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경증환자 치료를 위해 운영했던 현대자동차경주연수원 생활치료센터가 20일 운영을 종료한다. 현대자동차경주연수원 생활치료센터는 지난 3월 10일 261명이 입소를 시작으로 그동안 총 310명이 치료를 받았다. 250명이 완치돼 퇴소했고, 3명은 타 지역 병원으로 이송됐다. 치료 중이던 57명의 환..
경주시는 토지 개별공시지가를 다음달 4일까지 열람을 통해 의견을 접수 받는다.개별공시지가는 국토교통부장관이 매년 공시하는 표준지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조사해 산정한 2020년 1월 1일 기준 개별토지의 단위면적(원/㎡)당 가격이다. 시는 지난해 12월 9일부터 개별 토지 39만2040필지를 대상으로 토지대장, 토지이용계..
국가지정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로 지정·운영해왔던 농협경주교육원이 17일 운영을 종료했다.이곳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대구시의 경증 및 무증상 치료를 위해 지난달 2일부터 생활치료센터로 운영했다. 지난달 3일 대구지역 확진자 284명 입소를 시작으로 그동안 390명의 환자가 입소해 치료를 받았다.
경주시에 주소지를 둔 20대 해외입국자가 16일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다. 그는 인천공항 검역소에서 검사 후 격리 조치돼 접촉자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주 49번 확진자 A씨(22, 충효동)로 지난 15일 일본에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과정에서 발열 등으로 검역소에서 검체 채취 후 임시시설에서 대기했다. 16일..
주낙영 시장은 총선 과정에서의 분열된 민심과 갈등을 치유하고, 코로나19와 경기침체 등 어려운 여건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결집된 힘이 절실하다고 호소하며 아래와 같이 담화문을 발표했다.
제21대 총선이 66.21%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차지하는 압승으로 끝났다. 국민들은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내세운 정권심판론보다 코로나19 사태를 잘 수습하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기대하며 여당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미래통합당 공천과정부터 논란이 많았던 이번 경주총선도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번 경주총선은 20대(2016년) 59.5%, 19대(2012년) 55.7%, 18대(2008년) 51.9%보다 높은 67.16%의 투표율을 기록해 시민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45.0%의 지지로 국회에 진출했던 김석기 당선자는 이번 총선에서 52.18%의 높은 지지를 받아 재선에 성공했다. 이번 총선에서 경주시민들은 보수당인 미래통합당을 지키는 한편, 김 당선자가 재선의원으로서 지역발전을 위해 그 역할을 다해 줄 것을 기대했다고 본다. 따라서 김 당선자는 어려운 공천과정을 겪으면서 재선에 성공한 만큼 시민들의 바람을 이뤄내는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 코로나19 정국 앞에 놓여있는 경주는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 경주 경제를 받치고 있는 중소기업, 소상공계, 관광업계, 농·축·수산업계 등 지역산업 전반이 휘청거리고 있다. 김 당선자는 어려움에 처한 경주의 현실을 직시하고 지역사회와 소통, 포용하면서 이 위기를 이겨내는 데 앞장서야 할 것으로 보여 진다. -코로나19 사태 위기극복에 앞장서야 한다. 지금 경주는 코로나19 여파로 산업기반이 장기침체로 접어들 위기에 처해있다. 김 당선자는 먼저 코로나19로 침체된 위기를 극복하는데 지역 정치리더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경주시와 함께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각 분야를 점검하고 시민들이 다시 생활일선에 나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약속한 공약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시민들에게 약속한 공약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경주시민들은 초선이 아닌 재선의원으로서의 김 당선자에게 더 큰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본다. 김 당선자는 지난 4년 동안 국회활동을 하면서 경주의 현안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우선 4년 전 시민들에게 약속했던 공약 중 반드시 다시 추진해야 할 사업은 탄력을 붙이고 실현 불가능한 사업은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과감히 없애는 결정이 필요하다. 이번 총선에서 김 당선자는 지역 최대 현안에 대해 여러 공약을 내놓았다. 그중에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른 대응과 월성1호기 폐쇄 철회, 도심권에 한수원 제2청사 건립, 경주역사부지에 신라천년 수도 상징성 담은 관람타워 등 랜드마크 조성, 고교평준화 추진, 관광청 신설 등 굵직하고도 해묵은 지역 현안을 풀어내겠다고 약속했다. 김 당선자가 시민들에게 약속한 공약인 만큼 최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 -화합과 포용의 정치를 기대한다. 신뢰는 서로 소통할 때 가능하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경주는 미래통합당 공천 때문에 내홍을 겪었다. 공천과정의 분열된 민심으로서는 현재 처한 경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경주의 경제기반은 열악한 편이다. 그렇다고 장기적인 비전도 잘 보이지도 않는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서민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김 당선자는 경주시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선거과정에서 일어난 갈등을 봉합하고 소통과 화합으로 경주사회를 아우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김 당선자는 이번 총선에서 높은 지지를 받아 당선된 만큼 경주사회의 고질적인 불통을 해소하는데 그 역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 -새로운 시대 대비하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세계적인 석학들과 전문가들은 이제 코로나19 이전시대는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산업 환경과 조직사회 네트워크, 개인 생활환경 등의 패러다임에 큰 변화가 예상되며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경제 및 생활형태가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경주와 같은 지방중소도시의 경우 차별화되고 선진화된 경제구조를 갖추지 못하면 도태될 수 있다. 따라서 김 당선자는 경주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진단하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 지속가능한 도시기능을 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시민의 지지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번 제21대 총선은 국민들을 실망시키면 패배뿐이라는 교훈을 또 한 번 남겼다. 미래통합당이 비록 보수의 텃밭인 TK지역은 사수했지만 앞으로 여당의 국정견제에 적잖은 난관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거대 여당 체제에서 야당인 김 당선자의 국회활동과 공약 수행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김 당선자에게는 지역사회의 지지가 매우 중요하다. 김 당선자는 지역사회에 만연한 해묵은 갈등을 해소하고 역량을 하나로 모아 그 지지를 바탕으로 국회에서 폭넓은 활동을 펼쳐주길 바란다.
어느 선거 때보다 갈지자 행보를 보인 제21대 총선이 끝났다. 이번 총선은 경쟁자에 대한 존중과 인정, 의원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고민과 정책은 찾기 어려웠으며 유권자들로부터 이해와 설득, 참여, 협력을 이끌어 내는 정성도 부족했다. 다만 총선이라는 정치적 절차에만 얽매여 비민주적이면서도 승자독식의 축배를 들기 위해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부와 각 정당, 후보들은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국민들에게 어려운 상황을 모두 해결해 줄 것 같은 공약을 내놓으면서 희망을 갖게 했지만 지금은 그 희망이 고문이 되고 있다. 내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해주지도 못하면서 ‘괜찮아 곧 좋아 질 것이고, 다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심어 준 지난 시간들이 이제 실망으로 돌아 오고 있다.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은 대구 민생현장을 방문해 “연대와 협력만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다. 소상공인과 기업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피해 때문에 문을 닫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정부는 우리 경제와 산업, 민생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때 국민들은 문 대통령의 말에 희망을 보았고, 믿음으로 기다려 왔지만 결과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국민들은 그 같은 호언이 정치적 득과 실을 따진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도 국민들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이번 총선에 높은 관심과 참여를 보였다. 지난 총선 때보다 10%나 높은 투표율로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했다. 유래없는 재앙으로 치러진 이번 제21대 총선은 앞으로 우리나라 정치사에 많은 선례와 교훈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정국은 진영논리와 국정수행평가를 뒤로하고 내 삶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정치라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비록 이번 총선이 코로나19에 묻혔지만 당선자들에겐 앞으로의 더 험난할 길이 기다리고 있다. 도탄에 빠진 경제상황과 국민들의 고충을 해결해야하는 능력자의 모습도 보여주어야 한다. 주어진 막강한 권한에 뒤따르는 책임이 어느 때보다 무거울지 모른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것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해결해 주길 기대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최소한의 자금으로 그나마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해온 계층에게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렵게 만들었다. 연체 3개월에 모든 것이 막혀 버리고, 연일 독촉하는 채권자의 압력에 쫓기는 채무자들에겐 정부의 고뇌를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국민들에게 경제는 심리이고, 희망의 끈을 잡고 일어서려 할 때 희망을 예측하고 그것을 구체화된다. 개개인이 직접 행동할 때 심리적 안정과 경제활동이 촉진되는 것이 서민경제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주와 같은 중소도시의 경우 ‘생산, 투자, 소비’의 붕괴는 훨씬 심각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주시민이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내수경기 활성화다. 긴급생활자금 등 위기대응자금 지원정책이라도 명칭에 걸맞게 신속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것도 이번 총선 당선자의 몫이다. 어려울 때 일수록 정치권과 행정,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온누리 상품권 등 지역화폐를 이용한 지역 농산물 선 지불 구매와 판매 촉진, 지역 추진 공공사업의 선 결재와 조기 집행, 관광객 유치와 보상으로 여행촉진 지원확대 등 지금까지 경색된 자금에 대한 지원 방책을 찾아 실행해야 한다. 특히 긴급재난 위기극복 자금이 지역 내 사업체와 침체된 소상공인, 시민에게 선순환 될 수 있도록 전문가, 공무원,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함께 추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경주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라 생각한다. 이들을 위한 복지정책도 살피고 방법을 세워야 한다.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앞으로 전 세계 경제생태계의 변화뿐만 아니라 지방의 경제순환구조에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지역경제영역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로의 성장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비대면 서비스 언택트 트렌드를 선점하기 위한 지역산업기반을 구축해야 하며, 로컬 플랫폼 산업과 온라인 판매망 구축 및 지원을 위한 청년크리에이트 육성으로 부족한 청년 일자리도 창출해야 한다. 이제 총선이 끝났다. 이제 국민들은 투표에서 높은 관심과 참여를 보였듯이 당선자들의 약속을 예의주시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답은 국민들의 지지를 통해 당선된 이들이 화답해야 한다.
지금은 공공기관들이 한창 정부경영평가를 받는 기간이다. 정부경영평가는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사전 매뉴얼에 따라 기관 평가가 이루어진다. 작년까지만 해도 기관 실사는 평가위원이 기관 관계자를 대상으로 직접 만나 질의응답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화상회의로 대체됐다. 처음 화상회의로 진행한다고 하니 먼저 걱정이 앞섰다. 내가 한 4년 전에 경험해 본 화상 회의는 연결 자체가 어렵고, 중간 중간 끊기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그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곧 깨닫게 되었다. 정부경영평가 화상 실사 현장에서 경험해 본 화상회의는 내가 정말 우물 안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울과 원주라는 물리적 거리가 무색할 정도로 음성은 또렷했고 화면은 발언자를 향해 자동으로 움직였다. 그냥 단순한 발표가 아니라 화상으로 토론을 진행해도 될 정도였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이런 경험은 한참 후로 미루어지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나는 IMF 사태를 기억한다. “사회에서 택시 타고 다니는 건 군바리밖에 없어”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군복무 중일 때, 휴가 후 복귀한 선임이 한 말이다. IMF로 세상이 모두 어려워졌는데 세상 물정 모르는 군인들만 택시를 타고 다녔다는 것이다. 이 말이 내가 기억하는 IMF와의 첫 대면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IMF 전과 후로 나뉜다. 내가 생각하는 IMF 전의 세상은 무조건 성장하는 시간이었고, 대학 졸업장이 있으면 웬만하면 취업은 걱정 없던 시절이었다. “1학년 때는 도서관 가는 거 아니다” 라는 선배의 말은 금과옥조였고 나는 철저히 지켰다. 캠퍼스 잔디 있는 한 쪽은 공공연한 음주 장소였다. 신학기 때면 언제나 선배들이 신입생들을 이끌고 이곳저곳에서 술판을 벌였었다. 그러고서도 취업 걱정은 없었다. 소위 말하는 데모를 쫓아다니다 졸업을 앞둔 몇 개월 전에 일반상식이니 영어를 준비해서 무난하게 혹은 수석으로 취직했다는 무용담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IMF가 모든 걸 바꿨다. 토익은 필수가 되었고 대학생들은 입학 하자마자 취업 준비에 돌입한다. 어학연수나 인턴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코로나19가 IMF 때처럼 우리 삶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바꾸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나는 원격근무·재택근무를 경험하고 있다. 돌아가며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팀원들과 온라인으로 소통해 보니, 의외로 재택근무도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딸아이는 개학 연기에 이어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있다. EBS는 초중고 학년별 방송 채널을 통해 학교 시간표에 준해 초중고 전 학년 학습 콘텐츠를 제공한다고 한다. 처음이라 이런저런 문제점이 발생할 수야 있겠고 불평불만이 안 나올 수 없으리라.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는 곧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기술은 훨씬 더 멀리 나아간 듯하다. 이른바 ‘뉴 노멀(New Normal)’이다. 기업에서는 재택근무가 확대되고 회의는 서면이나 영상으로 대체된다. 학교에서도 집합교육은 점점 줄어들고 온라인 교육이 강화된다. 마트에서 장보기보다 ‘새벽배송’을 선호한다. 새로운 표준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소소하게는 이제는 ‘술잔 돌리는 문화’는 사라지지 않을까? IMF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도 우리 사회의 많은 모습들을 이미 바꿔 놓았고 또 더 바꿔 놓을 것이다. IMF 전과 후의 시대 중 어느 시대가 더 행복한 시대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IMF 사태를 잘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듯이 코로나19 사태 또한 세계 그 누구보다도 잘 극복해 나갈 것이며 또 적응해 갈 것이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이. 그리고 우리 경주가.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의 『성호전집(星湖全集)』제7권,「해동악부(海東樂府)·도솔가 신라(兜率歌 新羅)」를 보면, “신라 제3대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재위24~57) 5년(28) 겨울 11월에 임금이 나라 안을 순행(巡行)하다가, 굶주리고 얼어 거의 죽게 된 한 노파를 보고는 ‘내가 보잘것없는 몸으로 왕위에 있으면서 백성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여 늙은이와 어린이를 이 지경이 되게 하였으니, 이는 나의 잘못이다’하고, 옷을 벗어 그 노파를 덮어 주고 음식을 주어 먹게 하였다. 이어 곧바로 담당 관원에게 명령을 내려서, 각 지역마다 환과고독(鰥寡孤獨)과 늙고 병들어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을 찾아가서 위문하고 물자를 공급해 주게 하였다. 이에 이웃 나라의 백성 가운데 그 소문을 듣고 신라로 들어온 자들이 많았고, 이 해에 백성들이 즐겁고 편안하여, 비로소 〈도솔가〉를 지었으니, 이것이 가악(歌樂)의 시초이다”라며 「도솔가」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 외에도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의 『기언(記言)』 제33권,「외편, 동사(東事) 신라세가(新羅世家) 상」 그리고 순암(順庵) 안정복(安鼎福,1712~1791)의 『동사강목(東史綱目)』 제1하 그리고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1814~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제12권,「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신라악」 등에서 왕의 어진 정치를 예찬하는 신라음악 「도솔가」를 언급하였다. 이후 제35대 경덕왕(景德王. 재위742~765) 때 월명스님의 「도솔가」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676년부터 935년까지 통일신라는 삼국 통일 이후 평화와 번영을 누리며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시기로, 경덕왕은 새로운 귀족세력의 부상으로 왕실 전제왕권의 재강화를 위한 일련의 관제정비와 최고 행정 관청이자 왕정의 기밀 사무를 관장하는 집사부(執事部)를 중시하는 개혁조치를 취하고, 불국사·석굴암·성덕대왕신종 등 건립을 통해 부처님의 가피로 국권회복과 왕권확립을 이루고자 하였다. 경덕왕 즉위 19년(760) 4월 1일에 갑자기 두 개의 태양이 떠오르더니 열흘 동안이나 사라지지 않고, 때아닌 변고에 나라 안은 발칵 뒤집혀 경덕왕은 걱정이 높아만 간다. 이때 운명처럼 능준대사(能俊大師)의 제자인 월명스님이 등장하면서 향가를 불러 나라의 변고를 잠재운다. 『삼국유사』 제5권, 「월명사 도솔가(月明師 兜率歌)」조에 등장한 기이한 이야기로, 당시 신라인들은 향가를 숭상한 지 오래되었고, 월명스님이 향가를 잘 불렀으며, 천지와 귀신을 여러 번 감동시켰다고 전한다. 월명스님의 「도솔가」는 불교음악과 향가에 대한 연구에 자주 언급되지만, 정작 향가에 대한 번역과 음악 원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향가 연구 가운데 도솔가에 관한 학위논문 김상락,「향가의 구성 요소 분석과 주술적 의미맥락 연구. 혜성가·도솔가·처용가를 대상으로」,『동국대학교』, 2013, 국내석사 외 다수 그리고 김기종,「도솔가 불국토의 선언」,『한국시가연구』38, 2015. 외 학술연구 수십여편 이상이 발표되었지만, 불교음악과 배경의미 그리고 시가 비교연구에 국한되며, 시대의 괴리감과 자료의 소략으로 월명에 관한 인물고 그리고 적확한 의미분석에 대한 연구는 사실상 거의 힘든 실정이다. 부산대 윤소희선생은 2015년 「월명사의 성범(聲梵)에 관한 연구」,『국악원논문집』통권 31호에서 월명스님이 부르지 못했던 ‘성범’의 실체를 찾아서 실크로드와 중국 그리고 한국의 초전불교의 면면을 추적하였고, 그 결과 중국 초기불교 시기에 서역에서 온 유랑승들이 많았고, 이들은 범어범패(梵語梵唄)로 신통력을 부리거나, 다라니(陀羅尼)나 진언(眞言)이 지닌 의성어·의태어의 유희성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던 사실을 포착하였다. 유리왕 대 「도솔가」 가사는 전하지 않지만, 조선에 이르러 많은 문사에 의해 재창작되었고, 귤산 이유원은 『해동악부(海東樂府)』에서 다음과 같이 「도솔가」를 읊조렸다. 구휼의 인자한 마음 이웃나라 감화시키니 (賑賙仁化感交隣) 먼 곳의 백성들까지 이고 지고 돌아오네 (携負歸來無遠民) 태평을 기원하는 풍속에 이 곡을 노래하니 (國俗歡康歌此曲) 소리마다 음률 맞아 비로소 신명이 통하네 (聲聲𠯴律始通神) 해동악부는 우리나라의 역사나 문물을 소재로 사용한 악부를 말한다. 악부는 중국 한나라 때에 각 지역의 음악을 채집하여 정리하는 관서(官署) 명칭으로, 훗날 채집된 음악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고, 시대가 흐르면서 악곡(樂曲)은 분리되고 가사(歌詞)만 남아 시(詩)의 형태로 변화하였다. 문사들은 성덕을 베푼 유리왕의 어진 정치가 조선에도 행해지길 바라며 시를 지었을 것이다. 바로 정치는 민심을 어루만지고 어려움에 처한 이가 없도록 함인 것을~
▲두차레 발굴된 석장사터 경주 동국대 옆 석장리 마을을 지나 옥녀봉으로 가는 산길을 오르면, 한참가서 석장사지(錫杖寺地) 팻말이 서있다. 대나무들이 둘러있고 석재파편, 와편들이 흩어져있다. 돌아서면 멀리 형산강 중기가 보인다. 동국대 박물관이 이 자리에서 두차례(1986년, 1992년) 발굴조사를 했다. 신라시대(7c~8c)산지가람으로 고려때 재건축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석장(錫杖)이라고 쓴 자기조각이 출토되어, 여기가 석장사 터라고 확인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지팡이가 집집마다 날아다니며 시주를 받아왔다는 석장사 석장사는 선덕여왕(632~647)때 양지(良志)라는 스님이 주거하던 절로 알려져있다. 근처 주민들은 이곳을 ‘절골’이라 부른다. 이절에 대한 내력은 전해오는 바가 없으나, 석장사라고 이름지어진 연유는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전해오고 있다. 양지스님이 석장(지팡이) 머리에 포대 하나를 걸어놓으면, 이것이 저절로 날아 시주집을 찾아 다니며, 방울을 흔들어, 소리를 내었다. 집주인은 이 소리를 듣고 ‘아! 양지스님이 시주를 받으러 왔구나’하고 그 포대에 재에 쓸 비용을 넣어주었고, 이 집 저 집 다니다가 포대가 차면 날아서 다시 절로 되돌아오곤 했다. 신통한 도력을 지닌 스님을 암시해주는 듯하다. ‘양지(良志)란 무엇을 만드는 기술이 뛰어난 공장(工匠)을 의미하며, 석장은 머리에 여섯 개의 방울이 달려 흔들면 소리가 나는 지팡이로, 스님이 탁발할 때 인기척을 내거나, 길을 다니면서 짐승을 쫓는데에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조각(공예), 서화, 음악 등에 다재다능한 양지스님 이야기 출신, 집안 내력 등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선덕 여왕때 석장사와 함께 행적이 들어난 도승이요, 예술가로서 불교관련 공예, 불상, 녹유전 등을 잘만든 기예만능의 스님으로 전해온다. 또 그림을 잘 그리고, 글씨를 잘써 ‘영묘사’와 ‘범림사’의 현찬을 썼다고 전하리만큼 서화에도 재주가 뛰어난 스님이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영묘사의 장륙삼존상과 천왕상, 사천왕사 탑 팔부신장 제작과, 그리고 절에 작은 전탑을 짖고, 그 안에 3000불을 만들어 봉안했다고도 한다. 특히 사천왕사지에서 출토된 녹유사천왕상전은 이 스님의 최고 걸작이라고도 한다. 사천왕이 갑옷을 입고, 악귀를 발로 뭉게고 있는 모양인데, 짖눌린 악귀의 모습이 고통스럽지않고, 오히려 익살스럽게 보인다. 악귀를 응징하는 것 같아도, 부력으로 그를 감화시키려는 자비가 엿보일만치, 그의 넓은 도량과 읽살스런 해학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지어 부른 노래 ‘풍요(공덕가)’의 이야기 삼국유사에 의거, 영묘사의 장륙삼존상을 조성할 때의 일이라고 한다. 곡식 2만3700석이나 되는 큰 비용을 시주받아, 삼존상을 만드는데, 성안의 남녀들이 흙을 나르며 노력봉사를 했다. 이 때 많은 사람이 즐거운 마음으로 능률적인 일을 하기 위해 양지 스님이 지어 불렀다고 하는 노래(향가)가 ‘풍요(風謠)’라고 하는데, 그 내용은 “왔구나 왔구나, 절로 모여 왔구나. 인생이란 고통스럽고 서러운 것. 그래서, 극락왕생하기위해, 절로 공덕 닦으러 왔구나”이다. 사람 한 평생의 고통, 한탄, 서러움과 푸념 등이 잘 나타나 있는 노래로 보인다. 신도가 사주대신 부역을 할 때, 부르는 노래인데, 죽어 좋은 세상에 가서 살 수 있도록 공덕 쌓기를 권장하는 공덕가로 전한다.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할 때에만 해도 시골 여인들이 방아 품앗이를 하거나, 힘든일을 할 때,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양지스님 주거 절터에서 발견된 신라 보물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임신서기석(보물 1411호)’은 1934년 일제 강점기. 경주박물관 분관장이었던 ‘오사까 긴따로’씨가 석장터에서 발견한 작은 돌비석이다. 신라화랑 두 사람이 국가 충성과 학문연구에 매진하자는 약속의 글(74자)이 새겨셔 있다. 그리고 ‘신라인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얼굴무늬 수막새’ 또한, 일제 강점기 영묘사터에서 발견된 것(보물2010호)으로 전한다. 신라 여인이 살짝 웃는 모습을 조각한 와편인데, 여인의 미소가 너무 아름답고 은근해 그 조각 솜씨가 수련된 장인의 특출한 예술적 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연유로 해서 두 보물은 혹여 양지스님이 주석하던 석장사와 영묘사에 관련이 있든 이 스님의 작품 영향을 입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양지 스님의 이런 신묘한 조각 솜씨에 대해, 그가 젊은 시절, 인도여행을 했거나 중국 유학을 통해, 인도 불교문화(예술) 환경에 접했으리라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 일연 스님도 삼국유사에서 “이런 재능은 작은 재주로만 밖으로 들어난 것이지, 그의 참실력은 뒤에 숨기고 있었다”고 극찬했듯이 양지스님은 탁월한 재능과 신출한 재주를 가지고, 행적없이 조용히 나타나, 불사, 불전 제작에만 불심 전력을 쏟았을 멋진 스님으로 생각이 든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오케스트라의 현악기 파트 뒤에는 관악기 파트가 위치한다. 관악기 파트 중에서도 소리가 작은 목관악기가 우렁찬 소리를 내는 금관악기보다 앞에 배치된다. 왼쪽부터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의 순서다. 이 악기들을 입으로 불면 관에서 공기가 진동하면서 소리가 난다. 어릴 적 만들어서 놀던 풀피리도 같은 원리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악기의 튜닝을 유도하는 악기가 바로 오보에다. 오보에는 다른 악기에 비해 외부환경의 변화에 대해 음정변화가 비교적 작은 악기이기 때문이다.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의 정경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이 바로 오보에 소리다. 이처럼 다른 악기와 확연히 구별되는 소리의 독특함도 오보에가 튜닝의 기준 악기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플루트는 다른 악기와는 달리 가로로 부는 악기다. 바람의 소리를 낸다는 우리의 악기 대금처럼 말이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요즘 플루트를 보면, 대체로 금속으로 만드는데 왜 목관악기라고 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래는 나무로 만들었는데 나중에 금속으로 개량된 것이다. 따라서 악기의 소재에 따라 목관과 금관을 구별하기보다는 소리를 내는 방법에 따라 양자를 구별하는 것이 맞다. 목관은 리드라는 떨림 판으로 소리를 내고, 금관은 입술의 떨림으로 소리를 낸다. 클라리넷하면 이 곡이 연상된다. 바로 거슈윈(G.Gershwin/1898-1937)의 대표작인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다. 도입부에 마치 사이렌 소리처럼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여기서 질문 하나! 세로로 부는 목관악기인 클라리넷과 오보에를 어떻게 구분할까? 사용하는 리드의 개수(클라리넷은 1개, 오보에는 2개)로 구분하지만, 외관상 큰 차이가 있다. 클라리넷은 끝이 뭉툭하지만, 오보에는 뾰족하다. 마지막으로 바순(독일어로 파곳)이다. 워낙 독특하게 생긴 악기라 기억하기 좋다. 더구나 휘어진 빨대 모양의 관을 부는 연주자의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다. 드가(E. De Gas/1834-1917)가 그린 ‘파리오페라의 관현악단’을 보면, 가운데 연주자가 바순을 불고 있다. 이 바순 연주자는 드가의 친구라고 한다. 덕분에 드가는 파리오페라극장을 드나들면서 무희의 화가로 명성을 얻게 된다. 목관악기는 오케스트라에서 ‘기준’ 역할을 한다. 앞서 오보에는 튜닝의 기준악기라고 했다. 또한 오케스트라 편성도 목관악기가 기준이 된다. 2관 편성은 목관악기 연주자가 2명씩, 3관 편성은 3명씩, 4관 편성은 4명씩이다. 목관악기의 편성 수에 따라 현악기와 금관악기의 수가 달라진다. 당연히 숫자가 커질수록 대편성의 오케스트라가 된다. 목관악기 파트는 위치마저도 오케스트라의 중앙부분이어서 말 그대로 기준이 된다. 마지막으로 팁 하나! 지금 라벨의 볼레로를 들어보라. 도입 부분부터 목관악기의 소리를 샘플처럼 비교하며 들을 수 있다.
신라 국학, 고려 향학, 조선 향교로 이어져 인재양성의 천년산실이었던 경주향교. 안타깝게도 임란 때 병화로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다. 뜻 모은 중건으로 1330여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배움과 가르침을 겸비한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희생(犧牲)과 폐백(幣帛) 그리고 제례악(祭禮樂)과 헌작(獻爵)을 올리는 제례의식인 석전대제(釋奠大祭)를 봉행하고 있다, 2011년 문화재청 보물로 지정된 주심포계 맞배지붕 대성전에선, 옛 시절 공부하는 교생이 지켜야 할 학칙이 있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교관은 모든 유생을 인솔하여 의대(冠帶)를 갖춰 묘정(廟庭)에 나아가 알성(謁聖)하고 네 번 절하고 예를 행한다. 경주향교 대성전 문묘위차도(文廟造位次圖)는 중국의 오성(五聖)과 신라2현, 고려2현, 조선14현의 동국 18현과, 송조(宋朝) 2현 등 25현을 봉안하고 있다. 중국: 대성지성문선왕⦁공자(大成至聖文宣王⦁孔子), 연국복성공⦁안자(兗國復聖公⦁顔子), 성국종성공⦁증자(成國宗聖公⦁曾子), 기국술성공⦁자사(沂國述聖公⦁子思), 추국아성공⦁맹자(鄒國亞聖公⦁孟子) 신라이현(新羅二賢): 홍유후⦁설총(弘儒侯⦁薛聰), 문창후⦁최치원(文昌候⦁崔致遠) 송이현(宋二賢): 주자(朱子), 정자(程子) 고려이현(高麗二賢): 문성공⦁안향(文成公⦁安珦), 문충공⦁정몽주(文忠公⦁鄭夢周) 조선십사현(朝鮮十四賢): 문경공⦁김굉필(文敬公⦁金宏弼), 문헌공⦁정여창(文獻公⦁鄭汝昌), 문정공⦁조광조(文正公⦁趙光祖), 문원공⦁이언적 (文元公⦁李彦廸), 문순공⦁이황(文純公⦁李滉), 문정공⦁김인후(文正公⦁金麟厚), 문선공⦁이이(文成公⦁李珥), 문간공⦁성혼(文簡公⦁成渾), 문원공⦁김장생(文元公⦁金長生), 문열공⦁조헌(文烈公⦁趙憲), 문경공⦁김집(文敬公⦁金集), 문정공⦁송시열(文正公⦁宋時烈), 문정공⦁송준길(文正公⦁宋浚吉), 문순공⦁박세채(文純公⦁朴世采). 『경주시사Ⅱ』‘경주향교가 언제 최초로 설립되었는지 알 수 없다. 지금 향교 자리는 신문왕 2년에 국학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던 터이고, 고려 때 주학인 향교로 전승했다는 것이다.’ 『경주시사Ⅲ』 ‘경주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에 창건했다.’ ‘대설위(大設位) 향교로 평지에 위치하며, 외삼문 신삼문, 대성전, 명륜당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종 1473년에 부윤 양순석이 소학당을 설립하여 후학을 지도했다는 기록을 처음 남긴다. 1492년 부윤 최응현이 향교를 중수하였다. 선조 1600년 관찰사 이시발이 대성전과 전사청을 다시 중수했다. 1604년 부윤 윤성이 동무와 서무를 지었다. 광해군 1614년 부윤 이안눌이 명륜당과 동재 서재를 지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1955년 계림대학이 명륜당을 교사로 빌려 개교하였다. 김범부(金凡父) 선생 등이 교수로 출강했다. 범부선생은 경주가 낳은 한국문학의 거장 김동리소설가 맏형이다. 1970년 이후 명륜당에서 예절교육과 한문 등 계절 강좌로 이어졌다. 1999년 전통적 윤리가치관을 정립하고, 인문정신(人文情神) 함양을 위한 활성화를 목적으로, 경주향교 부설 사회교육원을 개설 하여 그 맥을 오늘에 유지하고 있다. 각 분야 유능한 강사를 초빙, 사자소학(四子小學), 명심보감(明心寶鑑), 대학(大學), 중용(中庸), 논어(論語), 동양유학사(東洋儒學史), 신라사(新羅史), 서예, 한시, 전통예절, 현대문학의 시, 수필, 시낭송 등 지역사회교육의 본보기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필자가 1995년 현대문학의 시(詩) 과정 2기로 수료한 〖경주문예대학〗은, 초창기엔 경주문협 부설이었다. 구. 박물관(현. 경주문화원)자리에서 출발했다. 2000년도부터 경주향교 부설 사회교육원 〖경주문예대학〗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로 34기 입학식이다. 강의 장소는 경주시 화랑로 28번길 24(성건동374-12) 유림회관 3층이다. 고인이 된 구림 이근식(丘林 李根植)문예대학 초대원장님은 “시인이 되기 전 먼저 인간이 되라”는 교훈을 남겼다. 그동안 배출된 시인, 수필가, 소설가, 시낭송가 등 문학도들의 간절하고 절실한 작품 활동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삼국유사 초략본을 현토(懸吐), 주해(註解), 교정(校正)판으로 출간하고 ‘신라사’ 강의를 하는 정파 정민호(丁巴 鄭旼浩) 전. 원장님의 가르침에도 존경의 마음 그지없다. 정파선생님은 현. 동리목월문학관장으로 재임 중이다. 경주향교 부설 사회교육원 이상필 전교님의 임기 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전통적 윤리가치관과 인문정신을 깨우치며 나아가는 사명감을 실감하게 된다.
지난 4월 10일 SNS명 Choi YH(최영혜) 씨가 올린 21대 경주 총선과 관련한 포스팅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무려 164명이 ‘좋아요’ 추천했고 댓글도 234개나 달릴 정도였다. 잠깐 원문을 그대로 인용한다. “수용·포옹이 없는 후보는 곧 시민의 적입니다. 자신의 지지자가 다르고 비판, 지적한다 하여 내 이웃, 친구, 가족 서로 등지면서 싸우고 서로 물어뜯고 할퀴어서 선거 후 지지자분들 남는 게 뭐 있나요?” 한창 선거가 상호 비방으로 치닫고 후보자를 사이에 두고 지지자들이 서로 편 갈라 싸우는 모습을 본 Choi YH 씨는 그 속에 자신과 친한 사람들이 나뉘어 있음을 알고 홀로 속 태우고 있었다. 지역의 선거는 총선이건 지자체 선거를 떠나 늘 이런 참상을 남겨왔다. 후보자를 지지하고 성원하는 선에서 넘어 마치 전쟁이라도 치듯 상대를 깔아뭉개고 약점을 들춰내느라 혈안 된 모습이 늘 있어왔다. 이런 모습을 보고 Choi YH 씨는 그게 지지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후보들의 문제임을 신중히 지적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후보는 이 상황이 반갑습니까? 즐겁습니까? 후보자의 리더십이 선거활동에서 기본으로 보이는 거 같습니다” 정책은 뒷전인 체 당리당략과 선심공약, 상대방 깎아내리기로 선거전 치르는 후보들의 한계가 결국 지지자 간 비방과 악담으로 이어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 신문이 시민들 손에 들어갈 시점이면 이미 이번 총선의 결과가 드러나 있을 것이다. 어느 후보가 승리했을지 모르지만 누가 되었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Choi YH 씨가 간곡히 바라고 많은 시민들이 ‘좋아요’ 누른 바로 그 문제다. 다시 Choi YH 씨의 원문을 인용한다. “부디, 하나를 갈라놓지 마시고 하나로 만들어주시는 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선거는 끝났다. 부디 갈라진 시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어루만지고 포용하는 경주 국회의원이 되기 바란다. 최영혜 씨는 경주역 근처 성모안과 옆에 자리 잡은 씨엘(CL)헤어살롱 대표 헤어디자이너다. 깔끔한 글 솜씨처럼 세련된 헤어디자인을 자랑삼는다.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경상북도지부(지부장 이광희)는 지난 8일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을 막고자 경주에서 방역을 실시했다. 이날 방역은 유공자와 가족들이 많이 찾는 경북남부보훈지청과 어르신들의 출입이 잦은 경주시보훈회관, 타 지역 관광객들로 붐비는 시외버스터미널·고속버스터미널 일대를 중심으로 실시됐다. 이광희 지부장은 “경주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발생했는데 이번 방역활동이 코로나의 종식에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한다”면서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는 활동들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어떻게 놀아야 하나? 어떤 놀이를 누구와 어떻게 해야 하나? 성우전래놀이협회 대표 정용옥씨가 놀이의 실전지침서 ‘정용옥의 세계전래놀이 다문화놀이’(일일사)를 출간했다. 이 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 많이 주목받고 있는 놀이를 그냥 배우고 활용하라는 것도, 단순하게 체험하라는 것도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의 전래놀이는 많이 알려져 있고 체험한 터라 질리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점을 고려해 다년간 발굴한 세계 전래놀이를 수록했고 다문화 가족에게도 적합한 놀이를 엄선해 실었다. 정 씨는 “이색적인 세계 전래놀이는 아이나 어른이 신기하고 흥미진진하게 체험할 수 있다. 세계놀이로 아이들은 ‘하하 호호’ 재미있게 놀이하며 건강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혼자 노는 게 아니라 함께 어울리고 함께 뛰어놀면서 올바른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 세계 전래놀이의 참모습을 보고 체험으로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보배, 소중한 새싹들이 진귀하고 새로운 놀이로 고운 심성과 지혜를 기르고 씩씩한 어린이가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지혜 많으신 어르신들과 덕망 있는 전래놀이 강사, 부모님들이 이 책을 보고 널리 활용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우리가 아는 놀이, 우리가 하는 놀이가 다른 나라에서는 이름이 뭘까? 지구 이끝에서 저끝으로 그 옛날 왕래도 없었을 터에 갖은 놀이가 있는 것에 신기하다 같은 놀이라도 이름이 나라마다 다르니 모두 수록했고 또 이름이 다르니 놀이도 약간 다르다. 모두 수록돼 있어 다문화놀이수업에 아주 편할 듯 하고 우리전래놀이수업에 그대로 써도 된다. 이 책에는 또 누구라도 특별한 도구 외에는 돈을 쓰지 않고 활용할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다. 원목으로 된 비싼 놀이기구는 그리는 방법을, 구매가 어려운 전래놀이기구는 만드는 방법도 자세히 수록했다. 이 책은 △제1부 아시아 계통의 놀이(필리핀, 인도, 베트남, 몽골, 캄보디아, 태국,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네팔, 카자흐스탄, 말레이시아, 중국, 일본, 러시아) △제2부 유럽의 전래놀이(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이집트, 에티오피아, 아프리카,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멕시코)로 154개의 놀이로 구성됐다. 책코치 신상대 씨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최고 화두는 인공지능(AI)이다. 그러나 그 건너편에는 양대 산맥을 이루는 화두가 있다. 그것은 분명 ‘놀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데 최상의 디지털 서비스이지만, 놀이는 사람 자신이 직접 행하고 살아있는 맛을 느끼는 아날로그이기 때문이다. 이제 글로벌 시대를 넘어 지구촌이 하나가 됐다. 그러기에 전래놀이도 우리 전래놀이에 국한되지 않고 범세계적인 놀이시대를 맞이한 만큼 이 책은 동양과 서양에서 행해지던 전래놀이를 모아 엮은 것이다. 이에 다문화가족에게 더없이 안성맞춤의 전래놀이가 되고, 우리나라사람에게는 세계놀이를 알 수 있게 한다. 이 책 한권으로 강사들은 세계를 넘나드는 전래놀이를 즐겨보시기 바라며, 가족들은 재미있는 세계놀이에 푹 빠져보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주변에서는 저자 정용옥 씨를 우리전래놀이와 세계전래놀이의 달인이라 칭한다. 정 씨는 강강술래, 세계전래놀이, 실버인성놀이, 웰다잉, 청소년 전래놀이, 책놀이 등을 중심으로 특강과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강원 강강술래단을 창단하고 강원 책놀이회 회장, 성우행복나눔교육협회 대표, 성우전래놀이연구협회 대표, 성우인형극단 대표를 맡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문화재가 있는 삶 속에서의 한옥마을은 드물지 않습니까?” 다행스럽다. 신이 우리에게 남산동(南山洞)을 허락한 것은. 골기와가 아름다운 격조있는 마을. 월정교를 기점으로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헌강왕릉과 정강왕릉, 통일전에 이르는 약 8km의 ‘동남산 가는길’을 지나면 서출지, 남산동 동서삼층석탑, 염불사지석탑, 칠불암 등산로 입구로 이르는 남산동이 나타난다. 동남산 가는 길에서 만나는 남산동은 2000년 전 신라인의 정기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마을이다. 남산동은 고대 신라와 지금의 지층이 보이지 않는 연대로, 혹은 가시적으로 공존하는 마을이다. 남산동 마을 속엔 보물급 문화재들이 마을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 한 가운데 자리잡은 전(傳) 염불사지삼층석탑, 남산동 동·서삼층석탑, 삼국시대 연못 서출지 등의 문화재는 물론, 경북산림환경연구원, 옥룡암, 통일전, 헌강왕릉, 정강왕릉 등이 바로 지척이다. 이들 문화재들은 남산동 주민들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런 정경이 돼 왔다. 남산동은 대부분의 번잡하고 떠들썩한 문화유적관광지와는 마을의 대기부터 다르다. 주민들 실생활 깊숙한 곳에 문화유적과 유산이 자연스레 자리잡고 있는 마을은 드물기 때문이다. 마을 앞으로는 너른 보문들판을 마주하고 통일전과 산림환경연구원을 지나 이윽고 마주치는 남산동은 유난히 정갈하고 잘 정비된 마을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게다가 여느 시골마을에선 보기 어려운 활기와 생동감이 넘친다. 대부분의 집들엔 본 단장이 한창이었는데 단연코 화사한 봄꽃들이 으뜸이었다. 유난히 깨끗하고 단정한 집집마다엔 꽃들을 가꿔 더욱 마을을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새로 이주해 온 이들도 많다는 남산동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는 한나절 이상이 꼬박 걸릴만큼 다양한 이야기 거리와 볼거리를 지니고 있었다. -‘새남산’ ‘안마을' ‘탑마을’ ‘재설마을’ ‘남쪽마을’ ‘뫼끝마을’ 등의 자연부락명 가져// 서출지와 정자 이요당, 남산리 삼층석탑, 전(傳) 염불사지 동서삼층석탑 등 문화재 다수 이 마을은 신라 유리왕 9년에 사량부(沙梁部)라 칭하다가 고려 태조23년 남산부(南山部)로 개칭한 것이 마을 이름의 기원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안마을’은 안말, 안마, 내촌(內村), 피리사, 피촌 등 전하는 이름이 많다. 신라시대 피리사라는 절이 있었던 연유로 피리촌, 피이촌 등으로 불려 왔으며 동남산의 안쪽이 된다고 안마을(內村)이라고 불려졌다. ‘탑마을(塔里)’은 탑말, 탑마, 탑촌 등으로 불리었으며 신라시대 남산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도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동서 각 양식이 다른 삼층석탑이 서 있다. 탑이 있는 마을이라 탑마을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 현재 남산동은 세 개의 통으로 이뤄져있고 새남산, 재설마을, 안마을, 탑마을 등의 자연부락명을 가진다. 14통은 ‘새남산’ ‘안마을(통일전 바로 옆 서출지와 무량사 있는 마을)’로, 15통은 ‘탑마을’ ‘재설마을’로, 16통은 ‘남쪽마을’ ‘뫼끝마을’이라고 부른다. 도로명은 남산1길~4길, 남산순화로, 남산예길 등이다. 통일전 근처에는 90%가 풍천 임씨가 살고 있고 탑마을 구역도 80%가 임씨 집성촌이다. 칠불암 가는 입구에는 경주 김씨 60%, 함안 조씨 40% 정도가 살고 있다. 이곳은 집성촌으로 거의 8촌에서 10촌 내외라고 한다. 현재 남산동의 가구수는 300여 가구며 주민들은 유동 인구까지 합해 700~800여 명이다. 상주인구는 500여 명 정도. 남산동에는 보물들이 많다. 통일전 바로 옆 남산1길에는 서출지와 정자 이요당이 동남산을 배경으로 앉은 폼새가 우아하다. 연못 둘레에는 산책로를 따라 배롱나무가 식재돼 풍광을 더한다. 수년전부터는 야경까지 아름답다. 서출지에서 조금 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남산4길의 남산리 삼층석탑을 만날 수 있다. 보물 제124호인 이 석탑은 두 개의 쌍탑으로 이뤄져있으며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쌍탑이다. 염불사 터로 전해지는 곳에 서 있는 두 개의 탑은 전(傳) 염불사지 동서삼층석탑이다. 이 탑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를 실시해 불국사역에 있던 동탑을 옮겨오고 밭 가운데 무너져 있던 서탑을 2009년 본래 자리에 복원했다. -사방이 남산으로 둘러싸여 ‘절 반, 집 반’인 마을, 새로 유입된 주민들 사는 ‘남산예길’ 마을의 중심에서 어디를 둘러보아도 완벽한 풍광을 자랑한다. 특히 예전 그대로인 흙담과 돌담들이 유난히 많아 눈길을 끈다. 사방이 남산으로 둘러싸여 ‘절 반, 집 반’인 마을이라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절과 암자가 많은 동네였다. 중흥사를 비롯해 보우선원, 감실사, 무량사, 남산사, 염불사 등이 주택들 사이로 보였다. 역시 동남산의 정기가 남다른 탓이라 여겨진다. 마을 안 여러 곳에선 문화유적 안내와 함께 이정표를 세워 마을 정보를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었다. 마을안 골목길에서의 주차를 자제해달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마을 안에는 제법 널찍한 주차장이 있다. 마을 언덕배기 다소 높은 지대의 집들 뒤로는 어김없이 동남산 자락으로 이어져있어 오랜 소나무와 대나무 등의 호위를 받고 있는 지형이었다. 지천으로 자생한 굵고 실한 소나무들의 피톤치드향이 온 마을에서 배어나온다. 탑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한옥 펜션들과 식당들이 하나둘씩 들어섰고 마당이 너른 집도 유독 많았는데 널찍한 마당에는 과객을 홀리는 화초들과 푸성귀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 마을로 가는 초입의 새남산길에는 강식당 시즌2가 촬영된 장소가 멋스러운 한옥 카페로 변신했다. 바로 ‘카페 수피아’다. 또 마을 안쪽 남산1길의 서출지 바로 뒤에 자리한 한옥카페는 ‘서오’다. 서출지가 내려다보이는 야외테라스의 분위기가 일품으로 브런치 메뉴도 있다. 이와 함께 시래기 밥집 ‘여기당’, ‘남산 휴게소’ 할머니 집 등은 자생적으로 하나 둘씩 생겨난 쉼터로 이 마을을 찾는 탐방객들을 반긴다. 새로 유입된 주민들이 사는 곳은 남산예길구역이다. ‘칠불암 한옥펜션’과 ‘남산길’ 게스트하우스 등이 운영되고 있다. 예술인들은 남산예길에 주로 살고 있는데 석공 윤만걸 명장, 백암요, 연 도예, 역사에 조예가 깊은 일본인 아라키 준, 야선미술관을 운영하는 박정희 작가, 자연치유힐링센터 남산한의원 등이 있다. -“가끔씩 큰 도시에 다녀오면 우리 마을 입구서부터 벌써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옛부터 주로 논농사를 지었다. 마을 큰 도로 옆 들판이 넓어 농사거리가 많아서다. 남산3길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이 동네 와서 결혼해 이 마을에서 삼남매를 얻었고 논농사 지어 공부시켜 사회의 중역으로 키워냈다고 했다. 어르신 댁 마당엔 곧 못자리를 할 시기여서 모판을 내놓고 있었다. 남산1길 ‘서출지손두부집’에선 며느리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한 어르신을 만났다. 이전에 살던 새남산동에서 얻어왔다는 꽃 모종들을 화단에 정성껏 심으며 물을 주고 있었다. 어르신은 ‘친정도, 시집도’ 이 동네라고 했다. 86세라고 하는 어르신이 내내 건강하시길 바라며 월요일이라 휴업이었던 이 집을 떠났다. 이 가게와 인접해있는 옆집은 대지가 약 500여 평이나 되는 옛날 부잣집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가 엄연히 구분돼있는 집이었다. 조금 더 걸어 또다른 손두부집에 들러 점심을 해결했다. ‘옛날시골가마솥’ ‘마을재배 100% 국산콩 사용’을 자랑하는 이 집은 두부처럼 순하고 연해보이는 안주인이 밝은 웃음으로 우리를 반긴다. “결혼한 지 40년 넘는 세월을 이 집에서 살고 있어요. 가끔씩 큰 도시에 다녀오면 마을 입구서부터 벌써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우리 마을이 얼마나 살기 좋은지 떠나보면 더 잘 알게 되더군요” -‘야생화의 집’...“사람들이 우리집에 들러서 구경하고 행복해하는 걸 보면 보람 느껴요” 남산순화로길에 있는 ‘정통우리된장’에선 된장을 담근다. 마당 가득 크고 작은 항아리에서 된장이 발효중이었다. 된장 냄새가 바람결에도 묻어난다. 바로 옆집은 ‘야생화의 집’이다. 250여 평 너른 마당에 욕심껏 들여놓은 야생화를 키우는 주인을 기어이 만나고 싶었다. 활짝 열어젖힌 대문안으로 성큼 들어가본다. 집을 들어서자 대문께 부터 온갖 종류의 야생화들이 줄지어 개화하고 있었고 뒷마당과 텃밭에도 주인의 정성이 가득한 꽃들이 지천으로 피고 있었다. 이 마을 일대가 다 환했다. “150여 가지의 꽃들이 2월부터 꽃대를 계속 올린답니다. 인왕동에서 이주해 온 지 40년이 넘었는데 수 십 년간 가꾼 결과라고 할까요?(웃음). 대부분이 20~30년씩 키운 것들입니다. 귀한 천남성부터 족두리꽃, 향란, 땅싸리꽃 등 온갖 야생화들이 저절로 번식하고 잘 자라주었어요. 하나씩 캐오고 수집한 결과 야생화 동산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힘들지만 재밌어요. 사람들이 우리집에 들러서 구경하고 행복해하는 걸 보면 보람도 느껴요. 눈만 뜨면 아침 일찍부터 정원 돌보는 일을 시작해요. 아무런 댓가없이 그냥 사람들과 나누는 행복이랍니다. 팔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팔진 않아요” 꽃 이야기를 하는 주인은 내내 표정이 밝다. 이 집 주인은 집 주변에도 꽃을 심어 동네를 화사하게 밝히고 있었다.
2019년 4월 25일자 본지 1387호 ‘지금 서울에는’ 난에 서울 강남구 삼성동이 지향하는 ‘한국의 타임스퀘어’를 구현하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 강남구가 삼성동 무역센터 빌딩(코엑스(COEX)을 중심으로 미국 뉴욕의 중심가인 타임스퀘어를 연상하게 하는 QLED광고거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사업중임을 알렸다. 만 1년이 지나는 시점 과연 그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때보다 무려 5개나 광고판이 늘었다.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인 1620㎡(가로 약 81m, 세로 약 20m) 크기의 ‘케이팝 스퀘어 미디어’와 1350㎡(가로 약 37.4m, 세로 약 36.1m) 크기의 ‘현대백화점 미디어월’ 두 사이니지가 전부였는데 코엑스 주위로 대형 광고판이 3개 늘었고 맞은 편 슈페리어 빌딩에도 대형 광고판이 가동 중이다. 여기에 삼성역에서 학여울역 방향 오른쪽에 작은(?) 사이즈의 광고판이 또 하나 설치돼 있다. 이런 광고들이 주변 운전자들에게 광고 안내를 넘어 황홀경을 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농구장 3개 크기 대형광고판이 연출하는 대자연의 모습과 인류 문명에 운전자들은 자칫 신호를 놓치기 일쑤일 정도다. 아트버타이징(Art+Advertising)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아직 뉴욕의 타임스퀘어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QLED광고판의 초대형 사이즈나 기술력은 이미 타임스퀘어를 앞질렀다는 평가를 듣는다. 특히 이 부문 기술을 집약, 발전시키고 있는 삼성전자의 LED 사이니지 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21대 총선에서 경주의 국회의원후보들은 공통적으로 경주역사의 재활용방안을 내세우며 표를 애원했다. 대체적으로 경주역사를 경주의 중심지, 경주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의견들이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내세운 후보는 없었다. 분명한 것은 누가 어떤 정책을 도입하건 이 부분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디지털 기술이란 점이다. 다시 한 번 삼성동 코엑스몰을 언급하는 것은 누구도 이런 일에 관심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경주는 꽃 들이면 안 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어서 꽃 농가와 판매상들이 힘들어졌어요”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던 지난 2월 13일, 서울시가 시민들을 위해 여러 가지 경제적 지원수단을 발표하면서 한 가지 눈에 띈 것이 있었다. 화훼농가를 위한 서울시 및 산하 공공기관에 공식적으로 꽃 선물 캠페인을 벌여 ‘1테이블 1플라워’ 정책을 시작했다. 당시 서울시는 코로나19 발생으로 졸업식과 입학식이 취소되자 꽃 가격이 떨어지고 소비가 갑자기 줄어들어 꽃 재배 농가와 판매상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에 따라 2월 14일부터 시장 및 부시장 집무실과 각종 회의실을 시작으로 청사로비와 구내식당까지 꽃이 놓이기 시작했고 매주 화요일은 화화데이로 정해 꽃소비 촉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경주시도 그런 행사를 해 주면 좋겠지요. 그러나 아무런 정책적 뒷받침은 없었고 오히려 시장님 취임 이후 2년 지나면서 꽃소비가 몰라보게 줄어들었어요” 황성동에서 꽃가게 ‘온정플라워’를 경영하는 김온정 사장의 말에는 부러움과 아쉬움, 앞으로의 걱정이 동시에 스며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코로나 19로 인해 온갖 행사들이 취소되면서 꽃 매출이 말도 못할 만큼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사장이 더 크게 염려하는 것은 따로 있다. “지금 당장의 상황은 바이러스가 극복되면 조금이나마 회복되겠지만 경주 일원에 퍼진 꽃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더 문제인 것 같아요. 이 예쁘고 아름다운 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꽃을 마치 부정부패의 원흉처럼 보고 있잖아요” 김온정 사장은 기본적으로 김영란 법 시행으로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꽃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어지간한 화분 하나가 보통 5~10만원이고 보니 김영란법이 규정하는 선물 5만원, 상한선에 딱 걸리면서 꽃매출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주낙영 시장이 취임하면서 꽃이나 화환을 보내지 말아달라고 당부한 것이 이후로 꾸준히 와전돼 시청에는 꽃 들이면 안 되는 식으로 인식되면서 경주시 전체가 꽃과 담쌓은 듯은 모습이 돼버렸다며 한숨이다. 허례를 막고 청렴함을 강조한 시장의 좋은 마음이 왜곡된 채 바로잡아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는 것.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경주시 전체 꽃 재배 농가들과 판매상들이 큰 타격을 입고 업종전환이나 생계보조수단으로 다른 일을 겸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김온정 사장 역시 꽃집 매출을 만회하기 위해 한동안 홍삼 대리점을 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23년 동안 공부해 온 꽃에 대한 열정이 아쉬워 다시 꽃에만 전념하게 됐다고 한다. 그나마 김사장은 맞벌이 부부라 그런대로 어려움을 이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주의 꽃 재배 농가와 판매상들은 말 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경주 꽃 시장은 말할 수 없이 위축돼버려서 이제는 질 좋은 꽃이 생산되지 않아 이중고를 겪고 있어요” 김온정 사장은 경주의 꽃재배 농가들이 줄어들면서 소비자 기호에 맞는 꽃을 조달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거꾸로 서울 강남의 꽃도매 상가에 꽃을 주문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고개를 가로 흔든다. 아무리 경주의 꽃으로 화환을 만들려고 해도 질이 받쳐주지 못하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 참고로 경주시청 2018년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생산면적 2만6200ha(헥타르), 생산량 99만6000본에 달하던 경주 화훼류 생산량은 무슨 이유에선지 2014년 들어 대부분 사라졌고 2015년 김영란법이 예고되면서 이전의 생산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2017년 기준 600ha, 1만6000본으로 극히 일부만 남았다. 주낙영 시장 취임 후인 2018년 이후 통계는 나와 있지 않은 관계로 정확한 데이터는 알 수 없으나 김온정 사장의 말을 빌리면 개선되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값싼 꽃배달, 조화 사용 등 실제와 달라···. “꽃에는 좋은 마음이 함께 들어 있어야지요.” 김온정 사장은 여기에다 몇 년 전부터 종편방송이나 케이블 티비를 통해 꾸준히 광고되는 값싼 꽃배달 서비스도 전체적인 화훼시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며 분개한다. “광고는 4만9900원이니 3만8000원이니 떠들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교묘한 낚시 광고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소비자들은 그런 내막을 알 수 없지요.” 실제로 이런 광고들은 조화(造花-가짜 꽃)를 사용하거나 판매가 아닌 렌트를 위주로 하는 경우, 비용 외에 배달료가 따로 청구되는 등 추가요금이 붙는 등 전통적인 꽃 배달과는 다르지만 소비자들은 이런 내막을 모르고 우선 가격이 저렴한 것을 보고 주문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꽃에는 좋은 마음이 함께 깃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김온정 사장은 무턱대고 값싼 화환들이 시장을 흔드는 것은 물론 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까지 해친다고 주장한다. 김온정 사장은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꽃과 나무가 주는 향기와 아름다움, 싱싱함에 빠져 사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한다. 꽃을 돌보고 가꾸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지기 때문. “꽃 잘 가꾸는 비결은 하나 밖에 없어요. 정성이죠. 정성을 많이 들이는 만큼 꽃과 나무는 반드시 보답합니다” ‘사람들은 꽃을 단순히 서있는 식물로 대하지만 꽃에도 감성이 있어서 자신에게 좋은 말 해주는 것을 알고 좋은 음악을 즐기기도 한다’며 그래서 꽃을 돌볼 때는 언제나 좋은 말로 꽃과 대화한다는 김온정 사장. 정성껏 키운 나무 한 그루, 난초 한 화분 내보낼 때는 마치 자식 출가시키는 기분이라며 은근한 꽃사랑을 자랑한다. “꽃을 내보낼 때 이 꽃을 받을 분에게 꽃을 통해 좋은 기운이 전해지기를 성심껏 기원하며 내보냅니다. 그래서인지 저희 집 꽃 받은 분들이 다 잘 되시더라고요” 요즘은 ‘스투키’나 ‘뱅갈 고무나무’ 같은 공기청정 효과가 크고 아주 가끔씩 물만 제때에 줘도 잘 사는 화분이 대세라고 소개하는 김온정 사장은 코로나19에 지친 시민들에게 자신이 정성으로 키운 화분들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며 낮게 파이팅을 외친다. 김온정 사장의 바람대로 경주도 서울처럼 꽃에 대한 좋은 인식들이 자리잡아 경주 꽃 농가와 판매점들이 미소를 다시 찾고 경주시내 관공서와 기업들이 아름다운 꽃으로 넘쳐날 수 있기를 바란다. -문의 054-776-7178
문화재청은 지역 내 판소리 전승 활동에 힘써오고 있는 정순임(78) 선생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로 이난초(59) 선생과 함께 인정 예고했다. 정순임 선생은 7세부터 어머니이자 판소리 명창인 故 장월중선(1925~1998)에게서 소리를 배워 판소리에 입문했다. 이후 故 박록주의 계보를 이은 故 박송희(1927~2017)로부터 흥보가를 이수했으며 2007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로 인정됐다. 정 선생은 두루 균형 잡힌 발성과 가창 능력에서 최고의 기량을 구사하고 있으며, 전승 활동 실적과 교수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유자로 함께 인정 예고된 이난초 선생은 호남 예인(藝人) 집안 출생으로 7세부터 故 김상용, 김흥남 명창에게 소리를 배웠으며, 1980년부터 故 강도근(1918~1996) 전 보유자에게 입문해 흥보가를 이수했다. 이 선생은 강도근 전 보유자로 이어진 동편제 소리를 정통으로 계승해 안정적으로 창법을 구사하며 전라북도 남원을 기반으로 많은 제자를 양성하는 등 전승 의지와 기반이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판소리 흥보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의 다섯 바탕 중 하나로 소리꾼의 재담과 해학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이번에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두 명창은 모두 동편제 계열의 흥보가를 전승하고 있다. 문화재청 측은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면서 흥보가 외에 판소리의 나머지 바탕과 고수 분야에 대해서도 올해와 내년에 걸쳐 보유자 인정을 지속해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삶의 뿌리이자 시의 모태인 경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주한태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첨성대 별’이 출간됐다. 보편과 서정에 맞닿아 있고 대중의 정서가 그대로 승화된 한 편 한 편의 시들은 모두의 삶을 어루만지는 노래처럼 읊어진다. 이번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돼 ‘ㄱ자 기와집’ ‘청령포’ ‘황남초등학교 길’ ‘황리단길’ 등 70편의 시를 싣고 있으며, 김호연 화백의 가슴으로 스며드는 잔잔한 그림이 어우러져 서정시의 품격을 더욱 고조시킨다. 한양대 유성호 교수는 “주한태 시인의 시적 순간은 우리에게 오랜 경험과 시간이 반복되고 축적돼온 집중 형식으로 다가온다. 시인은 바로 그 순간의 형식을 통해 충만하고 은은하고도 고전적인 품격을 한껏 보여줬다. 시집 ‘첨성대 별’은 앞으로도 우리 시단을 충만하게 비춰갈 것이고, 주한태 시인은 더욱더 심원해진 시적 차원으로 천천히 자신의 걸음을 옮겨갈 것”이라고 전했다. 주한태 시인은 “이번 시집은 내 가슴 속에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기억의 편린을 추상한 것으로 남녀노소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시집”이라면서 “‘첨성대 별’이 코로나19로 인해 심신이 지친 이들에게 잠시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한태 시인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경북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주여고 교장, 화랑교육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월간 ‘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 ‘연분홍 답장’ ‘내 사랑 어디에’ ‘눈망울 편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