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산책 2004년 1월 말 이진락 ‘비너스의 탄생’에 숨은 비운(悲運)과 영광(榮光)의 사연 부처님을 형상화한 불상(佛像)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때 가장 중요한 잣대 중의 하나가 신체비례이다. 신장(身長)과 머리길이의 비가 8대 1이 되는 것을 8등신(八等身)이라고 하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아름다운 이상적 인간의 신체비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그림의 주인공 신체는 10등신인데도 미(美)의 화신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명작 ‘비너스의 탄생’은 15세기 후반 이탈리아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권력가문인 메디치家 로렌초(Lorenzo)씨의 주문으로 화가 보티첼리가 그린 그림이다. <농업의 신 크로노스가 자기의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한 후, 그 남근(男根)을 바다에 던지자 남근 주위로 바다 거품이 모였고, 이 바다 거품으로부터 태어난 사랑과 미의 신 비너스가 진주조개를 타고 수줍은 듯 서 있고, 그림 왼쪽에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그의 연인 클로리스가 있는데, 제피로스는 비너스를 향해 바람을 일으켜 그녀를 해안으로 이끌고 있으며, 비너스의 오른쪽에 펼쳐진 키프로스 해안가에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외투를 들고 비너스를 맞이하고 있는> 고대 그리스 ‘비너스 신’의 탄생신화의 내용을 표현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실제 모델은 과연 누구였을까? 1470년대 피렌체 공화국은 물질적인 풍요와 예술의 전성시대였고, 크고 작은 축제가 자주 열렸었다. 1475년도 기마술(騎馬術)시합의 우승자는 메디치家 권력자 로렌초의 친동생 ‘줄리아노(Giuliano)’였고, '미의 여왕'에 뽑힌 사람은 ‘줄리아노’의 연인(戀人) ‘시모네타 베스푸치’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시모네타는 다음 해인 1476년에 폐병으로 죽게 되고, 줄리아노는 1478년 4월26일 부활절날 두오모 성당에서 정치적 권력다툼의 희생양으로 피살 되었다. 너무나 비극적인 인생을 마감한 ‘줄리아노’와 ‘시모네타’. 그러나 그들은 당시 피렌체 공화국 최고권력 메디치가문(家門)의 후광으로 영원한 이름을 남겼다. 오늘날 미대입시 뎃셍모델로 가장 사랑받는 석고상 ‘줄리앙’의 실제 모델이 바로 ‘줄리아노’이다. 그리고 메디치가문 실세 로렌초는 동생 ‘줄리아노’의 연인이었던 미의 여왕 ‘시모네타’를 모델로 한 ‘비너스의 탄생’ 그림을 당시 유명화가 보티첼리에게 주문했던 것이다. 미대륙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콜럼버스’였지만, 그는 그 곳을 아시아의 인도로 착각했고, 아시아가 아닌 신대륙(新大陸)임을 처음 알아낸 탐험가는 ‘아메리고 베스푸치’였다. 그래서 ‘아메리고의 땅’이라는 뜻으로 오늘날 세계 최강 미국의 국명 ‘아메리카’가 되었다. 1512년 셰빌라에서 말라리아로 숨진 ‘아메리고’는 바로 ‘시모네타’의 사촌이며, 메디치가(家) 법률공증인의 아들이었다. 폐병, 피살, 말라리아로 비극적 삶을 마친 ‘줄리아노’, ‘시모네타’, ‘아메리고’는 오늘날 석고상 ‘줄리앙’, ‘비너스탄생’, ‘아메리카’란 이름으로 영원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비너스 탄생’의 그림에는 이런 비운과 영광의 사연이 숨어 있다. 그리고 10등신이라도 8등신 못지않게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불상을 볼 때 마다 신체비례(8등신)에 얽매이지 말고 ‘비너스의 탄생’처럼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얽힌 깊은 사연들을 찾아가며, 또 남의 나라 문화재도 우리 것과 비교해 가면서 감상하면 더욱 의미 있는 문화재 산책이 될 것 같다. 사진설명: ‘비너스의 탄생’(1485년, 산드로 보티첼리 作,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과 ‘줄리아노’를 모델로 한 ‘줄리앙’ 석고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