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대학 그리고 직장생활, 결혼과 자녀양육 … 참 바쁘게도 살았다. 휴~ 무엇을 위해 내달렸던가? 왜 사는가? 피로스는 그리스 북서부 산골 마을 에페이로스의 왕이었지만, 강대국 마케도니아를 물리치고 로마 본토까지 쳐들어갔다. 출정을 앞두고 참모 키네아스가 피로스 왕에게 물었다. “전하, 이번 로마에 출정해서 승리를 거두면 그 다음엔 뭘 하실 건가요?” 피로스가 신이 나서 말했다. “그 다음엔 이탈리아 정복이지!” 키네아스는 잠깐 뜸을 들였다가 다시 물었다. “이탈리아도 정복하면요?” “그 다음엔 시칠리아가 기다리고 있지.” “그럼 시칠리아까지 정복하고 나면 전쟁은 끝나겠네요?” “아니지, 그 다음엔 지중해를 건너서 카르타고로 가야지”   이 말을 들은 키네아스는 감동한 듯 말했다. “와, 그럼 세계를 정복하는 거네요? 세계를 정복하고 나면 뭘 하실 건가요?” 피로스는 만족한 듯 대답했다. “그 때는 편히 쉬어야지” 키네아스는 마침내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전하, 편히 쉬는 거라면 지금도 할 수 있지 않나요?” 피로스는 키네아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끝내 로마 원정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스스로의 몰락을 자초했다. 역사상 가장 싸움을 잘한다는 피로스 왕의 이야기다.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자신이 왜 싸우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투에 이기고도 지는 상처뿐인 영광을 ‘피로스의 승리’라고 한다. 혹시 우리들의 현역시절도 수단과 목표가 뒤바뀐 ‘피로스의 승리’는 아니었을까? 치열한 경쟁과정에서 진정한 목표는 잊어버리고 헐떡대기만 했다. 결국 은퇴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지?’라고 깨닫게 된다. 이 시대의 초보노년들. 그들은 대부분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학업과 취직, 승진, 가족 돌보는데 청춘을 쏟아 부었다. 틈틈이 취미와 여가를 즐겼다고는 하나 온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은 없었다. 정말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아왔다. 단지 경쟁하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숨 막히게 질주하다가 이제 은퇴해서 사막 한가운데에 선 낙타 신세가 되었다. 세상풍파를 겪으면서 빗줄기는 굵어지고 축축한 옷은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불나방이 불빛만 쫓듯 살아오다 그 열기에 몸이 타들어간다. 은퇴했지만 뒤로 물러나서 하늘의 명을 기다릴 형편은 아니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다. 그래서 많은 노년들이 다시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노마드족’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 “안 바쁘지요? 저녁에 술 한 잔 해요.”라고 하면 그저 서글퍼진다. 이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왜 노년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우리의 삶을 그 자체로 사랑하고 즐기는가?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알고 있고 그 목적과 의미대로 살고 있는가? 진정 어떤 모습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할 것인가? 60~70대는 인생을 진정한 목적과 의미대로 새롭게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다. 이보다 더 좋은 시기가 어디 있겠는가? 인생이라는 것이 뭔지를 아는 시기이며, 나대로의 삶에서 진정한 멋이 나오고 귀가 열리고 눈이 뜨이는 시기다. 6070세대여, 다시 일어나라! 죽을 때 못해본 것들 때문에 ‘걸, 걸, 걸’하면서 죽을 수는 없지 않는가?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것이 어렵다고? 그렇지 않다. 마음을 바꾸면 한순간에 달라질 수 있다. ‘지극히 어려운 것은 지극히 쉬운 데서 나온다’는 채근담의 이야기를 참고하자. 어느 날 거지 성자가 동냥 그릇을 챙겨 들고 강가로 나갔다. 강가에 도착하여 동냥 그릇으로 막 물을 뜨려는 순간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거지 성자를 뛰어넘어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거지 성자가 혼잣말을 했다. “세상에! 나는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이 그릇을 들고 다녔지? 저 개가 나보다 훨씬 낫구나!” 거지 성자는 동냥 그릇을 강에 버리고 개가 물을 먹는 것처럼 물을 마셨다. 그 이후로 거지 성자와 개는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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