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니, 도니체티, 벨리니가 일궈놓은 벨칸토 오페라는 여주인공 1인에 의존하는 프리마돈나 오페라였다. 바로크 시대에 파워풀한 고음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카스트라토를 대체한 이는 초절기교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했던 ‘소프라노’였다. 워낙 고난이도의 성악 테크닉이 필요하고, 성대를 망칠 수 있는 위험까지 안고 있던 ‘그녀’들이었지만, 결국 최고의 자리로 날아올라 한 시대를 풍미했다. 벨칸토 시대 최고의 소프라노는 단연 주디타 파스타(Giuditta Pasta/1798-1865)였다. 그녀는 벨칸토 삼총사(로시니, 도니체티, 벨리니)의 뮤즈였다. 그들은 그녀를 위해 작곡했고, 그녀는 그들과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흥행이 파스타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파스타의 콧대는 더 높아질 수 없을 정도도 높아졌고, 디바의 갑질은 필연이었다. 걸그룹 ‘핑클’의 메인보컬로 데뷔하여 뮤지컬 스타가 된 옥주현의 갑질이 최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제작사의 캐스팅에 관여하여 특정 배우가 뽑히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옥주현의 티켓파워가 워낙 세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벨칸토 오페라 시대에도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났다. 특히 파스타는 초고액의 캐런티를 받으면서 극장의 경영과 작품 선정, 그리고 캐스팅까지 관여한 것으로 악명 높다. 벨칸토 오페라는 롱런하지 못했다. 부르는 사람도 힘들었고, 듣는 사람도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카스트라토가 내리막길을 걷던 상황과 너무 흡사하다. 벨칸토 오페라가 장기였던 로시니가 이른 나이에 은퇴하고, 최고의 성악기교를 선보였던 파스타 역시 일찌감치 은퇴를 선언한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사실주의 베리스모 오페라 앞에서 아예 종적을 감추었다.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벨칸토 오페라를 부활시킨 이는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1923-1977)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프라노로 불리는 칼라스는 본인의 성악역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장르가 벨칸토 오페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19세기의 파스타처럼 20세기의 칼라스도 벨칸토 오페라의 여주인공 역을 섭렵했다. 칼라스는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의 타이틀 롤을 특히 사랑했다. 칼라스의 라이벌 레나타 테발디(Renata Tebaldi/1922-2004)를 제치고 최고의 디바로 오르게 한 오페라가 바로 노르마이기 때문이다. 벨칸토 오페라는 칼라스를 이어 조안 서덜랜드(Joan Sutherland/1926-2010)에 의해 더욱더 풍성해졌다. 이탈리아 출신이 아닌 그리스와 호주 출신의 소프라노가 벨칸토 리바이벌로 20세기 디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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