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낙영 시장이 이달 1일부터 시작된 단계적 일상회복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시민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주 시장은 지난 23일 대시민 담화문을 통해 이 같이 강조했다. 주 시장은 지난해 2월 22일 첫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이후 1년 9개월 동안 인내와 희생으로 고통을 감내해 준 시민들과 방역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 관계 공무원들의 희생에 감사를 전했다. 22일 현재 시민 75.8%가 2차 예방접종을 완료한 가운데, 성공적인 예방접종을 위한 경찰서와 군부대, 소방서 등 유관기관과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도 대해서도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경주시는 그간 코로나19 상황 속에 취약계층 마스크 긴급 배부, 도내 최초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설치·운영, 전 복지시설 코호트 격리 등 과감하고 적극적인 방역조치를 취해 온 바 있다. 또 코로나19 장기화로 바닥으로 떨어진 민생경제를 되살리는데 행정력을 집중해 큰 고통을 겪고 있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중소기업,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지난 추석 정부의 5차 재난지원금과는 별개로 ‘경주시 특별재난지원금’을 전 시민을 대상으로 지급해 소비 촉진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코로나19 어려움 속에서도 경주시는 미래를 위한 주요사업들도 적극 추진해 왔다. 신라왕경 복원·정비사업 본격 추진, 문무대왕과학연구소 유치, 차량용 성형가공센터 건립, 신농업혁신타운 착공, 강변로 개통, 황금대교 건립 등 대규모 사업들을 차질없이 진행하고 있다. 이달 1일 위드 코로나 단계적 일상회복 조치와 함께 지역에 조금씩 생기가 돌아오고 있다. 대규모 체육대회 ‘화랑대기 전국유소년 축구대회’가 개최돼 안전하게 경기를 치르고 있으며, 황리단길을 비롯한 주요 관광지에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해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고 있다.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특별법(신라왕경특별법) 제정 2년, 특별법이 본격 시행된 지 1년을 맞은 경주에서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이 하나씩 가시화되고 있다. 문화재 특성상 사업추진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신라왕경특별법 제정으로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추진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 경주시에 따르면 먼저 올해 말 금관총 보존전시공간이 완공돼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추진 중인 고분정보센터와 월성 해자 정비·재현사업, 동궁과 월지 관람환경 개선사업 등이 내년 준공된다. 연말 준공예정인 금관총 보존전시공간 지난 201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금관총에 대한 재발굴을 시작하면서 전시활용계획이 본격 논의된 지 6년여 만에 결실을 맺는다. 금관총 보존전시공간은 기존 천마총과 쪽샘유적발굴관과는 다른 형태의 전시관으로 건립된다. 천마총은 무덤 단면에 유물을 전시하고 있고, 쪽샘유적발굴관은 발굴현장을 공개하고 있는 반면, 금관총은 신라시대 적석목곽분의 형태와 축조과정 등을 전시·공개해 차별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추진 중인 고분정보센터는 내년 하반기 준공될 예정이다. 고분정보센터는 관람객들에게 신라 고분군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하게 된다. 당초 올해 연말 완공예정이었던 월성해자는 내년 4월경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해자는 과거 적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 외곽을 둘러 파서 만든 구덩이에 물을 채워 놓은 인공 연못이다. 경주시와 문화재청은 지난 1984년 시굴조사를 시작으로 2014년까지 신라 왕성인 월성에서 해자 6기를 발굴 조사했다. 이 가운데 석축해자 1곳만 물을 채운 담수해자로 복원하고 2곳은 물을 채우지 않았고 3곳은 뚜렷하게 복원·정비하지 않았다. 이후 2015년 월성 발굴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월성 경관을 회복하고 역사문화 유적으로서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해자 정비 필요성이 제기됐다. 경주시와 문화재청은 월성해자가 성곽 방어목적은 물론, 조경 목적도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담수·석축해자로 복원·정비하기로 하고 2018년 공사에 들어갔다.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의 첫 성과는 월정교 복원사업이다. 지난 2018년 복원이 완료된 월정교는 일반에 공개된 뒤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는 경주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월정교는 교촌한옥마을, 핫플레이스 황리단길 등과 함께 경주 관광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주시는 차질 없는 사업추진으로 대릉원, 동부사적지, 동궁과 월지 등 일대를 세계적인 명품공간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계획이다. 또 찬란했던 신라왕궁 복원을 위한 월성 발굴조사와 더불어 황룡사 복원을 위한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경주시는 핵심 유적지가 하루빨리 복원돼 그리스 아테네, 이탈리아 로마처럼 명실공히 세계적 역사문화관광도시로 조성하고 나아가 국익에 기여하기 위해 사업추진에 박차를 가할 각오다. 주낙영 시장은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은 경주의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일이며, 사업 추진에 따른 고용 창출과 관광 활성화 등 지역 경제를 도약시키는 큰 계기가 될 것”이라며 “시민의 염원이며 오랜 숙원이던 신라왕경 복원사업에 시민과 한 마음 한 뜻이 돼 사업 추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신라왕경특별법 제정으로 안정적인 사업 추진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추진동력이 될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특별법’은 지난 2019년 11월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특별법을 뒷받침할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시행령’이 제정·공포됐다. 신라왕경특별법 제정의 가장 큰 의의는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추진에 있다. 특히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와 핵심유적을 명문화해 신라왕경 복원사업 추진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향후 정책 변화에 상관없이 지속적인 사업 추진과 안정적인 예산 확보가 가능하게 됐다. 세부적으로 보면 문화재청의 신라왕경 복원·정비사업추진단이 임시조직에서 상시조직으로 변경됐다. 또 신라왕경 복원·정비사업 종합계획을 5년마다 문화재청에서 수립하고, 경주시가 연도별 시행계획을 매년 수립하게 된다. 아울러 지난해 시행령 제정으로 기존 8개이던 사업 대상이 15개 사업으로 확대됐다. 핵심유적 범위 확대에 따라 총 사업예산도 9450억원에서 1조150억원으로 늘어났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이영경 총장이 이전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동국대 경주캠퍼는 지난 18일 백주년기념관에서 동국대 경주캠퍼스 지역경제 기여도 및 지역상생 협력방안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동국대의 지역사회 기여도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과 지역의 상생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이영경 총장은 그간 제기됐던 동국대 이전설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이 총장은 “이전설은 법인에서 동국대 경주캠퍼스 경쟁력 확보를 위한 3가지 방안인 국책사업 수주, 지역과의 협력 통한 상생방안,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전 검토 중 하나였다”면서 “법인 이사회를 통해 경주캠퍼스가 첫 번째와 두 번째 방안에서 노력하고 있으며 성과도 내고 있으니 세 번째인 학교 이전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학교 상황이 어렵다. 발전 방안을 모색해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동국대 이전설이 지역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반대 여론이 형성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 반대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이전하지 않도록 학교의 어려움을 듣고 함께 해결하는 방안도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미나 주제는 ▲이재력 전 교육부 사립대학정책과장의 지역과 함께하는 지방대학 위기 공동대처방안 ▲이충기 경희대 교수와 송학준 배재대 교수의 ‘동국대 경주캠퍼스의 지역사회 기여도 분석’ ▲원종일 동국대 경주캠퍼스 기획처장의 ‘경주캠퍼스 주요성과 및 경주시와 상생발전 협력방안’ 등 총 3개의 주제로 진행됐다. 주제 발표 중 지역사회 기여도 분석은 동국대 경주캠퍼스가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줬다. 이충기, 송학준 교수는 “연구결과 경주캠퍼스가 지역에 연간 2000억원 이상의 생산유발 효과가 있고 2000여명 이상의 고용 효과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코로나19로 효과가 감소한 측면도 있지만 동국대가 존재함으로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매우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생들은 지역 상권의 주요 소비자이자 구매의 주체이면서 싱크뱅크다”며 “학생들이 떠나지 않고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과 상생을 주제로 마련된 세미나에 경주시 대표로 참석한 김호진 부시장은 대학과 시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부시장은 “대학이 교육부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시와 대학이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이 많이 있다”면서 “대학과 지역사회가 실무적 협의를 통해 공동노력하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의회 권한 강화만큼 민의 대변에 최선을 다 해 주시길…
풀뿌리 지역 언론의 모임인 (사)바른지역언론연대(이하 바지연)가 주최·주관하는 2021년 정기 세미나가 지난 23일 진행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을 받아 ‘풀뿌리 미디어가 희망이다’라는 슬로건으로 열린 이번 세미나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전국에 산재한 46개 회원사들을 줌(Zoom)과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연결하여 온라인 세미나로 처음 시도됐다. <사진> 메인 진행 부스는 회장사인 고양신문사에 차려졌고, 은평시민신문 박은미 편집장의 사회로 세미나가 시작됐다. 사회자가 46개 바지연 회원사를 호명할 때마다 회원사 직원들이 화면을 통해 반가운 인사를 서로에게 전했다. 비록 서로 얼굴을 대면하지는 못했지만, 곳곳에 흩어져있는 지역신문사의 사무실 풍경과 직원들의 분위기를 엿보는 재미를 주기도 했다. 첫 순서로 개회식에서는 회장 이·취임식이 진행됐다. 2년 임기를 연임하며 4년 동안 바지연을 이끌었던 이영아 이임회장(고양신문 대표)은 “지역신문 관련 법과 제도에 대한 대응을 하며 4년이라는 시간을 바쁘게 보냈다”면서 “새로운 시대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신임회장과 함께 바지연이 새로운 법과 제도를 잘 마무리해서 지방 분권시대의 중심축으로 서기를 기대한다”고 이임 인사를 전했다. 최종길 신임회장(당진시대 상임이사)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지역 언론의 환경에 어떻게 대응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회장 중심의 구조를 사무국 중심으로 전환 ▲편집책임자, 뉴미디어 담당자 등 세부 모임 활성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사업 중심에서 탈피해 바지연의 독립성 추구 ▲지역신문의 미래전략 위한 전문가 그룹과의 공동 연구 강화 등의 비전을 밝혔다. 이어 지역신문 관련 이슈를 지속적으로 발굴 보도한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에게 감사패가 전달됐다. 장슬기 기자는 “바지연의 활동을 취재하며 이렇게 건강한 지역신문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 스스로에게도 큰 힘이 됐다”는 소감을 전했다. 다음으로 풀뿌리 언론상 시상식이 진행됐다. 먼저 각 신문사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에 대한 장기근속상 시상식이 진행됐고, 고성신문 구아라 편집기자 외 23명이 수상의 기쁨을 안았다. 수상자를 대표해 소감을 밝힌 김주현 설악신문 취재부장(22년 근속)은 “이제는 희망을 넘어 결실을 맺는 회원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꾸준함으로 성과를 내는, 건강한 내년을 기약하자”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올해의 풀뿌리 언론상 취재부문 우수기자상은 남해시대 전병권 기자에게 돌아갔다. 전병권 기자는 ‘학원비 과다 징수, 우리 아이는 괜찮나요?’라는 기획기사로 지역의 고질적인 사교육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쳐 변화의 마중물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편집부문 우수기자상은 옥천신문 전효진 기자가 받았다. 심사위원들로부터 “새롭고 도전적인 편집으로 지역신문의 편집 역량을 한 단계 성장시켰다”는 평을 받은 전효진 기자는 “입사 3년차에 큰 상을 받았다. 잘 가르쳐주신 선배님들 덕분”이라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다음으로 바지연과 기사 제휴를 하고 있는 ‘오마이뉴스’가 선정하는 우수제휴사 시상에서 ‘은평시민신문’이 호명됐다. 사회자석을 지키고 있던 박은미 은평시민신문 편집장은 “수상 사실을 전혀 모르고 이 자리에 와서 깜짝 놀랐다”면서 “어려운 여건에서 신문을 만들고 있는데, 오마이뉴스가 옆에서 큰 힘이 돼 주었다. 앞으로도 잘 버텨나가겠다”며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어진 세미나는 각 신문사별로 미리 전달된 강의 영상을 시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의 ‘예산을 알면 지역을 알 수 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의 ‘지방자치법 개정과 향후 과제’를 주제로 진행되었으며 알차고 유용한 내용으로 회원사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영아 이임회장은 “전국 곳곳의 바지연 식구들이 온라인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면서 “각각의 개성 넘치는 신문사들이 모여 한국의 지역언론을 한 몸처럼 이끌어가자”는 인사로 바지연 세미나를 마무리했다.
달리던 시내버스에서 의식을 잃은 50대 승객이 버스기사의 심폐소생과 승객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사진> 자칫 골든타임을 놓쳤다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었지만 기사와 승객들의 일사분란하고 순간적인 기지가 소중한 생명을 살렸다. 경주시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전 11시 33분경 황성동을 지나 용강동 승삼네거리로 진입하던 51번 버스에서 승객 안모(52)씨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안 씨가 쓰러지자마자 승객들이 곧바로 상황을 살폈다. 먼저 한 승객은 안 씨의 기도를 확보하기 위해 몸을 바로 눕혔고, 버스 기사 김수찬(62) 씨도 버스를 멈춘 뒤 안 씨에게 달려가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승객은 119에 신고했다. 이 승객은 창밖을 살피며 버스 위치와 안 씨의 상태를 정확히 119에 알렸다. 이들의 응급처치는 약 1분간 이어졌고, 다행히 안 씨는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다. 또 다른 승객은 안 씨의 목을 받치고 손과 팔, 다리를 주무르며 이들을 거들었다. 당시 긴박했던 장면은 버스 내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안 씨가 쓰러진 뒤 약 18초 만에 심폐소생술이 시작됐고, 119 신고도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안 씨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다. 이들은 119구조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안 씨 옆에서 그의 건강을 살폈다. 잠시 후 구급대원이 도착하고 안 씨는 무사히 병원으로 이송됐다. ㈜새천년미소 51번 버스기사 김수찬 씨는 “쓰러진 승객의 상태를 확인해 보니 숨도 쉬지 않아 위기상황이라고 판단하고 본능적으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하며 “매월 한 차례씩 회사에서 심폐소생술과 안전교육을 받아 온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북대 한동규, 대구대 박영민 학생, 경주여자정보고 이순진 학생 등 승객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상황이 어려워졌을 것”이라며 당시 응급조치에 도움을 준 승객들의 이름을 열거했다. 한편 병원으로 이송된 안 씨는 안정을 찾고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지난 2007년 넘어진 채로 발견된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을 바로 세우기 위한 기원 법회를 봉행하면서 입불 작업이 본격화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그동안 불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다양한 연구용역을 진행했지만, 만에 하나 불상이 훼손될 것을 우려해 입불작업을 시도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 그러는 사이 불상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된 지는 벌써 14년을 넘겼다. 조계종은 지난 22일 경주 남산 열암곡에서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기원법회’를 봉행했다. 이번 법회는 불상이 바로 세워져 예경의 대상으로 모셔질 수 있길 기원하는 자리로, 조계종이 2019년부터 시작한 백만원력 결집불사의 일환으로 열렸다. 백만명의 원력을 모아 한국불교를 일으켜 굳건한 반석 위에 올린다는 의미가 담긴 것. 또 입불과 관련 종단의 뜻을 다시 한번 천명하고 유관기관의 협조를 요청·당부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기원법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비롯해 중앙종회의장 정문, 교육원장 진우 스님 등 종단 주요인사와 교구본사주지협의회 대표 등운,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불국사 주지 종우 스님과 종단 부·실·국장 스님 등이 대거 참석했다. 또 주낙영 시장, 송형근 국립공원공단이사장, 임영애 동국대 교수, 김유식 전 국립제주박물관장, 진병길 신라문화원장과 신도회 60명 등 약 150여명이 동참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부처님이 바로 서시는 것은 이 땅의 불교가 온 국민의 삶의 지침이 되고 귀의처가 돼서 안심입명의 지남이 되도록 세상의 근기에 맞게 널리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라며 “열암곡 부처님이 우리의 자화상이며, 이를 바로 세우는 것은 한국 불교를 다시 세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마애불상 입불까지는 시일 걸릴 듯 지난 2007년 5월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이 발견된 이후 불상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2017년 주변 정비방안 연구 및 실시설계용역 등을 거쳐 2020년부터 주변 정비사업을 진행해 올해 8월 마무리된 상태다. 하지만 불상 바로 세우기와 관련해서는 문화재청의 일관되지 않은 정책으로 지연됐고, 현재까지 제대로 된 입불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1년 12월 불상의 현 상태로 보존하는 것으로 원칙으로 결정하고 하부에 관람용 공간을 조성키로 했다가 2012년 12월 손상이 우려되자 불상 거동방안을 검토했다. 이어 2013년 7월 다시 현 상태로 보존키로 했다가, 2015년 경주시로 사업을 이관해 입불 방안 용역을 진행하는 등 오락가락했다. 이어 경주시가 지난 2015년 3월부터 2016년 9월 5일까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입불방안 연구 용역을 의뢰해 방안을 마련했지만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의 모의실험 요구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당시 용역 결과 민간헬기와 모노레일을 활용해 입불에 필요한 자재를 이동하고, 호이스트 크레인을 설치해 불상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같은 방안으로 마애불상을 바로 세울 경우 사업비 43억여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은 2017년 4월 19일 열린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 입불관련 보고회에서 지반이 연약해 작업 시 파손위험이 예상되므로 모의실험 뒤 입불작업을 할 것으로 요구했다. 당시 문화재위원들은 현재 불상 주변 지반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 중량 80t의 암석을 설치하고 장비를 이용해 세우는 모의실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모의실험을 위해서는 약 20억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산되면서 더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다만, 이번 조계종의 기원 법회를 계기로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입불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용역을 재추진할 것으로 보여 어떤 결론이 날지 주목된다. 경주시 관계자는 “문화재청, 종교계, 학계 등 관계 전문가들과 함께 불상이 안전하게 바로 세울 수 있도록 최적의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은 2007년 5월 22일 엎어진 상태로 발견됐다. 불상 안면이 바닥의 바위와 불과 5㎝ 떨어져 파손되지 않은 채 보존돼 ‘5㎝의 기적’이라는 말을 낳으면서 세간의 화제가 됐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460㎝, 발아래 연화대좌가 100㎝, 전체 높이가 560㎝에 이르며, 총 무게는 80t으로 추정된다. 불상은 1430년 발생한 규모 6.4 지진으로 넘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축조 시기는 인근에서 발견한 토기 연도를 측정한 결과 8세기 후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주시가 2022년도 본예산안 1조5650억원을 편성해 시의회에 제출했다. 올해 본예산 1조4895억원 보다 755억원 증액됐다. 일반회계는 1조3850억원, 특별회계 470억원, 공기업특별회계 1330억원 규모다. 내년도 예산안이 올해 대비 5.1% 늘어난 것은 철저한 재정분석과 진단을 통해 보통교부세를 1280억원 이상 확보해 가능했다는 것이 경주시의 설명이다. 경주시는 위드코로나 시대를 맞아 시민들의 빠른 일상회복을 위한 민생안정과 지역경제 활성화, 사회안전망 구축은 물론 대규모 투자사업 배분 등에 역점을 두고 예산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주요 예산안을 보면 사회복지·보건분야(31%)와 교통물류 및 국토 지역개발(16%)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어 농림해양 산림과 산업·중소기업(14%), 공공질서 안전 및 환경분야(8%), 문화 및 관광분야(8%), 일반공공행정분야(6%) 등의 순이었다. 사업별로는 △위드 코로나 시대 관광르네상스 사업인 문화예술공간 활성화, 관광서비스 시설환경개선지원 등 15억원 △도시경관개선사업인 서라벌 황금정원 프로젝트 36억원 △차별화된 경관정책 사업인 신라의달밤 황금조명 78억원이 배정됐다. 또 △폐철도 활용사업인 동천 황성 도시숲 조성 100억원, 지하차도 구조개선 25억원 △황남·안강 화물자동차 등 공영주차장 조성 136억원 △강변로 개설 마무리 29억원, 감포중앙도시계획도로 마무리 25억원 등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사업에 중점을 뒀다. 한편 경주시가 제출한 2022년도 예산안은 시의회 심의를 거쳐 다음 달 13일 확정될 예정이다.
경주에서 23일 코로나19 확진자가 18명 발생했다. 11월 위드 코로나 시행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지역 내 추가 확산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주지역 누적 확진자 수는 1204명으로 늘었다. 11월 들어서는 모두 93명이 확진됐다. 경주시에 따르면 1187번과 1188번 확진자는 각각 60대 여성, 10대 남성으..
경주시선거관리위원회는 2021년도 공정선거지원단 1명을 공개 모집한다. 공정선거지원단은 내년 대통령선거 및 지방선거를 대비해 정치관계법 안내·예방활동 및 선거·정치자금업무 등을 보조한다. 공직선거법 제60조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에 해당하지 않고, 정당의 당원이 아닌 중립적이고 공정한 자로서 공정선..
경주시가 2022년도 본예산안 1조5650억원을 편성해 시의회에 제출했다. 올해 본예산 1조4895억원 보다 755억원 증액됐다.일반회계는 1조3850억원, 특별회계 470억원, 공기업특별회계 1330억원 규모다.내년도 예산안이 올해 대비 5.1% 늘어난 것은 철저한 재정분석과 진단을 통해 보통교부세를 1280억원 이상 확보해 가능했..
s i g n a l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은다. 다시 그것을 하나의 개체(Unite)로 나뉜다. 각각의 개체들이 하나의 요소가 되어 화면전체로 나열되어 질서를 잡는다. 나는 마른 솔잎(Dry pine needle,솔가리비)을 전달수단으로 작업하고 있다. 한 단위를 일정한 형태로 만들어 그것을 화면에 배열하는 작업이다. 변화의 상태를 이끌면서 상황을 신호(Signal,몸짓)로 변환하여 담으려 했다. 그런 변주 속에서 부호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자연의 구체적인 지문같은 메시지를..... 늘 그 자리에 머물 수 없이 변하는 힘속에 살아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시간의 간절함도 묻어있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30여년 만에 부활됐으나 그동안 민의를 대변해야 할 지방의회의 역할은 주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방의회는 크게 광역의회와 기초의회(시·군·구의회)로 구분되는데 이 중에서 지역주민과 가장 밀착된 기초의회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많은 지방자치 전문가들과 지역 언론들은 기초의회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제기해 왔으며 지역민을 대변하는 대의기구 역할을 주문해 왔었다. 그동안 주민과 가장 가까이 있는 기초의회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런 상황은 집행부가 오랫동안 구축해 온 시스템에 비해 기초의회는 제도적 뒷받침이 적어 자치권을 행사할 수 없는 여건도 한몫을 했다. 특히 2~30년 가까이 업무를 본 집행부 간부에 비해 기초의원들은 행정지식이나 전문성이 부족해 의회의 기능인 입법권(조례 재개정 등), 감사권(행정사무감사), 예산심의권 등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여기에 2006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정당 공천제가 도입되면서 기초의원들과 주민들 간에 관계가 더 밀착되지 못하는 환경이 되었다. 국회와 기초의회는 그 역할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다. 기초의회는 순수하게 지방자치단체의 일을 감시·감독·지원함으로써 그 효과가 곧바로 지역주민에게 파급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하지만 기초의원들이 주민을 대변해야 할 본연의 역할보다 공천권자에게 예속됨으로써 선거에만 당선되면 다음 선거를 위해 공천자들 따르는 상황이 됨으로써 주민자치제의 주축이 되지 못하고 말았다. 문제는 집행부의 축인 기초단체장, 기초의회의 축인 기초의원들이 정당 공천제 폐지에 대해 많이 공감하면서도 공천권자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계속돼 지방자치제의 목적에 반하고 있다. 또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정착을 위한 법 개정은 더디게 진행됐으며 이러한 조건 속에서 기초의원들은 주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역할 부재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주민들의 자치의식은 매우 높아졌으며 지방자치법 개정 요구도 그만큼 높았다. 그러한 바람이 이어져 1988년 지방자치법 전부개정 이후 32년 만에 ‘지방자치법 전부개정 발의안’이 2020년 12월 9일 국회를 통과했으며 2022년 1월부터 적용하게 됐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개정된 지방자치법을 보면 여러 부문에서 주민자치권을 강화하는 내용이 많이 보완됐지만, 특히 기초의원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전문인력 충원과 기초의회의 독립적인 운영을 위한 인사권 독립은, 집행부에 대한 견제기능 강화 등은 큰 진전이 있었다.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경주시의회도 내년부터 시행되는 의회의 인사권 행사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현재 경주시의회 사무국에는 집행부의 인사규정에 따라 국장급(4급) 1명, 과장급(5급) 3명, 6급 7명, 7급 6명, 8급 5명, 9급 3명 등 총 22명이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에는 4, 5급을 제외한 나머지 직급에서 증원돼 33명까지 늘어나게 됐다. 그리고 시의원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정책지원관을 5명 채용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정책지원관은 시의원의 의정 자료 수집과 조사, 연구를 지원하며 지방자치법에 따른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게 돼 시의원들의 전문성 강화로 의정활동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경주시의회의 인사권 독립에도 불구하고 공직사회 특성상 승진과 부서에 따른 이해득실 등이 맞물리게 되면 의회사무국 구성에 예기치 못할 변수는 있겠지만 이는 앞으로 의회의 역할이 커지면 커질수록 구성에 어려움은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공직자로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장기적으로는 장점이 많은 보직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지방자치법 개정의 핵심은 집행부에 대한 견제기능을 보다 강화함으로써 주민들의 의견을 행정에 제대로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취지다. 지방의회 사무직원에 대한 임면·징계 등 인사권을 의장에게 부여하고 자치입법·예산심의·행정사무감사 등을 지원하는 정책지원관을 신설하는 것은 의회의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주문인 것이다. 따라서 민의의 전당인 지방의회도 변화와 혁신이 요구된다. 특히 지역주민들과 가까이하면서 대변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하는 의회 상을 세워야 한다. 앞으로 지방의회의 집행부에 대한 견제기능도 강화될 것이다. 권한이 많이 주어지는 만큼 책임 또한 무거워지는 법이다. 내년부터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시행되면 의원 스스로 이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의원은 권한보다 역할과 사명이 먼저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주 사람이 공유하고 널리 알리고 싶어 할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장편소설 <대지>(大地)로 1938년 노벨문학상을 탄 펄 벅(Pearl S. Buck, 1892~1973)선생의 경주 방문기이다. 1960년 가을, 한국을 찾은 펄 벅 선생은 우리나라 문화의 정수를 알고 싶다며 경주를 방문하게 된다. 기차를 타고 가던 선생의 눈에 마른 가지에 몇 개씩 걸린 빨간 과일들이 들어온다. 그게 무어냐고 물었더니 동행한 통역사가 ‘감’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왜 저렇게 따지 않고 두었냐고 다시 물었다. 통역사가 다시 한국에는 ‘까치밥’이라고 해서 과일을 일부러 남겨 새들의 먹이로 준다고 대답해 주었다. 선생이 놀라며 감탄해마지 않았다. 심지어 ‘굳이 경주에 가지 않아도 한국을 찾아온 보람이 크다’며 한국인들의 심성에 감동해마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의 감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주에서 여러 유적지를 다니던 중 어느 시골 마을을 지나는데 해질 무렵 지게에 짐을 가득 지고 가는 농부를 만나게 된다. 농부 옆에는 소가 달구지를 끌고 가는데 그 달구지에도 짐이 가득 실렸다. 그것을 본 선생이 농부에게 다가가 왜 짐을 소에 싣지 않고 지고 가느냐고 물었다. 농부의 대답이 이랬다. “에이! 어떻게 타고 갑니까? 저도 하루 종일 일했지만 소도 하루 종일 일했는데요. 그러니 짐도 나누어서 지고 가야지요” 펄 벅 선생은 “내가 한국에서 가본 어느 유적지나 왕릉보다도 이 감동의 현장을 목격한 하나만으로도 한국에 오기를 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생은 “이 나라는 주변의 세 나라-중국, 소련, 일본-에는 잘 알려져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나 서구 사람들에겐 아시아에서도 가장 알려지지 않은 나라다. 한국은 보석 같은 나라다”라고 극찬했다. 뒤에 미국으로 돌아간 선생은 1963년 출간한 ‘살아있는 갈대’라는 소설에서 ‘내가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고 기술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까치밥이나 경주 농부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으나 선생에게는 완전히 낯설고 새로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서양의 농부라면 당연히 감을 마지막까지 다 땄을 것이고 누구나 당연하게 수레에 짐을 모두 싣고 자신도 올라타 편하게 집으로 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이 본 농부 이야기는 실상 필자에게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어린 시절 소를 몰고 일 나가신 아버지께서 돌아오실 때는 아버지의 지게에는 온갖 짐이 지어져 있었지만 소는 그냥 맨몸으로 툴레툴레 걸어오곤 하던 풍경을 일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실은 아버지뿐만 아니라 그 시절 소를 가진 농부들은 대부분 그렇게 소를 아꼈고 경주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의 소도 그런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다만 대문호 펄 벅 선생에게는 그 장소가 경주였기에 경주가 더 강한 인상으로 남았을 것이고 그런 계기를 통해 경주와 경주사람들이 더 감동스럽게 묘사될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경영 관련 용어로 ESG라는 단어가 도처에서 쓰인다. 기업 경영을 안정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를 해치지 않는 의사결정(Governance)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펄벅이 감동한 1960년대 경주의 모습은 어쩌면 오늘날 요구되는 가치를 훨씬 초월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사람과 자연이 어떤 마음으로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세계에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모른 채 다만 먹고 살기에 바빠 이런 미덕을 미처 밖으로 나타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뿐, 이미 우리는 그런 정신 세상을 일상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으로 인해 우리나라 전통의 놀이, 우리 서민들이 향유한 저변의 문화는 물론 ‘깐부’라는 단어 하나의 위력까지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게 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펄벅 선생이 전하고자 한 경주의 핵심가치가 격변하는 오늘날 어쩌면 놀라운 컨텐츠,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재사용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펄 벅 선생이 경주농부와 홍시에서 본 놀라움은 오징어게임 못지않았을 테니 말이다.
아마존의 CEO 제프 베저스는 워라밸(work-life-balance)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밴런스 즉 균형을 추구한다는 것은 한쪽을 추구하는 만큼 한쪽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시소게임과도 같아서 결국 마이너스가 되는 거래관계가 된다고 했다. 대신 그는 워라하(work-life-harmony) 즉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프 베저스의 말이 새로운 트랜드의 물꼬를 트는 이유가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추구하는 워라밸이 기업 내에서 꽤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돈보다는 가정을 선택하기 때문에 승진에 미련을 두지 않고 과감하게 칼퇴근을 선언하는 신입사원들과,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달려온 기성세대와의 가치는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조직문화의 변화를 위해 코칭하고 있는 기업의 관리자는 3년 차 정도의 사원이 연봉이 낮은 회사로 기꺼이 이직하는 사례를 들어 놀랍다고 말한다. 균형(balance)과 조화(harmony)는 서로 다른 말일까? 워라밸의 균형이라는 것이 시소의 원리처럼 합이 0이 되는 의미로 시작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나치게 일과 조직과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강요당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자기표현이었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이는 기성세대가 국가부흥이나 기업의 성공을 위한 일 중심을 중요시한 나머지 가정과 개인의 삶이 사라진 것에 대한 스스로 한탄과, 집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안고 자라온 밀레니얼 세대의 바람이 함축된 것이라 본다. 워라밸의 추구는 워라하로 가기 위한 길목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워라밸이 아래에서의 물결이었다면 워라하는 워라밸의 가치관을 불편하게 바라본 기업을 운영하는 처지에서 선도하는 것이라면 조금은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은 해마다 성장을 해야 한다. 즉 날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되어야 하고, 적극적이고도 활발한 움직임이 필수이다. 그러나 물리적인 환경이 변화하지 않는 직장이라는 조직은 재미나는 곳이 아니다. 하루의 일이 끝나고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난다고 해서 다시 새로운 판을 짜서 일을 시행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직급과 인간 그리고 일과 개인이 그물망처럼 얽혀서 어느 한구석으로도 틈을 낼 수 없도록 빡빡하다. 이런 속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아이디어가 샘솟아 나오기는 어렵다. 숨 쉴 틈을 찾아 돈이나 성취감보다는 편안함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기쁨을 추구했던 밀레니얼 세대의 바람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또한 밀레니얼 세대도 기업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자영업자처럼 원하는 만큼만 일하고 문을 닫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대충, 적당한 이익을 내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프로젝트가 맞물려서 시행되는 만큼, 내가 정한 시간만큼, 내가 원하는 만큼만 일하고 멈춘다면 또 다른 사람은 나머지를 채우기 위해 밤을 새우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승진과 성과금을 원하지 않더라도 내가 받는 적당한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프로젝트는 완성되어야 하고, 납기 일은 맞춰야 하며, 고객이 원하는 바를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퇴근 시간이 조금 늦어질 때도 있고, 퇴근 후에 집에서 일해야 하는 때도 있다. 물론 매일 그렇게 한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개인의 삶(life)이 추구하는 것은 가정, 가족, 친구, 자유로운 영혼, 휴식, 취미 등이라면 일(work)은 돈, 능력, 경험, 일의 가치, 회사의 이익, 사회적 관계 등을 추구한다. 워라하는 이 두 가지 영역에서의 조화는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아니다. 두 영역을 넓은 범위에서 바라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전체에서 바라보아야 시소처럼 합이 0이 되는 물리적인 양의 균형이 아니라 더우면 찬 기운이 필요로 하고, 엄하면 따뜻한 정이 필요하듯 균형을 맞추어가는 진정한 조화를 이루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서 나를 잊어버렸던 기성세대와 개인을 뚝 떼어내어서 나만을 온전히 바라보는 밀레니얼 세대의 장점을 엮어야 한다. 전체가 하나가 되는 힘이 필요하면 전체가 되고, 개인의 창의력이 필요하면 개인의 가치를 부각하는 조화로움이 필요하다. 균형과 조화는 우주 질서와 사회질서, 그리고 인간 질서의 핵이다. 결코 새로울 것 없이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조화’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혹은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 트랜드가 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의 가치 존중, 일이 재미가 되는 세상, 스스럼없는 인간관계, 시대를 거슬러도 변함없는 가치의 추구일 뿐이다.
해주오씨 천파(天坡) 오숙(吳䎘,1592~1634)은 증조부 경상좌수군우후 오수억(吳壽億), 조부 경상우병마절도사 오정방(吳定邦)이고, 부친 종친부(宗親府) 전부(典簿)를 지낸 오사겸(吳士謙), 모친은 한성부서윤 이시중(李時中)의 따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역사서를 배웠고, 문장이 뛰어나 신동이라 소문이 자자하였으며, 16세에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1553~1634)의 칭찬을 받았다. 19세에 진사에 합격하였고, 21세에 증광문과에 합격해 승문원 권지정자(權知正字)가 되었다. 30세에 종사관으로서 관서와 해서를 순시하였고, 40세 되던 1631년 9월에 경상도 관찰사 신분으로 공무를 겸하여 경주의 옥산서원, 안동의 도산서원 등을 찾았다. 아쉽게도 43세에 풍병에 걸려 젊은 나이에 타계하였지만, 여러 요직을 지냈고, 수많은 시문을 남겼다. 그가 남긴 문장은 간결하면서 명료하고, 550여 수의 한시가 전한다. 특히 유람하며 지은 기유시(紀遊詩)에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천파집』이 있다.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1646~1715)이 신도비명을 지어 오숙의 인물됨을 알렸고, 문집 서문은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1595~1671)이 지었다. 그리고 최석정은 최명길의 손자로 모두 인조반정 이후 이괄(李适)의 난과 연관된 인물들이다. 오숙은 옥산서원을 찾아 주변의 빼어난 경치를 즐겼고, 회재의 후손을 만나 인조의 서찰을 보며 감회를 떠올렸다. 또 도산의 구천(龜川)에 이르러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1467~1555)의 자취를 찾아 기문을 남겼는데, 회재 이언적의 증조모와 농암의 조모가 자매지간으로 서로 인척이 되며, 농암과 퇴계 역시 인척간이었으니, 오숙의 「유옥산서원기(遊玉山書院記)」와 「유도산기(游陶山記)」 등의 글을 통해 도통연원의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그가 남긴 「유옥산서원기」는 서원의 규모와 주변 풍광 그리고 독락당을 지키는 후손과 회재선생의 경계의 말씀을 중점으로 드러내었다. 유옥산서원기(遊玉山書院記) - 오숙 안강현에서 10리를 가면 옥산서원에 도착한다. 옥산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장수(藏修)하신 공간으로, 후학이 공경하고 사모하여 융경(隆慶) 5년(1571)에 서원을 세웠고, 만력(萬曆) 원년(1573)에 위패를 봉안하였으며, 갑술년(1574) 정월 14일에 사액(賜額) 받았다. 비로소 마을 어귀로 들어가니 경계가 남달랐다. 길가의 장송(長松)은 드러누운 듯 뒤덮었고, 샘이 흘러 물이 고인 곳을 하용추(下龍湫)라 하였는데, 양쪽 언덕 모두 푸른 바위의 경치였다. 용추에서 계곡을 따라 수십 걸음을 가서 서원에 도착하였다. 출입문 역락문(亦樂門)에 이르자 … 무변루(無邊樓)를 지나 구인당(求仁堂)에 올랐다. 당(堂)의 좌측을 양진재(兩進齋), 우측을 해립재(偕立齋)라 하고, 뜰의 동재를 민구재(敏求齋), 서재를 암수재(闇修齋)라 하였다. 잠시 쉬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손을 씻고 사우(祠宇)에 나아가 분향하고 재배하였다. 원유 네 사람이 따로 서서 예를 도와 마치고, 양진재로 돌아왔다. 원장 이의잠(李宜潛)이 들어가 배알하였고, 물러나서 봉인을 떼어 부첩(簿牃)에 정리하였다. 용추에서 북쪽으로 수십 걸음을 가니 독락당이었다. 선생께서 평소에 거처하던 곳으로 서증손(庶曾孫) 이홍후(李弘煦)․이홍기(李弘炁) 등이 그곳을 지켰다. 독락당의 북쪽에 계정(溪亭)이 있고, 독락당과 정자에 어득강(魚得江)의 제영시가 있고, 근대의 서애 류성룡과 여헌 장현광 등 시작(詩作)의 구절구절 어휘를 다 기록하지 못한다. 이홍후 등이 상자 하나를 내어와 열어 보였는데, 인조(仁祖)께서 동궁(東宮)에 계실 때 선생에게 준 서찰로, 어묵(御墨)이 완연하게 어제와 같았다. 또 선생께서 강계(江界)에서 유배할 때 집안 동생과 주고받은 편지를 읽는데, 한 글자마다 한 방울의 눈물이 흘렀다. 편지글 모두 모친 봉양의 방도와 동생과 조카의 권학(勸學)의 마음이 담겼고, 하나라도 유배의 고단함을 말하지 않았다. 정혜사 법당의 북쪽 창에는 선생이 손수 쓴 글씨가 있는데 ‘말은 공경함이 있고, 행동에는 법도가 있어야 한다. 새벽에 얻음이 있다면, 낮에는 실천해야 한다. 잠시라도 수양하고, 쉴 때는 마음을 안존(安存)함이 있어야 한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어서 바름으로 마음을 수양하고, 곧음으로 기운을 길러야 한다. 신사년(1521) 중추(仲秋)에 이(李) 복고(復古)’등으로, 복고는 선생의 자(字)이다.
11월은 늦가을의 정취가 최고조인 나날입니다. 만추의 정취를 제대로 선사하는 숲이 우리 지척에 있습니다. 아무데서나 카메라 셔트를 눌러도 척척 ‘착한’프레임이 연출되는 치유의 숲인데요, 바로 동남산자락 통일로에 있는 산림연구기관인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입니다. 최근 ‘경상북도 지방정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커다란 돌에 새겼더군요. 경상북도의 각종 산림사업을 수행하는 연구기관으로서, 기후변화에 대응한 산림 생산성 향상 등 산림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곳입니다. 꽤나 유명한 포토스팟인 메타세쿼이아 나무들 사이로 가로질러진 외나무다리가 있는 공간은 연구기관 건립 등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가볼 수 없어서 안타까웠습니다. 맞은편에도 크고 작은 다양한 수종들의 나무들이 시원스럽거나 혹은 오밀조밀 숲을 이루고 있는데요. 숲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시원하게 쭉 뻗은 50여년 수령의 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 숲을 만납니다. 핀란드나 노르웨이의 어느 숲을 연상시킨 달까요?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식물낙우송과의 낙엽침엽교목으로 높이는 35미터, 지름은 2미터 정도며 잎은 마주나고 가을에는 적갈색 단풍이 드는 나무입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키로 곧게 자라는 이 수종은 어느새 우리 산야에서 어렵지 않게 보는 나무가 됐습니다. 11월 오전의 찰나적 햇살은 치명적으로 투명하게 이 숲 사이를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경주를 찾은 많은 관광객들도 이 숲의 진가를 알고 있는지 숲엔 사람들이 일렁이고 있었지요. 나무와 숲 사이를 걸으며 사람들은 참 행복해했습니다. 느릿느릿 숲 속을 산책하며 무척 편안해보였거든요. 우리 곁에 이런 숲이 있어왔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들과 호흡하는 내내 맛보는 충일감은 어떤 순간보다 절대적인 행복감을 선사하니까요. 그리고 도로변에 조성된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으면 먼 곳으로 여행 온 듯한 이국적 정취를 느끼게 됩니다. 다소 짧은 구간이어서 아쉽기는 했지만요. 입소문난 경주의 숨은 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경주 시민들은 이곳을 잘 찾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을 숲이 짙어지고 더욱 깊어져 잎들을 분분히 떨구는 계절입니다. 바람에 홀연하게 지는 낙엽들 따라 우리들 근심도 날려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제 곧 무성했던 잎들을 떨궈내곤 긴 겨울을 견디는 시간이 오겠지요. 그러나 여전히 그 빈 공간에는 늦가을 한때의 기억을 간직한 따스함이 남아 있을 겁니다. 비어있는 충만으로요. 이즈음 생각나는 책 한 권이 있습니다. ‘늦어도 11월에는’ 이라는 소설인데요, 그 책을 끼고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들으며 메타세쿼이아 숲을 또 걸어야겠습니다. 숲을 한 바퀴 천천히 돌면서 곧 저물어갈 올 한해에 대한 탐색의 시간을 가져볼 생각입니다.
이번 주 이 코너는 전혀 즐겁지 않은 코너가 될 듯하다. 어쩌면 매우 열불 나는 코너일 수도 있다. 지난 11월 11일 담비첫날 님의 페이스북에는 작은 고마움을 전하는 글이 실렸다. ‘지옥 같았던 1주일의 시간을 보냈지만 또 다른 시작을 하며 아침을 맞는다는 담비첫날 님의 글은 일주일 전에 일어났던 어이없는 일을 회고하고 있었다. 언니 한 명을 비롯 유치원에 보낼 쌍둥이를 키우는 담비첫날 님은 지난 11월 3일 유치원으로 서류제출을 하러 갔다가 어이없는 말을 들었다. 쌍둥이 중 한 아이가 빠져 있다는 것. 11월 2일 두 아이 모두 ‘다자녀 우선순위’로 어렵게 모바일로 접수한 후 화면 캡처까지 해둔 담비첫날 님은 당혹감을 떨치지 못했다. 그것도 11월 3일 아침 6시 54분에 담비첫날 님의 남편이 해당 사이트에 접속해 취소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실이 없었던 담비첫날 님은 우여곡절 끝에 유치원 담당자들로부터 당일 현장 접수를 해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두 시간 지난 후에 교육청 관계자가 막는다는 연락이 왔다. 상식적으로 두 아이를 한꺼번에 취소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인터넷 접속조차 하지 않았던 담비첫날님 부부는 황당함을 금할 수 없었다. 곧바로 교육청 담당관과 연락을 취했더니 학부형이 스스로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은 사실을 증명하지 않는 한 추가 접수는 안 된다는 냉정한 말이 돌아왔다.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았는데 접속하지 않은 사실을 학부형에게 증명하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러나 이틀이 더 지나고 나서는 접수가 쌍방 확인된 한 아이마저 탈락 처분시켰다. 백방으로 방법을 찾던 담비첫날님은 이 정황을 페이스북에 올려 주변의 도움을 구하는 한편 임종식 교육감에게까지 억울함을 호소했다. 마침 담비첫날 님의 다급함을 본 경북일보 김재홍 기자, 경상북도의회 배진석 의원, 정가은 경주민주당 위원장 등이 교육청에 전화해 상황파악에 나서는 한편 상식선에서 일이 진행되도록 주선하려는 노력을 시도했다고 한다. 임종식 교육감도 전화를 걸어와 정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알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어 교육청 담당관이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관심가진 분들에게 해주었다. “11월 3일 오전 6시 54분에 아이들 아버지가 접속해서 취소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이것으로 상황을 고쳐보려고 노력했던 분들이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이 내용은 사실 파악에 나선 본 기자에게도 액면 그대로 똑 같이 대답했다. 담비첫날님은 이 이야기에 더 펄펄 뛰었다. ‘아이 아버지가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는 거짓말까지 하고 있으니 더 억울 다는 것이었다. 해당 담당관은 거듭되는 확인 전화에 ‘자기는 그렇게 판단했다’며 말을 바꾸었다. 그걸 왜 담당관이 마음대로 판단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느냐고 했더니 그래도 자기는 그렇게 받아들였다고 우겼다. 담당관에게 ‘그렇다면 이게 컴퓨터의 오류가 아니란 것을 증명해 보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담당관은 그것은 컴퓨터 관리 부서에 물어보란다. 학부형에게는 잘못을 직접 증명하라고 통보했던 담당관이 컴퓨터 관리 부서에 따지라고 하는 것은 어이가 없었다. 교육공무원이 존재하는 이유가 이런 일을 상식적으로 판단하고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함 아니냐는 질문에 그 유치원 경쟁률이 높아 특정 학부형의 사정을 돌보다 보면 다른 학부형과 아이들에게 공정하지 못한 결과를 줄 것이라 판단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대답이 돌아왔다. 편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억울한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한 아이가 마저 떨어진 것은 정상적인 추첨과정에 의해 떨어진 것일 뿐이라 대답했다. 담비첫날 님은 교육담당관이 아이 아버지가 수긍했다는 말을 번복했다는 기자의 대답에 그것만으로도 억울함이 일부나마 가셨다며 울먹였다. 자신들 일에 발 벗고 나선 분들이 다들 이 말조차 듣지 못한 채 아이 아버지가 잘 못 한 것으로 알고 물러선 듯해 더 가슴 아프고 억울했다는 것이었다. 아이만 많이 낳아라고 할 뿐 정작 아니 많이 낳아놓으니 이렇게 가슴에 대못을 박느냐며 책임 없는 교육정책을 개탄했다!! 다행히 담비첫날님은 가족들이 함께 자동차 캠핑을 떠나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가족끼리 더욱 단단히 서로를 다독이는 모습이다. 쌍둥이는 시내의 다른 학원을 알아보는 중이란다. 그러면서 담비첫날님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결연히 도움을 주기 위해 달려든 분들과 댓글로 위로해준 이웃이 있어서 그래도 희망적이라며 인사를 마쳤다. 역시 언제나 그렇듯 시민 사회는 상식과 이해가 엄연히 살아 있는데 공직자들은 복지부동이고 위압적이다. 더군다나 미래 꿈나무를 돌볼 아이들의 교육을 맡은 교육담당관이 이 지경이면 경주 교육에는 내일이 없다. 이번 주 sns는 즐거워는 정말 즐겁지 않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A.Mozart/1756-1791) 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소금광산이 있는 작은 도시였다. 부친인 레오폴트 모차르트(1719-1787)는 잘츠부르크 궁정의 악사였고, 모친은 전업주부였다. 둘 사이에 7남매를 두었지만, 모차르트와 그의 누나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1751-1829), 일명 ‘난넬’만이 생존했다. 레오폴트는 이들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동생이 누나보다 배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레오폴트는 아들 모차르트가 천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지원 하에 아이들을 데리고 유럽연주여행에 나선다. 연주여행은 모차르트에게 인생의 큰 자양분이 되었다. 여러 다양한 음악을 접하고, 기라성 같은 음악 대가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런던 바흐’로 알려진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J.C.Bach/1735-1782)에게 교향곡 작곡법을 배웠고, 당대 최고의 카스트라토 가수였던 만추올리(1720-1782)에게는 성악을 배웠다. 또는 미츨리베첵(1731-1781)에게는 오페라 작법을 배웠고, 마르티니 신부(1706-1784)에게는 대위법을 배웠다. 이처럼 어린 나이에 다양한 음악지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한 덕에 모차르트는 역사상 성악과 기악 분야에 두루 탁월한 작품을 내게 된 거의 유일한 음악가가 되었다. 10년 동안의 연주여행을 통해 음악에 대한 눈을 뜨게 된 청년 모차르트에게 잘츠부르크는, 그의 욕망을 실현하기엔 너무 작은 도시였다. 더욱이 잘츠부르크에 새로 부임한 콜로레도 대주교(1732-1812)는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자라 카톨릭의 분에 넘치고 사치스런 의식을 배격했다. 그래서 궁정극장도 폐쇄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차르트는 호시탐탐 잘츠부르크를 뜰 생각만 할 수 밖에 없었다. 독일의 만하임은 근대적인 오케스트라가 태동된 곳이다. 모차르트는 이곳을 배회하다 첫 사랑 알로이지아 베버(Aloysia Weber/1760-1839)를 만나게 된다. 알로이지아는 베버 집안의 네 자매 중 둘째로 성악을 공부하고 있었다. 모차르트는 그녀를 위해 연주회용 아리아인 ‘테살리아의 백성들이여!(Popoli di Tessaglia!)’를 작곡하여 선물한다. 그런데 현재 이곡은 가장 높은 음을 내는 아리아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알로이지아는 이런 난곡을 소화할 정도로 실력 있는 성악가였던 것이다. 물론 그녀는 오페라 성악가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차르트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잘츠부르크에서 지루한 삶을 살던 모차르트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1781년 바이에른 선제후 칼 테오도르(Karl Theodor)에게서 오페라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Idomeneo re di Creta)’를 의뢰받은 것이다. 다시 말해 잘츠부르크 밖에서 작품의뢰가 들어 온 것이다. 모차르트는 당시 오페라 개혁의 기수였던 글룩(1714-1787)의 주장대로 이야기가 있는 탄탄한 구성을 가진 오페라를 만들어 호평을 받았다. 오페라 거장으로서의 첫 걸음이었다.
대학로 유명 연극감독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영화감독에도 도전하며 영역을 확장해가는 손기호 감독, 그는 인생작 영화 한편을 고르라고 하는 것을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입장이다. 스스로 영화광이라고 칭할 만큼 최소한 이틀에 한 편 꼴로는 영화를 본다는 손기호 감독은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변곡점 마다 기억나는 영화가 한 편씩 있다고 소개한다. 첫 번째 영화는 경주 명보극장 동시상연관에서 보게 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 이 영화는 미술대학교 교수이던 배용균 교수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면서 만든 영화로 저예산에 무명배우들을 기용해 찍은 반면 미술교수 출신답게 아름다운 영상미와 철학적인 논제를 제시하며 당시로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두 편씩 이어서 상영하는 영화관 특성상 손기호 감독은 두 번 더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엉뚱한 영화를 두 번이나 더 보느라 긴 시간을 영화관에서 보냈고 이 영화를 계리고 연극계로 발 디디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두 번째 영화는 비디오 테이프로 본 트란 안 홍 감독의 ‘그린 파파야 향기(1993)’다. 사이공을 무대로 펼쳐지는 베트남 영화로 역시 매우 큰 파장을 일으킨 영화다. 소녀 때부터 하녀생활을 하던 ‘무이’가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가는 여러 가지 정황들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이 영화는 음악과 음식, 복장이 영화의 미묘한 은유를 상징하며 극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손기호 감독은 이 영화가 너무 감동적이었던 나머지 청계천 비디오 상가로 가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구입했을 정도라고 회고한다. 손기호 감독은 그린파파야 향기가 여백의 미가 적절하게 녹아 있는 영화라고 극찬하며 이 작품이 나중에 자신의 연극 ‘복사꽃 피면 송화 날리고’가 여백을 두도록 하는 계기였다고. 세 번째 영화는 봉준호 감독, 송강호·김상경 주연의 살인의 추억(2003). 화성에서 일어난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이 영화는 손기호 감독이 스텝으로 참여한 연극 ‘날보러 와요’가 원작이었고 첫 번째 영화의 실패로 의기소침했던 봉준호 감독이 이 연극에 매료되어 영화로 만들어 스타덤에 올랐던 작품이라 더욱 애착이 간다. 손기호 감독은 연극에서 표현하지 못한 다양한 은유를 영화가 세심하게 표현해 놓았다고 평가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 역시 아주 인상적으로 본 영화로 꼽는다. 네 번째 영화는 이란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이란의 저명한 감독 아쉬가르 파라디의 작품으로 치매 아버지를 두고 이민을 가려는 아내와 버티는 주인공, 임신 사실을 숨긴 채 아버지를 간병하는 가정부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과 갈등을 다룬 영화다. 서로 분명한 가치관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양심과 종교를 오가며 벌이는 상황들을 통해 무슬림 사회의 가족관과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손기호 감독은 이 영화가 인간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으며 끊임없는 소재를 이야기를 연결하여 잠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도록 꾸며 놓았다고 감탄한다. 이 영화를 인상 깊게 본 후 역시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2013)’,‘세일즈맨(2017)’을 찾아보게 되었고 역시 비슷한 만족감을 느꼈다고 소개한다. 다섯 번째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04)’로 일본영화역사의 명장반열에 오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2018)’. 이 영화는 2018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화제작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섬세하고 담담한 감정선으로 가족을 묘사하는 모습이 탁월하고 그에 걸맞는 영상미가 압권인 영화다. 특히 손기호 감독은 이 영화를 보면 무언가 큰 사건을 만들어 긴장하게 하거나 몰입하게 하지 않고 일상적인 일들을 통해 차분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힘이 놀랍다고 극찬했다. 이렇게 여러 편의 영화를 소개한 손기호 감독은 그러나 이중에서도 딱 한 편을 꼽는다면 이란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추천했다. 대학로에서 끊임 없이 화제작을 만들어내는 연극감독이 특별하게 소개하는 영화인 만큼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관람해 보기를 권한다. 마침 씨민과 나데르는 유뷰브에 무료로 공개되어 있어 스마트 폰으로 보거나 디지털 TV와 연동해서 관람하기에 딱 좋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