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카페에서 초등학생들이 음료를 마시고 있는 모습은 흔하게 본다. 어제도 그랬다. 아들을 학원에 보내 놓고는 와이프랑 커피 마시러 동네 카페에 갔다. 핑크빛 책가방을 옆자리에 단정히 놓아두고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 여자애는 머리띠도 핑크색이었다.
“니들 여기서 뭐 하니?”, “엄마는 어디 가셨어?” 신상털이식 질문으로 꼰대임을 드러내려고(!) 입이 움찔거리는 걸 와이프가 막아선다. 이상한 아저씨가 될 뻔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학원을 마쳤는지 새 친구가 합류한다. 주문한 음료를 받아 들고 오는 모습이 제법 익숙하다. 혹시 카페인이 든 커피 같은 걸 주문했나 곁눈질하니 와이프가 그런다. 요즘 애들 사이에서 핫하다는 초코 바나나라떼라고. 초등학생들은 라떼를 홀짝이며 공부도 하고 재미난 일이 있는지 수다도 떤다. ‘니들은 다행인 줄 알아라. 이상한 아저씨가 방해를 하지 않은 건 저 아줌마 덕분이란 걸!’ 커피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래도 애들이 마시기에 설탕이 너무 많지 않나 아저씨는 걱정이란다.
그나저나 이젠 카페에서 시간제한이 걸릴 수도 있겠다.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때문이란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는 하루 종일 공부도 하고, 워드를 치며, 넷플릭스도 시청한다. 핸드폰이나 태블릿 충전도 물론이다. 이들이 카페를 장악하고 있으니 정작 커피를 마시러 온 손님들은 앉을자리가 없다. 그래서 나온 궁여지책이 3시간짜리 시간제란다. 주문받는 곳에 큼지막하게 공지하고, 영수증에도 최대 3시간만 이용할 수 있다고 적어두었다. 이 규칙은 빈자리 여부랑 상관없이 적용된다고 한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3시간짜리 사용 제한이 음료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이다. 대구를 방문했던 어느 유명 연예인은 팥빙수를 시켰는데, 1인 1메뉴라고 커피를 추가 주문을 요구받았다며 불만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팥빙수 가격이 음료 4잔 값인데도 알바생은 끄떡없이 규정이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주변의 영세한 가맹점 위주의 커피 프랜차이즈이니까 벌어질 수 있는 해프닝이다.
가령 스*벅스에서는 매장 내 고객의 체류 시간을 체크하지 않는다. 오래 앉아있다고 눈치 주는 직원도 없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에게 카공족들은 두기도 뭐 하고 내쫓기도 뭐 하다.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애증의 존재다. 마진을 높이려고 전원 콘센트를 차단하거나 와이파이를 꺼버리고 공부하기 딱 좋은 잔잔한 음악 대신 쿵쾅거리는 댄스 음악을 튼다. 어쩔 수 없다.
왜 집 놔두고 카페에서 공부를 하나 싶겠지만 이들에게도 딱한 이유는 있다. 도서관은 거리가 멀고 스터디카페는 비용이 만만치 않으며 동네 도서관은 어린 학생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렸다. 이제 공부할 데가 없는 카공족들은 편의점에서 앉아 공부하는 ‘편공족’으로 갈아타야 하나 고민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컵라면 먹으면서 학습지 푸는 초딩과의 경쟁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편의점은 구조상 중고등학생이나 초등생 친화적이다.
인터넷에서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여행을 오면 제일 놀라는 광경으로 한국의 카페 문화를 꼽는다. 테이블 위에 주인 없이 펼쳐져 있는 노트북이나 아무렇게나 놓인 핸드폰 사진을 올리면서 “와, 한국엔 도둑이 없나 봐!” “우리나라였다면 어림도 없지!” 식의 감탄 일색이다. 하지만 우리는 노트북보다 내가 앉을 수 있는 빈 의자가 더 중요하고 핸드폰은 몰라도 자전거는 예외라는 현실은 모를 거다. 우리 아들도 두 달밖에 안 된 신상 자전거를 잃어버린 적 있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편공족이나 카공족 논란은 한국인들의 문화적 우수성 때문이 아니라 공공시설이 부족해서라고. 간명한 분석이다. 사실 외국 스*벅스에도 우리처럼 공부하고 잡지를 보거나 빈둥거리기는 매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보다 커뮤니티 시설이 더 잘되어 있다는 정도일 테다.
한 분의 손님이 아쉬운 동네 카페에서는 다양한 신메뉴를 개발하거나 이벤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하지만 책가방을 든 초딩들이 갈 데가 없어 카페에 온다면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카페만큼 문턱 낮은 동네 도서관도 좋겠다. 우리 돈 700원이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한 외국의 대학부설 수영장도 기억난다. 머리도 안 말린 채 나온 애들 얼굴이 참 건강했다.
“애들아, 니들 바나나주스 홀짝이다 투샷 추가한 진한 커피로 넘어갈까 봐 아저씨는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