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거구(성건동, 중부동, 황오동)에는 민주당 1명, 국민의힘 4명, 무소속 1명 등 총 6명이 이 예비후보로 등록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종일(62·민주당) 현 도심고도완화추진위원장 △김영찬(51·국민의힘) 현 한국프로골프회원 △최영기(53·국민의힘) 전 경주시청년연합회 회장 △최재필(53·국) 전 국회의원 비서관(5급) △김종만(65·국민의힘) 전 라이온스 로타리연합 참사랑클럽 회장 △주석호(56·무소속) 현 경주시의원 등이다.
가선거구(황성동, 현곡면)에는 더불어민주당 3명, 국민의힘 5명, 진보당 1명 등 총 9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해 9개 선거구 중 가장 많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공천 결과가 주목되는 지역구다. 등록한 예비후보는 △김태현(50·민주당) 현 경주시의원 △방현우(53·민주당) 민주당 경주지역위원회 사무국장 △남우모(56·민주당) 현 황성동주민자치위원회 부위원장 △김철민(51·국민의힘) 현 재향군인회 이사 △최치훈(48·국민의힘) 전 경주시 청년연합회 회장 △김항규(54·국민의힘) 삼국건설(주) 대표이사 △이경희(55·국민의힘) 현 국민의힘 경주당협 디지털위원장 △김수광(59·국민의힙) 경주시의원 △이광춘(52·진보당) 현 진보당 경주시 위원장 등 9명이다.
4개 선거구에서 각 1명씩 모두 4명을 뽑는 도의원 선거에는 현재 6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하거나 공천 신청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1선거구(황성동, 성건동, 중부동, 현곡면, 황오동)에는 3선에 도전하는 배진석(48) 현 경북도의회 의원이 예비후보로 등록해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2선거구(동천동, 불국동, 외동읍, 감포읍, 양남면, 양북면, 보덕동)에는 현 도의원과 시의원 2명이 국민의힘 공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박차양(여·63) 현 경북도의회 의원과 최덕규(53) 경주시의회 의원이 지난 3월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얼굴 알리기에 나섰다. 3선거구(안강읍, 강동면, 용강동, 천북면)는 국민의힘 소속 최병준(64) 전 경주시의회 의장, 최창근(44) 전 19대 대선 중앙선거대책위 소통본부 총괄본부장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은 현재 국민의힘 공천 신청을 했지만 예비후보 등록은 미루고 있다. 제4선거구(건천읍, 내남면, 산내면, 서면, 황남동, 월성동, 선도동)에는 현재 박승직(65) 현 경북도의회 의원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6·1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과 주요 정당의 공천 신청 접수가 진행 중이거나 완료되는 등 본격 선거체제에 돌입하면서 출마자들의 윤곽도 드러나고 있다. 다만, 무슨 이유에선지 더불어민주당은 경주시장과 광역의원 선거에 단 한명도 예비후보로 등록하지 않고 있어 아직 변수는 남아 있는 상황이다. 경주시장 선거에는 재선에 도전하는 주낙영 현 경주시장과 박병훈 전 경북도의회 운영위원장이 국민의힘 공천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보수세가 강한 경주는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지역인 만큼 앞으로의 공천 경쟁은 더욱 달아오를 전망이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경주시장 선거 예비후보로 등록한 박병훈 전 경북도의회 운영위원장은 선거사무소 개소식까지 마무리하고 유권자들을 상대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주낙영 시장은 코로나19 대응, 산불 예방 등 시민안전과 지역 현안의 새 정부 국정과제 반영 등에 대비하고, 시정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한 뒤 선거전에 본격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현재까지 경주시장 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없고, 현재 진행 중인 공천 신청 접수 등과 관련한 공식적인 발표도 없는 상황이다.
법무부 청소년 범죄예방위원 경주지역협의회(회장 박태일, 이하 범방)는 13일 신라중에서 등교하는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및 학교폭력예방 캠페인’을 실시했다.경주시, 검찰, 학교, 범방, 월남전참전자회가 합동으로 진행한 이날 캠페인은 신라중 교사와 학생, 경주지청 남연진 검사, 경주시 아동청소년과, 월남..
경주시자원봉사단체연합회는 지난달 24일 경주화랑마을에서 2022년 정기총회 및 탄소중립실천 서약식을 진행했다.<사진> 이날 정기총회에는 경주시자원봉사단체연합회에 등록된 37개단체의 임원들이 참석하였고, 2021년 회계보고 및 사업평가와 더불어 2022년 사업계획을 논의했다. 또한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에서 올해 중점 사업으로 추진 중인 탄소중립관련 프로그램 참가에 앞서 탄소중립실천 서약식을 진행했고 37개단체 1700여명이 탄소중립실천에 동참의 뜻을 밝혔다. 이번 서약식을 기점으로 연합회 회원들은 대중교통 이용, 걷거나 자전거타기, 잔반 남기지않기, 안쓰는 콘센트 뽑기, 장바구니 이용하기 등 실생활에서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활동들 중 각자의 목표를 정하여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자원봉사센터에서 진행하는 탄생캠페인, 줍깅챌린지, 탄소중립실천가 양성교육 등 탄소중립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최상춘 연합회장은 “지구의 미래를 위해 탄소중립실천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과제로서, 경주시자원봉사단체연합회를 시작으로 경주시가 우리나라 탄소중립실천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동참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경주시자원봉사단체연합회는 지역사회 공익을 위해 각종 캠페인 참여, 재난재해 현장지원 및 피해복구, 지역행사 및 축제 자원봉사활동 참여 등 따뜻하고 성숙한 경주를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는 지난달 28일 화랑마을 기파랑관에서 지역내 100여개 자원봉사단체 200여명의 리더들을 대상으로 ‘2022 친절한 경자씨 리더 워크샵’을 개최했다.<사진> 친절한 경자씨 리더 워크샵은 지역 내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단체 리더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센터 사업소개, 리더쉽 함양 및 자원봉사 전문지식 교육, 사기고양, 단체 간 네트워크 강화를 시키는 연 1회에 진행하는 교육프로그램 이다. 이날 워크샵에서는 2022년도 자원봉사센터 사업소개를 시작으로 경주시청 기후위기대응팀에서 탄소중립과 관련된 경주시정책들을 안내하는 시간과 함께 탄소중립교육연구소 정종영 대표의 기후변화위기대응 및 탄소중립이라는 주제로 특강이 진행됐다. 정재윤 이사장은 “언제나 최 일선에서 헌신하고 있는 자원봉사단체 리더들을 응원하며, 7만명의 친절한 경자씨들이 탄소중립실천에 선구자가 될 수 있도록 자원봉사센터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7일 밤 경주시 문무대왕면 어일리의 한 도로 옆 수로에 뒤집힌 채로 발견된 승용차 안에서 40대로 보이는 남성과 여성 2명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사고 승용차는 7일 밤 10시경 이곳을 지나던 한 주민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119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이들 2명이 숨져 있었다.전복된 차량은 도로 옆 약 4m 아래..
What the environment is? 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며 내 스스로 또한 남들의 환경이 될 것이다. 하지만 소비문화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으며 인간 스스로를 가장 가치롭다는 이론을 성립하게 된다. 따라서 환경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간중심적 사고, 거기에 개인주의는 인간 자체의 가치 하락으로까지 이어진다. 이제 더이상 사랑과 가족은 사회적 욕망으로부터 보호되지 않는다. 이는 바로 나의 작품의 모태이며 시작이다. 쇼크를 통한 자각은 나의 메시지적 수단이다. 여기 아름다운 꽃그림이 있다. 허나 이것은 현재 보이는 것일뿐이며, 진실은 결코 아니다. 그 측면, 즉 진실은 꽃이 아니라 73,000개의 커다란 담배꽁초 덩어리일 뿐이다. 너무나 많은 이들, 10만이 넘는 이들! 자신의 돈과 5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스스로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나의 작품을 도와준 그들에게 보답하고자 한다. 쇼크와 자각! 그것으로 진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소비문화의 노예가 된, 개인주의에 미쳐있는, 환경의 가치를 잃어버린 모든 이들에게
경주시가 직면한 과제에 관한 해법과 미래 비전을 모색하기 위한 ‘거버넌스(협치)’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시대적 요구다. 지자체장과 공무원의 역량만으로는 고령화, 저출산, 청년 실업, 빈곤과 격차, 불평등, 지속가능한 문화와 관광, 도시재생, 환경·에너지, 다문화, 지방소멸 등 복잡·다기한 지역사회 문제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과 관이 함께 지역사회의 산적한 현안을 해결한다는 근본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여 많은 지자체가 거버넌스(협치) 시스템 구축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성공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거버넌스에 관한 구체적인 상(像)과 경로, 내용과 목표가 명확하지 않아서다. 경주시가 구축할 새로운 협치 모델은 민관이 완전히 함께하는 체제(공동 결정·집행·평가)이자 시민이 행정의 주체가 되는 모델을 의미한다. 민관이 상호 이해하고, 신뢰를 쌓기 위한 제도와 인식 혁신은 거버넌스의 출발점이다. 진정한 협치는 지속가능한 경주시 공동체, 경주시 시민사회, 기업, 다양한 이해관계에 대한 자치단체장과 공무원의 인식 전환, 새로운 민관 협력시스템에 맞는 조직·인사·예산 등 시스템 전반의 혁신이 이뤄져야 가능하다. 현재 경주시 거버넌스 체계는 필요성 공감, 또는 논의 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잘 살펴보면 지속성을 띤 거버넌스 경험도 많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난 시기 추진해 온 민·관 협력 사업의 성과를 재발굴하고 앞으로 민관이 함께 정책을 결정하며, 공동으로 집행·평가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새로운 협치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학습과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존의 가치와 수단을 전환하는 것이 혁신이라고 할 때 자치단체장과 공무원의 거버넌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행정혁신 추진의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민간도 공공부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역량을 높여, 구체적인 정책의제 제시 및 공동실행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경험적인 사례 연구는 공무원의 혁신 수용성이 혁신역량을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혁신과정의 민주성, 혁신성과에 대한 긍정적 인식확산, 자치단체장의 민주적 리더십(혁신에 대한 관심, 의지, 지원), 지역 실정에 맞는 행정 혁신 목표와 과제 설정은 행정혁신으로서의 거버넌스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기여한다. 경주시 거버넌스 전략 과제 산출을 위한 전제는 민·관이 사회적 학습에 기초하여, 어떻게 한 단계 더 높은 민·관 협치를 성취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다시 말해, 학습과 소통을 통해 경주시 민·관 파트너 네트워크 안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요소들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자체가 솔선수범하여 시민사회, 기업, 중간지원조직,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공동의 교육프로그램, 포럼, 세미나 등등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사업과제들을 놓고 상호간 전략작용을 할 뿐만 아니라 학습과 훈련을 통한 만남을 통하여 자신들의 행위를 분석하고 객관화하는 능력을 길러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회적 공동학습과 경험의 교환은 중장기적으로 최고정책결정권자의 민·관 협치 실행 의지를 높이고 민·관 협치의 성공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집단적 리더십(실·국장 포함)의 민·관 협치 능력을 성장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모든 개혁 드라이브는 집단적 리더십의 역량으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민·관 협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거버넌스 체계의 구축과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공론의 장이 대단히 중요하다. 공론장은 정책 형성 및 결정단계 이전부터 민관이 만나서 정책결정의 효율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민·관 협치를 위한 사회적 자본 확충에 기여한다. 민·관 협치를 위한 사회적 자본의 확충이란, 네트워크의 형성과 상호간 신뢰의 구축을 의미한다. 경주시는 공론장 활성화를 통한 네트워크 형성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신속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이를 권장해야 한다.
2년 넘게 지속되는 코로나19로 경주지역 생활업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거리두기 조치가 강화되면서 간이주점과 구내식당, 노래방 등은 줄어든 반면, 비대면 업종인 통신판매업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 ‘100대 생활업종 통계’에 따르면 국내서 코로나19 확산되기 직전인 지난 2019년 12월과 2년 뒤인 2021년 12월 기준 경주지역 사업장 수가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표적인 서민 업종인 간이주점은 2019년 말 149곳에서 2021년 말 102곳으로 47곳(31.5%)이 문을 닫았다. 이어 노래방 20곳(190곳→170곳), 옷가게 11곳(532곳→521곳), 휴대폰가게 10곳(123곳→113곳) 등의 순으로 사업장 수가 줄었다. 3밀 업종에 포함된 피시(pc)방과 목욕탕 등을 포함해 100대 생활업종 중 28개 업종에서 사업장 수가 감소했다. 반면 고객을 직접 만나지 않고 비대면으로 영업이 가능한 통신판매업은 569곳에서 955곳으로 2년 사이 386곳(68.7%)이 늘어났다. 또 여행 트렌드 등의 변화로 펜션·게스트하우스의 사업자도 490곳에서 765곳으로 275곳(56.1%) 증가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비대면이 경주지역 업종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전국적으로 크게 증가했던 확진자 수는 4월 들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고, 경주지역도 완만하게 내려가는 추세다. 이에 맞춰 정부는 거리두기를 10인·오전 12시까지 영업으로 완화하는 등 일상으로의 회복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내 유가 및 물가 상승으로 소상공인들의 불안감을 다시 커지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몇 차례에 걸쳐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이 있었지만, 실제 피해가 많은 업종에 대한 집중보다는 소액을 골고루 나눠주는 정책이어서 문제가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국세청의 통계 분석 결과 업종별로 명암이 크게 갈린 것은, 각종 지원책이 상대적으로 타격이 큰 업종 등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정부와 지자체는 소상공인들의 폐업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그 어느 때 보다 고민해야 한다.
경주시가 문화체육관광부 공모 ‘경북관광기업지원센터’ 구축 사업에 선정돼 2026년까지 사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이 사업은 경주시가 지난달 24일 발표한 ‘관광 혁신 선도도시 추진 5대 전략모델’에 포함된 내용 중 하나다. 시는 5대 전략모델로 △스마트 관광융합도시 △관광기업 친화도시 △황금브랜드관광도시 △페스티벌 관광세일도시 △강·산·해 관광정원도시를 제시했었다. 2030년까지 관광객 2000만명 시대, 세계 100대 관광도시로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공모에 선정된 경북관광기업지원센터 구축 사업은 지역 관광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해 일자리 창출, 지역 관광 활성화를 꾀한다는 목표다. 경주시는 경북도, 경북문화관광공사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사업비는 국·도비 포함 총 108억원을 투입한다. 먼저 시는 노동동 소재 유휴건물(1584㎡)을 리모델링해 경북관광기업지원센터를 오는 8월까지 조성할 예정이다. 센터는 지역 기반 관광스타트업 창업·기업육성 지원, 전통형 관광기업 개선 지원, 관광 일자리 허브 구축, 경북관광산업 활성화 사업 등을 추진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정부 공모에 선정돼 추진 중인 도시재생 뉴딜사업, 중심상권 르네상스, 스마트 관광도시 조성사업 등과 연계해야 한다. 관광산업과 관련된 사업들이 제각각 추진된다면 성공된 결과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들 사업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이유다. 마침 경주시는 경북관광기업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이들 사업과 연계해 추진한다는 기본 계획은 세워두고 있다고 한다. 경주시가 제시한 관광산업 전략이 위축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침체된 도심의 부활로 이어질 수 있길 기대해본다.
봄을 노래한 시는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얼마 전 집 근처 영천강을 자전거로 달리다 발견한 자목련(紫木蓮)을 보고 가곡 ‘목련꽃 그늘 아래서’를 흥얼거리며, 인터넷을 뒤져보니 경주가 낳은 대표적인 시인 박목월 시인이 작사한 것을 뒤늦게 알고 나의 무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0년 전 아일랜드에서는 아침 산책길에 길가에 피는 수선화(daffodile)를 보고 봄이 가까웠음을 알게 되었고 큰딸 어릴 때 찾았던 강진읍내 영랑생가에서 뜨락에 핀 모란을 보며 ‘찬란한 슬픔의 봄’을 노래한 시인을 떠올리며 지나가는 봄날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고등학교 고전 시간에 배운 이백(李白) 시인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 나오는 ‘고인 병촉야유 양유이야(古人 秉燭夜遊 良有以也 - 옛사람들이 촛불을 켜고 밤에도 즐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라는 멋진 시구는 필자가 다니는 서실에서 붓글씨로 써보는 호사를 매년 반복할 정도로 봄을 노래한 시는 길고 추운 겨울을 이겨낸 우리에게 봄꽃이 주는 아름다움을 확증시켜 주는 것 같다. 1993년 봄 당시 김영삼 정부는 지방 청와대 개방을 꺼내 들며 법석을 떨었다. 우선 충주와 진해 저도의 지방 청와대 개방, 군항제 기간 중 진해 주요 부대 영내를 개방하여 군항제를 찾은 전국의 시민들에게 개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즈음 어느 날 필자가 근무했던 진해 해군작전사령부 사무실로 한 통의 문의 전화가 왔다. 당시 필자는 정훈공보처 공보과장으로 근무했는데, 한겨레신문 경남도청 출입기자로부터 “이번에 부대를 개방하게 된 배경과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전화 인터뷰였다. 그래서 필자는 우선 생각나는 대로 “문민정부 시대를 맞아 부대 영내를 개방함으로써 시민들이 영내의 벚꽃을 감상하며 민과 군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취지”라고 대충 답변했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다. 사무실에 배달된 한겨레신문에 박스로 큼지막하게 필자의 전화 인터뷰가 보도되는 바람에 당시 공보규정과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언론에 공개한 필자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한겨레는 장교나 군무원이 부대 내에서 구독할 수 없는 신문으로 여겨져 보도 분석을 담당하는 정훈공보실에서만 구독이 가능한 매체였다. 해서 필자는 허가도 없이 한겨레 기자와 인터뷰한 사실이 알려지면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라 인근 부대 정훈실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당일 한겨레신문을 폐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공보 책임자였던 필자로서는 그해 봄날 KBS ‘6시 내 고향’에서 며칠 전 대통령 별장으로 쓰여 군사기밀로 분류되어 허락받지 않으면 들어가지도 못할 그곳을 촬영·제작해서 전 국민에게 방영함으로써 국민적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루는 KBS라디오 프로그램 담당 PD가 전화를 걸어와 꼭 필자와 생방송 전화인터뷰를 해야 한다며, “현역 군인 중에서 ‘문민정부’라는 표현을 처음 쓴 것은 당신이 처음”이라며 취재 섭외가 와 이를 고사하느라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30년이 지난 지금 신정부가 청와대를 개방한다고 온 나라가 시끄러운 것을 보니 30년 전 해프닝이 ‘데자뷰’를 보는 듯하다. 개방에 앞서 국민의 의중을 잘 헤아리기 바란다. 진해의 벚꽃은 일제가 심어놓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군항제의 처음 시작은 ‘이충무공선양회’가 주축이 되어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는 뜻에서 비롯되어 전국단위의 축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여기에 해군 군악의장대 시범과 한참 뒤 생겨난 ‘세계 군악축제’ 등 다양한 이벤트가 추가됨으로써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축제의 볼거리를 떠나 그 정신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진주 유등축제의 시작도 1950년대 말 개천예술제에서 시작되었다. 개천절을 계기로 한 백일장에서 비롯되어 유등을 남강 위에 띄움으로써 전국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한 경우이다. 한편 필자가 살던 아일랜드의 봄은 세인트패트릭 데이(St. Patrick‘s Day) 축제로 유명하다. 이 축제는 5세기 말경 아일랜드의 목동으로 유럽에 건너가 신부가 되어 척박한 땅에 복음을 전하다 사망한 패트릭 성자의 사역과 기도, 복음전파의 노력을 되새기는 순례의 길을 탐방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런 정신은 간데없고 축제와 돈벌이에 집중하다 보니 심지어 중학생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기네스 맥주에 취해 거리를 배회하며 비틀거리게 되었다. 고향 경주에도 봄꽃 축제가 한창이다. 봄이 주는 화사함과 화려함은 한순간도 놓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곁에 머물다 순식간에 지나버린다. 꽃을 보고 좋아하며 감상하고 즐기는데 무슨 정신과 이데올로기가 필요할까마는 얄팍한 상술과 돈의 논리에 의해 우리의 일상이 침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에 경계할 부분이라 여긴다.
1984년에 ‘미드나잇 블루(Midnight Blue)’란 제목의 팝송이 선물처럼 찾아왔다. 당시 고교생인 필자는 기분 좋으면 마냥 ‘미~드나잇’하면서 흥얼거렸던 기억이 있다. 분명히 기억하건데, 성악가의 창법이었고 몽환적인 느낌의 달콤한 노래였다. 이 노래를 부른 루이스 터커(Louise Tucker/1956-)는 본업이 오페라 가수다. 그녀는 영국의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런던의 명문학교인 길드홀 음악원에서 오페라 성악을 공부했다. 이후 오페라 가수로 무대에 올랐지만, 돌연 대중가요 가수로 변신했다. 미드나잇 블루는 그녀의 데뷔곡이다. 그런데 미드나잇 블루는 놀랍게도 베토벤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다. 베토벤의 3대 피아노소나타 중 하나인 8번 비창 2악장의 멜로디에 가사를 얹은 것이다. 따라서 미드나잇 블루는 작품도 가수도 클래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대중가요인 셈이다. 요즘에는 성악가가 대중가요를 부르는 모습이 익숙하지만, 1980년대에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메조소프라노인 루이스 터커의 목소리는 대중가요 시장에서 차별성을 가질 수 있었고, 바로 히트곡 대열에 합류했다. 마치 태풍의 눈이 되어 유럽의 인기차트를 휩쓸었고, 앨범은 5백만장이나 팔려나갔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성악가가 대중매체에서 버젓이 대중가요를 부르는 일이 일어났다. 작년에 별세한 가수 이동원은 당시 서울대 음대 교수였던 테너 박인수와 듀엣으로 ‘향수’라는 곡을 불렀다. 그때가 1989년이다. 당시에 향수는 거의 국민가요처럼 불렸다. 루이스 터커의 미드나잇 블루가 향수의 흥행에 당연히 큰 영향을 미쳤다.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8번 비창은 1799년에 작곡된 것으로 보인다. 20대 후반으로 청력에 이상이 생긴 시기다. 하지만 유서를 쓸 정도로 좌절한 시기는 아니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향기가 풍긴다. 아무 정보 없이 이곳을 들었을 때, 베토벤의 작품이라기보다는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또 이작품은 모차르트의 후계자(필자가 생각하기에 그렇다)인 차이콥스키의 동명작품에도 살짝 끼어 있다. 6번 비창교향곡 1악장을 들어보면 비숫한 멜로디가 발견된다. 이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봉화금씨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1530~1604)는 금학사 영렬공(英烈公) 금의(琴儀,1153~1230)의 후손으로, 부친 금헌(琴憲,1493~1576)․모친 영양남씨 남식(南軾)의 따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외가인 안동에서 청계 김진(金璡,1500~1580)에게 수학하였고, 월천(月川) 조목(趙穆)의 누이동생과 혼인하였다. 이후 구봉령(具鳳齡)․권대기(權大器)․김팔원(金八元)․조호익(曺好益)․이정(李楨) 등과 교유하였고, 처남 조목의 조언에 따라 퇴계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의 호는 송나라 사양좌(謝良佐,1050~1103)의 늘 깨어있는 ‘상성성(常惺惺)’을 따라 경(敬)을 중심사상으로 삼았다. 1561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여러 참봉직을 거쳐 직장(直長)․장예원 사평․봉화 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말년에는 청량산 일동(日洞)에 고산정(孤山亭)을 짓고 산수를 즐겼다. 그가 남긴 『성재일기』는 25세~27세의 일상기록과 31세~32세의 유람과 과거시험의 기록 그리고 46세~75세의 관직생활 후 고향에서 지낸 30년간의 기록 등 50년간을 시간의 순서로 기록하였고, 개인의 일상과 사회활동을 소소하게 담은 것이 특징이다. 영양남씨․월성손씨․안동권씨 등 혼반을 통해 경주에 자주 왕래하였는데, 1581년에는 태조 영정을 봉안한 경주의 집경전 참봉이 되면서 경주와 인연이 깊어졌고, 이듬해 영천을 거쳐 경주에 입성한 후 소소한 일상을 날짜별로 중요한 일상을 간략히 기술하였다. 『성재집』에 수록된 한시를 미뤄보면, 퇴계의 문인으로 봉원(逢原) 이안도(李安道,1541~1584)와 간재 이덕홍(李德弘,1541~1596) 등을 경주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간재는 공무로 경주에 머물며 서로 만나 회포를 풀었고, 이후 『동경유록』을 통해 경주유람을 기술하였다. 『간재집』에 「김학봉․윤채련․권이계(송소의 옛날 호이다) 세 사람에게 차운하여 드리다(次呈金鶴峯尹採蓮權伊溪 松巢舊號 三同人)」 한시를 통해 서로를 언급하였다. 임오년(1582) 5월 25일부터 8월 17일까지 80여일 이상을 경주에 머물렀고, 영천을 통해 모량으로 경주에 입성한 후 경주부 - 백률사 – 진장(陣場) - 월성관 - 집경전 재실 - 봉황대 - 불국사 - 이견대 - 토함산 - 석굴 - 불국사 - 집경전 - 월성 - 분황사 - 포석정 - 오릉 – 아불역(아화) 등을 오갔다. 집경전 재랑(齋郞)에 임명되어 경주부윤 안종도(安宗道,재임1580.12~1582.12)를 만났고, 여러 벗과 이견대를 향해가다가 토함산을 지나며 시를 지었고, 포석정과 오릉의 여러 옛 자취들도 보았다. 그리고 옥산서원에서 회합을 마치고 손엽․이경해 등과 회재 선생의 글을 강학하고 토론하였으며, 계정의 경치를 감상하였다. 게다가 집경전 재실에서 동료 관리인 경주이씨 이홍각(李弘愨) 그리고 함창수령 오경로(吳敬老)·이홍정(李弘靜)․주사준(朱士俊) 등 지역의 많은 인사와 만났다. 세세한 정보를 담은 유람기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의 소소한 기록은 경주지역의 인물 정보를 살피는데 도움된다. •성재일기(惺齋일기) 중에서 1582년 경주 이야기 5월 25일. 아돌(鵝㐚)과 모량(毛梁) 두 역에서 쉬었다. 임소에 당도하다. 5월 26일. 부윤과 반자(半刺)를 뵈었다. 가장(家獐)에 동참하였다. 6월 3일. 부윤이 연못 가운데 새로 지은 정자에서 정충원(鄭忠元)을 전별하는데, 나를 부르기에 동참하였다. 6월 6일. 숙윤이 두 아동(衙童)과 함께 백률사를 구경하러 갔다. 6월 17일. 월성관에서 왜인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7월 3일. 청허재(淸虛齋) 손엽(孫曄,1544~1600)과 이경해(李景海)가 찾아왔다. 7월 8일. 봉황대에 올라가 불어난 물을 구경하였다. 7월 27일. 불국사에 갔다. 임여장(任汝張)이 술병을 차고 찾아왔다. 악공 몽충(夢忠)과 기생 억지(億之)를 데리고 갔다. 7월 28일. 이견대로 길을 나섰다. 토함산에 들러 김종직 선생의 시에 차운하였다. 7월 29일. 흐리고 비가 내려서 일출을 보지 못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석굴에 들렀다가 불국사로 내려왔다. 7월 30일. 집경전 재실로 돌아오는 길을 나섰다. 저녁에 부윤이 불렀다. 8월 4일. 남원(南院)에 가서 이홍정, 이홍각, 주사준과 만나 함께 월성에 올라가 구경하고 지나는 길에 분황사에 들렀다가 돌아왔다. 8월 8일. 포석정과 오릉을 보러 갔다가 돌아왔다. 부윤에게 절구 세 수를 올렸다. 8월 16일. 부에 들어가 부윤에게 하직 인사를 하였다. 저녁에 반자가 안세준(安世俊)과 함께 재당(齋堂)에서 전별해 주었다. 8월 17일. 길을 나서서 아불역(阿弗驛)에서 묵었다.
“엄마, 요즘 인스타에서 핫한 곳에 가서 우리도 사진 찍으면 안 돼?” “엄마, 아빠 오늘까지 끝내야 할 작업이 있어서 안 돼!” “다른 사람들은 멀리서도 일부러 사진 찍으러 오는데, 우린 가까이 있으면서 그것도 못 해? 친구들은 주말마다 가족끼리 놀러 다닌다는데... 엄마, 아빠는 주말이면 더 바쁘다고 하고...” 딸아이의 힘 빠진 말에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지난 주말 대릉원으로 향했습니다. 절정을 이룬 벚꽃 덕분인지 화창한 날씨 덕분인지 황리단길부터 대릉원 후문 입구까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무색할 정도로 말이죠. 대릉원에 들어가면서 펼쳐지는 한적한 풍경에 일상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자연만큼 좋은 약은 없다고 했나요? 초록색 나뭇잎과 곳곳에 개화한 목련, 벚꽃, 산수유 등 봄꽃의 향연에 시작하는 설렘과 심리적 안정감이 느껴졌습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도 함께 말입니다. 고분과 고분 사이 목련나무 포토존에는 꽃이 지는 시기임에도 사람들의 줄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우윳빛 뽀얀 자태를 뽐내며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목련은 봉우리때도 활짝 피었을 때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반면 꽃이 떨어지고 색깔이 시커멓게 변해 초라해지기 시작하면 다른 봄꽃들의 등장으로 금세 외면을 받죠. 하지만 대릉원 목련나무만큼은 예외입니다. 꽃이 화려하게 필 때도 꽃이 질 때도, 푸른 잎이 무성할 때도,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을 때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죠. 주위 고분들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진 풍광, 목련나무 중에서는 가장 축복받은 나무가 아닐까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딸아이는 대릉원 곳곳을 누비며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셀카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목련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것은 오래 기다린 관광객들에게 양보한다고 합니다. “엄마, 난 경주에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아. 남들은 계획하고, 오랫동안 차 타고 와야 하는 것을 난, 잠깐 엄마 아빠만 설득하면 올 수 있잖아” 딸아이의 고단수 설득에 걸려든 것이었을까요? 그래도 좋습니다. 시간을 쫓기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 경주를 찾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아이 말대로 누군가는 계획하고 시간을 내서 찾는 이 곳이 직장에서 5분 남짓한 거리에 있다는 것이 참 행운입니다. 대릉원에서 마주한 자연, 주위 고분과 조화를 이루며 매력을 뽐내고 있는 목련나무. 생생한 기억의 조각들이 분명 머지않아 저의 발걸음을 다시 이 곳으로 옮기게 할 것 같습니다.
밴드 퀸(Queen)은 80년대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뜨거운 감자였다. 음악의 완성도나 열정을 떠나 내놓고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사회적 편견이 지금보다 훨씬 심할 때였고 특히 에이즈나 동성애에 관한 한 죄악시 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 모든 편견들이 일거에 무너진 사건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년)’였을 것이다. 세계를 강타한 퀸 공연의 완벽한 재현은 그 시대 음악 팬과 지금의 신세대를 가리지 않고 거대한 용광로처럼 세상을 락 밴드 ‘퀸(Queen)’의 세상에 몰아넣었다. “저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지만 이 영화를 미술 관련 영화에 양보할 수 없었어요” JJ갤러리 관장 겸 ‘공간접기’로 자신만의 미술 영역을 개척한 김정자 화백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인생영화로 추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제가 좀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오래 묵은 선입견에 대한 트라우마일 것이다.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감동적인 음악에 매료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프레드 머큐리’의 열정적인 삶에서 얻은 공감대가 커서이기도 합니다” 김정자 화백은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과 꿈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건 반드시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믿게 되었다고 영화의 가치를 설명한다. “사실 어린 시절 그림보다는 공부하기를 바라신 부모님의 뜻을 이기기 어려웠어요. 그래도 지금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얼마 행복한지 모릅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1946~1991)의 열정적인 음악인생을 담은 영화다. 영국령 인도의 잔지바르 스톤타운에서 영국 총독부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프레디 머큐리, 인도명 파로크 불사라는 1964년 아랍인과 인도인을 위협하는 혁명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한다. 런던의 일링 예술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한 프레디는 음악에 더 관심이 커 여러 밴드 활동을 하다 평생지기이자 맴버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 드러머 로저테일러가 활동하는 ‘스마일’이라는 밴드에 합류한다. 1971년 퀸으로 이름을 바꾸고 자신의 이름도 프레디 머큐리로 개명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바로 이 스마일 합류 지점에서 시작한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모두 확인했다시피 이때부터 프레디 머큐리는 쟁쟁한 명곡들을 히트 시키며 퀸을 세계적인 밴드로 키운다. 그들이 부른 명곡들과 노래에 따른 에피소드들도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프레디 머큐리에 완벽하게 빙의한 주연 라미 말렉의 신들린 듯한 연기와 출연자들의 놀라운 퍼포먼스 역시 전기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차고 넘치게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공연장면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일 겁니다” 김정자 화백이 강조한 마지막 공연 장면이란 1985년 7월 13일 런던의 웸블리 경기장과 미국 필라델피아 존 F. 케네디 경기장에서 동시에 열린 자선공연 ‘라이브 에이드(Live Aid)’다. 당시의 기라성 같은 락 그룹들이 참여한 이 공연은 세계에서 무려 15억 명이 텔레비전을 통해 봤으며 에티오피아 기아구제를 위해 당시 돈으로 수백만 달러의 기금이 조성되는 등 숱한 화제를 뿌렸다. 영화는 그 라이브 에이드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에 걸린 상태에서 미친 듯 쏟아내는 폭발적인 공연장면을 완벽히 재현해 특별한 감동을 준다. 그런 열정을 자신도 작품 속에서 담고 싶다는 것이 김정자 화백의 솔직한 바람이다. 경주와 인근 도시 미술인들을 위한 전시공간인 JJ갤러리를 운영하는 한편 공간접기라는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영위하는 데도 바로 이 열정이 큰 몫을 한다고 고백한다. 올해 5월 자신의 JJ갤러리에서 개인전, 9월 15일부터는 경주예술의 전당 알천갤러리에서 초대 개인전, 11월~12월 중에는 경주문화엑스포 공원 내 솔거미술관 초대 개인전을 각각 준비하고 있는 김정자 화백은 이 자체로 자신의 열정을 보여주고도 남는다. 영화의 제목에 나온 ‘보헤미안’은 체코 서부 보헤미아 지방 사람을 일컫는다. 프랑스 사람들이 춤과 노래를 즐기며 떠도는 사람들을 보헤미안으로 착각해 부르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사회적 관습이나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예술가들을 통칭하는 명사가 됐다. 김정자 화백의 미술에 대한 지치지 않는 열정과 세계 영화 팬들을 열광시킨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장르를 넘어 절묘하게 크로스 된다.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는 이달부터 약 6개월간 경주시민을 대상으로 자원봉사자의 집 ‘나눔실천家’를 추천 받고 있다. 자원봉사자의 집 나눔실천家란 2015년부터 지역사회를 위한 자원봉사활동에 헌신하는 자원봉사자들 중 자원봉사 활동시간, 기간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공헌 등을 기준으로 선정하고 있다. 선정된 나눔실천家들의 주택에 ‘자원봉사자의 집’문패를 부착해줌으로써 그들의 열정과 봉사정신을 널리 알리고 있으며, 선정된 나눔실천家들은 리더쉽 및 마을공동체 교육 등을 통해 지역 내 자원봉사 리더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나눔실천家 기본 자격요건은 1365자원봉사포털시스템에 최근 2년간 자원봉사활동 등록시간이 100시간 이상이고, 포털시스템에 가입한지 3년이 넘어야 한다. 선정된 자원봉사자에게는 문패 부착과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촬영하여 홍보하고, 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의 주요 프로그램 우선 참여권과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 참여 기회가 부여된다. 추천방법은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 홈페이지(www.경주자봉.org) 공지사항 및 SNS, 경주시청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여 e-메일이나 센터로 현장 접수하면 된다. 참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 홈페이지를 참고하거나 전화(054-771-1365)로 문의하면 된다.
경주를 찾는 외지인들은 상당수 관광목적이 대부분인 여행객이다. 그러나 경주는 역사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고 박물관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다. 한국문화유산협회에서 근무하는 유명 페부커 여송은 씨는 경주를 출장차 다니러 온 모양이다. 처음 경주에 등장할 때부터 경주의 전문가들은 물론 관련 업계의 사람들로 보이는 분들이 여송은 씨가 어디를 들러고 어디를 페이스 북에 올리는지 죽 따라다니는 듯한 모습이다. 그만큼 인기 높은 인싸라는 게 여실히 증명된다. 페이스북에는 사진만 올렸지만 여송은 씨가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훨씬 상세한 사진들과 설명이 올라가 있다. 여송은 씨가 가장 먼저 올린 경주 소식은 한 장 절정인 벚꽃나무다. ‘똥은이 없다’는 애교 섞인 글 한 줄과 경주의 왕벚나무가 전부다. 여기에 98개의 ‘좋아요’가 달렸고 21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 댓글 속에서 여송은 씨가 경주에 온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 경주에만 가면 사람이 유치해진다며 풍경사진을 열심히 찍어보라고 권한다. 유치해진다는 말이 오히려 듣기 좋다. 두 번째 포스팅은 경주산림환경연구원 옆 카페인 브로스에서 찍은 장면이다. 여송은 씨는 없고 중년 이상의 남성들이 약속이나 한 듯 오른쪽 다리 위에 왼쪽 다리를 올린 모습이 인상적이다. 함께 동행하는 분들인 듯. ‘경로당 봉사온 얼라’라는 말에 웃음이 터진다. 세 번째와 다섯 번째 포스팅은 월암재다. 김호 장군을 모시는 재실인데 지금은 고택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아쉽게도 숙박은 미리 예약을 하지 못해 불발된 듯하지만 덕분에 많은 분들이 월암재 고택체험을 알 게 된 듯싶다. 네 번째 포스팅은 옥룡암 뒤쪽, 경주사람들에게는 탑골로 알려진 탑곡 마애불상군이다. 경주사람들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소풍장소로 익숙하지만 외지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곳이다. 불교유적의 백미이자 여송은 씨가 썼듯 황룡사 9층목탑의 원형을 유추해볼 수 있는 곳이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는 헌강왕릉이라 알려진 릉과 진달래가 주인공이다. 경주가 능의 도시라 할 만큼 큰 능이 많지만 헌강왕릉을 일부러 찾아간 것은 아마도 동남산 일대를 일부러 돌아본 덕분인 듯 보인다. 블로그에는 정강왕릉도 함께 소개됐다. 이런 모든 유적들이 한창인 벚꽃, 진달래와 함께 어울려 경주의 정겨움을 한층 돋보이게 꾸몄다. 포스팅은 여송은 씨가 했지만 페북을 통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함께 경주를 다닌 것이 여실히 보인다. 포스팅마다 150개 가까운 ‘좋아요’가 달렸기 때문이다. 한 명의 인싸가 SNS상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여송은 씨 페북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출장으로건 관광으로건 앞으로도 경주에 자주 들러서 더 여러 곳을 소개해 주시면 고맙겠다.
춘입운림경물신간변도행총정신(春入雲林景物新澗邊桃杏摠精神) 구름 든 숲에 봄 오니 새로운 풍경들, 개울가 복사꽃 살구꽃 천지가 아득하네. 망혜죽장종금시임수등산흥갱진 (芒鞋竹杖從今始臨水登山興更眞) 짚신 신고 대지팡이 짚어 지금 출발하니, 물 따라 산 오르는 즐거움 다시금 변함없네. 「임거십오영을말. 조춘 기1(林居十五詠乙末. 早春 其一)」 회재선생의 옥산 ‘이른 봄’ 시 구절이다. 회재선생의 시조 구절구절 선비의 향기로 품어져 구성진 봄을 피워내고 있다. 시낭송가 심문희선생 읊조리는 시의 가락이 환청인양 구성지게 장단을 맞춘다. 독락당 마당 묵은 세월 수월찮게 손님을 맞았을 천년기념물 주엽나무 무성하다. 조각자나무로도 불리는데 수령은 450여년 독락당 울안 터줏대감이다. 중국사절로 다녀온 이로부터 기증받은 것으로 추측한다. 세월의 향기를 품어내는 향나무 산수유나무 동산의 대나무 등은 회재선생이 손수 심은 식수들이다. 옥산정사(玉山精舍) 현판글씨는 퇴계 이황선생 필체다. 역사의 흔적을 생생한 숨결로 지펴 논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23세 생원시 합격 후 사용했던 지관(紙冠)∙인종어찰(仁宗御札)∙고문서(古文書)∙벼루∙연적∙옥인(玉印)∙옥각대(玉角)帶)∙갓끈∙관자∙복두∙유서통 표주박∙젓대(笛) 등. 상여 대신 관(棺)을 운구한 굵고 긴 대나무막대기를 친견하면서 와 닿는 느낌은 눈물겹다 회재선생이 별세하자 죄인으로 누명쓴 장례를 도우려는 사람이 없었다. 타향의 엄동설한에 부친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밤낮으로 통곡하니 지나가는 객들이 도와주어 귀향길에 올랐다. 거짓 모함으로 귀양살이 시킨 문정왕후와 윤원형 일당들에게 또다시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 고심했다. 빠른 한양(서울)길을 택하지 않고 동해바다길 변방으로 숨어서 둘러왔다. 역적으로 몰린 유배지에서 맞은 주검이라 장례식 절차마저 선뜻 나서지 않는 암울한 현실이었다. 머나 먼 귀양살이 끝에 운명 달리한 부친의 시신을 고향산천으로 모시려 죽을힘을 다했다. 모함꾼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동상으로 피고름 든 몸을 가누며, 상여도 곡소리도 감춘 기약 없는 시간에 애끓는 속울음만 삼켰다. 유품으로 남겨진 곧은 대막대기엔 피눈물로 얼룩진 피붙이 효성이 묻어난다. 양쪽 대막대기에 널을 동여매 썰매로 미끄럼 태워 운구한 기막힌 사연이다. 유일한 혈손 잠계공 이전인 부자지간(父子之間) 정 하늘도 통곡했으리. ‘무잠계 무회재’ 잠계공 아들이 없었다면 아버지 회재도 없었다 할 만큼 효심의 은혜 귀감인 아들이다. 평안북도 강계 유배지까지 동행해 자식 된 도리를 다했다. 부자간 문답한 『관서문답록(關西問答錄)』이 전해진다. 천지인, 하늘과 땅의 이치를 공부하고 인간의 도리를 실천하는 학문의 무량함이 선비의 향기로 우뚝하다. 독락당 옥산정사에서 13층 석탑이 보이는 정혜사지 옛터를 걷는다. 흙 담장을 끼고 민들레 제비꽃 살가운 풀꽃들의 향연에 영혼을 풀어내는 심신이 가볍다. 쉬엄쉬엄 시골정취에 취하다보면 닿는 정혜사지다. 정혜사지 13층 석탑은 아담한 자태 속에 품격이 새어나오는 통일신라 탑이다. 목탑의 형식을 겸비한 보기 드문 석탑의 양식으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조성 당시 쌍 탑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한 기 훼손된 자취에 외톨이로 남아, 골 깊은 산새의 기(氣)를 받아 흐트러짐 모른다. 『동경잡기(東京雜記)』 “정혜사는 자옥산 아래에 있다. 회재 이언적 선생이 소시에 여기에서 학업을 닦았다. 그 절의 창건한 연대는 어느 해인지 모르나 예로부터 전해오기를 신라의 고찰(古刹)이라 한다. 부처님 앞 탁자(卓子)의 다리에는 치화원년정월일조(致和元年丁月日造)라는 여덟 글자가 있고, 선생이 손수 쓴 동유록(同遊錄)이 법당의 북쪽 가운데에 있으며, 영잠(楹箴) 7구가 북쪽 벽 동창(東窓)에 있다. 후인이 그것들이 먼지로 더러워질까 저어하여 드디어 모두 그 글자를 새기고, 분을 칠하고 비단으로 가려놓았다. 옥산서원(玉山書院) 창건 후에 이로 인하여 완호사(完護寺)라 하였다.” 춘심산야백화신독보한음립간빈 (春深山野百花新獨步閑吟立澗濱) 봄 깊은 산과 들에 온갖 꽃 새로워, 홀로 거닐어 한가히 읊으며 개울가 서있네 위문동군하소사홍홍백백자천진 (爲問東君何所事紅紅白白自天眞) 봄의 신에게 묻노라면 자연이 피워낸 붉고 흰 온갖 빛깔 하늘의 뜻이라네. 회재선생 옥산 「임거십오영을말 모춘 기2(林居十五詠乙末 暮春 其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