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음악하면 연상되는 작곡자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이콥스키(Pyotr Tchaikovsky/1840-1893)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면 베토벤이나 바그너가 발레음악을 작곡했던가? 금시초문일 것이다. 19세기의 발레음악은 이류 작곡가의 몫이었다. 소위 잘 나가는 작곡가들은 발레곡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당시에도 정상급 작곡가였지만 발레음악에도 손을 댔다. 그의 작곡으로 발레음악의 위상은 높아졌고, 그에겐 ‘발레음악의 선구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이른 바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곡 작품(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인형)은 오늘날에도 고전발레의 대표작품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아는가? 차이콥스키는 생전에 이 작품들의 흥행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백조의 호수는 1877년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초연되었지만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은 대체로 의상과 안무였지만, 음악에 책임을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 후 13년이 흘러 1890년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한 두 번째 작품,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그래도 백조의 호수 만큼의 실패작은 아니었다. 문제는 세 번째 작품이다. 오늘날 12월의 효자상품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호두까기인형은 1892년 마린스키 초연에서 그야말로 폭삭 망했다. 발레를 한 단계 후퇴시켰다는 참담한 혹평까지 들었다. 차이콥스키의 불멸의 발레곡 세편의 시작은 이렇게 미미했다. 백조의 호수는 차이콥스키가 죽은 후 마린스키 극장의 프티파와 그의 조수 이바노프(L.Ivanov/1834-1901)의 새로운 안무로 화려하게 부활(1895년)한다. 2막과 4막의 호숫가 정경을 안무한 이바노프의 공이 특히 컸다. 초연이 비교적 좋았던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1921년 런던 공연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된다. 한편 호두까기인형은 1934년 바이노넨(V.Vainonen/1901-1964)의 수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된다. 그리고 1954년 러시아발레단의 후예인 조지 발란신이 뉴욕에서 공연하면서 세계적인 유행작품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무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흐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차이콥스키가 주로 발레음악 작곡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다재다능한 작곡가였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오페라인 예브게니 오네긴(Evgenii Onegin/1879년 초연)을 작곡했고, 교향곡이나 협주곡 작곡도 수준급이다. 6번 교향곡 비창과 바이올린 협주곡은 오늘날 널리 연주되는 차이콥스키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