대상이라는 다른 손바닥과 부딪치니(만나니), 원래 없던 (박수)소리가 짝! 하고 난다고. 이 세 가지 조건이 갖춰질 때 ‘마음’이 완성되는 것이다. 적선(積善) 행위를 복을 짓는 텃밭이라고 복전(福田)이라고 표현하듯, ‘마음자리’라고도 한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불변의 진리다. ‘진리가 뭐가 그리 심심하고 평범해?’ 하겠지만, 잘 살펴보면 오싹해질 거다. 인식 주체, 대상, 그리고 내용이라는 조건을 벗어난 행동은 하나도 없다. 보고, 듣고, 화내고, 상상하고, 행복해하는 우리의 모~든 행동 그 이면에 이 마음이라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그 예외 없음을 손오공 버전으로 ‘부처님 손바닥’이라고도 한다. 내 왼쪽 가슴에 있는 게 마음이 아니다. 마음은, 나를 둘러싼 인식 공간 전체다. 인식의 장(場)이 마음[一心]이다. 마음이라고 불리는 이 불변성을 알면 부처고, 모르면 중생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편의상 구분일 뿐이다. 알고 모름의 차이만 있지 여전히 마음은 작용 중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마음을 ‘활짝 열려 있는 비밀’이라고도 한다. 불변의 마음자리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비밀이지만 아는 사람에게는 그걸 증명할 기회가 24시간 일 년 내내 열려있기 때문이다. “개한테도 불성(佛性)이 있다”고 한 것도 진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기 때문이다. 자, 부처가 되고 보니 기분이 어떠신가? 아무런 감흥이 없을 것이다. 진리는 나와 단 1초도 떨어져 본 적 없지만, 문제는 이 사실을 우리가 잘 까먹는다는 데 있다. 당장 내일 아침이면 또 잊어버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부처(如來)는 이 땅에 오셨다. 너무 가까이 있어 오히려 잊어버린 마음자리 환기하러 말이다. 잊었던 걸 되찾았으니 이제 우린 다시 태어난 셈이다. 부처님 오신 날은 지났지만 어디 가까운 절에라도 한번 가보시길 권한다. 이미 다녀가셨다는 부처님은 사실 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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