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학교 중학부 1학년 학생들은 25일 자유학기를 맞아 내남면 소재 한우리 팜에서 2차 진로탐색 체험학습을 실시했다. 한우리 팜은 농장체험장소로 농축산물을 재배, 생산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고 견학할 수 있는 곳이다. 이번 활동은 학생들이 다양한 꿈과 끼를 발견하고 계발할 수 있도록 농장체험과 더불어 한우피자, 발효빵, 산양유 아이스크림 만들기 등 다양한 형태로 실시됐다. 학생들은 이번 체험에 참여하여 영농활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제과제빵사, 축산관리인 등 다양한 직업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자유학기 진로체험활동은 체험 및 현장 견학을 통해 학생들이 꿈꾸는 미래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개인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해 자신의 특성에 맞는 진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실시되고 있다.
동국대 간호학과 심재란 교수가 최근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개최된 ‘2018 한국간호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포스터발표부분 우수논문 발표상’을 수상했다. 한국간호과학회는 국내간호학계 학회 중 가장 큰 학술연구단체로 현재 SCI, SSCI 저널인 ‘Asian Nursing research’, ‘Journal of Korean Academy of Nursing’ 을 발간하고 있는 학회이다. 심 교수는 ‘중년여성의 당뇨 전 단계 예측요인으로 허리둘레/신장비율과 이상지질혈증이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통해 질병으로 이환되기 이전의 위험군을 효과적이고 간단한 선별지표를 통해 질병발병을 예측하고 조기 예방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 점을 인정받아 우수 논문발표상을 수상했다. 심 교수는 “이 연구를 통해 중년여성에서 당뇨병 환자로 이환되기 이전인 당뇨전단계 위험요인을 파악하고, 특히 복부 비만 지표들 중 허리둘레/신장 비율이 이상지질혈증과 함께 체질량(BMI)보다 당뇨전단계 위험군을 간단하고도 효과적으로 선별하고 당뇨 전 단계 위험군에 대한 연관성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3월 동국대 간호학과 교수로 임용된 심재란 교수는 서울 아산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16여 년간 근무경력을 가진 임상 전문가이며 주 연구 분야인 심혈관 질환과 관련하여 다수의 SCI급 저널에 연구를 게재한 바 있다
무산중․고(교장 설승환)와 산내중․경주마케팅고(교장 이순기)는 26일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연합축제를 개최했다. 현재 이들 학교는 공동 교육과정의 운영을 통해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소규모 학교의 운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이번에 4개 학교가 연합해 축제를 개최, 학생과 학부모를 비롯한 지역민들에게 어울림의 장을 제공하고 체험 부스 운영 및 음악제를 열어 학생들의 발전을 도모했다. 교사와 학생들은 수학, 과학, 독서, 기술, 예술 등 20여 개의 다양한 분야의 체험부스를 직접 계획하고 준비했다. 그리고 김유신 화랑의 수련활동 장소였던 단석산을 중심으로 우리 지역의 고유한 정신문화인 화랑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화랑의 혼과 얼을 형상화하는 체험의 장을 마련했다.
경주교육지원청은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경주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서 지역 초ㆍ중ㆍ고 교사를 대상으로 ‘2018학년도 독도사랑 결의식 및 강연회’를 개최했다. 대한제국칙령 제41호(1900년 10월 25일)는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해 일본의 억지 주장에 맞서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이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독도의 날을 제정했다. 이번 독도사랑 결의식 및 강연회는 일본의 군국주의 야심이 노골화되는 상황에서 독도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독도사랑 정신을 함양해 우리 땅 독도를 수호하는데 앞장서주기를 바라는 목적에서 마련됐다. 강사로 초빙된 (재)독도재단 김수희 부장은 일본의 독도 영유 주장을 반박하는 여러 증거들을 일일이 제시하며 독도가 주인 없는 땅이라는 일본의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자라나는 학생들이 앞으로 독도를 더욱 사랑하고 아껴야만 독도를 굳건히 지켜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현동 교육지원과장은 "독도 수호는 행동으로 실천되어야 하며 독도의 날을 맞이하여 독도 수호 결의식은 경주에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의 의지 표현될 것이다. 이번 강연이 앞으로 학생을 지도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주지역 우량기업 및 구직자를 연결하고 각종 취업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경주시 취업박람회가 오는 30일 오후 1시부터 경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다. 포항고용노동지청(경주고용복지+센터)과 경주시의 공동 주최로 올해 두번째 열리는 이번 행사는 지역 제조업 등의 경기부진이라는 악화된 고용환경에도 구직자들의 우량기업 취업을 신속 지원하고 고용서비스 및 기업정보 상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현장 제공함으로써 지역 고용시장의 인력, 정보 등 미스매치 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람회에는 발레오전장시스템즈코리아(주) 등 경주 및 인근 포항 지역기업 80여개업체가 참여한다. 이 중 40개사는 박람회 현장면접 기업으로 개별 부스에서 채용상담과 면접을 진행한다. 나머지 40개사는 게시판에 구인내용 안내를 통해 간접 참여하게 돼 전체적으로 기술기능직, 단순생산직, 사무직 등 필요인력 총 300명 이상의 채용을 목표로 한다. 또한 행사에서는 개별 면접진행 이외에 이력서 클리닉, 직업심리검사, 진로상담, 및 청년층 공공기관 채용정보 상담 등 다양한 부대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특히 채용대행,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취업성공패키지 등 고용센터의 주요 서비스 내용도 자세히 상담 안내해 준다.
동방초(교장 서인숙)은 지난 24일 경북 예천 진호국제양궁장에서 열린 ‘경북정체성 향상 골든벨 도대회’에 15명의 학생이 대표로 참가했다. 이번 대회는 경북의 역사와 자랑거리 학습을 통해 경북정체성에 대해 이해하고 내면화 및 실천으로 미래 경북 인재를 육성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동방초는 이번 도대회를 앞두고 지난 5일 3~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교내 대회를 실시했다. 그리고 지난 3월부터 꾸준한 학습과 교육을 받은 결과 4~6학년 대표가 선발됐다.
금장초는 지난 24일 지난 2년간의 시범학교 운영을 보고하는 연구학교 운영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날 보고회는 ‘다함께 차차차’ 프로젝트 운영을 통한 양성평등 문화 확산이라는 주제로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 학부모 모두 연구 대상에 포함해 운영했다. ‘다함께 차차차’ 프로젝트는 차근차근, 차별을 없애고, 차이를 인정하여 양성평등한 문화를 확산시켜 나가자는 의미로 선정했다. 양성평등 의식의 하위 요소로 ’젠더 분석력‘, ’젠더 인지력‘, ’젠더 감수성‘으로 설정하고 이 3가지 요소를 결합해 양성평등 의식을 신장시키는 중점 수업 모델을 개발해 프로젝트 형태로 운영했다. 학년별, 한 학기에 한 번씩 주제 중심 문제해결형 프로젝트 학습을 설계해 운영했으며 운영 보고회 당일 2학기 프로젝트 설계의 한 차시를 학급별로 선정해 전교사 수업 공개를 실시했다. 또한 양성평등을 이야기로 풀어가는 ’토크 콘서트‘를 기획해 ’함께 일하고 함께 쉬는 우리들의 양성평등 이야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교사 대표 2, 학부모 대표 1, 전문가 1명 등 총 4명의 패널이 ’가사분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으며 양성평등지수 체크리스트를 활용해 개인의 양성평등 지수를 확인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경주시는 오는 27일 황성공원 시민운동장 광장에서 ‘제15회 사랑나눔 건강걷기 및 경주시민 건강체험 한마당’ 행사를 개최한다. 이날 행사는 식전공연에 이어 몸풀기 체조 후 황성공원에서 출발해 반환점인 장군교를 지나 다시 황성공원으로 왕복 5km 코스로 진행된다. 부대행사로는 혈압ㆍ혈당 바로알기, 스탭매트 운동, 스트레스 측정, 응급처치, 치아사랑 홍보관 등 16개의 다양한 건강 체험관과 홍보관을 운영해 시민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도해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편 이번 행사는 경주시 보건소, (사)경주시청년연합회, (사)경상북도지체장애인협회 경주시지회, 위덕대가 공동 주관하고 월성원자력본부, 한국원자력환경공단, 불국사, 국제로타리3630지구, 보성마트 등 많은 기관과 단체가 후원으로 참여한다.
경주시 성건동주민센터는 지난 24일 ‘아름다운 성건동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주민과의 소통을 위한 ‘일일 명예 성건동장’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날 10월의 명예동장으로 강갑수 성건동 통장협의회장을 위촉하고 동장 업무현황 보고에 이어 민원업무 체험과 사업현장 점검, 경로당 방문 일정을 가졌다. 강갑수 명예성건동장은 “주민의 고충과 직원의 고충을 함께 느끼는 기회가 됐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주민과 시정의 가교역인 통장의 직무를 더욱 열심히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이희철 성건동장은 “일일 명예동장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이 직접 민원인과 상담하고 사업 현장을 확인하는 등 주민센터 행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적극적인 주민 중심의 소통행정 구현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일일 명예 성건동장은 이달부터 매월 1회 다양한 계층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경주소방서는 독거노인 등 재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응급상황 발생 시 간편한 신고서비스를 제공하는 ‘119어르신폰’을 보급한다고 25일 밝혔다. 이에 따라 경주소방서는 70세 이상 독거노인 중 중증장애인, 거동 불편자, 고령자 등 전수조사를 통해 선정된 81명의 어르신에게 다음달 24일까지 ‘119어르신폰’을 보급·설치할 계획이다. 119어르신폰은 독거노인 등 재난 인지와 대응능력이 일반인보다 부족한 사회적 약자 계층에 간편하고 특화된 신고 서비스를 제공해 소방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재난 취약계층에 안전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설치보급된다. 재난발생시 어르신들이 미리 입력된 단축버튼을 누르면 화재, 구조, 구급 등 재난 유형별로 자동으로 119 신고 후 음성멘트가 반복 송출되고 신고 접수 시 수혜자의 병력, 주소 등이 자동 표출돼 신속한 출동과 정확한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안태현 서장은 “이번 맞춤형 119어르신폰 보급·설치로 독거노인 등 재난에 취약한 어르신들에게 신속하고 적절한 소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주시 보건소는 지난 17일과 24일 이틀간 다목적실에서 다문화 임산부 20여명을 대상으로 ‘우리아기 애착인형 만들기’ 교실을 운영했다. 우리아기 애착인형 만들기는 예비엄마가 태아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아기를 위해 정성껏 첫 선물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으로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의 다문화 임산부들이 참가했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태교 문화가 낯선 다문화 여성에게 태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심어 주고 임신과 출산 관련정보를 제공하여 임신시기를 안정적으로 보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프로그램에 참석한 한 임산부는 “바느질이 태아에게 좋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서툴고 어렵지만 태어날 아기에게 애착인형을 만들어줄 수 있어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모르고 지냈는데 숨어있는 보석을 찾은 것 같아요” 서악동이 변했다. 최근, 김유신 장군의 누이 보희, 문희의 꿈 이야기 배경 장소인 선도산국립공원 자락으로부터 펼쳐지는 마을인 서악동을 두고 하는 방문객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왕릉과 고분과 사적들과 보물, 아름다운 지형과 자연경관을 보유한 이 마을은 전체적으로 평지와 산지형이 섞인 지형으로 이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은 드물다. 마을 곳곳은 요즈음 잔치같은 나날을 맞고 있다. 구절초며 국화들이며 가을꽃들이 잘 드러나지 않았던 문화재 경관이 회복되면서 그들과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내고 있는 것. 비교적 도심에서 멀지않은 서악동은 경주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역사문화경관과 더불어 힐링할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인 동네다. 그 변신의 끝이 어딜지 내년이, 내후년이 더욱 기다려지는 마을이기도 하다. 서악동 건너편 무열왕릉 뒤로 왕릉 4기를 비롯해 보물인 서악동 삼층석탑과 도봉서당, 진흥왕릉을 비롯해 진지왕, 문성왕, 헌안왕릉 등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이 마을 안에서 호흡하며 한눈에 시원스레 펼쳐진다. 이외에도 용작골 주상절리, 선도산 정상의 삼존불상 등 숨겨진 문화유산과 자연경관이 공존하는 곳이다. 하늘빛이 유난하다는 올해 가을이다. 여러차례 자연과 역사로부터 위안받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인 서악동을 찾았다. ‘문화유산활용을 통한 보존’이라는 신념과 열정으로 서악을 이처럼 환골탈태 시키며 오늘의 서악을 만든 경북문화재돌봄사업단 진병길 단장(신라문화원 원장)과 함께 이 마을을 걸어보았다. 걸어서 40~50분 정도면 이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었는데 마을 곳곳을 수놓고 있는 우윳빛 구절초가 나날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가려져서 방치되고 잊혀져가던 서악동의 문화유산들과 자연경관들은 ‘문화재돌봄’이라는 이웃을 만나 기품있는 마을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자연과 문화유산의 경관 회복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경주 될 수 있어 최근 경주에서 가장 큰 핵심적 변화가 있는 마을을 꼽으라면 당연히 서악동의 변신을 꼽을 수 있다. 자연과 문화유산의 경관 회복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경주가 될 수 있다는 우수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경주만의 잠재력으로 인근 도시에 영향을 미치고 그 도시들을 리드할 수 있는 것. 이미 여러 가지 기분좋은 징후와 소식들이 이곳 마을에 속속 전해지고 있다. 진병길 단장은 “전체적으로 이 마을의 변화는 서악서원 정비사업을 계기로 9년여에 걸쳐 변혁이 진행됐습니다. 문화재 돌봄을 지원받으면서 8년여 만에 대나무를 베어내는 등 6년간은 유적중심으로 정비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고요. 기존엔 문화유적 중심으로만 정비했다면 돌봄 사업이 도입되면서는 유적 주변경관까지 정비하게 됐습니다. 지난해부터 2년간은 마을 가꾸기 사업(KT&G의 전적인 후원과 함께 관계되는 주민들의 자부담 협력)을 진행해 집중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서악마을가꾸기 사업으로는 서악동 샛골마을 30여 집의 푸른 판넬지붕을 검은 유성페인트로 칠해 골기와와 조화를 이루고 담장낮추기, 돌담쌓기, 벽돌담장, 흰벽 페인트 작업, 마을길정비, 유휴공간, 주차공간 확보 등 마을경관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 전체 마을 담벼락을 비롯해 통일성이 있으면서도 조화롭게 단장하고 있다. 주민들의 대부분 자발적인 요청으로 마을 가꾸기가 쾌속으로 진행됐고 주민이 함께 마을을 가꿨던 것이다. 한편, 마을이 바뀌면서 부녀회가 재결성되기도 했다고. 최근엔 ‘구절초달빛음악회’가 수차례 열려 경주시민과 관광객들이 한데 어울려 가을 분위기를 만끽하기도 했다. 보물인 서악리 삼층석탑 주변에 꽃들을 심자 10평의 문화재가 2000평의 문화자원이 된 것이다. ‘문화재 활용이 보존이다’는 진 원장의 평소의 신념이 문화재 자원의 가치를 배가 시키고 있는 사례.
■ 문화 예술 공연‘창작오페라 신라향가시리즈 마담수로’일시 : 10월 27일(토) 오후 3시, 오후 7시 30분장소 : 경주예술의전당 화랑홀신라시대 대표 향가 ‘수로부인 헌화가’가 창작오페라로 새롭게 재조명된다.‘마담수로’는 오페라의 아름다운 선율에 코믹요소가 적절히 가미돼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공..
“‘자타카’ 또는 ‘한글대장경 본생경’을 읽을 때면, 경전 속 인물들의 외형과 심리적 묘사, 행동, 배경 등에 대한 설명들이 매우 생생하게 서술되고 있어 마치 바로 눈앞에서 한편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불교의 사상을 회화로 표현하고자 하는 저에게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는 보배창고를 만난 기분이었고, 이를 표현해 보고자 아잔타 제1굴과 제2굴의 도상을 재구성해보며, 조심스럽게 그 첫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법천 스님의 첫 번째 개인전 ‘현자 비두라 이야기’전이 오는 29일까지 JJ갤러리(관장 김정자)에서 펼쳐진다. 이번 전시에서 법천스님은 황토, 백토, 모래, 석채, 토채 등을 재료로 사용했으며, 사찰의 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벽화의 오래된 질감을 생생하게 재현한 바탕에 부처님의 전생이야기인 ‘자타카’에서 전하는 교화의 내용을 18점의 작품으로 풀어냈다. 법천 스님은 “아잔타 석굴의 도상과 현자 비두라의 자타카 이야기를 대조하면서 시간의 순서대로 분할해 재구성했다”면서 “아잔타 석굴의 도상이 훼손도 심하고 관련 자료도 턱없이 부족해 작업 진행 중 난관도 많았다. 하지만 훼손된 부분으로 인해 동양화의 여백처럼 오히려 관람자가 생각할 여지를 줄 수 있을 것 같아 제 작품 속에서도 응용됐다”고 설명했다. 불교회화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특히 불교의 설화나 교리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스토리가 전개되는 교화용 불교회화 작품을 앞으로도 선보이고 싶다는 법천 스님은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이 쉽게 불교회화를 접하고 불교의 사상을 쉽게 이해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할 일”이라고 전했다. 법천스님은 동국대 불교대학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일반대학원 불교미술학과에 재학중이다.
지난 호에는 양동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인 수운정을 살펴보았다. 이번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심수정을 살펴보자. 심수정은 양동문화센터에서 마을안으로 들어가 양동천을 따라 가다 2번째 다리를 지나 왼편으로 꺾으면 여강 이씨 종가집인 무첨당 가는 길이 나온다. 그 반대편으로 보면 심수정을 만날 수 있다. 마을의 안산인 성주봉 기슭에 자리한 심수정은 마을 안에 있는 10개의 정자가운데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활달함으로 이름 높다. 회재가 과거에 급제한 후에 나랏일에 바빠 맏이임에도 불구하고 홀로 되신 어머니를 제대도 모시지 못해 동생인 농재공 언괄이 대신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회재가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향단을 지어 동생에게 양도하면서 향단은 동생 언괄의 문중으로 대를 이어 지금도 내려오고 있다. 특히 향단(香壇)이란 이름이 특이하여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이는 농재의 맏손자의 호로 여강 이씨 문중에서 향단파로 대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 심수정이 있는 곳에는 회재선생의 아우 이언괄(1494~1553)이 짚으로 지붕을 이은 검소한 모정(茅亭: 모정은 마을주민이 더위를 피하여 쉴 수 있는 마을의 공용 건물로 방이 없이 마루로만 지어진 작은 초가지붕건물을 말한다.)이 있었는데 얼마 후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곳에 회재의 아우 언괄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1560년(명종15)에 심수정을 지었다. 그 후 300여 년이 지난 1894년, 누마루가 있는 정자가 소실되자 1924년에 춘양목을 사용하여 원래 모습으로 중건하였다. 심수정은 마을의 안산인 성주봉의 낮은 언덕에 터를 잡았다. 여기에서는 건너편 마을경관을 조망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인만큼 정면으로 종가인 무첨당과 서쪽으로는 파종가인 향단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만큼 문중의 선조들을 향한 후손들의 마음이 보인다. 특히 저녁, 일몰이 가까우면 석양이 붉게 물든 향단의 풍광은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심수정은 ‘ㄱ’자 모양의 정자와 관리사로 구성되어 있다. 정자는 많은 문중사람들과 지인들을 위하여 가운데에 넓은 마루를 내고 방을 두개나 두었다. 마을을 앞에 두고 방과 함허루(涵虛樓), 그리고 성주봉 쪽으로 2칸짜리 큰 방을 두었다. 대청은 따로이 벽이 없이 판문을 달았는데 전부 외부로 트여 난간만 설치되어 있다. 특히 성주봉에서 내려오는 바람의 손길은 얼마나 시원할꼬... 올여름의 길고긴 더위는 생각조차 무섭다. 대청마루에는 현판이 많다. 이 현판들은 심수정에 담은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심수정기’는 대청 북쪽 벽 왼쪽 첫째 칸 위에 걸려 있다. 내용은 회재의 아우로서 도리를 다했던 언괄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지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사심이나 사욕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인 주정(主靜)의 의미를 깨닫고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治心)을 찾으라는 염원을 담았다. ‘심수정’은 ‘정지일자 심중지수’(精之一字 心中之水)에서 따왔는데 마음을 고요한 물과 같이 가지라는 의미로 마을을 바라보며 걸려 있다. 이양재(二養齋)는 양(養)을 2번 사용했는데 ‘음식을 절제하여 몸을 수양하고 말을 삼가하여 덕을 기른다’는 뜻이다. ‘함허루(咸虛樓)’는 유약무실 약허범이불교(有若無實 若許犯而不校)에서 따온 말로 ‘꽉 차 있어도 텅 빈 듯하다’는 뜻으로 겸손함을 의미한다.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자에게 물어보고(以能問於不能), 많이 알면서도 적게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고(以多問於寡), 있어도 없는 듯이 하고(有若無), 가득차도 텅 빈듯이 하며(實若虛), 남이 내게 덤벼도 상대하지 않는다((犯以不校), 나의 친구가 이랬다(昔者吾友嘗從事於斯矣)’고 말하고 있다. 이는 공자의 10대 제자로 꼽히는 안회(顔回)를 두고 하는 말로 <논어>에 나온다. 삼관헌(三觀軒)은 ‘ㄱ’자 평면의 심수정이 꺾이는 곳에 있는 6칸 규모의 대청마루의 이름이기도 한데 그 의미는 ‘관(觀)’을 세 번 사용했다는 의미다. 언괄은 ‘어진 사람은 그 사랑으로 관찰할 수 있고(仁者可以觀其愛焉), 지혜로운 사람은 그 다스림으로 알 수 있고(智者可以觀其理焉), 굳센 사람은 그 뜻으로 보인다(彊者可以觀其志焉)’고 말하고 있다. 덧붙여 이러한 뜻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정자에 앉아 마루문을 열고 마을을 향하면 회화나무 3그루가 연출하는 풍광으로 이는 위에서 말한 ‘삼관’과 통한다. 특히 맑은 날 저녁 어스름, 함허루에서 서쪽, 향단이 있는 곳을 바라보면 일몰은 감히 말로 할 수 없다. 그대로 무심이면 가능할까!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엔 소나무가 몸을 흔들며 내는 휘파람소리는 길기도 하여라... 내 마음까지도 흔들린다. 어느새 가을이 훌쩍 다가왔네...
아무리 클래식음악에 문외한이라도 카라얀(H.Karajan/1908-1989)이라는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는 34년 동안(1955-1989)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면서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헌신했다. 음반판매량이 무려 2억장을 넘는다고 한다. 물론 본인도 엄청난 부자가 됐다. 같은 고향 선배인 모차르트가 카라얀의 덕을 봤다는 말도 괜한 말이 아니다. 후배 덕분에 자신의 음악을 널리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동네 레코드가게의 쇼윈도에는 거의 예외 없이 카라얀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지휘하는 모습 말이다. 괜스레 멋져 보인다. 조용하지만 힘과 카리스마가 넘친다. 눈을 감고서 무슨 지휘냐고 할지 모르지만 오케스트라와의 교감은 무대에 오르기 전에 이미 끝난다. 무대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지였다. 카라얀은 일찍부터 이미지의 힘을 알고 있었다. 베를린 필은 1963년 한스 샤로운(Hans Scharoun)이 설계한 새로운 콘서트홀에 둥지를 트게 된다. 겉보기에는 서커스단 텐트처럼 보여서 카라얀 서커스(Zirkus Karajani)라고 불린다. 내부는 혁신 그 자체였다. 객석이 무대를 둘러싸고 겹겹이 올라가는, 이른바 빈야드(vineyard) 형태인데 이후 건립된 콘서트홀의 표준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롯데콘서트홀도 빈야드 모양을 따랐다. 카라얀 서커스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기에도 좋지만 촬영하기에도 좋다. 다가올 영상시대를 예견한 카라얀이 콘서트홀 설계에 촬영이 용이하도록 요구한 결과다. 그의 예견은 1957년 베를린 필의 일본투어에서 싹텄다. 콘서트가 일본 전역에 중계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니!” 이후 카라얀은 콘서트 영상제작에 몰두하게 된다. 카라얀의 영상에 대한 예지력은 죽고 나서 더 큰 빛을 발한다. 21세기 들어 인터넷 스트리밍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은 2009년 디지털콘서트홀의 출범을 자극했다. 베를린 필은 카라얀 이래 수십 년 동안 쌓인 영상제작 노하우를 기술에 녹여 콘서트 실황을 온라인(www.digitalconcerthall.com)에서 판매하게 된 것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이 온라인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베를린 필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관객들의 반응도 뜨겁다. 베를린 필의 디지털콘서트홀은 한국어 버전 홈페이지의 추가로 화답했다. 지금도 우리는 음반뿐 아니라 영상을 통해 카라얀을 만난다. 죽은 지 벌써 3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가 의도한 이미지로 카라얀을 기억한다. 그는 다른 지휘자들과는 달리 최신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일본에 자주 간 이유도 소니(sony)의 영상기술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럼 이 거장의 호기심은 어디서 왔을까? 놀랍게도 카라얀은 음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 공과대학에 다녔다고 한다. 아, 예술적 공대생! 이것 말고, 그의 호기심을 설명할 길은 없을 것 같다.
구품연지 이야기를 쓰기 위해 불국사를 다시 찾았다. 불국사는 봄에 새싹이 움트고 벚꽃이 활짝 필 때도 좋지만 가을 단풍도 어느 곳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화간반개(花看半開) 주음미취(飮酒飮微醉)’라고 했다. 채근담에 있는 말로 ‘꽃은 만발했을 때보다 피기 시작했을 때가 좋고, 술도 약간 취할 때가 좋다’는 것이다. 꽃과 술뿐만 아니고 단풍도 한창일 때보다는 막 옷을 바꿔 입으려는 이즈음이 더 아름답다. 일요일이라 사람들로 북적대는 것이 좀 못마땅하지만 일주문을 지나 반야교에 이르기까지 그 풍광에는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안병욱님은 ‘하루에 한번쯤은 하늘을 보자.’라고 했다. 이런 붐비는 인파가 못마땅할 때도 하늘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본다. 파란 하늘 바탕에 빨갛게 물든 단풍잎. 참 아름답다.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바로 피안(彼岸)이고,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이며, 극락(極樂)이다. 절 안으로 접어들자 시주한 분의 명찰을 단 국화 화분이 가득하다. 청운교 백운교, 연화교 칠보교, 다보탑, 석가탑 주위도 온통 국화꽃이다. 그런데 ‘사찰’, ‘부처님’하면 연꽃이다. 과거 이곳 불국사에도 연꽃이 가득한 연못이 있었다. 청운교와 백운교, 연화교와 칠보교 앞에 있었다는 구품연지(九品蓮池)이다. 구품연지(九品蓮池)는 동서 39.5m, 남북 25.5m 정도의 크기로 타원형 연못으로 못의 깊이는 2-3m이며 못의 안쪽은 자연석으로 둘러싸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국사고금창기』에 연지(蓮池)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1740년대까지 존재했으나 그 후 어떤 연유로 인해 연지가 메워지고 그 자리에 나무가 심어져 이처럼 크게 자란 것으로 추정된다. 구품연지에는 지금쯤 꽃이 지고 연밥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 터이다. 그런데 연밥은커녕 연이 자라고 있어야 할 구품연지에는 먼지만 풀풀 날고 있다. 구품연지의 수원지는 토함산 정상에서 발원한 지하수가 불국사 무설전 옹벽 아래에서 솟아나오고, 대웅전 밑으로 만들어진 물길[水口]을 따라 ‘범영루’와 ‘자하문’ 중간에 보이는 수구와 지금의 해탈교가 있는 수로를 통해 이곳 구품연지(九品蓮池)로 물을 공급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퇴적토가 쌓이면서 연못의 규모가 축소되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연못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매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972년 불국사 복원공사 당시 이곳에서 통일신라시대 와당을 비롯해서 조선시대 유물까지 출토됐고, 1908년 일본에서 발행한 10전짜리 주화가 수습되기도 했다. 그러나 구품연지의 복원은 사찰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의 관람 동선과 발굴지역 주변에 무성한 소나무들을 제거해야만 하는 문제 등으로 연지의 존재와 규모만 확인하고 복원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구품연지는 서방 극락정토를 모방하여 만들었으며, 줄여서 연지(蓮池)라고도 한다. 『관무량수경』에는 서방 극락정토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극락정토에는 연꽃이 피어 있는 큰 연못이 있다. 물은 맑고 깨끗하여 바닥이 들여다보이고, 꽃들은 황금빛으로 빛난다. 극락정토의 성중(聲衆)들은 이 연지에 둘러앉아 설법을 듣는다” 극락을 연화장(蓮華藏) 세계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위 경전에 따르면 극락정토에 태어난 사람은 그 선근(善根)이나 이승에서 쌓은 공덕이나 성격이나 행위에 따라 태어나서 받는 과보는 아홉 가지[구품(九品)] 단계로 나누어진다. 구품이란 바로 극락왕생의 단계로 아홉 가지 품위가 있는데 상품·중품·하품의 각 품에 상생·중생·하생이 있어서 구품이다. 곧 상품상생(上品上生)·상품중생(上品中生)·상품하생(上品下生)·중품상생(中品上生)·중품중생(中品中生)·중품하생(中品下生)·하품상생(下品上生)·하품중생(下品中生)·하품하생(下品下生)을 말한다. 사찰 내에 이와 같이 극락세계의 상징인 구품연지를 조성하는 것은 극락정토의 성중들이 연지에서 설법을 듣는 모습을 구현한 것이다.
17세기부터 풍천임씨의 별장으로 사용된 이요당(二樂堂)·빙허루(憑虛樓)는 기단을 쌓고 양옆과 뒤가 막힌 당(堂)과 다락 형태로 높게 지은 루(樓)의 기능을 모두 갖췄다. 서출지의 제방이 기단 역할을 하고, 물 위에 기둥을 높게 세워 건물을 올렸으니, 경치를 감상하기에 최적의 공간 건축물이다. 활산(活山) 남용만(1709~1781)이 지은 「빙허루 중수기(憑虛樓 重修記)」를 보면, “빙허루는 임씨의 별장으로, 빼어난 경관으로 소문났으며, 서출지 위에 있다. 아래로는 땅이 없고, 물과 수십장 떨어져 떠 있다. 허공(空虛) 사이에 새가 나는 듯 화려하고, 초연(超然)히 기댈 곳(所憑)이 없는 듯하니, 이것이 빙허루(憑虛樓)라 이름 지어진 이유이다. 숭릉 갑진년(1664)에 처음 지었고, 원릉 병진년(1736)에 무너져서 고쳐 지었다. 금년 경자년(1780.정조4) 가을에 거듭 썩고 무너진 것을 보수하였다.(『活山集』卷5,「記·憑虛樓重修記」,“憑虛樓者, 任氏別閣. 以勝觀聞, 在書出池上. 下臨不地, 離水數丈而浮. 翬飛鳥革於空虛之間, 而飄飄然如無所憑, 此其所以名也. 崇陵甲辰, 肇刱之. 元陵丙辰, 因其頹而改搆之. 今上四年庚子秋, 重補其朽敗.).”라며, 건축물의 내력을 설명한다. 서출지의 누각은 임화세의 조부인 임적(任勣,1612~1672)이 1665년에 완공한 것으로 「이요당 창건기」가 전하며, 아들 오봉(鼇峯) 임인중(任仁重,1645~1721)과 손자 시옹(是翁) 임화세(任華世,1675~1731)를 거쳐 대대로 별장으로 사용되었다. 이요당·빙허루 현판을 단 누각은 완공 이후 세월의 풍파와 비바람에 훼손되었고, 1781년 중수(重修)되기에 이른다. 신라의 사금갑(射琴匣) 전설이 서린 서출지는 나라의 변괴를 알린 유명한 명승지로 많은 시인묵객이 이곳을 다녀갔고, 풍천임씨의 누각이 세워지면서 풍류와 휴식처로 더욱 이름났다. 연경재(硏經齋) 성해응(成海應,1760~1839)은 「소화고적(小華古蹟)」에서 특별히 금오산의 서출지를 언급하였고, 특히 남인계 퇴당(退堂) 유명천(柳命天,1633~1705)은 1694년(숙종20) 4월에 갑술옥사(甲戌獄事)로 강진(康津)에서 포항 오천(烏川)으로 이배(移配) 되면서 빙허루를 찾아 임인중을 만났고, 그가 남긴 시가 아직도 남아있다. 또 임화세는 화계 류의건과 남용만·치암(癡菴) 남경희(南景羲,1748~1812) 등 지역의 문사들과 이곳에서 자주 만나 회합을 가졌고, 차운시(次韻詩)를 많이 지었다. 여강이씨 정헌(定軒) 이종상(李鍾祥,1799~1870)은 외손의 입장으로 무더운 여름날 풍천임씨 임화세의 몽희당(夢羲堂)을 찾았고, 새롭게 단장된 서출지의 빙허루에 올라 걸려있던 시판에 차운하여 경치를 읊조렸다. 『정헌집(定軒集)』권1,「詩·自夢羲堂 緩步 登憑虛樓 次板上韻(자몽희당 완보 등빙허루 차판상운)」을 보면, 몽희당은 임화세의 은거처로 남산 기슭에 있고, 몽희당에서 누각까지는 가까운 거리로, 이종상은 임화세의 곧은 기개를 생각하며 감격에 겨워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둔덕에 지어진 누각은 물에 떠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고, 크고 오래된 소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선사하며,. 게다가 연못의 아름다운 연꽃은 나그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배를 띄워 노니니 더위를 잊은 듯 시원함이 밀려온다. 아마도 당시의 서출지는 지금과 사뭇 분위기가 달랐고, 현재는 수많은 백일홍이 가을이 다 가도록 붉게 피어있다. 이종상은 조부 이헌석(李憲錫)·부친 이정열(李鼎說)의 가학을 이어받았고, 1831년(순조31) 진사에 오른 후, 돈녕부주부·한성부판관·용궁현감·개령현감·강원도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입재(入齋) 정종로(鄭宗魯,1738~1816)의 문인으로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모친은 영양남씨 남용만의 아들인 치암 남경희의 따님이고, 또 양한당(養閒堂) 이정규(李鼎揆,1735~1810)가 임화세의 사위였기에 양동에서 남산동[빙허루]과 암곡동[지연정사] 간의 왕래가 잦았다. 유생의 강학처 사마소를 출입하며 「영광대기(影光臺記)」를 남겼고, 육영재(育英齋)에서 「심경」·「근사록」을 강의하였으며, 훗날 보문동에 보문정사(普門精舍)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또 남홍양(南鴻陽,1768~1849) 등과 깊이 교유하였고, 1860년 지연정사에서 외조부 남경희의 「치암집」을, 1865년 이언괄(李彦适,1494~1553)의 「농재집(聾齋集)」과 이의윤(李宜潤,1564~1597)의 「무첨당집(無忝堂集)」 등을 교정하는 등 문장에도 뛰어났다.
계속 머물 것만 같았던 여름이 가고, 천년고도 경주에 ‘잊혀진 계절’ 가을이 왔다. 쓸쓸하면서도 기분 좋은 가을, 그중 우리 민족이 예부터 12개월 중 가장 으뜸으로 여겼던 시월(예부터 새로 난 곡식을 신에게 드리기에 가장 좋은 달, 으뜸달이라는 10월은 시월상달(十月上─)이라고 도 부른다 )그런 시월의 어느 날, ‘천년고도의 파수꾼’ 경주경찰서 문화탐방 동아리는 불교유적의 보고(寶)이자 신라인들의 영산(靈山)이라는 경주 남산으로 향했다. 가을을 맞은 남산은 떨어진 낙엽으로 다소 외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온화한 미소로 따뜻하게 우리를 반겨주는 불곡마애여래좌상[佛谷磨崖如來坐像]이 나타났다. 불곡마애여래좌상은 경주 남산 불교 유적 중 가장 이른 시기인 7세기 경 조성된 불상으로 남산 불교유적의 시작이라는 의미가 있어 남산 불상의 할머니라고도 불린다. 그 모습 또한 이 불상의 별명인 ‘할매부처’처럼 손녀, 손자를 보며 웃고 있는 인자한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렇게 우리는 불곡마애여래좌상의 따뜻한 환영인사를 받고 두 번째 탐방지인 중창지로 향했다. 중창지로 향하던 중 지금은 대부분 없어진 남산신성(南山新城 : 신라 진평왕 13년(591)에 축조)의 성곽 일부를 볼 수 있었다. 비록 나무와 흙에 파묻히고 유실된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그 가운데서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남아있는 성곽의 모습은 기개가 대단해 보였다. 이어서 성곽을 지나 남산신성 안쪽으로 오르자 문무왕 3년(663년)에 지은 남산신성 내 가장 큰 창고이자 군량미를 보관했던 중장치가 나왔다. 지금은 그 터와 주춧돌의 흔적들 밖에 볼 수 없지만, 아직까지도 중창지 주춧돌 아래에서 탄화된 쌀이 발견되고 있으며 실제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데 1,000년이 지난 쌀을 아직도 볼 수 있는 게 무척 신기하면서도 마치 신라시대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가져다 준다. 중창지에서 김구석 소장님의 해설을 듣다보니 어느덧 해가 숨고 달이 떠올랐는데 달빛의 안내를 받으며 다음 목적지인 전(傳) 삼화령(三花嶺)으로 향했다. 삼화령(三花嶺)이란 3월3일과 9월9일에 차를 달여 미륵세존께 드렸다는 삼국유사 설화 속 장소로 전 삼화령은 미륵세존으로 보이는 석조삼존불상(石造三尊佛像) 중 본존불이 출토 돼 삼화령으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아쉬운 것은 석조삼존불상의 불상 3개 모두 코가 파손되어있는데, 1925년 석조삼존불상의 본존불발굴당시 본존불 불상은 코가 온전했으나 불상의 코를 갈아 마시거나 만지면 아들을 낳는 다는 속설 때문에 발굴이후 한 시민에 의해 코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불상의 코 부분 파손은 비단 경주의 석조삼존불상 뿐만 아니라 20세기 국내의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전국 각지 불상의 코 부분이 많이 훼손되었다. 당시 남아선호사상이 문화재 파손으로 까지 이어졌다는 것은 아쉬운 사실이지만 이 또한 그 당시 우리나라 시민의 문화와 사상을 알 수 있는 예이며 역사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탐방지인 월정교로 향했다. 월정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와의 인연을 이어준 다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언론보도에서는 삼국사기에 월정교는 760년에 지어졌고, 원효대사는 686년에 사망해 월정교와 원효대사의 시대는 무려 100년 차이가 발생하며, 또 삼국유사에서는 원효대사가 건넜던 다리를 월정교가 아닌 나무로 된 작은 느릅나무 다리로 기록하고 있다고 보도해 혼선을 주고 있다. 진실이야 어쨌든 올해 개장한 월정교는 보는 사람들에게 하여금 상당한 아름다움과 신라의 미를 전해준다. 또한 원효대사가 어떤 다리를 건넜든 월정교가 1200년이 지나 지금 우리 눈앞에 다시 있는 것처럼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와의 이야기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의 9번째 문화탐방이 마무리되었다. 이번 문화탐방을 통해 만난 가을밤의 남산은 낮과 달리 세월의 덧없음과 쓸쓸한 분위기, 그러면서도 신라의 소박하면서도 찬란한 미를 동시에 느끼게 해주며 색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은 분들에게 가을밤의 남산탐방을 추천한다. 남산의 달밤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라는 유명 음악과 글귀처럼 여러분에게 멋진 날을 선사할 것이다. 경주경찰서 정보계 순경 배기흠
더불어민주당 임배근 경주시지역위원장이 당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쳐 지난 22일 ‘국가경제자문회의‘ 위원으로 위촉됐다. 국가경제자문회의는 국내외 경제상황과 경제이슈를 점검하고 분석해 정부경제정책에 의견을 반영시킴으로써 안정적 국가경제발전을 도모하는 역할이다. 국가경제자문회의는 재정경제부장관과 부총리를 지낸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이 의장을 맡고 변재일 의원이 수석부위장을 맡아 거시경제 및 금융, 조세 및 재정, 산업통상, 중소•벤처, 노동•사회복지, 균형발전 및 부동산 등 6개 분과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 소속 위원은 당소속 경제관련 국회위원과 국내경제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경제학자인 임배근 위원은 “국민들이 실생활현장에서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역점을 두고 우리나라 경제정책과 경제현안에 대한 전문가적 의견을 피력해 국가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 경제는 현재 조선산업과 자동차산업 등의 구조조정과 미국 금리인상과 미•중무역전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 경제위기를 잘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제4차산업혁명시대에 맞는 산업구조조정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각 산업은 생산성 향상에 주안점을 두고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