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소함을 나만의 시선과 방법으로 표현하려고 늘 고민한다. 고향 경주의 모습은 내 관심의 시작이다. 희미하고 멀어진 기억을 부단한 필터링의 과정으로 재해석하고 싶다.
경주시, 경주제일교회가 주최하고, 경주신문이 주관하는 ‘제10회 경주시 학생 영어말하기 대회’가 코로나19로 인해 내년으로 순연합니다. 그동안 경주지역 초·중·고교생과 학부모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아왔지만, 코로나19 여파를 피할 수 없어 고민 끝에 올해 대회를 내년으로 연기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경주시, ..
경주시는 29일부터 온라인 여권 재발급 서비스를 제공한다.이는 외교부의 정부혁신 대표과제인 ‘온라인 여권 재발급신청 서비스’의 55개 시범 기관으로 선정됨에 따라 시행한다. 이 서비스는 전자여권 재발급 신청자를 대상으로 시행된다. 민원인이 정부24(http://www.gov.kr)에 공인인증서로 로그인 해 여권사진을 업로..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30일 제1기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어린이 기자단 발대식을 온라인으로 개최한다.공단이 방폐물사업에 대한 다양한 소통채널 확보를 위해 올해 처음으로 모집한 제1기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어린이 기자단에는 서울·경기 29명, 영남 8명, 충청 4명, 호남 3명 등 전국 초등학교 어린이 44명이 지원했다.공..
윤동춘 경북지방경찰청장이 29일 경주경찰서를 방문해 국민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경북경찰이 돼줄 것을 강조했다. 윤 청장은 이날 치안현장에서 직원과 격의 없이 대화하며 소통하는 경북경찰을 위해 경주를 찾았다. 경주경찰서 대회의실에서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며,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활..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28일 대전 한전원자력연료(주) 방폐물 60드럼을 인수했다. 공단은 지난 8월 발생지 예비검사를 통해 방폐장 인수기준 만족여부를 확인했다. 발생지 예비검사에는 경주시민간환경감시기구가 공단이 관련 규정을 지키며 검사하는지 직접 참여해 확인했다. 공단은 인수검사를 실시해 처분 안전성을 추..
본보가 주최·주관하고 경주시와 경주시의회가 후원한 ‘제9회 경주 천년나들이’가 지난 23일~27일까지 5일간 성남 농협하나로마트에서 개최됐다. 20개 업체 250여 품목을 선보인 이번 천년나들이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공식 행사를 비롯한 각종 이벤트를 취소하는 등 행사 규모를 줄였다. 또한 각 판매대에 손 소독제를 비치하고 마스크 착용을 안내하는 등 코로나19 예방 수칙을 준수하는 가운데 경주지역의 우수 농·축·수·특산품을 홍보했다. 행사가 개최된 성남 하나로마트 방문 고객이 코로나19로 인해 예년에 비해 30% 이상 감소하는 등 힘든 상황에서도 일부 참여 농가에서는 최고 매출을 기록하고 완판하는 등의 성과도 달성했다. 특히 구매 고객의 다수가 지난 2년간 실시한 행사에서 물품을 구매한 ‘재구매’ 고객으로 경주 지역 농·축·수·특산품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행사장을 방문한 강남구 논현동의 한 고객은 “지난해 꿀과 국수를 구매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 다시 찾게 됐다”면서 “올해에는 아로니아를 추가로 구매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내년이면 1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경주 천년나들이’는 서울 청계광장, 양재 하나로클럽에 이어 2년 전부터 성남 하나로마트에서 경주의 우수 농·축·수·특산품을 수도권 시민에게 홍보하고 있다.
경주시의회 김순옥 의원이 경주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실효성 있는 정책 방안으로 기존 다자녀의 정의를 셋째에서 둘째로 하자고 제안한 것은 충분히 고려할 만한 사안이다. 김 의원은 최근 경주시의회 5분 발언에서 “현재 우리가 당면해 있는 저출생·고령화 문제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존 대응방식으로는 결코 저출생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경주시가 앞장서서 저출생 위기대응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면서 다자녀 기준 개정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2019년 개정된 ‘경주시 출산출산장려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올해부터 경주시는 첫째 자녀를 출산하면 출산축하금 20만원과 출산장려금 등 50만원을 1회 지급하고 둘째부터는 매월 20만원씩 총 240만원, 셋째는 출산축하금 20만원 이외에 3년간 매월 50만원씩 총 180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장려 정책에도 불구하고 경주시의 저출생과 인구감소는 심각한 수준이다. 경주시 합계출산율은 2015년 1.29명, 2016년 1.25명, 2017년 1.09명, 2018년 1.03명으로 계속 떨어지다가 2019년에는 0.94명으로 경북도내 23개 시·군중에서도 최하위 수준을 보이고 있다. 김 의원이 “경주시 합계출산율이 1명도 채 안 되는 현시점에서 경계에 있는 정책대상자를 지원하는 것으로 확대해야 한다. 자녀가 1명인 사람이 2명을 낳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2명인 가정이 세 자녀 가정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갈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은 경주시의 출산장려기본정책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 출산 분위기를 높여보자는 것으로 보여 진다. 우리나라 인구가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전국 중소 지자체의 인구 감소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지자체마다 인구늘이기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고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출산율은 경제, 교육, 사회환경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주시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고 출산율 또한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경주시의 현실에 맞는 다양한 출산정책을 기대한다.
지난 20일 월성1호기 조기폐쇄에 대한 감사원의 발표 이후 경주사회는 논쟁만 더 커지고 있다. 이번 감사원 발표에 대해 국민의힘 김석기 의원은 국회에서, 같은 당 소속 경주시의원들은 경주시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의 감사 결과발표에 강력히 비판하고 정부대책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판매단가를 낮추고 비용을 늘림으로써 월성1호기 경제성을 낮게 평가했고 청와대가 조기폐쇄에 직접 개입했으며 산업부와 한수원 등이 조작 가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정책을 즉시 폐기하고 사과해야 하며 월성1호기를 재가동하고 경주시에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며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했다. 또 같은 당 소속 시의원들도 “문재인 정부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을 폐쇄하는 무모한 행동을 함으로써 경주시민이 분열되고 세수감소는 물론 수천억원에 달하는 국민혈세가 낭비되는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반면 반원전 단체들은 “당초 월성1호기 폐쇄는 당연한 결정인 만큼 불필요한 논쟁을 지양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다른 월성원전 조기폐쇄에 힘을 모아주기 바란다”고 했다. 이번 감사원의 발표가 불신만 남긴 결과를 초래했지만 지금까지의 정부부처의 입장을 보면 월성1호기 해체는 불가피해 보인다. 한수원이 아직 해체 승인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향후 일정 등을 구체화하지 않고 있다고는 하지만 월성1호기 해체는 시간문제라고 여겨진다. 경주사회에서 원전과 방폐장 문제는 항상 가장 큰 논쟁의 대상이었다. 원전과 관련해 선거 때마다 정치권의 도마 위에 올랐으며 원전 찬반 단체와 찬반 시민들의 논쟁은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 이번 월성1호기 문제에 대해 경주사회가 강력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원전 문제가 나올 때마다 이에 편승해 유리한 국면을 만들려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현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따라서 그동안 국가의 원전정책을 수용했다가 정책이 바뀌어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입게 된 경주시를 비롯한 원전소재 시·군은 정부에 탈원전 정책에 상응하는 대책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특히 경주시는 경북도와 원전소재 시·군과 연대해 향후 남은 원전들의 폐쇄에 대한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 원전 조기폐쇄에 따른 세수확보 및 정책적 지원, 방사성 폐기물 수수료인상 등을 위해 최선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근래 경주에 대한 칼럼을 쓰게 되면서 경주의 미션, 비전, 브랜드에 대해 틈틈이 생각해본다. 내 고향 경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로서 무엇으로 구심력과 성장 동력을 만들 것이며 어떤 지속가능한 경영으로 세계 속에 자리메김하고 영속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번성의 길을 걷는 도시가 될 수도 있고 쇠퇴의 길을 걷는 도시가 될 수도 있는 냉정한 시대 조류에서 경주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인구만 봐도 그렇다. 통일신라시대 87만을 웃돈 경주의 인구수와 26만도 안 되는 오늘의 경주시 인구수를 비교한다면 국제화 시대라는 지금의 모습은 신라 때보다 위축되어도 지나칠 만큼 크게 위축되어 있는 셈이다. 그만큼 경주라는 브랜드 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져 있는 것이다. 브랜드라는 이름조차 없었던 1000년 이전의 경주가 가졌던 천금 같은 브랜드 가치는 그 시대 경주, 신라인들의 폭 넓은 포용력과 국제친화력에서 얻어진 산물 아닐까? 현대사회에서 브랜드만 가지고도 이를 사용케 하고 엄청난 로열티를 받는 기업 관련 소식을 자주 접한다. 브랜드는 그 자체로 지배력 높은 힘이 되고 브랜드 속에 경제적 가치는 물론이려니와 그 브랜드를 창출한 이들의 자부심이 녹아있다. 탄탄히 구축된 브랜드는 또 다른 팬덤을 형성하며 지속가능한 미래에 연결해 준다. 굳이 다국적 기업이나 최근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방탄소년단(BTS) 같은 거창한 브랜드를 들먹이지 않아도 학창시절 배운 처용가(處容歌)에서 브랜드의 단편을 찾을 수 있다. “셔블 발기 다래 / 밤드리 노니다가 / 드러가 자리 보곤 / 가라리 네히어라 둘흔 내해엇고 / 둘흔 뉘해언고 / 본대 내해다마난 / 아자날 엇디하릿고” 여기서 사용된 ‘셔블’은 어휘의 변천을 겪으며 지금의 ‘서울’이란 이름의 원천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서울의 영역이 눈이 와 쌓인 곳을 지칭하는 ‘설울’에서 음운 ‘ㄹ’이 탈락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일국의 수도 이름이 그렇게 허투루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면에서 천 년 수도 경주의 옛 이름 셔블을 새로 지어진 도성의 이름으로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주는 지금의 서울에 브랜드 로열티를 청구할 수 있지 않을까? 서울 사람들이 들으면 발칙한 느낌이 들어 이런 생각이 실제로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의미심장한 농담으로 사용되곤 하는 것은 그만큼 브랜드의 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 신라의 수도 셔블은 ‘처용’이라는 사람에서 보듯 외국인이 함께 살고, 문화와 물산이 집중되는 국제화된 도시였다. 그랬으니 조선의 도성이 한성이나 한양이라는 이름과 함께 은근슬쩍 서울로 브랜드화 시켜 놓았을 만큼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경주’라는 브랜드 가치는 얼마나 될까? 지금의 경주는 대한민국에서, 아시아권에서, 이를 뛰어넘어 ‘글로벌’이라는 무한대의 경쟁 차원에서 어떤 도시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다시 반문하게 된다. 아쉽게도 경주는 아직도 경주만 가질 수 있는 현대적 브랜드를 만들지 못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라천년의 고도’라는 단어는 과거에 얽매인 경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아직도 셔블에 갇혀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안타깝게도 최근 천년고도에 이어 경주를 지칭하는 꼬리표들은 지진, 원자력, 맥스터 등 무거운 짐까지 덧씌워졌다. 그 무거운 틈새로 서울의 경리단길을 흉내 낸 황리단길이 어렵게 자멱질하는 정도다. 브랜드는 고사하고 신라를 뛰어 넘은 물산과 문화, 과학과 기술을 현대의 경주가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경주가 경주만의 브랜드로 새롭게 탄생하기 위해서는 현대적 수요에 맞는 새로운 모델들이 정비되어야 한다. 예컨대 비즈니스하기 좋은 곳, 창업하기 좋은 곳, 개방적이며 다양성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충만한 곳, 외지인과 외국인이 생활하기 제일 좋은 곳, 특히 기술창업의 천국이 된다면 어떨까? 여기에 도덕과 문화가 반듯하게 함께 하고, SHE(Safety, Health, Environment)를 핵심가치로 도전목표를 설정해서 실행해 간다면? 꿈같은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와 이스라엘의 실리콘 와디(Silicon Wadi (와디는 히브리어로 ‘계곡’))는 경주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 속에서 꿈의 브랜드를 창출한 도시들이다. 경주는 산이 많고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넓을 만큼 면적도 넓으며 당연히 계곡 또한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더구나 인터넷의 발달과 첨단 교통수단의 발달은 풍광 좋고 아름다운 전통도시를 최고의 혁신, 최신의 신기술 중심도시로 선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은 분위기다. 배짱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 ‘꿈과 함께 꿈 너머 꿈도 필요하다’는 말로 경주의 변화를 기대하며 다시 태어난 ‘경주’라는 브랜드가 세계 속에서 통용되기를 기대한다.
신라왕국의 부근에 있었다하여 황촌이라는 명칭과 동경잡기의 6방 중 5번째 방이라는 의미의 황오방이 합성돼 황오라 불리는 황오동은 1950년대부터 40여년간 경제, 사회, 생활, 문화적으로 경주 구도심의 중심지였다. 경주역 바로 앞에는 성동시장, 남쪽 인근에는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던 황오동은 경주의 교통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황오동을 중심으로 한 경주 도심은 1990년 이후부터 동천, 황성, 용강, 현곡 등 외곽지역이 개발되면서 경제권과 생활권이 분산되었고 구도심과 연결된 경주 쪽샘지구까지 철거되면서 도심 공동화는 더욱 가속되었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경주뿐만 아니라 전국 중소도시에서 벌어졌다. 이에 정부는 2013년 ‘도시재생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국가차원의 정책적 지원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그리고 경주시는 현 정부의 ‘도시재생뉴딜사업’에 중심시가지형 ‘경주 황오도시재생뉴딜사업’을 공모해 2018년 8월 31일 선정되었다. 도시재생뉴딜사업은 시대 변화에 따라 밀려난 과거의 기반시설과 생활공간을 자원으로 주거 및 경제적 생산 공간, 일자리 창출 등의 새로운 미래형 자산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경주 황오도시재생뉴딜사업도 역사문화자원을 이용한 청년창업 공간 확보, 글로벌커뮤니티센터를 통한 국제 도시 위상 정립, 주민 중심의 문화장터 및 정통시장 활성화, 글로벌 어울림마당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시는 이 사업에 선정된 후 경주도시재생과 신설, 경주시 선도 지역 지정고시, 경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 개소 등 발 빠른 추진을 보여 왔으며 현재 이 사업에는 시와 경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주민협의체(주민)가 함께 하고 있다. 사업 기간은 올해부터는 5년간(2020년~2024년). 하지만 이 사업에 선정된 후 준비기간이라 할 수 있는 지난 2년여 동안의 진행과정을 보면 앞으로도 그리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업이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선 그동안 각자의 역할을 되짚어 볼 때라 여겨진다. 우선 경주시의 역할과 의무이다. 특별법에 따르면 경주시는 이 사업을 위해 예산을 확보하고 관련 시책을 수립·추진해야 하며 사업 추진에 있어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이 사업을 경주시 도시재생전략계획이나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지방재정법에 의한 중기지방재정계획에 잘 반영해야 한다. 이는 주민들에게 이 사업의 지속성에 대한 믿음을 주기 때문에 열린 행정으로 일처리를 해야 한다. 시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나친 간섭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섭이 많으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쉽지 않다. 시는 이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지원을 최대한 해주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경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는 주민들을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 센터는 그동안 시를 대신해 주민들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이 사업의 기틀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그동안 그리 순탄하지 않아 보이는 것은 센터의 역할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센터가 시에 눈치를 보고 자율적인 역할을 못한다면 주민들과의 소통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으며 사업 진행 또한 순조롭지 못할 것이다. 주민들은 상생을 위해 협조해야 한다. 이 사업의 주체는 주민들이다. 사업 대상구역 내에는 다양한 업종과 주거형태가 존재하고 있으며, 생존권과 재산권이 걸려 있기 때문에 주민들 간에 일치된 의견을 모으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주민들은 침체된 지역의 현실을 직시하고 소통하고 협조하며 함께 풀어가는 자치의식을 가져야 한다. 주민들이 배척이 아닌 상생으로 참여한다면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도시재생뉴딜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실패한 사례를 보면 대부분 행정과 센터, 주민들 간의 소통부재가 주원인이며 이로 인해 사업 시행이 오히려 주민들로부터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주는 우리나라 대표 역사문화관광도시다. 기본적인 여건은 타 지자체의 부러움을 싸고 있다. 이러한 소중한 자산을 기반으로 시작한 황오도시재생뉴딜사업이 성과 없이 끝난다면 있는 자산도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도시를 만들지만 그 도시의 기능에 따라 삶의 만족도는 달라진다. 사람과 도시가 유기적인 기능을 할 때 살고 싶은 도시공간이 만들어 진다. 그리고 그 공간을 만들어가는 주체는 사람(주민)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18세기 경주지역 유학사를 얘기할 때 화계(花溪) 류의건(柳宜健,1687~1760)과 활산(活山) 남용만(南龍萬,1709~1784) 등은 후학양성과 학문정진에 매진한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영덕에서 경주로 정착한 영양남씨 우암(寓庵) 남구명(南九明,1661~1719)은 2남(南國衡·南國華) 2녀를 두었고, 장남 남국형은 5남(南潤萬·南龍萬·南胄萬·南濟萬·南濡萬) 2녀를, 또 남용만은 동애(桐崖) 남경채(南景采,1736~1811)·치암(癡菴) 남경희(南景羲,1748~1812) 등 빼어난 문장가를 두었다. 특히 남국형(南國衡,1687~1745)은 남용만과 그의 아들 남경희 등 빼어난 학자를 둔 아버지이자 이름난 효자였다. 부친인 우암공이 넉넉한 벼슬살이를 하면서도 부친의 명성으로 편히 살지 않았고, 주경야독하며 자식의 본분을 지켰다. 그리고 모친의 오랜 병수발로 장남인 자신은 과거공부를 중도에 그만두었지만, 그 덕분에 동생들은 과거급제하여 입신양명을 이루게 하였다. 평소 원대한 뜻을 품었지만, 부모를 위한 마음과 형제를 걱정하고 원망하지 않은 그 마음은 오히려 참으로 당시 효행의 모범이 되었다. 나이가 같고 평소 친분이 돈독하였던 남국형과 류의건은 아들 남용만을 류의건에게 보내 학문을 닦게 하였고, 활산은 훗날 화계의 사위가 되어 남경희·남경화(南景和) 등을 낳았다. 이들 세 사람은 학문적 교류는 물론이고 서산류씨와 영양남씨 혼반(婚班)을 통해 신뢰를 돈독히 하였다. 남국형에 대한 기록은 집안에 전하는 글 외에는 거의 없고, 화계가 영친안(榮親宴: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부모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벌이던 잔치)에서 친구 남국형를 위해 한시를 지어 축하한 일이 전한다. 나[류의건]의 벗 남국형(자 순회)은 자식이 5명 있는데 모두 훌륭한 선비로, 넷째가 먼저 과거급제 진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어려서 과거에 급제하였으니 진실로 기쁜 일이며, 하물며 부모가 모두 살아있으니, 잔칫날에 절구 한수를 지어 축하하였다. 『花溪集』卷1 5개의 향기로운 난초가 집안에 가득하고 五箇芳蘭菀滿家 때가 되니 먼저 한 가지에 꽃을 피웠네 時來先發一枝花 끝없고 생동감있는 봄의 정취에 응하니 生生春意應無盡 동호의 병든 늙은이를 위로하는듯 하네 慰爾東湖老病査 넷째 박제만(南濟萬,1712~1746)은 여러 형제 중 1741년 30세의 나이로 식년시 병과에 급제하여 진사에 먼저 올랐고, 당시 활산의 스승인 화계선생이 남국형의 교유로 축하의 절구를 지었다. 하지만 활산은 동생이 먼저 죽은 것에 매우 안타까워하며 손수 묘지명(「亡弟槐院正字君墓誌銘」)을 지었고, 화계 역시 만사(輓詞)를 남겼다. 아들 남용만은 부친의 묘지명 『活山集』卷7,「墓誌銘·本生考通德郞府君壙記」를 지어 행적을 또다시 추억하였다. 본생 고 통덕랑 부군 광기(本生考通德郞府君壙記) 선친 남국형 공의 자는 순회(舜會)로 숙종년간 정묘년(1687)에 태어나서, 을축년(1745) 6월 20일에 돌아가셨으니, 향년 59세다. 그해 10월 모 갑자에 불국사 북쪽 간산(艮山)에 장사지냈고, 계유년 10월 28일 정개산(鼎蓋山) 남쪽 장항동 부감(負坎) 땅에 이장하였다. … 부친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원대한 뜻이 있었다. 커서는 가문의 큰 사람이 되어 기대하는 바가 있었지만, 모친 이씨가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학업을 그만둔 지가 거의 12년이 되었다. 우암 남구명 공께서 전국에서 벼슬을 할 때 관아를 따라 수행하지 않고, 집에 머물며 과거공부를 하고자 하였다. 부군은 책을 보면서도 농사일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해의 기한(飢寒)에 대비하였고, 일찍이 부친의 녹봉과 명성을 처자식의 생계로 삼지 않았다. 우암공이 장차 관직을 그만두고 내려오려 할 때, 부군은 문득 매사냥꾼을 따라 산에서 맛있는 포를 구하고, 몸소 물고기를 잡아 작은 웅덩이를 파고는 물고기를 살려두었다. 사람들은 “필히 관주(官廚)에 있으면서 남은 것을 공급하더라도, 어찌 고생이 이와 같으리오”하였다. … 기해년 우암공이 집에서 돌아가시자 슬퍼함이 예를 지나쳤고, 5일 간 간장조차 먹지 않았다. … 넷째 동생이 신유년(1741)에 급제하였으니, 또한 매우 기쁘지 않은가? 나이는 들고 병은 더욱 깊어가는데 남용만이 수십리 땅에 있으면서, 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던지고 달려온 것이 여러 번이다. 임종 하루 전에 퇴근해서 집으로 가는데 익조(翼朝)에서 급보를 듣고는 버선발로 달려왔으나, 이미 큰소리로 불러도 미치지 못하였다. 남용만은 큰 죄를 지었으나 어찌 차마 말을 하겠는가? 아! 부군께서 평생동안 행실이 비록 세상에 드러날 만한 업적이 없지만, 당시에 보는 자들이 “필히 이 사람은 마땅히 다복을 누릴 것이다. 대개 성품이 신중하고 너그럽고, 남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무릇 슬프고 기쁨에 모두 성실하고 거짓이 없었다”하였다. 향시에 붙었으나, 대과에 뜻을 두지 않았으니, 병으로 일찍이 과거를 그만두고는 대략 가치가 없다고 여기시고, 저희들 형제는 매년 과거에 급제해 거듭 서울로 올라갔지만, 또한 득실을 개의치 않았다. 부인은 여강이씨 회재선생의 5대손 이덕함(李德咸)의 따님이다.
감포는 전국 어디에 내놔도 매력적인 곳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감포처럼 인상적이고 오래된 포구이면서 열거하기도 어려울만큼 천혜의 경관을 여럿 지닌 곳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자는 오랫동안 감포의 아름다움을 찾아다니고 많은 보도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아직 덜 알려져있고 더욱이, 비경이라면 그 짜릿함은 몇 배가 되곤 하지요. 감포의 또 다른 숨은 명소를 다시 하나 더 소개합니다. 바로 해국 자생지로 유명한 감포깍지길 8구간 중 감포읍 전촌1리 거마장 아래 용들의 전설을 간직한 ‘용굴’입니다. 코로나19로 감포 바닷가로 바람 쐬러 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요즈음, 이곳 전촌항 용굴 주위 해변에도 제법 많은 이들이 가을 바다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곳의 오랜 토박이들과 주민들조차 잘 모르고 있는 이가 많다는 용굴은 짭쪼름한 바다냄새와 파도소리 넘실대는 전촌 바다 어귀에 있습니다. 용굴로 가는 가파른 길을 오르자니 금세 숨이 차오릅니다. 용굴로 가는 데크길을 조성해 두었으나 지난 몇 번의 태풍으로 입구와 출구로 이어지는 데크길이 다소 유실돼 있었습니다. 조심조심 접근할 수 밖에요. 용굴로 가는 길가와 가파른 절벽에는 연하거나 짙은 보랏빛 해국이 지천이었습니다. 이맘때가 절정이라고 하는군요. 해국이 지천으로 뒤덮여 있는 천혜의 용굴 주변은 아직은 정비가 되지 않아 주민들이 임시방편으로 마련해놓은 좁은 데크길이 전부이지만 지천으로 피어있는 해국을 감상하느라 탄성이 이어집니다. 해국은 용굴 위 바위틈과 용굴 정상에도 자라고 있었습니다. 용굴은 거대한 기암의 형태였지만 커다랗고 둥근 바위굴이 세 개가 있어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위압감은 잠시 번잡한 일상을 순식간에 내려놓게 합니다. 먼 바다로부터 흘러들어온 파도가 둥그런 바위굴의 구멍으로 빠져나오는 용굴의 내부는 시꺼멓게 푸르러 현묘한 경지입니다. 바지를 둘둘 말아 올리고 양말을 벗고 자갈을 밟으며 용굴에 부딪혀 세차게 밀려오는 파도를 정면으로 느껴보았습니다. 가을의 바닷물은 차갑지 않았고 부드러웠습니다. 주민 누군가는 마치 큰 용이 날개를 펴면서 바다를 향해가는듯한 형상이라고 했다는데 적절한 비유인듯 햇습니다. ‘감포읍지’에는 ‘장진리(전촌리의 옛이름)’에는 맑은 물에 사는 담룡(淡龍)과 뱀이 변해서 용이 되었다는 사룡(巳龍)이 오래 같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용굴은 용이 살던 구멍으로 이 두 용들은 사는 곳이 달라서 오랜 세월 싸움을 했다는군요. 전설 속 용들이 아주 오래 살았다는 이 굴은 태고의 원시적인 기운이 넘쳐 위엄까지 느껴집니다. 이곳에 출렁다리를 설치해 용굴과 그 주변의 경관을 바다 위를 거닐면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었으나 아직 지지부진한 상황이어서 안타까웠습니다. 이곳을 아끼고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이곳 주변의 경관에 대해 훼손을 최소화하며 정비하기를 바라보았습니다.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그림=김호연 화백
발레를 보다가 열이면 열 모두 감탄사를 연발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여자 주인공이 쉬지 않고 서른 두 바퀴를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다. 이것을 32회전 푸에테라고 하는데, 발레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테크닉이다. 푸에테(fouette)는 한쪽 발로 몸을 지탱하고 그것을 축으로 삼아 팽이처럼 도는 연기를 말한다. 보통사람은 한 두 바퀴 도는 것도 힘든데 이걸 서른 두 번이나 연결하면 묘기가 된다. 무용수가 푸에테를 시작할 때면 관객도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숨을 죽인다. 마침내 32회전이 완성되고 나면 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주의할 점 하나! 무용수가 푸에테 연기를 펼치는 동안에는 박수를 삼가는 게 좋다. 무용수의 집중력을 흩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32회전 푸에테는 고전파 발레의 대표적인 형식이다. 낭만발레인 라 실피드나 지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32회전 푸에테는 초미니스커트인 클래식 튀튀와 궁합이 잘 맞는다. 여성의 늘씬한 하체 전부를 드러내면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은 분명히 매력적인 볼거리가 된다. 그럼 누가 이런 고난도 테크닉을 처음으로 선보였을까? 이탈리아의 무용수 레냐니(P.Legnani/1863-1930)라고 한다. 그녀는 1894년 ‘신데렐라’에서 32회전 푸에테를 처음 선보였고, 다음 해에는 ‘백조의 호수’에서 왕자를 유혹하기 위해 서른두 번을 돌았다. 신데렐라에서 레냐니의 신기에 가까운 푸에테 연기를 본 프티파가 백조의 호수 3막에 그녀를 위해 안무를 삽입한 것이다. 레냐니는 1인2역으로 오데트와 오딜을 소화한 최초의 무용수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한 세기가 지난 후 영화 ‘블랙스완(Black Swan/2010년)’의 모티브가 되었다. 선악이 공존하는 한 인간의 정신분열을 잘 연기한 나탈리 포트만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2011년)을 거머쥐었다. 의문점 하나! 푸에테는 반드시 32회전이어야 하나? 32회전이 나오도록 안무가 되어 있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간혹 31회전이나 33회전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공연 중에 푸에테가 나오면 세어 보리라 마음먹지만 그리 되지 않는다. 푸에테 연기의 황홀함에 빠져 숫자를 셀 염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새털구름 이고 가는 하늘높이로 청명한 한나절이다. 갓 찧어 구수한 찐쌀을 한 볼떼기 물고 다정한 이들과 동행하는 유적지다. 들여다볼수록 아름다운 가을이 빼곡히 차있다.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담암사(曇巖寺) 절터 위치를 두리번거리는 일행이다. 단층 친 오릉 큰 대문을 디디면 모과나무 배롱나무 호젓이 반긴다. 마당안길을 훑어 들어가면 능선을 감싼 솔숲에 다다른다. 능을 보고 절하는 소나무 풍경들이 그 옛날 신하들 행렬로 그득하다. 동도(東都)의 그 성곽들 촌가(村家)로 변하였는데, 구슬피리(玉笛) 한가롭게 부니 봄의 생각 걷잡기 어렵구나. 오릉이 연이은 곳에는 거친 풀이 돋아 있으니, 1천년의 오랜 일도 모두 아침햇빛 같도다. -박원형(朴元亨)의 시- 【삼국사기】2대 남해차차웅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혁거세의 적자이다. 체격이 장대하고 성품이 침착하였으며 지략이 많았다. 어머니는 알영부인이며 왕비는 운제부인이다. 3년 정월 시조 묘를 세웠다. 5년 정월, 탈해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장녀와 혼인을 맺었다. 21년 9월 왕이 별세하였다. 사릉원에 장사지냈다. 3대 유리이사금이 즉위하니 남해의 태자이다. 어머니는 운제부인이며, 왕비는 일지 갈문왕의 딸이다. 유리가 왕위에 올라야 하는데, 덕망이 높은 탈해에게 사양하였다. 탈해는 “임금 자리는 보통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齒)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시험 삼아 떡을 깨물어 보았다. 유리의 잇금이 많으므로 왕위에 오르게 하고 왕호를 이사금(임금)이라 불렀다. 남해가 죽음을 앞두고 아들 유리와 사위 탈해에게 “내가 죽은 뒤에는 너희들 ‘박’ ‘석’ 두 성을 가진 사람 중에 나이 많은 자가 왕위를 이어라”고했다. 그 후에 ‘김’씨도 흥하였음으로 삼성(三性: 박·석·김)들 중에 이빨이 많음에 따라 왕위를 잇도록 했다. 이러한 까닭에 왕을 이사금이라 불렀다. 2년 정월에 시조 묘에 제사 지내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복지정책행정을 실감할 수 있는 삼국사기 기록대목이 보인다. 관리에게 명하여 현지에서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을 위문하게 하고, 늙고 병들어 혼자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이를 부양하게 하였다. 소문을 듣고 이웃나라 백성들이 모여 들었다. 이 해에 백성들의 생활이 즐겁고 편안하여 처음으로 ‘도솔가(兜率家)’를 지었다. 이것이 가락(歌樂)의 시작이다. 도솔은 도리, 두래, 두류, 두리, 두솔 등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유리왕 때 지어진 도솔가는 불교와는 무관하다. 풍속이 즐거운 국가적 악(樂)의 노래 시초이다. 공동체의 노동요인 두릿노래, 나라를 다스리는 다살노래로 불려진다. 육부(六部)를 정한 후 두 편으로 나누어 왕녀를 각각 거느리고 편을 짜고 패를 나눠, 가을 7월 16일부터 매일 새벽 부(部)의 뜰에 모여 길쌈을 시작하여 밤 열시 경에 끝냈다. 8월 15일 그동안 짠, 길쌈을 심사하여, 적게 짠 편이 술과 음식을 차려 대접하였다. 이 때 노래와 춤과 여러 가지 유희가 일어나니, 가배(嘉俳)라 한다. 행사 시 진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듯 ‘회소회소’ 그 소리가 구슬프고 아름다웠다. 뒷날 사람들이 이 곡에 노래를 붙이고 회소곡이라 하였다. 회악(會樂)이라 불리는 가사는 전하지 않고 그 유래만 전한다. 34년 9월에 왕이 신하에게 말했다. “탈해는 신분이 국척이요 지위가 재상에 이르렀고, 공을 여러 번 세웠다. 나의 두 아들은 재능이 그를 따르지 못하니, 내가 죽은 뒤에는 탈해를 왕위에 오르게 하라 나의 유언을 잊지 말라.” 겨울에 왕이 별세하였다. 사릉원에 장사지냈다. 5대 파사이사금이 왕 위에 올랐다. 유리왕의 둘째아들이다. 왕비는 김씨 사성부인으로 갈문왕 하루의 딸이다. 창고를 풀어 백성을 구제하고 옥에 갇힌 죄수를 조사하여 두 가지의 사형 죄에 해당하는 자가 아니면 모두 석방토록 하였다. 홍수와 가뭄 변방에 생길 침략에 대비하여 농사와 양잠을 장려했다. 가소성과 마두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시켰다. 22년 봄 2월, 성을 쌓고 이를 월성이라 이름 지었다. 가을 7월, 왕이 월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29년. 비지국(창녕), 다벌국(대구), 초팔국(합천, 초계면 일대) 정벌하여 합병하였다. 33년 겨울 10월에 왕이 별세하여 사릉원에 장사지냈다. 『신라왕릉 연구』이근직(李根直) 저서에 오릉 내에서는 구체적으로 특정 고분을 지칭하여 누구의 능이라고 명시하지는 않는다. 오릉의 전체적인 외형은 원형봉토분이나 봉분자락 일부에서는 호석으로 추정된 혼석(魂石)이 노출되어 있다. 오릉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와 『삼국유사』 기이편의 신라시조 혁거세왕과 미추왕 죽엽군조에 의거하면, 통일신라 중대 이후부터 사릉(蛇陵)이라는 능호(陵號)와 함께 혁거세왕과 알영부인 그리고 나머지 3왕의 능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현재 오릉의 영역에는 알영부인이 탄생하였다는 우물로 전해지고 있는 알영정(閼英井), 조선 세종 11년(1429)에 세워진 제실인 숭덕전(崇德殿), 그리고 조선영조 31년(1755)에 세운 시조 왕릉비(始祖王陵碑) 등이 전해온다. 그리고 능원의 서남편 송림에는 숭덕전 남쪽일원의 담엄사지(曇嚴寺址)에서 출토된 초석과 석재들을 옮겨 놓았다. 오릉의 소나무는 능을 향해 절을 하듯 예의와 겸손으로 푸른 절개 멋스럽다. 휘어져 뻗은 솔가지, 길이 되는 나이테를 세월이 감고 가는 풍경이다. 바람이 건드릴 때 마다 스치는 솔향에 마음을 맡기면, 솔방울 밟고 가는 능 둘레길 정적에 멈추는 심신이 느슨하다. 능선 봉오리마다 안겨드는 선(線)들이 솔잎에 빽빽하게 묻어나는 오릉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 사진촬영대회'의 역대 수상작들을 모아 11월 20일까지 월성 발굴조사 현장에서 전시한다. 월성 사진촬영대회는 월성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16년부터 매년 월성 발굴조사 현장을 배경으로 ‘천년 궁성, 월성을 담다’는 주제 아래 경주 시민과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열어온 대회다. 올해는 월성 사진촬영대회의 다섯 번째 해로, 봄날의 뜨거웠던 촬영 불빛을 담은 기쁨이라는 의미의 ‘월성 딜라이트’란 타이틀로 지난 4년간의 수상작 201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는 ▲월성의 자연 ▲사랑, 그리고 동심 ▲월성, 추억을 담다 ▲역사의 흔적 ▲나도 고고학자로 구성돼 사진 속 월성의 자연과 역사를 느끼고, 아름다운 사랑과 추억을 되새겨 볼 수 있다. 전시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코로나19의 확산 방지와 안전한 전시 관람을 위해 운영 요원이 휴무 없이 상주하고 있다. 또 월성 교육·홍보팀인 ‘월성이랑’이 야외전시 소개와 함께 월성 문화유산에 대한 상시 해설을 진행하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측은 “앞으로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야외전시와 연계한 온라인 홍보 행사, 학술대회 온라인 중계, 발굴조사 현장 실시간 공개 지원 등 다양한 형태의 비대면 소통 창구를 제공할 계획”이라면서 “30일부터는 ‘월성 딜라이트: 야외사진전시’의 온라인 전시 소개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유튜브를 통해 진행”한다고 밝혔다.
경상북도 문화관광공사 전문위원인 강정근 씨가 지난 17일 페이스 북에 올린 포스팅에 경북관광공사 앞 광장에 독도의 날을 기념하는 국화동산을 조성한 사진이 올라왔다. 지난 10월 25일이 독도의 날이었는데 경북관광공사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동산인 것이다. 봉우리 2개를 올리고 국화꽃으로 ‘I ♡ DOKDO’라 써놓은 동산이 인상적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땅 독도에 ‘독도의 날’을 지정한다는 것이 오히려 우습게 느껴지지만 일본의 악착스런 역사 조작과 독도에 대한 침략야욕이 해를 거듭할수록 도를 더하고 있는 마당에서는 무엇이라도 대응하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독도의 날은 바로 이런 국민들의 울화통을 풀어보는 작은 장치일 것이다. 독도와 관련해 경주가 독도와 무관해 보이지 않은 현대적 사례가 있다. 김석기 의원이 경북경찰청장 시절 2005년 7월 ‘명예독도경비대’를 만들었고 만화가 이현세 화백을 명예독도경비대장으로 위촉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현세 화백은 우리나라 만화사에 한 획을 그을 ‘남벌’로 일본의 침략야욕에 대한 대한민국의 통쾌한 징벌을 만화를 통해서나마 가한 바 있다. 이현세 화백이 명예독도 경비대장으로 위촉된 것은 그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당시 많은 경주사람들이 명예독도 경비대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최근 들어 경주여고 출신 김진희 씨가, 독도에 거주하며 평생을 독도에서 살며 독도를 지켜온 아버지 고 김성도 선생의 대를 이어, 독도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독도를 지키고 있는 실제 거주민이 경주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독도를 좀 더 친근하게 바라볼 이유로 충분할 것이다. 마침 지난 일요일 KBS 1TV ‘TV쇼 진품명품’에서 독도의 날 특집에 맞춰 고종황제가 칙령으로 배계주 초대울릉 군수 임명장과 절목을 내린 것을 방송했다. 이날 방송된 임명장에는 울릉군 관할 지역으로 석도 즉 지금의 독도가 분명히 명시되었다. 이 임명장은 독도가 우리땅임을 증명하는 사료적 가치를 존중하여 가격을 책정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으로 인정되기도 했다. 이렇듯 독도는 ‘그 누가 아무리 즈그 땅이라도 우겨도 우리 땅이라는 거’라는 강정근 씨의 마지막 일침처럼 영원한 대한민국 땅이다. 경주를 중심으로 다시 명예독도 수호대를 결성하면 어떨까?
나눔과 상생의 정신이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된다. 한국환경음악협회(회장 이상진)는 내달 1일 오후 3시 교촌한옥마을 최부자 본가에서 2020경상북도 도계음악회 ‘경주최부자음악회’를 개최한다. 이번 공연은 어려운 시기마다 곡간을 열었던 경주 최부자 정신을 계승해 코로나19로 힘든 시기 음악 창고를 열어 도민을 위로하고 침체된 경기 속에서 지역민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대한민국 사회발전대상에 빛나는 팝페라가수 소울 배은희, 아부르쪼 따란또국제성악콩쿨우승의 테너 김태근, 인기 최고절정의 앙상블팀 SParte, 독일유학파 첼리스트 정유진, 반주에 계명대 출강의 최희정, 독일유학파 피아니스트 김희경, 이나연 안무가가 이끄는 라당스발레단, 그리고 얼굴로 미는 성악가 이상진이 출연해 멋진 희망의 소리를 전한다. 이상진 회장은 “음악을 일컬어 만인의 공통된 언어다. 말이 달라도 하나가 될 수 있는 아름다운 문화인 것”이라면서 “음들이 모여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듯 지역음악예술인들이 코로나로 지친 주민들을 위해 뭉쳤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모두가 하나가 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나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한편 경상북도 도계음악회는 경상북도 도민의 자긍심 고취와 문화생활향유의 일환으로 매년 2개 지역을 선정, 개최한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했다.
서울시가 1000만 서울시민과 함께 하는 서울대공원 동물들에 대해 온라인 위령제를 지내고 있어 동물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끌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16일부터 11월 1일까지를 서울대공원에서 시민들과 함께 하다 죽은 동물들에 대해 온라인 위령제를 지낸다고 공식 공고했다. 11월 1일은 서울대공원이 동물원을 개장한 날짜로 이 날짜에 맞춰 해마다 동물 위령제를 지내왔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위령제로 대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1984년 개장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동물원으로 서울 창경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창경원의 동물원과 놀이시설을 경기도 과천시로 이전하면서 개원했다. 동물들은 모두 259종 2413주가 사육되고 있으며 이들 종에는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 양서류와 곤충류가 포함돼 있다. 특히 단순히 보고 즐기는 동물원의 기능을 넘어 천연기념물 17종과 CITES(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ed Species of Wild fauna and flora /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의 국제무역에 관한 협약) 관리 동물 126종, 국내멸종 동물 26종 등 165종을 관리하고 있어 동물보호 차원에서도 기여하고 있다. 한편 온라인 추모 소식이 퍼지자 서울 대공원 홈페이지에는 “인간의 생명뿐 아니라 모든 생명이 하나하나 다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낍니다. 위령제 너무 좋네요. 아가들도 자유로운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렴” (오로라공주병), “함께해줘서 고마웠고 즐거웠어. 그곳에서는 마음껏 뛰놀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길 바랄께. 잊지 않을께” (문딩) 등 댓글이 시민들의 애틋한 댓글들이 달려 함께 해준 동물들에 대한 고마움이 전해졌다. 전국적으로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비롯 애완동물의 사육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해마다 서울대공원에서 실시하는 동물위령제는 사람을 위해 사육되는 동물들에 대해 한 단계 높은 공감을 표하는 뜻 깊은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일성 조인좌 선생 현창사업회(회장 조철제)는 지난 26일 경주시립도서관 앞에 위치한 일성 조인좌 선생 기적비에서 ‘일성 조인좌 선생 추모재 및 일성복지재단 대자원 67주년 설립 기념식’을 가졌다. <사진> 이날 행사는 국민의례, 헌향, 헌작, 재배, 기적비 낭송, 조철제 회장의 추모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으며, 조인좌 선생의 생전 신라 천년의 전통문화계승을 위한 여러 활동과 동시에 민족의 위기를 위해 헌신한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겼다. 조철제 회장은 “일성 선생께서는 지역민들은 물론 전쟁고아들을 위한 많은 희생을 하셨다”면서 “그 뜻을 이어가고 널리 알리는 것이 선생의 도움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라고 전했다. 한편, 일성 조인좌 선생 현창사업회는 선생을 뜻을 알리고 기리기 위해 일성봉사대상 제정, 각종 학술 대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