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경주에 대한 칼럼을 쓰게 되면서 경주의 미션, 비전, 브랜드에 대해 틈틈이 생각해본다. 내 고향 경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로서 무엇으로 구심력과 성장 동력을 만들 것이며 어떤 지속가능한 경영으로 세계 속에 자리메김하고 영속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번성의 길을 걷는 도시가 될 수도 있고 쇠퇴의 길을 걷는 도시가 될 수도 있는 냉정한 시대 조류에서 경주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인구만 봐도 그렇다. 통일신라시대 87만을 웃돈 경주의 인구수와 26만도 안 되는 오늘의 경주시 인구수를 비교한다면 국제화 시대라는 지금의 모습은 신라 때보다 위축되어도 지나칠 만큼 크게 위축되어 있는 셈이다. 그만큼 경주라는 브랜드 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져 있는 것이다. 브랜드라는 이름조차 없었던 1000년 이전의 경주가 가졌던 천금 같은 브랜드 가치는 그 시대 경주, 신라인들의 폭 넓은 포용력과 국제친화력에서 얻어진 산물 아닐까? 현대사회에서 브랜드만 가지고도 이를 사용케 하고 엄청난 로열티를 받는 기업 관련 소식을 자주 접한다. 브랜드는 그 자체로 지배력 높은 힘이 되고 브랜드 속에 경제적 가치는 물론이려니와 그 브랜드를 창출한 이들의 자부심이 녹아있다. 탄탄히 구축된 브랜드는 또 다른 팬덤을 형성하며 지속가능한 미래에 연결해 준다. 굳이 다국적 기업이나 최근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방탄소년단(BTS) 같은 거창한 브랜드를 들먹이지 않아도 학창시절 배운 처용가(處容歌)에서 브랜드의 단편을 찾을 수 있다. “셔블 발기 다래 / 밤드리 노니다가 / 드러가 자리 보곤 / 가라리 네히어라 둘흔 내해엇고 / 둘흔 뉘해언고 / 본대 내해다마난 / 아자날 엇디하릿고” 여기서 사용된 ‘셔블’은 어휘의 변천을 겪으며 지금의 ‘서울’이란 이름의 원천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서울의 영역이 눈이 와 쌓인 곳을 지칭하는 ‘설울’에서 음운 ‘ㄹ’이 탈락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일국의 수도 이름이 그렇게 허투루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면에서 천 년 수도 경주의 옛 이름 셔블을 새로 지어진 도성의 이름으로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주는 지금의 서울에 브랜드 로열티를 청구할 수 있지 않을까? 서울 사람들이 들으면 발칙한 느낌이 들어 이런 생각이 실제로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의미심장한 농담으로 사용되곤 하는 것은 그만큼 브랜드의 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 신라의 수도 셔블은 ‘처용’이라는 사람에서 보듯 외국인이 함께 살고, 문화와 물산이 집중되는 국제화된 도시였다. 그랬으니 조선의 도성이 한성이나 한양이라는 이름과 함께 은근슬쩍 서울로 브랜드화 시켜 놓았을 만큼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경주’라는 브랜드 가치는 얼마나 될까? 지금의 경주는 대한민국에서, 아시아권에서, 이를 뛰어넘어 ‘글로벌’이라는 무한대의 경쟁 차원에서 어떤 도시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다시 반문하게 된다. 아쉽게도 경주는 아직도 경주만 가질 수 있는 현대적 브랜드를 만들지 못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라천년의 고도’라는 단어는 과거에 얽매인 경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아직도 셔블에 갇혀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안타깝게도 최근 천년고도에 이어 경주를 지칭하는 꼬리표들은 지진, 원자력, 맥스터 등 무거운 짐까지 덧씌워졌다. 그 무거운 틈새로 서울의 경리단길을 흉내 낸 황리단길이 어렵게 자멱질하는 정도다. 브랜드는 고사하고 신라를 뛰어 넘은 물산과 문화, 과학과 기술을 현대의 경주가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경주가 경주만의 브랜드로 새롭게 탄생하기 위해서는 현대적 수요에 맞는 새로운 모델들이 정비되어야 한다. 예컨대 비즈니스하기 좋은 곳, 창업하기 좋은 곳, 개방적이며 다양성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충만한 곳, 외지인과 외국인이 생활하기 제일 좋은 곳, 특히 기술창업의 천국이 된다면 어떨까? 여기에 도덕과 문화가 반듯하게 함께 하고, SHE(Safety, Health, Environment)를 핵심가치로 도전목표를 설정해서 실행해 간다면? 꿈같은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와 이스라엘의 실리콘 와디(Silicon Wadi (와디는 히브리어로 ‘계곡’))는 경주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 속에서 꿈의 브랜드를 창출한 도시들이다. 경주는 산이 많고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넓을 만큼 면적도 넓으며 당연히 계곡 또한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더구나 인터넷의 발달과 첨단 교통수단의 발달은 풍광 좋고 아름다운 전통도시를 최고의 혁신, 최신의 신기술 중심도시로 선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은 분위기다. 배짱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 ‘꿈과 함께 꿈 너머 꿈도 필요하다’는 말로 경주의 변화를 기대하며 다시 태어난 ‘경주’라는 브랜드가 세계 속에서 통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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