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개인과 법인의 국세 고액 체납액이 2196억810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251억7700만원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불성실 기부금수령 단체 3곳도 공개됐다. 국세청은 지난 6일 고액·상습체납자, 불성실 기부금단체, 조세포탈범 등을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경주에서는 2020년 개인 48명과 법인 16곳이 추가됐다. 올해 추가 된 개인 고액체납액은 423억2800만원으로 이 모(64) 씨가 종합소득세 등 77억8500만원으로 가장 많은 국세를 체납했고, 법인에서는 71억2900만원 중 D산업(주)이 양도소득세 등 18억5500만원으로 법인 중 가장 많은 국세를 체납했다. 이번 신규 공개로 현재까지 경주에는 213명이 1630억5400만원의 국세를 체납했고 법인은 87곳에서 566억2700만원을 체납하고 있다. 국세청은 올해 불성실 기부금수령 단체도 공개했는데 전국 79곳 중 경주에서 3곳이 포함됐다. 인왕동에 위치한 B단체는 기부자별 발급명세 5억8400만원 미작성·미보관과 거짓 기부금영수증 207건 5억7400만원으로, 건천읍의 O단체는 거짓 기부영수증 84건 2500만원을 발급해 명단에 올랐다. 또 외동읍의 K단체는 거짓 기부금영수증 190건 2억8100만원 발급으로 명단에 추가됐다. 국세청은 “앞으로도 세법상 의무이행을 유도하고 성실한 납세 분위기 조성을 위해 고액 상습체납자, 불성실 기부금단체, 조세포탈범 등에 대해 엄정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2020년 고액·상습체납자 등의 명단은 국세청 홈페이지(https://www.nts.go.kr/) 정보공개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16일 세종청사에서 개최된 산업통상자원부 주관 정보보안 컨퍼런스에서 장관상 4관왕을 차지했다. 한수원은 이날 정보보안 감사와 해킹메일 훈련 유공 분야에서 기관상, 사이버보안 경진대회 정보분야와 제어분야에서 개인상을 수상했다. 특히 한수원이 정보보안 분야에서 기관상을 수상한 것은 2001년 창..
경주시가 코로나19 집단감염 우려가 높은 안강읍과 강동면 지역에 대해 16일 0시부터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격상한다. 연일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최근 포항시와 안강읍 지역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집단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따른 조치다. 안강읍에서는 지난 주말 확진판정을 받은 137번 확진..
경주에서 14일 가족 간 전파로 인해 3명이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다. 경주시에 따르면 138번, 139번, 140번 확진자로 전날 양성판정을 받은 137번 확진자의 아내와 아들 2명이다. 137번 확진자는 아직까지 감염경로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주시는 이들 확진자 중 안강읍 소재 초등학교 학생이 포함돼있어 현재 ..
경주시기업부설연구소협의회(이하 협의회)가 14일 출범했다. 협의회는 자동차 제조 등 지역 주력산업 육성을 위한 산학연관 혁신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출범식은 이날 힐튼호텔 그랜드볼룸 대회의장에서 열렸다.협의회는 경주에 사업장을 둔 자동차 소재·부품, 성형가공, 에너지, 바이오 등 4개 분야 기업과 경..
경북문화관광공사는 14일 ‘60초 경북여행 영화제’ 공모전 시상식을 비대면으로 진행했다.공모전은 지난 9월 17일부터 10월 23일까지 개최됐다. 경북도와 공사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60초 경북여행 영화제’ 공모전을 기획해 일반인 부문과 대학생 부문으로 나눠 진행했다. 총 96편이 접수된 가운데 17편..
경주 감포항에 소형 유람선이 운항할 수 있는 ‘미니 운하’가 조성된다. 13일 경주시에 따르면 해양수산부가 제9호 태풍 ‘마이삭’으로 월파 피해를 입은 감포항 친수공간의 항구적인 피해복구를 위해 친수공간을 관통하는 배수로를 조성한다.태풍 등 재난 상황 발생 시 바닷물이 빠져 나갈 물길을 만드는 것으로, 총 ..
경주에서 코로나19 관련 두 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13일 경주시에 따르면 지난 4일 양성판정을 받고 동국대 경주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경주지역 125번 확진자가 지난 11일 새벽 숨졌다. 숨진 확진자는 ‘영남대 음대’ 관련 n차 감염으로 확진판정을 받은 80대 여성이다. 며느리(108번)가 국악교습소에서 확진자인 영남대..
한국수력원자력이 경주지역과 함께하는 대표 공기업으로서 지역 일자리창출과 경제 활성화 기반 구축을 위해 경주시를 비롯한 여러 기관과 협업,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수원은 올해 경주 도심공동화 문제 해결을 위한 경주시 新골든특구 조성 및 청년창업 사업에 힘을 보탰다. 이 사업은 낙후된 도심에 창업특구..
경주시가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에 따라 유흥시설을 포함한 식당, 카페, 등에 대해 집중 점검한다. 시는 유흥시설 230여곳과 식당을 비롯한 커피숍, 이·미용실, 목욕탕 등 8800여곳을 대상으로 방역수칙 준수 여부를 집중 점검할 예정이다.앞서 경북도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권고에 따라 ..
경주시는 지난 10일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2기 진실화해위)’ 출범에 따라 이날부터 2022년 12월 9일까지 과거사 문제 진실규명신청을 받는다.진실화해위는 지난 6월 개정·공포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1기 활동이 종료된 지 10년 만에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앞서 1기 진..
경주 척사항이 해양수산부 주관 2021년 어촌뉴딜300사업 신규대상지에 선정됐다. 선정에 따라 경주시는 국비 47억원 포함 총사업비 68억원을 확보했다.어촌뉴딜 300사업은 낙후된 어촌의 혁신성장을 위해 선착장 등 어촌의 필수기반시설을 현대화하고 지역자원을 활용한 특화개발을 추진해 어촌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업이다..
모든것은 비워야지만 채워지고 채우려면 비워아 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채우는 것의 연속이다 탄생 또한 마찬가지다
매년 최하위권(5등급)을 벗어나지 못하던 경주시 청렴도가 2020년도 평가에서는 2단계 상승한 3단계로 나아진 것은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공공기관의 청렴수준 및 부패요인을 진단해 자율적 개선노력을 유도하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청렴도 평가에서 2020년도 경주시 청렴도는 지난해 평가보다 2단계 상승한 ‘종합 3등급’을 받았다. 권익위에 따르면 경주시는 ‘2020년도 청렴도 종합평가’에서 전국 75개 시 중 ‘종합 3등급(7.83점)’을 받았다. 시는 2018년 5등급(6.72점), 지난해 5등급(6.80점)을 받는 등 2016년부터 매년 최하위등급인 5등급에 머물렀지만 이번에는 나아진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시가 민선 7기 출범 이후 강도 높은 반부패 청렴 정책을 집중적으로 실시해온 결과로 보여 진다. 주낙영 시장도 2018년 7월 취임 이후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청렴도 향상을 위해 고강도 조치를 천명하는 등 청렴한 공직사회를 만들기 위해 매진했었다. 그리고 취임 2년째를 맞아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평가를 살펴보면 종합청렴도 3등급은 여전히 전국 대상 시의 평균 수준이라는 점이다. 이번에 민원인 상대로 평가한 외부청렴도(특정인에게 특혜제공, 갑질관행, 부정청탁에 의한 업무처리, 업무처리의 투명성과 공정성, 금품 및 향응, 편의 경험률 등)가 향상된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직원들 상대로 평가한 내부청렴도는 아직 전국 시의 평균에도 못 미쳤으며, 특히 업무 청렴은 전국 평균과 큰 차이를 보여 조직 내부 관리와 직원들 간 소통, 업무 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주 시장은 이번 평가결과에 대해 “민원인이 평가하는 외부청렴도에서 전반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그간 시가 노력해 온 부패 예방 노력 등에서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고 “아직 만족할 수준이 아니어서 갈 길이 멀다. 시민에게 봉사하는 청렴한 경주시로 거듭나기 위해 강도 높은 청렴시책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했다. 경주시의 청렴도는 공공에 대한 대외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도시 수준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시 청렴도가 과거에 비해 향상되고 있는 만큼 여기서 고삐를 늦추지 말고 개선에 매진해 최고의 청렴도로 최상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주시라는 평가를 받길 바란다.
경북도와 경주시가 지난 1일 0시 기준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로 높인지 불과 8일 만에 2단계로 격상하는 등 경주지역 코로나 확산세가 지역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이달 들어 경북도내에서 경주에서만 거의 매일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어 비상이 걸렸다. 경주지역은 지난 9일 0시 현재 133번 확진자가 발생했다. 지난 1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1.5단계로 높였지만 이 기간 20명에 가까운 확진자가 발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높였지만 이미 늦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겨울철 실내 활동이 많아지면서 감염 위험이 높아지는 환경이지만 지난 1차, 2차 확산 때보다 무증상 확진자들이 바이러스를 옮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경주 확진자들은 대부분 다수와 접촉했으며 노래연습장, PC방, 숙박업소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방문해 동선을 파악하기도 어려워 앞으로 확진자가 얼마나 많이 나올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현재로선 검사 후 확진자가 나오면 확진자 수를 발표하고 수습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경북도는 지난 8일 0시부터 28일 1시까지 경북형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다른 광역자치단체와는 달리 유흥업소와 방문판매, 노래연습장, 카페, 음식점 등 여러 업종별 운영 방침 등을 공표하고 모임·행사와 종교시설 참석 인원 제한 등 1.5단계 수준의 운영을 유지하면서 2단계 방역의무를 당부하고 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선 마스크 착용과 주기적인 시설 환기와 소독 등 방역수칙을 준수하고 출입자 명단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상향됐지만 아직 업종별로 출입자 관리는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이번에 경주지역에 무증상 확진자가 많고 감염경로가 불분명한 환자가 나오고 있다는 것은 출입자 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높인 경주도 앞으로 일주일이 매우 중요할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낮추는 것도 결국 시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경주의 현실이다. 코로나 확산위기를 막기 위해선 경주시의 철저한 관리, 감독과 시민들이 방역의무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최선이다. 정부가 확진자와 접촉하지 않았거나 증상이 없어도 진단 검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도록 확대했기 때문에 시민들은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검사를 받는 것도 바람직해 보인다.
사회적 안전거리 준수 단계 강화와 자영업자 한숨. 요즘 들어 어제 보다 적은 재료를 준비하여 손님응대를 하고 있지만 오늘도 손님에게 팔지 못한 재료들이 쌓이고 있다. 이 긴 터널이 언제 끝이 날지 아무도 모르고 억지 추측과 예측으로 희망고문을 하고 있다. 왜 자영업자들이 코로나 총알받이가 되어야 하는지 국민청원이 올라와 단 하루 만에 1만1000명의 동의를 얻어 사회적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자영업자의 사업정리와 폐업을 지원하는 중소벤처기업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위탁사업 희망리턴패키지 재기교육을 6년째 시행을 하고 있다. 2019년도 36년간 경영해 온 음식점 식당을 폐업지원하기 위하여 참여하신 자영업자의 폐업 사연은 “가족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해주고 싶어 폐업을 합니다”라고 하여 주변을 밝게 만든 상황이 있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 이후 참여하는 폐업자분의 이구동성 폐업 사연은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개업 한지 1년 미만의 자영업자의 한숨 속에는 70%이상 매출 감소이며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곳저곳 자금을 빌려와서 개업한 자영업이 매출 급감으로 이윤이 추구되지 않는 악순환 상황이 7개월째. 임대료와 공과금, 대출 이자 등 직접적인 생업 경제 애로를 이야기 하면서 온 정성을 드려 조성한 나의 점포를 차마 내 손으로 정리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정부의 점포 철거 비용이 지원된다고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국의 563만 자영업자는 99.5%가 자기 자본 또는 대출 융자 상환의무가 있는 창업 자금으로 개업을 하여 투자와 경영을 함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매출 감소에 의한 경영어려움을 극복 할 방법은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재기 교육 수업 시간에 가장 강조하는 것은 투자 받아 점포를 경영하자라고 한다. 제발 자신의 돈으로 창업하고 경영 하려고 하지 말아 달라고 강조 한다. 또한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고 하는 고정 관념을 버리라고 이야기 한다. 정말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공짜는 있다.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의 관점에서 이야기 하면 우선 상환 의무가 있는 것은 융자와 대출, 차입 자금이다. 하지만 일정 구비 요건이 충족되는 지원 사업은 상환의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요건 충족에 의한 지원으로 사업 목적에 부합한 행위를 하면 된다. 정부와 지자체 등 수 많은 예산이 일자리와 관련 예산이고, 각종 지원 정책을 쏟아 내고 있지만 정작 참여하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바로 이러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정책을 살피고, 찾아 하고자 하는 점포 경영에 접목하고, 운영 할 수 있도록 주목 하여야 한다.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원받아 창업 하여 개업 하신 분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가까이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가까운 지인과 예비 고객에게 점포 경영에 필요한 내용을 여쭙고, 참여 할 수 있도록 하여 투자 받아야 한다. 왜 우리는 건설업과 운수업, 여행업 같은 직종은 선지급에 의한 상품을 수령하고 이용하면서, 판매와 유통, 음식업은 후 정산으로 자금 압박을 받는지 이해 할 수 없다. 우선, 나의 점포 경영 업종에 소비자들이 참여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서 투자로 전환 하고, 투자자에게 서비스 하며, 재화와 용역을 제공 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모두 팔 수 있는 사업, 그것은 바로 투자하시는 고객, 이용자의 참여와 제품 이용에 있다. 그리고 이들이 경영 어려움에서 홍보와 판매 사원으로 동참하여 준다. 사업의 성과가 나올 때 세금과 각종 준조세(국민, 건강, 고용, 산재, 장기요양보험)로 인하여 원천 징수 납부자의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매출이 없고, 오늘 하루 당장 먹고 살길이 암담하다. 그렇다면 매출이 없는 지금 수익이 없는 지금 국가는 개개인에게 부족한 순이익만큼 지원하여 보전 하여야 하지 않는지? 참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 나도 이제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 하루 텅 빈 거리를 살피면서 초라한 하루살이의 꿈을 접고, 발걸음을 잠을 잘 수 있는 곳으로 돌려 본다. 자영업 하시는 분에게 힘과 위로를 드리는 글 보다 살아남는 방안을 찾아 제언하는 이 글이 요즘처럼 이렇게 무겁게 느껴진 적이 없다. 어서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지인에게 투자 받고, 지원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오늘의 이 위기를 하루 빨리 탈피하기를 소원한다.
어느 나라이든지 간에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역사를 되짚어 보면, ‘모두가 다 가난한 나라였다’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소위 말해서 오늘날 부자나라, 선진국 나라, 그리고 정말 잘사는 나라들도 어느 특정한 시대의 변곡점 이전 까지는 그냥 고만고만하게 살았던 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쉽게 퉁 쳐서 이야기하자면 중세시대에는 보편적으로, 계몽기 시대는 선별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은 그냥 그렇고 그렇게 사는 나라들이 대부분이었다. ‘산업혁명’과 ‘근대’라는 ‘결정적 변곡점’을 지나면서 오늘날의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로 전체적인 윤곽과 틀이 잡혔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모든 조상들은 어느 한 시절 가난한 ’그때의 그 시절’이 있었다. 그러하기에 가난 했던 그 시절에도 살아남아야 했던 우리의 조상뻘 되는 인류는 ‘먹고 또 마시는 일’에서 나름의 아픔과, 가슴 아린 기록의 편린들이 있었을 것임에 당연하다. 그래서 음식은 사는 이야기가 녹아 있는 것이고, 그리하여 삶의 일부분인 것이고, 생활문화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 사회학자들은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다면,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그 어려웠던 시기 먹고 사는 일들을 어떻게 해결을 하고 살았던가? 첫째, 서로 돕고 살았다. 둘째, 최악의 먹거리로 생명을 유지 했다. 셋째, 굶주려 죽는 일들이 허다했다. 시대마다 나라마다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 세 가지로 심플하게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어떻게 돕고 살았을까? 서구 유럽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국가이다. 따라서 통치 철학이나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사람들의 정서적 뿌리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있었다. 그래서 ‘사랑’이나 ‘긍휼’의 마음으로 서로 돕고 살았다. 이 과정에서 중세의 수도원이나 계몽기 시절이후 청교도와 복음주의 운동은 엄청난 역할을 했다. 우리의 조상들 또한 ‘환난상휼’의 유교적 이념이나 불교의 ‘이타행위’ 혹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가치에 입각해서 서로 돕고 살았다. 둘째, 최악의 먹거리로 목숨만 연명했다. 유럽 사람들은 ‘humble food’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오늘날 미식의 최고봉에서 군림하고 있는 프랑스 사람들도 개고기를 먹었던 시절이 있었고, 신사의 나라 영국 사람들도 보리죽을 먹고 동물들 내장까지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들이 허용할 수밖에 없는 먹거리의 경계는 사실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어떠했던가? 초근목피로 생명을 유지했고, 보릿고개란 말도 엄연히 역사에 남아 있다. 배고픈 시절에는 누구나 ‘개죽’이라도 먹고 살아남아야 했던 그 시절이었다. 흰 쌀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반쪽의 한반도 저 너머에 있다. 마지막으로, ‘기아’로 인해서 죽어야만 했던 일들은 부지기수로 많았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나 통계는 대부분 숨기고 있거나 드러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아일랜드의 경우 거의 800만 인구 중 400만 정도의 인구가 기아로 인해서 죽었거나 난민으로 모국을 떠났던 인류 역사상 최악의 먹거리 대참사로 기록되어 있듯 먹지 못해서 죽은 사람들은 질병으로 죽는 사람만큼이나 많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인간의 생존’과 ‘음식’에 대해서 이렇게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 있단 말인가. 바로 ‘더불어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첫째, 서로 돕고 살았다. 둘째, 최악의 먹거리로 생명을 유지 했다. 셋째, 굶주려 죽는 일들이 허다했다’ 이 세 가지로 전개 된 필자의 ‘생존’과 ‘음식’의 상관관계 논지는, 사실 ‘첫째, 서로 돕고 살았다’에서 끝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하다면 최악의 먹거리로 생명을 유지할 일도, 굶어서 죽는 일도 우리도 더 많이 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향땅 경주시의 ‘사랑의 김장 김치 나누기’ 행사 소식을 보면서 참 기쁘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이 행사가 시청에서, 자치단체, 면, 동, 기업 심지어 조그마한 식당업주까지 릴레이로 전개 되는 과정을 보면서, 필자는 내심 탄성을 질렀다. 이 시즌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지만, 경주처럼 ‘범시민적으로’ 축제처럼 하는 곳은 어느 곳에도 없다. 하물며 겨울철 먹거리로 김장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경주신문 필진으로 참여하면서 필자가 원고의 방향으로 천명한 것이 ‘브랜드 경주와 음식’이었다. ‘사랑의 김장 김치 나누기’ 행사는 현재의 진행 상황만을 놓고 볼 때 ‘브랜드 경주’를 더 한층 빛나게 해 줄 수 있는 멋진 조력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음식 사회’를 통해서 본 필자의 진단이다. 먼저 해야 하고, 기왕지사 할 바에는 확실히 해야 한다.
잊혀져가는 소방 역사를 짐작케하는, 오래된 장비를 간직한 소방서가 건천에 있습니다. 경주시 건천읍 모량1리 경로당 바로 옆, 작지만 단단한 옛 건천소방서(건천모량의용소방대)가 바로 그 주인공 입니다. 지금의 규모로 따지자면 읍면동에 있는 119지역대 정도가 될까요? 허름하고 낡은 건물이지만 모양새가 단단하고 야무집니다. 큰 글씨로 쓴 ‘불조심’이라는 경구는 예나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물론, 지금은 가동되지 않고 건천읍 내서로 1065에 있는 경주소방서 건천119안전센터가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빨간색으로 칠해진 셔트문을 드르륵 올리면 1990년대에 출시된 작은 소형 소방 트럭 한 대와 놀랍게도, 일제강점기부터 사용하던 옛 소방기구들이 고스란히 보존돼 남아있었습니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기물들이었습니다. 소방차가 없던 시절 사용했던 완용소방펌프(수레형 소방차)는 그 모양새가 참 독특했습니다. 벽면에는 소화기구인 각종 쇠스랑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고 완용소방펌프는 지금의 소방차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때 사용하던 완용소방펌프는 사람이나 소, 말이 끌고 다니며 불을 끌대 사용하던 지금의 소방차였다고 합니다. 광복 이후 까지 실제로 사용됐다고 하니 그저 신기하고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올해 초 문화재청은 근현대문화유산 목록화 사업을 시작했고 소방안전 분야도 포함된다고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아도 관련 유물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곳이 소중하기만 합니다. 그 가치를 주민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수 년 전 소방박물관 측에서 이 유물을 기증해달라는 요청을 뿌리쳤으니까요. 이곳은 모량리 의용소방대 대장과 대원들이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약 70년 된 건물입니다. 요즘은 소방서에서 출동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이 일대 소화를 담당했었지요. 쇠스랑들은 예전에 초가집들이 많아서 볏짚을 끄집어내고나서 물 뿌리고 할 때 사용하던 기물입니다. 불을 끌 때 완용소방펌프(수레형 소방차)가 실제로 출동하기도 했어요. 약 50여 년 전, 동네서 불이 나면 어른들이 이 수레를 끌고 밀며 불을 껐던 기억이 납니다” 인근 주민의 회고입니다. 이 소방서에는 첨탑이 하나 있는데 그 꼭대기에 사이렌이 장착돼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사이렌이 이곳 맞은편 고목위에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돌려야만 사이렌 소리가 났기 때문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 울리곤 했습니다” 겨울 짧은 하루 해가 ‘까무룩’ 저물어가는 모량1리에도 저녁은 오고 70여 년간 수많은 저녁을 함께 맞이했을 이 소방서도 주민들 곁을 지켰을테죠. 시골마을 작은 소방서와 옛 소방기물들이 앞으로도 주민들의 옛 시절을 소환하고 소방의 역사를 보여주는 추억의 장치로 잘 보존되기를 바라봅니다.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 그림=김호연 화백
경주에 수많은 의병장들이 활약하였고, 곳곳에 그들의 넋을 숭모하는 사당이 건립되었지만, 아쉽게도 주요 관광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찾는 이의 발길은 한산하다. 찬바람이 부는 어느 날, 천북 소재의 성남서사를 찾아 차를 타고 골목 곳곳을 누비며 지난 행적을 쫓았다. 경주시 천북면 성지리에 위치한 성남서사(聲南書社)는 의병장 운암(耘庵) 최봉천(崔奉天,1564~1597)을 모신 공간으로 경주의 의기(義氣)가 서린 곳이다. 1789년 약남(藥南) 이헌락(李憲洛,1718~1791)이 지은 행장을 참고하면, 황오리에서 태어난 운암은 어려서 재종형 최신린(崔臣隣)에게 글을 배웠고, 15세(1578)에 향시에서 장원하였다. 1585년 22세 때에 아들 최계량(崔繼良)이 태어나고, 군위에 있는 남계서당에서 예조판서 서애 류성룡을 찾아가 만났으며, 견위수명(見危授命)의 말씀을 마음에 새겼다. 1588년 무과 별시에 합격하였으며, 종종 이태립(李台立)·김석견(金石堅)·백이소(白以昭) 등과 함께 무예를 익혔다고 기록한다. 대마도주 평의지(平義智)가 부산에 와서 일본이 장차 변란을 일으킬 것이라 하여 온 나라가 소란하자, 운암은 경주부윤에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방비의 글을 올렸다. 29세 때 왜란이 발발하자 붓을 던지고 4살 아래인 조카 최진립(崔震立,1568~1636)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경주성 탈환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최계종(崔繼宗) 등과 함께 문천회맹에도 참가하였다. 항상 선봉에 나서 타인의 귀감이 되었으며, 전술전략이 빼어나 공을 세웠다. 1594년에 선략장군 훈련원첨정, 1595년 경상좌도 수군우후, 1596년 절충장군 경상좌도 수군우후 등을 지냈으며, 1597년 34세 되던 정유재란 때에 또다시 의병을 모아 싸우다가 백이소 등과 영천 창암진(倉巖陣)에서 적의 탄환에 맞아 전사하였다. 사후 1605년 선조 38년 4월 16일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녹권(錄券)되었고, 4월 26일에는 부모에게 2품의 관직이 내려졌으며, 1607년에 아들 최계량에게 벼슬이 내려졌다. 세월이 흘러 1821년 가선대부 병조참판에 증직되고,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모시는 사당 부조묘가 세워졌으며, 1984년 부조묘 오른쪽에 성남서사를 창건하기에 이른다. 이에 후손들은 화재로 소실된 운암의 사적을 다시 모아서 『운암실기』를 편찬하였는데, 1959년에 권상규가 서문을, 최영우가 발문을 지었으며, 운암의 12대손 최해구(崔海九) 그리고 최세목(崔世睦)·최수민(崔壽民) 등이 힘써 도왔다. 성남서사 사우(祠宇)에는 상충사(尙忠祠), 강당은 경의당(景義堂) 그리고 추모정(追慕亭)·유정재(由正齋)·탁충문(卓忠門)·덕수재(德修齋)·진경재(愼敬齋)·한탁헌(澣濯軒) 등이 있다. 현재는 찾는 이가 드물고 의병정신의 혈기는 퇴색된 채 세월의 무상함만 가득할 뿐이다. 운암의 신주를 모신 부조묘는 경주의 자랑이며, 후세에게 전해져야 할 소중한 정신문화 공간이지만, 아직까지 운암에 대한 연구가 미비한 실정이다. 다만, 공의 7대손 최주곤(崔柱崑)이 묘지명을, 귀연(歸淵) 김근순(金近淳,1772~?)이 묘지명을, 운산(雲山) 이휘재(李彙載,1795~1875)가 묘갈명 등을 지으며, 그의 자취를 남겼다. 운암은 왜군이 쳐들어 왔을 때 요충지를 지킬 책무는 없었지만, 선비의 도리를 지킨 절의(節義)의 인물로, 문무를 겸비하며 선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스스로 개척하였고, 가문과 지역사회 그리고 나아가 나라를 위하는 우국충정(憂國衷情)을 실천하였다. 한문학자 이가원(李家源,1917~2000)선생은 1986년에 성남서사 기문을 지으며, “공의 12대손 최해구가 선대의 지극한 정성을 드러내고, 집안 어르신의 뜻을 계승하는 것에 감동하였다.”라며 후손 최해구·최문철·최수순 등의 노력을 치하하였다. 『운암실기』 중에서~ *운암실기 간행위원회 정유재란 2월에 운암은 경상좌도 수군우후의 직위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있었다. 왜구는 다시 14만 대군을 이끌고 거제도와 서생포 등으로 침입해오자, 수군통제사 원균은 패하여 죽고, 여러 고을 사람들은 왜구의 풍문만 듣고도 도망하여 숨었다. 승세를 올린 왜구는 7월에 총공세를 펼친 끝에 경상도와 전라도를 점령하였다. 당시 왜장 가등청정(加籐淸正,가토 기요마사)과 부장 희팔(喜八)은 군위-신령-영천-안강-경주 등을 거쳐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왔다. 마침내 9월에 영천 창암에서 경주와 영천 등의 관군과 의병들이 연합하여 일대 총격전을 벌였다. 당시 아군의 숫자는 적고 왜군이 월등히 많았다. 이 전투에서 운암과 백이소의 활약이 크게 두드러졌다.
발레음악하면 연상되는 작곡자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이콥스키(Pyotr Tchaikovsky/1840-1893)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면 베토벤이나 바그너가 발레음악을 작곡했던가? 금시초문일 것이다. 19세기의 발레음악은 이류 작곡가의 몫이었다. 소위 잘 나가는 작곡가들은 발레곡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당시에도 정상급 작곡가였지만 발레음악에도 손을 댔다. 그의 작곡으로 발레음악의 위상은 높아졌고, 그에겐 ‘발레음악의 선구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이른 바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곡 작품(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인형)은 오늘날에도 고전발레의 대표작품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아는가? 차이콥스키는 생전에 이 작품들의 흥행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백조의 호수는 1877년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초연되었지만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은 대체로 의상과 안무였지만, 음악에 책임을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 후 13년이 흘러 1890년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한 두 번째 작품,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그래도 백조의 호수 만큼의 실패작은 아니었다. 문제는 세 번째 작품이다. 오늘날 12월의 효자상품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호두까기인형은 1892년 마린스키 초연에서 그야말로 폭삭 망했다. 발레를 한 단계 후퇴시켰다는 참담한 혹평까지 들었다. 차이콥스키의 불멸의 발레곡 세편의 시작은 이렇게 미미했다. 백조의 호수는 차이콥스키가 죽은 후 마린스키 극장의 프티파와 그의 조수 이바노프(L.Ivanov/1834-1901)의 새로운 안무로 화려하게 부활(1895년)한다. 2막과 4막의 호숫가 정경을 안무한 이바노프의 공이 특히 컸다. 초연이 비교적 좋았던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1921년 런던 공연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된다. 한편 호두까기인형은 1934년 바이노넨(V.Vainonen/1901-1964)의 수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된다. 그리고 1954년 러시아발레단의 후예인 조지 발란신이 뉴욕에서 공연하면서 세계적인 유행작품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무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흐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차이콥스키가 주로 발레음악 작곡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다재다능한 작곡가였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오페라인 예브게니 오네긴(Evgenii Onegin/1879년 초연)을 작곡했고, 교향곡이나 협주곡 작곡도 수준급이다. 6번 교향곡 비창과 바이올린 협주곡은 오늘날 널리 연주되는 차이콥스키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