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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의 詩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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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의 詩間]
거리에서 명상하기
거리에서 명상하기 정수자 흡연1 피했는데 흡연2가 다가들며 멋대로 연기하듯 연기를 발사할 때 최대한 숨 말 꾹 참기 가로수가 욕을 참듯 태극1 지나치니 태극2가 닥쳐들며 신념인지 신..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11월 19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거짓말을 타전하다
거짓말을 타전하다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11월 05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품삯으로 감 껍질을 받다
품삯으로 감 껍질을 받다 하청호 어머니는 감 껍질이 가득한 등짐을 지고 늦은 밤에 돌아왔네 하루 종일 감을 깎은 품삯으로 껍질을 받아왔네, 입에 단내가 나는 힘든 품의 대가였네 어머니는 속..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10월 22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한 식구
한 식구 김우전 가을비 추적추적 안강 장날이었지요 메기입 어물 장수가 때 이른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발길 뜸한 장날 푸념처럼 허연 김 피어오르고 간혹 빗방울이 국물 양 보태는 돼지 국밥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10월 08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운문행
운문행 백무산 운문재 넘다 비 만났다 흠뻑 만났다 바람 그늘을 서늘하게 거느린 비 수십만평 한다발로 퍼붓는 비 만난 게 아니라 먹혔다 한점 피할 곳 없는 고갯길 ​달려도 웅크려도..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9월 17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예배를 드리러
예배를 드리러 백무산 시골 장거리에 예배를 드리러 가야겠다 일용할 양식들이 흙 묻은 발을 막 털고 나온 곳 목숨의 세세한 물목들이 가까스로 열거된 곳 졸음의 무게가 더 많이 담긴 무더기들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9월 03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비 갠 아침
비 갠 아침 김우태 비 갠 아침 어머니가 울타리에 빨래를 넌다 간밤 논물 보고 온 아버지의 흙바지며 흰 고무신 천둥번개에도 꿈 잘 꾼 손자녀석 오줌바지 구멍난 양말들이 햇살에 가지런히 널려간다..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8월 19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달빛이 참 좋은 여름밤에
달빛이 참 좋은 여름밤에 박형준 들일을 하고 식구들 저녁밥을 해주느라 어머니의 여름밤은 늘 땀에 젖어 있었다 한밤중 나를 깨워 어린 내 손을 몰래 붙잡고 등목을 청하던 어머니, 물을 한 바..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7월 31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종이컵
종이컵 정희경 90℃ 커피가 자꾸 화를 돋우더니 서서히 식고 있다 온몸이 축축하다 늦도록 불 밝힌 사무실 만년 대리 책상 위 새벽을 들이켜는 손가락이 희고 길다 복사기의 거친 숨결 보고서를..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7월 16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김막내 할머니-안의에서
김막내 할머니-안의에서 신경림 시게전 끝께에서 술장사를 하는 김막내 할머니는 이 길로 쉰 해째다 청춘에 혼자되어 아이 하나 기르면서 멀쩡하던 사내 하룻밤새 송장 되는 차마 못 견딜 험한 꼴..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7월 02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웃는 종이
웃는 종이 문동만 벽지가 마르며 다 떨어졌다 딸아이의 방만큼은 울지 않게 해주려고 우는 종이를 꾹꾹 눌려 종일 애써 붙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분홍색 종이 이불을 덮고 있었다 마르며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6월 18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텔레비전이 돌아가셨다
텔레비전이 돌아가셨다 정병근 텔레비전이 꺼졌다 화면이 부르르 떨리더니 몇 번 번쩍거리다가 한 점으로 작아지면서 소멸했다 별빛이 사라지듯 이생의 빛을 거두었다 적색거성처럼 화면은 며칠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6월 04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판서(板書)
판서(板書) 유홍준 저것은 죽음의 글씨 저것은 죽음의 문장 어떤 손은 매일매일 저곳에 하얀 글씨들을 가득 채우지 않으면 죽는다 어떤 손은 평생 저곳에 하얀 글씨들을 채워야지만 산다 분필로 쓴 글..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5월 22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작은 풍선이 있는 정물
작은 풍선이 있는 정물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 추억을 되돌리기보다는 잃어버린 물건들을 되찾고 싶다. 창가와 문 앞에 우산과 여행 가방, 장갑, 외투가 수두룩. 내가 한..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5월 07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함민복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4월 23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전기장판
전기장판 박소란 전기장판에 누워 겨울을 난다 어떤 추위에도 끄덕하지 않는다 부연 입김이 터져 나오는 꿈이라도 따뜻하다 이 방은 참 따뜻한 곳이라 알 수 있다 아버지도 나도 전기장판에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4월 02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비밀
비밀 김성춘 알 수 없어라 신의 음성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쿨에 1등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 기자가 물었다 피아노 연주를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그가 말했다 아무 생각도 안 한다고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3월 19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병원
병원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3월 05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큼지막한 호주머니
큼지막한 호주머니 윤이산 큼지막한 호주머니 달린 옷이 좋다 메모지도 넣고 돋보기도 넣고 자전거도 넣고 여행도 넣고 휘파람도 넣고 달걀 한 꾸러미 넣어두면 저들끼리 알아서 다달이 월 수익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2월 20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두 번은 없다
두 번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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