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의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6.25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산하는 헐벗었고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실업자와 걸인이 넘쳐나는 시기였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가난에 시달렸던 반면 ‘베이비 붐’이라는 말이 증명하듯 책임 없이 싸지르는 아이들이 좁은 학교에 가득가득 넘쳐나는 시기이기도 했다. 키덜트 뮤지엄 김동일 관장이 ‘인생영화’로 꼽는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김수용 감독이 1965년에 만든 영화다. 내용은 그 시대를 반영한 전형적인 눈물샘 자극 영화다. 노름꾼인 아버지(장민호 분)는 넷이나 되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이 전혀 없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견디지 못해 싸우고 집을 나갔다. 초등학교 4학년생 주인공 윤복(아역 김천만 분)은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여동생 둘과 남동생 하나를 지키기 위해 껌팔이, 구두닦이, 밥 구걸 등 하루하루 전쟁 치듯 살아나간다. 약할수록 그들을 못살게 구는 양아치 어른들과 비겁한 세상, 사회적 냉대는 더 큰 벽으로 묘사된다. 이런 윤복보다 더 불행한 아이들은 없지 싶을 만큼 어렵고 힘든 매일이 진행된다. 이 처연한 영화는 놀랍게도 이윤복(1953~1999)의 실제 수기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영화화한 것이다. 그런데 김동일 관장이 의외의 말을 한다. “그 아이들은 그래도 나보다는 나은 편이예요. 비록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이지만 그래도 기댈 언덕이 있었고 어머니가 돌아올 희망이라도 품고 있었잖아요!” 김동일 관장은 태어나고 100일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삼촌과 이모네 집들을 전전했어요. 군식구를 돌봐 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아무래도 자기 자식만 했을까요? 늘 야단맞기 일쑤였고 그로 인해 기죽어 사는 날이 대부분이었지요” 어릴 때부터 스스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김동일 관장은 주인공 윤복이 그랬던 것처럼 친구들과 함께 껌팔이와 구두닦이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고 회상한다. 지금과 달리 어린이나 불우한 형편의 약자들에 대한 복지나 생활 지원이 전혀 없던 시기, 김동일 관장의 어린시절은 냉대와 불안, 슬픔과 자괴감이 중첩되는 나날이었다. 그러나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끝내 아픔과 슬픔만 주는 영화는 아니었다. 윤복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학교를 다녔고 배가 고파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매일 일기를 썼다. 마침 그 일기를 이웃 반 김동식 선생님(신영균 분)이 읽고 서울의 출판사를 섭외해 책을 내도록 주선한다. 이 일화와 책이 신문지상에 소개되면서 윤복은 극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나며 영화가 끝난다. 김동일 관장이 스스로 자립하고 자신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윤복보다는 훨씬 성인이 된 뒤다. 김동일 관장은 1979년, 25살 무렵 전격 서울로 상경해 이때부터 인테리어 방면의 사업을 시작해 성공가도를 달렸다. 특히 사업을 하면서 근현대 생활물품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수십만 점의 골동품과 생활용품,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시대적 기념품 등을 사모아 지금의 키덜트 뮤지엄을 만드는 초석을 쌓기도 했다. 어쩌면 김동일 관장이 그토록 많은 소장품을 가지게 된 것은 어린 시절 누리지 못한 물질에 대한 궁핍 때문은 아니었을까? “제가 이 영화를 본 것은 처음 영화가 나왔을 때가 아닙니다. 그때는 당연히 어릴 때고 영화 볼 여력이 있을 턱이 없었지요. 이 영화는 제가 완전히 독립한 1979년쯤에 처음 보게 되었지요. 울지 않으려 무척 애쓰면서 보았는데 어느 사이엔가 눈물·콧물이 범벅되어 있더군요” 이 영화는 특별한 기록으로도 우리나라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다. 1965년은 우리나라 영화가 마지막 흑백영화를 찍던 해다. 1966년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컬러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 이 영화는 1965년 당시 29만 명이라는 국내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고 흑백영화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다. 1984년에는 김수용 감독이 동명의 아역배우 김수용과 서인석을 주연으로 다시 리메이크작을 만들었고 2007년 한명구 감독이 다시 한번 영화로 만들었다. 그렇게 자주 리메이크될 만큼 우리 심성의 저변을 깊이 매료시킨 영화인 것이다. “세월이 흘러 더 이상 제가 가난하지도, 우리 대한민국이 가난하지도 않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세계 최상위로 부강해졌지요. 어쩌면 영화 속 윤복이가 자신을 엄습하는 어려움을 매일 이겨냈듯 우리 국민들도 그런 강한 의지를 굳건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그래서라도 더욱 이 영화를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영화로 추천하고 싶다는 것이 김동일 관장의 설명이다. 소감을 듣는 동안 문득 영화 속 김동식 선생님처럼 어린 시절 김동일 관장을 안아주고 깊은 심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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