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18일 오후 6시 현재까지 코로나19 확진자 7명이 추가로 발생했다. 경주지역 누적 확진자는 160명으로 늘었다. 경주시에 따르면 30대 여성인 154번 확진자는 최근 경주의 한 병원에서 입원 중 실시한 검사에서 양성판정을 받았다. 현재 감염경로가 불분명해 방역당국이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다. 155번 확진자는 ..
최근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6월 준공된 동천동 공영주차장은 방역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시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경주시 안강읍 지역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이어지고 있어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주시는 17일 코로나19 확진자 6명이 추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 중 1명은 사망 후 확진판정을 받았고, 경주시청 공무원 1명도 양성으로 나와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6명의 확진자는 지난 16일 확진판정을 받은 144번 확진자의..
본지에 향가칼럼을 연재하는 김영회 선생이 이번 호 향가칼럼에서 지난 2019년 10월에 발굴된 쪽샘지구 44호 무덤에서 발굴된 토기 그림이 기존 학계의 주장인 ‘수렵도’가 아닌 ‘장례행렬도’라 주장해 신선한 충격을 줄 전망이다. 김영회 선생은 일본의 고대 시가집인 만엽집이 신라 향가의 법칙을 그대로 물려받은 시가집이라 확신하며 자신의 향가제작법에 근거해 지금까지 일본인들조차 손대기 어려웠고 해석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만엽집을 빠른 속도로 해독해나가고 있다. 특히 만엽집 해석 과정에서 쪽샘지구 44호 분 출토 토기 그림이 정확하게 장례행렬도임을 밝혀냈다고 확신했다. <관련기사 9면 김영회 선생 향가칼럼 참조> 김영회 선생은 이번 칼럼에서 마침 지난 2020년 12월 7일 쪽샘지구 44호분에 대한 온라인 설명회를 본 후 일본 만엽가 해석과정에서 나온 자신의 주장과 복합해 이 토기의 그림이 불교 전래 이전 신라 왕족의 장례행렬도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김영회 선생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까지 토기 행렬도에 나온 춤추는 인물은 단순한 춤이 아니고 노 젓는 뱃사공을 형상화 한 것이며 활로 사슴을 겨눈 모습은 수렵의 행위가 아니고 ‘망자가 사슴 즉 공주임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또 행렬 앞과 뒤에서 말을 탄 두 명의 무사는 저승사자를 표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영회 선생은 이에 대한 근거로 ①44호분에 나오는 ‘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그려진 것으로 이는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고 무덤을 지키는 것으로 해석되며 ②신라 향가를 그대로 이어받은 만엽가에서 사슴은 황제나 황자, 황녀를 뜻한다. ③만엽가에서 사슴은 황족을 제위를 뜻하며 황족을 뜻한다. ④춤추는 사람은 노젓은 모습의 변형이다. 이 역시 만엽집에 그 표현이 있다. ⑤만엽집에서 저승사자를 장(將)아라 표시했는데 행렬 앞뒤의 말 탄 무사가 바로 그 장이다. ⓺활 뜬 사람 아래 쪽 문양은 만장을 뜻한다. 등 만엽가에서 등장하는 중요한 단서들을 예로 들었다. 한편 이 칼럼을 미리 본 경북대학교 주보돈 명예교수는 “그림은 누구라도 해석할 수 있다. 애초에 문학이나 향가, 미술에 대한 해석에는 과학성이 있지 않으므로 사실일까 아닐까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해석의 자유로움에 대해 인정했다. 또 이 칼럼을 읽은 경주문화재연구소 심현철 연구원은 “향가나 만엽집의 자료는 알 수 없으나 충분히 가능한 해석일 수 있으며 매우 흥미로운 연구다”며 환영의 입장을 밝힌 후 “실제로 이 토기는 파손이 심해 전체의 50% 정도만 공개되었을 뿐이어서 아직 전모를 다 알 수 없다”고 전제하며 “이런 상태에서 토기 그림을 두고 발굴 당시 고고학계가 수렵도와 장례행사, 일상적인 행렬 등에 대해 논의한 바 있고 이중 수렵도와 장례행렬 두 가지로 의견이 좁혀졌으나 최종적으로 수렵도로 발표했다”며 김영회 선생의 연구 성과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편 김영회 선생은 만엽집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신라사에서 규명하지 못한 다방면의 자료들이 녹아 있음을 속속 밝혀지고 있다며 만엽집 연구와 신라를 비롯한 고대사 연구가 접목되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아픔 딛고 행복하길’ 크던 작던 몸이던 마음이던 사람들은 누구나가 아픔을 안고 산다. 나의 작품은 내가 많이 아프던 시절의 나를 다시 일으키는 에너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그림으로 치유를 하고 다시 일어서는 힘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림을 그린다. 내 그림에는 우주가 있고, 그 우주를 배경으로 인간내면의 심상을 표현한 만다라와 대지와 호흡하는 자연을 담았다. 만다라를 통한 인간내면의 심상의 소리를 듣고 자연과 우주와 소통하며 서로 상생의 관계를 모색하고 상생의 관계속에서 좋은 에너지가 생성되면서 더 좋은 심상을 만들며 자연과 우주에 순환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좋은것을 더욱 좋게한다는 의미를 담고 제작하게 된 작품으로 인간심상의 치유효과를 담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딛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박미희 작가 / 010-8584-9093 / mhdream25@nate.com 단국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경주작가릴레이전(2013/경주예술의전당), 상생전(2015/갤러리소나무정원), 상생플러스전(2018/서울경북갤러리) 개인전 3회 / 포항국제아트페스티발(2019/포항공대국제관) 나의 살던 고향은 영상 원작 제작(2018/광주시립극단), 버질아메리카 한국지회 회원전(2018/인사아트플라자) / 서울아트쇼(2017/서울 COEX), 경주아트페어특별전(2017/HICO) 등 단체전 다수 쉽따 표지그림 (2020/이지씨씨), 신라문화제 탈 원본그림(2019/경주시) / 현) 한국미술협회 회원, 로만티시 대표.
올 한해 코로나19로 나라 안팎이 큰 어려움에 처해있다.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되면서 많은 직종에서 큰 피해를 입고 있다. 특히 지역경제의 주축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영업 손실로 인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하거나 휴업에 들어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으며 비정규직들에게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은 그래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오랫동안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해 온 시민사회단체들과 시민들이 건강한 경주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지역사회를 훈훈하게 하는 온정도 이어지고 있다. 주위에 어려운 이웃이 없는지 살피고 물품과 성금을 내놓는가 하면 그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연탄과 기름을 지원하는 단체와 독지가들의 정성도 넘친다. 특히 코로나19로 봉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예방방역을 준수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살피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노력은 지역사회에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따뜻한 마음을 전해야 할 곳은 더 많은 상황이다. 방문 봉사가 어려워지면서 복지사각지대가 늘어나는 것도 걱정이다. 추운 겨울을 어렵게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는 이웃의 따뜻한 마음이 가장 고마울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지역사회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은 소상공인인과 영세자영업자들이다. 장기간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내면서까지 버텨왔지만 이제는 월세와 각종 공과금을 내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경주와 같은 중소도시의 경우 자영업자가 무너지면 임대업도, 다른 경제 활동도 무너진다. 그동안 제도적 뒷받침을 준비를 하지 못했던 정부가 갑자기 특단의 지원책을 내놓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 지역사회에 필요한 것은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넉넉한 마음과 실천이다. 어려웠던 올 한해 마무리는 이웃에게 온정을 나누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나눔으로 보내자.
경북형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실시에도 불구하고 경주지역 코로나19 확진자가 불과 20여일 만에 40여명이 늘어나는 등 큰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지난달 28일 확진 판정을 받은 영남대 음대 학생과 관련한 확진자들이 무려 20명이 연쇄적으로 감염돼 확진자 동선 파악 등 초기대응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되고 있다. 경주지역에는 16일 0시 현재 143번 확진자까지 나왔다. 매일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안강, 강동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어 비상이 걸렸다. 안강지역에는 가족과 함께 초등학생이 감염돼 다른 학생들까지 무더기로 감염되는 등 집단감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경주시는 해당 초등학교와 관련해 전교생과 교직원 등이 전수검사를 실시했으나 확진자가 더 나올 수 있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안강, 강동지역에서 확진자가 집단적으로 발생하면서 경주시도 16일 0시를 기해 이 지역에 대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된 2단계에 격상했다. 이 지역 확진자가 더 이상 경주지역에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보여 진다. 강화된 2단계 격상에 따라 안강, 강동지역은 단란주점 등 유흥시설은 오후 9시 이후에 영업을 할 수 없으며 카페와 음식점도 오후 9시 이후에는 포장과 배달만 허용된다. 장례식장도 100명 미만에서 50명 미만으로, 북경주 체육센터와 안강 청소년 문화의 집 등 국공립시설은 운영이 전면 중단됐다. 또 50명 이상의 집합, 모임 행사를 해서는 안 되며 종교행사도 좌석수 20% 이내로 해야 한다. 어느 때보다 관련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길 기대한다. 안강, 강동지역의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지역 확산은 우려되고 있다. 전국적로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을 오르내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감염경로가 불분명하거나 무증상 감염자 또한 많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안강, 강동지역 시민들을 대상으로 검사수를 늘리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해 올 한해 시민들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특히 다소 주춤했던 감염 확산이 날씨가 추워지면서 확산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경주시도 지역 여건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단계별로 적용하고 있지만 행정 조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확진자 증가로 드러났다고 본다. 경주지역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라도 유지하려면 방역당국의 철저한 기준 적용과 시민들의 생활방역준수가 중요하다. 경주시와 시민들은 지금 코로나19 확산을 막지 못하면 2.5단계, 3단계로 격상될 수 있다는 절박함으로 차단에 최선을 다 할 때다.
삼국유사중 단군신화 [檀君神話] 한 대목을 옮겨본다. ❝이 때에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 살고 있었는데, 항상 신웅[桓雄]에게 인간이 되기를 빌었다. 이 때 신웅이 영험한 쑥 한 줌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말하였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범은 그것을 먹고 21일 동안 금기를 지켜서 곰은 여자가 되었으나 범은 금기를 지키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한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상징하는 웅녀인 곰의 인간화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했던 환웅의 통치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홍익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만을 위한 세상이 아니라 인간을 이롭게, 또한 인간과 더불어 사는 동식물의 세상조차 이롭게 되어야 가능한 유토피아이다.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곰과 호랑이도 사냥의 대상이 아니라 포용의 대상이었다. 비록 부족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상징성으로 볼 때 동물세계와 인간세계과 공존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동물이 인간이 되는 과정, 혹은 새로운 인간질서를 회복시키기 위한 과정이라 볼 때 유토피아의 진입은 이 설화에서는 의외로 간단하다. 동굴에서 100일 혹은 21일을 견디면 된다. 인간의 본성을 흐렸던 관계를 차단하고, 물욕을 금지하며 최소한의 먹거리인 쑥과 마늘로 지탱한 21일은 완벽한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할 수 있다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동물이건 인간이건 대상은 누구라고 상관이 없다. 이 간단한 해법은 현재 바이러스사태의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다. 건국신화이건, 설화이건 간에 옛날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문헌적 이유를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무엇을 먹었을까? 무엇을 입었을까? 어떤 이유로 지상낙원에서 쫓겨나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웅녀가 인간으로 된 과정에서 찾을 수가 있다. 현대인의 경험적 사고로는 마늘을 진짜 먹었을까? 쑥을 진짜 먹었을까? 그 매운 마늘을 먹었을 리가 없다. 산마늘일지도 모른다는 억측을 양산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줌의 쑥과 20통의 마늘은 지극히 적은 양이다. 그것을 어떻게 먹고 견디었을까?라는 것은 이미 고도의 물질 문명화된 우리의 사고로는 상상이 불가능하다. 웅녀설화는 가장 절박하고 심각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그 동안의 물욕을 내려놓은 시간이 필요하며 상업주의로 연결된 소란했던 인간 네트워크에서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 몸을 지탱할 적은 양의 음식, 특히 채식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게 가도록 하는 의식이다. 그런 고요한 21일이면 물질주의로 인해 학습되고 내재된 폭력으로부터 탈피할 수가 있다. 바이러스의 발생과 확산자체가 이상기후변화의 한 부분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우리 개개인은 간과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재앙은 2020년에는 바이러스를 선두로 해서 전 세계적으로 더욱 심각했다. 우리는 그 심각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범 정부적 관점에서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으며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회피하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지키자라는 기치아래 북극곰과 남극의 펭귄은 걱정하면서 후원금을 보내기도 하지만, 개인 혹은 집단으로 사육하고 있는 닭, 오리, 돼지, 소등의 가축들에게는 한치의 연민도 없다. 한나아렌트가 주장했던 악의 평범성이 우리의 세포안에까지 침투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결과만 바라보고 백신을 아무리 만들어 낸 들, 원인을 찾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바이러스 문제와 더불어 지구의 이상기온을 막기위한 진정한 백신이란 무엇일까? 웅녀가 견뎠던 동굴로 되돌아가 보자. 인류가 일으킨 모든 문제해결의 방법이 그 안에 있다. 물질계로부터의 욕망을 단절하기 순수채식으로 돌아가기 동물들과 공존하기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하기 21일 동안 너무나 심각한 문제들에 비해 해답은 너무나 간단하지 않는가?
지금은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 국경과 하늘 길이 막히고, 그에 따라 여행과 관광산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다. 경제에서 관광산업의 비중이 큰 지역은 그만큼 피해가 심각해지니 이래저래 걱정이 만만치 않다. 다만 인간의 긴 역사를 돌이켜보면 질병과 전쟁 등 수많은 장애나 변수에도 불구하고 여행과 관광은 꾸준히 증가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한다면 머잖아 다가올 관광의 빅뱅시대를 대비하여 더욱 아이디어를 모으고 이러한 위협의 시간을 미래를 위해 준비의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 예를 들어, 국내 여행이 이루어지는 지역관광 서비스 수준을 향상 시키고, 또 지역으로 관광객을 원활히 받을 수 있도록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노력을 게을리 말아야 하겠다. 많은 전문가의 의견에 의하면, 코로나 시대 이후는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될 것이고 관광이나 소비자의 인식수준이 향상되리라 보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 이미 여행과 관광에 관심이 증가해 왔었다.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IT산업의 발달과 저가항공의 발달이 한몫 했었고, 그만큼 관광과 관광산업의 증가도 있었다. 무엇보다 여행과 관광을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 수준이 달라졌으며 국제관광에 대한 자신감도 더해졌다. 코로나 이후 시대에도 당연히 IT산업의 발달과 또 그것과 연계해서 관광시장이 확장되리라고 전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여행과 관광을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 수준에 덧붙여 아직도 여행과 관광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잘못된 구분을 하는 경우가 있어 이참에 정리해보고자 한다. 우선 여행은 포괄적인 관광을 이루는 행위와 행동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관광은 여행 행위를 포함하는 보다 복잡하고 체계적인 것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관광은 공적인 표현으로 사용할 때가 많다. 여행정책이나 여행산업이라 하기보다 관광정책이나 관광산업이라 부르는 경우가 적절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행행위가 어우러지면 관광산업이 된다. 산업 속에서 이루어지다보니 주로 상품으로 판매되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여행은 관광이 되는 것이다. 여행이 사업으로 다루어질 때, 주로 패키지 관광으로 이루어진다. 가끔 내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할 때는 맞춤형이 아닌 개별 여행으로 이루어진다. 어쩌면 수많은 여행 행위가 모이고 이루어져 관광이 되고 관광산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른 지역, 특히 타국을 여행하고 관광하는 데는 나름의 어려움이 많다. 이러한 까닭에 여행에 처음 나서는 여행 초보자의 경우는 여행상품인 패키지 관광이 아주 편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나선 여행에 보다 익숙하게 되면 그 산업과는 별개로 이젠 개별여행(관광)을 감행 할 수 있다. 여행이 산업화된 상품, 다시 말해 패키지여행은 정말 효과적이다. 우리 모두에게 여행을 쉬이 경험하게 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여행 상품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패키지 관광을 많이 하다보면 나만의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관광에 익숙하지 않은 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여행 행위의 진화단계로 볼 때도 단체 관광에서 개별(관광)여행으로 나아가는데, 그렇다고 관광을 낮춰볼 것은 분명 아니다. 굳이 여행과 관광을 이렇게 나눠서 설명하는 이유는 일반인의 의식에 은연 중, 여행은 좋은 것이고 관광은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어서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의 바탕엔 일종의 내로남불 현상이랄까 나는 ‘여행객이고 너는 관광객이다’라는 의식이 깔려 있기도 하다. 그간 한국사회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위해 노동이데올로기가 주도했었는데, 이도 이러한 의식의 발전에 한몫을 했었다. 관광을 통해 산업자본을 형성하기 위해 관광을 무절제하게 상품화시킨 까닭이기도 하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 관광을 우리의 문화와 자존심을 파는 것쯤으로 의식하게 만들었다. 이제 관광은 한계성장과 성장정체기에 빠져 있는 경제를 향상 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더구나 문화를 발전시키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 여행과 관광이다. 우리 모두 여행가가 될 수 있고 관광객이 될 수 있다. 내 지역에 내 문화를 보러오는 여행자와 관광객을 자부심을 가지고 따뜻하게 맞이할 일이다.
아들 녀석이 방 붙박이장을 자꾸 열어두길래 이러면 여기로 귀신이 나온다고 했더니, 무섭다고 그러지 말라고 내 목을 조른다. 힘을 얼마나 주던지 녀석은 정말 무서웠나 보다. 얼얼한 목을 주무르며 생각했다. ‘나는 니가 더 무섭다’ 세상 어떤 사람의 뇌도 100% 동일하지 않다. 일란성쌍둥이도 예외가 아니다. 뇌 속 회로망은 사람마다 다르니 바라보는 세상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개구리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은 것으로 구별한다. 날아다니는 파리를 그래서 잘 잡아먹는다. 박쥐는 초음파로 인식하고, 돼지는 세상을 흑백으로 인식한다. 그럼 아들은 왜 한 번도 보지 못한 귀신을 무서워할까? 뇌 안의 내용물이 다르다는 말은 달리 말해 녀석의 귀신과 나의 귀신이 다르다는 말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언어를 매개로 소통한다. 비언어적 요소도 있지만 단어, 개념, 그리고 문장으로 상황을 묘사하고 전하고 또 공유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일방이 사용하는 개념이 타방의 그것과 상이하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낙산사는 화재가 난 이후 방문한 아들의 낙산사와 다르듯이 말이다. 하나의 개념에도 서로 다른 세상이 있음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불교에서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표현이 있다. 물(H2O)을 물고기는 집으로, 사람은 물로, 아귀는 고름으로, 천상에서는 금은보화로 인식한다는 내용이다. 삼다수 회장이라면 곳곳에 보이는 자기네 생수가 다 돈으로 보이겠고 말이다. 물 하나만 놓고 봐도 이 정도라면 우리는 지구라는 동일 공간에서 너무나 다른 세상을 각자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약주를 거하게 하신 어른들이 서로 자기 이야기 좀 들어보라 고함을 지르고, 카페에서 젊은 커플들이 서로를 보고 내 마음도 몰라준다고 눈을 흘기는 게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라이프니츠는 인간을 정의하기를 ‘나’란 자아들에 갇혀버린, 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라고 했다. 관점이 달라지면 인식내용도 달라진다. 관점은 소위 보고 생각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먹어본 이상야릇한 음식과 불편한 잠자리를 왜 우린 너그럽게 받아들일까? 당연히 거기는 외국이니까, 집이 아니니까 그런 거다. 여행에서 불가피한 불편도 생각을 바꾸면 로맨틱한 추억이 되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영역인 예술도 사실은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아주 낯설게 해석해서 전혀 새로운 느낌을 선사하는 작업 아니던가. 우리가 잘 아는 다빈치가 그랬고 피카소가 그랬다. 미국 근대 5종 국가대표 마릴린 킹(Marilyn King) 선수는 모스크바 올림픽을 딱 1년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머리와 척추를 다쳐서 전혀 움직일 수가 없게 되자 마릴린 선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자신이 훈련하고 경기하는 모습을 하루 종일 상상했던 것이다. 남들은 그저 누워있다고 생각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던 그녀는 그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훈련이었다.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진작에 포기를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그녀는 올림픽 경기에 뛰고 있는 자신을 상상했고 끊임없이 다른 선수들과의 시합을 상상했다. 몇 달 뒤 그녀는 정말이지 기적처럼 올림픽에 출전했고 기적처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마음으로 상상한 것만으로도 세상이 바뀐 셈이다. 흔히 반에서 꼴찌를 한 친구를 보고 ‘뒤에서 일등’이라고 에둘러 표현한다. 어쨌든 일등은 일등이니까. 독일에서도 이런 학습 부진아를 ‘츠바이슈타인’이라고 부른단다. 독일말로 츠바이(zwei)가 둘을 뜻하니까, 츠바이슈타인’은 바로 ‘제2의 아인슈타인‘이라는 재미난 표현이다. 지금 당장은 뒤에서 일등이지만 이 사실을 뒤집는, 그의 촉망된 미래를 부각한 표현이다. 가장 짧은 시로 알려진 일본의 하이쿠[俳句] 중에 ‘나의 집에서 대접할 만한 것은 모기가 작다는 것’이란 노래가 있다. 자랑인지 겸손인지 아니면 맥(?)이는 건지 감은 잘 안 오지만, 관점을 바꾸면 세상도 그렇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대리모 백무산 아이들 머리통만 한 배 하나 받아든다 어디서 달려왔는지 불룩한 배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열매가 달려온 곳을 떠올려본다 터무니없을 만큼 큰 열매를 매달았을 나무를 간신히 떠올려본다 열매가 달려있던 자리를 바람에 몸을 흔들어보지도 못하는 나무 햇살에 머리를 풀어헤쳐보지도 못하는 나무 쇠파이프에 묶이고 쇠줄에 감긴 나무 자기 몸을 자기가 가질 수 없는 나무 열매의 무게에 찢어지는 팔을 가진 나무 겨울 언 땅에 발등이 터져 있을 나무 생식기만 있는 나무 나무를 기억하지 못하는 열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직 접시 위에 놓이기만을 위해 달려온 길 칼을 들다 나는 몇 번이고 망설인다 -‘멈추라’고 외치는 마음의 소리 시인은 방금 배달되어 온 ‘아이들 머리통 만 한 배’ 하나를 받아들고 칼을 들어 깎아먹을지 말지 머뭇거린다. 그리고는 떠올려본다. “쇠파이프에 묶이고 쇠줄에 감”기고, “열매의 무게에” 찢어진 팔을 가진 나무를. 바람에 몸을 흔들어 보지도, 햇살에 머리를 풀어보지도 못한, 자기 몸을 자기가 가지지 못한 어미를. 그렇구나. 그 나무는 햇살과 비에 가지를 통통거리면서 자기가 낳은 새끼, 열매들을 돌보는 그런 자유마저 빼앗긴 과목이었구나. 그래서 열매와 나무는 서로를 고마워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구나. 그 나무는 “터무니없을 만큼 큰” 새끼를 낳아주는, “생식기만 있는” 대리모였구나. 우리는 그런 과일들을 일등품이라고 접시에 올리는구나. 시인은 나무와 열매마저 대기와 우주와 함께 호흡할 수 없는 시대, 식탁에 놓이는 과일마저 그 근원이 의심스러운 시대를, 식탁에 놓인 과일을 통해 진단하는 게 아닐까? 이 점에서 시인의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의 힘」)는 전언은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멈추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달려왔는가? 시인의 말대로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달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대기도 바닷물도 미세 플라스틱으로 가득 차 있어 인간과 지상 및 바다 생물들이 숨을 쉴 때마다 그 작은 것들이 폐에 빨려 들어 내장에 쌓인다고 한다. 이 시간에도 빙하는 녹아내리고, 한파는 몰아치고, 해일과 홍수는 늘어만 간다. 자세히 보면 ‘Covid-19’도 이런 자연파괴에서 유래하지는 않았을까? 어찌하여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가? “칼을 들다 나는 몇 번이고 망설인다”는 시인처럼 우리도 이쯤에서 우리 행동을 머뭇거리며 회의할 순 없을까? 그 머뭇거림이 멈춤으로 가는 새로운 길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일제강점기 숭복사지 주변에는 탑재들과 귀부와 비편, 건물의 초석 등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1929년 후지시마 가이지로(藤島 亥治郎)가 서쪽 돌계단 아래서 ‘국사대웅(國寺大雄) 개와대웅(蓋瓦大雄)’이라고 씌여진 평기와를 발견하였다. ‘국사(國寺)’라고 하는 것은 사격이 높았다는 것이고, ‘개와(蓋瓦)’는 지붕을 기와로 덮었다는 의미이며, 대웅(大雄)은 부처님을 지칭하는 말이니 대웅전 지붕의 기와가 아니었을까? 숭복사지는 비교적 넓은 편으로 3단의 석축을 쌓아 맨 위에 법당과 탑을 배치하고 북쪽으로 50m 떨어진 곳에 강당을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금당 앞에 두 기의 탑을 배치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이었다.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94호로 지정된 이 두 탑은 파괴되어 흩어져 있던 탑재를 수습하여 1970년대에 복원하였다. 두 탑의 남은 부재가 서로 같지 않아 서로 다른 탑처럼 보이나 규모나 조각이 거의 같은 양식으로 2층 기단에 3층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동탑은 높이가 4.3m인데 2층 탑신과 상륜부가 없어진 상태이며 서탑은 약 3.2m의 높이로 2,3층 탑신과 3층 옥개석 및 상륜부가 없어 왜소해 보인다. 두 탑은 밑바닥에 지대석을 깔고 그 위에 기단을 올렸는데 하층기단은 하대석과 중대석을 합쳐서 만들었다. 면석에는 양쪽에 우주을, 가운데에 두 개씩의 탱주을 새겼다. 하층갑석은 네 장의 돌로 만들어 합하였는데 지붕면에 경사를 두었고 위에는 호형과 각형의 2단 괴임을 만들었다. 두 탑의 상층기단을 만드는 방식은 같지 않다. 남북으로 면석을 세우고 동서에서 끼우는가 하면 돌려가면서 세우기도 하였고 한 면을 두 개의 판석으로 만든 경우도 있어서 파손되어 복원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일관성은 떨어져 보인다. 두 탑 모두 2층 기단 각 면에 2구씩 8구의 팔부신중(八部神衆)이 조각되어 있다. 팔부신중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로 명중팔부(冥衆八部), 천룡팔부(天龍八部), 또는 팔부중(八部衆)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고대 인도의 신들로서 악마나 귀신에 속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에게 교화된 후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선신(護法善神)이 되어 10대 제자와 함께 부처의 설법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낸 영산회상도 등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고 벽화나 조각으로도 많이 조성되기도 하였으며 특히 석탑의 기단에 부조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팔부신중은 사천왕에 버금가는 수호신으로 부처의 팔부중과 사천왕의 팔부중이 따로 있다. 사천왕이 거느리는 부하인 팔부중은 건달바·비사사·굼반다·벽려다(프레타)·용·부난다·야차·나찰이다.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으로는 천·용·야차·아수라·건달바·긴나라·가루라·마후라가가 있다. 숭복사지 석탑 동쪽에는 용·야차, 서쪽은 천·가루라, 남쪽은 아수라·건달바. 북쪽은 마후라가·긴나라가 조각되어 있다. 이 탑 팔부신중의 조각 수법은 경주 서남산의 창림사지 석탑과 유사하다. 탑신부는 탑신, 옥개석 모두 1매로 되어 있다. 탑신에는 우주를 새기고, 초층 탑신에는 4면에 문비(門扉)가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 층급받침은 모두 4단인데 모서리에 풍탁(風鐸)을 달았던 구멍이 있다. 지금 두 탑은 보수 정비 중으로 철제 울타리에 갇혀 있다. 아니 탑이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그 속으로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편 저 산 위에 풍력발전기라는 거대한 바람개비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세차게 부는 바람에도 꿈적하지 않고 있다. 또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국도에서 내달리는 차량이 시야를 어지럽히고 있다. 어쩌면 이런 모습들이 보기 싫어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그 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새로운 석재를 첨가하여 수리 복원한 탑을 보면 낡은 옷을 새 천으로 기운 것처럼 영 어울리지 않았었다. 비록 몸의 일부를 잃었지만 상상의 나래를 편다면 건립 당시의 당당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추정해 볼 수 있다. 묵묵히 천년을 견뎌온 탑이 대견스럽다. 철제 울타리를 허물고 떳떳하게 그 모습을 드러낼 날을 기다려 본다.
서울시가 지난 15일부터 시내버스 정규노선 370번에 첨단 친환경 교통수단이라 불리는 수소버스를 투입한데 이어 오는 22일에 3대를 추가로 투입, 모두 4대의 운행에 들어갔다. 수소버스는 달릴 때 공기 중 미세먼지가 포함된 산소가 버스 내부로 들어가 수소와 결합해 오염물질이 99.9% 제거된 깨끗한 물만 배출하는 반면 질소산화물 같은 오염물질과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는 배출하지 않아 ‘달리는 공기청정기’로 불린다. 수소버스는 1회 충전으로 하루 종일 운행이 가능해 상대적으로 충전이 잦은 전기버스에 비해 효용성이 좋은 것을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1회 최대 30kg이 충전되며, 이는 약 450km를 운행할 수 있는 양이다. 1일 240~250km를 운행하는 370번 버스는 연간 운행거리인 8만6000㎞를 운행할 경우 총 41만8,218kg(1km당 4.863kg)의 공기가 정화되고 이는 성인(몸무게 65kg) 약 76명이 1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양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의 이번 수소버스 도입은 ‘서울형 그린뉴딜’의 핵심 세부사업 중 하나로 서울시는 지난 2018년 11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수소버스를 시범 운행한 결과 일반버스에 비해 급출발·정거, 진동 등이 적어 승객·운전자 모두 만족감이 높아 수소버스 운행 요청이 지속적으로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이번 수소버스 도입으로 친환경 교통체계를 선도하는 동시에 시내버스 이동편의성·운행안전성을 높여 대중교통의 전반적인 서비스 품질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서울시는 2025년까지 수소버스를 1000대 수준으로 늘리고, 수소충전소도 11개소를 구축해 수소차 시대를 여는 마중물로 삼을 예정이다. 한편 서울시의 수소버스 운행은 경주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들이 주시할 만한 사업으로 특히 문화재가 많은 도시들은 수소버스의 공기청정효과를 감안해 적극적으로 도입할 만한 버스로 평가된다.
포스코 효자 주택 단지내에 감사둘레길이 조성되어있다. 2012년 6월 준공된 것으로 주택단지 연못에서 청송대, 전망대, 부덕사를 거쳐 영일대 호반 쪽으로 이어 있으며, 어느 쪽으로 들어가 나오든 자유롭다. 주로 대나무와 소나무 숲으로 이어져 황토길, 마사토 길, 대나무길 그리고 데크 나무길로 이어있다. 천천히 걸으면 2키로 미터에 1시간정도 걸린다. 둘레길이 굴곡있고, 다양하고, 오밀조밀해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둘레길 속의 주요 길을 따라가면 여러 갈래 길이 있지만 대나무 숲 속에 야산 허리를 휘감아, 데크 나무로 요리조리 길을 만든 대나무 숲길이 있다. 마치 대나무 긴 터널을 지나는 기분으로 상쾌함과 신선함이 있고 나무 가지들의 서걱거리는 소리에 머리가 맑아진다. ‘마사토 길’은 전망대로 올라와 청송대 쪽으로 가는 길로 450여 미터에 마사토를 깔아 놓았다. 부드럽고, 발에 닿으면 촉감이 뭉글뭉글해 사람들이 더러 이 길에 들어서면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발 케어를 하고 지나간다. ‘황토길’도 있다. 청송대에서 정구장 입구까지 내려가는 길은 흙으로 되어 있어 걷기가 수월하다. -영일대 호수 주변 꽃길은 영일대 호숫가를 돌아보는 길이다. 봄이면 벚꽃, 겹벚꽃,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등이 피어 어우러지는 곳이다. 특히 물가에 피어나는 신선한 노랑꽃 창포가 장관이다. 노랑꽃들이 군락을 이루어 바람에 흔들릴때면 신비롭기까지 하다. 연못 안에는 큰 잉어들이 물 반, 고기 반 득실거리고, 물위로 거위 한 쌍이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이 던져주는 과자 부스러기에 목을매다시피 따라다니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작은 인공폭포도 괜찮다. 호숫가에 바위언덕을 만들어 놓고, 호수에서 물을 끌어올려 낙수를 만든다. 더운 여름, 쏟아 흐르는 물길은 좋은 피서 길이 되기도 한다. 이른 봄날이면 호숫가에 개나리꽃이 긴 벚꽃나무 아래로 군락을 이룬다. 쉼터 나무 의자에 앉아 호수 속에서 힘차게 솟아오르는 세 줄기의 분수와, 새들의 율동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다. -둘레길에 숨어있는 옛 건물들 이야기 둘레길 산 정상 쪽에 2층 철골건물이 있다. 이곳에 오르면 형산강이 보이고, 포항제철소 공장,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건물 이름은 전망대이나 집 모습은 포항제철소 건설 때, 초기 건설 지휘 본부로, 가칭 ‘롬멜하우스’라 불렀다고 한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영웅 롬멜 장군의 야전군 지휘소와 흡사하다고 해서 애칭으로 부쳐진 것이다. 바닷바람에 모래가 날려 눈을 뜰 수 없던 모래벌판 공사현장, 안전모, 귀마개 방독안경으로 중무장을 하고 출입하든 건설 사무소로, 초기 전설 현장의 지휘소였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여기 2층에 올라 공사 현장을 바라보며, ‘남의 집 다 부셔놓고, 제철소가 되는 건가?’하고 근심어린 눈으로 허허 벌판을 응시하던 곳이라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위해 당시 건물 모양대로 지어 보존하고 있는데, 지금은 안전차원에서 출입이 금지돼 있다. 전망대 아래쪽으로 임원사택으로 두어 채가 포스코 역사 보존상 모델로 남아 있고, 근처에 건설당시 일본 기술자 숙소 1채가 있다. 벌써 50년이 넘은 2층 구옥이다. 그리고 그 옆에 보이는 부덕사(婦德舍)란 집은 포철 주택단지 내 직원부인들이 모여 취미, 운동이나 생활 지혜를 배우든 곳으로, 부인들의 덕을 쌓는 집이란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 -호텔 영일대 이야기 1969년쯤 포항제철소건설시 외국 기술자나 자문단들에게 숙소가 필요하게 되자, 건설 현장이 보이는 효자지역 산언덕에 2층 건물을 짓고 그 이름을 ‘영일대(迎日臺)’라 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호텔 영일대로 용도 변경되어 일반인들에게 식당, 호텔로 사용되고 있어도, 당초에는 건설 중요인사의 숙소이며, 또 제철소 건설 상황실로 쓰였던 역사가 있는 건물이다. 한국 철강 산업의 산실인 이곳을 포스코 창업의 성지로 삼아 조경에 정성을 기우리고, 연못과 주변 길을 만들어 소위 영일대 호수공원으로 아름답게 보존하고 있다. 주변에 내·외빈 손님들의 방문기념 식수들이 있고, 고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 4월 1일에 포항 제철소 착공기념으로 심은 나무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잘 자라고 있다. -눈여겨 볼 꽃과 나무들 이 둘레길에는 40여종의 수종들이 자라고 있다. 봄이면 산수유에서부터 흰 벚꽃, 분홍색 겹벚꽃, 개나리, 진달래까지 꽃나무들이 줄을 잇고 있다. 감나무, 모가 나무, 오동나무, 수양버들, 길 따라 메타스퀘어, 히말라시다 등 큰 재목들도 창공을 향해 뻗어 있다. 이중에도 이름이 재미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나무가 있다. ‘꽃 아그배나무’이다. 봄, 여름에는 아름다운 꽃으로 흰색과 빨간색이 섞여 있다가, 가을에는 꽃 사과처럼 작은 열매를 맺는 나무이다. 꽃에다 아그배를 합친 이름인데, 아그배는 아기배(돌배)랑 뜻으로 돌배처럼 작은 모양때문인 것 같다. 장미과에 속하는, 중국 서부가 원산지로 일명 서부해당화라고도 한다. 새들이 좋아하며, 오밀조밀한 열매, 상큼한 색상 때문에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흰 벚꽃이 지고나면 여러겹의 분홍색 잎으로 ‘겹벚꽃 길’이 생긴다. 청송대 뒷길을 주로 하여 벚꽃 터널처럼 보인다. 벚꽃송이 크기도 크거니와, 가지가 무거워 땅에 닿을 듯 휘늘어지고, 바람이라도 불면 꽃잎이 길바닥을 쓸며, 산책인의 얼굴도 덮친다. 5~6월이면 호수가에 창포꽃이 길게 군락을 이루어 피어난다. 노란색 창포는 약용으로 쓰이고, 씨앗은 여인들의 머릿기름 원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우아하고, 신비스런 꽃이다. 그래서인지 이 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정갈해진다. 이 둘레길은 야간에도 길가에 조명 등을 설치하여 걸을 수 있게 되어있다. 야간 조명이 있는 숲속 둘레길, 군데군데 산돼지 출몰 위험 경고판이 섬뜩하게 하지만, 그만큼 나무들이 신선하고 분위기가 한적해서 좋다. 이 둘레길 지역은 포항제철의 역사가 새겨진 제철산업의 성역이다. 그리고 자연 박물관이다. 착공 기념비가 있고, 건설 현장 지휘소가 있으며, 그리고 제철 역군의 씩씩한 혼과 땀이 묻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후세들에게 좋은 힐링 공간과 교육의 장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할 것이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hanmail.net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김치는 어떤 의미일까?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16세기라고 하니 지금의 김치는 길게 보면 500년 정도 짧게 봐도 2~300 년은 족히 넘을 역사가 있을 법하다. 특히 김장김치는 겨우살이를 위한 중요한 필수품목으로 자리 잡아 겨울철 가가호호의 당연한 연중행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중요한 김장 김치 담그기 행사가 다소 느슨해졌다. 배추생산 기능의 향상과 함께 공장에서 대량생산되고 중국에서 수입된 지도 오래 됐다. 여기에 한국에서 유일한 김치냉장고이 보급으로 한겨울에도 싱싱한 김치를 먹을 수 있게 되자 어느 순간부터 김장김치의 풍습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세태에 정면으로 맞서기라도 하듯 최미해 씨의 페이스북이 이 근래 김장김치 담그는 과정을 알차게 담았다. 김장의 규모도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사진 상으로 언뜻 보기에도 통배추로만 50포기, 무도 수 십 개 가깝다. 이 많은 배추를 일일이 숨죽여 씻고 양념 버무리고 파, 고추, 마늘, 양파···, 갖은 채소들로 속 재료 만들고 치대는 과정이 얼마나 힘 들었을까만 최미해씨는 이걸 혼자서 씩씩하고 재미나게 밀고 나간다. 간간이 사진까지 찍어 페이스 북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말이 쉬워 50포기 김장이지 이건 실상 보통 일이 아니다. 최미해씨 말처럼 ‘하얗다 못 해 온 몸을 불싸질러야’ 이룰 수 있는 험난한 숙제다. 사흘에 걸쳐 이 많은 김장김치를 끝낸 최미해 씨가 수육을 곁들여 스스로 자축한 모습은 그래서 아주 큰 의미가 있어 보였다. 가족을 위해 이 많은 김장을 자임한 최미해 씨의 아름다운 고역이 빛나 보인다. 그런 최미해 씨가 12월 14일자로 김장의 대미를 장식하는 포스팅 하나를 더 했다. 바로 가족들의 열화 같은 성원···, 페이스 북에서 따온 사진에는 최미해 씨 가족들의 열렬한 응원이 올라왔다. 엄마가 고춧가루 공수해주시고 아버지가 재료비에 수고비까지 쏴주시고 오라버니도 통장으로… 힘든 일은 혼자서 삭이면 병이 되지만 누군가 그 힘든 일을 응원하고 칭찬해 준다면 기꺼이 고래까지 춤추게 한다. 최미해 씨의 가족 돌봄이 해피엔딩으로 보여 페이스북 중계를 보는 즐거움도 크다. 그리고 이 끝이 참 재밌다. “옆지기는 입 가지고 먹기만 하고··· 머 없냐??”
서면 천촌의 한 농가 황토방 앞 뜨락에는 잘 난 메주가 익어가고 있다. 직접 농사지은 콩을 이용해 전통방식으로 정성껏 메주를 만들어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낼 생각에 아낙은 마냥 행복하다. 메주를 건조대에 널기까지 새끼를 꼬고 가마솥에 장작을 짚이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된장으로 탄생시키기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전선자 씨는 “겨울동안 잘 말리고 잘 띄운 메주는 봄이 되면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을 만드는데 사용됩니다”며 “좋은 햇살과 차가운 바람에 잘 말라 가족과 지인들의 밥상에서 찌개와 국, 쌈장 등으로 행복해 할 그들을 생각하면 기쁘다”고 말했다. 메주가 익어가는 옆 가마솥이 걸려있는 뜨끈한 황토방에는 지금도 아낙들의 수다가 이어지고 있다.
참사랑노인복지센터(소장 박경복)와 카페 어마무시(대표 박상언)가 사회공헌활동의 활성화를 위한 MOU를 체결했다. 카페 ‘어마무시’는 이미 SNS를 통해 ‘티라미수 맛 집’으로 호평을 받는 업체로, 티라미수 1개를 구매하면 연탄 1장을 독거어르신께 기부하는 ‘어마무시 12월 연탄 기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12월 티라미수 판매량으로 2021년 1월 노인맞춤돌봄서비스 대상자 중 에너지 빈곤층에게 연탄을 기부할 예정이며, 연탄 기부를 통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독거어르신들에게 따뜻한 겨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경복 소장은 “카페 ‘어마무시’와 참사랑노인복지센터의 MOU 체결을 발판으로 노인 돌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두고 지역사회 내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의 활성화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상언 대표는 “참사랑노인복지센터와 협약을 통해 주변 상인들이 사회공헌활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따뜻한 일상이 필요하실 어르신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라며 MOU 체결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참사랑노인복지센터는 다양한 어려움을 이유로 홀로 일상생활 영위가 곤란한 노인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 지역사회 내에서 건전하고 안정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원조하며 소외된 계층을 위한 복지사업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도심에서 사육하는 개가 새벽운동을 하는 시민들을 위협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경주예술의 전당 옆 한중우호의 숲에는 아침운동을 위해 많은 사람이 오간다. 그러나 최근 목줄 없이 나돌아 다니는 개가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12일 새벽 6시 30분 목줄도 없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덩치 큰 개가 아침 산책 나온 시민들을 향해 짓고 달려들 듯 위협해 119를 부르는 소동이 일어났다. 곧 바로 대원들이 왔지만 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119대원은 “신고를 몇 차례 받았지만 직접적으로 개를 볼 수 없었다”며 “광범위하게 돌아다니는 개의 특성상 포획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포획을 원하면 101로 긴급전화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119대원들 덕에 안전하게 귀가는 할 수 있었지만 한중호국의 숲 정자 바로 옆에는 꽃 정원(LED꽃25000여송이)이 곧 개장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19로 실내 활동이 자제되고 있는 시민들은 산책도 할 겸 빛의 아름다움을 보기위해 많은 나올 것이다. 반려견의 목줄을 과도하게 늘어뜨리거나 목줄을 푸는 등 다중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의 팻-티켓을 꼭 지켜 줄 것을 당부한다. 반려동물을 통제하고 관리할 의무는 견주에게 있다. 안전수칙 혹은 팻-티켓을 철저히 준수하는 인식제고가 필요하다.
경주로타리 클럽의 한용주 씨와 회원들이 지난 12일 대자원에서 직업봉사활동을 펼쳤다. <사진> 용강동에서 아재축산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한 씨는 이날 대자원 아동들에게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비롯한 200만원 상당의 점심 식사를 제공했다. 특히 직접 식당에서 판매하는 된장찌개, 채소를 비롯한 음료 등 다양한 곁들이 음식을 준비해 코로나19로 인해 외식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위로했다. 대자원 조영제 원장은 “힘든 시기에 선뜻 아이들을 위한 직업봉사 활동을 펼쳐 준 한용주 대표와 경주로타리클럽 회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며 “이러한 따뜻한 마음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전해져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경주를 눈물겹도록 그리워했습니다. 나의 한국행은 곧 경주행입니다. 내 삶은 언제나 경주에서 출발하고 경주로 되돌아오곤 합니다. 그래서 나의 원점은 경주입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한국의 사회정치적 변혁기 등을 목격한 가장 주목해야 할 재미작가가 고향 경주를 찾았다. 회화, 조각, 직물, 도자기, 설치 미술에서 다양한 매체를 자유롭게 사용하며 복합적이고 다양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최일단(崔一丹·84) 화백이 그 주인공이다. 머리와 가슴, 손과 발로 빚어낸 열정 가득한 노년의 대가는 평온해 보였다. 미술평론가 이규일은 최일단 화백의 미술 세계를 ‘발바닥 예술가의 전천후 미술’이라고 요약한 바 있다. ‘아프리카만 빼고 대강 다녔노라’는 최 화백은 오랜 세월 예술을 위해서라면 세상 어느 곳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간 지난 시간들이 서예, 조각, 회화, 공예 등에서 망라된다. 그러나 이 대가는 완성의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매일 스타트 합니다. 죽는 순간까지 꽉 채우는 것이지 구멍이 나거나 기포가 있는 일은 하기 싫어요”라면서 평생 해 온 화업과 화가라는 소리도 듣기 거북할 정도라며 몸을 낮춘다. 최 화백은 자신의 화업과 작품에 대해 집안에 유전(遺傳)해 온 ‘문기(文氣)’에서 연유함을 여러 번 강조했다. 최 화백은 구한말 과거제 폐지 직전, 문과에 급제한 수헌(修軒) 최현필(崔鉉弼) 선생의 후손이다. 그래서일까. 화백에게서도 한일병합 격동기 경주에서 선비의 지조와 유학적 전통을 지킨 수헌 선생 집안의 결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84세라는 연륜에도 진술에 능숙한 목소리는 뚜렷하고 명쾌했다. 도야(陶冶)한 대가의 영감의 발원지가 경주라는 대목에선 왠지 모를 자부심마저 느꼈다. 옹색한 지면에 최일단 화백의 화업을 소략할 수밖에 없음은 송구스럽기 짝이 없지만 선생과의 인터뷰는 무척 행복했다. 뉴욕을 떠나 2주간 자가격리 기간을 거쳐 이곳 경주에 온 최일단 화백과의 만남이 성탄절 선물마냥 이뤄졌다. 행운이었다. -“집안에 유전해 오던 수헌 최현필 선생과 그 후손들의 문기(文氣) 이어받은 것과 ‘경주’라는 유산 있어 언제나 행복합니다” “경주와 비교 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중국 3대 석굴을 다 준다고 해도 석굴암과 바꾸지 않을 만큼 훌륭합니다. 6학년 겨울방학때까지 경주에서 보낸 내 삶은 언제나 경주에서 출발하고 경주로 되돌아가곤 합니다” 안압지에서 그림을 그린 기억, 첫사랑이던 담임선생님에 대한 기억, 종일 걸렸던 석굴암 가는 길, 김유신 장군묘 가는 길, 경주박물관(현 경주문화원) 찾던 일 등을 기억 저편에서 소환해 내는 선생의 얼굴엔 연신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교육관이 남달랐으며 은행장이셨던 선친의 낭만적 유산이라는 자양분에다 ‘경주’라는 유산이 있어 언제든지 저는 행복합니다” 최 화백은 어린 시절 편견과 불평등 없었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집안에 유전해 오던 수헌 선생과 수헌 선생의 초서를 읽기 쉬운 필체로 바꿔 써 모두 8권으로 묶었던 후손 최영우 선생, 늘 책상에 앉아서 수헌 선생의 글들을 직접 필사하면서 수헌문집 발간을 주간한 후손 최상협 선생 등의 문기를 이어받은 것이 오늘의 자신이라고 했다. “집에도 늘 지필묵(紙筆墨)이 놓아져 있었습니다. 그런 자산들이 제 척추뼈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기억들은 모두 경주라는 큰 유산에 기반합니다” -“이응노 화백은 나의 스승이자,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분” 최일단 화백은 1936년 출생으로 어린 시절 선친의 고향 경주에서 자랐다. 계림국민학교 6학년일때 서울로 이주해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미대 회화과(서양화)에 입학하였으나 조각과로 옮겨 김종영 선생에게 배우며 1960년 졸업한다. 1958년 국전(조각부문) 특선을 수상했고 10여 년의 교편생활을 거쳐 1968년 베트남으로 이주했다가 미국으로 가려던 도중, 프랑스에 살고 있던 고암 이응노 선생을 찾아간다. 이응노 선생은 최 화백의 재능을 간파했고 당시 고암 선생의 조언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한다. “‘너는 재주를 타고났다. 그 재능을 마치 만들어서 가진 재주인줄 알고 갈고 닦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다. 타고 난 재주는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내팽개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에게서 일생 누구에게도 듣지 못한 말씀을 들었어요” 1972~1975년 스승의 말에 대오각성해 미국행은 연기되었고 이응로 선생 문하에서 3년여 동안 수학한다. 이로써 동양화에 본격적으로 처음 입문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고암으로부터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배웠으며 이를 기반으로 특유의 여성적 섬세함이 나타나는 동양적 공간을 구축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지 조각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린 후 한 땀씩 실로 꿰맨 그의 작품은 글씨와 그림, 회화와 조각을 오가며 실험적인 방식으로 동양화의 영역을 넓힌다. 파리에서 세계관이 달라졌고 더 큰 동양화의 세계로 진입하고 싶었다. 중국 갈 생각을 파리에서 결심한 연유다. 이어 1986년~88년 중국 북경중앙미술학원 산수화계에서 유학한다. 이응로 선생 이외에도 서세옥, 김종영, 장욱진 선생 등 당대 최고의 스승에게서 사사 받는다. 서울, 캐나다 몬트리올, 미국 뉴욕 등지에서 여러 번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수 차례 그룹전을 가졌다. 유럽과 미주· 동남아· 소련· 중국 등 고대 문화예술 유적지를 탐방하였으며 특히 중국은 일곱 번이나 방문해 1991년 ‘발바닥 문화예술기행-정중동(靜中動)’ 출간했다. 1992년 소장전 ‘중국 묘족(苗族) 복식전’, ‘1993년 중국 조선족 화가 한낙연 유작전’ 유치, 2005년 이응노미술관개관 5주년기념 첫 외부작가 초대전, 2013년 뉴욕문화원 갤러리코리아에서 ‘채색된 시간: 재미한인작가 아카이브 1부 1955∼1989’전, 2014년 뉴욕한국문화원 갤러리 코리아에서 한인여성미술가 15인 특별기획전, 2019년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현대수묵전 등 개인전 및 단체전에 다수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 『최일단발바닥 문화예술기행 정·중·동』이 있으며 2018년 이응노미술관에 후원금 1000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현재 연중 한 두 번은 뉴욕 등지에서 전시에 참여하며 뉴욕에서 활동 중이다. -‘최일단발바닥 문화예술기행 정(靜)·중(中)·동(動)’ 3권 발간...5천매의 원고, 고행 같은 기행의 추억 현장감 있게 담겨져 ‘최일단발바닥 문화예술기행 정(靜)·중(中)·동(動) 3권(융성출판, 1991)’은 기행문집이자 견문록이다. 중국 전 지역 문화 유적지를 비롯해 세계 여러 곳을 돌아보면서 스케치한 풍물, 문화예술에 관한 사진자료다. 대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느낀 갈등과 환희, 문화예술에 관한 사진자료집들을 모아 엮어냈다. 그렇게 세상을 탐색한 것이 몇 만리나 되었고 이는 5천매의 원고로 집대성됐다. 몇 만장의 사진작업도 함께였다. 천하를 여행하며 얻은 견문과 수집한 자료는 소동파가 간파한 ‘독만권서(讀萬卷書, 만 권의 책을 읽고) 행만리로(行萬里路, 만 리를 여행하라)’에 닿아있다. 열정에 가득찬 이 작업은 필사적인 노력 끝에 탄생한 집필이었다. 이 원고와 자료를 혼자서 수집정리하는데 무려 5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이 여행가요, 저술가의 면모도 보이는 대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디서든 늘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노트마다 모아둔 기록이 있었는데 1988년 ‘수헌 문집’ 발간 소식을 듣고서 저도 책으로 엮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 책 발간도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상들이 함께 한 것입니다” -‘통섭(通涉)’이 가장 큰 줄기...“제 일생을 투과해 나온 작품들을 굳이 한 장르에 국한시키지 않습니다” “저는 이화여자대학교 최재천 석좌교수가 도입인용한 ‘통섭(通涉, 지식의 융합, 사물에 널리 통함)’ 이론을 너무 좋아합니다. 어떤 것이든 섭렵하는 것이 통섭이라면, 대학2년 조각가로 전과 한 것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조각과로 전과 하면서도 서양미술 전체를 동양화의 거름으로 써서 크게 밭을 갈아엎을 작정이었습니다. 통섭이 제가 하는 일의 가장 큰 줄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실, 선생은 통섭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전부터 일찌감치, 범예술적 접근을 지향해왔다. 개척자적 자세였다. 새로운 장르를 창출해 내는 다이내믹한 과정을 즐겼던 것이다. 여전히 선생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수년전부터는 세라믹(도자기) 작업에도 몰두한다. 회화 근작들은 주로 동양화의 가장 근본적인 지필묵 세 점을 사용한다. 지필묵이라는 근원적인 조건과 도구만으로 색이나 형태, 형식에 전혀 의지하지 않기로 하는 것이다. “느린 걸음으로 쉬지 않고 붓질을 하면서 마드리드에서 콜도바로, 돈황에서 이스탄불로, 대족(大足)에서 석굴암으로, 이집트에서 경주로 정신없이 뻗어나갑니다. 이렇게 밖으로 흩어지는 생각을 단순화하고 휘어잡기도 합니다. 나의 예술은 나의 삶입니다. 석굴암에서 그리스 조각의 향취를, 이집트 신전의 기둥 꼭대기 장식에서 신라와당을 연상하며 감동받습니다. 사람들은 내 작품을 놓고 장르를 넘나든다고 합니다만 결과만 놓고 한 분류일 뿐 내게는 장르 개념 즉 회화니 조각, 공예 등이 아예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선생의 통섭을 통한 다면성에 탄복한다. 그래서 허병렬 뉴욕한국학교 교장은 ‘선생이 지니는 깊이와 넓이, 다채로움을 아직도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 영역을 알 수 없노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