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교육청은 올해 디지털 전환 원년의 해로 선포하였다. 그리하여 네이버클라우드와 협약을 맺고 학교 지원 종합자료실을 디지털 전환의 핵심 사업으로 지정하고 경상북도교육청의 학교 지원 종합자료실에 초대규모 AI 서비스인 ‘하이퍼클로바X’를 도입하기로 했다. 영어권의 사회 문화적 맥락의 서비스 기반인 Chat GPT와는 달리 ‘하이퍼클로바X’는 한국의 사회 및 문화적 맥락에 대한 높은 이해와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개인이나 기업의 생산성 도구로 활용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제 일선 학교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국내 대학가에서도 생성형 AI의 활용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성균관대 영상학과 이혜민 교수는 지난 학기에 인공지능(AI)을 사용해 작품을 창작하는 과제를 내었고 생성형 AI Dall-E 나 미드저니(Midjourney)를 이용한 AI와 학생들의 ‘협업’ 결과는 놀라웠다고 한다. 과제표절의 이유로 금기시되었던 몇 달 전과는 달리 혁명적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건국대 정승환 교수는 에세이 작성에 강제로 챗GPT 활용법을 트레이닝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일수록 생성형 AI의 활용도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으며, 이는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정보격차가 심화할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인간의 상상력 한계가 없음을 다시 한 번 경험하고 있다. Chat GPT로 일반화되던 생성형 AI는 보이지 않는 가상의 도구로 인류를 한 번 더 진화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돌과 쇠를 쓰던 인류의 도구 혁명이 계급사회를 잉태했고, 토지와 자본, 과학과 기술, 그리고 정보라는 도구로 그 때마다 새로운 계급사회와 문명을 만들어 냈다. 드디어 인류는 이제 스스로 딥러닝하는 새로운 가상의 도구를 사용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어떤 문명의 시대보다 빠르게 진화하는 생성형 AI라는 도구는 인간의 무한 상상력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겁을 내거나 꺼리기보다는 올바른 사용법을 알아야 한다. Chat이라는 말 그대로 생성형 인공지능은 인간이 쓰는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다. 언어가 인류의 무한 발전의 원동력이듯이 생성형 인공지능과의 대화 역시 딥러닝하여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물의 원동력이다. 인간과 생성형 인공지능과의 대화를 프롬프트라고 한다. 생성형 AI를 1억 원 연봉의 비서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능력을 극대화하려면 대화 즉 프롬프트를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원활한 관계를 위해 대화법을 배운다. 하물며 프롬프트 교육 없는 AI사용은 단순한 문답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프롬프트는 인공지능의 출력 내용과 방향을 결정짓기 때문에, 주어진 프롬프트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프롬프트의 핵심은 질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질문의 중요성을 알고 교육에 도입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질문의 능력과 방법을 측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질문 능력을 확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제 답 찾기에 초점을 맞추었던 교육이 좋은 질문을 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는 절호의 때가 왔다. 질문에 따라 양질의 결과를 제대로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 바로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AI와 공존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올바른 AI 사용법에 대한 교육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이제 카페에서 초등학생들이 음료를 마시고 있는 모습은 흔하게 본다. 어제도 그랬다. 아들을 학원에 보내 놓고는 와이프랑 커피 마시러 동네 카페에 갔다. 핑크빛 책가방을 옆자리에 단정히 놓아두고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 여자애는 머리띠도 핑크색이었다. “니들 여기서 뭐 하니?”, “엄마는 어디 가셨어?” 신상털이식 질문으로 꼰대임을 드러내려고(!) 입이 움찔거리는 걸 와이프가 막아선다. 이상한 아저씨가 될 뻔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학원을 마쳤는지 새 친구가 합류한다. 주문한 음료를 받아 들고 오는 모습이 제법 익숙하다. 혹시 카페인이 든 커피 같은 걸 주문했나 곁눈질하니 와이프가 그런다. 요즘 애들 사이에서 핫하다는 초코 바나나라떼라고. 초등학생들은 라떼를 홀짝이며 공부도 하고 재미난 일이 있는지 수다도 떤다. ‘니들은 다행인 줄 알아라. 이상한 아저씨가 방해를 하지 않은 건 저 아줌마 덕분이란 걸!’ 커피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래도 애들이 마시기에 설탕이 너무 많지 않나 아저씨는 걱정이란다. 그나저나 이젠 카페에서 시간제한이 걸릴 수도 있겠다.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때문이란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는 하루 종일 공부도 하고, 워드를 치며, 넷플릭스도 시청한다. 핸드폰이나 태블릿 충전도 물론이다. 이들이 카페를 장악하고 있으니 정작 커피를 마시러 온 손님들은 앉을자리가 없다. 그래서 나온 궁여지책이 3시간짜리 시간제란다. 주문받는 곳에 큼지막하게 공지하고, 영수증에도 최대 3시간만 이용할 수 있다고 적어두었다. 이 규칙은 빈자리 여부랑 상관없이 적용된다고 한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3시간짜리 사용 제한이 음료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이다. 대구를 방문했던 어느 유명 연예인은 팥빙수를 시켰는데, 1인 1메뉴라고 커피를 추가 주문을 요구받았다며 불만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팥빙수 가격이 음료 4잔 값인데도 알바생은 끄떡없이 규정이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주변의 영세한 가맹점 위주의 커피 프랜차이즈이니까 벌어질 수 있는 해프닝이다. 가령 스*벅스에서는 매장 내 고객의 체류 시간을 체크하지 않는다. 오래 앉아있다고 눈치 주는 직원도 없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에게 카공족들은 두기도 뭐 하고 내쫓기도 뭐 하다.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애증의 존재다. 마진을 높이려고 전원 콘센트를 차단하거나 와이파이를 꺼버리고 공부하기 딱 좋은 잔잔한 음악 대신 쿵쾅거리는 댄스 음악을 튼다. 어쩔 수 없다. 왜 집 놔두고 카페에서 공부를 하나 싶겠지만 이들에게도 딱한 이유는 있다. 도서관은 거리가 멀고 스터디카페는 비용이 만만치 않으며 동네 도서관은 어린 학생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렸다. 이제 공부할 데가 없는 카공족들은 편의점에서 앉아 공부하는 ‘편공족’으로 갈아타야 하나 고민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컵라면 먹으면서 학습지 푸는 초딩과의 경쟁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편의점은 구조상 중고등학생이나 초등생 친화적이다. 인터넷에서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여행을 오면 제일 놀라는 광경으로 한국의 카페 문화를 꼽는다. 테이블 위에 주인 없이 펼쳐져 있는 노트북이나 아무렇게나 놓인 핸드폰 사진을 올리면서 “와, 한국엔 도둑이 없나 봐!” “우리나라였다면 어림도 없지!” 식의 감탄 일색이다. 하지만 우리는 노트북보다 내가 앉을 수 있는 빈 의자가 더 중요하고 핸드폰은 몰라도 자전거는 예외라는 현실은 모를 거다. 우리 아들도 두 달밖에 안 된 신상 자전거를 잃어버린 적 있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편공족이나 카공족 논란은 한국인들의 문화적 우수성 때문이 아니라 공공시설이 부족해서라고. 간명한 분석이다. 사실 외국 스*벅스에도 우리처럼 공부하고 잡지를 보거나 빈둥거리기는 매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보다 커뮤니티 시설이 더 잘되어 있다는 정도일 테다. 한 분의 손님이 아쉬운 동네 카페에서는 다양한 신메뉴를 개발하거나 이벤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하지만 책가방을 든 초딩들이 갈 데가 없어 카페에 온다면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카페만큼 문턱 낮은 동네 도서관도 좋겠다. 우리 돈 700원이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한 외국의 대학부설 수영장도 기억난다. 머리도 안 말린 채 나온 애들 얼굴이 참 건강했다. “애들아, 니들 바나나주스 홀짝이다 투샷 추가한 진한 커피로 넘어갈까 봐 아저씨는 걱정이다”
1924년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떠나기 전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맬러리(George Herbert Leigh Mallory)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 하느냐?” “에베레스트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Because it is there).” 그의 이 대답은 산악인들에게 영원히 회자되는 명언이 되었다. 이후 그는 등반 중에 에베레스트 8500m의 북쪽 능선에서 사라졌다. 9년이 지나서 맬러리와 그의 동료 앤드루 어빙이 썼던 산소마스크 한 개와 피켈이 발견됐다. 그들이 정상을 밟고 내려오다 사망했는지, 아니면 올라가다 죽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만약 내려오다 실종됐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에베레스트 초등(初登)의 영광은 뉴질랜드 출신의 에드먼드 힐러리가 아닌 영국 사람 맬러리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필자는 산에 오르는 것을 퍽 좋아하는 편이다. 요즈음도 매주 수요일에는 후배들과 함께 산을 찾는다. 한때는 홀로 집에서 승용차로 중산리탐방안내소까지 가서 당일치기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다녀오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백담사에서 봉정암을 거쳐 소청봉, 대청봉을 지나 설악동을 하루에 넘은 적도 있다. 그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산을 올랐다. 차원이 다른 산행이라 언급 자체가 불손하다고 비난받을 일이지만 마음만은 산악인 맬러리였던 것이다. 이 단석산도 그동안 10여차례 올랐다. 그러나 오늘 산행은 그냥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르는 것’이 아니다. 단석산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더듬고 또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다. 단석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크게 5코스가 있다. 우중골에서 신선사 마애불상군을 거치는 길, 방내 천주암에서 오르는 길, 백석암에서 입암산을 거쳐 정상으로 가는 길, OK그린 청소년 수련원에서 당고개 갈림길을 거쳐 오르는 길, 당고개 휴게소에서 당고개 갈림길을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오늘은 신선사 마애불에 중점을 두고 산행을 해야 하고 또 가장 가깝게 정상으로 갈 수 있는 우중골 코스를 택했다. 우중골은 신라 때 위증이라는 당 태종의 신하가 이 골짜기에서 수도를 했다고 해서 ‘우중골’이라고 했다는데, 당 태종 때의 인물로는 위증이 아니고 위징(魏徵, 580-643년)이다. 그러나 위징이 신라로 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위징’ 또는 ‘위증’이 왜 ‘우중’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되지 않고 있다. 위증이 아닌 위징이 이곳에 왔다는 것을 누군가가 ‘위증(僞證)’한 것이리라. 또 다른 이야기로는 이곳 골짜기가 깊어 자주 구름이 덮이고 어두워지면 곧잘 비가 내린다고 하여 ‘우징곡(雨徵谷)’, ‘우중곡(雨中谷)’, ‘우중골’, ‘우징동’이라고도 불리었다고 한다. 후자가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신선사 마애불을 향하는 등산길에는 어제 비가 내리고 오늘도 날씨가 잔뜩 찌푸리고 있으니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 길을 넓히고 시멘트 포장을 하여 4WD 구동방식의 차량이라면 신선사 턱 밑까지 올라갈 수가 있다. 하지만 필자의 차량은 SUV 차량이지만 2WD이라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 주차를 하고 도보로 올라갔다. 동행이라도 있으면 이야기를 나누며 서서히 올랐겠지만 혼자 산행을 하다 보니 걸음이 빨라진다. 단석산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와 내남면 비지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단석산이라는 기록이 처음 보이는데, 월생산(月生山)이라고도 하며, 경주 중심지의 서쪽 23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어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신라의 김유신이 고구려와 백제를 치려고 신검(神劍)을 얻어 월생산의 석굴 속에 숨어 들어가 검술을 수련하려고 칼로 큰 돌들을 베어서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그 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아래에 절을 짓고 이름을 단석사(斷石寺)라고 하였다” 그런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이곳 단석산에서 김유신이 수련했다는 기록이 없다. *김재식·김기문, 경주풍물지리지, 보우문화재단, 1991, p.352 **중국 수나라 말기에 반란군인 이밀의 책사였던 위징이 무너지는 담장 아래 서지 않는다며 당태종인 이세민(李世民)의 휘하로 들어갔다. 위징은 태종에게 200여 차례에 걸쳐 간언하였는데, 그의 간언으로 당태종은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루어 중국 역사상 최고의 군왕이 될 수 있었다.
황금빛 모서리 김중식 뼛속을 긁어낸 의지의 대가(代價)로 석양 무렵 황금빛 모서리를 갖는 새는 몸을 쳐서 솟구칠 때마다 금부스러기를 지상에 떨어뜨린다 날개가 가자는 대로 먼 곳까지 갔다가 석양의 흑점(黑點)에서 클로즈업으로 날아온 새가 기진맥진 빈 몸의 무게조차 가누지 못해도 아직 떠나지 않은 새의 피안(彼岸)을 노려보는 눈에는 발 밑의 벌레를 놓치는 원시(遠視)의 배고픔쯤 헛것이 보여도 현란한 비상(飛翔)만 보인다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자유에 이른 자들의 이야기 김중식의 이 시를 다시 읽는다. 거칠게 말하면 세상 모든 새는 두 종류의 새밖에 없다. 초인적인 의지로 자유를 위해 비상하는 새와 “발 밑의 벌레”라는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한 새이다. “뼛속을 긁어낸 의지의 대가(代價)로” 아주 날렵한 몸을 가진 새는 “석양 무렵 황금빛 모서리” 양태로 자신의 “몸을 쳐서 솟구”친다. 그 때 떨어지는 순결한 금부스르기는 햇살에 부딪힌 새의 외적인 정경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을 위해 그 대가로 치른 희생이 아깝지 않은 결실의 징표이다. 날개의 의지가 “가자는 대로” 최대치의 먼 곳까지 갔다가 “석양의 흑점(黑點)에서 클로즈업으로” 내려온 새는 “빈 몸의 무게조차 가누지 못”할 정도이지만 이 순간도 잠시뿐, 그는 대부분의 평범한 새들이 그런 것처럼 일상에 묶여있지 않다. 하늘을 난다는 것의 기쁨과 무한의 자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둥지에서 머물며 자기가 생존을 위해 끌려가는 삶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게 사는 것이요, 살아서도 죽은 것과 진배없는 그런 삶이다. 그런데 놀라워라, 이 “기진맥진”한 새를 바라보며 꿈을 품는 “아직 떠나지 않은 새”가 있다. 그에겐 “발 밑의 벌레를 놓치는 원시(遠視)의 배고픔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헛것이 보여도” “현란한 비상(飛翔)만 보”이는 젊음은 아름답다. 앞선 자는 용감한 다음 세대를 부른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 리빙스턴은 이 새가 구체적으로 적용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는 천 년간 “물고기 머리나 쫓아다”닌 삶에서 벗어나 “자신이 알아낸 것을 나누고, 저들 앞에 펼쳐진 새로운 수평선을 보여주”려 하지만 “갈매기 가족의 위엄과 전통을” 깨었다는 죄로 공동체에서 추방된다. 그러나 그는 끝내 설리번과 챙이라는 위대한 스승을 만나고, 이를 후대에 전수하며, 무엇보다 자신을 추방했던 지긋하기도 할 법한 공동체로 돌아가서 꿈을 갈망하는 영혼들을 키우는 사랑과 너그러움을 보인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것도 분명히 있는 법. 그 새를 전설로 만드는 위험성이다. 날아오를 때 바람 쪽으로 몇 걸음을 옮겼느냐, 눈이 무슨 색이냐 하는 것은 본질이 아니다. 이 시는 당연히 알레고리를 가지고 있다. 이 시가 다루는 것은 새만이 아니며 비상만은 아니라는 것. 예술이나 과학을 포함하여 어떤 분야이든 자신의 한계를 깨고, 새로운 지평선을 개척하는 모든 이에게 해당한다. “아직 떠나지 않은”, “피안(彼岸)을 노려보는 눈”의 새가 이제는 당신에게 말한다. 자유는 존재의 본성이며 단 하나의 진실한 법은 자유로 이어지는 법이라고.
지난주 기자가 쓴 경주최부자 이야기를 읽은 어느 독자분을 만났다. 그는 요즘 경주최부자 이야기를 관심 있게 읽고 있는데 지난주에는 뜻밖에 모르는 게 많아 읽기가 곤란했다며 해석을 요구했다. 조금 당혹스러웠다. 그 독자는 평소 영화를 자주 보지만 취향상 SF나 애니메이션, 그것을 기반으로 한 영화들은 잘 보지 않아 그날 읽은 최부자 이야기에 나온 토르니 헤임달, 아스가르드, 바이프로스트, 묠리르 같은 용어들이 깜깜했다고 고백했다. 그럼 헐크나 어벤져스 같은 영화들도 보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어벤져스-엔드게임’은 하도 사람들 말이 많아 넷플릭스에서 봤는데 무슨 소리인지 몰라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영화건 책이건 취향 따라 보고 읽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다양한 장르에 익숙한 기자로서는 그렇지 않은 독자들이 조금은 ‘측은하게’ 여겨진다. SF의 경우, 영화가 주는 상상력은 많은 부분에서 그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질 때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굉장히 많아진다는 차원에서 실현 가능한 상상력이 총동원된 기발한 산물이다. 대표적으로 조지오웰의 명저 ‘1984년’에 등장하는 ‘빅 브러더’는 소설 상에서는 허구적인 전방위 감시체계지만 지금의 CCTV나 SNS와 비교해보면 오히려 그 체계가 저급하다고 할 정도로 현실화 되었다. 각종 로봇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도 점차 현실화 되고 있다. 이미 ‘로봇대전’이라는 특화된 경쟁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고 드론이 주요 산업체나 전장을 누비고 무인 탐사선이 우주나 이웃 행성으로 떠나 활약 중이다. 그런가 하면 의인화된 애니메이션과 SF장르들의 영화는 중요한 철학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토이 스토리 같은 애니메이션은 가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형이나 장난감을 통해 천도교적 철학인 물성(物性)을 가늠해보게도 한다. 천도교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하늘처럼 생각하는 사상을 주장하는 한편 돌멩이나 책상 같은 일상의 자연이나 무생물적 대상들도 그 나름의 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토이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형과 장난감들을 보고 나면 주변의 인형이나 장난감들을 소홀하게 보지 않게 되는 효과가 생길 정도다. 애니메이션을 기본으로 이를 발전시킨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은 온갖 세계의 신화와 전설을 현실화 시켜 보여줌으로써 또 다른 상상력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신화가 다분히 역사의 전개과정의 일부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차원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넓히는데도 애니메이션 영화는 필요하다. 기자가 경주최부자댁 쪽문을 토르에 나오는 바이프로스트로 묘사했는데 토르는 다름 아닌 북유럽 신화의 주인공이다. 이런 소재를 발굴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 만드는 디즈니, 마블, 픽사 같은 제작사들은 세계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대강자로 이제는 세계 각국의 기존 영화사들이 너나없이 줄대야 살아남을 수 있는 최고의 콘텐츠 회사가 되었다. 애니매이션 강국 일본은 일본에 존재하는 신사의 다양한 요정들을 상품화함으로써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작품들은 일본과 어린이뿐 아니라 전 세계에 확고한 팬층을 유지하며 지브리 스튜디오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전에 몰랐다가 SF와 애니메이션에 맛들인 어느 독자는 이전보다 훨씬 다채롭게 영화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며 이로써 취미의 영역이 눈에 띄게 넓어졌다고 좋아하기도 했다. 마침 최근 OTT방송 ‘디즈니 플러스’에서 만화가 강풀이 쓴 한국판 히어로물 20부작 드라마 ‘무빙’이 국내에서 엄청난 선풍을 일으켰고 세계인들에게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인기에 힘입어 지난 10월 8일 부산국제영화제 ‘2023 아시아콘텐츠 어워즈 & 글로벌 OTT 어워즈’에서 무려 6관왕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대한민국도 디즈니나 마블, 픽사의 전유물로 알려진 히어로물을 자신감 가지고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긴 셈이다. 물론 이들 SF나 애니메이션 장르들에 굳이 익숙해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앞으로 인간의 상상력은 더욱 발전할 것이고 이를 실현할 컴퓨터 그래픽도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이들 장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재미있게 볼 영화는 어쩌면 점차 제한적이 될 것이다. 토르를 알아야 경주최부자를 이해하는 것도 그런 현상의 하나다. 무빙을 모르면 대화에서 왕따 당할 수도 있다. 어찌 소홀할 수 있을까?
경주시 청소년오케스트라는 독도의 날을 맞아 22일 오후 5시 경주문화관1918 광장에서 ‘독도사랑 버스킹’ 공연을 개최한다. <사진> 이번 버스킹은 ‘찬란한 대한의 땅, 독도’를 주제로 음악을 통해 우리 땅 독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더불어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 유치도 응원한다. 연주곡은 ‘독도는 우리 땅’을 비롯해 ‘홀로 아리랑’,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Butterfly(국가대표ost)’ 등이다. 버스킹 공연은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10월 25일 독도의 날을 기념해 지역 청소년오케스트라의 음악으로 실천하는 독도 사랑에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전했다.
경주시립극단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을 대상으로 공연 관람료 40% 특별할인 이벤트를 연다. <사진> 할인 대상 공연은 다음달 17일부터 19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 원화홀에서 열리는 경주시립극단 제128회 정기공연 ‘안네 프랑크’이다. ‘안네 프랑크’는 학창시절 한 번씩 읽어봤을 작품으로 이번 공연은 신체극으로 연출했다. 특히 은신처에서 숨죽인 채 살아가는 유대인 8명의 일상과 공포스러운 전쟁의 참상을 침묵의 언어로 더욱 극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압권이다. 입장료는 전 좌석이 5000원이며, 수험생은 40% 할인된다. ‘수험생 할인’으로 예매 후 티켓 수령 시 수험표를 제시하면 된다. 공연 예매는 경주예술의전당 홈페이지나 티켓링크에서 온라인으로 예매하거나 시립예술단에 문의하면 된다.
경주시 청소년진로교육체험센터는 11월 매주 월요일마다 하반기 학부모 역량개발 아카데미를 청소년수련관 강당에서 운영한다. <사진> 아카데미는 진로진학 교육 전문가와 생성 AI 전문가 강의로 총 4회 진행된다. 교육은 지난해 개정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사항에 따라 교육 및 학습, 디지털 전환 역량개발을 위한 생성 AI 실습위주로 펼쳐진다. 신청은 18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경주시청소년진로교육체험센터 홈페이지에서 접수 가능하다. 모집은 선착순 50명. 보다 자세한 사항은 청소년진로교육체험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경주시 관계자는 “학부모 아카데미를 통해 고교학점제 편성 운영에 대한 대처법과 생성 AI 학습활동 활용법에 대한 역량을 함양해 자녀의 진로설계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주 동궁원은 21일과 다음달 4일 오후 2시 느티나무 광장에서 버스킹 공연을 개최한다. 21일 버스킹에는 싱어송라이터인 김동식, 팝페라가수로 활동하는 배은희, 개그맨이자 대학교수인 김홍식의 3인 3색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다음달 4일에는 경주의 어쿠스틱밴드 하늘호의 공연이 열린다. 공연은 예약 없이 시민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이규대 동궁원장은 “동궁원에서 공연도 보고 꽃도 감상하면서 가족들과 행복한 추억을 쌓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경주 대표 축제인 ‘제2회 경주 감포항 가자미 축제’가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감포항 남방파제 일원에서 열렸다. <사진> 감포읍발전협의회가 주최한 이번 축제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후 소비심리 위축에 따른 수산물 소비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야제인 i-net 성인가요 콘서트를 시작으로 가요제, 먹거리 장터, 지역특산품 판매, 수산물 무료 시식회 등이 이어져 축제를 찾은 많은 방문객들의 오감을 만족을 시켰다. 또 초대가수 무대와 노래자랑으로 축제의 열기를 더했다. 특히 감포발전협의회에서 준비한 1000여명분의 수산물 무료 시식회를 비롯해 경주시수협에서 대표 수산물 ‘가자미’를 특가로 저렴하게 판매하는 행사가 마련돼 큰 호응을 얻었다. 강신원 감포읍발전협의회장은 “시어인 참가자미와 지역 수산물을 널리 홍보하는 축제를 통해 동경주 관광 활성화에 더욱 큰 보탬이 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김성학 부시장은 “앞으로도 우리 수산물의 안전성과 우수성을 널리 알려 수산물 소비 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주 반려동물 페스티벌 지난 14일, 15일까지 양일간 황성공원 빛누리정원에서 열렸다. <사진> 이번 축제는 동물 보호와 복지, 생명 존중에 관한 시민 의식을 높이고 동물과 공존하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마련됐다. ‘사람과 반려동물이 함께 행복한 경주’를 주제로 놀이·체험·참여·홍보 마당 등이 펼쳐졌다. 축제는 댕댕이 운동장에서 반려견과 보호자가 함께 달리고 뛰어 놀 수 있도록 하는 등 반려동물과 추억을 만드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반려인들을 대상으로는 셀프 미용 요령 교육을 비롯해 반려동물과 셀프 카메라 잘 찍는 강의도 진행됐다. 특히 박순태 교수의 문제행동 교정 시범교육을 통해 반려동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서로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또 인수공통 전염병 예방을 위한 광견병 예방접종과 유기동물 방지를 위한 동물등록칩 시술도 무료로 진행해 방문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부대행사로는 댕댕이 시진관, 동물 매개치료, 반려견 비문(코무늬) 시범등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경주시 관계자는 “앞으로도 반려동물의 복지 향상과 반려인과 비반려인의 공존을 위해 반려동물 관련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계획하고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경주시가 지난 6일부터 15일까지 황남동 고분군 일원서 개최한 ‘황금정원나들이’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한글날을 포함한 연휴를 맞아 가족·친구·연인 단위 많은 관람객들이 방문해 각종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며 소중한 추억을 안고 돌아갔다. <사진> 특히 10개 국가를 상징하는 꽃조형물은 경관조명으로 해가 진 후에도 인생샷을 찍기 위한 공간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다양한 잎채소, 고추, 호박 등 농작물을 실물로 전시한 도시원예정원은 어린이들의 농업 체험교육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외에도 가을꽃과 어우러진 쾌청한 하늘, 알록달록 바람개비, 고분군 옆 ‘놋점들’에 핀 백일홍 꽃밭에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경주시는 행사기간 이곳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을 18만여명으로 집계했다. 첫 회였던 2019년 20만명, 2021년 15만명, 지난해 18만명이 다녀갈 만큼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앞으로 트렌드에 맞게 더욱 알차게 준비하고 주변의 황리단길, 대릉원, 첨성대 등 관광지와 함께 어우러져 더욱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행사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공고번호 : 경북-경주시-2023-1000 9월 27일 경주시 금장5길 20-14 삼성강변타운 부근에서 구조. 나이가 많지만 활달하고 사람을 좋아함. 말티즈 / 남아 / 1차 접종완료 중성화o / 9살 / 2kg 입양문의 054)760-2883 ※반려동물이 실시간 입양됐을 수 있으니 확인 전화바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는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온해진다. 그림 속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쁘고 젊은 여인은 없고 수수한 시골 아낙네, 꼭 중년의 우리 엄마 같다. 먹고살기 위해 장터와 길거리 그리고 빨래터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들 때문일까? 소박한 일상을 그렸던 그를 서민 화가로 부르기도 했지만, 생존 당시와는 달리 그의 그림은 국내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2007년 그의 작품 〈빨래터〉는 45억2000만원에 낙찰되었다. 20호(37*72)짜리 소품의 그림치곤 엄청난 금액이다. 대작 그림을 그릴 형편이 못 되었기에 그의 작품은 소품들이 대부분이었다. 화가와 경주는 직접적 인연이나 연결고리는 없지만, 그의 그림은 경주를 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거칠고 꺼칠꺼칠한 박수근 화가만의 특유한 그림의 비밀이 경주와 밀접하게 관련있기 때문이다. 흔히 ‘박수근표 질감’이라고 부르는 그의 마티에르는 경주의 화강암 석불과 한통속이라 할만하다. 화가는 틈나는 대로 고도 경주를 찾았다. 20대 후반에 판화에 관심 있는 국내 독학파 ‘주호회’를 조직하여 경주 남산과 신라석물을 찾아다녔다. 그 결과 얻어낸 것이 바로 박수근표 질감이다. 그의 그림에서 보이는 토속적 미감과 질감들이 바로 경주의 회백색 화강암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흑과 백, 회색 톤의 색감, 우들두들한 질감, 직선에 가까운 선으로 대상을 아주 단순하게 묘사한 것과 생략된 배경들이 경주에 산재한 화강암 마애불 조각과 인연을 맺고 있다. 그에게 그림을 가르쳐 준 스승이 없는 대신 경주의 마애불을 비롯한 화강암 조각상들이 그의 스승이었는지 모른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화가는 경주의 석탑과 마애불 등 석조 문화재 그리고 와당과의 교감을 통해 그만의 고유한 그림을 창조해 냈다. “나는 우리나라의 옛 석물, 즉 석탑과 석불 같은 데서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원천을 느끼고 그것을 조형화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돌에 대한 평소의 생각이 잘 드러난 화가의 노트에 있는 글이다. 특히 화가가 경주의 화강암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박수근의 최고 후원자이기도 한 미국의 마가렛 밀러 여사에게 보낸 편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제가 경주에 갔을 때 석 조각에서 탁본으로 찍은 것으로 동양 표구로 꾸며서 보내려고 했으나 저의 사정으로 선편으로 보내드리게 되어 봄에나 받아보시게 된 것을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저희 마음의 표시입니다” 이처럼 자주 경주를 찾아 석물과 와당을 탁본했다. 김유신장군묘의 십이지신상, 임신서기석, 석굴암 등을 비롯하여 문화재를 답사하며 신라의 문화와 작품에 몰두하였음은 가족들의 증언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경주 남산을 오르내리며 바위 속 마애불을 답사하여 거친 표면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촉감의 느꼈기에 그 질감의 느낌을 그림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가 얼마나 화강암을 좋아했는지는 여기저기서도 엿볼 수 있다. 그의 호는 다름아닌 ‘미석美石’이다. ‘아름다운 돌’이라는 뜻에서 알 수 있다. 몇 해 전 방문했던 강원도 양구의 박수근 미술관의 외형도 평소 좋아했던 화강석으로 건축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박수근 화가은 생전에 자신의 예술적 모태가 ‘신라의 석조 문화’라고 거듭 말한 바 있다. 박수근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탁본 59점 가운데 80%가 와당 탁본이다. 중국 와당 두 점을 제외하면 모두 신라의 와당을 탁본한 것들이다. 연화문, 당초문, 인동문 등 신라 와당의 여러 문양과 선은 그의 그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동시대 화가들이 유학 가서 서양 화풍에 쏠려 있을 때 흙수저였던 그는 고유의 우리 전통미술에서 자기만의 고유의 예술혼을 찾아내었다. 2013년 지역의 어느 신문사에 기고한 최용대 화가의 말을 빌리자면 계림에는 ‘박수근 나무’로 불리는 나무가 있는데 주로 경주지역 화가들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아래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특이한 형태의 나무가 1956년 박수근이 스케치한 그림이 있고 지금 계림에도 그 나무가 있다. 이와 관련된 오래된 기사를 스크랩해 둔 것을 들고 두 번이나 방문한 끝에 어렵사리 그 나무는 찾아내어 사진을 찍을 수가 있었다. (박수근 나무 사진 참조) 비록 부목 받침대를 하여 지팡이 짚고 있는 노인 같은 모습이었지만, 나무는 여전히 푸르게 계림 한쪽을 지키며 서 있었다. 최용대 화가의 말씀처럼 ‘박수근 나무’라는 이름표 하나 달아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숲, 한때는 신라의 별칭으로도 까지 불렸던 유서 깊은 계림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태어나고 포토존이 생겨나는 것은 충분히 즐거운 일 아닐까? 박수근 화가가 스케치한 것으로 여겨지는 계림의 나무 외에도 이곳에서 사생대회에 참가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두 여고생을 스케치한 작품을 비롯하여 계림과 관련된 작품이 여러 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화가는 50년 후반과 60년대 초 신라문화제 사생대회 심사위원으로 여러 번 참석하였기에 가능한 그림들이다. 이외에도 경주에서 스케치한 것으로 유추할 작품이 여러 점 있지만 확증할 수가 없는 아쉬움이 크다. 죽은 사람을 불러내어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고 더군다나 증언해 줄 지역의 원로분들 마저 사라지니 안타깝기만 하다. 이런저런 인연이 닿았기 때문일까? 지방 도시로는 드물게 박수근 화가의 작품은 2013년 우양미술관과 2017년도 솔거미술관에서 전시회가 열렸을 만큼 사후에도 경주와의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박수근 화가의 그림의 주된 소재인 여인네 말고 다른 하나는 바로 잎 하나 달지 않은 발가벗은 나목이다. 늦깍이 소설가 박완서의 등단작 「나목」도 박수근 화가와 그림과 관계가 깊다. 두 사람은 미군 부대 PX에서 같이 근무한 인연이 있다. 그곳에서 박수근은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갔고, 박완서는 경리 일을 맡고 있던 평범한 일상적 삶을 살던 두 사람이었다. 세월이 흘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와 작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묵묵히 봄을 기다리는 나목과도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타고난 천재성보다는 끝없는 노력으로 일구어낸 대기만성형의 작가들이기에 더 뜨겁게 박수를 치고 싶다. 그러고 보니 박수근 그림 속의 나목들은 모두 계림의 나무를 닮은듯하다. 계림의 나무들이 하나씩 하나씩 그림 속으로 걸어 든 것 같기도 하다. 그 옛날처럼 해마다 이곳에서 ‘박수근 그림 그리기 대회’라도 개최하면 참 좋겠다. 계림은 그림으로 새로 태어나는 숲이 될 것 같다. 신화와 설화가 있고 근·현대의 스토리텔링이 공존하는 숲에서 세계적 거장의 그림이 태어날지도 모를 일 아닌가. 지나간 과거는 단지 사라지지만은 않는다. 과거는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것이다. 전인식 시인(시민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경주시사회복지협의회는 지난 10월 14일에 경주국립공원과 함께 포스코DX가 후원하는 ‘문화이음 안전 지키미’ 사업을 실시했다. <사진> 경주시사회복지협의회(회장 박경복)는 2023년 6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예정된 ‘문화이음 안전 지키미’ 사업을 통해 역사의 도시 경주의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국립공원 내 사찰과 인근의 자연재해 취약가구를 선정해 전기 시설물 점검 및 노후화 설비 교체를 지원한다. 지난 6월부터 현재까지 총 3차례 실시된 본 사업을 통해 사찰 총 5개소, 자연재해 취약가구 4개에 포스코DX의 직원들로 구성된 전문봉사단체(ACE)의 약 30여명과 함께 낡은 전등과 스위치, 콘센트 등을 교체했다. 한편, 경주시사회복지협의회는 경주시에 있는 복지소외계층 발굴 및 지역사회 자원을 연계 지원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복지 유관기관과 정기적인 통합사례회의를 실시해 취약계층들에게 필요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경주재가노인통합지원센터에서는 지난 16일 2023년 경주시노인복지기금 지원 사업을 통해 재가노인을 대상으로 여가활동 지원 프로그램 다섯번째 계절 ‘겨울 그리고 청춘’ 사업을 실시했다. <사진> 다섯번째 계절(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청춘) 사업은 재가노인대상자 여가활동 및 외부 활동을 지원하고자 지난 4월부터 실시됐다. 이번에 실시된 프로그램은 경주시노인복지기금으로 운영되며 DGB사회공헌재단의 후원을 통해 추억의 달동네를 방문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르신들께서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을 방문해 건강한 여가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됐다. 참여한 어르신들은 “힘들었던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이렇게 웃으며 추억할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롭다”는 소감을 남겼다. 김경태 소장은 “사업을 진행하며 어르신들의 건강한 여가생활을 지원할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어르신들에게 추억을 선물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경주재가노인통합지원센터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이유로 일상생활유지가 곤란한 복지사각지대 취약 및 위기노인에게 전문사례관리를 비롯한 상담, 자원연계, 일상생활지원 등 예방적 복지 실현과 사회안전망 구축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경주시가족센터는 지난 14일 사단법인 김제동과어깨동무(이하 어깨동무) 후원으로 다문화가족 청소년 지원사업인 ‘행복한 장바구니’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사진>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령기 자녀가 있는 다문화 다자녀 가정 40세대는 지역 소재 상가에서 세대 당 25만원 상당의 자녀 의료와 잡화를 구매했다. 이후 어깨동무가 현장에서 바로 결제하는 방식으로 지원이 이뤄졌다. 한편 어깨동무는 지난 2016년 비영리법인설립 후 그간 소외 청년, 청소년을 위한 문화지원 사업을 꾸준히 시행해 오고 있다. 최해원 센터장은 “행복한 장바구니 프로그램이 개인의 행복과 더불어 모두가 따뜻해지는 시간이 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송이버섯 수확 계절이 되어서인지 SNS 곳곳이 송이버섯 자랑으로 득실거린다. 누구는 산에서 딴 송이를 올렸고 누구는 시장에서 산 송이를 올렸다. 송이버섯이 올라오는 것은 당연하고 송이버섯으로 만든 각종 요리 올리기에도 정신없다. 송이의 진한 향을 느끼는 데는 구워먹기보다 좋은 게 없으니 단연 송이굽기가 화제였다. 자연산 송이버섯은 가격도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귀한 만큼 값도 만만치 않은데 올해는 송이가 대풍인지 여느 해에 비해서는 쌌던 모양인지 유독 송이버섯 자랑이 많았다. 여기에는 은근히 송이쯤 먹어주어야 가을을 제대로 맞는다는 일종의 의기양양함도 숨어 있다. 그러나 이런 송이 대세판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사람도 있었다. 농협일꾼으로 알려진 김호열 씨가 그 주인공이다. 김호열 씨는 지난주 자신의 페이스북에 송이가 아닌 능이버섯을 당당히 올렸다. 그런데 이 능이버섯 자태가 장난 아니게 크다. SNS상에서 ‘호열장군’이란 별명이 붙어 있는 김호열 씨답게 어른 손바닥의 두 배나 되어 보이는 큰 버섯이다. 능이야 생태상 넓게 퍼지면서 자라는 것이라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능이버섯의 두세 배는 된다. 게다가 능이버섯이야 누구나 올릴 수 있지만 그 올린 의도가 도발적(?)이다. “송이 사진 지긋지긋하신 분들을 위해 / 내 능이 능이 소식을 전합니다” 김호열 씨는 글에서 ‘능히’를 일부러 ‘능이’라고 써 능이 버섯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송이버섯 먹는 사람들이 부러웠는지 “올해는 서열 세 번째인 송이 영접될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흔히 버섯을 맛과 향, 가치 등으로 서열을 매겨 일능이, 이표고, 삼송이라고 한다. 그만큼 능이가 맛과 향에서 뛰어나다는 말이다. 그런 능이를 송이버섯으로 점철된 SNS상에 올렸으니 가히 관심을 끌 밖에. 능이가 되었건 송이가 되었건 천고마비, 무르익는 가을에 맛과 향을 탐하다 뱃살 불어나는 일은 없기를.
경기도 여주시의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직접 재배하는 스마트팜 ‘푸르메소셜팜’이 눈길을 끈다. 이 농장은 재배에서 판매까지 장애인들과 각종 관련 단체들이 결합해 장기적인 계획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많은 지자체의 모범이 될 만하다. 이 스마트팜은 이상훈, 장춘순 부부가 총 1만1800㎡(약 3570평)의 부지를 기부하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이 부부는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부모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살면 좋겠다 생각하고 땅을 내놓았다. 이에 여주시가 전체 자금의 20%를 출자하기로 결정한 후 시의회에 자금 승인을 요청했고 전체 사업을 기획한 ‘푸르메재단’이 농장에 필요한 자동화와 전산화 등 인프라 구축 계획을 세우고 농장에 참여할 단체와 자금을 출연할 만한 기업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에 SK하이닉스와 한국난방공사도 등이 자금을 출연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실무적인 협조를 자청했다. 농장은 2020년 10월 착공해 2021년 3월 36명의 장애인 청년들이 토마토와 버섯 재배를 시작하며 문을 열었다. 푸르메소셜팜 장애인들은 재단 직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오전과 오후 두 조로 나눠 하루 4시간씩 작업한다. 급여는 최저임금을 웃도는 수준이고 안정적 고용을 보장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농장은 방울토마토 재배 간격이 다른 농장에 비해 20cm 정도 넓고 잎을 자를 때도 일반 농업용 칼 대신 가위나 안전 커터칼을 사용하는 등 철저히 장애인이 일하기 편한 환경으로 조성됐다. 이곳에서 재배된 농산물은 재단과 후원 기업 등 여러 판매망을 타고 100% 소비된다. 푸르메소셜팜은 농장을 열어 단순히 농산물을 재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통까지 해결함으로써, 완벽한 장애인 자활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스마트 팜 바로 앞에 ‘무이숲’이라는 베이커리 카페를 함께 운영한다는 것이다. 넓은 공간과 아름다운 인테리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잔디밭 등으로 여주시민은 물론 다른 도시에서도 이 곳을 알고 찾아오는 고객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만 해도 교촌 남쪽, 남천을 건너면 ‘일정로’를 따라 넓은 사과 과수원이 펼쳐져 있었다. 대체로 근래 재건된 월정교가 시작되는 부근부터 김유신 장군의 유택지로 알려진 재매정 맞은 편까지 약 300미터 거리의 거리가 온통 과수원이었다. 폭도 넓어 6~70미터는 족히 되는 과수원은 교촌 인근에서는 보기 드문 큰 과수원이었다. 평수로 치면 만 평은 족히 될 이 넓은 과수원은 도중에 천원동으로 난 좁은 길을 중심으로 좌우로 나뉘어 있었고 관리하는 주인도 따로 있었다. 내가 어릴 적, 이 과수원은 동네 조무래기들에게 풋사과부터 익은 사과까지 언제나 사과를 먹을 수 있는 친근한 과수원이었다. 사과를 먹으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한데 우리는 굳이 돈을 내지 않고도 사과를 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 볏단으로 사과를 바꾸어준 주인들의 속내는 사과 서리를 막기 위한 비책이었다. 과수원 주변 동쪽과 서쪽은 논과 밭이었다. 밭에는 보리가 심어졌고 논에는 벼가 심어졌을 것이 당연했다. 남천변에는 관리소홀을 틈타 지대가 높은 곳에는 작은 논과 밭도 만들어져 있었다. 이들 논밭의 주인들은 추수 후 알곡을 털어낸 볏단을 논이나 밭 가운데 쌓아 두었다. 이렇게 볏단을 쌓아 두는 것은 볏단을 삭여 소에게 먹이거나 이듬해 거름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볏단을 쌓아 둔 것을 노적가리라 하는데 이런 노적가리들이 그때는 논이나 밭에 드문드문 만들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이런 노적가리에서 볏단을 몇 개 뽑아 과수원에 가져다 주었다. 그럼 과수원 주인은 아무일도 없다는 듯 사과를 내주었다. 그런데 이때 내주는 사과는 성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 멍이 들었거나 한쪽이 곪은 것이었다. 아이들이 이 사과들을 한 보시기 가져와 곪은 부분을 칼로 도려내고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집에 들고 갈 것도 없이 그냥 남천물에 설렁설렁 씻어 먹기도 했다. 그 사과들이 정상적으로 파는 사과가 아니라 낙과(落果)라는 것은 아이들도 알았다. 버리거나 거름으로 쓸 사과를 아이들이 들고 오는 볏단을 핑계로 대충 내주는 것이었다. 사방에 볏단은 널려 있었고 사과는 언제나 자연적으로 떨어졌다. 아이들은 썩은 사과를 도려내는 약간의 수고만으로 언제나 사과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굳이 성한 사과가 먹고 싶었던 아이들은 몰래 사과서리를 감행하는 대범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과수원은 전체가 탱자나무로 둘러져 있었다. 탱자나무는 뾰족한 가시가 사방으로 돋아난 매우 성가신 나무다. 키도 커서, 높이 올라가는 탱자나무는 4미터 넘게 가지를 뻗어올렸다. 때문에 과수원 사과를 서리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과수원에는 사나운 개들도 지키고 있었다. 개들은 과수원 밖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면 컹컹 소리를 내며 짖었고 아이들이 과수원 주위로 몰려다녀도 여지없이 큰 소리로 짖었다. 그래도 탱자나무에는 허점이 있었다. 탱자나무 아래쪽 둥치가 한창 굵어지는 쪽에는 좁은 개구멍이 만들어질 정도의 빈 공간이 생기곤 했는데 이 좁은 공간으로 덩치 작은 아이들이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이다. 몇 차례 그런 공간으로 사과 서리를 하고 나면 과수원 주인은 잽싸게 철조망을 엮어 그 공간을 막아두곤 했다. 뒤에 대학생이 되고 나서 과수원에 정식으로 사과를 사러 간 적 있었는데 그때 주인 아저씨에게 어릴 때 볏단으로 사과 바꾸어 먹던 이야기를 했다. 그 즈음에는 볏단으로 사과 바꾸어 먹는 아이들이 없을 때인데 그런 기억을 들려주자 주인 아저씨가 큰 소리로 웃으며 그게 사실은 아이들이 사과 서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먹거리가 흔치 않았던 시절에 과수원은 아이들이 눈독 들이기 딱 좋은 먹거리였으니 자칫 그런 욕구를 적절히 처리해 주지 않으면 아이들을 도둑으로 만들 수 있었고 낙과는 언제나 생기니 과수원 주인이 볏단 받은 것을 핑계로 아이들에게 사과를 내준 것이다.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추억을 안고 있는 과수원이 실상은 최부자댁에서 만든 것이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내가 본격적으로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 책을 쓰면서였다. 과수원 이야기는 최부자댁이 중점적으로 생산하던 특산물에 대해 최염 선생님과 말씀을 나누던 중 드러난 뜻밖의 사실이었다. 뒤에 상세하게 말하겠지만 최부자댁 특산품에는 남산돌안경과 한지를 중심으로 가내에 쓰기 위한 다양한 산물들이 있었다. 그런데 과수원은 이전의 선대 최부자 어른들이 아니고 최염 선생님의 할어버지, 즉 마지막 경주최부자이신 최준 선생님이 젊은 시절부터 직접 일군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과수원은 6.25 전쟁 와중에 관리인들마저 피난 가버린 통에 관리가 되지 않아 못 쓰게 된 것을 최염 선생님이 작심하고 손수 다시 일군 것이기도 했다. “아니, 회장님이 손수 그 넓은 과수원을 다시 일구셨다니 그게 사실입니까?” 믿을 수 없을 만큼 의외의 말씀에 최염 선생님은 허허 웃으셨다. “정말 내가 만들었지. 그때 고생 참 많이 했다네!” 최염 선생님 말씀인즉 과수원을 다시 일군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당시 관리가 되지 않던 과수원을 아버지께서 팔아버릴 것 같아 할아버지 정성이 서린 과수원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다는 것이 하나였다. 그만큼 중요한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나는 귀하게 자랐어. 누구나 다 아는 부잣집 주손으로 태어나 아무런 고생을 해보지 않았지. 심지어 6.25로 친구들은 전장에 나가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는 동안 나는 후방에서 경찰서장의 비서로 지내면서 목숨도 몸도 다 온전하게 지킬 수 있었거든. 그런 나 스스로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시키고 싶었네....” “똥물을 입찰받아 소달구지에 실어와서는 과수원에 뿌렸어.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을 시키고 싶었어...!” 최염 선생님은 그런 결심을 한 후로 그 넓은 과수원을 정상적으로 돌려놓기까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생을 했노라 회고하셨다. 만석군의 손자로 태어나 굳은일이라고는 털끝만큼도 해보지 않았으니 농사에 관한 한 눈뜬 봉사와 마찬가지였을 선생님이었다. 다행히 오래 전부터 과수원을 돌보던 일꾼 한 사람을 찾은 선생님은 아침 일찍 소달구지에 똥물까지 실어 나르고 과수원에 따로 만들어둔 똥물 저장고에 옮기고 이것을 밭에 뿌리는 고생을 철마다 되풀이하셨다. “그때는 똥물도 귀한 자원이라 이걸 입찰을 붙여서 사와야 했다네. 월성초등학교가 학생수가 많아 그때 똥물이 많이 나왔어요. 그걸 내가 직접 입찰해서 퍼왔다오!” 똥물은 보통 새벽녘에 퍼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새벽 3~4시에 일어나 소에게 여물을 쑤어 먹여야 했단다. 똥물을 운반하러 가는 길에 아침 일찍 일 나가는 인부들을 위해 여는 선술집이 있었는데 매일 막걸리 한두 잔으로 노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 그 집을 들러다보니 선생님을 향해 인부들이 ‘최농군’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최염 선생님은 당신께서 손수 탱자나무를 심은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과수원에는 사과나무가 대부분이고 드문드문 복숭아, 자두 같은 것도 심었어. 그런데 이게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산짐승들이 몰려 내려오는 거라. 맷돼지, 노루, 고라니 같은 것들이 쉴 새 없이 내려왔어. 이놈들이 열매만 따먹는 게 아니라 나무껍질을 통째 갉아먹고 뿌리를 파 뒤집어버리는 거라. 결국 그놈들 막느라 탱자나무를 심었지. 그래도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놈들이 많아 철조망도 두르게 되었고. 그 작업하면서 손 많이 찔렸지”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최염 선생님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큰 감동을 느꼈다. 특히 재벌 2세나 3세들의 옳지 못한 일들과 이른바 금수저 집안의 갑질을 대하면 선생님의 젊은 시절 발심이야말로 경주최부자댁의 오랜 정신이란 생각에 새삼스러운 경외심을 가지곤 한다. 아쉽게도 지금 그 과수원은 사라지고 없다. 무수한 사과가 열리던 과수원은 지금은 월정교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장과 일반적인 밭, 일부 음식점 건물 등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교촌에 들러 이 길을 걷거나 차로 지나다 보면 그 울창했던 과수원과 탱자나무 위로 눈부시게 피어 있던 아카시아꽃들이 문득 떠오른다. 그것이 경주최부자댁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과수원과 함께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나만의 커다란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