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출향 기업가 한주식 회장이 이끄는 ‘지산그룹’은 단기간에 놀라운 성장을 이룬 물류업계의 독보적 기업이다. 지산그룹 산하 냉동창고는 단순한 창고의 범주를 넘어 최첨단 물류기지로 대한민국 유통산업의 심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산그룹은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에 초대형 물류기지를 7곳이나 운영 중인 가운데 오는 4월, 안성에 국내 최대규모의 물류기지를 추가로 완공할 예정이다. 이 안성물류기지의 건축현황을 보면 신기에 가까울 만큼 공사 기간이 빠르다. 안산물류기지가 전체적인 기초공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건축공사에 들어간 것은 지난해 10월경이다. 그런데 공사를 시작한지 불과 3~4개월 만에 무려 10만평 규모의 초대형 건축을 거의 완공하는 놀라운 진전을 거두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이 같은 공사의 비결에는 ‘걸림돌을 디딤돌’로 승화시켜온 한주식 회장의 또 다른 승부수 ‘지산피씨’가 숨어 있다. “물류창고를 건축하는데 피씨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기존 피씨업체들이 납품하는 물량으로는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물류기지 건설이 무척 힘들었어요. 우리가 사용하는 피씨는 천문학적인 물량인데 기존 업계가 생산하는 피씨는 매우 한정적이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한주식 회장은 충북 진천에 기존 피씨 공장을 인수해 직접 생산하는 방식을 시도해 보았지만 이 정도로는 물량 공급이 원활하지 않음을 깨닫고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피씨공장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해서 2021년 탄생한 역작이 ㈜지산피씨다. 지산피씨는 가동 후 2년만에 업계 4위의 실적, 전체 PC생산의 10%에 달하는 놀라운 성장세를 기록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지산피씨에서 생산하는 피씨의 50%가 지산그룹 자체에서 소화한다는 사실이다. 앞의 안성물류기지에 사용된 피씨의 전량이 지산피씨에서 생산돼 원활하게 공급됐기에 단기간에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피씨란 무엇인가? 건설업계에서 피씨(PC-Precast Concrete)의 유용성은 매우 다양하다. 흔히 건축에서 ‘공구리(콘크리트) 친다’는 말이 있다. 건축현장에서 철골을 설치하고 그 외부로 거푸집을 만들어 콘크리트 반죽을 부어 성형한 후 이게 굳을 때까지 말려서 기둥이나 벽, 천장을 만드는 것을 일컫는다. 이것은 현대건축에서 아주 오래된 건축기술이지만 콘크리트가 마르는 동안 여러 가지 외적 요인들로 인해 공사 기간에 영향을 받기 쉽다. #전체 공정 실내화, 컴퓨터 연결된 자동화 시스템, 꼼꼼한 CCTV, 안전관리 회장실에서도 할 수 있어! 피씨는 철골콘크리트로 기둥, 외벽, 천장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규격화된 제품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피씨는 공사현장에서 만들지 않고 피씨 공장에서 제작한 후 공사현장으로 옮겨와 현장에서 조립해서 사용하는 제품이다. 피씨를 사용하면 현장에서 성형하거나 말리는데 드는 수고와 시간이 필요 없으니 공사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날씨와 기온 등 외부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단 피씨의 규격이 크고 무거워 규모가 큰 대형 건물에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공간활용이 중요한 초대형 반도체 공장, 아파트 지하 주차장, 대규모 창고 등에 널리 사용된다. 지산피씨는 기존의 피씨공장들의 생산방식과 완전히 다르다. 기존 공장들은 피씨 제작은 공장 안에서 진행하지만 건조작업은 대부분 공장 건물 밖에서 진행한다. 제작된 피씨를 공장 밖에서 말리다 보니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무리 철골 콘크리트 제품이지만 건조과정에서 외부 영향을 받아 균일한 품질을 보장하기 어렵다. 생산 라인도 대부분 구형이라 하루에 한 베드(Bed-피씨를 생산하는 틀)에서 1개의 피씨를 생산하는 공장이 대부분이다. 지산피씨는 공장의 연면적만 국내에서 가장 큰 3만3000㎡ 규모에 150m에 이르는 생산 라인을 자랑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모든 공정이 실내에서 이뤄지는 것은 물론 전체 작업이 컴퓨터와 연결된 자동화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150m 생산라인 전체가 국내 유일의 ‘순환식 시스템’으로 관리돼 거푸집 제작과 콘크리트 투입, 성형과 건조에 이르는 전 과정이 자동으로 처리된다. 이런 자동화 시스템은 인력은 90% 줄인 반면 생산성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인다. 덕분에 지산피씨는 한 베드에서 15분에 한 개의 피씨를 생산할 수 있는 획기적인 가동력을 자랑한다. 이런 베드가 지산 피씨에는 모두 12개나 있다. 제작을 마친 피씨는 자동으로 공장지하에 마련된 양생실로 옮겨져 ‘균열제어기법’을 통한 양생을 마친 후 외부 야적장으로 옮겨진다. 엄격한 품질관리와 자동화를 통한 경쟁력은 지산피씨가 창립 2년 만에 업계 4위로 부상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이 된 것이다. 여기에 생산 공장 전체에서부터 세부적인 공정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CCTV가 설치돼있어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것도 지산피씨의 특징이다. CCTV는 공장 관리자에게만 머물지 않고 한주식 회장 집무실에서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 되어 있다. 이렇게 획기적인 시설들을 완비하는데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다. 한주식 회장은 평소 시설투자와 연구개발, 안전관리에 관한 한 ‘비용을 아끼지 말자는 소극적인 태도를 떠나 마음껏 써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지산피씨 공장은 그런 한주식 회장의 철학이 철저하고 종합적으로 녹아있는 현장 그 자체다. #외국인 근로자 위한 최고의 기숙사 무료 제공, 한주식 회장의 나눔 정신 온전히 반영 그러나 지산피씨의 이런 차별성은 오히려 빙산의 일각이다. 지산피씨에는 다른 피씨 공장에서는 찾아볼 수 있는 특별한 또 하나의 탁월함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지산피씨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다. 바로 지산피씨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기숙사 시설이다. 지산피씨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이동하면 공장 맞은편의 산기슭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건물이 두 동 서 있다. 그 옆에는 고급 별장을 옮겨놓은 듯한 집도 한 채 있다. 이곳이 지산피씨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기숙사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기숙사는 완전히 무료로 제공되며 최고의 컨디션을 가진 삶터라는 점이다. 기숙사는 모두 100여명이 거주할 수 있고 이것이 안정적인 근로를 보장하는 또 다른 열쇠다. 여기에 지산피씨 전체 근로자들은 지산그룹이 엄선한 외주업체가 준비하는 식사도 격조 높은 사원식당에서 무료로 제공받는다. 평소 국내 거주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은 애로를 안고 있고 특히 주거문제가 안정적인 고용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점을 지적해왔던 한주식 회장의 남다른 관심의 결과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매년 20억원 이상 장애인들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기부해 오는 한주식 회장의 남다른 나눔과 상생철학이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온전히 발휘되는 것이다. 한편 공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주요 건설사들이 앞다투어 자체 피씨 공장을 보유한 데다 피씨업계가 의외로 진입장벽이 낮고 열악한 환경으로 피씨 제작에 뛰어들어 하청에 재하청이 난무하는 식의 주문과 제작이 성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치열하고 문제 많은 경쟁시장에 뛰어든 후발주자가 지산피씨라는 것. 그러나 어느 공장도 가지지 못한 차별화된 시스템과 탁월한 품질은 향후 지산피씨의 성장은 물론 우리나라 피씨 시장의 근본적인 체계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온 한주식 회장의 경영철학이 PC산업에서는 어떤 변화를 이끌지 주목된다.
사진은 21세기 이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한 현대문명과 예술의 절대강자가 되었다. 특히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고 SNS의 발전이 다각화하면서 사진은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근한 예술로 거듭났다. 그런 만큼 사진이 미치는 영향도 어느 때보다 커졌다. MZ세대들은 자신들만의 포토존을 찾아 여행지를 선택하는 습성을 가진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달 30일 경주 사진작가 이정환 작가의 페이스북에 사진계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작가들이 경주를 방문한 사진이 올라왔다. 이웃한 포항시에서 국제사진전을 개최한 바, 이 행사가 끝나고 국내외 사진예술의 거장들이 경주를 방문한 것이다. 이정환 작가는 이번 행사에서 경주시 자문위원의 자격으로 참여한 후 중요 작가들의 경주방문을 맞은 것이다. 이정환 작가와 함께 경주를 찾은 사진작가들은 내셔날지그래픽 등재 사진가이자 이번 사진제에서 총감독을 맡은 구승회 교수(신라대 광고홍보미디어 영상학부)와 프랑스 아를 국립사진학교 Paul Pouvereau 교수, 폴란드의 Marcin Rycze 작가, 인도의 Swapnil Agaskar 작가 등이다. 이들은 불국사와 첨성대·안압지를 비롯한 동부사적지, 정미소 갤러리를 비롯한 황리단길 등을 방문하며 한껏 경주의 아름다움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환 작가에 따르면 이들 작가들은 이구동성 경주의 매력에 고무되어 국제사진제가 다른 도시가 아닌 경주에서 열리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했다. 이들은 ‘포항 국제사진제는 경주라는 도시가 옆에 있어 더 빛날 수 있었다’며 만약 경주가 국제사진제를 한다면 기꺼이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약속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승회 교수는 도시브랜딩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면서 지자체들이 전문 작가들의 사진을 통해 지자체를 홍보하는데 훨씬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비록 몇 컷의 페이스북 사진일 뿐이지만 그 속에서 찾을 만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이것만 봐도 사진이 얼마나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하는지 알 수 있다.
경기도가 지난해 4개월 동안 진행한 ‘경기도 긴급복지 위기상담 콜센터(핫라인)’를 분석한 결과 전화를 건 1203명 중 가장 많은 민원이 생계지원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아직도 상당수 국민이 절대적인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경기도 외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하거나 더 열악한 상황일 수 있어 경각심이 요구된다. 경기도는 지난해 ‘수원 세 모녀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8월 25일부터 12월 말까지 긴급복지 위기상담 콜센터(031-120), 긴급복지 핫라인(010-4419-7722)을 운영해 총 1203명의 전화·문자를 접수해 이 중 833명에 대한 지원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민원 내용을 분석해 보면 그간 ‘생계지원’이 783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의료 309명 △채무 194명 △주거 149명 △일자리 47명 △기타(교육 등) 266명 등의 순으로 밝혀졌다. 주목할 것은 접수자들 중 173명(14.7%)이 친구와 친척, 지인과 이웃 등으로 밝혀져 복지사각지대에서 주변인들의 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경기도는 실제로 복지정보를 모르거나 건강·장애·위기상황(폭력) 등으로 스스로 지원 신청을 하지 못한 위기가구가 지역사회 제보로 긴급복지를 받은 사례도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공적·민간 지원을 위해 심층 상담을 진행한 349명을 통해 위기 사유를 살펴본 결과, 실직·사업 실패로 인한 소득 상실이 83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어 중한 질병 또는 부상(59명), 채무(46명), 주소득자 사망(19명) 등도 있었다. 경기도의 긴급복지 위기상담 핫라인(콜센터)은 위기상담 접수 후 도 전문상담사와 상담 후 시군 및 읍면동 복지 담당자에게 연계해 지원가능한 모든 복지서비스를 연결해 주는 것은 물론, 기존 복지지원에도 어려움을 겪는 위기가구에는 추가로 민간자원을 연계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고물가와 공과금 및 공공요금 인상, 거듭되는 한파 등이 소외계층과 빈곤계층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경기도 뿐 아니라 어느 지역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비슷한 양상에 전국 지자체가 충분히 준비해야 할 때다.
경북남부보훈지청은 설 명절 앞두고 이웃사랑 실천을 통해 생활 속 보훈문화를 확산하고자 지역 내 사회복지시설 등을 위문했다. <사진> 이번 위문은 직원들이 매월 자율적으로 모은 성금으로 아동복지시설인 ‘대자원’과 6·25참전유공자 등 보훈가족 7명이 입소해 있는 노인복지시설 ‘엘요양원’에 훈훈한 마음을 전달했다. 대자원은 독립유공자 조인좌 선생이 6·25 전쟁 이후 전쟁고아들을 위해 1953년에 설립한 아동복지시설로 손자인 조영제 원장이 뜻을 이어받아 소외계층 아동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다. 위문대상자인 6·25 참전유공자 중 한 어르신은 “할멈이 요양병원으로 들어간 지 벌써 몇 년이 되고 자식들이 해외 선교활동을 나가 외로웠는데 명절을 앞두고 이렇게 찾아와주니 너무나도 반갑다”며 “간만에 대화도 많이 하고 쓸쓸함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경북남부보훈지청 강성미 지청장은 “지역의 소외된 청소년과 보훈가족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보훈지청 직원들은 평소 성금을 모금하고 위문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면서 “이러한 생활 속 보훈문화 실천이 지역 나눔 문화 확산에 작게나마 기여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한편 경북남부보훈지청은 현대제철포항공장 등 8곳의 보훈가족 위문금품을 포항·경주·영천·영덕·울진·울릉 등 관내 6개 시·군 373가구의 보훈가족에게 전달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경주교도소 수용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길이 이어졌다. 먼저 불국사 자원봉사단의 기형스님은 설 명절에 고향에 갈 수 없는 아쉬운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됐으면 희망한다며 지난 18일 빵과 음료수 400세트를 전달했다. <사진> 20일에는 교정협의회 최병오 회장과 회원들이 경주교도소를 방문해 수용자들을 위로하며 빵과 음료 각 400개를 전달했다. 경주교도소 최재우 소장은 “항상 수용자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시고 물심양면으로 기부를 아끼지 않는 불국사 자원봉사단과 교정협의회 위원들에게 감사드린다”면서 “이러한 관심과 위로가 수용자들의 안정적인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경주교도소는 설을 맞아 교도소가 위치한 내남면 용장4리 마을회관 및 다문화가정, 독거노인, 소년가장 등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직원들이 마련한 성금과 격려품을 전달했다
농협중앙회 우리농업지키기운동본부 경북지역본부는 지난달 19일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과 장애인단체협의회를 찾아 취약계층을 위한 400만원 상당의 ‘사랑의 떡국떡’ 2kg 270상자를 지원했다. <사진> 이번 지원사업은 우리농업지키기운동본부가 주관하고 농협중앙회와 NH농협은행에서 후원한 것으로 평소 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많은 배진석 경북도의원과 함께 민족의 명절 설을 맞아 어려운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우리농산물 소비 촉진을 위해 마련됐다. 김종필 본부장은 “취약계층들이 행복하고 따뜻한 설 명절을 보내길 희망한다”며 “앞으로도 농촌 활성화사업 등 취약계층을 위한 아름다운 기부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농업지키기운동본부는 범농협 임직원들이 매일 1000원 이상의 자발적인 후원금을 통해 조성된 기금으로 운영되는 사회공헌단체이며, 무료 장수사진 촬영과 도시락 지원, 동화책 지원 사업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청년이 직접 지역사회 내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청년사회서비스사업단’공모가 오는 15일까지 진행된다. 청년사회서비스사업은 청년들이 직접 참여해 지역 특성에 맞는 사회서비스를 개발하고 보급해 청년에게 사회참여 및 역량 강화 기회제공과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업이다. 올해는 기존 제공해 오던 청년마음건강지원, 청년신체건강증진서비스 외에도 초등학생 돌봄 서비스가 추가 됐다. 신규 서비스인 초등학생 돌봄 서비스의 경우, 이용 대상 제한을 없애 지역사회서비스가 보다 보편적 서비스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고, 소득 기준에 따라 본인 부담금을 차등 지불하면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사업단 구성은 대학이나 사회복지법인, 사회적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이 서비스 제공 인력의 70%이상을 만 19세~34세로 해야 하며, 초등 돌봄 서비스에는 초등교육 등을 전공한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다. 학업과 취업준비 등을 병행하는 청년 특성을 감안해 주 40시간 근로의무 기준을 완화하고, 기존 인건비 지원 외에 초기 설치비를 추가 지원하는 등 청년사업단 활성화를 위해 다각도로 지원한다. 참여를 희망하는 기관은 사업계획을 수립해 이달 15일까지 신청서와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지역은 경북도청 사회복지과(054-880-2114)로 세부 구성요건, 지원사항, 신청 서류 및 일정 등 공모와 관련된 사항을 문의하면 된다.
경주시가 올해 경로당을 더욱 행복하고 활기찬 복지공간으로 조성한다. <사진> 시는 올 한해 등록경로당 633곳에 70억원 예산을 투입해 운영비 지원, 시설 환경개선, 행복도우미 지원 등 경로당 활성화 사업을 실시한다. 이는 지난해 예산 58억원 보다 20% 늘어난 수치다. 특히 올해는 노인복지의 핵심인 경로당 환경개선에 주안점을 두고 추진한다. 먼저 △건천 송선 2리 △내남 이조 2리·노곡 2리 △천북 오야리 △안강 대동리 △현곡 오류 1리 등 경로당 6곳을 신축한다. 또 시는 노인들의 여가활동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마을 경로당을 집중 지원해 건강 100세 시대를 맞아 행복한 인생2막이 되도록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조성에 나설 방침이다. 이를 위한 사업으로는 △운영비, 냉·난방비, 양곡비 등 운영비 지원 35억원 △손해배상책임보험, 전기·소방안전점검 등 안전관리사업 1억원 △신·증축, 보일러 교체 등 환경개선사업 18억원 △경로당 행복도우미 지원 16억원 △스마트폰 사용법, 유튜브 활용 건강체조 등 여가선용 프로그램(비예산) 등이다. 시는 경로당 내 각종 안전사고와 재산상 피해에 대한 보상을 위해 전 경로당에 대해 손해배상책임공제보험에 가입했다. 또 역량 있는 행복도우미가 경로당에 정기적으로 방문해 여가활동 촉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경로당행복도우미는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복지 코디네이터, 생활방역을 포함한 경로당 코디네이터의 3중 역할을 수행한다. 이 사업은 행복도우미 45명을 채용해 각 경로당별로 전담하게 되며, (사)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에 민간위탁으로 실시된다. 주낙영 시장은 “지역 노인인구가 매년 증가함에 따라 생활복지공간으로서 경로당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며 “지역발전을 이끌어 오신 어르신들이 활력 넘치는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한 단계 높은 복지시책을 지속 발굴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시는 올 2월부터 12월까지 135억원의 예산을 들여 공익활동형, 사회서비스형, 시장형 등 3개 분야로 나눠 3588개의 노인일자리를 제공한다.
경북도는 고용노동부에서 실시한 2023년 청년도전 지원사업공모에 선정돼 국비 10억원을 확보했다. 도는 이 공모에 2년 연속 선정됐다. 이 사업은 최근 청년 비경제활동 인구 증가에 따른 청년고용 활성화 대책으로 2021년부터 자지단체를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구직단념청년을 발굴하고 구직의욕 고취 및 자신감 강화를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해 청년들의 노동시장 참여 및 취업 촉진을 지원한다. 경북도는 위덕대 산학협력단과 협약을 맺고 도내 구직단념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 구상 및 기존 사업들과 연계 지원방안을 검토하는 등 해당 공모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협조해왔다. 이번 공모선정으로 국비 10억원을 포함한 총 사업비 약 11억원을 구직단념청년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도내 구직 단념 청년 200명을 대상으로 밀착상담, 사례관리, 자신감회복, 진로탐색, 취업역량강화, 지역맞춤형 교육 등 40시간의 공통프로그램을 실시한다. 특히 올해는 공통 프로그램에 더해 외부 연계활동 및 자율 활동이 포함된 특화 프로그램이 신설됐다. 청년들은 단기 또는 중장기 프로그램을 선택 이수할 수 있고, 교육을 이수한 청년들은 50만원에서 최대 300만원의 인센티브 및 국민취업지원제도 등과 연계한 취·창업 지원을 받게 된다. 경북도는 참여자 모집 및 도내 시행중인 취업지원사업과 연계 지원하는 등 모든 행정적 지원을 할 계획이다. 또 운영기관인 위덕대 산학협력단은 2021년, 2022년 청년도전사업을 운영한 경험을 토대로 맞춤형 프로그램을 시행할 방침이다. 이 사업은 2월말부터 참여자를 모집한다. 도내 만18세 이상 만34세 이하의 구직단념 청년이면 누구나 참여 신청이 가능하다. 3월 1기를 시작으로 시즌제 운영을 통해 단기 75명, 중·장기 125명 등 총 200명에 대해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참여자 모집은 위덕대학교 산학협력단(경주시청년센터)에서 진행한다. 한편, 경북도는 지난해에도 구직단념청년 165명의 프로그램 이수를 이끌어냈으며, 2022 고용노동부 청년도전 지원 사업 성과평가 결과 ‘우수’기관으로 선정된바 있다. 차순애 경북도 청년정책과장은 “코로나19 장기화 등으로 구직의욕을 상실한 청년들이 이 사업을 계기로 취업의지를 다지고 성공적인 사회진입 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북도는 정부의 저소득층 난방비 지원 확대 대책과 더불어 도내 난방 취약계층이 빈틈없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에너지 사각지대 발굴에 나선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급등한 난방비 지원을 위해 겨울철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특별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에너지바우처 지원금을 당초 15만4000원에서 30만7000원으로 인상하고, 가스요금 감면 폭을 당초 9000원~3만6000원에서 1만8000원~7만2000원으로 인상했다. 이 같은 다양한 난방비 지원 시책이 있지만 노인, 장애인 등 관련 제도를 알지 못해 신청하지 못하는 사람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난달 30일 시·군 복지부서 국·과장 영상회의를 긴급 개최하고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이를 위해 도에서는 1월 30일부터 2월 10일까지를 ‘에너지 취약계층 집중 발굴 기간’으로 설정했다. 시·군별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에너지바우처, 도시가스, 전기요금 할인 미신청 가구를 전수 조사해 신청 안내문을 재발송하고, 가구별 전화·방문조사 등을 통해 신청을 독려해 지원 대상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또 정부 할인 대책과 별도로 기초생활보장(생계·의료·주거·교육) 수급권자 10만5000가구를 대상으로 가구당 10만원씩 긴급난방비 105억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이를 통해 유례없는 한파와 난방비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에너지 취약계층이 난방비 부담을 덜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경북도는 윤석열 정부가 지역주력산업 경쟁력 제고 및 산업거점 조성을 위해 추진하는 신규 국가산업단지 후보지 발표가 임박해짐에 따라 막바지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는 지난 대선에서 국정과제 및 지역정책공약에 반영된 사업 중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지역의 주력산업은 원자력과 수소, 백신산업으로 판단했다. 도는 지난해 10월 차세대 SMR 산업생태계 구축과 원전최강국 건설을 위한 경주SMR국가산단, 세계 1등 수소산업 육성을 위한 울진원자력수소 국가산단, 바이오 백신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안동바이오생명 국가산단을 후보지로 제출했었다. 이들 신규 국가산업단지 유치에는 전국 10개 시·도에서 19개소가 신청했다. 모두 지역의 강점을 내세우며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국토교통부의 전문가 평가와 심의를 거쳐 2월 중순 이후 최종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경북도의 후보지들은 지역의 산업특징과 연관기업, 공공기관 집적도, 인근지역과의 연계성이 높고 토지개발에 따른 규제지역이 없어 어느 때 보다도 최종선정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한편 경북도내 국가산업단지는 9개가 지정돼있다. 현재 2605개사가 입주, 고용인원 10만 명에 이르는 등 지역의 생산거점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철우 도지사는 “원자력, 수소, 백신산업은 모두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산업인 만큼 경북이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산업경제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헌화가 신라 제33대 성덕왕(702~737) 때 순정공(純貞公)이 명주(강릉) 태수로 부임하며, 바닷가에 행차하여 점심을 먹었다. 옆에는 마치 병풍이 바다에 둘려있는 듯한 석장(石嶂)이 있었는데, 높이가 천장으로 척촉화(躑躅花)가 무성히 피어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水路)가 그것을 보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꽃을 꺾어 바칠 사람이 누구인가?” 시종이 말하길 “사람이 이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고 하니, 모두 할 수 없다고 했다. 옆에서 어떤 노인이 암소를 끌고 지나가며, 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 가사를 지어 바쳤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수로부인」 독자님들께 꽃 한 송이를 바치옵니다. 2023년 계묘년에는 당신의 이야기가 멋진 노랫말로 만들어지길 기원합니다. 천 년 후 당신의 이야기는 역사가 될 것입니다.
나는 책을 버리는 것을 좋아한다. 책이 인테리어처럼 병풍 역할을 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래도 버리지 못하는 책들이 있다. 그 버리지 못하는 책들은 내 인생의 추억이 닮긴 책들이다. 내게 가장 많은 추억이 담긴 책은 ‘상실의 시대’와 ‘살아남의 자의 슬픔’이다. 오랜만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읽고 다시 한번 추억을 돌아보았으며 또 다른 감정을 가졌다. 역시 책이라는 것은 같은 책이라도 읽는 시기와 시점과 환경에 따라 느끼는 부분이 다르다. 예전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슬픔’에 더 많이 공감했다면 이제의 나는 ‘살아남은’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기운다. 이 책의 주인공은 20대의 ‘나’다. 격동기의 20대였고 고민과 반항의 20대였던 주인공과 또 다른 두 명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에 대한 증오와 반항 그리고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했던 ‘라라’. 결국 그녀는 꿈꾸던 유토피아에 다가가지 못한 채 자살을 통해 자신과 타협한다. 이러한 ‘라라’와는 달리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가는 ‘디디’. 그녀 역시 세상과 타협했다기보다는 그렇게 보임으로써 세상과 대립한다. 라라와는 다르지만 디디 역시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본인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타협하는 척 증오하고 반항한다. 사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이러한 청춘기를 겪는다. 나 역시 격동의 20대였고 학생운동을 하였으며 염세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당시 읽었던 이 책이 내게는 위로처럼 가슴에 와 닿았다.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었겠지만 라라처럼 열정적으로 살아가다 죽고 싶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 20대는 사회에 편입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으며 기득권 세력에 대해 불만이었고 불안이었다. 그렇게 많은 혼란을 겪고 나서야 나는 세상에 진입했다. 이 책에서 말하듯 나는 세상과 타협했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배웠다. 브레히트는 본인의 시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강한자가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슬퍼졌다” 물론 브레히트의 시대에는 이념을 지키느냐, 사회와 타협하느냐 라는 고민으로 삶과 죽음이 달라졌을 수 있다. 우리 시대에도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타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강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그냥 운이 좋아서 살아남는 것이다. 과도기 혹은 청년기의 나는 강해져야 된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의 나는 그냥 살아있으니 무엇을 할 것인가에 더 애착을 갖는다. 슬픔보다는 행복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할 때다. 이제 나는 행복하기 위해 산다. 그래서 내가 갖는 스트레스와 불안한 조건들을 최대한 단순화시킨다. 이 세상은 웃고 즐기다가 혹은 행복하게 살다 가기에도 짧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존재는 슬픔에 집중하다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즐겁게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이렇게 나를 바꾼 건 성철스님의 ‘산시산수시수’라는 짧은 6글자였다. 산을 산으로 보면 된다. 물은 물로 보면 된다. 40대의 나는 이제 이 책의 ‘살아남은’에 집중한다. 역설적으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보면서 살아남아서 행복함을 그려본다. 어쩌면 나의 40대는 나의 20대가 증오하고 혐오했던 그 기득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의 20대는 결국 40대가 되었고 치열했던 20대를 생각하며 남은 행복을 그려보게 된다. “광대한 우주, 무한한 시간, 이 태양계에 내려와서 지구라는 행성도 제대로 관찰하지 않고 간다는 것을 억울한 일이잖아요” 디디의 말이다. 브라이언 그린의 ‘앤드오브타임’에서처럼 영원한 것은 없다. 여자 주인공 디디의 말처럼 광활한 우주, 무한한 시간 앞에서 우리는 무슨 큰 의미를 담을 것인가? 내일의 나는 이 세상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을 더욱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음을 향해 간다. 누구나 죽는다. 물론 우리가 아는 모든 생명체 중 죽음을 또는 죽는다는 것을 아는 존재는 인간 뿐이기도 하다. 이젠 살아남아서가 아니라 살아있어서, 슬픈 게 아니라 행복해야 한다. 이재훈 씨 : 경주고와 홍익대학교를 나와 서울에 살고 있다. 신세계센터럴시티에 근무하는 직장인.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살면서도 주변 사람들을 포용하는 따듯한 가슴을 가졌다. 경주중고등학교 서울동창회 간사로 오랜 기간 봉사하며 고향과 고향사람 사랑에도 힘쓰고 있다.
경주시평생학습가족관은 ‘2023년 상반기 평생학습 강좌’ 수강생을 모집한다. 직업능력교육 19개, 문화예술교육 45개, 인문교양교육 17개, 외국어교육 18개 등 총 99개 강좌에 1646명을 모집한다. 교육대상은 만 19세 이상 경주시민이다. 먼저 2월 6일엔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 가족 △보훈대상자 △장애인 △18세 이하 자녀 2명 이상 가정 △경북도 자원봉사증 소지자 등 우선 대상자들의 방문 및 인터넷 접수가 시작된다.이어 8일 10시부터는 일반인들의 인터넷 접수가 시작되며, 모든 강좌의 최종 신청기간은 3월 10일 오후 5시까지다. 강좌 운영은 3월 2일부터 6월 21일까지 강좌별 16주로, 경주시평생학습가족관에서 진행된다. 수강신청은 인터넷(www.gyeongju.go.kr/gjlll/main)에서 선착순 접수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경주시청 또는 평생학습 가족관 홈페이지를 참고하거나 평생학습가족관으로 문의하면 된다. 경주시 관계자는 “지난해 평생학습에 참여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올해 다양한 강좌를 개설했다”며 “앞으로도 시민들이 원하는 강좌를 제공해 평생학습 기회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간 100만명 이상이 찾는 대릉원이 이르면 오는 5월부터 무료 개방된다. 경주시는 동부사적지, 황리단길 등 주요 관광지와 도심을 잇는 대릉원을 무료로 개방하기 위한 행정절차를 밟고 있다. 대릉원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정점이었던 2021년에도 108만1410명이 입장할 만큼 경주를 대표하는 사적지다. 무료 개방으로 황리단길과 동부사적지를 찾는 관광객들이 대릉원을 통해 도심권역으로 보다 쉽게 유입될 것으로 기대된다. 경주시는 지난 2021년부터 대릉원 무료 개방을 위해 문화재청과 협의를 진행해왔다. 그러면서 대릉원 정문과 북문 등 2개 출입문 외 대릉원 동편에 출입문을 추가로 설치를 완료했다. 경주쪽샘 방향 돌담길에 출입문인 삼문을 지난해 9월 착공해 공사를 마무리했다. 또 대릉원 무료 개방의 일환으로 천마총 매표소 설치를 오는 3월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이어 대릉원 관람료 무료를 골자로 한 ‘경주시 사적지관람료 징수 및 업무위탁 관리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추진 중이다. 개정안은 오는 3월 경주시의회 소관 상임위에 상정될 예정으로 본회의를 거쳐 최종 확정될 전망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현행 성인 3000원, 12세 이하 어린이 1000원의 대릉원 관람료가 모두 폐지된다. 다만, 대릉원 내 천마총은 문화재 보존과 관리 효율을 위해 관람료(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를 징수한다는 방침이다. 대릉원 무료 개방은 개정안이 확정 후 오는 5월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한편 경주시가 2020년 12월 9일부터 16일까지 실시한 ‘대릉원 개방에 대한 시민의견 조사’에서 응답자 2357명 중 적극 찬성 913명, 찬성 429명 등 총 1342명(56.9%)이 찬성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보 제25호인 ‘태종무열왕릉비’는 삼국통일의 초석을 쌓고 백제를 멸망시킨 뒤 전쟁 중에 세상을 떠난 태종무열왕의 능비다. 통일신라 석비를 대표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석비의 형식이나 비액(碑額)의 새김이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것으로, 이후 이를 본보기로 우리나라 석비의 형식이 전개됐기 때문이다. 이런 형식은 고려 초까지 우리나라 석비의 전형으로 여겨져 주요한 전통이 됐다. 더불어 이 석비는 왕릉의 주인공이 무열왕이란 사실을 밝혀준 구체적인 증거가 됐다. ◆귀부·이수 갖춘 첫 신라시대 석비 삼국 항쟁이 본격화되던 7세기 한반도는 동북아 국제전의 현장이었다. 백제와 고구려, 여기에 왜까지 끌어들여 신라를 포위한 가운데 신라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당나라와의 군사 동맹에 사활을 걸게 된다. 이러한 한반도의 정세 변화 속에 당나라와의 외교 협상을 주도했던 이가 김춘추(무열왕)였다. 648년 선덕왕의 명으로 당으로 향한 김춘추(무열왕)는 당나라가 신라와 손을 잡을 수 있도록 상당히 많은 제안을 선제적으로 하게 된다. 당의 연호를 쓰고, 당의 복식을 수용하는 등 거의 모든 외교 영역에서 당의 제도를 받아들이며 군사적 동맹을 맺게 된다. 이처럼 무열왕이 활동한 시기는 삼국의 항쟁 가운데 가장 치열했고 전략적이었으며, 외교적으로 복잡한 함수를 지닌 때였다. 따라서 그는 이전과 다른 형태의 새로운 전장인 ‘외교’라는 무대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흔히 무열왕을 ‘태종무열왕’으로 칭하는데, 그가 죽은 뒤 얻게 된 ‘태종’(太宗)이라는 칭호는 창업에 버금가는 위업을 달성했다는 의미와 함께, 기존의 불교식 왕호를 버리고 중국식 묘호를 받아들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시기 신라에서는 묘제 양식에서 이전과 다른 변화가 나타난다. 능묘를 조성할 때 피장자의 업적을 담은 비석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 시작이 무열왕릉 능비다. 이후 문무왕릉을 비롯해 성덕왕릉 등에 비석이 세워진 점으로 미뤄, 이 시기 능비를 세우는 것이 보편화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비석은 왕릉에만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동시대를 살았던 김유신의 묘에도 비석이 세워졌고, 김인문의 묘에도 비석이 있다. 삼국통일 직후인 이 시기 석비는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갖추기 시작한다. 귀부는 비석을 받치는 거북 모양 받침돌이고, 이수는 용이 조각된 비석 덮개돌이다. 이후 ‘귀부-비신(碑身)-이수’를 갖춘 석비가 전형적 양식으로 정착된다. 이 같은 방식도 중국 당나라의 영향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이 또한 무열왕릉비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 시간의 흐름과 문화의 차이에 따라 변용되고 신라화된다. 무열왕릉비는 귀부와 이수를 갖춘 최초의 신라시대 능비다. 비신은 파손돼 사라지고 없지만 귀부와 이수는 초기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귀부는 머리를 앞으로 길게 뻗고 있으며 목의 위아래에 화려한 보상화문을 장식해 신성함을 표현했다. 귀부엔 돌출된 발은 길게 사실적으로 표현했고, 등에 새겨진 귀갑문은 여러 겹의 육각형 문양이 겹쳐지도록 했다. 비좌 주변에는 연화문을 새겨 비신에 대한 공양의 의미를 더했다. 이수는 좌우에 3마리씩 나란히 배치했는데, 아래를 향하고 있으며 다리를 모아 보주를 받치도록 했다. 이러한 이수조각 기법은 중국이나 초기 신라 석비의 전형적 특징이라고 한다. 귀부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머리를 앞으로 길게 내밀고 있는 점과 여러 겹으로 표현된 귀갑문이다. 그리고 이수에서 나란히 아래를 향하고 있는 용의 표현도 특이하다. 이런 표현 기법은 초기에 조성된 귀부와 이수의 전형적 특징이다. 이 석비는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629~694)이 직접 짓고 쓴 글씨로 비문을 새겼다. 이수 앞면에 새겨진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고 적힌 명문은 비의 주인공을 정확하게 알게 하는 점에서 중요하다. 석비는 661년 6월 무열왕이 사망한 때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건립됐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귀부와 이수가 마련된 석비의 시작 시기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미가 크다고 학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비석 몸통이 사라져 비문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비석은 퇴계 이황(1501~1570) 당시만 해도 비록 훼손되긴 했으나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퇴계가 경주 유생들이 그 비석을 깨뜨려 벼루를 만들어 쓴다는 소문을 듣고 편지로 이를 꾸짖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사진 자료에는 이미 몸통이 없어진 상태였다는 점으로 미뤄 조선 중기나 후기쯤 깨져 파편화된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비석 명문 통해 피장자 규명된 무열왕릉 무열왕릉은 당대 만들어진 비석을 통해 피장자가 확실하게 인정이 되는 신라왕의 무덤이다. 이처럼 확실한 왕릉으로 인정되다 보니, 무열왕릉은 신라왕릉의 위치 비정에 있어 기준점이 되고 있다. 무열왕릉의 장지 기록과 관련해 ‘삼국사기’는 ‘영경사(永敬寺)의 북쪽’이라고 기록했고 ‘삼국유사’는 ‘애공사(哀公寺) 동쪽에 장사를 지내고 비석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추사 김정희는 영경사 북쪽과 서악리를 동일하게 보고, 서악동 고분군 중 하나를 진흥왕릉으로 추정했으며, 고(故) 이근직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나 김용성 박사 등 연구자들도 애공사와 영경사를 동일한 사찰, 혹은 시간의 변화에 따라 명칭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무열왕릉의 외형은 원형 봉토분으로 능의 주위로 괴석이 튀어나와 있는데, 이는 봉토의 흙이 무너져 내리면서 호석 일부가 돌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면 무열왕릉을 중심으로 뒤로는 서악동 고분군으로 불리는 4기의 무덤이 일렬로 조성돼 있고, 그 반대쪽으로는 김양의 묘와 김인문의 묘가 있다. 무열왕릉의 배장묘(陪葬墓)로 추정되는 김양과 김인문의 묘는 현재 도로로 인해 단절된 모습이지만, 본래 하나의 능역으로 조성됐다고 한다. 반대쪽 4기의 무덤 주인공은 무열왕의 선대 조상인 법흥왕, 진흥왕, 진지왕, 문흥대왕(무열왕이 즉위하던 해 아버지 용춘을 문흥대왕으로 추봉)일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개별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으나 이들 4명이 이곳 무덤의 주인공이란 것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이런 무덤의 모습은 삼한 통일의 대업을 문무왕과 관련이 있다. 이런 연관성을 이해하기 위해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죽은자(무열왕)의 시각에서 보지 말고, 무덤을 조성한 사람(문무왕)의 시각에서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사실 서악동 고분군에 무열왕릉을 더한 5기의 무덤은 중국의 묘제와 관련이 있다. 중국 ‘예기’(禮記) 왕제편(王制篇)의 천자 7묘, 제후 5묘에 대한 규정을 따른 것으로, 유교이념에 의거한 정치·문화개혁을 위해 무열왕이 처음 기획했다. 무열왕은 당과의 관계를 위해 스스로 제후국을 자처하며 5묘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의 아들 문무왕이 지금의 자리에 아버지 무열왕의 무덤을 쓰면서 완성됐다. 이 시기 5묘제 도입은 통일 이후 ‘새로운 왕실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주보돈 교수는 “진골 출신 왕위계승의 정당성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시대가 출범한다는 것을 알리려는 문무왕의 선언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김운 역사여행가
경주에서 일을 마치니 점심때다. 혼밥을 해야하는 데 어디서 먹을까? 생각 중에 흥무공원에 있는 ‘금산재 칼국수집’이 떠올랐습니다. 김유신 장군묘 근처에 있는 경주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에요. 맛에 대한 끌림보다는 몇 해 전 경주에 근무할 때 들리던 집으로, 그간 어떻게 변했을까하는 궁금에 더 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송화방지 비석, 연리지 나무 등 역사 이야기꺼리도 보고 싶었고요. 더욱이 오늘 봄날 같은 따스한 날씨도 내 발길을 산골 나들이로 향하는데 일조를 했습니다. (1)송화산 아래 ‘금산재(金山齋) 칼국수집’에서 칼국수 집 건물 주변은 옛과 같으며, 대문 앞쪽 채소밭은 잔디밭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흥무공원 주차장에서 내려 철로 지하 굴다리를 통해 맛집에 가는 코스도 전과 마찬가지. 식당 대문으로 들어가니 큰 마당에 대형 평상과 테이블들이 놓여있습니다. 칼국수, 부추전, 수육, 막걸리가 주된 메뉴였어요. 값도 시중보다 저렴한 편으로 차림표 아래 ‘정성을 가득 담았습니다’라고 예쁘게 적혀있는 글귀에서, 주인장의 맛갈스런 손맛과 다정한 친절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2)김유신 장군가의 원찰, 송화방 비석 이야기 칼국수 집 뒤편에 ‘송화방지(松花坊址)’라고 새겨있는 비석도 그대로 있습니다. 「김유신 장군」 가문의 원찰 터 자리라고 표시되어 전해오는 비석입니다. 삼국유사 ‘김유신 조’ 편에 의하면 김씨 집안 「재매부인(財買夫人)」이 죽자, ‘청연상곡’ 골짜기에 제사 지내고, ‘재매곡’이라 불렀고, 해마다 봄이 되면 집안의 남녀들이 여기서 잔치를 열었는데 이때쯤 송화가루가 골[谷] 안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김유신 장군이 돌아가신 후 재매부인이 여기에 절을 짓고, 출가하여 「송화방」이라고 이름 지어 김씨가문의 원찰로 삼았고, 장군의 명복을 빌며, 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고 전해오는 곳입니다. (3)금산재 연리지 나무 송화방지 비석 옆에 100년쯤 되는 큰 팽나무 연리지 한그루가 잎을 죄다 떨어트리고 서 있습니다. 그 앞 안내판에, 이 나무는 한가지 소원은 들어주는 나무로, 왼쪽을 돌면 아들을 낳을 수 있고, 오른쪽을 돌면 딸을 낳게 해준다는 전설이 있는 나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남녀가 손을 잡고 같이 돌면 ‘100년 해로’ 한다고도 해요. 아마도 김유신 장군에 대한 재매부인의 간절한 사랑의 기운이, 송화방 주변에 서려 있어 그런 것 아닌가 생각돼요. 튼튼한 가지들을 불끈 안고 기운차게 버티고 서 있네요. 봄이 되면 젊은 부부들이 많이 찾아와, 이 사랑나무인 연리지를 보며 데이트를 한다고 합니다. (4)식당 아줌마의 손맛과 후한 인심 들깨 칼국수와 부추전을 먹고 카드로 결제를 하려고 하니, ‘손님 현찰로 주면 좋겠습다’라고 하며 ‘모두 그렇게 받습니다’라고 한다. 현금이 없어 난감해하자, 아주머니 말이, ‘그럼 다음 오실 때 주시든지, 아니면 계좌이체 하면 된다’고 하며 계좌번호가 적힌 명함을 줍니다. ‘지금은 그냥 먹고 가고, 나중에 밥값을 주면 된다’는 외상허락인데, 오히려 그쪽에서 상냥스럽고 느긋한 표정입니다.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해 어물거리며 칼국수 집을 나왔어요. 그리고 곧장 은행 ATM기를 찾아 시내로 차를 몰았습니다. 서천(西川) 물길 따라 불어오는 강바람이 모처럼 겨울 훈풍이 되어 어정쩡하던 내 기분을 부드럽게 감싸줍니다. 이야기가 있는 옛집에서 구수한 칼국수 맛과 식당 아줌마의 넉넉하고 유연한 인심에, 그리고 봄의 기지개까지 보았으니, 오늘 여기 잘 왔다 싶습니다. 이제 곧 봄이 되면, 이 송화산(松花山) 계곡에는 송화가루 향기 가득해지고, 벚나무 울창한 흥무대로에는 흰 꽃잎이 만발, 흩날릴 것입니다. 역사 있는 절터에 사랑 짙은 나무와 좋은 맛집이 있으니, 이보다 더한 힐링 장소가 또 있을까? 봄이 기다려집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아키타견(秋田犬)은 아키타현 오다테시(秋田県 大館市)가 고향인 일본 토종개이다. 태어 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키타견이 도쿄대학의 농학부 우에노 히데사부로(上野 英三郎) 교수집으로 분양되었고, 하치코란 이름을 가진 아키타견은 출퇴근을 하는 우에노 교수를 시부야 역 앞까지 마중하는 것이 일과였다. 어느 날 우에노 교수가 학교에서 돌연 세상을 떠났고, 아무것도 몰랐던 하치코는 시부야역 앞에서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계속 기다리는 충견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게 되고, ‘하치코(忠犬ハチ公) 이야기’란 이름으로 할리우드 영화가 되어 세계적 주목을 끌었다.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하치코가 태어난 고향인 아키타현의 오다테시(大館市)에서 아키타견을 키우는 동호인들이 중심이 되어 오늘날의 아키타견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현재 오다테시(大館市)는 아키타견을 만날 수 있는 도시가 되었고, JR오다테 역 앞에 아키타견 동상을 세우고, 아키타견을 명예역장으로 모시는 등 관광지의 랜드마크로 변모되었다. 또 아키타현 오다테시에는 ‘아키타견 보존회(1927년 설립)’의 본부가 있다. 보존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1977년에 회관을 건립하고, 박물관을 운영하여 혈통보존과 보급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오다테시는 아키타견의 성지가 되었다. 아키타견((秋田犬)은 1920년부터 천연기념물 지정을 위한 조사가 실시됐지만, 투견의 영향과 혈통이 고정되지 않아 천연기념물 지정이 보류되었다. 1927년에 오다테 촌장의 주도로 아키타견 보존회를 만들어, 표준 체형과 특징, 혈통을 고정하는 방식의 보존 운동을 하여 1931년에 일본 견종으로는 처음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태평양 전쟁시에 군용견으로 사용하기 위해 아키타견과 셰퍼드를 인공 교배하면서 순수 혈통이 멸종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아키타견 보존회의 전문적인 노력으로 혈통을 복원하여, 1947년에 제1회 전람회를 개최하였고, 1949년에는 자체 회보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아키다 보존회는 2015년에 공익사단법인으로 변경하고, 2017년 8월에 아키타현 오다테시(秋田県 大館市)에 ‘아키타견 만남의 장소’를 개관하여 언제든지 아키타견를 만날 수 있게 하였다. JR오다테 역 근처에는 2019년 5월에 「아키타견의 마을(秋田犬の里)」을 만들어 새로운 관광지가 되었다. 아키타견을 만날 수 있는 체험장과 아키타견 박물관과 아키타견 관련 상품이나 특산품을 파는 기념품 코너가 있다. 1년 동안 2만1000여명이 다녀간다. 현재 아키타견 마을 내 위치한 ‘지역 활성화 협력 사무실’에서는 아키타현의 공항, 역, 호텔 등지에 아키타견이 나온 포스터를 만들어 보급하고, 아키타현의 관광 홍보 대사가 되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일본의 많은 지방자치단체는 2009년부터 ‘지역 활성화 협동조합’ 정책과 관광진흥, 상품 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왔다. 오다테의 지역 활성화 협동 조합원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아키타견 홍보이다. 조합원은 아키타견을 체험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업무 외에도 SNS를 관리하여 아키타견을 통해 지역 관광을 활성화 시키는데 필요한 지원을 하고 있다. 1953년에 사단법인을 조직하였고, 현재는 전국적으로 지부가 설치되어 있다. 최근엔 해외 지부도 활발하게 개설하고 있다. 공익사단법인으로 탈바꿈한 2015년부터 정부의 재정지원에 의지하지 않고 자체 회비와 후원행사, 자원봉사 등으로 조직을 꾸려가고 있다. 경주개 동경이의 자리매김은 유행에 들떠서 개를 살아있는 장난감이나 경제성 동물로 취급하는 어리석음을 사전에 막는 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천연기념물은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동식물로 고유혈통의 복원을 통해서 혈통고정을 완료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존과 아울러 지역의 관광 상품으로 거듭나야 한다. 학술적 가치와 문화재적 가치로 자리매김을 하여 재창출된 후에는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요소가 재탄생될 것이다. 절차가 바뀌어 결과만 보는 무리한 행정적 요구는 소탐대실이 될 것이다. 최석규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경주신문 독자위원
로시니, 도니체티, 벨리니가 일궈놓은 벨칸토 오페라는 여주인공 1인에 의존하는 프리마돈나 오페라였다. 바로크 시대에 파워풀한 고음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카스트라토를 대체한 이는 초절기교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했던 ‘소프라노’였다. 워낙 고난이도의 성악 테크닉이 필요하고, 성대를 망칠 수 있는 위험까지 안고 있던 ‘그녀’들이었지만, 결국 최고의 자리로 날아올라 한 시대를 풍미했다. 벨칸토 시대 최고의 소프라노는 단연 주디타 파스타(Giuditta Pasta/1798-1865)였다. 그녀는 벨칸토 삼총사(로시니, 도니체티, 벨리니)의 뮤즈였다. 그들은 그녀를 위해 작곡했고, 그녀는 그들과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흥행이 파스타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파스타의 콧대는 더 높아질 수 없을 정도도 높아졌고, 디바의 갑질은 필연이었다. 걸그룹 ‘핑클’의 메인보컬로 데뷔하여 뮤지컬 스타가 된 옥주현의 갑질이 최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제작사의 캐스팅에 관여하여 특정 배우가 뽑히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옥주현의 티켓파워가 워낙 세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벨칸토 오페라 시대에도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났다. 특히 파스타는 초고액의 캐런티를 받으면서 극장의 경영과 작품 선정, 그리고 캐스팅까지 관여한 것으로 악명 높다. 벨칸토 오페라는 롱런하지 못했다. 부르는 사람도 힘들었고, 듣는 사람도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카스트라토가 내리막길을 걷던 상황과 너무 흡사하다. 벨칸토 오페라가 장기였던 로시니가 이른 나이에 은퇴하고, 최고의 성악기교를 선보였던 파스타 역시 일찌감치 은퇴를 선언한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사실주의 베리스모 오페라 앞에서 아예 종적을 감추었다.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벨칸토 오페라를 부활시킨 이는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1923-1977)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프라노로 불리는 칼라스는 본인의 성악역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장르가 벨칸토 오페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19세기의 파스타처럼 20세기의 칼라스도 벨칸토 오페라의 여주인공 역을 섭렵했다. 칼라스는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의 타이틀 롤을 특히 사랑했다. 칼라스의 라이벌 레나타 테발디(Renata Tebaldi/1922-2004)를 제치고 최고의 디바로 오르게 한 오페라가 바로 노르마이기 때문이다. 벨칸토 오페라는 칼라스를 이어 조안 서덜랜드(Joan Sutherland/1926-2010)에 의해 더욱더 풍성해졌다. 이탈리아 출신이 아닌 그리스와 호주 출신의 소프라노가 벨칸토 리바이벌로 20세기 디바가 되었다.
문루(門樓)는 출입하는 문 위에 사방을 볼 수 있도록 다락처럼 지은 집을 말한다. 옥산서원의 문루 무변루(無邊樓)는 서원 안은 물론이고 서원 밖의 맑은 계곡과 산 그리고 달빛이 비치는 아름다운 산천의 경관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지어졌다. 옥산서원(玉山書院)은 경주부의 최초 사액서원으로, 1572년 선조 때 경주 부윤 이제민(李齊閔, 재임1571.8~1574.2)과 도내 유림들의 공의로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선생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서악의 향현사(鄕賢祠)에 있던 위패를 모셔와 1574년 선조 7년에 ‘옥산’이라 사액 받았다. 회재 선생은 1491년 경주부 양좌촌(良佐村)에서 태어나 1553년 유배지인 평안도 강계(江界)에서 돌아가셨다. 어려서 외삼촌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1463~1529)에게 수학하였고, 우재는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 송재(松齋) 손소(孫昭,1433~1484)의 둘째 아들로 회재는 점필재학과 우재학을 전수 받았으며, 그의 사상은 훗날 안동의 퇴계 이황에게 이어져 영남학의 중심선상에 있었다. 이후 1610년 광해군 때 김굉필ㆍ정여창ㆍ조광조ㆍ이황 등과 함께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중국 송나라 주자(朱子)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이 서원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는 조선 중종년간 1541년에 풍기군수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성리학을 도입한 이곳 출신의 유학자인 회헌(晦軒) 안향(安珦,1243~1306) 선생을 모시는 문성공묘(文成公廟)를 세워 배향해오다가 1543년에는 유생교육을 겸비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최초로 건립하였고, 이후 1549년 황해도관찰사가 되어 해주에 수양서원(首陽書院)을 건립하였기도 하였다. 중국의 서원은 관인양성을 위한 준비기구의 성격이 강하였고, 조선의 서원은 학자의 장수처(藏修處) 그리고 사림의 취회소(聚會所) 기능으로 정치적·사회적 기구의 성격이 강하였다. 하지만 이는 훗날 서원폐단의 빌미가 되기도 하였다. 현재 옥산서원의 문루 무변루는 정확히 누가 제명을 지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소재(穌齋) 노수신(盧守愼,1515~1590)은 27세 때인 1541년(중종 36) 회재에게 학문적 영향을 받았고, 이후 「옥산서원 제액찬(諸額贊)」에서 體仁廟․求仁堂․兩進齋․偕立齋․無邊樓․亦樂門 등 편액에 대해 찬하였으며, 옥산14영(玉山十四詠)을 지어 풍광을 읊조렸다. 그리고 관찰사로 부임하는 졸옹(拙翁) 홍성민(洪聖民,1536~1594)에게 보낸 시에 “옥산에 유업이 있는데 어진 자손은 굶주리고 도원엔 서책이 없어 학도들이 걱정한다네(玉山有業賢孫餓 道院無書學子憂)”라며 회재의 자손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도우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였으니, 아마도 옥산과의 인연이 짐짓 깊어 보인다. 주자의 「육선생화상찬(六先生畵像讚)」에서 주돈이를 가리켜 “맑은 바람 밝은 달빛은 가없고, 뜨락의 풀은 파랗게 어우러졌네(風月無邊 庭草交翠)”라 하였고, 황정견(黃庭堅)의 「염계시서(濂溪詩序)」에서는 “용릉의 주무숙(茂叔)은 인품이 매우 고상하여 가슴속이 깨끗해서 마치 비 갠 뒤의 온화한 바람과 깨끗한 달빛 같다(舂陵周茂叔 人品甚高 胸中灑落 如光風霽月)”라며 주돈이의 인품과 기상을 달에 비유해 표현한 데에서 무변(無邊)의 뜻을 취하였다. 즉 무변은 풍경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는 말로, 풍월무애(風月無涯)라고도 한다. 무변루 자료로는 학고(鶴皐) 이암(李壧,1641~1696)의 「옥산서원무변루기」 등이 있다. 허균의 아버지이자 경주부윤을 지낸 초당(草堂) 허엽(許曄,1517~1580)이 1574년에 지은 「옥산서원기」를 보면, “누는 ‘납청(納淸)’이라고 명명하였다. 맑은 것은 기운이고 기운은 양(陽)이니, 이 누에 오르는 자가 맑은 기운을 받아들여 양을 기르고, 양을 길러 도(道)가 모인다면 제대로 되었다고 할 것이다”라고 기록한다. 즉 1574년 당시에는 문루를 납청루(納淸樓)로 기록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옥산서원이 지어진 1574년 기록에는 문루를 납청루로 불렀고, 이후 노수신 등 문인들의 글에서 무변루로 불린 정황이 있다. 누가 언제 문루의 편액을 납청에서 무변으로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의 맑은 기운을 받아들이고 아름다운 풍광을 표현한 의미만은 변함이 없다. 다가오는 봄철에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옥산서원 문루에 올라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조선성리학의 이론과 심(心)·성(性)·정(情) 심성론 가운데 영남학파 주리론(主理論)의 유교적 공부를 배워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