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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신라의 밤이여’~ 대중가요에 담긴 경주와 신라의 숨결(上)

환동해권 중 대중가요 가장 많이 탄생한 경주… 다양한 유적유물 노랫말로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471호입력 : 2021년 01월 07일
↑↑ 현인의 대표곡이자 모든 경주테마곡 가운데 최고의 상징적 노래인 ‘신라의 달밤’ 음반.

대중음악은 우리 삶에서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생성되고 작용하며 줄곧 이어져간다. 거기엔 시대와 역사와 민중 생활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소중하고 고귀한 문화사적 성과를 이룩하고 축적해왔다. 우리 가요는 유행가, 신가요, 대중가요, 트로트 등으로 불려온 노래 양식이 그동안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던 온갖 외래적 요소와 갖가지 혼합, 혼종, 혼혈의 과정을 겪으며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힘들었던 시련의 세월을 잘 이겨내고 100여년이 넘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오늘에 다다르게 된 것처럼 노래 또한 고난의 역사를 너끈히 견디어 오늘에 당도한 것이다.

시대가 흐르면 한 지역을 대표하는 가요작품들이 종종 발표되곤 한다. 우리 지역에 시그니처가 될 만한 노래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지역민에게 큰 자부심을 가져다준다. 그렇다면, 경주를 테마로 노래한 유행가는 언제부터 발표되었으며 대표곡은 무엇이며 어떤 곡들이 있을까. 1931년 발표된 ‘마의태자’부터 최근의 ‘경주아가씨’까지 경주를 소재로 다룬 곡들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이번호에서는 먼저 1931년~1970년대까지의 경주 노래를 다루었다. 본 기사는 시인이자 국문학자(영남대 명예교수, 계명문화대 특임교수)인 이동순 선생의 신간 ‘노래 따라 동해 기행(2020, 걷는사람, 이동순 지음)’과 대구은행 지역지 ‘향토와 문화’ 제96호(유행가)에 선생이 게재한 글에서 인용하고 발췌해 재구성했음을 밝혀둔다. ‘노래 따라 동해 기행’은 경상북도 동해안 지역의 울진, 영덕, 포항, 울릉, 경주 등 5개 지역을 다룬 노래를 선별해 작품의 미학적 측면을 음미하며 특성을 정리해 집필한 책이다. 

-환동해권 지역 가운데 대중가요가 가장 많이 탄생한 곳은 경주가 단연 으뜸, 경주를 테마로 가장 먼저 발표된 작품은 ‘마의태자(1931년)’
예로부터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고장에는 반드시 아름다운 노래가 태어난다고 일렀다. 경상북도의 주요지역 중 바다에 연접해 있는 5개 지역(울진·영덕·포항·울릉도와 독도·경주)을 통틀어 환동해권이라 부른다. 환동해권 지역가운데 대중가요가 가장 많이 탄생한 곳은 단연 경주가 으뜸이다. 1931년 2월, ‘마의태자(이은상 작사, 안기영 작곡·노래)’는 우리 지역 경주를 테마로 가장 먼저 발표된 곡이다.

‘그 나라 망하니 베옷을 감으시고/그 영화 버리니 풀뿌리 맛보셨네/애닯다 우리 태자 그 마음 뉘 알고/풍악산 험한 골에 한 품은 그 자최/지나는 길손마다 눈물을 지우네/태자성 옛터엔 새들이 지저귀고/거하신 궁들은 터조차 모를도다/설워라 우리 태자 어데로 가신고/황천강 깊은 물에 뿌리신 눈물만/곱곱이 여울 되어 만고에 흐르네//’


이 노래가 발표된 당시는 나라의 주권이 일본에 강탈당한 시절이라 신라 마지막 왕위를 계승했을 ‘마의태자’ 테마가 대중들의 정서에 은근한 호소력을 지녔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 곡의 작사자 이은상은 시조 시인이다. 이 노래를 작곡하고 직접 노래한 안기영은 1900년 충남 청양 출생.

이어, 또 한 곡의 마의태자가 발표된다. 1934년, ‘마의태자(유도순 작사, 김준영 작곡, 미스코리아 노래)’가 그것이다.

‘풀 옷을 몸에 감고 금강에 해 지우니/망군대 바윗돌에 새긴 뜻 한숨짓네/명경대 맑은 물에 손 씻고 일어나니/천 리 밖 경주성이 눈물에 어리운다//’

이 노래는 1931년 안기영의 <마의태자>가 발표되고 3년 만에 나온 또다른 마의태자 테마곡이다. 이처럼 한국 가요사에는 같은 제목으로 마의태자를 노래한 곡들이 다수 있다. 이 곡을 노래한 미스코리아의 본명은 김추월이다. 평양 기성 권번 출신으로 알려졌으며 왕수복, 선우일선처럼 기생 활동을 하다가 가수로 발탁되었다. 마의태자 설화는 대중의 심금을 울리고 연민을 자아내는 매우 유용한 소재였다. 미스코리아가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한 이 곡은 JODK, 즉 경성방송국 전파를 타고 일본 전역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나라 잃은 시기, 마의태자 설화를 바탕으로 엮은 마의태자는 은근히 망국의 슬픔과 서러움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로 작용하기도 했다.

-‘경주 나그네’, 본격적으로 경주 다룬 노래...경주의 유적유물이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노랫말에 표현
1942년, ‘경주 나그네(이가실 작사, 이운정 작곡, 이규남 노래)’

‘초금에 마음 싣고 꽃을 꺾으며/반월성 넘어가는 경주 나그네/가는 봄 오는 봄아 말 물어보자
첨성대 추녀 끝에 별이 몇 개냐/서형산 바라보며 회파람 불고/안압지 돌고 도는 경주 나그네
풀 캐는 아가씨야 말 물어보자/화랑이 풍류하던 곳이 어데냐/개왓장 하나 집어 품에 안고서
풀피리 불고 가는 경주 나그네/에밀레종 소리야 말 물어보자/포석정 띄운 잔이 몇 잔이더냐//’

이 곡은 본격적으로 경주를 다룬 노래라 할 수 있다. 1942년 8월 콜럼비아레코드에서 발매된 이규남의 노래로 반월성, 첨성대, 서형산, 안압지, 에밀레종, 포석정 등 경주의 유적·유물들이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노랫말에 수용되어 있다. 어느 봄날, 화자가 경주의 여러 유적지를 답사하며 역사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궁금증을 제시하는 화법으로 노래를 엮어가고 있다.

이 노래 이후 해방을 맞고는 보다 다양한 양상의 노래들이 선보인다. 신라의 달밤을 필두로 해서 8·15해방 이후 경주 테마, 신라 테마 노래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신라 천년(백일평), 신라의 북소리(도미), 신라의 칼(신세영), 신라제길손(백년설), 님 그리운 망부석(이미자)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 ‘신라의 달밤’을 부르는 현인.

-‘신라의 달밤’, 모든 경주테마곡 가운데 최고의 상징적인 노래로 당시 청년 세대의 대단한 호응을 얻으며 단숨에 최고의 인기곡으로 부상

1947년, ‘신라의 달밤(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현인 노래)’은 모든 경주테마곡 가운데 최고의 상징적인 노래로 자리를 잡았다.

‘아 신라의 밤이여/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온다/지나가는 나그네야 걸음을 멈추어라/고요한 달빛 어린 금오산 기슭에서/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아 신라의 밤이여/화랑도의 추억이 새롭구나/푸른 강물 흐르건만 종소리는 끝이 없네/화려한 천 년 사직 간 곳을 더듬으며/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아 신라의 밤이여/아름다운 궁녀들 그리웁구나/대궐 뒤에 숲속에서 사랑을 맺었던가/님들의 치마 소리 귓속에 들으면서/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8·15해방 직후인 1947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새로운 감각과 발랄한 생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노래는 단조 위주의 식민지시대 트로트가 해방 정국에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하던 시절이다 보니 작곡자 박시춘이 새로운 감각과 창법을 가진 가수를 적극 물색하던 중 한 나이트클럽 공연에서 현인을 발탁해 이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원곡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야말로 경주의 밤하늘에 뜬 보름달과 그 아래 묵묵히 잠들어 있는 불국사, 석굴암, 다보탑, 첨성대, 반월성, 안압지 등의 유적지와 역사적 명소들이 잔잔히 응답하는 듯한 생동감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런 귀한 민족사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전체 한국인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우는 효과로도 작용한다. 작곡가 박시춘은 해방 정국 격동의 분위기에 제대로 부응하는 너무도 적절한 가수를 뽑았다며 자신감을 얻었다. 과연 이 노래는 당시 청년 세대의 대단한 호응을 얻으며 단숨에 최고의 인기곡이 되었다.

성악을 전공한 음악도였던 현인의 성악에 바탕을 둔 창법은 신민요나 트로트 등과 달리 시원한 맛을 내며 해방 이후 가요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 신라문화제를 노랫말로 표현한 가요도 있다.

-신라와 관련된 시적 장치와 소도구들 다양하게 구사하고 문무왕의 다짐과 결의 다루기도

1952년, ‘신라제 길손(손로원 작사, 이병주 작곡, 백년설 노래)’은 6·25전쟁 당시 북에서 남으로 피난 내려온 실향민의 애달픈 향수를 달래주는 작품이다. 실향민의 심정을 실감 나게 그려낸 작사가 손로원의 노랫말이 돋보이는 곡이다. 이어, 1953년엔 ‘신라의 칼(손로원 작사, 한복남 작곡, 한정무 노래)’이, 1959년에는 ‘신라의 북소리(야인초 작사, 박시춘 작곡, 도미 노래)’가 발매된다.

‘서라벌 옛 노래냐 북소리가 들려온다/말고삐 매달리며 이별하던 반월성/사랑도 두 목숨도 이 나라에 바치자/맹세에 잠든 대궐 풍경 홀로 우는 밤/궁녀들의 눈물이냐 궁녀들의 눈물이냐/첨성대 별은/화랑도 춤이더냐 북소리가 들려온다/’ -하략.

이 노래는 신라와 관련된 시적 장치와 소도구들을 다양하게 구사한다. 서라벌의 북소리, 반월성의 말 달리는 함성, 화랑과 원화의 훈련 소리, 첨성대의 별, 북소리, 금오산, 해마다 열리는 신라문화제 행사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작사가 야인초(본명 김봉철)는 경주 신라문화 축제 현장을 두루 답사한 경험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가사를 썼을 것이다.

↑↑ 1959년 ‘신라의 북소리’ 음반.

1966년에는 ‘님 그리운 망부석(반야월 작사, 서영은 작곡, 이미자 노래)’가 발표되었고 1979년에는 ‘대왕암(김주영 작사·작곡, 김주영 노래)’이 선을 보였다.

‘모래성을 뭉개듯 남북 삼천리/황금 투구 북소리 울리던 그날/그 큰 뜻에 하늘은 다시 맑았고/한 나라의 성업은 이룩됐어라/뭍으로 적을 막아 베이던 기개/죽는다고 내 나라를 모른다 하랴/마음속엔 또 하나 바다를 지켜/죽어서도 그 몸이 용이 됐어라//’ -이하 하략.

이 노래는 1979년 당시 안성농업전문대 학생이던 김주영이 제3회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김주영은 대왕암을 테마로 삼국 통일의 업적과 성과, 죽어서까지 국가를 보위하겠다는 문무왕의 다짐과 결의 등을 감격적 화법으로 엮어냈다.

다음호에서 경주를 테마로 다룬 대중가요 하(下)편이 이어진다.
선애경 문화전문 기자 / 1471호입력 : 2021년 01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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