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주역이 지난달 28일부터 ‘경주역’으로 역 명칭을 변경했다. 지난 2021년 12월 28일 중앙선·동해남부선 이설로 기존 경주역이 폐역됨에 따라 경주역 명칭이 사라진지 2년 만에 역명이 부활했다. 신경주역은 2010년 11월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 개통 당시 기존 ‘경주역’과 혼란을 피하기 위해 지어진 명칭으로, 13년 1개월 만에 경주역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앞서 경주시는 주민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2022년 1월 지명위원회를 통해 역명 변경안을 의결하고, 2월엔 국가철도공단에 역명 변경을 공식 요청했었다. 이어 지난해 2월 국토부 고시로 역명 변경이 확정됐다. 현재 전국 역 안내표지, 승차권 예·발매 시스템, 열차 안내방송 등 후속절차가 모두 마무리됐다.
한국수력원자력이 국민권익위원회 주관 2023년도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32개 공기업(공직유관단체Ⅰ) 중 유일하게 청렴체감도 부분 1등급(종합청렴도 2등급)을 달성했다. 498개 행정기관 및 공직유관단체의 청렴 수준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국민권익위원회의 ‘2023년도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결과’에 따르면 한수원은 외부 고객(민원인)과 직원을 대상으로 부패인식과 경험 등을 묻는 ‘청렴체감도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인 1등급을 기록했다. 한편 공기업 가운데 종합청렴도 1등급을 받은 기관은 없었으며, 한수원을 포함한 10개 공기업만이 종합청렴도 2등급을 받았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청렴한 기업으로 거듭나고자 온 직원들이 마음을 모은 것이 좋은 평가로 이어져 자랑스럽다”며 “국민들의 신뢰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앞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청렴 선도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2023년도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전년에 비해 2개 등급 상승한 1등급을 받았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국민권익위원회 주관의 전국 498개 공공기관 대상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인 1등급을 달성했다. 공단은 이번 평가에서 ‘청렴노력도’ 부문 ‘기관장·고위직 관심과 노력도’가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난 5월 25일 취임한 조성돈 이사장은 취임사에서부터 청렴한 기관 토대 마련, 상호존중의 자세 등을 강조하며 기관장이 앞장서 청렴문화 확산 의지를 내비췄다. 또 취임 직후 반부패 청렴·윤리경영 실천 다짐 선언식을 통해 조직 내 부패 예방과 청렴한 공직 풍토를 조성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청렴도 취약분야로 분석된 ‘부당지시’와 ‘갑질행위’근절을 위해 입사 3년 이하 직원들을 대상으로 ‘청렴루키’를 구성했으며, 이를 통해 세대간 인식 차이를 줄여나가는 등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적극적 노력을 보여왔다. 이외에도 청렴한 공직문화 조성을 위해 △전 임직원 대상 청렴교육 △신고제도 실효성 제고를 위한 익명·모의신고 훈련 △청렴낱말퀴즈대회 △윤리인권발굴단 운영 등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다양한 청렴문화 활동을 시행했다. 공단 조성돈 이사장은 “공공기관으로서 청렴함은 기본이지만 무엇보다 지키기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청렴한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을 만들어 가기 위해 임직원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주시가 국민권익위원회 주관 청렴도 평가에서 2년 연속 종합 1등급을 달성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달 28일 ‘2023년도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498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평가 결과 경주시와 같이 2년 연속 종합청렴도 1등급을 받은 곳은 6곳에 불과했다. 또한 경북도내 22개 시·군 중에서는 경주시가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청렴도 평가 1등급 획득은 2017년, 2018년, 2019년 3년 연속 최하위인 5등급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5계단 수직 상승했다. 특히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등급을 받음으로써 청렴도시 이미지를 굳건하게 지켜냈다. 경주시에 따르면 이번 평가에서 청렴정책 추진체계(2개 지표)와 청렴정책 추진실적(7개 지표) 중 6개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부패사건 발생에 따른 감점은 한 건도 없었다. 이 같은 비약적인 도약은 경주시가 민선 7기 출범 이후 강도 높은 반부패 청렴 정책을 집중적으로 펼쳐온 것이 주요했다는 평가다. 경주시는 2020년 청렴윤리팀 신설을 시작으로 실무체계를 구축하고 시장이 직접 주관하는 클린 경주 추진기획단 운영 및 부서 간 수평적 협업 속에 민원을 해소하는 ‘청렴책임관제’ 확대 운영, 민원인과 시장이 직접 만나는 ‘시장 직소 민원의 날’ 등 청렴정책을 추진해 왔다. 또 권위주의의 상징이던 ‘시장 관사’ 폐지를 시작으로 ‘사랑방 좌담회’, ‘주니어 직원 및 직렬별 간담회’, ‘청렴메시지 전파’ 등 지속적인 취약분야 내·외부 소통을 지속하며 청렴한 조직 문화를 강조해 왔다. 주낙영 시장은 “15년 만에 경북도내 최초로 다산목민 대상에 이어 2년 연속 종합청렴도 1등급 달성은 민선7·8기 경주시가 그간 추진해 온 청렴에 대한 의지와 노력을 경주시민들께서 긍정적으로 평가해 준 결과”라며 “앞으로도 시민 및 관련단체와의 소통을 확대하고 제도개선을 통한 청렴문화 정착에 집중해 청렴도 1등급 정착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민권익위는 지난해부터 개편된 평가모형을 적용하고 있다. 민원인과 내부직원의 부패 인식과 경험을 측정하는 ‘청렴체감도 측정’(60%), 각 기관의 반부패체계 구축 의지와 실적 등을 반영하는 ‘청렴노력도 평가’(40%), 공직자 부패사건 연루 여부를 확인해 감점하는 ‘부패실태 평가’(10%) 등을 합산해 평가해 오고 있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해 ‘청룡’의 기운을 담다 甲辰年 靑龍之禧 (갑진년 청룡지희) 元旦揮毫 壽岩 (원단휘호 수암) 갑진년 청룡의 해 복을 기원합니다. 새해아침 수암이 쓰다. 글= 서예가 정수암. 서체= 주술적 길상을 의미하는 전서체.
재경건천향우회와 재경무산중고동문회 통합 한마음 송년회가 지난달 21일 용산 국방컨벤션 화랑홀에서 개최됐다. 이번 통합 한마음 송년회는 코로나19로 3년 만에 개최돼 그 의미를 더했다. 행사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재경건천향우회 박영근 회장과 정목 사무국장, 재경무산중고동문회 최재우 회장과 노시우 국장을 비롯한 회원 6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김종대 경주시 서울사무소장과 경주시청 관계자들이 함께 자리해 송년회를 축하했다. 이날 행사는 심현주 가수의 공연과 회원들이 찬조한 다양한 경품 등을 통해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한 해를 마감하는 값진 시간이 됐다. 박영근·최재우 회장은 “추운 날씨에도 3년 만의 행사에 많은 회원들이 참석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오랜만의 만남에 설렘이 가득한 만큼 즐겁고 단합과 화합의 시간이 되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재경건천향우회와 재경무산중고동문회는 2024년 송년회에 더 많은 회원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전MCS(주) 경주지점 화랑봉사단은 지난 14일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와 함께 독거노인 밑반찬 만들기 및 도시락 배달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이날 봉사단원들은 특별한 손길을 담아 만든 다양한 밑반찬과 호박죽 도시락을 만들었으며, 이 도시락은 지역에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에게 전달됐다. 화랑봉사단 이종욱 단장은 “한전MCS 경주지점 화랑봉사단은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앞으로도 소소하지만 따뜻한 사회봉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나를 마주하는 관계 인물을 촬영하다 보면, 혼자 촬영할 때보다 함께 있을 때 더 나 다운 모습이 담기는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 관계가 사랑일 때도, 우정일 때도, 가족일 때도 있었지만 ‘나를 나답게 둘 수 있는 사이’는 항상 자유로웠습니다. 서로를 가장 믿어서 부끄럼 없이, 무방비하게 내보일 수 있는 순간이 아름다웠습니다. 두 손을 꼭 맞잡고 아이처럼 바다로 향하던 두 분의 뒷모습이 그 어떤 장면보다 따스했습니다.
경주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도비 확보에 두각을 나타냈다. 경주시는 지난 21일 국회를 통과한 2024년도 국가예산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1조549억원의 국·도비를 확보했다. 국비 8877억원, 도비는 1672억원이다. 이 같은 결과는 올해 확보한 1조103억원보다 4.4%(446억원) 증가한 규모로,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기록을 갈아치웠다. 확보한 국비 또한 혁신원자력 기술연구원, 환동해 블루푸드 플라자 등 미래 먹거리 부문 사업이 다수다. 또 글로벌 원자력 공동캠퍼스 설립사업과 SMR 제작지원센터 설립 등 신규 사업도 반영됐다. 이는 정부예산 편성기조가 확장재정에서 건전재정으로 전환되고, 국세감소에 따른 신규사업 예산 편성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결과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특히 전기이륜차 배터리 공유스테이션 기술개발 및 실증사업, 글로벌 원자력 공동캠퍼스 설립, 환동해 블루푸드 플라자 건립 등 9개 사업에 총 105억원은 국회의 막판 예산 심의과정에서 확보했다. 사회간접자본(SOC) 부문 예산 확보도 눈에 띈다. 양남-감포간 국도2차로 개량 150억원, 농소~외동간 국도4차로 건설 193억원 등을 확보해 사업 추진에 탄력을 받게 됐다. 무엇보다 눈여겨 볼 예산은 국회 예산심사 과정에서 쟁점이 됐던 원자력 관련 예산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전액 삭감된 원전산업 지원 관련 정부예산이 모두 복원됐다. 경주에서 추진되는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 기술개발사업, 문무대왕과학연구소 설립, 중수로해체기술원 설립, 방사성폐기물분석센터 설립 등의 국·도비를 확보함에 따라 차세대원자력 산업생태계 조성에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문화관광분야에서는 신라왕경 디지털 복원 사업을 비롯해 국민체육센터 건립, 지방박물관 특성화 사업 등이 편성됐다. 부자 농어촌을 만들기 위한 농림해양수산 분야는 농촌협약, 해양레저관광 거점 조성사업, 어촌 신활력 증진 사업 등이 공모사업으로 선정됐다. 내년도 예산확보에 심혈을 기울인 경주시와 국회의원의 노고에 박수를 더한다.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로 결코 쉽지 않은 난관이 따랐을 것이라는 점에서 시와 정치권 등 지역사회의 역량이 결집된 성과로 평가된다. 어렵게 확보된 예산이 경주시의 미래 먹거리가 되고, 문화·관광과 지역경제 등 경주의 가치를 더욱 빛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경주시가 충효동에 생활밀착형 장애인 체육센터인 ‘반다비 체육센터’ 건립을 추진한다. ‘반다비’는 201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 마스코트로 시·군·구 생활밀착형 장애인 체육센터 명칭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문체부는 매년 공모사업으로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시에서 추진 중인 반다비 체육센터는 연면적 4800㎡, 지상 3층 규모로 기존 황성동에 위치한 경주시장애인체육관의 연면적 1100㎡보다 4배 이상 크다. 또한 1층 볼링장, 2층 다목적체육관, 3층 소규모체육관 및 헬스장, 사무실, 샤워실 등 부대시설을 갖춰 공모사업에 선정된다면 장애인 생활체육 서비스 제공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체부에 따르면 ‘반다비 체육센터는 장애인의 우선 이용을 보장하되, 비장애인도 함께 이용하는 생활밀착형 체육시설’로 장애인뿐만 아니라 시민들 모두가 활용할 수 있는 체육 공간이 된다. 경주시는 반다비 체육센터에 국비 30억원, 시비 159억원 등 총사업비 189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막대한 시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경주시는 꼼꼼한 계획 수립으로 건립 후 2중, 3중으로 추가 예산이 소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먼저 장애인 우선 체육시설인 만큼 장애인 편의시설이 완비돼야 한다. 2020년 2월 준공된 경주시장애인기초재활교육센터의 경우 점자블록 설치 미비, 자동문 혹은 미닫이문이 아닌 여닫이문 설치 등과 같이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힘든 부분이 지적됐다. 물론 BF(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인증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BF가 모든 불편을 해결해 주지는 않기 때문에 이동부터 안전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가령 모든 이동 경로에 경사로가 설치돼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부터 휠체어 이용자까지 이동에 제한이 없어야 한다. 또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대기 공간, 주차장에서 체육센터까지 이동 경로에 점자블록 설치까지 세밀하게 계획해야 한다. 준공 이후 운영에 관해서도 중요하다. 문체부는 반다비 체육센터 운영을 시·군·구 장애인체육회에 위탁 운영을 권장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용할 경우 장애인 우선 사용이 자칫 지켜지지 않을 우려에 권장하고 있는 사항으로 모든 시민들이 문제없이 반다비 체육센터를 이용하려면 꼭 필요한 것으로 사료된다. 시 계획대로면 2027년 충효동에 반다비 체육센터가 준공된다.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장애인 사용이 우선되는 체육시설인 만큼 초기부터 세심한 계획이 필요하다.
모국을 떠난 해외에서 살다 보면 모국에 대한 모든 것들이 그립고 또 아쉽다. 한국이 좋은 것도 있고 영국이 좋은 것이 있다. 그래서 오래 살다 보면 여기가 이제 나의 삶에 익숙한 내 거처인 듯싶다가 또 더러는 ‘아 역시 이곳은 타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태어난 고향에서 일생을 살면서 삶을 마감하는 평생지기 고향을 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학업, 부모의 이직, 결혼, 사업 등 여러가지 이유로 고향을 떠난다. 그래서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다’는 말을 우리의 인생 선배들은 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고향이니, 모국이니, 동향이니, 동문이니 하는 말들은 가만히 보면 공동체의 성향을 두고 구분하는 내적 결속이나 정서적 유대로 만들어진 말들이다. 즉 사람 좋아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리저리 서로 비슷한 어떤 것들이 매개체가 되어 정, 우정, 사랑,관심 등을 공유하는 정서인 것이다. 흔히 한국 사람들을 두고 이야기 할 때 ‘정’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에 동갑네기 교포 지인 두 명이 필자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왔다. 저녁을 먹고 가볍게 반주도 한 잔 곁들인 식사 말미에 동석했다. 고등시절 수학여행, 두발 자율화, 학력고사, 체력장, 마지막 교복세대, 최루탄이 난무하던 시대의 아픔, 맥줏집 등 대부분 지난 시절 청춘 때 겪었던 이야기들이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현실적인 지금의 이야기 보다 오래전 추억담들을 꺼내어 이야기하는 게 더 재미있다. 그러다 갑자기 수학여행 이야기에서 경주가 화두에 올랐다. K씨, P씨 두 분은 서울 출신이었다. 그 당시 전국의 대부분 고등학교가 경주로 수학여행을 오던 시절이라, 이 두 분도 당연히 경주로 수학여행을 온 것이다. 게다가 K씨는 신혼여행까지 경주로 왔으니 경주에 대한 추억담이 얼마나 많았을까. K씨는 경주로 수학여행 온 시기가 1981년, 고교 2학년 때였는데, 그때 나는 경주고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81년에 우리는 이미 몇 날을 경주 땅과 하늘 아래 같이 있었네요!” 하면서 이야기는 더 깊어졌다. 그런데 이분의 경주 수학여행에 대한 기억들이 얼마나 많던지, 경주 수학여행 당시 토함산 정상과 대왕암까지 갔던 추억들을 풀어 놓았다. 나는 대왕암과 감은사의 관계 등 문무대왕의 이야기를 해드렸다. K씨는 불국사에서 숙박한 것 같고, P씨는 경주시내에서 숙박했단다. 경주사람인 나는 마침 초등 6학년 때 향토사학자 윤경렬 선생님의 ‘향토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 그때 배운 지식을 동원해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여기서 내가 주목을 하는 한 가지 사실은 K씨의 ‘토함산 과 대왕암’이다. 서울에서 경주까지 수학여행 온 고교 2년 전교생들을 데리고 ‘토함산’ 정상에 올라가고 ‘대왕암’까지 갔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 학교 교장 선생님이 어느 분이셨는지 모르지만 ‘대단한 역사관’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역사 도시 경주의 진가를 알고 계셨던 노교사의 신념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천년고도 경주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고교 시절 접한 역사관은 또 얼마나 중요한가 말이다. 아마도 당시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들이 경주로 수학여행을 온 것이 한국 사람들에게 경주가 그만큼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두 분과 나는 아날로그 시대의 사람이다. 추억도 아날로그이고 정서도 아날로그이다. 아날로그의 특징은 울림이 깊고 파장이 길고 오래 간다는 것이다. 경주는 아날로그적 감성과 정서를 가진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와 여자, 청춘시절 고등학교 교복을 입었던 사람이라면 반드시 두어 자락 추억의 사진 속에 간직한 소중한 도시이다. 기차, 교복, 경주역, 관광버스, 박물관, 커다란 봉우리의 능들, 불국사, 친구들과의 수다, 우정, 사랑 그리고 여러 추억들…, 이 모든 것들을 아날로그적 보물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결론은, P씨가 내년 봄에 한국을 방문하는데 고교 친구 부부와 함께 경주를 다시 방문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경주는 지금 어떨까요?” 나는 대답했다. “아마 그때보다 많이 세련되어서 더 편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추억을 바꿀 만한 것은 변치 않고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7080이 과연 음악에만 있을까? 경주는 우리 모두의 7080이다.
12월 22일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지역에 한 달 치 비가 1시간 만에 내려 홍수경보가 내렸고 70만 가구가 정전 피해를 보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상고온으로 인한 강풍을 동반한 겨울비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재앙과 다름없는 재해가 지구촌 곳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데, 소식을 듣는 우리의 감각이 무덤덤하다는 현실이다. 재앙이 일상화되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더 두렵다. 이런 현상은 화석에너지가 배출하는 온난화 가스가 가장 큰 원인이이다. 산업혁명 시기의 전 세계의 인구수는 10억명 가량인데, 현재의 지구의 인구는 80억명이 넘었다. 이 많은 사람이 살기위해, 입기위해, 먹기위해, 쓰는 에너지와 자원과 또 배출하는 것이 주원인이다. 나 또한 원인제공자의 한사람이다. 필자는 ESG라는 키워드로 사람을 만나고 교육하고, 때로 여러 곳의 세미나 등에 참가하고 있기도 하다. 한결같이 탄소중립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앞세우지만 정작 기후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종이컵 대신에 플라스틱 텀블러를 써야 한다는 정도의 몇 가지 대안으로 끝내고 만다는 것을 매번 실감하며 한계를 느낀다. 주위에는 중앙정부에서 많은 돈을 가져온 실적으로 개발을 앞세우는 현수막이 펄럭거리지만,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만히 살펴보면 탄소중립에 어긋나는 개발과 크고 화려한 새로운 건물 세우기가 주 안인 것을 알면 가히 기함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전 시민이 전부 텀블러를 쓰고 경주시에 종이컵을 하나도 안쓴다고 한들, 저 큰 건물 등이 세워지고 유지, 보수를 위한 재원을 생각하면 무엇이 먼저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개발보다는 보존이고, 현재 있는 것을 잘 활용하는 것이 ESG와 탄소중립 정책의 기본이라는 것을 정책을 주도하는 이들이 잊어버리고 있는 듯하다.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된 옷을 사 입는 것보다는 장롱 속에 묵혀 있는 것을 끄집어내 다시 입는 것이 탄소중립에 가까운 것과 같다. 즉 탄소중립과 환경교육을 위해 환경교육센터를 짓는 것이 과연 탄소중립을 위한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모든 정책을 ESG라는 큰 나무를 그리고 설계도를 그려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쉬워진다. ESG를 환경, 사회적 책임, 투명한 경영의 세 가지 영역의 키워드로 설명하지만, E 영역을 환경과 에너지 두 가지 영역으로 이해하면 훨씬 쉬워진다. 현재 한국도 이상기온으로 인한 기후재앙에 시달리고 있다. 탄소중립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전기에너지를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한다. 탄소중립을 당장 실현하려면 전기를 지금 사용하는 것보다 90%는 줄여야 한다. 우리는 실제로 이것을 실현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대부분의 운송수단이 멈춘 시기, 공장이 문을 닫았던 그 상황을 떠 올려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 위기 또한 기후 위기 못지않게 위험하다. 따라서 ESG는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함께 논의하고 토론하면서 적절한 선택을 해서, 지구도 인류도 건강하게 살아가는 답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본다. 근본 대책인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이거나 탄소 포집을 동반한 화석에너지 사용이 가능하게 하거나, 또 한국에서 9%도 되지 않은 신재생에너지의 보급률을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지 또 현재 배출된 온실가스 중 탄소를 어떻게 얼마만큼 포집할 수 있을지 정부와 지자체는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을 정확하게 알려야 할 것이다. 또한 지속적인 학교 교육과 시민교육으로 정확한 수치와 통계로 두루뭉술한 계몽적인 환경교육을 탈피해야 한다. 이런 것이 선행되지 않고 탄소포인트제 등을 확대하고 비닐과 플라스틱 배출량을 줄이는 정도로 시민사회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것은 이미 눈앞에 닥친 2030년 RE-100과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기에는 매우 안일한 대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 어느 대학연구팀에 따르면 사자나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이라고 한다. 사실 그건 맞는 소리다. “여보, 잠시 나 좀 봐요.” 나도 와이프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재밌는 사실은 사자 울음소리가 들릴 때는 다른 동물들이 동작을 멈추고 그 소리의 진원지를 응시하다가 자리를 뜨는 반면, 인간의 소리에는 즉각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물 마시러 웅덩이에 온 얼룩말도 냅다 도망가고, 사냥한 먹이를 물고 오던 표범도 힘들게 잡았을 먹이를 팽개친 채 마구 달아났으며, 심지어 코끼리도 소리의 반대 방향으로 도망을 친다. 녹음된 사자 울음소리에는 그 진원지(스피커)까지 와서 스피커를 부숴버릴 정도로 성깔(!)을 부리는 코끼리조차 사람 소리에는 줄행랑을 치더란다. 두려움에 기인한 건지,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소리에 대한 예민한 반응인지는 모르지만, 동물을 상대로 이런 종류의 실험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가공할 만한 존재다. “에이, 인간이 뭐가 무서워? 힘도 약하고 덩치도 작고, 시각도 시원찮고, 후각도 별론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동물이 가지지 못한 무기가 있다. 바로 뇌다. 그중에서도 전두엽이 그렇다. 추리나 계획, 감정이나 문제의 해결 등 고등한 정신작용은 죄다 전두엽에 기인한다. 가령 호랑이가 지나다니는 길목에 거울을 설치해 두면 거울에 비친 자신이 다른 호랑이인 줄 알고 마구 싸우려 든다는 것이다. 인간은 심지어 아기들조차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로 알아보는데 말이다. 이게 호모 사피엔스의 위대함 아니겠는가. 남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만으로도 맹수보다 몇 배 무섭다. 하지만 인간을 더욱 두렵게 만드는 건 어쩌면 협업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아이러니하지만 부드러운 게 정말 강한 법이다. 뭉치는 힘은 개미나 펭귄한테서도 확인되지만, 인간은 차원이 다르다. 코로나가 서슬이 올랐던 유럽으로 기억들 하시리라. 사회적 거리를 둬야 했던 엄혹한 시기에도 누군가 테라스로 나와 노래를 선창 하면 다른 집에서 기타가 따라 흐르고 또 어떤 집에서는 트럼펫이 가세하는 식으로, 마을 전체가 합창으로 코로나와 싸웠다. 대상이 맹수든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든 우리의 존재 방식은 똘똘 뭉치는 것이다. 술 한 잔으로도 뭉치고 직장 상사 뒷담화하는 데에도 그래서 우린 잘 뭉치는 것이다. 그런 인간에게 지금 이상한 조짐이 감지된다. 안타깝게도 병에 걸린 것 같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표현대로 ‘외로움이라는 유행병’(loneliness epidemic) 말이다. 이제 사람들은 연애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는다. 친구 숫자도 점점 줄고 반면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고 있다. 미국의 경우라지만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늘날 가족의 규모, 기능과 가치가 점차 쪼그라들고 그 틈을 1인 가구 형태가 채워가는 추세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손에 쥔 1인 가구는 현실 적응력과 생존력에서 오히려 갑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와 서비스를 사람과 사람의 대면 방식보다 소셜미디어 공간에 대한 의존율이 높다. 그럴수록 더 외로움은 커졌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외로움과 치열하고 고통스럽게 싸우는 중이다. 인간에게 있어 사회적 고립이나 외로움이 얼마나 심각한지 실험해 봤다. 외로울수록 뇌 속의 편도체나 시상하부 등 감정을 관장하는 영역이 쪼그라들더란다. 베를린 과학자들이 밝힌 이 결과로 사회적 네트워크가 클수록 편도체 크기도 정비례함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처럼 인간은 타인과 함께할 때 더 건강하다. 고립감은 성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충분하고 균형된 성장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접촉면을 넓혀야 한다. 그러기에 아이들은 학원 가기에 너무 바쁘다. 놀이터가 텅텅 비었다. 밥도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허겁지겁 채운다. 다들 혼자서 말이다. 이른 나이부터 사회적 고립과 소외에 노출된 아이들은 세계적인 위험 요소다. 1980년대 차우세스쿠 정권 때였다. 고아원에 감금되었던 루마니아 아이들의 뇌를 조사했더니 백질(白質)이 현격히 줄었다고 한다. 백질은 정서적·사회적 성숙과 관련된, 인간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사람한테 외로움은 상극이란 말이다. 부디 갑진년 새해에는 어느 누구도 외롭지 않기를...
사료는 역사적 자료의 준말로서 역사를 고찰하는데 있어서 단서가 되는 모든 자료를 의미한다. 종이에 문자로 적어진 문헌이나, 고고학 상의 유구 · 유물 · 유적, 이미지 사료가 되는 회화, 사진, 구술 역사(oral history), 전승 등을 포함한다. 거기에 담겨있는 역사적 사실이 일어났던 때와 같은 시대에 만들어졌는가의 여부에 따라 1차 사료와 2차 사료로 구분된다. 1차 사료는 그 안에 담겨진 역사적 사실이 일어난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제작된 유물이나 쓰여진 저작물을 가리킨다. 2차 사료는 담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일어났던 시기보다 나중에 만들어진 자료이다. 1차 사료에 대한 설명이나 판단, 견해, 의견 등이 담겨있는 자료가 2차 사료이다. 이곳 신선사 석굴 남면 바위 면에 새겨진 조상명기의 경우 1차 사료가 되겠다. 그러나 이끼 등이 두껍게 덮여 글자를 식별하기가 어려워 전면적인 조사를 할 수 없었다. 그후 1969년 한국일보사가 주관한 삼산오악조사단 황수영 등에 의해서 그 모습이 일부 밝혀지기는 했으나 마멸 등으로 전모를 파악하는 데는 문제가 있었다. 한국고대사회연구소 편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제2권에 있는 단석산신선사조상명기에 의하면 세로 20행, 매 행 19자로 되어 있다. 그중 2백여 자가 현재까지 판독되고 있다. 이에 사명(寺名)뿐 아니라 주존 불상의 존명을 알 수 있었다. 절 이름은 “인령허명신선사(因靈虛名神仙寺)”라고 명기되어 있고, 불상의 존명에 대해서는 “작미륵석상일구 고삼장 보살2구(作彌勒石像一軀 高三丈 菩薩二軀)”라 하여 절 이름은 신선사이고, 주실에 봉안된 불상이 미륵삼존으로서 고신라에서 조성된 최대의 불상군임을 알 수 있었다. 현재 판독되고 있는 명문에는 조성연대를 밝힐 수 있는 단서가 보이지 않는다. 신선사는 본래 자연적인 석굴을 이용하여 석굴법당을 만들고 불보살상을 봉안하였는데 이들 불상의 조성연대는 주존불의 둥근 동안(童顔)과 수인(手印)이 통인(通印)이고, 고졸한 조각기법과 통견대의(通肩大衣) 양식 등으로 보아 삼국 말 6세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주존인 미륵여래입상과 반가사유상의 양식에서 고신라의 가장 초기작품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명문의 문체 등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석굴이 처음 조성된 것은 인도로 총 1200여 기가 남아 있다. 이 가운데 900여기가 불교 굴로 특히 엘로라 석굴과 아잔타 석굴이 유명하다. 인도 석굴은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와서 돈황석굴·용문석굴·운강석굴 등에서 그 진수를 보이고 있다. 필자는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인도를 찾고 10여 차례에 걸쳐 중국 불교유적을 답사하면서 이들 석굴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패키지 여행이라 관광에 그쳐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언젠가 자유로이 이들 석굴을 찬찬히 둘러보고 싶지만 그럴 기회를 찾기 힘들 것 같다. 나이 탓? 우리나라에도 석굴을 조성하였으나 규모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경주 남산 불곡과 같은 불감형식, 군위 삼존 석굴이나 골굴사 석굴처럼 인공이 가해진 석굴, 토함산 석굴암이나 충주 미륵대원 석굴 같은 축조 석굴 등이 있다. 신선사 석굴은 삼면이 암벽으로 지붕만 덮은 형식으로 앞의 세 가지 유형과는 차이가 있다. 답사를 마치고 하산하는 길 겨울 날씨답지 않게 햇살이 따습다. 알베르 까뮈가 이런 말을 했다. ‘햇살을 받으며 사는 사람의 삶은 실패하지 않는다.’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진다. *황수영은 6세기 말 또는 7세기 초, 문명대는 7세기 1/4분기, 김리나는 7세기 전반에 불상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월훈(月暈) 박용래 첩첩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 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렘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겨울 귀뚜라미 울음으로 표상된 노인의 적막 『문학사상』 1976년 3월호에 발표된 시다.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작은 오두막에서 기인 밤 홀로 잠이 깨어 무와 고구마를 깎는 노인의 고독한 내면을 생각한다. 외로운 노인은 토방에 앉아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렘”을 귀를 모으고 듣기도 하고,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숨 죽이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때 노인의 자화상이라고 해도 좋을 겨울 귀뚜라미가, 벽 속에서 벽이 무너지라고 운다. 그 노인의 적막감이 더욱 고조되는 건 흩날리는 눈발에 섞여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달무리.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겨울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인간의 내면적 고독과 절망을 어떻게 이렇게 형상화할 수 있는지, 그런 심사가 “꼴깍, 해가, 노루 꼬리 해가 지면”,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같이 촘촘히 박힌 조심스런 언어의 배치와 변주, 연쇄를 통해 이루어지는지 지금 생각해도 놀랍기만 하다. 이 시의 배경도 아마 세모쯤이 아니었을까? 70년대엔 외딴집에서 홀로 잠이 깨어 뒤척이는 이런 노인이 많았을 것이다. 그 노인들에게도 자식은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찾지 않아서 그 분들의 속은 무너졌을 뿐. 그래서 그들은 외톨이 겨울 귀뚜라미로 벽이 무너지라고 울었을 뿐이다. 반세기를 지난 요즘이라고 그 사정이 달라졌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유모차를 밀고 하나 둘, 마을 회관에 모여 하루 종일 화투를 치며 소일하다가 이슥하면 돌아가는. 끄지 않은 텔레비전 화면이 지지직거리는 방안에서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나는 그분들의 외로움을 생각한다. 도시 변두리에선 굽은 허리로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어, 밀차를 밀고 위태롭게 인도를 건너가는 그분들을 하루가 멀다고 만난다. 하나같이 고독하고 쓸쓸한 표정의 눈빛들이다. 외로운 사람은 온몸으로 사람의 자취를 기다린다. 아파트가 대표적인 주거 형태가 되었다고 하지만, 새벽부터 깨어나 유모차를 미는 굽은 허리, 벤치에서 따스한 빛을 쬐며 으스스한 황혼을 건너가는 그분들이 우리네 부모들 아닌가? 일찍이 목월이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시인 박용래, 목월을 만날 때마다 소주를 마시고 훌쩍훌쩍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는 천래의 서정시인, 잘 다니는 한국은행을 나와 집에서 하루 종일 시만 썼다는, 가장 시인다운 삶을 산 시인의 시를 세모에 읽으며 이래저래 깊은 감회에 사로잡힌다.
바야흐로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시즌이라는 말은 크리스마스의 영향력에 든 시기라는 뜻이다.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신일이다. 예수의 탄생을 전후해서 역사는 BC(Before Christ-그리스도 전)와 AD(Anno Domini-그리스도의 해)로 나눈다. 그렇다면 AD원년 전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재미있는 것은 예수 탄생이 BC4년으로 표시되었다는 것이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해롯왕은 예수 탄생 전에 죽은 것으로 나온다. 우리나라는 AD3년 고구려 장수왕이 국내성으로 천도하고 중국에서는 전한이 망하고 왕망이 스스로 황제라 칭한다. AD2년에는 로마와 파르티아가 제3차 전쟁을 일으키고 몇 년 후인 AD7년에는 유대민족이 로마에 항복한다. 이런 역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었을까? ‘세계사 연대기’라는 책에서 발췌했다. 역사 관련 글을 쓰다 보면 수시로 고증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역사를 비교하거나 동서양의 시대적 흐름을 비교할 때, 세계사 연표를 살펴보는 것 만큼 쉬운 것이 없다. 물론 요즘은 인터넷이나 챗GPT등으로 연대기를 찾을 수 있지만 신뢰의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때문에 정확한 연대나 흐름을 알고 싶다면 세계사 연표가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사 연표를 자주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공통적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로마제국이 강성하던 시절에는 중국의 당나라가 강성하고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국운이 강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사라센 제국이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철학 사조가 발전할 당시에 그리스에는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가, 인도에는 무수한 고행자들과 고타마 싯타르다가, 중국에는 공자와 제자백가들이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세종대왕 시대는 세계사적으로도 다양한 문명과 문화의 발전이 일어난다. 한글이 제작될 시기 명나라는 북경으로 천도하고 정화를 남방원정길에 보내는 등 번성기를 구가한다. 독일에서는 구텐베르그 활자가 발명되었고 중앙아시아에는 티무르 제국이 번영하고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 전쟁을 매듭짓고 안정기에 들어간다. 동시대 나쁜 흐름들도 눈에 띈다. 조선이 임진왜란을 겪을 무렵 명은 여진 누루하치의 위협에 시달리기 시작하고 인도에는 영국과 포르투칼 등 열강이 상륙해 침공의 역사가 시작된다.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의 메리스튜어트를 처형하는 사전을 벌인다. 영국과 스페인 무적함대가 격돌하는 것도 이 어름이다. 2차 대전 당시 동서양에서 연합국과 동맹국의 대전을 가능하게 한 나라들의 흥망과도 연결된다. 동시대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의 전체주의화, 러시아와 중국의 공산화 등이 부딪히며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흐름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사례는 교묘하게 맞춘 퍼즐일 수 있다. 역사 이래 전쟁은 어느 때나 있었고 그 속에서도 문화와 문명은 쉼 없이 성장과 쇠퇴를 거듭해왔기 때문에 연표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마음대로 편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편집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세계사 연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연표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좋은 기운을 더욱 좋게 포장할 수도 있고 나쁜 기운을 미리 감지해 세상을 향해 경종을 울릴 수도 있다. 그런 활용은 특히 지성인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세상을 향해 역사의 준엄한 흐름과 그에 따른 결과를 알려줌으로써 역사를 평화롭고 이성적으로 끌고가야 할 의무가 그들 지성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아직 연표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최근의 세계사적 흐름을 연표로 만든다면 비슷한 시기 세계의 흐름이 포착될 것이다. 러시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 중국 시진핑의 대만에 대한 공세, 유럽 제국의 경직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의 조짐, 미국의 자국중심주의가 판친다. 이에 질세라 한반도에서도 북한이 무모한 핵위협을 가중하고 우리나라는 검찰독주식 강성정권이 국민을 좌우하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인 이런 흐름이 각각의 국가나 국민보다는 정권의 유지나 일부 통수권자들의 독재적 망동에서 생긴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세계 도처에서 국가들이 이성을 잃고 정권의 이익에만 빠진 채 폭력적인 결정을 하다 보면 3차세계대전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바로 이런 시국에 지성인들이 힘을 발휘해 일체의 폭력과 폭주를 막아야 하는 것이다. 세계사 연대기에 등장하는 무수한 세계사적 폭력의 흐름과 그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결과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경주시파크골프협회가 파크골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경북도협회로부터 우수 협회로 선정됐다. 또 김영족 이사는 경상북도 파크골프협회장으로부터 우수 회원으로 선정돼 지난 15일 표창패를 받았다. 경주지역은 현재 18개의 클럽과 1500여명의 회원들이 알천파크골프장과 경주파크골프장 등에서 운동을 즐기고 있다. 앞으로 정회원 2500명을 목표로 내년 가을 새로운 파크골프장 36홀 2개 구장이 신설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경주시파크골프협회는 파크골프 지도자 자격증과 문체부에서 실시하는 각종 심판 자격증을 받기 위한 클럽 간 동호인과 원활한 지도를 통한 이론과 기능 연수로 회원들의 수준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 올해 제1회 경주시파크골프 클럽 대항전(6월-8월), 제4회 경주시파크골프협회장배 대회(6월), 제2회 경주시장배 파크골프대회(10월) 대회 등 각종 파크골프대회에 참석하여 많은 회원들이 입상했다. 또 협회는 만 65세 이상 일자리 창출 사회서비스형(파크골프)으로 인정받아 우수 회원이 앞장서 활동하기로 하고 시니어클럽과 MOU를 체결한 바 있다. 표창을 받은 김영족 이사는 파크골프 저변확대와 어르신 인성 교육에 관심을 가져 노인층이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도록 안내하는 등 귀감이 되고 있다. 파크골프를 통하여 우리의 생활에 일상적이고 저변 확대가 되어 많은 동호인 들이 생겨 닐 수 있도록 상대방에 대한 배려, 온화한 대화 예의바른 행동 등 모든 사람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파크골프인이 될 것을 결의했다. 김동락 경주시파크골프협회장은 “파크골프 저변 확대를 위해 상대방에 대한 배려, 온화한 대화, 예의바른 행동 등 모든 사람에게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친환경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하는 기반을 마련하고 공사의 수질관리 역량 강화를 위한 선진화된 수질조사와 과학적 수질관리로 깨끗한 농업용수 공급 기반을 구축하며, 쾌적한 농어촌 환경 조성을 위한 수질보전 관리 계획을 수립했다. 공사 관리 저수지 및 관정에 대한 과학적인 수질조사 및 환경기초처리시설 등 수질개선사업을 실시하고, 지역 농업인 및 단체(수질오염감시단, 수질관리협의회)와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수질오염원을 상시 관리하고 있다. 또 자동수위측정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저수지 수질에 대한 자료를 관리하고, 국민 실천의식 증진을 위한 내 고향 물 살리기 운동 및 실천수기 공모, 수질오염 사고 시 신속하고 효율적인 초기대응으로 피해 확산방지를 위한 수질오염방제 훈련 등 수질 관리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농업용 저수지의 수질보전을 위해서는 관리주체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지역주민과 이해관계자가 함께 공유하고 노력해야 한다. 이에 공사에서는 수질환경보전회를 반기별로 실시하고 있으며, 보전회 위원들의 역할을 정해 언론홍보, 수질관련 교육, 환경보전활동 등을 하고 있다. 또한 수질개선 및 환경보전을 위해서는 수질개선 사업 등을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개인의 환경 의식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데 환경보전의식 고양을 위한 활동과 공감대를 전파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공사 관리 저수지 73개소를 대상으로 수질 보전관리에 투명성을 제고하고 수질 관리뿐만 아니라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만족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농업용수에 대한 수질분석을 실시하고, 수질현황을 농촌용수종합정보시스템(RAWRIS)를 통해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경주지사는 청정 농업용수를 지속적으로 공급함으로써 지역의 우수농산물 생산에 기여로 공사 이미지 제고 및 농업인의 소득증대에 힘쓰고 있다. 또 한국농어촌공사는 수자원 관련 정보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통합 수자원관리시스템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이 시스템은 수위 및 유량 등 각종 계측자료가 영상시스템과 실시간 모니터링 장치로 전송되고 여기에 강우량 등 물 관리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 등이 통합 관리된다. 향후 유관기관 및 일반 국민이 시스템을 통해 농업용수 수질 및 저수율 관련 정보를 쉽게 볼 수 있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으며, 가뭄·홍수 등 재해에 대한 사전예방과 신속한 대응도 가능해진다. 최근 이상기후와 지구 온난화로 강과 하천, 저수지 등에 부영양화, 지표수 오염, 산소 고갈, 지하수 오염 등 수질오염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수질오염의 원인은 크게 점오염원과 비점오염원으로 나눠진다. 점오염원은 가정하수, 공장폐수 등 일정한 지점에서 유입되고, 비점오염원은 도로, 농경지등 불특정지역에서 비가 올 때 흘러들어오는 오염원을 말한다. 농어촌지역의 비점오염원인 토지계와 축산계는 저수지 수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농경지에 살포되는 퇴비는 농어촌지역의 비점오염원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비점오염원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이에 공사에서는 지자체와 협조해 저수지 상류구역 축사 등 비점오염원 점검 횟수를 늘려 비점오염원 관리에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농어촌공사는 농업용 수자원을 관리하고 공급하는 공기업으로서 지속적인 예산확보를 통해 안전하고 질 높은 먹을거리 생산과 국민의 건강을 위해 농업용 수자원 관리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는 많은 차별이 있다. 성별과 나이 등 모든 면에서 일종의 차별이 있으며 희생된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유엔정상회의에서 채택된 SDGs에 따라 다양한 대처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며 많은 차별이 문제로 언급되었다. 유엔은 2015년에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채택했다. SDGs에 따라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할 목표를 설정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 중 일부는 차별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차별은 성별, 연령, 장애, 인종, 민족, 종교 등 어떤 이유로든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사람, 국가 내 또는 국가 간 차별을 유발한다.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어린이들은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편견이 강해지고, 이는 차별과 따돌림으로 이어진다. 어린이들이 교육이나 가정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 사이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편견을 갖고 자랄 것이다. 어린 시절에 구축된 가치관은 성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는 국가 내외의 차별, 배제, 적대감으로 이어진다. 차별과 편견은 부모에서 자녀로,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될 수 있으며 각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소득 격차와 경제적 격차를 야기하고 지속가능한 사회 건설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DGs는 ‘사람과 국가 간의 불평등 해소’를 목표 10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SDGs가 말하는 불평등에 대한 시각은 기존의 관점과는 다르다. SDGs는 전통적 관점의 평등 보다는 공정의 관점에서 격차의 문제에 접근한다. 평등(Equality), 공평(Equity), 공정(Justice)은 유사한 단어로 보이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평등(平等)은 ‘모두가 같다’는 뜻이다. 또 그런 모습을 나타낸다. 대중 앞에서 어떤 특정한 것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같다는 뜻이다. 평등이란 ‘편견이나 차별이 없고 모든 것이 한결같고 같은 것’이다. 모든 이가 똑같은 것을, 같은 양만큼 널리 퍼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평이란 ‘치우지 않고, 편향이 없는 것’이다. 모두에게 같은 것을 같은 양만큼 주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같은 상황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공정에는 두 가지 의미가 실려 있다. ‘공평하고 사곡이 없는 것’, ‘명백하고 옳은 것’이다. 단지 편향이 없다고 할 뿐만 아니라 편향이 없고 부정이 행해지지 않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한다. 세 가지 말에는 공통적으로 ‘쏠림이 없는 것’이 전제가 되어 있다. 각각의 말이 의미하는 미묘한 차이를 의식하여 구분하면 <그림1>과 같다. ‘평등’과 ‘공평’, ‘공정’의 차이는 세심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큰 차이를 못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평등’은 사소한 경우를 고려하지 않고, 전원이 같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정’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여럿이 음식을 나눌 때 연령과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같은 양을 나눠주는 것이 ‘평등’이다. 공평이란 모든 것을 똑같이 취급한다는 뜻이다. 판단과 처리 등이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거나 그런 경우를 말한다. ‘공평하다’는 뜻의 ‘공’자는 ‘사물에 대한 견해와 처리 방법 등이 편파적이지 않고 정확하다’는 뜻이다. ‘공평’과 ‘공정’은 ‘사물을 평등하게 대하는’의미에서 차이가 없지만 ‘공평’은 ‘사물을 두둔하지 않는다’에 치중하고 ‘공정’은 ‘부정과 기만은 없다’에 치중한다. ‘평등’은 각 상황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공정’은 이러한 기초 위에서 모든 사람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음식의 경우 각 연령과 몸 상태 등을 고려해 각각 해당하는 양을 배분하는 것이 ‘공정’이다. 지속가능발전목표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지만 더 엄밀히 말하면 공평과 공정한 세상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가장 경주다운 것은 무엇일까?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를 비롯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있지만, 필자는 옥적(玉笛)을 맨 앞에 두고 싶다. 경주 사람들조차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옥적은 경주 사람이라면 많이 사랑하고 기억해야 할 유물이다. 예로부터 옥적은 금척(金尺)과 화주(火珠)와 더불어 신라 삼기팔괴 (三奇八怪)로 불려왔다. 옥적은 경주를 떠나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옥적이야말로 경주의 자존과 존엄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이 많은 옥적이야말로 가장 경주다운 유물이 라는 생각이 든다. 옥적과 옥저 옥적은 국어사전에 ‘청옥이나 황옥으로 만든 대금 비슷한 취악기(吹樂器)’로 나온다. 근데 어떤 이는 옥적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옥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옥저의 저는 원래 ‘저[笛]’는 ‘적[笛]’으로 읽어야 하나, 때에 따라 ‘저’로 읽기도 한다. 옥적일까? 옥저일까? 쓰임새에 따라 달리 사용하는 줄 알고 처음에는 다소 혼동스럽기도 했지만 다 같은 옥피리라는 말이다. 경주옥적의 기원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옥적은 황옥으로 만든 것으로 길이 53.5㎝, 구경 3.3㎝이며 대금과 같은 구조를 가졌으나 길이가 조금 짧은 편이다. 신라시대부터 전한 것으로 추정하나 정확한 제작연대는 알 수 없고 기록도 없다. 모양은 속이 빈 대나무로 만드는 전통악기인 대금과 비슷하다. 대금에 비해서 소리가 맑고 고음을 낸다고 한다. 옥적이 만파식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러 측면에서 맞질 않는다. 나라의 근심과 걱정을 해결해주는 만파식적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대나무로 만들게 된 이야기가 분명하게 나온다. 국립국악원의 연구조사에 의하면 옥적은 국악의 역사에서 매우 미스터리한 악기로 분류된다. 언제, 어떤 자리에서 사용됐는지 기록이 거의 없다. 제례 등에 사용된 신성한 악기로 추정할 뿐이다. 경주옥적 외에도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두 점이 더 있는데 모두 개인 소장품이다. 마찬가지로 신라시대 것이라는 확실한 단서는 없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옥적은 국립국악원 소장 옥적, 국립 고궁박물관 옥적, 미국 피바디엑세스박물관 소장 옥적이 있으며, 이외에도 옥산서원 소장 회재 이언적의 옥적, 병와 이형상의 옥적, 맹사성의 옥적, 장말손의 옥적 등 전국에 10여 점이 전해지고 있다. 이들의 옥저는 옥의 재질이나 규격이 조금씩 차이는 있을 뿐 거의 비슷하다. 특이할 만한 점은 옥적을 보관한 목함에는 황동으로 만든 자물쇠가 부착되어 있는데 경주를 대표하는 월성과 안압지, 첨성대 그림이 새겨져 있다. 자세히 보면 첨성대 구멍으로 성덕대왕신종 모양의 걸쇠가 들어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옥적을 대하는 조상들의 예사롭지 않은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옥적의 기구한 운명 태조 왕건이 신라의 보물인 옥적을 가져오게 했다. 그런데 문경새재를 넘자 옥적은 아무리 불어도 소리가 나질 않았다. 이에 왕건은 옥적이 신물(神物)로 알고 경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경주의 풍물, 인문지리지인 『동경잡기』에 전하는 이야기이다. 다수의 경주 사람들이 왕건을 따라 개경으로 갔지만, 옥적만은 따라가지 않았다며, 굴하지 않은 충절의 상징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경주읍성이 왜군에게 빼앗겼다가 치열한 전투를 거듭한 끝에 1592년 9월 7일 보름만에 되찾았다. 죽장으로 쫓겨 가 있던 부윤 윤인함이 귀환해보니 동헌과 집경전, 객사를 비롯한 관아의 부속 건물 모두 잿더미로 변하고 제대로 남아있는 유물이라곤 없었지만 무슨 영문인지 옥적만은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부윤 윤인함은 이때의 슬픈 심정으로 시를 남겼다. 그의 저서 『죽재유고』 1권에 수록되어 있다. 임란 때 불타버린 동도엔 텅 빈 봉황대뿐인데 참담한 슬픈 바람이 내 얼굴에 스쳐간다. 옛 우물은 간데없고 옥적만이 있어서 달빛아래 불어 본 한 곡조 더더욱 애절하구나 -죽재 윤인함(1531~1597) 『동경잡기』에 백옥적(白玉笛)에 대한 기록이 별도로 나온다. ‘불에 타고 부서져 10여 조각이 났다. 임신년(1692년)에 김승학이 땅을 파다가 주웠다. 이를 사사로이 숨겨 두었다가 그만 가운데를 부러뜨렸다. 부윤 이인징이 밀랍으로 붙이고 은으로 도장 했는데, 세 마디에 구멍은 아홉개다’ 그리고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잃어버린 옥적을 되찾은 이야기가 있다. 조선 숙종 18년(1692) 경주 부의 객사인 동경관(東京館) 담장 아래에서 옥적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이야기인지 다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진짜로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묻어 놓았던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이야기이지만 아무튼 기구한 운명의 옥적임에는 분명하다. 옥적을 탐낸 사람들 #연산군 흥청망청(興淸亡淸)이란 말은 연산군 때문에 생겨난 재미있는 말이다. 여색을 탐하고 노래를 즐긴 연산군은 피리 소리를 좋아했다. 흥을 돋구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주옥적을 바치게 한 내용이 「연산군일기」 54권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1504년 (연산군 10년) 7월 28일 연산군이 “경주(慶州)의 옥적(玉笛)을 본도(本道)로 하여금 올려보내게 하라” 어명을 내렸지만 아무도 따르지 않자 재차 다시 명을 내렸다. “옥적(玉笛)을 어찌 경주(慶州)에 두는가 내고(內庫)로 옮겨 간직하는 것이 어떤가?”하자 승정원 승지들이 아뢰기를, “신라의 옛것이므로 옛 도읍에 두는 것입니다. 내고로 옮긴들 무엇이 방해되겠습니까” 하였다. 지혜로운 신하들 덕분에 옥적은 서울로 가지 않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다시 한 번 경주 옥적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영조실록」 80권에 지사(知事) 원경하(元景夏)가 왕에게 이르기를 “경주(慶州)의 옥적(玉篴)도 또한 기이합니다. 조령(鳥嶺)을 넘으면 피리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다른 이야기를 논하다 경주옥적을 예를 들어 말한 것이다. #일본 통감부 소네 아라스케 1909년 4월 경주 현장 시찰에 나선 일제 통감부(統監府)의 소네 아라스케 부통감 일행이 경주 관아 건물을 나흘간 샅샅이 뒤졌다. 관기(官妓) 뗄감창고에서 새까맣게 변색된 목재함 하나를 발견했는데 4중으로 싼 함안에 옥적이 들어 있었다. 이듬해 1910년 경성으로 반출되어 이왕가(李王家)박물관(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가 13년이 지난 1923년 옥적이 다시 경주로 되돌아오게 된 데는 경주 사람들의 힘이 컸다. 1921년 9월 금관총 발견되어 금관을 총독부 박물관으로 옮기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여론에 밀려 포기하게 되었는데 경주 유지들과 양식 있는 일본인 19명이 합세하여 총독부에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금관과 옥적을 경주로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분 도굴로 각종 문화재를 빼돌린 모로가 히데오 라는 자의 도움도 컸다. 그가 도운 이유는 자신의 부정적 이미지지 쇄신과 명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일본인이 경주옥적을 찾고자 한 닭은 무엇 때문일까? 헤이안 시대(794~1185)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에 고려적(高麗笛) 이야기 여러 차례 나온다. 한반도 옛 피리에 대해 고귀함이 불러일으킨 일본인의 환상이 작용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2017년 한국학 연구원 아라키 준은 고고학지에 발표한 논문 「일제 시기 경주지역 문화재 반출경로에 대한 역사 인류학적 고찰」에서 금관총 금관과 경주옥적을 문화재 반출을 막은 것이 가장 우수한 사례였음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려의 태조 왕건이, 연산군이, 일본인들이 마저 탐을 내었지만, 옥적은 지금 경주에 있다. 이처럼 경주의 것은 경주에 있어야 제격이고 제맛이다. 경주옥적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청와대 불상도 고향 경주로 돌아올 날을 기다려 본다. 전인식 시인(시민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