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공공기관들이 한창 정부경영평가를 받는 기간이다. 정부경영평가는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사전 매뉴얼에 따라 기관 평가가 이루어진다. 작년까지만 해도 기관 실사는 평가위원이 기관 관계자를 대상으로 직접 만나 질의응답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화상회의로 대체됐다. 처음 화상회의로 진행한다고 하니 먼저 걱정이 앞섰다. 내가 한 4년 전에 경험해 본 화상 회의는 연결 자체가 어렵고, 중간 중간 끊기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그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곧 깨닫게 되었다. 정부경영평가 화상 실사 현장에서 경험해 본 화상회의는 내가 정말 우물 안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울과 원주라는 물리적 거리가 무색할 정도로 음성은 또렷했고 화면은 발언자를 향해 자동으로 움직였다. 그냥 단순한 발표가 아니라 화상으로 토론을 진행해도 될 정도였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이런 경험은 한참 후로 미루어지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나는 IMF 사태를 기억한다.
“사회에서 택시 타고 다니는 건 군바리밖에 없어”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군복무 중일 때, 휴가 후 복귀한 선임이 한 말이다. IMF로 세상이 모두 어려워졌는데 세상 물정 모르는 군인들만 택시를 타고 다녔다는 것이다. 이 말이 내가 기억하는 IMF와의 첫 대면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IMF 전과 후로 나뉜다. 내가 생각하는 IMF 전의 세상은 무조건 성장하는 시간이었고, 대학 졸업장이 있으면 웬만하면 취업은 걱정 없던 시절이었다.
“1학년 때는 도서관 가는 거 아니다”
라는 선배의 말은 금과옥조였고 나는 철저히 지켰다. 캠퍼스 잔디 있는 한 쪽은 공공연한 음주 장소였다. 신학기 때면 언제나 선배들이 신입생들을 이끌고 이곳저곳에서 술판을 벌였었다. 그러고서도 취업 걱정은 없었다. 소위 말하는 데모를 쫓아다니다 졸업을 앞둔 몇 개월 전에 일반상식이니 영어를 준비해서 무난하게 혹은 수석으로 취직했다는 무용담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IMF가 모든 걸 바꿨다. 토익은 필수가 되었고 대학생들은 입학 하자마자 취업 준비에 돌입한다. 어학연수나 인턴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코로나19가 IMF 때처럼 우리 삶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바꾸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나는 원격근무·재택근무를 경험하고 있다. 돌아가며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팀원들과 온라인으로 소통해 보니, 의외로 재택근무도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딸아이는 개학 연기에 이어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있다. EBS는 초중고 학년별 방송 채널을 통해 학교 시간표에 준해 초중고 전 학년 학습 콘텐츠를 제공한다고 한다. 처음이라 이런저런 문제점이 발생할 수야 있겠고 불평불만이 안 나올 수 없으리라.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는 곧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기술은 훨씬 더 멀리 나아간 듯하다.
이른바 ‘뉴 노멀(New Normal)’이다. 기업에서는 재택근무가 확대되고 회의는 서면이나 영상으로 대체된다. 학교에서도 집합교육은 점점 줄어들고 온라인 교육이 강화된다. 마트에서 장보기보다 ‘새벽배송’을 선호한다. 새로운 표준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소소하게는 이제는 ‘술잔 돌리는 문화’는 사라지지 않을까? IMF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도 우리 사회의 많은 모습들을 이미 바꿔 놓았고 또 더 바꿔 놓을 것이다. IMF 전과 후의 시대 중 어느 시대가 더 행복한 시대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IMF 사태를 잘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듯이 코로나19 사태 또한 세계 그 누구보다도 잘 극복해 나갈 것이며 또 적응해 갈 것이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이. 그리고 우리 경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