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소방 역사를 짐작케하는, 오래된 장비를 간직한 소방서가 건천에 있습니다. 경주시 건천읍 모량1리 경로당 바로 옆, 작지만 단단한 옛 건천소방서(건천모량의용소방대)가 바로 그 주인공 입니다.
지금의 규모로 따지자면 읍면동에 있는 119지역대 정도가 될까요? 허름하고 낡은 건물이지만 모양새가 단단하고 야무집니다. 큰 글씨로 쓴 ‘불조심’이라는 경구는 예나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물론, 지금은 가동되지 않고 건천읍 내서로 1065에 있는 경주소방서 건천119안전센터가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빨간색으로 칠해진 셔트문을 드르륵 올리면 1990년대에 출시된 작은 소형 소방 트럭 한 대와 놀랍게도, 일제강점기부터 사용하던 옛 소방기구들이 고스란히 보존돼 남아있었습니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기물들이었습니다.
소방차가 없던 시절 사용했던 완용소방펌프(수레형 소방차)는 그 모양새가 참 독특했습니다. 벽면에는 소화기구인 각종 쇠스랑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고 완용소방펌프는 지금의 소방차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때 사용하던 완용소방펌프는 사람이나 소, 말이 끌고 다니며 불을 끌대 사용하던 지금의 소방차였다고 합니다. 광복 이후 까지 실제로 사용됐다고 하니 그저 신기하고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올해 초 문화재청은 근현대문화유산 목록화 사업을 시작했고 소방안전 분야도 포함된다고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아도 관련 유물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곳이 소중하기만 합니다. 그 가치를 주민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수 년 전 소방박물관 측에서 이 유물을 기증해달라는 요청을 뿌리쳤으니까요. 이곳은 모량리 의용소방대 대장과 대원들이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약 70년 된 건물입니다. 요즘은 소방서에서 출동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이 일대 소화를 담당했었지요. 쇠스랑들은 예전에 초가집들이 많아서 볏짚을 끄집어내고나서 물 뿌리고 할 때 사용하던 기물입니다. 불을 끌 때 완용소방펌프(수레형 소방차)가 실제로 출동하기도 했어요. 약 50여 년 전, 동네서 불이 나면 어른들이 이 수레를 끌고 밀며 불을 껐던 기억이 납니다” 인근 주민의 회고입니다.
이 소방서에는 첨탑이 하나 있는데 그 꼭대기에 사이렌이 장착돼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사이렌이 이곳 맞은편 고목위에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돌려야만 사이렌 소리가 났기 때문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 울리곤 했습니다”
겨울 짧은 하루 해가 ‘까무룩’ 저물어가는 모량1리에도 저녁은 오고 70여 년간 수많은 저녁을 함께 맞이했을 이 소방서도 주민들 곁을 지켰을테죠. 시골마을 작은 소방서와 옛 소방기물들이 앞으로도 주민들의 옛 시절을 소환하고 소방의 역사를 보여주는 추억의 장치로 잘 보존되기를 바라봅니다.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 그림=김호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