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는 결혼 이주 여성 및 자녀들의 생활 적응력 제고와 지역사회 정착을 유도하기 위한 2006년 제2차 ‘결혼 이주 여성 사회 적응 교육 한글·문화 교실’ 개강식을 지난10일 오후 2시 문화복지회관 강당에서 가졌다.
(사)신라문화원 (원장 진병길) 주최로 경주의 대표적 야간관광테마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달빛신라역사기행’이 지난 11일 안압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한영고등학교는 올해로 3년 연속 달빛신라역사기행에 참여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해설사들과 부처바위, 괘릉 등 문화유적을 답사하고 저녁시간 후 7시 30분부터 9시까지 안압지 야경속에서 국악 실내악단 ‘가람’의 멋진 국악공연과 반 별 장기자랑, 마지막으로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루키도그스타즈’ 밴드의 멋진 공연으로 학업에 지친 스트레스를 맘껏 풀었다.
화랑의 정신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 화랑의 후예 전통무예축제’가 지난 14일 오후 5시부터 보문 야외공연장에서 열렸다. 동국대 관광산업연구소(소장 박종희)와 경주문화원이 주최, 경상북도, 한수원(주) 월성원자력본부 후원, 한국전통무예협의회가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전통무예시연을 바탕으로 화랑제 및 승무, 명상음악공연 등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새로운 문화공연 상품으로 개발, 관광객 유치를 위한 기획 상품으로 개최됐다.
경주시 공무원 박완규씨(54세)가 월간 수필문학 천료로 문단에 등단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틈이 문학가로서의 꿈을 키워온 박씨는 수필전문지 월간 수필문학사가 주최하는 등단공모에 참여하여 “아! 쓰레기”로 초회 당선된 후 7개월만에 “귀한부자”로 천료 완료하는 기염을 토했다.
농토가 부의 척도이던 시절에는 농산물의 소출을 따져서 천석꾼 만석꾼으로 불렀다. 경주의 교동 최씨는 12대에 걸쳐 만석꾼이었다. 그 집안이 오랫동안 부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100리 안에서 거주하는 사람들 가운데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수원(주) 월성원자력본부(본부장 태성은)는 지난 11일 발전소 주변지역 육영사업의 일환으로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감포·양남·양북중학교 학년별 학업성적 우수학생을 선정하여 장학금과 장학증서를 전달했다.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6 조직위원회(공동위원장 김관용 경북지사, 속안 캄보디아 부수상)는 행사장 운영의 핵심 업무를 담당할 자원봉사 도우미 전문교육을 지난 10~11일까지 경주 대명콘도에서 실시했다.
국립 경주박물관(관장 김성구)에서는 오는 17일부터 ‘경주’와 ‘신라’를 테마로 한 현대미술 전시회 “신라”를 개최한다. 현대금속공예 작품을 통해 신라 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재해석하고 지역민에게는 보다 친근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매우 뜻깊은 시간이 될것이다.
경주시신라문화선양회가 주최하고 신라미술대전운영위원회와 한국미술협회경주지부가 주관한 제 27회 ‘신라미술대전’ 입상자 시상식이 11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열렸다.
傳신문왕릉(일명 효소왕릉)은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傳신무왕릉을 찾는 이는 드물다. 전 신문왕릉에서 7호 국도를 따라 2킬로미터쯤 남쪽으로 가다 만나는 LPG주유소 부근에서 좌회전하여 철로를 지나 500미터쯤 올라가면 최근 개발붐이 일고 있는 도동택지구획정리지구가 나오는데, 차를 세우고 북쪽을 바라보면 남북으로 길게 일렬로 늘어선 마을 한복판에 소나무가 울창하고 그 속에 신라 45대 신무왕릉이 답사자를 반긴다.
‘성공의 비밀은 바로 평범속의 성실이었다’ 경주신문사 마련한 2006년도 경주시민상 경제부문 수상자인 이영산업기계(주) 이정호 사장을 면담하면서 느낀 점이다.
한국수력원자력(주) 방폐장건설사무소(소장 조성표)가 방폐장 예정 부지 인근 지역인 봉길리 주민과 함께 합동 환경 정화 활동을 벌였다. 지난 12일 시행된 이번 행사에는 봉길리청년회가 주축이 되었으며 방폐장 인근 지역인 두산교 주변 대종천을 함께 정화했다.
경주시의회 최학철 의장은 지난 11일 오전 12시 시내 모식당 에서 긴급 의장단 간담회를 갖고 월성원전 1호기 연장 가동과 관련한 현안사항을 협의했다. 이날 간담회는 지난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 소속 한나라당 김태환(구미을) 국회의원이 공개한 한국수력원자력의 지난해 6월 이사회 회의록 내용과 11일자 언론에 보도된 ‘월성 1호기를 설계수명 전에 가동을 중지, 전면 보수한 뒤 다시 20년 동안 가동할 계획’에 대하여 긴급 대응하기 위하여 개최되었다.
최학철 경주시의회 의장(경북의장단협의회 회장)은 지난 19일 오전 11시에 대전시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제115차 전국 시·군·자치구 의장협의회 시·도 대표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제5기 지방의회 전반기 전국 시·군·자치구의장협의회 감사로 선출됐다.
남경주로타리클럽(회장 손순천)은 지난달 27일 명원한식부페에서 인터랙트클럽을 창립했다. 14세~18세 사이의 중·고교생 연령의 회원으로 구성된 인터랙트는 청소년들에게 즐겁고 뜻있는 봉사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청소년 대상 봉사활동지원사업이다.
‘제34회 신라문화제’ 개최를 앞두고 9일 오후 7시 서라벌문화회관에서 화랑ㆍ원화 선발대회가 열렸다. 경주문화원과 KBS대구방송총국이 공동으로 주관한 이날 선발대회에서 화랑에는 김민우(경주고 2년 지), 임성진(경주공고 2년 인)· 임명진(경주공고 2년 용) 군이 각각 선출되었고, 원화에는 김윤정(근화여고 2년 진), 김아름낭(포항예고 2년 선) 장윤희(근화여고 2년 미) 양이 각각 뽑혔다.
경주시의회와 포항시의회가 지방의회 재출범 15년 만인 지난 10일 한자리에 모였다. 경주시와 포항시는 지리적으로나 생활권에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지만 두 도시의 젖줄인 형산강 관리문제를 두고 그리 협조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신라천년의 찬란한 문화를 전승·보전하는 ‘제34회 신라문화제’가 지난 13일~15일까지 3일간 황성공원 및 시내 일원에서 열렸다. ‘천년의 혼·천년의 빛·천년의 소리’를 전승해 새 천년 문화비전을 제시 하고자 경주시가 주최하고 신라문화선양회, 경주문화원, 예총경주지부가 주관한 이번 신라문화제는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시민화합 한마당 줄다리기, 그네타기와 궁도, 화랑씨름, 신라검법 시범 등 다채로운 민속경연과 민속문화를 체험하는 참여마당이 실내체육관 앞에서 열려 가을의 풍성함과 전통의 멋스러움을 동시에 만끽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승삼(僧三)마을(경주시 용강동)에는 승려로 변한 세 마리의 범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을 자주 해치곤 하였다. 두려움에 떨던 주민들은 합심하여 범을 몰아내기로 했다. 어느 날 일제히 몽둥이와 농기구를 들고 범을 쫒았다. 도망가던 범이 호명에 이르렀으나 형산강으로 산이 끊어지고 더 이상 도망갈 때가 없자 슬피 울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고려 현종 때 경주 부윤으로 있던 강감찬(姜邯贊)장군이 승삼에 여승으로 변한 호랑이 3마리가 사람을 해친다는 소문을 듣고 범을 잡으려고 하자, 범이 도망가다가 지금의 호명 앞산에 이르니 산이 끊어져 갈 곳이 없으므로 슬피 울었다고 한다. 호명이 위치한 곳이 형산강이 돌아가는 지점으로 더 이상 산이 이어지지 않는데서 생겨난 설화로 어쨌든 호명은 범의 울음과 깊은 관련이 있는 마을이다. 본래 안강현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강동면 호명리로 되었다. 호명은 경주에서 7번 국도로 포항으로 가다가 모서리에 이어서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다.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안강 갑산리와 안강리, 양동마을과도 맞닿아있다. 풍차가 걸린 네덜란드모텔이 있는 도로 서편일대가 호명리 새각단에 해당한다. 도로 동편인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호명이다. 경주시청을 기준으로 13km 거리에 있으나 승용차로 15분정도가 소요된다. 호미자루 쳐 넣을 돌 하나 없는 들판 월성이씨(40가구), 광주안씨(30가구), 달성서씨(8가구)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형산강을 끼고 있는 이 마을은 넓은 들판과 풍부한 물이 있어 일찍이 살기 좋은 마을로 알려져 왔다. 옛날부터 ‘일사방이호명’이라고 했을 정도다. 지금도 강동에서 제일 부자마을로 알려진 호명은 벼농사와 정구지(부추)로 높은 소득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키토산부추’라는 이름으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정구지는 30가구가 10만여 평에서 연간 20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강동면 전체 정구지 생산량의 약 40%가 이 마을에서 난다. 이곳 땅은 돌이 섞이지 않은 사질토로 들에서 일하다가 호미자루라도 빠지면 그 자루를 쳐 넣을 돌 하나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러한 토질이 정구지 생산에는 최적지로 때문에 질 좋은 정구지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회재도 이르지 못한 3불급의 호계공 새각단 호명의 서북쪽에 새로 세워진 마을이다. 도로 서편에 있는 모텔, 주유소 등 7~8가구가 들어서 있다. 북산서사(北山書社) 경주인 호계(虎溪) 이을교(李乙奎)를 향사하는 곳으로, 경내에는 지경사(持敬사)와 포요당(抱搖堂)이 있다. 이 서사는 본래 조선 순조 30년(1830)에 경주 북군동에 북산사(北山祠)로 창건되었데, 고종 5년(1868)에 금령에 의하여 헐린 것을, 1967년에 호명리 101번지 호계정사가 있던 자리에 복원하였다. 이을규는 28세에 문과에 급제,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와 교리, 경산현령과 초계군수 등을 역임하고, 중종 34년(1539)과 36년(1541) 두 차례에 걸쳐 사절로 중국을 다녀왔다. 병으로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 회재 이언적을 따라 학문을 강론하다가 명종 원년(1546)에 39세로 생을 마감했다. 호계공과 관련해 회재가 이르지 못한 3가지인 3불급이 전해오고 있다. 회재가 이르지 못한 장원과 중국사절, 자식번창이 그것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회재에 비견할 만큼 뛰어난 것을 풍자한 이야기로 생각된다. 호계서당(虎溪書堂) 망기당(忘機堂) 조한보(曺漢輔)가 강론하던 곳으로 본래 호롱골에 있었는데, 6.25전쟁 때 소실되어 1955년에 동향 5칸짜리 접집을 그 자리에 다시 세웠으나 1974년에 그 옆에 남향으로 새로 지으면서 3칸으로 줄였다고 한다. 조한보의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단종 때 절의신인 충정공(忠貞公) 조상치(曺尙治)의 손자이다. 성종 때 성균관 진사를 지냈고, 당대 석학인 회재 이언적과 무극태극(蕪極太極)을 논하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경지정(敬止亭) 조선 고종 때 안교현(安敎鉉 경주안부자)이 그의 선조를 추모하고, 후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1885년 사자봉 기슭에 건립한 정자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누마루를 갖춘 이 정자는 동편 2칸과 가운데 1칸은 청마루를 배치하고 그 나머지는 방을 배치한 특이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둥근기둥에 팔작지붕을 얻은 이 정자에는 기문을 비롯한 각종 시판들이 빼곡하게 걸려있다. 호명분교에서 도랑을 건너 맞은편에 있다. 호명리정효각(虎鳴里旌孝閣) 달성인(澾城人) 서상빈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936년에 세운 정효각이다. 효자 서상빈(徐尙賓)은 12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3년상을 치루었는데 어른들과 다름없이 행사하였다. 또 그는 30년 간 홀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어머니가 병이 들자 두 번이나 단지수혈을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자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20리 길을 걸어 성묘하였다고 한다. 7번 국도를 타고 포항방면으로 가다가 동편 길가에서 이 정효각을 볼 수 있다. 호명리 238-1에 있다. 마을입구에 ‘호명동천(虎鳴洞天)’ 표석 모아초등학교 호명분교 이 마을에 있던 호명분교의 터로, 1994년 3월 모아초등학교에 통합되었다. 현재 폐교로 비어있다. 마을표석 마을 어귀 오른쪽 사자산 기슭에는 ‘호명동천(虎鳴洞天)’이라는 표석이 자연석 표면을 깎아 고른 후 음각으로 새긴 표시석이 있다. 7번 국도가 새로 나기 전에는 본래 이 산 기슭으로 도로가 있었으며 이곳이 마을 입구에 해당한다고 한다. 놋방골 호명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큰 바위가 있다. 모과곡(募過谷) 호명의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모과골이라고도 한다. 범웃골 호명의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현재 기도원이 들어선 골짜기 범굴이 있다. 사자봉(獅子峰) 호명의 남쪽에 있는 산. 마을 어귀의 남쪽 즉 네덜란드모텔 동쪽에 솟아 있는 산이다. 절골 옛날에 절이 있었다고 하는 골짜기로, 호명 동남쪽에 있다. 범골 밑에 현재 기도원이 들어서 있는 자리다. 호롱골 호명리에서 오금리로 넘어가는 동쪽 골짜기로 회룡곡(回龍谷), 회룡동(回龍洞)이라고도 한다. 넙덕바우 복호산 8부 능선에 있는 큰 바위군이다. 국도 7호선 밑으로 난 마을진입 확장해야 호명은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으며 입구는 비록 초라해 보이지만 막상 마을을 들어서면 꽤 넓고 큰 마을이다. 강동면에서는 단일마을로는 제일 큰 마을이라고 한다. 국도 밑으로 나 있는 마을진입로가 좁고, 낮아 큰 차는 물론 소방차의 마을진입까지도 어려움이 있다. 진입로를 확대가 시급한 실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최근 형산강의 제방을 높여 도로보다 제방이 2m 가량 높아 홍수가 날 경우 강물이 마을로 역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따라서 도로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7번 국도를 높여 마을로 역류되는 강물도 차단하고, 도로 밑으로 나 있는 굴다리형식의 마을진입로도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총 167가구에 남자 200명, 여자 230명으로 총 430명이 생활하고 있다. 어느 시골마을이 다 마찬가지이지만 이 마을도 100여명이 65살 이상 노인이라고 한다. 또 57살 이하는 7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올해 95살의 이낙희(계산댁) 할머니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이규호(79 예비역 육군 준장), 안병열(70 전 안동대 인문대학장), 이광영(68 전임교수), 안홍원(67 예비역 육군 중령), 이홍우(31 공학박사 포스코연구원) 등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승삼(僧三)마을(경주시 용강동)에는 승려로 변한 세 마리의 범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을 자주 해치곤 하였다. 두려움에 떨던 주민들은 합심하여 범을 몰아내기로 했다. 어느 날 일제히 몽둥이와 농기구를 들고 범을 쫒았다. 도망가던 범이 호명에 이르렀으나 형산강으로 산이 끊어지고 더 이상 도망갈 때가 없자 슬피 울었다고 한다.
혹독한 시대, 시인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노래한다. 그러나, 살아남음은 얼마나 위대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