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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의 詩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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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의 詩間]
김막내 할머니-안의에서
김막내 할머니-안의에서 신경림 시게전 끝께에서 술장사를 하는 김막내 할머니는 이 길로 쉰 해째다 청춘에 혼자되어 아이 하나 기르면서 멀쩡하던 사내 하룻밤새 송장 되는 차마 못 견딜 험한 꼴..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7월 02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웃는 종이
웃는 종이 문동만 벽지가 마르며 다 떨어졌다 딸아이의 방만큼은 울지 않게 해주려고 우는 종이를 꾹꾹 눌려 종일 애써 붙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분홍색 종이 이불을 덮고 있었다 마르며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6월 18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텔레비전이 돌아가셨다
텔레비전이 돌아가셨다 정병근 텔레비전이 꺼졌다 화면이 부르르 떨리더니 몇 번 번쩍거리다가 한 점으로 작아지면서 소멸했다 별빛이 사라지듯 이생의 빛을 거두었다 적색거성처럼 화면은 며칠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6월 04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판서(板書)
판서(板書) 유홍준 저것은 죽음의 글씨 저것은 죽음의 문장 어떤 손은 매일매일 저곳에 하얀 글씨들을 가득 채우지 않으면 죽는다 어떤 손은 평생 저곳에 하얀 글씨들을 채워야지만 산다 분필로 쓴 글..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5월 22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작은 풍선이 있는 정물
작은 풍선이 있는 정물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 추억을 되돌리기보다는 잃어버린 물건들을 되찾고 싶다. 창가와 문 앞에 우산과 여행 가방, 장갑, 외투가 수두룩. 내가 한..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5월 07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함민복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4월 23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전기장판
전기장판 박소란 전기장판에 누워 겨울을 난다 어떤 추위에도 끄덕하지 않는다 부연 입김이 터져 나오는 꿈이라도 따뜻하다 이 방은 참 따뜻한 곳이라 알 수 있다 아버지도 나도 전기장판에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4월 02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비밀
비밀 김성춘 알 수 없어라 신의 음성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쿨에 1등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 기자가 물었다 피아노 연주를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그가 말했다 아무 생각도 안 한다고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3월 19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병원
병원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3월 05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큼지막한 호주머니
큼지막한 호주머니 윤이산 큼지막한 호주머니 달린 옷이 좋다 메모지도 넣고 돋보기도 넣고 자전거도 넣고 여행도 넣고 휘파람도 넣고 달걀 한 꾸러미 넣어두면 저들끼리 알아서 다달이 월 수익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2월 20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두 번은 없다
두 번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2월 06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박물관
박물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접시들은 있지만, 식욕은 없어요. 반지는 있지만, 이심전심은 없어요. 최소한 삼백 년 전부터 쭉. 부채는 있는데 - 홍조 띤 뺨은 어디 있나요? 칼은 있는데 - ..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1월 16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지상에서 가장 긴 줄
지상에서 가장 긴 줄 노향림 순식간에 줄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쏟아지는 햇빛 아래 지리멸렬 흩어져 있다가 금방 생기 도는 얼굴들로 일직선을 그어나간다. 뎅뎅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기..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1월 02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바퀴들
바퀴들 박남희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딸내미가 하는 말 아빠, 내 방에 바퀴가 있어 바퀴 좀 제발 없애줘, 무서워 안 그러면 벌레의 방을 나와 함께 폭파시켜줘 너무 과장된 딸내미의 호..
경주신문 기자 : 2019년 12월 20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배추 꼬리
배추 꼬리 고영민 단단히 포기 진 배추를 뽑아 꼬리를 자르며, 나는 문득 이 배추들이 음전한 자태로 밭고랑에 앉아 있던 목숨이었다고 생각한다 뿌리가 아닌 배추의 긴 꼬리로 땅속에서,..
경주신문 기자 : 2019년 12월 05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은행털기
은행털기 고진하 은행을 털기 위해서는 복면과 총 따위가 필요하지만 은행을 털기 위해 그는 모자와 고무장갑과 비닐 깔개를 준비했다. 나무를 잘 타는 그는 다람쥐처럼 뽀르르 기어올라가 ..
경주신문 기자 : 2019년 11월 21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사향가(思鄕歌)
사향가(思鄕歌) 박목월 밤차를 타면 아침에 내린다. 아아 경주역. 이처럼 막막한 지역에서 하룻밤을 가면 그 안존하고 잔잔한 영혼의 나라에 이르는 것을. 천년을 한가락 미소..
경주신문 기자 : 2019년 11월 07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모닥불
모닥불 백석 새끼 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짖도 캐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
경주신문 기자 : 2019년 10월 24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엿장수 원효
엿장수 원효 전인식 골목길에서 한 사내 떠들어 댔네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한 나 빈병과 헌책, 고장난 선풍기를 들고 나갔네 그 사내 보이질 않고 사금파리 하나에 골목길이 환하였네 멀리 ..
경주신문 기자 : 2019년 10월 09일
[손진은 시인의 詩間]
발해로 가는 저녁
발해에서 온 비보 같았다 내가 아는 발해는 두 나라의 해안을 간직하고 있었던 미쁘장한 한 여자였다 마을에서는 유일하게 자전거를 다루어 들을 달리던 선친의 어부인이기도 하였다 학교 가는 길에 들렀..
경주신문 기자 : 2019년 0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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