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강농협은 이상철 후보, 정운락 후보, 최덕병 후보, 권용환 후보 각각 4명의 후보자가 등록을 마쳐 격전이 예상된다. 한편, 등록을 마친 후보자들은 23일부터 선거 전날인 3월 7일까지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투표는 오는 3월 8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각각 지정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신경주농협은 김후봉 후보, 김병철 후보 각각 2명의 후보자가 등록해 양자대결 구도를 이뤘다. 한편, 등록을 마친 후보자들은 23일부터 선거 전날인 3월 7일까지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투표는 오는 3월 8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각각 지정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불국사농협은 박도훈 후보, 김영도 후보 각각 2명의 후보자가 등록해 양자대결 구도를 이뤘다. 한편, 등록을 마친 후보자들은 23일부터 선거 전날인 3월 7일까지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투표는 오는 3월 8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각각 지정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동경주농협은 김재호 현 조합장이 단독 입후보했다. 한편, 등록을 마친 후보자들은 23일부터 선거 전날인 3월 7일까지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투표는 오는 3월 8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각각 지정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내남농협은 이연우 후보, 기원서 후보, 박재오 후보 3명의 후보자가 등록했다. 한편, 등록을 마친 후보자들은 23일부터 선거 전날인 3월 7일까지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투표는 오는 3월 8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각각 지정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경주축협은 김규현 후보, 하상욱 후보 각각 2명의 후보자가 등록해 양자대결 구도를 이뤘다. 한편, 등록을 마친 후보자들은 23일부터 선거 전날인 3월 7일까지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투표는 오는 3월 8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각각 지정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경주시수협은 전철호 후보, 이영웅 후보 각각 2명의 후보자가 등록해 양자대결 구도를 이뤘다. 한편, 등록을 마친 후보자들은 23일부터 선거 전날인 3월 7일까지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투표는 오는 3월 8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각각 지정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경주시산림조합은 신용덕 현 조합장이 단독 입후보 했다. 한편, 등록을 마친 후보자들은 23일부터 선거 전날인 3월 7일까지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투표는 오는 3월 8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각각 지정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강동농협은이종해 현 조합장이 단독 입후보 했다. 한편, 등록을 마친 후보자들은 23일부터 선거 전날인 3월 7일까지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투표는 오는 3월 8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각각 지정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경주신문이 2023년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사’로 선정되며 6년 연속 지원을 받게 됐다. 올해 1월 제7기로 새로 출범한 지역신문발전위원회(위원장 김찬영·이하 지발위)는 17일 2023년도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사 선정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경주신문을 비롯한 지역신문 주간지 50개사와 일간지 32개..
삶을 조각하다 상황에 따라 재료를 선택하고 구상을 한다. 결과물에 대한 긴장과 설렘으로 작업에 몰입한다. 그리고 평온함을 느낀다. 나에게 조각은 삶이다. 인간에 대한 탐구이며,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이다. 진중하면서도 가볍게 실재를 재현하는 작업을 통해 삶을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조각해 나간다.
2001년 6월 경주 백률사에서 도난당한 지장탱화가 약 22년 만에 경주로 돌아온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 지장탱화는 가로 245cm, 세로 277cm 크기다. 탱화에는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10명의 시왕 등 지장보살의 주요 권속이 그려져 있다. 1900년대 작품으로 비지정문화재다. 지장탱화는 지난 2020년 7월 도난문화재 은닉처에서 발견됐고, 그동안 법원에서 관련 재판이 진행돼 지난해 9월 2심 선고에서 원소유자로 소유권이 인정됐다. 이에 따라 올해 내로 원 소재지인 백률사 또는 본사인 불국사로 귀환할 예정이라고 한다. 발견 당시 포항 보경사, 구례 천은사, 구례화엄사, 순천 선암사 등 14개 사찰의 도난 문화재도 32점도 함께 나왔다. 백률사 지장탱화를 찾은 것은 대한불교조계종과 경찰청, 문화재청이 지난 2014년 10월 ‘불교문화재 도난 예방 및 회수를 위한 협약’을 맺고 공조체제를 갖춘 덕분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측은 백률사 지장탱화가 22년 전 도난 후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일부 손상된 상태라고 밝혔다. 법당 내 탱화를 칼로 도려내 훔쳐가는 바람에 장황이 없어 경주로 와서도 곧바로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문화재 지정은 향후 재평가 후 지정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주에는 가치 있는 문화재들이 도난이 과거부터 잇따랐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경주지역 도난문화재 정보를 검색하면 1993년부터 모두 29건의 지정 또는 비지정 문화재가 도난당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인 기림사 감지은니묘법연화경 등 2점과 사적 제311호 창림사지 내 ‘석탑재’ 2점 등 중요문화재도 사라져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도난 시기는 1990년대 6건, 2000년~2009년 사이 18건으로, 문화재 관리가 지금보다 허술했을 시기에 집중됐다. 도난 문화재를 현재 기준으로 재평가한다면 비지정문화재들도 지정문화재로 충분히 승격 가능하다. 하지만 도난 후 부적정한 처리로 인해 지난 2020년 백률사 지장탱화와 함께 발견된 일부 문화재는 경화돼 펼쳐지지 않거나 덧칠 등으로 훼손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난 문화재를 찾는 노력이 시급해지는 이유다. 문화재당국은 도난 문화재를 찾기 위해 보다 근본적이고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오는 11월경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 결정을 앞두고 경주시가 동분서주하고 있다. 경주시는 지난 2021년 7월 2025 APEC 정상회의 유치에 공식 도전장을 내밀었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달 27일 ‘APEC 정상회의 경주시 유치지원위원회’ 발대식에 이어 경북도 등 유관기관과의 실무회의를 열고 유치 성공전략을 논의하는 등 경주 유치에 전력을 쏟고 있다. 16일엔 서울에서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유치 민간추진위원회도 발족하고 유치 당위성을 알리는데 주력하기로 했다. 오는 3월엔 APEC 경주 유치 범시민추진위원회를 출범해 범 시·도민 유치의지를 결집시키고, 대정부 유치활동도 전방위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1989년 출범한 APEC은 미국, 일본, 호주, 러시아 등 아시아태평양 연안 국가 21개국의 국가 정상 협의체다. 대한민국에서는 2005년 부산 정상회의 이후 20년 만에 다시 열린다. 정부는 오는 11월경 개최도시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주시를 포함해 부산시, 인천시, 제주시 등이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는 경제적 파급효과와 함께 도시 위상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다. 경주는 유치 경쟁 도시 중 유일한 중소 기초자치단체로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국정과제인 지방균형발전 실현과 관광·경제 활성화에 안성맞춤이다. 정상회의를 위한 회의장과 숙박시설, 그리고 경호까지도 타 지자체에 비해 유리한 조건이다. 여기에 신라왕경 핵심유적과 석굴암, 불국사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한 도시로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만한 가치를 지녔다. 그리고 APEC교육장관회의, 제7차 세계물포럼, 제14차 세계유산도시기구 세계총회 등 수많은 국제회의 경험을 통해 정상회의 개최 역량도 갖췄다. 이철우 도지사와 주낙영 시장은 대통령을 비롯해 대통령실, 정부부처 등을 찾아 경주 유치를 건의하고 당위성도 설파하고 있다. 경북도민과 경주시민이 결집하고 두 단체장의 진력을 당부하며, 오는 11월경엔 ‘경주 유치’라는 낭보를 기대한다.
한때 우리나라 정부 요직 상당수를 군인들이 차지하는 시대가 있었다. 박정희 소장이 1961년 5·16 쿠데타를 일으키고 집권하면서 그 쿠데타의 핵심세력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군이 정부의 요직을 장악하게 되었다. 1979년 10·26 사태로 인해 박정희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는가 싶었지만 이어진 12.12 군사쿠데타는 역사를 도로 1961년으로 돌이켰고 이로 인한 군부독재의 서슬은 더욱 퍼래졌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것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후다. 군의 정치진출 기반이었던 ‘하나회’를 와해시키고 군에 대한 강도 높은 권력 제한과 군의 부단한 자정 활동으로 정치적 중립이 지켜지게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출신 최초의 대통령이 된 이후 한동훈 법무장관을 비롯한 검사 출신들이 대거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고 과거 어느 때보다 검찰의 권력이 세졌다는 세간의 평가다. 그런 반면 검찰의 중립성과 수사의 치밀성, 수사에 대한 정확성은 대거 떨어졌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더 걱정되는 것은 전 정권에 대한 검찰수사가 위험수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문재인 정권이 집권 초기 ‘적폐청산’을 빌미로 검사들을 동원해 온갖 정치보복을 행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문재인 정권은 무능한 권력을 쓰러뜨리고 이른바 사자방 비리, 즉 4대강에 쏟아진 비리와 자원외교를 빌미로 한 외교적 국가손실, 군의 방위사업과 관련한 구조적 비리 등을 파헤치고 농단을 없애라는 국민적 요구로 탄생한 정권이다. 그러나 기껏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다스 실소유주’ 따위의 빤한 이슈와 법원까지 걸고 넘어지는 무리한 수사에 열을 올린 채 사자방 비리는 터럭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20년 장기집권’ 운운하는 오만을 거듭한 결과 역사상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을 넘겨주는 패배를 맛보았다. 윤석열 정권은 문재인 정권의 불합리를 바로 세우라고 국민이 선택한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그 기대에서 멀어진 채 집권초기 이미 30% 지지율로 곤두박질쳤다. 그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당연히 윤석열 대통령 자신의 안일과 무지, 적절치 못한 처신 등임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것 못지않게 국민의 우려를 주는 것이 ‘검찰공화국’으로 치닫는 독재적 발상이다. 경제회복과 민주화 가속화라는 국민의 바람은 아랑곳 않고 정적 죽이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한 대통령과 그 뜻을 ‘알아서 살펴’ 여와 야를 구분하지 않고 대통령의 뜻에 반하면 어떤 정치인이건 꼬투리를 잡아 짓누르기에 여념이 없는 검찰을 보면 이 정권의 말로가 어떨지 짐작 가고도 남는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과감히 대통령에 직언하고 고쳐나갈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전 정부가 저지른 패착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꼴이다. 문재인 정권의 가장 큰 맹점은 비판 없는 성역화였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인천공항공사가 전격 정규직화 되고 4대강 수문이 열리는 식의 상명하복이 현정권에서는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오히려 한 술 더 떠 대통령의 말 실수나 적절치 못한 처신을 억지스런 변명과 미화로 포장해 오히려 국민의 빈축을 사고 있다. 이런 제왕적 행태야말로 민주화를 바로 세워온 국민의 눈에는 최대의 거슬림이자 기만일 뿐이다. 더구나 그런 비판을 검찰력을 내세워 억누르려 하는 것은 또 다른 거대한 반발을 부를 것이다. 최근 한동훈 법무장관은 이전 대통령들에 대한 수사결과가 정권에 따라 달라진 것에 대해 ‘그때는 살아있는 권력이 있어서 수사를 못 했지만 정권이 바뀌어서 할 수 있었다’고 해명해 검찰수사의 독립성을 전면 부인했다. 검찰이 권력에 따라 부화뇌동했다면 그 검찰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애초에 글러 먹은 것이고 결국 검찰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권에 빌붙은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군이 어떻게 권력을 독차지했는지도 보았고 그 권력이 어떻게 해체되는지도 역사를 통해 똑똑히 배웠다. 검찰이라고 다를 바 없다. 검찰이 제 역할을 공명정대하게 하지 않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거나 권력의 정점에 서려 한다면 반드시 국민적 역풍을 맞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권력을 농단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이미 수차례의 철퇴를 내리쳤다. 바로 이 엄연한 역사를 검찰은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경주시 거버넌스가 잘 안착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과 함께 권역별 ‘지역사회 혁신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리고 경주시 전체와 권역별 표준모델을 제시하고, 권역의 실정에 따라 추진체계와 시기 등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경주시 로컬 거버넌스 체계는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을 지향하는 ‘지역사회 혁신계획’ 수립 △행정 개별 부서에서 각기 추진되는 거버넌스형 정책을 종합하는 전략계획 수립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ESG(환경·사회·거버넌스), 사회적 경제, 마을공동체, 도시재생, 주민자치센터의 시민참여 사업, 복지사업, 에너지 등 ‘협치 선도 정책·사업’을 권역별 특성에 따라 재구성하고 재조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적 여건을 감안하여 경주시 로컬 거버넌스 전략모델을 수립한다는 것은 경주시 사회, 경제, 환경적 조건, 네트워크 구조화전략, 내부운영 전략적 틀을 운용하는데 필요한 제 절차, 방법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로컬 거버넌스 전략은 고정적이기 보다는 각 지방의 정책부서에서 현실에 맞게 수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경주시 거버넌스 활성화를 위해서는 첫째, 가치(민주주의와 공동선)의 사회적 공유. 둘째, 정보, 자원의 제공과 책임과 성찰의 공유. 셋째, 거버넌스 리더 또는 사회 혁신가(social entrepreneur)의 발굴과 양성 등 인적자원의 양적·질적 수준 향상. 넷째, 협동형 시민사회조직 활성화를 위한 선별적 지원. 다섯째, 거버넌스의 제도화를 통한 지속성 확보. 여섯째, 지역 거버넌스 생태계 구축 등이라 할 수 있다. 이상적이고 실현가능한 지역 거버넌스 과정은 지방정부의 전략, 시민사회의 이니셔티브, 네트워크 간 연계와 협력, 제도화라는 여러 유형의 속성 중 가능한 많은 것을 결합함으로써 추진력은 향상될 수 있다. 경주시 거버넌스 전략모델은 신뢰와 협동의 협치 경주실현(비전), 내실 있는 협치, 시민참여형 협치, 융복합형 협치 시스템 구축(목표)이어야 한다. 경주형 거버넌스 첫 번째 전략추진과제는 시정 거버넌스의 인식 공유와 상호신뢰 강화이다. 이 단계에서는 공무원·시민사회·중간지원조직 거버넌스 교육방향 및 목표설정, 거버넌스 교육 추진체계 확보, 교육내용의 혁신을 통한 거버넌스 행정, 주민운동의 정착, 교육방법의 혁신을 통한 공무원·시민사회·중간지원조직 거버넌스 역량 강화, 공무원·시민사회·중간지원조직 지역현장에 대한 유연성과 혁신성 확보, 지역현장 학습모델개발, 공무원·시민사회·중간지원조직원 거버넌스 교육성과 측정 체계 확립, 거버넌스 우수사례 발굴 확산, 거버넌스 성과측정 등이다. 두 번째 전략 추진과제는 관 주도에서 민관협력형 거버넌스 체제로의 전환이다. 이 단계에서는 경주 실정에 맞는 통합적 거버넌스 체계 구축과 중장기 거버넌스 계획 수립 및 실행 감독,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협동의 가치 확산이 중요하다. 특히 실천의 과정에서 생성된 지역 거버넌스 모델의 발굴 및 확산은 주요한 전략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추진과제는 경주형 거버넌스 실효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 강화이다. 이 단계에서는 기존 시민 참여제도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와 활성화 방안 모색, 시민 참여형 공공정책 결정방식의 정착, 각종 위원회의 제도 및 운영 방법 개선, 포괄적 공익활동지원을 위한 조례 및 제도 준비, 시민사회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재정계획 수립을 포함한다. 네 번째 거버넌스 전략 추진과제는 지역사회 기반 융복합형 거버넌스 모델 구축이다. 이 단계에서는 시민사회 역량강화를 위한 중장기 전략 수립, 다양한 결사체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에 기반한 분야별 네트워크 형성 방안 모색, 시민사회 섹터별 중간지원기관 재정비 혹은 통합적 관리틀 설치 중장기 계획 수립 등이 과제로 제기된다. 경주시 거버넌스는 위에서 제시한 로컬 거버넌스 전략 모델을 참고하여 시정 거버넌스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디자인해야 한다. 경주시 시정 정책영역별 정책의제 발굴, 시민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모든 정책영역의 행정체계와 역량 파악, 거버넌스 시정 정책의 설계, 시정 거버넌스 추진체계의 상, 방향설정, 민·관 역할 분담 조정, 시정 거버넌스가 실질적 추진을 위한 조직·예산·인사 등 제도혁신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경주시는 혁신계획 수립·실행, 발굴된 정책 분야를 실행할 담당 부서(총괄·협조) 지정, 행정 부서에서 추진하는 정책의제와 단위사업 추진 지원, 교육(민·관), 시민참여, 평가 등과 같은 중요한 사안을 점검하고 로컬 거버넌스 전략을 수립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경주 외동읍 신계리에 경주김씨 경암(敬庵) 김응춘(金應春,1547~1608)의 경암정이 있다. 예로부터 신계리는 충강공(忠剛公) 이징옥(李澄玉,1399~1453) 장군 그리고 경주성 탈환의 주역인 동엄(東广) 김득복(金得福,1561~1626) 장군과 동오(東塢) 김득상(金得祥,1565~1598) 형제 등 충신과 효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실제 이징옥은 양산(梁山) 출신이지만 양산과 경주는 지리적으로 외동 치술령을 사이에 둔 인접한 상황 덕분에 그의 후손들이 많이 우거해 살고 있으며, 김응춘 역시 신계리 출신이지만 양산의 대하(臺下)마을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김응춘의 증조부는 만호 김세적(金世績), 조부는 현감 김주(金柱) 그리고 부친은 참봉 김한(金漢)과 모친은 청주한씨 한인준(韓仁俊) 따님이다. 양산에 있을 때 왜놈들이 쳐들어오자 “신하가 입고 먹는 것이 임금의 것이요 나라의 것이니, 어찌 자신이 위태로움을 가리겠는가?”라 말하며 마을 장정들을 모아 적과 싸웠고, 선조 임금이 의주 용만(龍灣)에 있을 때 순찰사가 임금께 알려 원종(原從) 3등 훈을 받았다. 1593년 2월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8년 무술 명나라 장수를 도와 기장(機張)에서 접전해 공을 세웠다. 동래정씨 정원적(元績)의 따님과 혼인해 양산군 대하리에서 아들 김대성(金大聲,1569~1659)을 낳았다.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김대성 역시 병자호란에 인조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할 때 비분강개하였고, 삼전도(三田渡) 화친 소식을 듣고는 곧장 고향으로 돌아온 강직한 성품이었다. 경주 출신의 김응춘은 양산에서 활동을 주로 하였지만, 말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양성과 수신을 하며 지냈다. 1604년 스스로 「경암기」를 지어 말하기를 “임인년(1602) 가을에 양산 대하리에서 선대가 살던 고향인 월성 동남쪽 장군바위 산 밑에 자리 잡았다. 3년이 지난 갑진년(1604) 봄에 사는 집 왼편에 두어 칸 초당을 세우니, 방과 마루가 갖추었으나 누추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산수의 경치는 장군바위가 우뚝 섰고, 효문동 들판이 그윽하였으며, 북쪽으로 대밭골 대나무가 푸르고, 남쪽으로 연지(蓮池)의 연꽃이 아름다웠다”라며 주변의 빼어난 경치를 설명한다. 그리고 매사에 공경하고, 행실을 돈독히 공경하며, 공경하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 심신을 닦는 요결이라는 문구의 경(敬)자를 취해서 공손하고 공경하는 거처로 삼았다. 세월이 흘러 후손들이 집터 가까운 곳에 자연과 더불어 경암정을 건립하고 1946년 문중에서 현판을 걸었다. 1971년 9월에는 풍산 류석우가 「경암정상량문」을 지으며, “훈련원정 경암 김 공은 계림의 빛나는 가문으로 선조 때 창의하였다. … 모두가 살기를 도모해 자기만을 돌아보는데, 공은 홀로 강개해서 몸을 떨쳤다. … 나의 창과 너의 칼이 따르기를 원하는 무리를 보았고, 피를 마시고 상처를 만지며 힘을 다해 적군을 막았다. 낙동강에서 여러 번 도적을 잡아 큰 공을 알렸고, 기장바닷가에서 북쪽으로 쫓아 기이한 승리를 거두었다. … 아! 세월이 이미 멀어져서 아름다운 칭송이 점차 사라지건만, 오직 사모하는 아름다운 명성은 저절로 드러나 사람들이 애석함을 일으킨다”라며 경암정 건립의 의미를 부여하였고,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1855~1931)이 그의 「행장」을 지었다. 그리고 외동읍 죽동리에 있는 김응춘을 모신 추감재(追感齋)는 1921년 2월에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5월에 공사를 마쳤고, 청 한 칸, 방 셋, 마루 네 칸의 여덟 칸 규모 집을 완공하였다. 1921년 6월에 월성 최현필(崔鉉弼)이 「추감재상량문」을, 1922년 9월에 8세손 김계환이 기문을 지었다. 후대에 와서 김응춘을 기리는 공간이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정작 경주지역에서는 의병 활동으로 그리 알려진 것이 없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옛 인물을 연구하는데 자료의 소략함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에 양산과 경주를 오간 부족한 그의 행적과 무신(武臣)이지만 학문적인 경암 김응춘에 대해 밝힐 자료가 발굴되길 희망한다.
2월이 싫어졌다.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다. 설날이 있기도 하고, 내 생일도 덩달아 오기도 하는 달인데, 굳이 2월을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쌍둥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 고민하는 달이 되었고 그 고민이 달갑지 않았기에 2월이 싫어졌다. 아마 많은 아줌마, 엄마들이 싫어하는 달이 2월일 것이다. ‘이 무슨 소리냐고?’ 2월은 졸업이 있는 달이다. 그걸 누가 모르는가? 그런데 어린이집도 졸업을 한다.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2월 중순에서 하순에 졸업하고 짧게는 5일, 길게는 1~2주 동안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 집에 있어야 한다. 나는 전업주부였기에 아이들을 집에 데리고 있으면 되었지만, 아이들이 자꾸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고 떼를 쓰는 걸 이해시키기가 쉽지는 않았다. 어린이집을 졸업해서 이제는 어린이집에 못 간다고 하면 쌍둥이는 그러면 유치원에 가면 되지 않느냐고 따졌었다. 3월이 되어야 입학을 한다고 이야기를 해도 아이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셋째도 어린이집을 졸업하게 되었을 때 며칠 전부터 신경이 쓰여 배가 아팠다고 하면 믿어지는가? 그래도 나는 나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워킹맘들은 어쩌란 소린가? 갑자기 아이를 1~2주만 맡길 곳이 어디 있으며 돌봐줄 사람이 누가 있는가? 친구 중에 가장 결혼을 늦게 한 나로서는 먼저 아이들을 키운 워킹맘 친구들이 너무나 대단해 보였고 한편으론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때 사정을 알아주지 못한 것이, 도와주지 못한 것도 미안했다. 솔직히 졸업뿐인가? 어린이집도 방학을 한다. 가정 어린이집에 보낸 경우, 여름방학, 겨울방학도 일주일이 있다(큰 어린이집은 방학 기간에도 돌봄을 해주는 곳도 있기는 하다). 매년 며칠씩 엄마들은 돌봄 공백을 채우려고 이리저리 고민해야 한다. 워킹맘은 워킹맘대로, 전업주부는 전업주부대로 힘든 시기다. 그렇게 힘들게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참고 견디며 경력을 이어가던 워킹맘들은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면 멘붕이 온다. 입학하면 길게는 한 달 동안 12시가 좀 넘으면 집에 온다. 학년이 올라가도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보다 훨씬 빠르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맡기고 회사에 다니던 엄마들이 막상 아이들이 학교를 들어갔는데 몇 년 못 버티고 사직서를 쓰는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초등 돌봄이 있기는 하지만 학교마다 정원이 많지 않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초등 돌봄이 1~2학년을 대상으로만 한다는 것이다. “3학년이 되면 혼자 있어도 된다는 소리인가?” 작년에 초등학생 형제가 집에서 라면을 먹다가 화재로 사망한 사건도 있다. 형제 자매가 같이 학교를 다니면 저학년은 돌봄을 하고 큰 아이는 혼자 집에 가라는 소리인가? 엄마들도 방학을 좋아하고, 2월을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줌마 한소리 좀 한다.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학교든, 아이들이 가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돌봄 선생님들의 근로조건을 최악으로 만들어서도 안된다. 근로의 피로도는 돌봄 서비스의 질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를 맡기는 엄마로서 선생님들의 노고를 누구보다 절실히 느낀다. 그렇기에 선생님들의 쉼도 중요하다. 보통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월차, 연차는 그림의 떡이다. 선생님들의 쉼을 위해 방학엔 쉬고 월차, 연차를 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같은 기관에 근무 경력이 있지만 퇴사한 선생님이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의 방학과 연차와 월차를 대신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안된다고 하지 말자. 이런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이 경주에 있다. 가정 어린이집처럼 작은 기관의 경우는 구역별(같은 동네마다) 보완 선생님을 채용하면 어떨까? 엄마의 휴식과 선생님의 휴식은 아이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아빠의 휴식에도… 그러니 올해 예산을 역대 최대로 많이 받았다고 자랑만 하지 말고 시스템적으로 부족한 곳을 채울 수 있는 고민의 시간을, 실제로 이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갖기를 아줌마는 바란다. 지역 위원들과 공무원, 선생님과 학부모가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면 더 좋은 아이디어들이 나올 것이다.
베르디(G.Verdi/1813-1901)는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 론콜레에서 태어났다. 밀라노에서 가까운 곳이다. 태어날 때는 프랑스 땅이었고, 곧 오스트리아가 이곳을 차지했다. 19세기 초 이탈리아는 듬성듬성 쪼개진 영토였다. 반도 북서쪽에 위치한 사르디냐 피에몬테 왕국이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주도했다. 이처럼 어린 시절 베르디의 삶의 터전은 그의 미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밀라노에서의 성공, 그리고 통일운동으로의 필연적인 참여가 뒤따랐다. 부친의 친구이자 부세토의 부유한 상인 바레치(A.Barezzi/1787-1867)는 베르디의 후견인 역할을 맡는다. 밀라노에서 유학을 한 것, 그리고 부세토의 음악감독이 된 것은 모두 바레치 덕분이었다. 바레치의 아름다운 딸 마르게리타(M.Barezzi/1814-1840)와의 결혼(1836)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하지만 결혼은 비극의 전조였다. 슬하에 둔 1남 1녀가 모두 사망하고, 아름다운 아내마저 죽는다(1840). 불과 4년 사이에 일어난 끔찍한 불행들이다. 죽음에 대한 베르디의 두려움은 아마 말러에 견줄만한 것이리라. 죽고 싶을 정도로 크나큰 실의에 빠진 베르디를 건져 올린 것은 오페라 ‘나부코(Nabucco/1842초연)’의 성공이었다. 오페라 속에서 바빌로니아의 지배를 받는 유대인은 오스트리아의 압제 하에 있는 이탈리아인 자신들의 모습이었다. 나부코는 당시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알려진 합창 아리아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Va, pensiero, sull'ali dorate)’는 국가(國歌)의 위상을 갖기도 했다. 나부코 한방으로 베르디의 명성은 크게 높아졌고, 그는 평생을 함께 할 여인도 만나게 된다. 여주인공 아비가일 역의 주세피나 스트레포니(G.Strepponi/1815-1897)였다. 베르디는 1840년대에 애국적인 내용을 가진 오페라를 다수 작곡한다. 항간에 유행하던 ‘Viva Verdi(베르디 만세)’는 이런 베르디를 찬양하는 구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통일운동을 주도한 사르디냐 피에몬테 왕국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향한 구호였다. Verdi는 Vittorio Emmanuele Re d’Italia의 두문자를 따서 만든 은어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들은 살벌했던 오스트리아의 압제 속에서 현란한 언어유희를 즐겼던 것이다. 1850년대 초반, 동갑내기 라이벌 바그너가 드레스덴 혁명에 실패하여 스위스 취리히에 피신해 있던 시기에, 베르디는 오늘날 ‘빅3’라 불리는 작품들을 초연한다. 1851년에 리골레토를, 1853년에 일 트로바토레와 라 트라비아타를 연이어 발표한다. 리골레토와 라 트라비아타는 각각 프랑스의 유명 작가인 빅토르 위고와 알렉상드르 뒤마피스의 문학 작품에서 리브레토를 가져왔다. 베르디는 나이 마흔을 즈음하여 전성기를 달렸다.
초기 미국,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백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파 앤드 어웨이(Far and Away, 1992)를 떠올릴 것이다. 론 하워드 감독이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을 출연시켜 만든 흥행작이다. 영화의 백미는 온갖 수난을 겪고 난 이민자들이 자신의 땅을 가지는 순간이다. 자신의 깃발을 최대한 멀리, 최대한 넓게 달려가 꽂는 곳이 자신의 땅이 된다는 설정은 개척자들에게 로또 이상의 매력과 의미를 가진다. 우리나라 역사도 그런 시대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비록 땅은 아니지만 미지의 영역에 도전한 수많은 전문인들이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고 그 표식을 남겨놓았다. 그 영역이 큰 사람은 대단한 학자가 되거나 재벌 혹은 공직자가 되었고 문학인과 체육인 등 다방면에서 이름을 남겼다. 단지 큰 업적을 남기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이룬 영역을 스스로 돌아보면서 남다른 감회를 느낄 수도 있다. 그것이 비록 세상이 다 알만큼 거대하거나 떠들썩 하지 않아도 자신을 떠난 대중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거나, 비록 자신의 이름을 걸어놓지는 않았지만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그 영역에서 삶을 즐기고 여유를 얻는 모습을 본다면 그 만큼 가치 있는 일도 드물 것이다. 지난주 만난 권원수 씨는 ‘파 앤드 어웨이’의 주인공 ‘조셉 도넬리(톰 크루즈 분)’를 연상시키고도 남는다. 권원수 씨는 경주 사람들은 물론 경주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한 번씩은 반드시 둘러 봄직한 보문호수 전체 도로에 벚나무를 심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보문관광단지는 1971년 8월 정부에서 실행한 ‘경주관광개발계획’으로 기본계획이 마련되어 1974년 공사를 시작했으며 1975년 보문관광단지 지정 및 경주관광개발공사가 설립되어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1단계 공사를 마치고 개장한 것이 1979년 4월이다. 그 후 각종 호텔과 편의시설이 들어서고 온천이 개발되면서 보문관광단지는 일약 국내 최대·최고의 관광단지로 성장했다. “제가 1978년에 경북관광개발공사에 입사했어요. 마침 그즈음 경주관광종합개발공사가 시작되었고 보문호수가 만들어졌지요. 저는 경주공업고등학교 토목과를 나왔는데 그때 호수 주변에 조경을 맡았어요!” 토목학과를 나왔지만 조경공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자료도 거의 없어 조경 공사 자체가 어렵기만 했다는 권원수 씨. 그 와중에 가장 기억 남는 작업이 벚나무 심기다! “당시에 심은 건 팔뚝 정도 굵기의 가늘고 작은 벚나무였습니다. 그게 지금은 보시다시피 고목이 되었지요” 권원수 씨는 보문관광단지를 둘러볼 때마다 아름드리로 성장한 벚나무를 바라보고 쓰다듬어 보는 일이 어떤 일보다 보람 있다고 자부한다. 특히 이른 봄 벚꽃이 한창일 때 보문호반을 찾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환한 웃음을 볼 때마다 45년 전 한 그루 한 그루 벚나무를 심던 자신의 청년시절이 떠올라 감회에 젖곤 한다. “그 후 보문단지 경험을 발판으로 전국을 다니며 많은 공사를 했어요” 가깝게는 경주 포항간 산업도로에 은행나무도 심었고 경주민예촌, 보문 컨트리, 신라CC 등의 조경을 담당했다. 경주 외에도 팔공CC, 경기도 제일 스포츠 골프장 등 수많은 조경공사를 진행했다. 권원수 씨는 그런 공사들이 무수히 많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 기억조차 희미하다고 회고한다. 분명한 것은 권원수 씨가 자신만의 영역을 각고의 노력으로 이루어냈고 그게 어느 순간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파 앤드 어웨이’의 주인공이 초기 개척시대 수많은 미국인들 중 한명이듯 경주가 국제적인 관광단지로 성장한 이면에는 권원수 씨 같은 숨은 주인공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권원수 씨는 최근 황성공원을 비롯한 경주의 곳곳을 거닐며 경주시와 시민들이 알아야 할 다양한 공원 소식을 전해 본지 ‘SNS는 즐거워’에 가장 자주 등장한 제보자이자 그만큼 왕성하게 SNS를 즐기며 주변과 소통하는 인물이다. 언제나 청춘의 기운으로 또 다른 ‘파 앤드 어웨이’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권원수 씨! 그는 경주의 어른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좋은 본보기이기도 하다.
경주시가 아동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오는 6월 30일까지 ‘상반기 찾아가는 아동권리교육’을 추진한다. 교육은 아동을 포함한 지역사회 구성원에게 아동권리를 교육·홍보해 아동이 권리의 주체자로서 책임감 있고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교육은 아동 및 아동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을 대상으로 유엔아동권리협약 아동의 4대 권리(생존권, 발달권, 보호권, 참여권)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교육대상은 아동(만 18세 미만),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공무원, 부모 등이다. 교육희망일 기준 전월 20일까지 경주시청 아동청소년과 이메일(leekh74@korea.kr)로 신청하면 된다. 시는 신청기관을 대상으로 아동NGO 또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전문강사를 파견해 맞춤형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경주시 아동청소년과로 문의하면 된다. 경주시 관계자는 “시민의 아동인권 감수성을 높이고 아동이 행복한 도시, 모든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조성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