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물가 안정을 위해 지정한 ‘착한가격업소’가 지켜야 할 사항은 많지만 지원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최근 물가 상승 영향으로 착한가격 유지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며 지원 필요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경주시에 따르면 저렴한 가격으로 지역 물가안정에 기여해 온 업소를 착한가격업소로 지정해 지원해 오고 있다. 2012년부터 도입된 착한가격업소는 2022년 현재 외식업과 이·미용업, 목욕업 등 19개 업소가 지정돼 있다. 우선 착한가격업소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영업자가 직접 신청하거나 동장, 소비자 단체 등이 추천하면 된다. 신청 업체는 가격과 위생·청결, 품질·서비스 등 점검표에 따른 현장실사를 통한 평가 후 착한가격업소에 지정된다. 착한가격업소에 지정되고 유지하려면 지켜야 할 사항도 많다. 경주시 착한가격업소 세부평가 기준을 살펴보면 △지역 평균 가격 이하 여부 △가격인하와 가격동결 등 가격안정 노력 여부 △업소 내 저렴한 가격상품 비중 등 가격 관련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또한 주방, 매장, 화장실, 건물 등 위생과 청결 기준도 포함돼 있으며 품질 서비스와 공공성 기준도 지켜야 한다. 이 중 하나의 항목이라도 부적격일 경우 지정은 취소된다. 반면 착한가격업소 인센티브 제공은 크지 않다. 착한가격업소로 지정되면 업종별 희망하는 물품 인센티브, 홈페이지 홍보, 쓰레기 종량제 봉투 지원, 착한가격업소 인증 표찰 제작 등 연간 약 150만원 지원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착한가격업소 지정이 취소된 업소는 “손님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해 착한가격업소로 지정됐지만 결국 더 이상 견디지 못해 폐업했다”면서 “착한가격 홍보도 좋지만 실질적인 지원이 소상공인에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주시는 물가상승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는 착한가격업소에 추가 지원을 계획 중이다. 경주시에 따르면 희망물품지원 금액을 두 배 이상 늘리고 쓰레기 봉투 지원 등 9000만원 정도의 예산을 추경에 반영할 계획이다. 경제정책과 최민화 씨는 “현재 국제정세 악화로 물가가 6개월 연속 3% 상승을 보이고 있어 물가안정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착한가격 유지 업소에 대한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착한가격업소는 관련 조례가 있어 지원 품목 내에서 지원을 늘릴 예정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착한가격업소 추가지원은 시장지시사항일 정도로 관심도가 높은 상황이다. 지원액을 대폭 늘려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지역민에게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국내사회적경제 최대 규모의 축제의 장인 ‘제4회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가 오는 7월 8일부터 10일까지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올해 4회 째를 맞는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는 전국의 사회적경제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로, 연대와 협력으로 사회적가치를 실현하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식 확산을 위해 2018년 대구에서 처음 개최된 후 2019년 대전, 지난해는 광주에서 개최된 바 있다. 사회적경제란 구성원 참여를 바탕으로 국가와 시장의 경계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민간의 경제 활동을 의미한다. 이번 박람회에는 전국 사회적경제 기업과 공공기관, 유관 단체 등이 참여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박람회는 우수사례 발표, 사회적경제 퍼포먼스 등 기념행사와 다양한 전시관, 시민참여 프로그램 등의 부대행사 등으로 진행된다. 박람회 관계자는 “전국 각지 사회적경제 기업인 등 많은 사람들이 지역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며, 지역에 다양한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경주시가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유치를 위해 본격 행보에 나섰다. 주낙영 시장은 지난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석기 국회의원과 함께 박진 외교부장관을 만나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 선정을 위해 적극적인 유치 활동을 벌였다. 정상회의 개최도시 심사가 올해 하반기 마무리될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주 시장은 확정 전까지 전방위적 ‘세일즈 행정’에 들어간 것. 앞서 주 시장은 지난해 7월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함께 20년 만에 대한민국 개최가 확정된 제32차 2025 APEC정상회의 및 각료회의 경주 유치 도전을 선언한 바 있다. APEC은 아시아·태평양 국가 간 경제협력을 목표로 설립된 국제기구로 미·중·러·일 각국 정상들이 매년 한 곳에 모여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경주가 APEC 정상회의를 유치하면 경제적 유발효과가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구경북연구원은 2025 APEC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개최될 경우 경북지역 경제에 9720억원 생산 유발 효과를 비롯해 4654억원의 부가가치 및 7908명의 취업 유발 효과를 창출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같은 효과가 예상됨에 따라 2025 APEC정상회의 개최를 두고 인천, 부산 등 지자체 간 치열한 유치경쟁도 예상되고 있다. 주낙영 시장은 이날 박진 외교부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경주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석굴암, 불국사 등이 있는 대한민국의 찬란한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도시이자 산업발전 중심지인 포항, 구미, 울산 등과 인접해 전통문화와 눈부신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라고 강조하며 경주 유치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어 “APEC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각국 정상들의 경호에서 경주는 특별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며 “숙소와 회의장이 모두 보문관광단지 내 모여 있어 동선이 짧아 경호 측면에서도 유리하고, 산에 둘러싸여 마치 요새와 같다”며 보문관광단지의 지형적 특성도 강조했다.
행안부 산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한국장애인부모회가 경주 지역사회와 힘을 모아 개최한 제1회 경주시 지속가능발전대학이 지난 23일 졸업식을 개최했다. <사진> 이번 졸업식은 이승희 극동대 교수(중국 닌징대 박사)의 강의 후 경주대 구본시 부총장, 행안부 산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원영 상임이사, 경주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 이경호 회장과 석정이 한국장애인 학부모회 지회장의 축사, 수강생들의 소회와 경주시 과제 제언, 수료증 수여식 순으로 진행됐다. 지난 5월 26일부터 6월 23일까지 개최된 제1회 경주시 지속가능발전대학과 지속가능발전심포지엄은 유엔이 만장일치로 합의한 SDG(지속가능발전목표) 중 4번인 ‘양질의 교육’을 충족시키려고 했다는 점에서 지방 ESD(지속가능발전교육) 과정으로서 큰 역할을 수행했다. 경주시 지속가능발전대학은 경주대(이사장 박관이), 경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회장 이경호), 경주대 SDGs·ESG 연구소(소장 이창언)이 주관하면서 인적 자원, 전문적 지식과 정보, 교육 장소(강의, 워크숍, 졸업식)를 제공했다. 지속가능발전대학과 지속가능발전 심포지엄을 기획한 이창언 경주대 교수는 “경주시 지속가능발전대학과 경주시 지속가능발전심포지엄은 학문 융합적, 전체 지향적, 가치 지향적,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 다양한 교육수단, 참여적 의사결정, 적용 가능성, 지역적의의라는 ‘유네스코 2006 ESD 가이드라인’에 따라 교육과정이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지자체 의사결정자, 공무원, 도시 회복력 및 적응 분야 전문가들이 글로벌 회복력 지표(resilience indicators)를 평가하고, 회복력 있는 도시 추진을 위한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글로벌-로컬 플랫폼 구축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경호 경주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 회장은 “지속가능발전대학은 SDGs 목표 4의 관점에서 16개 목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SDGs 교육에 그치지 않고 이론과 실천을 통합하는 ESD 교육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한편 경주대는 작년 10월 한국 최초로 SDGs·ESG 연구소를 설립하는 한편, 2학기에는 대학원에 SDG·ESG 경영학과를 신설했다. 그리고 6월에는 전국지지속가능발전협의회, 지속가능발전지방정부협의회와 SDGs 아카이브 구축 협약식을 맺는 등 SDGs·ESG 선도대학으로 변모를 시도하고 있다.
경주 실정에 맞는 고물가특별대책을 하루빨리 시행하길…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중부동·황오동 통합 행정복지타운이 구) 경주여중에 들어서게 된다. 지난 21일 열린 제267회 경주시의회 임시회에서 중부·황오 통합동 행정복지타운 건립안이 통과되면서 본격적인 통합동 시대가 열릴 예정이다. 경주시에 따르면 구 경주여중 부지에 건립될 중부·황오 통합동 행정복지타운은 지상 2층 규모로 1400㎡ 행정복지센터와 990㎡의 주민자치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총 사업비 77억8000만원이 투입되는 행정복지타운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이 진행된다. 통합동 행정복지타운 건립은 중부동과 황오동이 통합되면서 기존 노후화되고 협소한 청사 활용에 어려움이 예상돼 건립이 추진됐다. 기존 청사는 1990년에 건립돼 시설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재래시장과 인접한 지역 특성상 청사가 협소해 시설 이용과 활용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시는 행정복지타운 건립을 통해 통합동 이미지 제고 등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문화행정위 전문위원은 행정복지타운 건립 관련해 “중부동과 황오동의 행정 통합으로 새로운 통합동 청사 건립 필요에 따른 것으로 기존 청사 모두 협소하고 시설 노후화된 상황이다”면서 “통합동 신축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되며 문제점은 없다”고 밝혔다. 건립안이 통과되면서 구)경주여중 부지에 한림야간학교가 사용하던 건물은 2층 한옥의 통합동행정복지타운이 들어서게 된다. 통합동 행정복지타운 건립 안이 통과되면서 경주여중 건물을 사용하던 한림야간학교는 보금자리를 떠나야하는 상황이다. 한림야간학교는 1985년부터 2018년 1월까지 경주청년회의소에서 수업을 이어오다 2018년 2월에 경주여중 자리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한림야간학교가 30년 동안 비좁은 교실에서 수업하다 경주여중 부지로 옮기며 여건이 나아졌지만 통합동 건립으로 또다시 학교를 옮기는 상황에 몰리게 된 것이다. 한림야간학교 이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학생 통학과 넓은 학습 공간을 충족하는 곳이 많지 않아서다. 학생 대부분이 고령층에다 시내권 보다 읍면지역 거주자가 많아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곳이 부지 마련의 핵심이다. 또한 교육 공간도 확보돼야 한다. 한림야간학교 관계자는 “통합동이 건립되는 동안 당장 학생 교육을 진행할 곳이 필요한 상황이다”면서 “학교 이전에 대해 아직까지 정해진 것이 없어 걱정이 크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현재 한림학교에 임차료를 지원하고 있는 상황으로 비슷한 예산으로 학교를 옮길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면서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하고 공간이 넓은 곳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학교 운영에 문제가 없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지지부진했던 경주경찰서 청사 이전·신축 사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경주시의회 문화행정위원회는 지난 21일 경주시 공공용지와 경주경찰서 재산 교환을 위한 2022년도 공유재산 관리계획 제4차 변경안을 원안 가결했다. 경주시의회는 24일 제267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를 열고 안건을 최종 의결한다. 경주시에 따르면 경주경찰서 이전·신축을 위해 지난 2020년 초부터 매입해 부지성토 및 기반시설을 조성한 천북면 신당리 1490번지 일원 2만3313㎡ 부지와 경주경찰서·화랑수련원·충효방범순찰대를 맞교환한다. 시가 매입한 천북면 신당리 부지의 감정가액은 143억여원, 경찰청 교환대상 재산은 전체 부지 6987㎡, 전체 건축연면적 5764㎡, 지장물 16수 등으로 감정가액은 146억여원이다. 경주시는 이번 경주시의회 임시회에서 안건이 최종 통과되면, 교환차액 3억여원을 정산 후 경찰청과 교환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후 경주시와 경주경찰서는 교환된 부지 등에 대해 각각의 계획에 따라 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경주경찰서 이전·신축이 완료되는 시점은 이르면 2024년 말, 늦어도 2025년 상반기로 예상된다. 경주경찰서 관계자는 “현재 신청사 기본설계 용역이 오는 9월 완료될 예정이다”면서 “이를 토대로 올해 말 또는 내년 상반기 착공에 들어가면 공사 기간이 2년에서 2년 6개월 정도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시와 경찰청 소유부지를 맞교환해 경주경찰서 신청사 건립 이전으로 근무환경을 개선해 치안 행정서비스가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기존 경찰서 부지는 공공청사, 녹지공간, 주차장 등으로 활용해 도심 공동화를 해소하고, 시민 휴식 공간으로 조성해 시민 정주여건 개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주시, 경찰서 이전 후 공공청사 활용 경주시는 맞교환하는 경주경찰서 건물을 리모델링해 공공청사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철거하기로 계획했던 경찰서 본관 건물과 무기고, 탄약고도 리모델링을 통해 경주시가 활용하기로 했다. 경주시에 따르면 이들 건물은 당초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아 철거키로 했지만, 경주경찰서가 지난 2019년 7억여원을 들여 내진보강공사를 완료했다. 이어 지난 6월 경주시가 전문업체에 의뢰해 실시한 정밀안전진단에서 B등급을 받아 이들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경주경찰서 본관과 별관 및 신관 건물 모두 활용 가능하다는 것이 경주시의 설명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경주경찰서 청사 건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돼 향후 3여년 뒤 공공청사 활용방안이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경주시 조직 중 2개국 정도를 이전할 계획으로 인원은 250~300여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경주시는 경주경찰서 신축·이전 뒤 공공청사로 활용하게 되면 그동안 제기돼왔던 경찰서 이전 후 중심상가 상권침체 등의 문제도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경주경찰서 본청 근무인원이 250여명 보다 더 많은 인원이 근무하게 돼 인근식당을 비롯해 주변 상권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는 경주경찰서와 부지 교환 과정에서 나타난 경주시의 행정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장복이 의원은 “부지 교환 후 경주경찰서 청사 철거와 리모델링 비용 등은 경주시가 감정가격에서 상계해야 하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시의회에서 그동안 수차례 지적한 부분에 대해 전혀 반영하지 않고 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즉흥적인 행정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주운영센터가 지난 13일 영천시평생학습관에서 개최된 ‘제6회 노인학대예방의 날’ 기념식에서 경상북도지사로부터 노인인권예방 유공기관 표창을 수상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주운영센터는 앞서 지난 4월 13일 노인학대 발생 시 빠른 개입과 더불어 인적·물적 자원의 상호교류를 통해 지역사회 ..
경주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김희수상담클리닉은 지난 17일 대구지검 경주지청에서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업무’ 협약식을 가졌다.김희수상담클리닉 김희수 센터장과 경주범피 이상춘 이사장은 이날 김태은 경주지청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협약서에 서명했다. 협약 체결로 두 기관은 상호 정보교환 ..
경주 이씨 시조 발상지인 표암재가 위치한 ‘경주 금강산 표암봉 일원(慶州 金剛山 瓢巖峯 一圓)’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됐다.문화재청은 지난 17일 경주시 동천동 소재 ‘경주 금강산 표암봉 일원’을 사적으로 최종 지정했다.앞서 문화재청은 지난 4월 22일 이곳 일원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하고..
태(態) 생명이란 우주의 원리나 자연의 섭리 등 총체적이고 형이상학적 차원이 아닌, 인간적 차원에서 원초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생명성이다. ‘태(態)’는 생명의 근원적 형태를 연구한 작업이다. 조명과 금속을 사용해 부화하기 전 꿈틀거리는 알의 내부를 생명성이란 형태로 풀어낸다.
경주지역 소비자물가가 오름세가 심상찮다. 경상북도 물가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도내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경유 가격이 1년 전에 대비 47%, 휘발유는 28% 급상승했다. 밥상물가 역시 쌀을 제외한 품목 대부분의 가격이 1년 전에 비해 수직상승했다. 대표적인 품목으로 돼지고기 500g 평균 가격이 24% 급등했다. 또 닭고기 1kg 8%, 배추 34%, 감자 24%, 고등어 8%, 쇠고기 3% 등 전반적으로 상승곡선을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는 7월부터는 주택용·일반용 도시가스와 전기료 등 공공요금 인상도 예고돼 있어 서민들의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치솟는 물가에 대한 불안은 경주만의 일은 아니다. 5월 국내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5.4% 오르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초 3%대에서 3, 4월 4%대, 5월에는 5%대 중반까지 치솟을 만큼 무서운 상승세다. 전문가들은 조만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6%대도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내놓고 있다. 고물가 현상은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수급 문제가 빚어지면서 상반기 내내 지속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우크라이나 사태 등이 가세하며 석유류와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급상승했다. 여기에 코로나 방역조치 해제에 따른 소비 증가가 맞물리며 개인서비스물가도 오르고 있다. 물가가 무섭게 치솟자 민생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각 가정에서 느끼는 체감 물가는 훨씬 높기 때문이다. 정부가 민생대책을 발표했지만, 날뛰는 물가를 잡기에는 역부족으로 여겨진다. 14개 품목 관세 인하와 부가세 인하 등을 통해 물가 조정을 유도하겠다는 정부 조치가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뛰는 물가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 물가 급등 요인이 우크라이나 사태, 글로벌 공급망 차질, 국제유가·원자재·곡물 값 인상 등 대외적인 영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정부는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주시도 정부정책에만 기댈 일은 아니다. 농수산물과 공공요금을 비롯해 경주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물가 안정에 선제적 조치를 다해야 한다. 그리고 고물가로 가장 고통을 많이 받는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위축됐던 경주지역 축제와 행사가 부활하고 있다. 경주시는 지난 8일 제15회 경주시민의 날 행사를 3년 만에 대규모로 개최했다. 이날 시민 4000여명이 행사장을 찾아 모처럼 열린 축하 행사와 공연을 즐기며 축제의 장을 이뤘다. 이어 10일엔 봉황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경주 대표 행사인 봉황대 뮤직스퀘어도 막을 올렸다. 지난 2019년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역시 3년 만에 행사가 재개됐다. 이날을 시작으로 10월초까지 매주 다양한 무대로 시민과 관광객을 맞을 계획이다. 이외에도 중고용품을 직접 사고파는 ‘벼룩시장’이 3년 만에 개장했고, ‘경주 술술 페스티벌’, ‘제14회 Beautiful 경주! 환경대축제’도 성황리에 열렸다. 앞으로도 지역 대표 축제인 신라문화제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들도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300인 이상 참여하는 축제를 대상으로 시행해온 지역축제 심의·승인 제도 운용이 정부 방침에 따라 잠정 중단됐다. 그리고 안전점검과 함께 기본방역 준수를 위한 안내·계도 위주의 방역관리로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3년 가까이 중단됐던 경주지역 대규모 축제도 속속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지역경제 회복과 활성화에 청신호가 켜졌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여행 수요와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경주지역 숙박시설 예약률이 지난 2~3년 전과 비교해 크게 늘어나는 등 소비 규모가 확대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경주지역 축제 재개는 경기 활성화 신호탄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타 지역 축제와의 경쟁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동안의 방식만으로 지역 축제를 찾는 관광객 확보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축제와 연계한 관광코스와 스토리텔링을 개발하고,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거리, 쇼핑거리를 창출하는 한편, 대대적인 홍보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역 상권과 주민, 경주시가 머리를 맞대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경기 파급효과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도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았고, 가을 재유행도 우려되는 상황인만큼 이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1박에 40만원! 그래도 없어서 못 팔았다! 1박에 40만원이라는 고가의 방을 구하기 위해 온갖 인맥을 다 동원해도 구할 수 없었다고 한다. 며칠 전 6월초 짧은 연휴 기간에 있었던 경주 모 특급호텔의 상황! 이런 적이 있었나? 아주 특별한 연휴, 휴가철 성수기외에는 없었던 것 같다. 특히 6월 같은 비수기 철에는 더더욱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비싼 비용을 감당하면서도 왜 경주로 오려고 하는 것일까?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통제된 생활 속에서 오랜만에 맛보는 해방감과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분출하기 위함일 것이고, 아직은 해외로 눈을 돌리기에는 여러 가지로 시기상조인 것도 큰 이유 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많고 많은 국내 여러 곳을 두고 왜? 경주! 그것은 경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경주는 어떤 존재인가? 언급이 불필요한 대체불능의 한국인의 정신적인 고향인 것이다. 성씨의 본관을 보자 경주 김씨, 이씨, 최씨 등등 이 정도면 한국인의 정신적인 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요즘 경주를 다니다 보면 많은 관광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황남동 일대에는 젊은 청춘남여들이 길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어 생동감이 넘치며, 맛집이라 소문난 곳도 많고, 많은 방송매체에서 이곳을 앞 다투어 취재할 정도로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주말에 길이 막혀도 짜증이 나지 않고 즐겁다. 내 삶의 터 소중한 내 고향 경주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와 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종종 눈에 띄는 외국인 관광객을 보면 더욱 흐뭇하다. 그런 와중에 스쳐가는 이 불안감은····· 비정상적인 지금의 상황들이 정리되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1박에 40만원을 부담하면서도 경주를 찾아올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경주의 매력을 더욱 키워야 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편의시설 등을 확충하고 보강하여 지금의 이 기회를 잘 살려 연 2000만명 이상이 찾는 경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 부족하다.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경주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역과 터미널 주변부터 한번 살펴보자. 무엇에서 경주의 색깔을 찾을 수 있는가? 붉은색으로 도배된 통일되지 않은 형형색색의 광고판들, 도로 경계를 나타내는 경계봉들, 특히 중심상가에 있는 경계봉들은 위압감을 주기에도 충분할 만큼 크고 미관상 좋지 않다. 경주는 서천 북천 남천이라 칭하는 하천으로 둘러쌓여 있어 쉽게 하천을 접할 수 있다. 다른 도시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볼거리인데, 이러한 소중한 자산들이 그냥 방치 되다시피되어 있다. 하천과 도로를 경계하는 경계봉도 평범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것들은 큰 예산도 민원의 요소도 없으면서 다른 것들에 비해 쉽게 정비할 수 있는 것들이다. 여기에 타 도시와는 다른 차별화된 경주만의 문양 등을 넣은 경계봉과 잘 정비된 통일된 간판 등은 관광객들에게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될 것이고 도시 미관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많은 예산을 투입해 변화를 도모하는 것은 돈이 주가 되지만 간단하면서 세밀한 부분을 바꾸는 것은 관심이요 창의적인 사고인 것이다. 현재의 경주는 고정적인 틀에서 벗어난 현실에 맞는 상황 대처와 민첩한 행동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 그렇다면 누가 이것을 할 것인가? 당연 그것들을 실행하고 입안하는 것은 경주시를 앞장서 이끌어가는 선출직 지도자들이고, 그 분들과 함께하는 공무원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 분들을 실질적으로 선택하고 통제하는 것은 우리 일반 시민들이다. 이 분들이 더욱 힘을 내고 경주를 위해 뛰어다닐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을 해주는 것도 우리 일반 시민들의 몫이다. 얼마 전 향후 4년간 경주를 이끌어 나갈 선량들을 우리들의 손으로 선출하였다. 지금은 그것이 잘됐다 잘못됐다 논할 때가 아니다. 열심히 일 할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나서 그 역량과 노력들을 4년 후에 다시 평가하면 되는 것이다. 향후 4년은 경주에는 위기의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다시 올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1박에 40만원을 부담하고서라도 찾는 경주! 아니면 온갖 편의를 제공해도 찾지 않는 경주! 선택의 기로에 있는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온다해서 마냥 도취되어 기뻐 할 수만은 없다. 떠나는 것 또한 순식간 인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준비, 더 많은 노력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누가? 바로 우리 경주시민!
4계절은 저마다 색깔이 다르다. 그 다른 색깔만큼이나 그 다른 계절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른 추억이나 기억들을 머릿속의 저장공간에 아름답게 혹은 고통스럽게 혹은 잔인하게 남겨 두었을 것이다. 그게 세월이라는 이 고마운, 더러는 무정한 시간의 편린들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이 없이 각자의 삶에 동승하고 있는 이유인지 모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만들어 놓은 그 많은 추억과 기억들 중에서 나는 음식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오늘은 봄 이야기를 하고자 하고 봄이 만들어준 음식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봄은 항상 즐겁고, 활기차고,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들로 내 기억의 공간 속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고향 땅 경주와 한없이 사랑스러운 ‘엄마’가 계시기 때문이다. 봄에 생각나는 음식과 ‘엄마’ 그리고 나의 기억들은 특별히 더 많이 있는데 그중 ‘앵두주’와 ‘진달래주’는 너무도 선명한 봄날의 추억들을 그림처럼 남겨 놓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욱더 놀라운 것은 봄이라는 그 계절에 가장 풍성하게 얻을 수 있는 자연의 혜택들을 ‘엄마’는 정말로 지혜롭게 잘 활용하여 ‘음식’에 적용하신 분이셨다. 그도 그럴 것이 앵두는 우리 집 마당에서 때만 되면 풍성하게 소출의 기쁨을 주었고 진달래는 잠깐 걸어 나가면 뒷산에서 잠시만에 바구니 가득 따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향 집 마당의 앵두나무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정말 축복의 봄 선물이었다. 개화기가 되면 꽃을 활짝 피웠는데, 마당 정중앙에 턱하니 자리 잡았던 까닭에 집 어느 방향에서 봐도 화사하기 그지없는 풍경을 선사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족 중 누군가가 그 앵두나무에 있었고, 어느새 온 가족이 그 앵두나무 주변에 몰려들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갈 때도 가장 먼저 우리 가족을 반겼던 존재는 바로 그 화사한 앵두나무였다. 그렇게 활짝 핀 꽃이 지고 나면 이제는 조그만 앵두 열매가 송송 나기 시작해서 날씨가 더워지면 점점 더 탐스럽게 열매를 맺어가기 시작하는데, 이 경이로운 과정을 매일 매일 관찰하는 것 또한 온 가족들에게는 즐거움이었다. 때가 되어 앵두가 탐스럽기 그지없게 열매를 맺게 되고 앵두나무 가지가 조금씩 조금씩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아래로 처지게 될 즈음에, 어머니는 이웃집 애들을 불러서 따먹게 했다. 그렇게 해서 한 바구니 정도의 앵두는 애들의 입속으로 사라지고 나머지 한 바구니 정도의 앵두는 우리 가족들이 수시로 맛나게 따먹고, 나머지 남게 되는 한 바구니 정도의 앵두로 어머니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앵두주를 담으셨다. 이러한 일들은 유년의 어린 시절 고향 땅 마당에서 늘상 벌어지는 우리 가족들만의 축제 같았다. 그렇지만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하면서 고향 땅 앵두나무는 겨우 몇 년에 한 벌 볼까 말까 하다가 그나마도 부모님들께서 경주를 떠나 대구로 이사하면서 다시는 보지 못했다. 국어 시간에 배운 소월 선생님의 약산 진달래만큼이나 내 기억 속에 잘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유년의 진달래꽃이다. 시골에서 자란 모든 사람들에게 봄날의 진달래는 화사하기 그지없는 뒷동산의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다. 진달래꽃은 화단에서 곱게 가꾸어진 꽃과는 또 다른 것이 온 산 전체를 덮고 있는 그 엄청난 장관은 정말 경이롭다. 사실 우리가 ‘꽃에 파묻혀 본다’라는 기회를 어디서 얻을 수 있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런데 한국의 산들은 봄에 이러한 축복의 감사함을 사람들에게 선물처럼 나누어 준다. 산이 많아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자연의 감사함이 많이 있는데 봄날의 진달래꽃도 바로 그중 하나다. 고향 땅의 ‘엄마’는 봄에 이 진달래꽃을 여러 개의 나무 바구니에 가득 따서 진달래주를 담으셨다. 항상 그러했듯이, 진달래 꽃잎을 따러 산으로 가실 때도 어김없이 ‘엄마’를 따라가야 할 사람은 막내인 나의 몫이었다. 엄마는 들판에 그리고 산에 봄나물을 캐러 가실 때도 항상 막내인 나를 불러서 같이 가셨다. 어쩌면 딸이 없었던 엄마가 여러 형제들 중에서 막내인 내가 딸이 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진달래꽃을 따고 뒷마당에 아버지가 땅속에 묻어 놓은 항아리 단지에 담고 술을 완성하는 일들을 엄마와 나는 봄날 연례행사처럼 치르곤 했는데, 그 과정들이 엄마와 나는 항상 즐거웠다. ‘엄마’는 아직도 대구에서 잘 지내신다.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나를 포함하여 형님들 모두가 경주를 떠나서 타지에서 살고 계셔서 고향땅 경주를 갈 수 있는 기회들이 꼭히 많지 않다는 것이다. ‘엄마’가 계실 때 고향 땅 경주에서 잠시라도 같이 살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하고 있다.
故곽지균 감독의 데뷔작 ‘겨울나그네’(1986)를 기억하시는지? 최인호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같은 제목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다. 주인공 민우가 운명처럼 만난 여인인 다혜의 사랑을 잃자 죽음을 택한다는 내용이다. 겨울나그네는 소설과 영화가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물론 그것들의 공통분모는 슈베르트(F.P.Schubert/1797-1828)다. 슈베르트는 빌헬름 뮐러(W.Müller/1794-1828)의 시에 곡을 붙여 연가곡집 ‘겨울나그네’를 발표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추운 겨울날,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들판으로 방랑의 길을 떠난다. 추운 들판을 헤매는 청년의 마음속에는 어느덧 까마귀, 환상, 도깨비불, 백발과 같은 죽음에 대한 상념이 자리 잡게 된다.> 최인호는 바로 이 곡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을 지었고, 곽지균은 이를 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원곡의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가 소설과 영상에서 비극적인 이야기와 영상으로 전이되었다. 슈베르트는 31살에 요절한다. 35살에 죽은 모차르트보다 더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이다. 그래도 모차르트는 생전에 음악적으로 인정도 받고,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도 했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키 작고, 눈 나쁘고, 존재감 없는 음악가로 평생 독신이었다. 작품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는 겨울나그네는 아마도 슈베르트 자신일 것이다. 뭘러의 시에 투영된 자신을 발견하고 곡을 붙인 것이리라. 연가곡 겨울나그네는 슈베르트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827년에 완성되었다. 화가 고흐처럼 일생일대의 작품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나온 것이다. 슈베르트는 누가 뭐래도 독일가곡(Lied)의 아버지다. 600여곡의 주옥같은 가곡을 남겼다. 모차르트나 베토벤도 가곡을 작곡하긴 했지만, 가곡을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로 발전시킨 데에는 슈베르트의 공이 크다. 여기서 시에 곡을 붙인다는 것은 음악에 문학을 도입한다는 뜻이다. 가곡은 형식미를 중시하는 절대음악에서 내용을 갖춘 표제음악으로 진화하는 국면에 등장한 장르이다. 이는 리스트의 교향시, 바그너의 음악극 등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장르의 초석이 되었다. 겨울나그네는 전부 24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에서 다섯 번째 곡인 ‘보리수’가 가장 유명하다. 영화 ‘겨울나그네’에서, 출소한 민우가 다혜를 만나지 못하고 눈 내리는 남산계산에 앉아 절망하는 모습에 이 노래가 흐르면서 민우의 슬픔을 배가시킨다. 예술가곡에 일가견이 있는 바리톤 피셔-디스카우(D.Fischer-Dieskau/1925-2012)의 보리수 연주는 그야말로 애절하다. 그가 노래해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더욱 유명해졌다.
안강읍 피일안길 112-2에 이르면 청안이씨 구암(懼庵) 이수인(李樹仁,1739~1822) 선생의 자취가 서린 소담한 상모정(尙慕亭)이 눈에 들어오는데, 건물 내에는 직산서사(稷山書社) 편액이 걸려있다. 문득 정자 뒤편에서 들려오는 맑은 계곡물과 자그마한 폭포의 경쾌한 물소리는 유람객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구암은 안강현 산대리에서 부친 학반재(學半齋) 이위현(李渭賢,1699~1752)과 모친 영월신씨 신명상(辛命相)의 따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고, 여동생이 있었으나 단명하였다. 어려서 조부 이전초(李全初)와 부친의 가학을 계승하였고,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1679~1759)의 문인 작은 할아버지 이약초(李若初)에게 퇴계학을 배웠다. 벼슬에 대한 관심보다는 당시 세태의 혼란함을 떠나 고향인 경주 안강에서 산림처사로 살면서 후학양성에 매진하였고, 경주와 인근 지역의 유수한 인물과 부윤 등을 만나 교유하면서 학문의 폭을 넓혔다. 그가 남긴 『구암집(懼庵集)』에는 신라 경순왕의 황남전비각(皇南殿碑閣), 이화택의 삼괴정(三槐亭), 안강리 이공량(李公亮)의 사이헌(四而軒), 금암 최옥의 용담서당(龍潭書堂), 최주범의 취옹정(醒翁亭), 최의겸의 동호서사(東湖書社) 그리고 효자효부의 정려각 기록 등 지역문화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많다. 문집은 이수인의 아들 이효영(李孝永,1778~1833)과 족질 이관영(李觀永)이 수습 정리하였고, 종제 이수문(李樹文)과 손자 이종림(李宗彬) 등이 사림의 협조를 받아 1860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고, 이후 1901년 추가 개판하였다. 9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휘녕(李彙寧)의 서문과 권주욱(權周郁,1825~1901)의 발문 그리고 이종상(李鍾祥)의 후서(後敍)가 있다. 권1~3은 시가 336제(題)이고, 권4는 소(疏)․서(書), 권5는 서(書)․잡저(雜著)․서(序), 권6은 기(記)․발(跋), 권7은 잠(箴)․명(銘)․송(頌)․상량문(上梁文)․축문(祝文)․제문(祭文), 권8은 애사(哀辭)․비명(碑銘)․묘갈명(墓碣銘)․묘지명(墓誌銘)․행장(行狀)․행록(行錄), 권9는 부록(附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건물 내부에는 경인년(1890) 여강이씨 내헌(耐軒) 이재영(李在永,1804~1892)이 지은 「상모정기」 그리고 무술년(1958) 완산(完山) 류동시(柳東蓍,1886~1961)가 지은 「상모정중건기」가 걸려있고, 1827년 창려(蒼廬) 이정기(李鼎基,1759∼1836)가 지은 유사, 남려(南慮) 이정엄(李鼎儼,1755~1831)이 지은 묘지명과 풍산인 유태좌(柳台佐,1763~1837)가 지은 묘갈명 등을 보면 그의 행적을 알 수 있다. 상모정기(尙慕亭記) - 내헌 이재영 자계(紫溪)의 동쪽 그리고 화개(華蓋)의 남쪽에 넓은 골짝이 있는데 멀리 가리키면 황망한 한 구역에 불과하지만, 좁은 길을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가면 산은 높지 않게 휘두르고, 시냇물이 빠르지 않게 졸졸 흐른다. 곁에 작은 폭포가 졸졸 소리 내며 흐르는데, 그윽하고 평온하다. 깊숙이 하나의 한가한 구역이 되는데, 바라보면 단정한 선비가 초가집에 앉아 옛 사람의 책을 읽는 듯 매우 즐거울 만하다. 그 가운데 구암 이수인 공이 책을 읽고 학문에 힘쓴 곳인데, 넓게 물을 끌어 대고 위치의 경영은 거의 두서가 잡혔으니, 이 구역이 비록 은거하는 장소가 아니더라도 사물의 굳게 감춰짐은 진실로 주인의 소유일 것이다. 다만 외진 곳에 설치하여 훗날을 기다리지만 흥망의 조짐이 서린 서림사(西林寺)의 감회가 이곳에 머물러 있다. 동쪽의 깎아지른 듯 폭포 위에 3칸의 정자를 짓고 상모정(尙慕亭)이라 편액을 하였으니 또한 높은 산과 큰 길의 마음이로다. 아! 우리 구암공은 미천한 시골에서 정조년간에 소명(召命)이 집안에 이르렀고, 평민신분으로 급제하였으며, 선조의 훌륭한 덕으로 대접하여 주고받는 것이 메아리와 같았다. 절용애민(節用愛民:씀씀이를 절약하고 백성을 사랑하라) 4글자를 집 안에 걸어두고 하나의 명으로 삼았고, 자신을 불러준 예에 조금이나마 보답하였다. 공이 비록 뜻을 펼치기에 부족하였더라도 또한 가히 배운 것을 져버리지 못하였다고는 말할만하다. 가령 오늘날 이 정자에 머무는 자가 이 솥에 죽을 쑤고, 이 솥에 미음을 쑤어먹으며, 남겨진 책을 읽고 당일의 힘든 공부에 노력한다면 남은 여운이 다스려지고, 일생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지조를 생각할 것이다. … 이용직(李容直) 군이 나에게 그 사적을 청하였고, 마침내 이름난 정자의 뜻을 부연하여 기록한다. 경인년(1890) 윤달 하순에 가선대부 동지돈녕부사 여강 이재영 삼가 짓다.
경주를 처음 방문한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이었다. 그때는 처음으로 육지를 향한다는 설렘으로 가득했고 단체여행 코스에 대한 기대는 없고 친구들과 떠드는 수다가 마냥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보탑의 화려함과 특히 불국사의 웅장함, 말로 단순히 표현할 수 없는 그곳은 큰 감흥과 여운으로 가슴에 남았다. 그래서 쌍둥이들이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불국사는 아이들의 첫 방문지가 되었다. 불국사로 가는 길 낙엽이 가득한 곳은 아이들의 운동장이었고 그 끝에 도착한 불국사는 여전히 역사의 흐름 속에 시간의 마법사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불국사의 역사는 그대로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1990년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미국 영화를 본다는 것을 의미했고 후반에는 홍콩 영화가 첨가되었다. 그 당시에 한국 영화를 영화관에서 본다는 것은 돈이 아깝고 바보 같은 짓이었다. 2000년대를 지나면서 조금씩 한국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여전히 한국 영화는 TV나 비디오로 보는 것이라고 나에게 충고를 했었다. 2020년 코로나가 대유행했고 개봉을 계획했던 영화들이 OTT서비스 되었다. 세계가 K-콘텐츠를 보기 시작하면서 기생충, 오징어 게임, BTS는 K방역과 더불어 세계 속에 한국을 각인시켰다. 한국전쟁의 폐허를 기억하던 세계는 대한민국의 발전에 놀라워했고 대한민국의 위상은 높아졌다. 그러나 음양의 법칙처럼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은 빈부격차가 심해졌고 젊은 세대에게 ‘집’은 뜬구름 같은 것이 되어 지금을 즐기자는 욜로족이 대세가 됐다. 솔직히 욜로족은 매 시대, 매 순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젊은이들이 등장, 욜로족이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가 된 것이다. 경제, 재테크, 투자 전문가들에게 욜로족에 대해 물으면 거지병, 거지근성이라고 단언한다. 오지랖 좀 떠는 아줌마 입장에서 말한다면 욜로족은 ‘무지에서 오는 안타까운 선택’이다. “집 한 채를 사려면 2~30년을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한다” “집 한 채를 사서는 평생 대출을 갚아야 한다” 둘 다 살고 싶은 인생이 아니기에 차라리 지금을 즐기겠다는 것이 욜로족이다. 재테크·투자 관련 책 한 권을 읽으면 이 말이 쓸데없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고, 두 권을 읽으면 나도 얼른 종잣돈을 모아야겠다 결심하며, 세 권을 읽으면 투자 공부를 일찍 못했음을 아쉬워하게 된다! 재테크 관련 강의나 영상을 많이 봐서 좀 안다고 반문하는가? 아줌마 한소리 좀 한다. “영상이나 강의는 그때뿐, 책을 읽고 제대로 깨우쳐라!!” 그 결과물이 바로 나, 아줌마다! 엄청난 수익률을 자랑하지 않아도 된다. 과소비하지 말고 조금 절약하고 종잣돈을 만들고 성향에 맞는 투자를 하면 나머지는 다 시간이 해 준다. 삼십 대에는 답도 없고, 사십이 되어서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인가 계속 의심했지만 그때마다 책을 통해 마음을 다잡고 절약하며 종잣돈을 모으고 투자를 반복했다. 그랬더니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 부자는 아니더라도 계획보다 훨씬 많은 자산이 모였다. 그 비결은 수익률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겁많은 투자자로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지나가는 스타일로 언제나 목표는 은행 이자보다 좀 더 높은 수익률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시간이 더해지자 자산이 훨씬 많아졌다. 도전해보지 않고 결코 포기를 먼저 선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생을 살다 보니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정답도 없다. 그러나 또 살아 보니 막막하게 느껴졌던 것이 별 일이 아니었고 답 없던 것들이 뜻하지 않게 술술 풀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말고 언제나 마주하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들도, 남의 아이들도, 세상 모든 이들도!
6월 10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또 하나 처연한 획을 그은 날이다. ‘6.10 항쟁’으로 일컬어지는 이날은 우리의 기억 속에 두 명의 청년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열사라는 이름으로 숨져간 박종철 군(1965~1987)과 이한열 군(1966~1987)! “그때 제가 연세대학교 간호대학 2학년 학생이었어요. 이한열 군의 비보가 있던 날, 온 캠퍼스는 물론 학과 내에서도 알 수 없는 비통함과 보이지 않는 분노로 일렁이는 것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지요!” 최정윤 씨(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병원 VIP병동 간호차장)에게 그 며칠은 마치 시간이 박제되어 남아 있듯 또렷이 기억된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거부한 전두환 군사독재의 ‘4.13 호헌조치’에 반대하고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정권에 의해 은폐된 것에 항의하기 위한 6.10 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6월 9일,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이한열 군이 전투경찰들이 쏜 직격 최루탄에 맞아 병원으로 후송됐다. 두개골 골절과 뇌손상으로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연세대학교는 초비상 상태에 돌입했다. “병원 실습 중이었는데 의과대학과 간호대 내에 그 소식이 가장 먼저 퍼졌어요. 무언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느끼는 순간이었죠” 이튿날부터 연세대학교는 침통한 기운이 가득 퍼졌고 또 한편에서는 전쟁터와 다름없는 투석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비분강개한 학생들은 수업을 전면 거부하고 누구랄 것도 없이 중앙도서관 앞으로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그러나 최정윤 씨는 그곳에 함께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기에는 연세 간호고등학교라 불릴 만큼 빡센 학업과 두어 개의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며 스스로 책임져야 할 현실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 중반이 대부분 그랬지만, 살면서 그때처럼 빚진 기분을 느낀 순간도 없을 겁니다. 간호대 내에서도 자발적으로 순번을 정해 의대생들과 같이 이한열 군이 죽음을 헤매고 있던 중환자실 앞을 지키기 시작했고 더 많은 학생들이 독재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었는데 저는 그럴 수 없었거든요” 영화 ‘1987(2017년 개봉)’을 보면서 최정윤 씨는 동기생인 이한열 군에게 있었던 평화로운 일상과 그것을 파괴한 어이없는 죽음으로 인해 다시 한번 뼈저린 아픔을 느꼈다며 울먹였다. 나아가 그 당시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학생운동에 가담했던 학생들에게 또다시 어떤 부채의식을 느껴야 했다고 고백했다. 한편으로 그런 마음들이 당시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던 의대생들이나 간호대생들에게 막연하게나마 퍼져 있었다는 정황도 알려주었다. 그런 최정윤 씨에게 그 부채의식을 홀연히 떨쳐버리는 절체절명의 계기가 생겼다. 그것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컸던 의료인들의 자기희생에서 비롯됐다. “코로나19는 아마도 20세기와 21세기 가장 위협적인 질병이었을 겁니다. 이에 맞서 혼신을 다해 환자들을 지킨 의료인들은 국민의 건강을 지킨 진정한 ‘시민’들이었습니다!” 최정윤 씨는 코로나19로 인해 의료진들과 병원 관계자들, 방역 관계자들이 겪은 고충은 일반 국민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했다며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의료인들이 국민들에게 끼친 영향이 클 것’이라고 자평했다. 병원에는 코로나 전담팀이 따로 꾸려져 있었지만 그쪽으로 빠져나간 만큼의 결원을 남은 의료진들이 메꾸어야 했기에 의료인들은 누구나 똑같은 상황이었음도 설명했다. “이제, 1987을 다시 봐도 덜 미안할 것 같아요! 그 시절 함께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의 봉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올해로 간호사 생활 33년차, 최정윤 씨는 명예퇴직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이제 코로나도 안정국면에 들어선 만큼 홀가분하게 오랜 기간 힘든 일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고 싶다고! “글쎄요, 그렇다고 의료인들에게 부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겁니다. 누구나 자신의 위치에서 다른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걸 믿으면 고생한 의료인들의 보람도 조금 더 커질 것 같아요!” 환하게 웃는 최정윤 씨를 보면서 2022년 대한민국 모든 의료진들을 영화 ‘1987’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헌정하고 싶어졌다. 1987년의 민주화 현장의 학생들과 2022년의 의료인들 모두 역사가 기억해야 할 참다운 시민들이다.
덩케르크. 1940년 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독일군에 의해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영국,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네덜란드 5개국 병력 40만여 명을 영국 본토로 탈출시키는 철수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다. 그 영화 못지않은 일이 한반도에도 있었다. 백제와 왜, 신라와 당나라, 고구려까지 포함시키면 동북아 5개국이 뒤얽힌 전쟁의 끝에 일어났던 대탈주극이 663년 한반도 남해안 대례성이란 곳에서 벌어졌다. 대례성은 덩케르크였다. 그 날의 탈주는 천사백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는 역사적 패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한반도로부터의 탈출 과정에서 생긴 숨가쁜 드라마가 여러 기록에 남아 있어야 하나, 663년 대례항에서 철수했다는 기록이 있고 난 후 단 한 줄의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다. 마치 예쁜 여자가 자신의 이마에 난 흉터를 머리카락으로 가리듯 당시의 왜국 지도부와 백제의 유민들이 그날의 상처를 감추고 싶어했기에 일어난 현상일 것이다. 통상 대규모 패전이 있고 나면 책임을 묻는 절차가 진행된다. 장수에게는 패전의 책임을 묻고 최고 책임자에게는 정치적 책임이 어떤 형태로든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백마강 전투 패배 후 책임 추궁이 이야기되어야 할 만엽집의 해당 자리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었다. 그 대신 그 자리에는 한가하게도 꽃과 단풍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만엽집 16번가가 그것이다. 만엽집을 만든 이는 왜 꽃과 단풍 이야기를 추궁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배치해 놓았을까.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만엽집은 허투루 만든 책이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내용도, 작품을 놓아둔 자리도 아무렇게나 하지 않아야 한다. 16번가는 반드시 있어야 할 내용과 자리를 생각하면서 음미해야 하는 작품이다. 그러기에 16번가는 논쟁적 요소를 가득 안은 작품이 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冬 木成春 去 來 者/不喧 有之 鳥 毛 來 鳴 奴/不開 有之 花 毛 佐 家礼杼/山 乎 茂 入 而毛 不取/草 深 執 手毛 不見/秋山 乃 木葉 乎 見 而者/黃葉 乎婆 取 而曾 思努布/靑 乎者 取 而歎 久 曾許 持恨 之/秋山吾 者 “겨울이 가니 / 울지 않고 있던 새가 날아와 울고 / 피지 않고 있던 꽃도 피어나지만 / 산에는 나무가 우거져 들어가 꺾을 수 없고 / 풀도 무성하여 들어가 꺾는 사람을 볼 수 없다오. / 가을 산 나뭇잎을 보는 사람들은 / 노란 잎을 따 슬픔에 젖고 / 푸른 잎을 따들고는 오래도록 탄식한다네. / 가을 산을 좋아한다오, 나는” 백마강 전투 패전 4년 후였다. 백제 파병의 최고 책임자였던 중대형(中大兄) 황태자가 어느 모임 자리에서 그의 측근에게 ‘봄산의 꽃과 가을산의 단풍을 비교해 보라’고 한 일이 있었다. 그날 측근이 만들었을 작품은 사라져 없으나, 자리를 같이 했던 액전왕(額田王)이라는 여인이 만든 작품이 있어 오늘에 전한다. 16번가가 만들어지던 그 날의 상황을 살펴보면 액전왕이라는 여류가인이 중대형 황태자와 한자리에 앉아 있음이 눈에 띈다. 그녀는 중대형의 동생 대해인(大海人)의 여인이었고, 대해인과의 사이에서 딸까지 낳은 여인이었다. 중대형은 시숙이었고 액전왕은 제수였다. 그 날 두 남녀는 관계를 의심받을 수도 있는 꽃과 단풍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의 일본인들은 두 사람 사이를 단순한 시숙과 제수 관계로 보고 있지 않다. 고대를 꾸몄던 두 황자와 한 여인의 사랑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근친상간의 이야기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