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이든지 간에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역사를 되짚어 보면, ‘모두가 다 가난한 나라였다’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소위 말해서 오늘날 부자나라, 선진국 나라, 그리고 정말 잘사는 나라들도 어느 특정한 시대의 변곡점 이전 까지는 그냥 고만고만하게 살았던 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쉽게 퉁 쳐서 이야기하자면 중세시대에는 보편적으로, 계몽기 시대는 선별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은 그냥 그렇고 그렇게 사는 나라들이 대부분이었다. ‘산업혁명’과 ‘근대’라는 ‘결정적 변곡점’을 지나면서 오늘날의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로 전체적인 윤곽과 틀이 잡혔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모든 조상들은 어느 한 시절 가난한 ’그때의 그 시절’이 있었다. 그러하기에 가난 했던 그 시절에도 살아남아야 했던 우리의 조상뻘 되는 인류는 ‘먹고 또 마시는 일’에서 나름의 아픔과, 가슴 아린 기록의 편린들이 있었을 것임에 당연하다. 그래서 음식은 사는 이야기가 녹아 있는 것이고, 그리하여 삶의 일부분인 것이고, 생활문화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 사회학자들은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다면,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그 어려웠던 시기 먹고 사는 일들을 어떻게 해결을 하고 살았던가? 첫째, 서로 돕고 살았다. 둘째, 최악의 먹거리로 생명을 유지 했다. 셋째, 굶주려 죽는 일들이 허다했다. 시대마다 나라마다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 세 가지로 심플하게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어떻게 돕고 살았을까? 서구 유럽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국가이다. 따라서 통치 철학이나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사람들의 정서적 뿌리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있었다. 그래서 ‘사랑’이나 ‘긍휼’의 마음으로 서로 돕고 살았다. 이 과정에서 중세의 수도원이나 계몽기 시절이후 청교도와 복음주의 운동은 엄청난 역할을 했다. 우리의 조상들 또한 ‘환난상휼’의 유교적 이념이나 불교의 ‘이타행위’ 혹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가치에 입각해서 서로 돕고 살았다.
둘째, 최악의 먹거리로 목숨만 연명했다. 유럽 사람들은 ‘humble food’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오늘날 미식의 최고봉에서 군림하고 있는 프랑스 사람들도 개고기를 먹었던 시절이 있었고, 신사의 나라 영국 사람들도 보리죽을 먹고 동물들 내장까지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들이 허용할 수밖에 없는 먹거리의 경계는 사실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어떠했던가? 초근목피로 생명을 유지했고, 보릿고개란 말도 엄연히 역사에 남아 있다. 배고픈 시절에는 누구나 ‘개죽’이라도 먹고 살아남아야 했던 그 시절이었다. 흰 쌀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반쪽의 한반도 저 너머에 있다.
마지막으로, ‘기아’로 인해서 죽어야만 했던 일들은 부지기수로 많았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나 통계는 대부분 숨기고 있거나 드러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아일랜드의 경우 거의 800만 인구 중 400만 정도의 인구가 기아로 인해서 죽었거나 난민으로 모국을 떠났던 인류 역사상 최악의 먹거리 대참사로 기록되어 있듯 먹지 못해서 죽은 사람들은 질병으로 죽는 사람만큼이나 많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인간의 생존’과 ‘음식’에 대해서 이렇게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 있단 말인가. 바로 ‘더불어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첫째, 서로 돕고 살았다. 둘째, 최악의 먹거리로 생명을 유지 했다. 셋째, 굶주려 죽는 일들이 허다했다’ 이 세 가지로 전개 된 필자의 ‘생존’과 ‘음식’의 상관관계 논지는, 사실 ‘첫째, 서로 돕고 살았다’에서 끝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하다면 최악의 먹거리로 생명을 유지할 일도, 굶어서 죽는 일도 우리도 더 많이 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향땅 경주시의 ‘사랑의 김장 김치 나누기’ 행사 소식을 보면서 참 기쁘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이 행사가 시청에서, 자치단체, 면, 동, 기업 심지어 조그마한 식당업주까지 릴레이로 전개 되는 과정을 보면서, 필자는 내심 탄성을 질렀다. 이 시즌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지만, 경주처럼 ‘범시민적으로’ 축제처럼 하는 곳은 어느 곳에도 없다. 하물며 겨울철 먹거리로 김장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경주신문 필진으로 참여하면서 필자가 원고의 방향으로 천명한 것이 ‘브랜드 경주와 음식’이었다. ‘사랑의 김장 김치 나누기’ 행사는 현재의 진행 상황만을 놓고 볼 때 ‘브랜드 경주’를 더 한층 빛나게 해 줄 수 있는 멋진 조력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음식 사회’를 통해서 본 필자의 진단이다. 먼저 해야 하고, 기왕지사 할 바에는 확실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