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국의 수뇌부가 나니와(難波, 지금의 오사카)에서 배를 타고 후쿠오카(福岡)로 향하던 중 661년 1월 14일 숙전진(熟田津)이라는 곳에 일시 정박하였다. 정월 대보름날 밤이었다. 그때 제명(齊明)천황이 지었다는 작품 하나가 전해온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이 출정 중에 만들어졌기에 한반도의 전쟁과 관련된 중요한 노래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만엽집 연구자들과 한일 고대사 연구자들은 더욱 그러하다. 고대 한일 관계를 연구하는 사람치고 이 작품을 연구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万葉集 8番歌熟田津 尒 船乘 世武登 / 月待 者 / 潮 毛可奈 比沼 / 今 者許藝 乞 菜 “그대가 숙전진(熟田津) 나루에서 저승배에 오른다. /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데 / 밀물이 나란히 소(沼)로 밀려 들어온다. / 이제 그대가 편안히 저승에 가기를 빌리라”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황가의 슬픈 가족사 하나를 소환해야 한다. 이 때로부터 3년 전인 서기 658년, 중대형 황자의 아들이자 제명천황의 큰 손자인 건왕(建王)이 7살의 어린 나이로 죽고 말았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는 벙어리였다. 할머니 제명천황은 죽은 손자의 온순한 성품을 매우 사랑했었다. 그녀의 슬픔은 너무도 깊어 매일 매일 눈물에 젖어 살았다. ‘내가 죽으면 반드시 나의 무덤에 합장해 달라’고 신하들에게 명하기도 했다. 만엽집 8번가인 이 작품을 새로이 해독한 결과 뜻밖에도 제명천황의 손자 건왕(建王)의 죽음과 관련된 ‘눈물가’였다. 눈물가란 망자의 영혼을 편안히 저승에 보내기 위해 만드는 향가의 한 종류이다. 샤마니즘 시대 사람들은 인간이 죽으면 그의 영혼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저승으로 간다고 믿었다. 영혼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때 만일 달이나 별이 없으면 배는 어둠 속에 길을 잃고 헤매다 저승에 갈 수가 없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날씨가 맑기를 기원했다. 그것은 향가의 힘에 의지해야 가능했기에 눈물가를 만들어 불러 주었던 것이다. 그 날 숙전진의 밤바다에는 밀물이 들어오고 어둠을 물리치는 정월 대보름 달이 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제명천황에게 환영이 보였다. 저승에서 온 배가 숙전진 나루에 와 닿았고, 손자 건왕이 저승배에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제명천황은 향가를 만들어 날씨를 맑도록 해 손자 건왕이 무사히 저승바다를 건너갈 수 있기를 빌었다. 손자는 할머니 천황의 배웅을 받으며 편안히 저승 그 머나먼 길을 떠나갔을 것이다. 백제로 가던 파병 전야, 고요한 바닷가 숙전진의 밤은 제명천황의 흐느낌 속에 깊어가고 있었다. 이 노래를 일본인들은 다음과 같이 해독해 오고 있었다. “니키타츠(熟田津)서 배를 출발시키려 달 기다리니 조수도 밀려왔네. 지금 저어 나갑시다” 일본인들은 이처럼 노래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풀지 못하니 그들은 그들의 고대사를 일그러지게 알고 있다. 몰라서 잘못 알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가 바르게 알라고 꾸짖어야 소용없다. 이제 우리는 만엽집 해독법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인이 일본의 고대사를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그것은 만엽집 해독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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