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자연환경과 문화재가 있는 삶 속에서의 한옥마을은 드물지 않습니까?” 다행스럽다. 신이 우리에게 남산동(南山洞)을 허락한 것은.  골기와가 아름다운 격조있는 마을. 월정교를 기점으로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헌강왕릉과 정강왕릉, 통일전에 이르는 약 8km의 ‘동남산 가는길’을 지나면 서출지, 남산동 동서삼층석탑, 염불사지석탑, 칠불암 등산로 입구로 이르는 남산동이 나타난다. 동남산 가는 길에서 만나는 남산동은 2000년 전 신라인의 정기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마을이다. 남산동은 고대 신라와 지금의 지층이 보이지 않는 연대로, 혹은 가시적으로 공존하는 마을이다. 남산동 마을 속엔 보물급 문화재들이 마을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 한 가운데 자리잡은 전(傳) 염불사지삼층석탑, 남산동 동·서삼층석탑, 삼국시대 연못 서출지 등의 문화재는 물론, 경북산림환경연구원, 옥룡암, 통일전, 헌강왕릉, 정강왕릉 등이 바로 지척이다. 이들 문화재들은 남산동 주민들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런 정경이 돼 왔다. 남산동은 대부분의 번잡하고 떠들썩한 문화유적관광지와는 마을의 대기부터 다르다. 주민들 실생활 깊숙한 곳에 문화유적과 유산이 자연스레 자리잡고 있는 마을은 드물기 때문이다. 마을 앞으로는 너른 보문들판을 마주하고 통일전과 산림환경연구원을 지나 이윽고 마주치는 남산동은 유난히 정갈하고 잘 정비된 마을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게다가 여느 시골마을에선 보기 어려운 활기와 생동감이 넘친다. 대부분의 집들엔 본 단장이 한창이었는데 단연코 화사한 봄꽃들이 으뜸이었다. 유난히 깨끗하고 단정한 집집마다엔 꽃들을 가꿔 더욱 마을을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새로 이주해 온 이들도 많다는 남산동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는 한나절 이상이 꼬박 걸릴만큼 다양한 이야기 거리와 볼거리를 지니고 있었다. -‘새남산’ ‘안마을` ‘탑마을’ ‘재설마을’ ‘남쪽마을’ ‘뫼끝마을’ 등의 자연부락명 가져// 서출지와 정자 이요당, 남산리 삼층석탑, 전(傳) 염불사지 동서삼층석탑 등 문화재 다수 이 마을은 신라 유리왕 9년에 사량부(沙梁部)라 칭하다가 고려 태조23년 남산부(南山部)로 개칭한 것이 마을 이름의 기원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안마을’은 안말, 안마, 내촌(內村), 피리사, 피촌 등 전하는 이름이 많다. 신라시대 피리사라는 절이 있었던 연유로 피리촌, 피이촌 등으로 불려 왔으며 동남산의 안쪽이 된다고 안마을(內村)이라고 불려졌다. ‘탑마을(塔里)’은 탑말, 탑마, 탑촌 등으로 불리었으며 신라시대 남산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도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동서 각 양식이 다른 삼층석탑이 서 있다. 탑이 있는 마을이라 탑마을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 현재 남산동은 세 개의 통으로 이뤄져있고 새남산, 재설마을, 안마을, 탑마을 등의 자연부락명을 가진다. 14통은 ‘새남산’ ‘안마을(통일전 바로 옆 서출지와 무량사 있는 마을)’로, 15통은 ‘탑마을’ ‘재설마을’로, 16통은 ‘남쪽마을’ ‘뫼끝마을’이라고 부른다. 도로명은 남산1길~4길, 남산순화로, 남산예길 등이다. 통일전 근처에는 90%가 풍천 임씨가 살고 있고 탑마을 구역도 80%가 임씨 집성촌이다. 칠불암 가는 입구에는 경주 김씨 60%, 함안 조씨 40% 정도가 살고 있다. 이곳은 집성촌으로 거의 8촌에서 10촌 내외라고 한다. 현재 남산동의 가구수는 300여 가구며 주민들은 유동 인구까지 합해 700~800여 명이다. 상주인구는 500여 명 정도.   남산동에는 보물들이 많다. 통일전 바로 옆 남산1길에는 서출지와 정자 이요당이 동남산을 배경으로 앉은 폼새가 우아하다. 연못 둘레에는 산책로를 따라 배롱나무가 식재돼 풍광을 더한다. 수년전부터는 야경까지 아름답다. 서출지에서 조금 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남산4길의 남산리 삼층석탑을 만날 수 있다. 보물 제124호인 이 석탑은 두 개의 쌍탑으로 이뤄져있으며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쌍탑이다. 염불사 터로 전해지는 곳에 서 있는 두 개의 탑은 전(傳) 염불사지 동서삼층석탑이다. 이 탑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를 실시해 불국사역에 있던 동탑을 옮겨오고 밭 가운데 무너져 있던 서탑을 2009년 본래 자리에 복원했다. -사방이 남산으로 둘러싸여 ‘절 반, 집 반’인 마을, 새로 유입된 주민들 사는 ‘남산예길’ 마을의 중심에서 어디를 둘러보아도 완벽한 풍광을 자랑한다. 특히 예전 그대로인 흙담과 돌담들이 유난히 많아 눈길을 끈다. 사방이 남산으로 둘러싸여 ‘절 반, 집 반’인 마을이라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절과 암자가 많은 동네였다. 중흥사를 비롯해 보우선원, 감실사, 무량사, 남산사, 염불사 등이 주택들 사이로 보였다. 역시 동남산의 정기가 남다른 탓이라 여겨진다. 마을 안 여러 곳에선 문화유적 안내와 함께 이정표를 세워 마을 정보를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었다. 마을안 골목길에서의 주차를 자제해달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마을 안에는 제법 널찍한 주차장이 있다. 마을 언덕배기 다소 높은 지대의 집들 뒤로는 어김없이 동남산 자락으로 이어져있어 오랜 소나무와 대나무 등의 호위를 받고 있는 지형이었다. 지천으로 자생한 굵고 실한 소나무들의 피톤치드향이 온 마을에서 배어나온다. 탑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한옥 펜션들과 식당들이 하나둘씩 들어섰고 마당이 너른 집도 유독 많았는데 널찍한 마당에는 과객을 홀리는 화초들과 푸성귀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 마을로 가는 초입의 새남산길에는 강식당 시즌2가 촬영된 장소가 멋스러운 한옥 카페로 변신했다. 바로 ‘카페 수피아’다. 또 마을 안쪽 남산1길의 서출지 바로 뒤에 자리한 한옥카페는 ‘서오’다. 서출지가 내려다보이는 야외테라스의 분위기가 일품으로 브런치 메뉴도 있다. 이와 함께 시래기 밥집 ‘여기당’, ‘남산 휴게소’ 할머니 집 등은 자생적으로 하나 둘씩 생겨난 쉼터로 이 마을을 찾는 탐방객들을 반긴다. 새로 유입된 주민들이 사는 곳은 남산예길구역이다. ‘칠불암 한옥펜션’과 ‘남산길’ 게스트하우스 등이 운영되고 있다. 예술인들은 남산예길에 주로 살고 있는데 석공 윤만걸 명장, 백암요, 연 도예, 역사에 조예가 깊은 일본인 아라키 준, 야선미술관을 운영하는 박정희 작가, 자연치유힐링센터 남산한의원 등이 있다. -“가끔씩 큰 도시에 다녀오면 우리 마을 입구서부터 벌써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옛부터 주로 논농사를 지었다. 마을 큰 도로 옆 들판이 넓어 농사거리가 많아서다. 남산3길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이 동네 와서 결혼해 이 마을에서 삼남매를 얻었고 논농사 지어 공부시켜 사회의 중역으로 키워냈다고 했다. 어르신 댁 마당엔 곧 못자리를 할 시기여서 모판을 내놓고 있었다. 남산1길 ‘서출지손두부집’에선 며느리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한 어르신을 만났다. 이전에 살던 새남산동에서 얻어왔다는 꽃 모종들을 화단에 정성껏 심으며 물을 주고 있었다. 어르신은 ‘친정도, 시집도’ 이 동네라고 했다. 86세라고 하는 어르신이 내내 건강하시길 바라며 월요일이라 휴업이었던 이 집을 떠났다. 이 가게와 인접해있는 옆집은 대지가 약 500여 평이나 되는 옛날 부잣집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가 엄연히 구분돼있는 집이었다. 조금 더 걸어 또다른 손두부집에 들러 점심을 해결했다. ‘옛날시골가마솥’ ‘마을재배 100% 국산콩 사용’을 자랑하는 이 집은 두부처럼 순하고 연해보이는 안주인이 밝은 웃음으로 우리를 반긴다. “결혼한 지 40년 넘는 세월을 이 집에서 살고 있어요. 가끔씩 큰 도시에 다녀오면 마을 입구서부터 벌써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우리 마을이 얼마나 살기 좋은지 떠나보면 더 잘 알게 되더군요” -‘야생화의 집’...“사람들이 우리집에 들러서 구경하고 행복해하는 걸 보면 보람 느껴요” 남산순화로길에 있는 ‘정통우리된장’에선 된장을 담근다. 마당 가득 크고 작은 항아리에서 된장이 발효중이었다. 된장 냄새가 바람결에도 묻어난다. 바로 옆집은 ‘야생화의 집’이다. 250여 평 너른 마당에 욕심껏 들여놓은 야생화를 키우는 주인을 기어이 만나고 싶었다. 활짝 열어젖힌 대문안으로 성큼 들어가본다. 집을 들어서자 대문께 부터 온갖 종류의 야생화들이 줄지어 개화하고 있었고 뒷마당과 텃밭에도 주인의 정성이 가득한 꽃들이 지천으로 피고 있었다. 이 마을 일대가 다 환했다. “150여 가지의 꽃들이 2월부터 꽃대를 계속 올린답니다. 인왕동에서 이주해 온 지 40년이 넘었는데 수 십 년간 가꾼 결과라고 할까요?(웃음). 대부분이 20~30년씩 키운 것들입니다. 귀한 천남성부터 족두리꽃, 향란, 땅싸리꽃 등 온갖 야생화들이 저절로 번식하고 잘 자라주었어요. 하나씩 캐오고 수집한 결과 야생화 동산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힘들지만 재밌어요. 사람들이 우리집에 들러서 구경하고 행복해하는 걸 보면 보람도 느껴요. 눈만 뜨면 아침 일찍부터 정원 돌보는 일을 시작해요. 아무런 댓가없이 그냥 사람들과 나누는 행복이랍니다. 팔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팔진 않아요” 꽃 이야기를 하는 주인은 내내 표정이 밝다. 이 집 주인은 집 주변에도 꽃을 심어 동네를 화사하게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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