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기점으로 2~30여년전엔 1년 사계절 중 서민층이 가장 고통스러운 계절을 꼽으라면 겨울이었다. 가난했던 과거에는 강한 한파로, 특히 취약계층에게 겨울은 공포의 계절이었다. 연탄을 비축하거나 김장김치를 담는 등 겨울나기를 위한 준비는 흔히 마주치는 모습이었지만, 그마저도 마련치 못하는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시련이라 다름없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지구 온난화로 겨울 평균온도가 올랐고, 에너지 복지정책이 확대돼 추위로 인한 동사자는 거의 자취를 감추는 등 겨울 고통지수는 내려갔다. 반면 여름철 폭염은 해마다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위를 막아낼 여건이 못 되는 취약계층에게는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철이 겨울보다 한결 보내기 어려운 계절이 됐다. 저소득층 가정 어린이나 노약자 등은 가마솥 같이 달아오른 여름 더위에 무방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관행처럼 어려운 이웃돕기는 겨울과 연말에 집중하고 있다. 계절에 따른 특성이 벌써 바뀌었지만 여전히 겨울나기에만 관심을 두고 있을 뿐, 여름나기에는 인색하다. 다행히 경주시는 최근부터 여름철 폭염기간 동안 복지사각지대 위기가구를 집중 발굴해 지원하고 있다. 시는 올해 복지사각지대 발굴관리시스템(행복e음) 대상자 598세대에 대한 현장방문을 통해 지원 대상 가정을 발굴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지속적인 서비스 제공 및 모니터링을 하고, 지원이 불가한 가구는 민간자원과 연계해 지원받도록 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이 같은 혜택조차 알지 못한 채 혹서기 고통지수를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이웃들이 존재한다.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취약계층의 여름나기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겨울철에 집중된 이웃돕기 행사도 여름과 겨울로 나눠 실시할 필요가 있다. 무더운 혹서기 최악의 고통 속에서 보내는 이웃들에게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청년세대인 2030세대를 현재 기준으로 보면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합쳐진 MZ세대이다. 베이비부머세대와 86세대는 그 청년세대의 부모세대이다. 부모세대에게는 신세대로 불렸던 X세대조차도 청소년들의 부모세대로서 기성세대에 편입하고 있다. MZ세대는 자본주의의 풍요로움과 경쟁의 압박감이라는 양단 속에서 자란 탓에 부모세대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생긴 행태의 차이는 부모세대들에게 당혹감을 주고 있다. 하지만, 부모세대는 이미 그 시기를 거쳐왔기에 MZ세대를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MZ세대가 처하고 있는 현실은 부모세대가 거쳐온 환경보다 더 열악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된다. 부모세대는 지금의 MZ세대보다 교육에 대한 경험이 적은 부모의 지원을 받고 자라서 청소년기에 받았던 압박감이 비교적 적었다. 그 시대의 많은 부모들은 자식들이 가난을 이겨내거나 혹은 공부를 통해서 안정적인 신분을 가지기를 원하는, 큰 목표를 제시해주는 정도에 그쳤다. 지금의 부모세대, 즉 MZ세대의 부모들은 스스로 교육받은 경험이 많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더 치열해진 입시 경쟁 체제 속에서 자녀들의 성적관리를 더 잘하는 부모가 되기를 강요받고 있다. 그 덕에 더 심해진 학업 경쟁 상황 속에서 더 엄격하고 더 세세한 간섭과 관리를 받으면서 자라야 했던 이들이 MZ세대이다. 운좋게 자녀들의 진로에 명확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자녀들의 내면적 선호에 따라 진로 설정을 지원해준 부모들이 더 많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극도로 치열해진 취업 경쟁을 앞에 두고 있다보니 청소년기의 학업 환경은 예전보다 더 경쟁적이다. 자연스럽게 학업 외의 나머지 요소들은 예전보다 더 무시되고 있어 입시 중심의 학업에만 집중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이 유래없는 압박감으로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 MZ세대이다. 사회와 조직에 충성하고, 전체를 위해서 나를 희생하면서 공동체의 이익에 주력하던 것이 덕목이던 부모세대의 습성과는 달리 지나친 학업경쟁 중심의 청소년기를 거친 MZ세대는 더 철저히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부모세대의 덕으로 경제적으로 성장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부모세대보다 경제적으로 더 열악한 시대에 살아야 하는 첫 세대가 될 것으로 예견되는 가운데, 청년실업란으로 인한 취업경쟁에도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지나간 시절의 방식으로 막연하게 요구하는 부모세대의 압박이다. 취직하기 좋은 대학, 좋은 학과 그리고 좋은 직장에 대한 압박 같은 것이 이들에게는 막연한 요구이다. MZ세대에게는 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두고 있고, 이를 위해 맹렬히 학습을 하며, 새로운 기술에 능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려는 특성이 있다. MZ세대를 이기적이고 일에 무관심한 세대라고 치부하는 부모세대에게는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 있는 특성이다. 하지만, 부모세대는 개인적인 성장을 중요시하는 MZ세대의 특성을 이기적이라고 폄하하지 말고 새로운 시대의 요구로 받아들여야 한다. 학업성적에만 의존해서 신분상승을 기대하는 부모세대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의 개성에 맞게 자신을 살아갈 수 있는 심리적인 자유를 그들에게 허용해야 한다. 그들 내면이 추구하는 개성에 집중해서 온전히 자신만의 길을 찾아서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야 한다. 청년세대들이 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것은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는 것이다. 학업경쟁을 하느라 청소년기를 보내며 학업경쟁이나 취업경쟁에서 성공을 한 ‘인싸’들도 있지만, 그들조차 자신의 내면이 바라는 것을 이룬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 반대로 누구도 길을 인도해주는 이가 없이 ‘아싸’로 청소년기를 보낸 후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우리 사회에서는 ‘인싸’든, ‘아싸’든 자신의 내면이 요구하는 바람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이는 극히 소수이고 많은 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해야지 가치를 느낄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고민해야 진정한 나의 방향이 잡힌다. 내가 원하는 방향을 찾는 것, 말하자면 자신만의 흥미적성을 찾아 나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1인당 연 국민소득 3만불을 넘어섰다.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예전과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출산율은 198개국 중 최하위라고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1인당 연 국민소득 3000불 정도 되는 여러 나라에서는 거의 없는 신용불량자가 대한민국에는 아주 많다. 왜 일까? 소득이 없어 생활이 어렵다는 사람을 많이 본다. 그런데 공장이나 식당 등에서는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궁여지책으로 외국 근로자들로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그렇다보니 이젠 외국 근로자도 부족해서 구하기가 어렵다고들 하고 있다. 이렇게 된 지금의 사회! 어디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원인은 삶의 질에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에서는 한 달 수입이 수백만원이 되어도 쓸 곳이 없다. 즉, 마땅하게 사용할 곳이 없다는 얘기인 것이다. 만족하는 소비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만족하지 않는 소비는 싫고,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소비가 유흥쪽으로 흘러가게 되고 좋지 않은 소비가 성행하게 되면서 패가망신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것이다. 방송을 접하다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들도 많다. 특히 수도권 아파트 가격 등의 얘기가 나올 때 마다 다른 나라 얘기를 듣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는 무엇이고 여태 무엇을 했는가 하는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다. 현실이 이러하니 행복 할 수가 있을까? 삶의 질은 낮을 수밖에··· 이러한 현실에서 결혼을 하고 애기를 낳아서 오순도순 살아 갈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다. 일상의 평범한 행복조차 어려워진 것이다. ‘결혼 하셨어요? 아뇨! 아이고 잘 하셨네요!’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예전 같으면 저 나이 되도록 왜 안했을까 의심도 해보고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을텐데 말이다. 이것이 지금의 세태 풍속도다. 이러할지니 출산율이 세계 꼴지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조금만 더 시간을 보낸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까? 국가경쟁력 마저 최하위권으로 갈까 심히 우려된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렸을 때 대한민국의 강점 중에는 풍부한 노동력이 1순위였었고, 한집에 형제가 4명 정도 되는 가정은 아주 많았다. 그러나 이젠 도시에서도 애기 구경을 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으니··· k-pop등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위상은 높아만 가는데 속은 더욱 곪아가고 있는 것이다.겉모습은 화려하나 속에는 병이 점점 커지고 있는 그런 형국이다. 외국인 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는 노동시장, 늘어만 가는 비혼주의자들, 외국인 노동자들에 의해 대한민국에서 빠져나가는 외화는 곧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전망이다. 그리고 이들이 없는 노동시장의 혼란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렇게 조금만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이고 간단한 것들로 인해 대한민국 사회가 크게 흔들릴 것이다. 이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누가 해결할 것인가?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 즉 선출직 지도자들의 역량에 달렸다. 대한민국 사회를 이렇게 위기에 내몬 것도 이들 지도자들이다. 안일한 대처와 단시간적인 정책과 금방 눈에 띄고 당장의 인기에 연연해 정책을 입안하고 사회를 이끌어가다 보니 대한민국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이다. 뜬금없는 정책 등은 국민, 시민들을 그만큼 실망시키고 낙담하게 만드는 것이다. 멀리 내다보고 다수를 위한 전체를 위한 정책을 입안, 실행하고 열심히 살면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행복은 보장되는 사회! 이것을 지도자들은 해내야 하고 국민, 시민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 국민 그리고 시민들은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결혼하고 애기를 낳아 오순도순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상, 보통의 행복을 바랄뿐이다. 그런 보통의 사회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지도자를 우리는 선출해야 하고, 우리들은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이다. 경주 금장 등 교통난 해소를 위해 만들고 있는 제2금장교만 생각하면 참 뜬금없다는 생각, 허탈한 마음뿐이다. 출·퇴근 시간 차량들이 정체돼 시간에 쫒길 때마다, 그리고 다리 공사를 하는 곳을 지나칠 때 마다 참 허탈하다. ‘왜? 여기다 하는걸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많은 사회는 삶의 질이 높은 사회와는 한참 또 멀어지게 된다. 공감하고 예상되고 다수를 위한 그러한 정책들이 실행되고 실천돼 시민들에게 평범한 보통의 행복을 주는 사회가 가장 삶의 질이 높은 사회인 것이다. 이것을 해내겠다고 선출된 지도자들은 최대한의 역량을 펼쳐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데 크게 일조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다.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인간의 기본도리가 상실되어가는 안타까운 사건소식들이 종종 들려온다. 결국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존재이거늘 인간의 도리가 행해지지 않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동경잡기』 정렬(貞烈)조에 의하면, 20여명의 인물을 조명하였는데 그 가운데 “임진왜란 때 김련(金鍊)이 상경하여 돌아오지 않자 김씨부인은 세 살 난 어린아이를 안고 산골짜기에 숨었다가 잡혔다. 왜적이 치려고 앞으로 다가서자 김씨는 아이를 안고 통곡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따르지 않으니, 왜적이 아이를 빼앗아 산 채로 다른 숲에다 놓아두고 부인을 죽였다. 일이 조정에 알려져 마을에 정려문을 세웠다. 정려는 부의 서쪽 광교(廣橋) 가에 있다.”고 전한다. 열부김씨 비각은 1671년 문중에 의해 사정동에 세워졌다가 1800년에 서악동으로 옮겨졌다고 전한다. 또 일설에 우물가에서 왜병들이 부인을 희롱하자, 물동이를 버리고 집으로 달려와, 노비 금수에게 세 살 아들 김천택을 맡겨 도망가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도 하니 시대가 변하면서 사실과는 조금씩 다르게 전하기도 한다. 화계(花溪) 류의건(柳宜健,1687~1760)은 내남 화곡에 살면서 선비의 도리를 행하고, 효행을 실천한 참된 학자로, 그가 남긴 『화계집』은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담고 있어 지역학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열부 경주김씨가 임진왜란 때 죽임을 당한 이야기는 당시 효자ㆍ충신ㆍ열녀의 얘기를 통해 삼강오륜의 진실성을 전하고 타인의 행실을 규범으로 삼길 바라는 마음이 들어있고, 이외에도 「열부유인하씨전(烈婦孺人河氏傳)」에서 황남동 월성 손희천(孫喜天)의 아내에 관한 열부 이야기를 통해 인간성 회복을 위한 지역의 주요한 열부와 정려 등에 대한 얘기를 뽑아 수록하였다. 조선시대 열부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가득하다. 가문의 명예를 위함도 한몫을 하였고, 조선 유교의 지나친 행실의 모순이 되기도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임금이 먼저 오륜의 법도를 돈독히 행하고 실천하면 그로 인해 백성의 풍속이 아름답게 변하고 다스리는 방도가 더욱 융성해지게 된다. 아울러 집에는 효도하는 자식이 되고, 나라에는 모두 충성하는 신하가 되어, 각자가 맡은 바의 소임을 다하는 지경에 다다르게 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가끔은 우리 주변의 효자ㆍ충신ㆍ열녀 이야기에도 작은 관심을 가져볼 것을 권한다. 열부김씨 정려각기(烈婦金氏㫌閭閣記) - 화계 류의건 돌아가신 열부 훈도(訓噵) 김련(金鍊)의 처 김씨의 정려(旌閭)가 예전에는 부의 서쪽 광교(廣橋) 주변에 있었으나, 여러 번 상전벽해(桑田碧海) 세월의 변고를 겪으며 높았다 낮았다 자리가 바뀌면서 정려 역시 훼손되어 남은 것이 없었다. 그의 현손 김도삼(金道三)이 집안 여러 사람과 함께 옛 정려의 동쪽으로 10궁(弓:1궁 145m) 쯤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도설(棹楔:정려문)을 안치하고 작은 비각을 지어 공사를 마치고는 나[류의건]에게 기문을 청하였다. 나는 김삼도에게 “그대는 선조의 사모함이 지극하다. 하지만 그 사적이 모두 동경기(東京記)에 실려 있고, 게다가 이 정려의 편액이 해와 달처럼 빛나거늘, 어째서 기록하려 하는가?”라 하니, 김삼도는 “비록 그렇더라도 정려각의 중수는 없어서는 안 되고, 또 책의 기록이 어찌 정려각에 거는 것과 같겠습니까? 가령 이곳을 지나는 자 모두 이것을 알게 하고자 함입니다”라 하였고, 나는 “알겠다”라 하였다. 살펴보면, 계림인 훈도 김련은 자가 정중(精仲), 호가 사천(沙川), 유학훈도(儒學訓導)가 되었다. 만력 20년(1592) 왜구가 창궐하여 경주부가 적 침입의 길목이 되었고, 이때 김련은 낙동강으로 달려갔으나 돌아오지 못하였다. 부인 김씨는 홀로 세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산골짝으로 숨는데, 길에서 적을 만나 붙잡혔다. 강제로 걸음을 재촉하자 김씨는 아이를 품에 안고 소리 내어 슬피 울면서 한 걸음도 움직이려하지 않다가 마침내 적에게 죽었다. 아! 부인된 자 가운데 누군들 제 몸을 깨끗이 하려고 욕되게 않게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임진왜란을 만나 순절(殉節)한 자는 적으니 죽고 사는 것 역시 큰 것이다. 경주 수십리를 빙둘러 적에게 협박당해 재물(財物)을 뺏긴 자가 한둘이 아니었으나, 정렬(貞烈)을 지켜서 죽은 경우를 골라 보자면 의당 몇 손가락 안에 꼽히니, 한번 죽는 것이 어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국가가 정려(旌閭)하고 포장(褒奬)하여 인간의 기강을 바로잡고자 하였으니 비단 김씨 한사람을 위함만은 아닐 따름이다. 훈도 김련이 낙동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화왕산성 모임에 들어가 의병을 일으킨 여러 사람과 함께 힘써 지켜내었고, 심지어 전투가 끝이나 돌아온 의사(義士)였으며, 의사의 아내는 마땅히 열부가 되었다. 품었던 아이는 다행히 적의 칼날을 피했고 한 노비와 지금의 수령 덕분에 두루 힘써 온전하였다. 지금의 수령 역시 의열가(義烈家)의 사람을 위해 부끄럽지 않다. 아이 이름은 김천택(金天擇)으로 장성해 무과에 급제하였고 자손이 몇 있다.
무더운 여름, 칠평천에는 이름 모를 풀벌레와 개구리가 밤낮을 교대로 연주하고 5월에 심은 모는 수줍음 많은 연둣빛에서 진한 녹색으로 변해간다. 제주도에서 보지 못했던 논을 경주에 터전을 두고 살면서 원 없이 보고 있다. 우리 집 창밖으로도 논이 보이고 아이들 학교 가는 길에도, 경주 시내를 향하는 길에도 양쪽을 빼꼭히 수놓은 것이 바로 논이다. 10년을 넘게 바라보니 나름 보는 눈도 생겼다. 어느 논이 모를 먼저 심었는지도 보이고, 논 주인의 부지런함도 게으름도 보이며, 논 자투리땅에 심어놓은 콩이며 깨, 고추를 보며 농사꾼의 지혜도 살뜰함도 보인다. 논의 녹음이 짙어지는 이맘때가 되면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씩 놀이터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방학이다! 학교와 학원으로 다니던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나름의 여유가 생기는 기간이다. 나도 그냥 방학이라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엄마가 되고 보니, 눈은 신나는 눈싸움을 연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통체증을, 방학은 신나는 기간이 아니라 육아 지옥을 의미한다.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어른들이 무엇을 연상하든 방학은 언제나 돌아온다. 그리고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들로 다니기도 하고, 캠핑을 다니는가 하면 해외로 나가는 가족들도 보인다. 그런데 아줌마의 오지랖 레이다에 이상한 것이 잡힌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여행에 아이들의 의견은 없다. 그리곤 시간을 특별히 내어, 상당한 돈을 들여간다는 것에 아이들이 감사할 줄 모른다고 오히려 섭섭해하는 부모들이 많을 뿐이다. 그렇다, 나도 그랬었다. 시간을 내어 요리법을 알아내고 특별하게 만들어낸 간식이나 요리에 가족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면 섭섭하다. 애초에 조리법을 찾았을 때 가족들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지레짐작으로 가족들이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든 것으로 깜짝 이벤트로 제공했고 결과는 처참하게 망했다. 처음에는 정말 속상하고 섭섭했다. 가족들이 좋아할 반응을 생각하며 열심히 준비한 것인데, 생각지 못한 반응에 그동안의 수고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속상함을 팍팍 티 내는 나에게 가족들은 미안해했다. 내가 가족들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맛이 없는데, 좋아하지 않는데 무조건 환호하길 바랐을까? 아니다. 거짓 환호는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을 오해하게 되고 더 나쁜 결과들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나의 의사결정 단계에 있었다! 그 일 이후, 아이들을 위한 간식이나 남편을 위한 메뉴는 언제나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건 어때? 요런 건 어때? 맛있을까? 만들어볼까?” 주말에 아이들과 놀러 가는 것도 남편과 나의 체력과 시간을 먼저 체크한 후, 아이들에게 선택지를 부여한다. 아이들이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를 이야기할 때에는, 예를 들어 친구네는 어디를 간다더라. 우리도 거기에 갔으면 좋겠다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거기를 선택지로 정하지 않거나, 못 한 이유를 솔직히 이야기하며 가족회의를 거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의 전체적인 만족도가 올라갔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아이들의 주체성도 발달했고 자신의 주장을 좀 더 조리 있게 이야기해서 부모를 설득하려는 협상력도 좋아졌다. 자신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고집이나 아집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부모를 설득할까 하는 고민을, 협상으로 접근하는 모습이 신선하고 놀라웠다. 그리고 과거의 일이 생각이 났다. 쌍둥이가 네 살이었을 때, 쌍둥이 중 아들 녀석이 어느 날 “엄마, 내가 이거 해주면, 요거 해줄 거야?”라는 말에 “어디서 쪼그만 게 벌써부터 엄마랑 거래를 하려고!” 하며 아주 혼쭐을 낸 적이 있다. 그런데 일 년 후에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아이가 생각이 커지면서 협상(거래, deal)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미안했던지 책을 읽은, 그날 밤에 자는 아들을 한참이나 끌어안았었다. 무더운 여름의 늦은 밤, 이름 모를 산을 타고 내려오는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우리 아이들은 꿈속에서 무슨 협상을 하고 있을까?
베를리오즈의 대표작 ‘환상교향곡’은 슈베르트처럼 본인의 실연 경험에서 탄생했다. 베를리오즈가 로마대상 준비를 시작할 무렵(1827년/24세), 그는 3살 연상의 아일랜드 출신 여배우에게 푹 빠져버린다. 당시 파리에서는 영국의 한 극단이 ‘햄릿’을 공연하고 있었다. 베를리오즈는 여주인공 오필리아 역을 맡은 해리엇 스미드슨(H.Smithson/1800-1854)을 짝사랑했다. 연정을 담은 편지를 건네기도 했지만, 콧대 높은 유명 여배우가 만나줄 리 만무다. 베를리오즈는 외사랑 실연의 아픔을 작품에 담았다. 내용은 이렇다. 어느 젊은 예술가가 실연으로 고통 받다가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게 된다. 그런데 먹은 약이 치사량보다 적었던 탓에 죽지 않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리고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여인과 관련된 온갖 환상을 경험한다. 이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환상교향곡’이다. 환상교향곡은 흔히 표제음악의 시조 정도로 간주되는데, 악장마다 제목이 있다. 1악장 '꿈, 정열', 2악장 '무도회', 3악장 '전원의 풍경',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 5악장 '마녀들의 밤의 꿈'이다. 4악장과 5악장은 제목만 들어도 섬뜩하지 않은가? 이렇듯 베를리오즈는 자신의 괴로운 심경을 음악(교향곡)으로 표현했다. 훗날 환상교향곡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공포 영화 ‘샤이닝(shining)’(1980)에서 OST로 빛을 발한다. 죽음의 호텔 ‘오버록’으로 향하는 광활한 오프닝 장면에서 둔중하고 불길한 튜바소리로 끔찍한 미래를 암시한다. 한편,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스릴러 영화 ‘적과의 동침(sleeping with the enemy)’(1991)에서 환상교향곡은 폭력 남편의 주제음악으로 작동한다. 영화 속에서 로버츠(로라 역)는 노골적으로 베를리오즈 음악이 싫다고 말하기도 한다. 남편과의 끔찍한 재회 장면에서도 어김없이 베를리오즈의 튜바소리가 들린다.
송광호가 주연인 영화 ‘택시 운전사’의 원조 다큐멘터리가 있다. 필자가 중학교 1학년 때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 10월 27일 뉴스는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충격으로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학교에서 정신 나가 녀석이라며 빨리 학교로 오라고 했다 당시에 나는 학교에 간 사람들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는 사람들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통령 서거의 슬픔을 뒤로 하고 한 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언제인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서울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는데 사거리마다 군인들이 지프를 타고 지키고 있는 이상한 수도 서울을 목격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중학교 2학년인 나의 눈에 들어온 TV 뉴스는 헬기를 향해 총을 쏘는 시민들과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는 군인들, 불타는 방송국 영상 등이었다. 나에게 광주는 폭도들의 도시였고 무질서와 혼란의 도시였다, 당연히 그들 진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서 1986년이 되었다. 한 해 재수한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어수선한 대학에는 소수의 학생이 항상 데모를 하고 있었고 소위 닭장차라는 전경버스가 언제나 대학 근처에 대기 중이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광주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우리나라 헌법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는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찬성한 헌법에 문제가 없고 폭도들에 대한 진압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대학 도서관에서 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법전을 샀고 나만의 삶을 준비 했다. 대학교 1학년 생활은 도서관과 자취방을 왔다갔다했고 친구들과 서로의 학보를 주고받으며 대학의 낭만을 즐기고 있었다. 가을쯤인가, 학생들이 학원 민주화 관련 데모로 도서관에 있던 총장실을 점거하고 있었다. 나는 데모와 상관없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친한 친구가 도서관에서 자면서 같이 밤을 새우자고 했다. 데모대 옆에서 자연스럽게 총장실을 구경했고 푹신한 카펫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데 새벽에 누군가가 비디오를 튼다고 했다. 호기심에서 본 그 비디오가 내 삶을 바꾸었다. 바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했던 서독 제1공영방송 북부독일방송(ARD-NDR) 영상기자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 1937~2016)가 독일 및 전 세계 방송사에 공개했던 다큐멘터리 비디오였다. 힌츠페터는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광주의 처참함을 카메라에 담았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계엄군에 의해 짓밟히는 모습은 1980년 5월 22일 서독의 저녁 뉴스를 통해 방영됐다. 이는 서방세계에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게 6년이나 지나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다친 군인들도 있었지만 수많은 광주 젊은이들의 죽음은 나의 뇌리에 너무나도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다. 당시 비디오는 어떤 조작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본 뉴스로 각인된 다친 계엄군의 잔상과 폭도들로 가득한 화면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진실의 이면에 숨어 있던 광주를 정면으로ㄱ 다시 보았다. 이 영상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2017년 송광호 주연 ‘택시 운전사’로 무려 1,2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대학 때 본 비디오 한편은 그 후 ‘세상의 빛과 어둠을 구분하기 위해 많이 배워야 한다’는 자세로 굳어졌고 지금도 그런 자세를 지키려고 노력 중이다. 그만큼 이 다큐멘터리는 광주의 진실을 알린 동시에 필자의 삶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광주의 진실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진실을 진실로 보지 않거나 외면한 결과 우리 사회의 이념적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를 지킨 사람이 민주주의 파괴자라는 오명을 쓴 반면 80년 쿠데타 주역들로 광주를 짓밟은 사람들은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민주화를 이룬 주역들은 진압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갇혀 지내고 있는데 그들을 짓밟은 사람들은 원하는 바를 성취한 뒤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여운은 지금도 내 인생 전체를 휘감은 채 정의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하고 있다.
천지천황은 백제 멸망기 백제인들에게 희망의 끈이었다. 또 그는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의 유민들이 의지했던 기둥이었다. 그러했던 그가 백제 망국 11년 후 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으로 보인다. 죽음을 몇 달 앞둔 671년 1월 하녀의 소생이었던 대우(大友)황자를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태정(太政)대신에 임명한 것이다. 그리고 몇 달 후 병으로 쓰러져 사망하였다. 겨우 46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눈물가가 만들어졌다. 고대인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이해하기 위해 천무천황에 대한 눈물가인 151번가를 소개한다. 작자는 천지의 동생 대해인(大海人)의 여자에서 천지천황의 여인이 되었던 액전왕(額田王)이었다. 如是有乃/懷志/勢婆大御船泊之登/萬里人標結麻思乎 “이럴 수가 있음이여? / 눈물을 가슴에 묻고 눈물가를 만드나니. / 기세 있는 모습으로 대어선(大御船)이 정박하네.(돌아올 때 길을 잃지 말라고) / 만리의 사람들이 / 표를 묶으며 슬퍼하고 있구나” *대어선(大御船)은 천지천황의 영혼이 타고 저승바다를 갈 배를 말한다. 폭포가 쏟아지는 것처럼 직설적으로 슬픔을 표현한 작자의 역량이 놀랍기만 하다. 만엽집 속 수많은 작품 중 이와 같이 격한 구절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액전왕이 천지천황과 사적관계가 아니라면 이토록 격정적 작품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소 전문적이지만 첫 구절 ‘여시유(如是有)’라는 구절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럴 수가 있음이여?’라고 읽혀야 한다. 이 구절은 한반도어를 모르고서는 절대 구사할 수가 없는 표기일 것이다. 왜 한반도어라고 하지? 잠시 생각을 거듭하며 읽어 주시기 바란다. 이 고비를 넘겨야 향가에 대한 심원한 이해가 가능하기에 수고로움을 청하는 것이다. 如是有 - 이럴(是) 수가 있음(有) 이여(如)? / *是 : 이 시, 有 있다 유, 如 맞서다 여 몇 번 생각해 보아도 이 구절은 일본어로 읽히지 않고, 한반도어를 한자로 써놓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이 구절이 고대 한반도어로 읽혔다면 일본으로 건너간 향가는 일본어가 아니라 한반도어로 읽혔다는 말이 된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인문학을 뿌리째 뒤집어 놓을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사안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설명은 본 칼럼에서는 일단 보류하겠다. ‘만엽집은 한국어로 읽힌다’라는 생각을 저서와 칼럼을 통해 발표한 한국인이 있다. 이영희라는 교수이다. 그녀는 1931년 도쿄에서 태어나 귀국했다. 이화여고를 나온 뒤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한국일보에서 문화부장을 지내고 국회의원을 지낸 명사이기도 하다. 이후 그녀는 한일친선협회 부회장, 한일 비교문화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그녀는 조선일보에 ‘노래하는 역사’라는 만엽집 관련 기고문을 통해 우리나라에 만엽집을 대중화시키기도 했다. ‘만엽집은 한국어로 읽힌다’라는 그녀의 주장을 현재 일본과 한국의 학자들은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녀의 아이디어는 그리 쉽게 부정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의 탁견은 지속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사안이었다. 필자는 연구 과정에서 그녀를 찾아 만엽과 고대 한반도어의 관계에 대해 고견을 듣고자 했다. 그러나 필자의 뜻은 뜻하지 아니한 그녀의 사망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쉽게도 그녀는 2021년 사망했다. 본 칼럼을 통해 만엽집 연구사에 빛나는 등불 하나를 매달아 놓은 그녀의 업적을 기리며 명복을 빈다. 다시 만엽집 151번가로 돌아가 보자. 액전왕은 한반도어를 완벽히 구사하고 있는 여인임이 분명하다. 수많은 연구자들은 그녀를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의 후예로 확신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기록이 없을 뿐이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만엽집 151번가에서 네이티브가 아니면 사용하지 못할 능숙한 한반도어를 구사하고 있다. 이 사실은 액전왕의 한반도 관계설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그녀는 한반도인의 후예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한반도어로 노래를 만들었다. 또하나 천지천황의 죽음을 애도하는 눈물가를 감상해보자. 만엽집 153번가이다. 천지천황의 황후가 지은 작품이다. 鯨魚取 淡海 乃 海 乎 奧放 而 榜 來 船 邊 附 而 榜 來 船 奧津 加 伊 痛 勿 波祢曾 邊津加 伊 痛 莫 波祢曾 若草 乃 嬬 之 念 鳥立 “고래와 물고기를 잡는 맑은 바다. 그대께서 바다의 물굽이로 떠나가신다. 노 저어 와 저승배가 물가에 닿았는가. 노 저어 와 저승배가 물굽이 나루에 닿았는가. 그대가 떠나가니 애통하여 우네. 저승배가 물가 나루에 닿았는가. 그대가 떠나가니 애통하여 우네. 그대가 바다가 아니라 풀밭으로 가신다면 몸이 약한 나도 함께 갈 것을” 고대 전통 사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저승으로 간다고 믿었다. 위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믿음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천지천황의 영혼이 타고 갈 배가 나루에 닿으려 한다. 천황의 황후는 애통해 하며 눈물을 쏟고 있다. 저승 가는 길이 험한 바다를 건너가지 않고 평탄한 풀밭이라면 몸이 약한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탄식하고 있다. 천지천황은 여인들이 뿌린 눈물 강 나루에서 배를 타고 저승으로 건너 갔다.
코오롱 리조트 앤 호텔이 준비한 본격적인 휴가철 맞이 ‘펀캉스 위드 코오롱’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경주 코오롱 호텔에서는 아이부터 성인까지 전 세대가 시원한 객실에서 휴식과 함께 경주만 가질 수 있는 이색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사진> 먼저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불국사 체험’ 패키지를 올 연말까지 선보인다. 불국사 체험 패키지는 객실 1박과 함께 체험복과 저녁공양, 불국사 문화재 투어, 사물 소리 명상, 그리고 염주 또는 연꽃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지친 심신을 회복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패키지는 월요일과 화요일을 제외한 매일 운영되며, 프로그램 일정은 불국사 내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다음으로 경주 코오롱 호텔은 경주엑스포대공원과 함께 경주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여름을 잊게 만들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지난해 큰 인기를 얻은 ‘루미나 호러 나이트’가 올해에 시즌2로 진행된다. ‘루미나 호러 나이트’ 패키지는 경주 코오롱 호텔 객실 1박과 ‘루미나 호러 나이트 시즌 2’ 2인 입장권을 제공한다. 시즌 1보다 새로워진 시즌 2는 ‘화랑 숲’에 등장한 좀비떼를 피해 탈출하는 이야기로 이뤄졌으며, 이외에도 특수 분장을 받을 수 있는 ‘메이크업 체험존’, 타로를 볼 수 있는 ‘심령술사의 점성술 하우스’, 포토존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마련될 예정이다. 8세 이상부터 입장이 가능하며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28일까지 운영된다. 코오롱 리조트 앤 호텔 관계자는 “여름방학을 맞아 국내 호캉스를 계획 중인 여행객들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이번 프로모션을 준비했다”며 “코오롱 리조트 앤 호텔이 마련한 다채로운 ‘펀캉스’ 프로그램 중 취향에 맞는 상품을 선택해 즐거운 여행을 떠나 보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경주엑스포대공원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저소득층 아동을 초청, 무료관람의 기회를 제공한다. <사진> 이번 초청은 사회적 약자이며 문화소회계층인 저소득층 아동들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경북도 산하기관의 역할인 지역사회 공헌과 사회적인 가치 추구를 위해 마련됐다. 이를 위해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및 경상북도 위탁 지역아동센터 경상북도지원단과 공공으로 경북도내 지역아동센터 38개팀 1000여명을 초청할 계획이다. 앞서 경주엑스포대공원은 지난 16일 경주 외동열매아동센터 12명의 초청 방문을 시작했으며, 오는 12월말까지 매달 7개 팀을 초청해 경주엑스포대공원 무료입장 및 플라잉 무료관람을 진행할 예정이다. 류희림 경주엑스포대공원대표는 “아이들이 평소 지역에서 접하기 어려운 문화콘텐츠를 체험하고, 문화를 보는 안목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향후 지속적으로 확대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관람을 희망하는 지역아동센터나 저소득아동 보호센터는 경상북도 사회복지공동모급회 또는 지역아동센터로 신청공문을 접수하면 되고, 최소 관람희망일 3일전까지 신청해야 한다.
식품 손실(Food loss)은 먹을 수 있지만 버려지는 음식을 일컫는 것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국제환경단체는 버려지는 식품문제를 중요한 화두로 삼고 있다. 2021년 8월 세계자연기금(WWF)은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에서 매년 먹지 않고 버려지는 식량이 대략 40%(25억t)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WWF는 전 세계 인위적 온실가스 배출량의 8%가량이 식품 폐기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음식물 쓰레기가 연간 약 1조 달러(약 1250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산한다. 세계 농식품 손실·폐기량의 56%는 북미, 오세아니아, 유럽, 한국, 일본, 중국에서 발생하며 한·중·일 3국이 그중 절반을 차지한단다. 한국환경연구원이 2021년 국회 입법조사처에 제출한 ‘식품 손실·폐기량 저감과 관리정책 동향·입법과제’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하루 평균 분리배출되는 음식물 폐기물은 2009년 1만3701t에서 2019년 1만4314t으로 4.5% 증가했다. 국민 1인당 식품폐기물(식품 제조 단계 포함)은 10년 사이에 하루 338g에서 407g으로 20.4% 늘어난 것이다. 식품제조업체에서 나오는 물량과 종량제 봉투에 혼합 배출되는 물량까지 포함하면 같은 기간 식품폐기물은 하루 1만6669t에서 2만1065t으로 26.4% 급증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식품안전정보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식품 폐기량은 연간 548만t, 처리비용은 1조960억 원에 달한다. 국내 공급 농식품 가운데 약 14%가 폐기되고, 이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약 20조 원(2018년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식품 유통 및 소비단계 폐기물 감축 방안'. 2021.10.). SDGs가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해서는 식품손실을 막는 것이 시급하다. 유엔도 이점을 고려하여 SDGs에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12번 목표)를 포함시켰다. 세부목표 12.3은 “2030년까지 소매 및 소비자 수준에서 전 세계적으로 1인당 식량 낭비를 1/2로 줄이고, 수확 후 손실을 포함하여 식량생산 및 공급과정에서 발생하는 식량 손실을 감소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1차 음식 손실은 농장 또는 공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는 소매, 식품 서비스 및 가정에서 많이 발생한다. 그리고 식품의 부적절한 취급, 운송 또는 저장, 저온 유통체계(cold chain)에서 설비 부족, 극단적인 기상 조건과 심각한 외부 기준(유통기한), 소비자 계획과 요리기술의 부족까지 원인은 다양하다. 식량 손실을 줄이면 효율적인 식량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폐기로 인한 온실가스를 감축하여 환경부담을 줄이고 경제생산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은 33억t(세계농업기구(FAOm 2019)에 이르기 때문이다. SDGs 2번 목표인 ‘기아 종식과 지속가능한 농업’, SDGs 8번 목표인 ‘양질의 일자리와 경제성장’, SDGs 13번 목표인 ‘기후위기 대응’과도 연계되어 있다. 유엔은 기후위기 해결에 도움이 되는 열 가지 행동을 제시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생활방식이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사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3가 가정과 관련이 있다. 에너지, 식품, 교통 부문은 각각 우리 일상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의 20%를 차지한다. 따라서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절약부터 음식과 여행방식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나와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상의 기후행동은 에너지 절약하기,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 이용하기, 저탄소 여행 고려하기, 재활용하기, 청정에너지나 전기자동차로 전환하기, 친환경제품 선택, 기후위기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외에도 육식은 줄이고 채식은 늘리기, 음식 손실 줄이기 등이 있다. 식품 손실로 인한 음식물쓰레기와 이로 인한 온실가스는 전 세계 온실가스의 8%를 차지하며 환경문제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식품의 원재료를 생산, 활용, 폐기하는 과정 생산 중에 사용되는 물, 사료, 에너지도 낭비된다. 일반 가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식량손실을 막기 위한 작은 실천은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너무 많이 사지 않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먹을 수 있는 만큼 요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전에 음식 조리법을 충분히 숙지한 후 요리하면 식품 손실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먹을 수 없는 재료는 냉동 및 저장하고, 외식할 때 먹을 수 있는 양만 주문하는 것 등을 실천할 수 있다. 지구상에는 500만~3000만 종의 생명이 살고 있다. 생물 다양성은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공기, 물, 음식 및 주거에 유익한 조건을 제공한다. 그러나 유엔환경계획(UNDP)은 2019년 인류의 식량과 에너지 요구가 증가함에 따라 약 100만 종의 동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식품 손실을 막으면 지구환경은 물론 생명 종 다양성도 보전할 수 있다.
본지 1989년 12월 22일자(제2호) 발행신문에는 황룡사 구층목탑을 형상화한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 계획을 비중 있게 다뤘다. 현재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특별법과 시행령이 제정돼 사업에 탄력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사업 계획이었다. 당시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신라 최대 가람인 황룡사지 종합전시관이 구층목탑형으로 120억원의 예산을 들여 높이 80m 규모로, 1992년 착공해 1997년 완공된다’고 전했다. 건립 위치는 황룡사지 동남쪽 바로 옆 부지 5000평, 연건평 1450평 규모로 신축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전시관에는 4만여점의 황룡사지 출토 유물과 경주지역 중요문화재를 전시하고, 관광효과를 높여 국민교육도장으로 활용하게 된다고 했다. 황룡사지 전시관 층별 세부 계획으로는 지하층과 2·3층은 전시실, 1층은 공개홀로 사용한다. 4~6층은 휴식공간, 7~9층은 전망대로 쓸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건축 방법으로는 외형은 황룡사 9층 목탑을 본뜨고, 내부는 현대 건축기법을 사용하며, 목재보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철물골조와 알루미늄 등을 사용해 짓게 된다고 했다. 기사에는 1976년부터 1983년 12월까지 경주고적발굴조사단에 의해 황룡사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금당지를 비롯 탑지, 강당지, 화랑지 등을 확인했고, 금속류 2000점과 기와벽돌류 3만4000여점 등 총 4만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하지만 전시공간이 없어 그동안 방치해 온 상태라고 했다. 당시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 계획을 수립한 곳은 경주시다. 시는 황룡사지 구층목탑을 복원하기로 했으나 현대의 기술 수준으로는 목재 구층탑 건립이 어려운데다 정확한 고증이 되지 않아 복원 대신 전시관을 건립하기로 했다는 입장도 전했다. 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황룡사 구층목탑 복원의 핵심인 기술 수준이나 고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는 것이 기사에서도 드러나 있는 대목이다. 당시 기사대로 이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됐더라면 이미 1997년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이 완료돼 현재 경주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을 것 같아 아쉬움이 적지 않다. -전시관 건립 종교계 반대 입장에 부딪혀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 계획은 경주시의 의도대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어오다 지난 1994년 8월 24일자(제215호) 본지 발행신문에는 당해 예산에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을 위한 용역비로 1억5000만원이 편성돼있는 기록이 나왔다. 하지만 4년여 뒤인 1998년 2월 4일자(제358호) 신문에서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 기사가 나온다. 경주시가 추진하는 황룡사지 전시관이 불교계의 반대 입장에 부딪혔다는 것. 신문에는 당시 불교문화계가 “이는(황룡사지 전시관) 자칫 황룡사 구층목탑이 갖는 종교성과 역사성 등은 무시되고 관광용 볼거리나 교육용 전시실로 전락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황룡사터에 전시관을 세우는 것은 유물과 현장답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다. 앞으로 문화재위원회에서 외형과 건립위치만 결정하면 된다”며 무리가 없음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또 이 보도에서는 황룡사지 전시관 착공을 1999년, 완공은 2008년으로 기록했다. 1998년 보도된 당초 1997년 완공 계획에서 11년 늦어졌다. -국립박물관도 전시관 건립에 반대 황룡사지 전시관이 종교계 외 또 다른 장벽이 있었던 것을 시사하는 인터뷰도 있었다. 지난 1998년 2월 25일자(제361호) 발행신문에서다. 본지가 당시 국립경주박물관장이었던 강우방 관장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나온 발언으로,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황룡사지 전시관 등 건립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강 관장은 “그러한 문제의 발상부터 어이없는 일이지만 어떻게 (경북)도에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절차 없이 시작단계에서 (건립 계획)발표를 할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일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사업이라면 당연히 국가적인 차원에서 취급할 문제이며 문화재관리국의 절차를 충분히 거쳐서 발표가 되어야 시행할 수 있는 일을 지방차원에서 발표를 하다니 도저히 저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요. 만약 황룡사터에 전시관이 세워지면 소중한 문화유산은 또 하나 영원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을 반대하는 입장이 분명히 드러나는 내용이었다. 당시 국립박물관의 속내가 드러나는 내용의 기사도 검색을 통해 찾아볼 수 있었다. 2014년 9월 1일 연합뉴스에 보도된 내용을 인용하면 이렇다. 『····전략··· 이 분황사 동편 원지가 한창 발굴조사가 이뤄지던 무렵, 현장설명회에 참석한 국립중앙박물관장 출신 한 지도위원은 아예 공공연히 이런 말을 했다. “황룡사지 전시관이 들어서면 국립경주박물관이 죽는다. 누가 (황룡사 유물을 보러) 경주박물관을 찾겠는가?” 당시 문화재계에 영향력이 막강했던 그는 문화재위원이기도 했다. 국립경주박물관 보호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이런 논리는 유적 보호라는 그럴 듯한 명분과 결합해 경주에 제2의 국립박물관(전시관)을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리게 만든다 ···후략···』 한마디로 제 밥그릇 챙기기였다. -건립 부지에 수많은 유적 쏟아지며 결국 무산 황룡사지 전시관이 무산된 또다른 결정적 이유는 건립 부지에서 유적이 무더기로 발굴되면서다. 2001년 11월 19일자(제531호) 발행신문에서는 당시 발굴현황을 보도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안압지와 용강동 원지(苑池)에 이어 3번째 원지와 중요 유적이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부지 내에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원지와 축대, 배수로, 정원의 외곽 담장, 우물 등 중요 유적과 금동판불(金銅板佛) 등이 출토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연구소측은 또 현재까지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로는 귀면와, 연화문 막새 등 기와와 벽돌류 400여점, ‘관병(官甁)’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토기와 그릇 67점, 금동제판불 등 금속제 26점, 활석제 용기 등 모두 545점이라고 밝혔다.』 당시 수많은 유적이 출토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 추진 동력도 점점 꺼져가고 말았다. -황룡사 역사문화관 활용방안 수립 서둘러야 우여곡절 끝에 황룡사지 전시관 대신 ‘황룡사 역사문화관’이 지난 2013년 착공해 2016년 11월 19일 문을 열었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은 황룡사터 인접한 부지 1만4000여㎡에 연면적 2865㎡ 2층 규모의 한옥 건물로 지어졌다. 내부에는 황룡사의 상징인 9층 목탑 10분의 1 크기 모형을 전시한 목탑전시실, 황룡사 건립부터 소실까지 전 과정을 담은 3D입체 영상실,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신라역사전시실 등으로 구성돼있다. 하지만 개장한지 6여년이 지났지만 정작 이곳을 찾는 시민 및 관광객은 많지 않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은 건립 당시 문화재 훼손 등 논란도 있었지만 지금은 경주의 역사문화관광자원이다. 먼저 유적 전시, 공연, 문화재 활용 사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용해 국민적 관심을 얻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신라역사의 정수이자, 천년고도의 정체성이기도 한 황룡사 복원의 염원을 모으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행정이 요구된다. 비록 제2의 박물관이 될 수 있었던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계획은 무산됐지만, 당시 행정에서 시도 자체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주고 싶어 하는 시민들이 많을 듯하다.
경북도는 침체된 농축산 유통분야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해 당초예산 대비 710억원이 증액된 1조원(9990억원)의 1회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이번 추경 예산은 민선8기 출범과 더불어 농업농촌의 4차 산업화를 통해 농업은 첨단 산업, 농촌은 도시와 상생하는 힐링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디지털 농업 대전환 사업이 반영됐다. 주요 사업으로는 먼저 디지털 혁신 농업타운사업이다. 도가 준비 중인 신개념 농촌마을로 마을 전체를 영농 법인화시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스마트팜과 식물공장 등 첨단산업을 구심점으로 공동영농체계를 갖춰 청년농업인과 기존농업인이 함께 공존하는 농촌 마을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또 임대형 수직농장 조성사업(30억원)으로, 농가 고령화 및 이상기후에 대응해 첨단 농업 인프라 구축을 통한 청년농 및 신규 창업농들의 인구유입을 위해 추진할 계획이다. 다음으로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 팜 조성사업(79억원)은 청년농들에게 적정 임대료만으로 스마트팜을 경영하고 지역에 정착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업이다. 또 지난 6월 국비 공모로 선정된 곤충양잠산업 거점단지 조성사업(7억5000만원)은 곤충산업의 생산·가공·유통 기반 집적화를 통해 지역의 새로운 먹거리 사업으로 키울 계획이다. 특히 코로나19 장기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으로 고통 받는 농민들의 민생안정을 위해 중점적으로 예산을 편성했다. 우선, 수출규제 강화와 비료 가격 급등에 따른 식량 안보 확보와 농업인의 경영 부담완화를 위해 무기질 비료가격 인상차액 예산(303억원)을 편성했다. 지난해 쌀값하락 및 쌀 생산비 증가에 따른 어려움을 겪은 농가를 위해 벼 재배 농가 특별지원예산(47억원)도 편성했다. 또 농작물 재해보험료 지원예산(60억원)을 증액하고 각종 자연재해에 대비해 농가의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할 방침이다. 이외에도 사료가격 급등에 따른 사료비 절감과 농가 경영안정을 위해 조사료 생산지원, 조사료 시설 및 기계지원, 사료작물 종자구입비 예산 등을 편성했다. 김종수 경북도 농축산유통국장은 “이번 추경은 농축산유통분야 예산 1조원 시대를 맞아 코로나19 지속, 고물가 시대로 침체된 민생경제를 살리고 어려운 농민들의 농업현장에 필요한 예산을 우선 편성했다”고 밝혔다.
경북도는 7월부터 적용되는 도시가스 공급비용을 동결키로 했다. 도는 지난 20일 공인회계사, 소비자 단체 등으로 구성된 ‘물가대책위원회’를 열어 이 같이 결정했다. 도시가스 소비자요금은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승인하는 도매요금과 도지사가 승인하는 지역 도시가스회사 공급비용을 합산한 금액으로 매년 공급비용에 대한 연구용역을 거친 후 요금을 조정하고 있다. 올해 최종 결정된 도내 4개 권역의 공급비용은 최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물가를 감안해 서민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택용 공급비용을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했다. 권역별로 살펴보면 포항권역은 2.4199원/MJ(동결), 구미권역 2.4811원/MJ(동결), 경주권역2.4541원/MJ(0.0090원 인하), 안동권역은 3.1830원/MJ(동결)으로 결정됐다. 이에 도내 도시가스 사용가구는 정부의 도매요금과 7월부터 결정된 공급비용이 합산된 금액을 적용받아 가스사용량에 따라 요금이 부과된다. 한편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경북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지난해 같은 달 보다 7.2% 올라 외환위기 이후 약 2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경북도는 7월부터 경제부지사를 단장으로 비상경제대책본부를 구성해 물가안정관리와 민생경제회복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시군과 협력해 지방공공요금 동결 기조를 유지하고 매주 물가동향을 파악하는 등 비상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또 분야별 지방물가 관리품목에 대해서는 책임관리를 강화하고 경제위기에 취약한 계층에 대한 긴급지원 대책도 추진한다. 특히 물가가 연일 고공 행진하는 상황을 틈 타 건전한 상거래 질서를 어지럽히는 위조상품 판매행위나 농축수산물의 원산지 표시 위반행위 등에 대해서도 지도와 단속에 나서고 있다. 이달희 경북도 경제부지사는 “고물가로 어려운 민생경제 상황을 감안해 버스와 택시 요금에 이어 이번에 도시가스 요금까지 동결하는 특단의 대책을 취했다”며 “물가가 안정적 수준으로 유지될 때까지 강력하게 물가안정관리 대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경주시가 하절기 폭염기간 동안 복지사각지대 위기가구를 집중 발굴·지원한다. 지속되는 여름철 폭염과 코로나19 재확산 등 감염병 위기 상황에 따라 저소득 취약가구의 선제적 발굴조사 후 복지 상담 및 서비스를 연계하기 위해 실시한다. 시에 따르면 복지사각지대 발굴관리시스템(행복e음) 대상자 598세대에 대한 현장방문을 11일부터 내달 26일까지 실시한다. 발굴 대상자는 △전·월세 기준금액 이하 주거 취약자 중 위기사유가 통보된 독거가구 △여름철 주거환경·건강 악화·코로나19로 고립이 우려되는 독거노인 △복지멤버십 가입자 중 생계급여, 장애수당 자격이 예상되는 가구 등의 저소득 취약계층이다. 경주시는 위기가구 발굴을 통해 △상담, 자원연계 등 지속적 서비스 제공 및 모니터링 △지원 불가한 가구 민간자원 연계 △복합적인 위기상황 가구 통합사례관리 대상자 선정 등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특히 통합사례관리 대상자로 선정되면 복지·보건·고용·주거·교육 등 필요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연계·제공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상담 모니터링한다. 조사방법은 읍면동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이 직접 현장을 방문하거나 개별 전화상담을 통해 진행한다. 경주시 관계자는 “폭염 등 계절적인 요인으로 인해 취약계층에게 더욱 어려운 시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어려운 이웃이 있다면 반드시 주소지 행정복지센터나 시 복지정책과로 알려 위기가구가 신속하게 지원 받을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지난해 여름철 폭염 대비 위기가구 조사로 516건 발굴, 377세대 복지상담 지원, 공공 및 민간자원 연계를 실시했었다.
경북도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8월부터 도 자체적으로 ‘경북형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사업’을 확대 지원한다. 현행 지원사업은 기준중위소득 180% 이하 가구에 시술비 중 본인부담금의 90%를 지원해 왔다. 또 소득기준을 초과하는 가구는 추가 지원 없이 시술비를 전액 자부담했다. 이에 경북도는 8월부터 소득기준을 폐지해 지원 대상을 대폭 확대하고 시술비 중 본인부담금의 100%를 지원해 자부담액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또 시술별 1회당 최대 지원금액도 한도 상향해 지원한다. 대상자는 신청일 기준 지역에서 6개월 이상 거주한 모든 난임부부가 대상이다. 대상자는 난임시술 지정 의료기관의 진단서를 여성 주소지 관할 보건소에 제출하고 지원결정통지서를 발급받아 시술 의료기관에 제출하면 된다. 한편, 경북도는 다양하고 폭넓은 난임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난임부부의 정서적 지지 및 심리상담 지원을 위해 지난해 10월 안동의료원 내 경북권역 난임·우울증 상담센터를 개소했다. 또 올해 9월에는 인공수정 및 체외수정 시술이 가능한 ‘경북 안동의료원 난임센터(아이ON센터)’가 개소한다. 아울러 경북한의사회와 연계해 난임부부에게 한약 처방 및 한방 시술 등을 지원하는 한의약 난임치료 지원사업을 통해 다양한 난임치료의 기회를 부여할 계획이다. 박성수 경북도 복지건강국장은 “지난해 경북의 합계 출산율은 0.97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해마다 출생아 수도 감소하고 있다”며 “만혼과 고령 출산으로 아이 한명 낳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 사업이 아이를 원하는 경북 모든 가정에 희망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가 충효이안경로당에서 시행하는 ‘나도 멋쟁이’라는 프로그램이 어르신들의 활력을 높이고 있다. 회상프로그램은 젊은시절을 기억하며 추억으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주시지회가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인생을 서로 공유하고 소통과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집중력 향상 회상프로그램이다. 학습이나 지각 추론, 문제해결, 기억 등 인지기능은 지식과 정보를 효율적으로 조작하는 능력이지만, 노화로 이 기능이 하락하기 쉽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지속적인 회상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인지기능저하를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진행하기에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고 그 시대를 살아온 어르신들에게 과거를 통해 현재의 삶에서 행복을 찾기도 한다. 어르신회상프로그램은 야외활동이 줄어들고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 있기에 경로당에서 친하게 지내거나 대화를 나누면서 공감능력 및 사회력 향상 등 긍정적인 효과를 끌어낸다. 또한 1대1 대화를 통해 두뇌단련에 도음이 된다. 미술작업 프로그램과 함께 자주 실시되는 규칙적인 걷기프로그램도 만성질환 예방과 활력증진에 도움을 주고 있다. 회상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집에서 경로당까지 걷기실천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동네에 나와 좋은 공기마시며 예쁜 꽃도 보고 행복선생님 따라 프로그램에 참여하니 무척 즐겁다”며 “경로당에 나오는 인원이 적어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열정을 다하는 행복선생님이 있어 무척 좋고, 이런 프로그램이 앞으로도 계속 진행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회상프로그램 전 반드시 실시하는 어르신 스트레칭 프로그램은 개인별 건강체크뿐만 아니라 참여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또 어르신들은 참여하는 프로그램마다 직접 만든 작품을 서로 공유하며 웃음꽃을 피워 더욱 활기가 넘치고 있다. ‘나도 멋쟁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배명숙 행복선생은 “짧은 시간이지만 어르신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길 바란다”며 “어르신들께서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며 고립감과 우울감 해소로 남은 여행이 즐겁고 행복하길 응원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해마다 휴가철이면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고객과 숙박시설 사이의 갈등을 경기도가 선제적으로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경기도는 지난 7월 21일 보도자료를 내고 예약금 환급 거부 등 여름 휴가철에 집중되는 숙박시설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 경기도 소비자정보센터 등을 통한 자율 조정을 당부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올해 7월 15일 기준으로 이미 1570건이 접수됐는데, 5월까지 월평균 224건에서 6월 276건, 7월 15일 기준 174건 등으로 증가세다. 특히 경기도는 최근 온라인 숙박중개업체 이용이 보편화되고 예약과 동시에 대금 전체를 결제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계약을 취소하는 경우 위약금 관련 소비자분쟁이 늘어나는 바, 소비자 상담기관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조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비수기의 경우 1일 전이나 당일 취소 시에만 위약금이 10~30% 부과되며, 성수기의 경우 7일 전에서 당일까지 기간에 따라 10~90%의 위약금이 부과된다. 다만 천재지변으로 인해 숙박업소를 이용할 수 없으면 계약금 환급을 요구할 수 있고, 감염병의 예방과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1급 감염병’으로 시설 폐쇄, 재난지역 선포 등 행정명령이 내려진 경우에도 계약금 환급이나 위약금 50%를 감면받을 수 있다. 숙박시설 계약으로 피해를 입은 경기도민은 자율 조정 신청서, 숙박계약 관련 자료, 도민 입증서류 등을 갖춰 경기도 소비자정보센터 전자우편(ggconsumer@gg.go.kr)으로 자율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다만 국내 숙박중개업체나 숙박시설이 아닌 해외 사이트나 시설에서 예약한 경우에는 국제거래 소비자포털(crossborder.kca.go.kr)에 신청해야 한다. 경기도는 기본적으로 업체와 소비자간 자율 조정을 원칙으로 하되 조정되지 않으면 경기도가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분쟁조정을 지원하게 된다. 신청 서식은 경기도 소비자정보센터 누리집(www.gg.go.kr/gg_info_center) 공지사항 안내에서 내려받을 수 있으며 신청과 관련된 상담은 전화(031-251-9898) 문의하면 된다. 휴가철 숙박에 대한 갈등은 다른 지역에서도 매우 잦은 문제인 만큼 경기도의 선제적 대응에 대해 타지역 지자체들이 눈여겨 볼 만하다.
굳이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지 않아도 훌륭한 선생님은 학생을 성적으로 보지 않고 고유한 인격체로 대하며 학생 개개인의 장점을 북돋아 타고난 저마다의 기량과 재주를 발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분이다. 사실 훌륭한 선생님이 아니라 보편적인 학교 교육에서 당연히 추구해야 할 가치이지만 오랜 기간 성적위주로 뒤틀린 교육계에서는 이 당연한 일을 하는 선생님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지난주 올라온 천소영 씨의 페이스북 글에서 그 찾아보기 어려운 선생님 한 분이 소개돼 많은 페부커들의 공감을 샀다. 선생님은 천소영 씨 딸의 고교 1학년 담임을 맡으신 분인데 학생할 기록부에 쓴 평가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모두를 소개할 수 없어 일부 중요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타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심, 맡은 일에 대해서 티내지 않고 꼼꼼하고 성실하게 완수하는 책임감, 겸손하고 다정한 이해심, 어려운 친구들의 이야기를 성심껏 들어줌, 친구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최대한 돕는 학생, 칭찬과 격려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더 나은 모습을 위해 노력한다 등이다. 실례로 선생님은 딸이 교내 합창대회에서 당일에 좋지 않은 컨디션이었음에도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점을 들어 얼마나 책임감과 화합력이 높은지를 알려주기도 했다. 공부에 대해서는 딸이 자신의 목표인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 관련 서적을 보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독학 중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으며 모자라는 국어 성적을 보충하기 위해 노력하는 점을 칭찬했다. 특히 학급과 학교의 행사와 환경 미화에 참여해 선생님이 하는 일에 정성을 갖고 도와준 것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천소영 씨는 고1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딸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친구를 감싸고 돌봐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그런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선생님께 감동했음을 알리기도 했다. 선생님의 평가를 읽고 있으니 학생들에 대한 선생님의 교육철학이 뚜렷하게 보인다. 성적위주, 경쟁위주의 주입식 학교공부가 아닌 그야말로 인격의 함양, 함께 살아가는 지혜, 학교 공부를 떠나 자신만의 세상을 개척하는 순수한 노력들을 존중하고 북돋우는 것이다. 이런 선생님이 학교 전반에 일반적으로 계신다면 학생들이 얼마나 행복해질까? 이게 당연한 일에 감동하고 사연 올린 천소영 씨도 참 좋은 어머니임에 분명해 보인다!!
책을 어느 정도 완성하고 나면 작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어떤 제목을 붙이면 책이 좀 그럴싸하게 보이고 책 내용을 단숨에 알려줄 수 있을까? 판매를 염두에 둔다면 어떻게 이름 지으면 판매에 조금이라도 유리할까 같은 고민이다. 거짓말 좀 보태면 책 제목 정하는 것이 책 쓰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어렵게 느껴진다. 자서전이란 것이 기본적으로 사람의 인생을 쓰는 것이고 별의별 사람들이 자서전을 펴내는 마당이니 조금이라도 눈에 띄거나 튀어 보이는 제목을 정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런 제목이 쉬운 것도 아니고 자칫 제목을 잘 못 정하면 기껏 낸 책이 성격 구분을 못 해 폭망(폭삭 망함)하는 일도 생긴다. 그 대표적인 폭망이 자서전 쓰기 강좌를 하면서 몇 번 이야기한 나의 첫 자서전 ‘니, 꼬치 있나?’다. 이 책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경주시 교촌에서 뛰어놀며 부대낀 이야기를 쓴 것이다. 말했듯이 그 진행이 재미있어 daum의 메인 화면에 자주 소개되며 내 블로그를 일약 ‘우수블로그’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무려 daum 30대 블로그에 들 정도였으니 글의 재미나 소재의 특별함이 증명되고도 남았다. 이를 관심 가지고 지켜본 ‘금붕어’라는 출판사가 책을 펴내자고 제안해 일사천리로 출판이 진행됐다. 원고는 이미 나와 있고 각각의 원고마다 제목까지 다 정해져 있으니 달리 손댈 게 없었다. 그러나 딱 하나, 가장 중요한 제목이 정해지지 않았다. 블로그 제목처럼 그냥 ‘386 세대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할까 하는 생각부터 시작해 아마도 한 1천 개쯤의 제목을 떠올렸을 것이다. 책의 내용과 추억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삼빡한 제목을 정할지를 책이 디자인되고 편집되는 일주일 넘게 고심했다. 나뿐 아니라 출판사에도 고민했고 내 지인들이 죄다 달려들어 고민했다. 특히 당시에 인터넷 카페가 최고조로 인기 있던 시절이었고 내가 속한 카페마다 일부러 내 글방이 따로 만들어질 만큼 인기 있었기에 카페 멤버들의 기대도 상당했다. 내가 등록된 카페마다 작은 경품을 걸고 제목 정하기 열풍에 불을 붙였다. 그러다 결국 ‘니, 꼬치 있나?’로 결정했다. ‘니, 꼬치 있나?’는 책 속 한 단락의 제목이었다. 표준말로 ‘너 고추 있니?’ 다시 말해 ‘너, 남자냐’, ‘너, 사나이 대장부냐?’라는 말이었다. 그때 교촌 위쪽 반월성 어귀에 ‘문디바우’라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담력 시합을 벌이면서 나온 말이다. 내 블로그에 이 단락이 발표되었을 때 그 글을 보고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어 글이 재미있다고 시쳇말로 난리가 났었다. 김유정의 ‘봄봄’이나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김동인의 ‘배따라기’보다 백 배 재미있다는 반응이었었다. 이 결정은 ‘니, 꼬치 있나?’의 뜻을 잘 아는 경상도 사람들이 강력한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예측과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일단 책을 펴볼 다른 지방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황당무계한 속셈이 곁들여진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부터 말하면 이 결정은 두고두고 후회한 최대의 오판이었다. 마침내 책이 나왔고 전국의 판매대에 올라갔지만 블로그의 엄청난 인기와 달리 책 판매가 영 시원치 않았다. 그나마 블로그와 온갖 카페 펜들의 힘을 입어 잠깐이나마 베스트셀러에도 올랐지만 그 정도로 끝이었다. 내심으로 최소한 10쇄는 찍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3000부 1쇄 찍고 절판됐다. 역시 블로그의 자체의 파워와 온갖 카페 회원들의 성원으로 그해 말 daum에서 개최한 ‘인기 있는 책 순위’에서 무려 1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만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 판매실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출판사와 나는 제목이 잘 못 되었다고 판단했다. 책 판매가 부진했던 데는 온갖 이유가 있었겠지만 제목이 선명하지 못했다는 점에 최후의 방점을 찍은 것이다. 하필 책 디자인도 ‘너 사나이 대장부냐?’고 묻는 제목을 하나도 반영하지 못했다. 디자이너가 표지에 꽃을 잔뜩 그려 놓아서 얼핏 보면 그 무렵 유행하던 무슨 도배지나 장판지를 보는 것 같았다. 심지어 애석하게도 경상도 사람들조차 이미 표준어의 거대한 물결에 밀려 ‘니, 꼬치 있나?’의 꼬치를 무슨 주점의 안주쯤으로 알았고 다른 지역 사람들은 더더욱 책 익숙하지 않아 책 판매대 가운데를 점령하고 있던 내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제목으로 폭망한 반면 제목이 좋아서 성공한 책들도 엄청 많다. 그런 예는 지나치게 많아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지만 얼핏 떠오르는 제목들이 ‘마시멜로 이야기’, ‘아프니까 청춘이다’,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같은 것들이다. 사실은 책 내용보다는 책을 펴낸 저자들이 더 유명해서 성공한 책이지만 제목만큼은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책들이다. 이들은 원하는 독자층을 정확하게 타켓으로 삼아 그들의 감성을 잘 건드린 최고의 제목들이다. 내가 펴낸 어느 자서전에서 기억나는 제목이 하나 있다.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라는 제목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서울의 모 구청장 선거에 나가는 분이었는데 책을 다 써놓고 어느 지인으로부터 이 제목을 전달받았다며 좋지 않으냐고 물었다. 선거용 전략으로 딱 좋겠다 싶어 그렇게 제목을 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제목에 관해 저자와 내 관점이 조금 달랐다. 주인공은 자기를 중심으로 두고 자기 자신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 행복하다고 판단한 반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저자가 행복하다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내가 크게 웃었다. “아니, 선거에 나가실 분이 이렇게 자기 위주로 생각하면 어떻게 구민들의 마음을 얻겠습니까? 당연히 구민들이나 유권자들이 있어서 내가 행복한 것이어야 하지요” 내 설득에 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점이 달라지니 똑같은 제목이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와닿은 것이다. 결국 타인의 존재로 저자가 행복해진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머리말과 본문해석이 추가되었고 책이 나온 뒤 읽은 분들에게 제목 참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런가 하면 내가 경주최부자댁을 집중 취재해 쓴 책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는 제목 정하는 데만 무려 1년이 걸린 책이었다. 이 책은 경주최부자 종손 최염 회장님을 모시고 무려 3년이나 인터뷰를 진행했고 각 내용에 맞추어 오랜 취재를 통해 완성했는데 막상 다 써놓고 나서 제목을 확정하지 못해 애먹은 책이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제목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는 ‘큰 바보’라는 최고의 경의를 담은 제목이었다. 그러나 책을 내는데 함께 참여하신 경주최부자댁 종손이신 최염 회장님 입장에서는 혹여라도 후손이 조상에 대해 불손하게 비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셨다. 이 일로 최염 회장님이나 나를 통해 의견을 주신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그중에는 독립운동사의 큰 별이신 조동걸 교수님,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이셨고 학술원 회원이셨던 박병호 교수님 같은 석학들도 계셨다. 이런 분들이 경주최부자 가문이야말로 바보 중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큰 바보’라 해도 좋은 분들이라며 손을 들어주시고서야 비로소 책 제목을 정할 수 있었다. 그러느라 일 년을 넘게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도 그 책 제목을 정하기는 참 잘했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고 있다. 이렇게 제목 정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물론 제목보다 내용이 좋아야 하지만 때로는 좋은 제목 하나가 책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으므로 제목 정하기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정글 같은 책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선 눈길부터 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