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이미 떠난 건 아닌지…
경주시농어업회의소가 지난 2일 창립총회를 열고 정식 출범했다. 2018년 9월 경주시가 농어업회의소 설립 시범사업 대상 지자체로 선정된 지 2년 6개월만이다. 지역 농어업인 300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게 되는 경주시농어업회의소는 지역에 산재해 있는 농어업 단체들과 농어업인들을 아우르는 대의기구로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농어업 정책 기획 단계부터 실행, 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협의와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등 경주시의 농어업 정책파트너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지역 농어업인들의 의견수렴, 자문 및 건의, 조사·연구, 교육·지도, 각종 위탁 사업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다만,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과제가 남아 있다고 농민단체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전문성 확보와 정치적 성향 탈피가 주된 과제라는 것. 농민단체 관계자인 A 씨는 “농어업 전문가와 농어업인들이 경주시에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고 실행되는 과정은 물론 결과까지 평가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성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주시 농어업회의소에는 농어업 전문가들도 직원 혹은 자문위원 등의 방식으로 포함시켜 전문성을 더욱 키워야 한다”며 “전문가들의 제안 등이 임원들의 목소리에 묻히지 않을 제도적인 장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농민단체 관계자 B 씨는 “정치적 성향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주시농어업회의소는 사실상 경주에서 회원이 가장 많은 조직이 될 것”이라며 “농어업회의소가 정치적 성향을 띠는 순간 조직은 분열되고 끝내는 와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성향을 띠지 않기 위해 평소 철저한 관리와 징계 등 엄격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편 경주시농어업회의소는 연말 총회 시까지 이이환(전 한농연 회장) 씨가 회장을, 김상진(한농연 회장)·김혁연(농촌지도자 회장)·진훈재(쌀전업농 회장)·김영일(한우협회장)·최외수(한여농 회장) 씨가 부회장을, 김옥련(생활개선회 회장)·송영길(전 한농연 회장) 씨가 감사를 맡아 운영하게 됐다.
경주시와 포항시가 국토교통부에 포항공항을 포항경주공항으로 명칭변경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하면서 이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경주시에 따르면 지난 2일 포항·경주시는 국토교통부장관을 수신처로 한 포항공항 명칭변경 건의 공문을 발송했다. 앞서 포항공항의 명칭변경은 지난해 12월 23일 경주시와 포항시가 ‘포항공항 명칭변경 건의서 서명식’을 가진 뒤 본격화됐다. 당시 주낙영 경주시장, 김석기 국회의원, 이강덕 포항시장 등은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전달할 공항명칭변경 건의서에 서명하고, 공항 활성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결의했다. 공항명칭변경 건의는 2019년 12월 국토부가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인지도 높은 문화유산·관광자원 등과 연계해 필요할 경우 지방공항 명칭을 변경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공항명칭변경 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급물살을 타게 됐다. 건의서는 서명식 이후 국토부로 전달됐다. 하지만 그동안 국토부에서 명칭변경과 관련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다가 이번에 공문 발송을 요구하면서 본격화될 전망이다. 포항공항에 경주를 넣어 공항명칭을 변경하는 것은 김석기 국회의원의 공약 중 하나다. 매년 적자폭이 확대되는 포항공항의 활성화와 경주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공항명칭 변경을 추진해왔다. 포항시도 인접한 관광도시 경주와 브랜드명을 공유하는 포항경주공항으로 바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명칭변경에 적극 동의했다. 공항명칭 변경은 해외사례는 있지만 국내에는 사례가 없어 포항공항이 포항경주공항으로 변경되면 국내 1호가 된다. 하지만 국내공항이 명칭을 변경한 전례가 없다보니 이에 대한 국토부 내부규정도 없는 상황에서 명칭 변경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전 공항명칭을 추진했던 국내 다른 공항과의 형평성 문제도 나오고 있다. 과거 김포공항이 서울공항으로, 무안공항은 김대중국제공항으로 명칭변경 논의가 있었지만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북도와 경주시, 포항시는 공항 명칭 변경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명칭 변경에 따른 효과 분석에 나설 방침이다. 경주·포항 일대를 찾는 관광객이 매년 1000만명이 넘지만 공항 이용 관광객 비율은 거의 없는 만큼 명칭변경을 통해 공항 및 관광산업 활성화의 마중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또 포항공항과 경주를 잇는 공항버스 노선 신설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시 관계자는 “명칭변경을 통해 공항의 인지도를 높이고, 공항을 이용해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증가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경북도, 포항시와 협력해나가겠다”면서 “또 명칭 변경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국토부를 설득해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주시는 올해 민방위 전 대원 1만4700여명을 대상으로 민방위 사이버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시는 기존 5년차 이상 민방위 대원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사이버교육을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모든 대원(1~4년차 및 5년차 이상)을 대상으로 확대 실시한다.사이버교육은 이달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상반기 교육, 8월 16일부터 9..
경주시는 ‘2021년 경주시 평생학습동아리 지원사업’ 신청 접수를 오는 12일부터 19일까지 받는다.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9개소의 학습동아리를 선정·지원해 시민의 학습능력을 향상시켜 풀뿌리 평생학습을 실천하는 경주를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평생학습동아리는 자발적인 참여자들이 학습을 목적으로 평등한 관계..
경주시는 오는 26일까지 올해 1월 1일 기준 개별공시지가 39만4802필지 산정·검증을 완료하고 개별공시지가 열람과 의견제출 기간을 운영한다.개별공시지가는 시청 민원지적과, 읍·면·동 행정복지센터, 시 홈페이지, 경북 부동산정보조회 시스템 홈페이지(http://kras.gb.go.kr/land_info/)에서 확인할 수 있다.개별공시..
경주시가 상습 교통 정체구간인 동국대경주병원을 포함한 동국대 경주캠퍼스 일원의 교통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민선 7기 주낙영 시장이 취임하면서 중앙부처는 물론 경북도와 적극 협력, 교통문제 해결에 주력한 결과다.경주시에 따르면 그간 동국대 경주캠퍼스 주변은 도로가 협소하고 동국대경주병원은 주차시설 부..
‘천년한우’라는 지역 특화 브랜드 개발로 명품 한우도시 이미지를 구축한 경주시가 흩어져 있던 지역 농축수산 브랜드 통합에 나선다.현재 △이사금 △청품 △해파랑 △천년한우 △별채반 △마실맛 △천년만년 △가바 △경주 등 9개에 이르는 지역 브랜드를 ‘선택과 집중’을 통해 통합한다는 방침이다. 경주시는 브랜드..
창립 20주년을 맞은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1일 경주 본사에서 창립기념식을 가졌다.기념식은 정재훈 한수원 사장을 비롯한 직원 등 약 1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내 방송을 통한 생중계 형식으로 진행됐다. 행사는 정부와 학계, 산업계 등 각계의 축하 메시지와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의 ‘포노 사피엔스 시대, 한수원이 나..
주낙영 시장이 지난 1일 오전 11시 경주시보건소에서 경주시 재난안전대책본부장 자격으로 현장대응요원 10여명과 함께 아스트라제네카(AZ)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주 시장의 백신접종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신뢰도 제고는 물론 일부 시민들의 우려를 종식시키기 위해 마련됐다.주 시장은 접종에 앞서 매뉴얼에 따..
제2동궁원인 ‘경주 식물원(라원) 조성사업’이 본격화 된다.경주 동궁원은 보문동 3-3번지 일원 부지 6만7965㎡에 사업비 384억원을 들여 2025년까지 사업 완료를 목표로, 이달 중 착공할 계획이다.시는 ‘경주 식물원(라원) 조성사업’을 통해 거울연못, 최첨단 디지털 체험관, 사계절 초화원, 꽃·나무 정원, 전시·연출..
경주 보문관광단지 활성화를 위한 후속사업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는 지난해 경주시와 공동으로 진행한 ‘보문관광단지 조성계획 변경 용역’을 통해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관광단지 내 6개 시설지구 중 운동·오락시설지구와 휴양·문화시설지구간의 벽을 허물어 ..
思親詩 申師任堂詩 千里家山萬疊峰 歸心長在夢魂中 寒松亭畔雙輪月 鏡浦坮前一陣風 沙上白鷗恒聚散 波頭漁艇各西東 何時重踏臨瀛路 綵舞班衣膝下縫 천리라 내고향은 첩첩 봉우리 저쪽 돌아가고 싶은 마음 언제나 꿈속이네 한송정 곁에는 외로운 달빛이요 경포대 앞에는 한 떼의 바람이리 모래밭에 백구는 모였다가 흩어지고 물결위의 어선들은 왔다갔다 하였네 언제나 다시 어머니 그림자의 길을 밟아 때때옷에 춤추며 슬하에서 옷 지을꼬 여맥 한규식 / 010-3791-1889 / hgyusig@hanmail.net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대상(2000) 수상,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운영 및 심사위원 역임,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역임, 인천광역시서예대전 심사 및 운영위원장 역임, 백범김구서예대전 등 다수심사 한·중·일 국제교류전, 삼청시사전(2004~2005), 한·일 묵향전(베를린), (사)한국서예협회 초대작가전(2004~),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2001, 2011), 8.15광복절기념 평화통일기원전(2007), 서예정신전(한국미술관)등 그룹전 100회 초대 개인전2회(원인재 갤러리, 2017, 2019), 현) (사)한국서예협회 인천광역시지회 회장, 한국서예가협회 이사, 한국서예협회 이사
지방자치시대에 주민들의 자치역량이 가장 돋보이는 부문이 자원봉사다. 특히 지역사회가 시민들의 손길이 필요할 때 기꺼이 봉사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은 훈훈한 감동을 준다. 최근 지자체들이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을 적극 장려하기 위해 지자체 차원의 조례 제정을 제·개정해 공영주차장 이용료를 감연해 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수도권 지자체들이 이 같은 제도를 다수 시행하고 있으며 경북에서는 인근 포항시가 공영주차장 이용료의 50%를 감면해 주면서 자원봉사자와 자원봉사 활동 시간이 대폭 늘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자원봉사문화가 확산되면서 경주지역도 지역 곳곳에 더 불어 함께하는 마음으로 자원봉사에 기꺼이 나서는 시민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시도 시민들의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자원봉사자들의 자긍심 고취를 위해 공영주차장 주차요금 감면 내용을 골자로 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했으나 경주시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경주지역 자원봉사자들이 공영주차장 주차요금을 감면받기 위해선 ‘경주시 자원봉사활동 지원조례’와 ‘경주시 주차장 조례’ 2개가 모두 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경주시의 경우 현재 ‘경주시 자원봉사활동 지원조례’는 개정했지만 ‘경주시 주차장 조례’는 개정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제251회 경주시의회(1차 정례회) 경제도시위원회에 이 안건이 상정됐지만 집행부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의원들 간에도 의견만 분분했었다. 1365 자원봉사포털에 등록된 경주시 자원봉사자는 2019년 말 기준 6만5552명으로 경주시 인구(25만5253명)의 25.7%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적극적인 활동을 한 50시간 이상 자원봉사자는 4412명으로 등록자 대비 6.7%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우수자원봉사자증을 발급한 것은 2875명에 달한다. 이들 중 차량을 주로 이용하는 30~60대 사이의 자원봉사자는 2136명으로 실질적으로 공영주차장 이용 대상자는 1700여명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별한 혜택을 받기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시민들은 없다. 없는 시간과 넉넉하지 않지만 나눔을 함께하려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자원봉사자들에게 봉사에 대한 보답이 아닌 지역사회에 봉사문화를 확산시키고 자리 잡게 한다는 취지로 보고 일정한 혜택을 주는 제도마련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보여 진다. 자원봉사문화 확산은 지역사회에 건전한 주인의식을 갖게 하고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자원봉사는 주민자치시대 반드시 필요한 주민들의 역할 중의 하나로서 지역사회에 애정을 갖게 하는 중요한 동기가 될 수 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이전을 둘러싼 논란으로 지역사회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지난달 29일 대학 홈페이지에 ‘주낙영 경주시장 페이스북 게시글에 대한 입장문’을 게시했다. 입장문은 지난달 주 시장이 개인 SNS에 동국대 법인과 대화를 통해 재단, 대학, 병원, 시청 관계자로 구성된 상생협의기구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다는 것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대학 측은 주 시장이 동국대 학교법인을 방문해 이사장인 성우 스님을 비롯해 재단 관계자들과 차담을 가진 것은 사실이나 법인은 협의기구 구성 및 운영에 합의한 바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교법인은 경주시가 제안한 상생발전방안 내용이 미비해 실망감을 표했으며 경주시에 대해 ‘동국대 경주캠퍼스 이전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으니 경주시가 이 위원회에 참여해 줄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대학 측은 주 시장의 SNS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해 ‘재단과 대학, 병원, 시청 관계자로 구성된 합의기구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합의했다’는 부분이 삭제됐으며 해당 글을 인용한 기사 철회를 요청했다고도 밝혔다. 학교법인은 경주캠퍼스가 법인 산하기관으로서 독립적이고 엄중한 법인 감사의 지적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동국대 경주캠퍼스 이전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 방안 수립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대학 측의 이 같은 반발로 경주시의 입장만 난처하게 됐다. 대표적 대학 커뮤니티 사이트인 에브리타임의 동국대 경주캠퍼스 자유게시판에는 ‘학교가 경주시에 캠퍼스 이전 선전포고를 했다’ ‘계속 캠퍼스 여론이 공론화 돼 캠퍼스가 이전하길 희망한다’ ‘캠퍼스 이전을 반대하는 것은 경주시뿐이다’ 등의 글이 올라오는 등 캠퍼스 이전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43년 동안 경주에 뿌리를 내린 동국대 경주캠퍼스의 이전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경주사회에 큰 혼란이다. 지금 대학 측의 입장을 보면 경주시에 서운한 감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이전추진위원회’라는 명칭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시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대학으로서도 바람직한지 새겨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경주시는 보다 적극적으로 대학 측과 진정성 있는 논의를 통해 상생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차일피일 지켜만 보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다른 이와 달리 보이려고 혹은 뛰어나 보이려고 외모나 태도, 모습을 바꾼다. 하지만 정말 달라지려면 생각이 달라야 한다. 도시재생이나 마을 만들기도 그렇다. 혁신 혹은 개혁이 필요하다고 외형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모습을 고려한 콘텐츠만이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그 도시만의 문화로 형성되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20년 국내여행 트렌드를 ‘REFORM.’의 6가지 키워드로 전망했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는 2020-2024년 관광 트렌드 키워드를 ‘NEXT TRAVEL’로 설정하였다. ‘REFORM’과 ‘NEXT TRAVEL’ 은 Regional Creator에서 R, Next generation에서 N 등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새로운 조어인 셈이다. 언젠가부터 도시재개발 대신에 지역의 삶과 장소성에 기반을 둔 재생이 도시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했다. 하지만 정부주도화로 실시된 대표적인 도시재생 정책-폐산업시설 문화 재생사업,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 문화적 도시재생사업, 문화도시 지정 예비사업 등-은 이들 정책들이 무엇이 다른지, 왜 다른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지 전문가들조차 구별하기가 애매하다. 문화 활동은 사람(지역민)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뒤를 행정이 받쳐주어 지역 전체가 움직여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2021년 현재 ‘만들어진’ 문화도시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도시재생을 논하는데 있어 문화는 빠질 수 없는 요소다. 하지만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거의 모든 정책에 문화가 중언부언된다면 문화는 갈 곳을 잃고 말 것이다. 도시재생과 문화의 관계는 ‘문화예술을 수단과 방법으로 활용하자’는 문화를 통한 도시의 재생과 ‘도시 재생의 목표이자 결과로서 도시의 문화를 되살리자’는 도시의 문화 재생이라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즉, 도시의 재생에 있어서 문화는 수단이자 방법인 동시에 그 자체로서 결과가 되고 추구해야 할 목적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재생 사업의 다수가 대부분이 문화·관광분야에 집중되어 있어 도시재생 사업은 곧 ‘도시관광사업’, ‘도시문화관광사업’이 되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도시재생의 배경과 효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급속한 도시화와 도시쇠퇴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1968년에 36.8%였던 도시화율이 2018년에는 81.5%에 이르렀다. 그리고 국토부에 따르면 전국 3470개 읍면동 중 2239개(65%)가 인구 감소, 사업체 감소, 노후건물 증가 등 도시쇠퇴의 징후를 보이고 있어 빈집재생과 빈집은행과 같은 일본의 정책을 참고하기도 한다. 특히 지역 인구 감소와 공간 잉여현상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고 도시 소멸의 문제까지 직면한 경주와 같은 지방도시는 현재의 도시재생 정책이 지역민들에게 어떠한 시사점을 주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까지 ‘경주는 역사문화도시이다. 경주는 관광도시이다. 현재의 관광트랜드는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관광수요자(소비자)중심의 정책을 요구한다. 따라서 볼거리뿐만 아니라 먹거리, 즐길거리가 여행 소비자 중심으로 도시 정책이 추진되어야한다’와 같은 논점들을 중심으로 경주 미래에 관한 논의들이 있어왔다. 그렇다면 한 번 물어보자. ‘그래서 삶의 질은 나아졌는가?’ 사실 글로벌 경쟁력과 시민의 삶의 질은 동전의 앞뒤같이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명제이다. 누가 고유한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지니지 못한 도시에 국제적 지점이나 기관을 위치시키고자 할 것이며, 누가 삶의 질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 곳에 가서 살며 일하고 싶어 하겠는가? 대상이 다르다. 최소한 경주에서의 도시재생 정책은 대상이 되는 지역주민 나아가서는 경주시민에게 이렇게 물을 일이다. ‘더 살기 좋아졌습니까?’ 더 많은 예산이 들어가고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면 이렇게 묻는 게 당연하지 않는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말이나 글은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고칠 수도 있다. 특히 새로운 용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의해서 만들어지곤 한다. 하지만 기존에 있던 공간은 아무리 새로운 터치를 하더라도 공간을 만드는 사람의 의도에 의해서 바뀌기가 정말 힘이 든다. 특히 장소성과 시간의 의미가 남다른 경주라는 도시는 더욱 그러하다.
오늘날은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지구촌을 이루어 왕래하고 있고 다들 글로벌이니 해서 다투다시피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교육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해외 유학생 수가 2008년 21만6867명이던 것이 2018년 22만0930명으로 점진적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자료:교육부) 조기유학이라 할 수 있는 초등학생의 경우 2019년 1만2432명(유학 4693명, 파견동행 5738명, 해외이주 2001명)으로 중학생 4463명, 고등학생 1857명에 비교해 볼 때 월등하게 높은 수치이다.(자료:해당국 재외공관에서 관할국가 한국인 유학생 조사) 여기서 미국으로 유학한 초등학생을 보면 2006년 한 해 3,000명을 넘어 서는 기록을 세운 이후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2018년 600여명에 이르고 있다. “10년 안에 과거급제 못하면 어디 가서 내 아들이라고 하지도 마라. 나도 아들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겠다” 경주 땅에서 출발하여 걷고 배를 타고 또 걸어서 3개월여나 하여야 다다를 수 있는 국제도시 중국(당 唐) 장안(長安)에, 그것도 초등학교 5학년에 해당하는 12세의 어린 아이를 두고 아버지(최견일)가 한 말이다. 1150여년 전인 868년(경문왕 8) 최치원(崔致遠 857-?)은 이렇게 중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났다. 최치원은 이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당 유학 6년만인 874년 9월, 18세의 나이에 예부시랑(禮部侍郞) 배찬(裵瓚)이 주관한 빈공과(賓貢科:중국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실시한 과거)에 수석으로 합격하였다. 당시 신라에는 과거제도가 없었고 골품제도로 인해 신분 제약을 많이 받던 육두품 출신들이 많이 응시하였던 것을 보면 이러한 시대상이 유학의 동기에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837년(희강왕 2)에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던 신라 학생수는 216명에 달하여 외국인 가운데 가장 많았다. 840년에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학생수가 105명이나 되었으니 유학 열풍이 거셌던 셈이다. 821년 신라 유학생 김운경(金雲卿)이 처음으로 당의 과거에 급제한 후 당이 멸망하는 907년까지 과거에 급제한 학생은 58명이었다.(자료:동문선) 신라를 통틀어 당나라에 유학한 학생 가운데 가장 뛰어났던 인물은 바로 고운(孤雲) 선생인 것이다. 고운은 약관의 나이에 선주 율수(凓水, 강소성 남경) 현위를 제수 받았다. 이후 그는 양주(陽州)의 당성(唐城)을 막부로 쓰고 있던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고병(高騈 ?-887)의 밑에서 관역순관(館驛巡官)이라는 비교적 높은 종사관으로 근무했다. 이때 고운은 881년에는 황소의 난을 진압하는 ‘격황소서(檄黃巢書)’를 써서 일약 스타가 된다. 이를 계기로 당 희종(僖宗) 황제로부터 정오품이상에게 하사하는 자금어대를 받고 양주 목사에 임명되었다. 지금 양주에 최치원 기념관이 자리하게 된 연원이다. 이당시 중국 유학기간은 보통 10년이었으나 고운은 17년 만에 귀국길에 오르게 된다. 885년 신라로 돌아와 헌강왕에게 발탁되어 시독(侍讀) 겸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왕의 최측근에서 외교문서 등의 작성을 담당하였다. 그 뒤 스스로 청하여 태산군(太山郡, 전북 정읍시), 천령군(天嶺郡, 경남 함양군), 부성군(富城郡, 충남 서산시) 등 외지의 태수(太守)를 역임했으나 신라사회는 중앙귀족들의 권력쟁탈 등으로 극심한 혼란에 접어든 시기였다. 고운은 국제적 안목을 가진 수재였으나 제도의 한계와 사회의 모순 등 시대를 잘못만나 뜻을 제대로 펴 보지 못한 채 전국 방랑길에 오르게 되니 그의 나이 41세(898년)였다. 지난 2015년 경주시에서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에 의뢰한 보고서 중국에서 활약한 신라인의 문화관광자원화에 따르면 고운은 전국 각처의 89개소에 관련 유적을 남겼으며, 영정을 봉안한 곳도 21개소에 이른다. 또 주거주지가 17개소, 친필 서각으로 알려진 것이 13개소이다. 또 향교나 서원에 배향된 곳은 얼마나 많은가. 유적이 있는 시·군 지역을 보면 경북 9개, 경남이 10개, 전북 5개, 충청 4개, 경기 2개,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전남 등 전국 지자체에 고운의 발자취가 서려 있다. 아마 전국적으로 이만한 족적을 남긴 인물은 없었던 것이다. 중국에서도 회남(淮南, 현 양주)을 비롯한 7개 도시에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지난 3월 경주에서 ‘고운 최치원 인문학적 가치 학술대회’가 의미 깊게 열렸다. 이미 1997년부터 각처에서 40회나 고운을 두고 학술대회가 열린 것을 보면 그의 치적이 대단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고운을 주제로 한 석박사만도 10여명에 이른다. 고향 경주에는 8개소의 유적을 비롯하여 주생활지역 4개소, 영정 1, 서원 배향이 1개소가 있다. 이제는 유불선을 아우른 고운 선생의 고향에서 그를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자원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으면 한다. 어린 나이에 말도 통하지 않던 당나라에 유학한 최치원은 그의 자호 고운(孤雲)처럼 고향을 그리워하던 ‘외로운 구름’이었는지 모른다. 신라에 돌아와서도 혼란한 나라를 바로 세워보겠다는 뜻을 펴지 못한 채 방랑하던 ‘외로운 구름’이었는지 모른다. 천 백년이 지난 지금도 고향에서 선양에 목말라 구천을 떠도는 ‘외로운 구름’인지도 모른다. “경주여! 고운(孤雲)님을 잊으셨나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스위스 사람에게 ‘스위스’라는 글자는 매우 흥미롭다. 그들에게 스위스는 산(스)과 산(스) 사이에 창을 들고 서 있는 사람(위)처럼 보이나 보다. 써보니 마치 그림처럼 그럴듯하다. 그들에게 한글은 그림 같은 글자가 아닐까 싶다. 한글은 위대하기도 하다. 농담이 아니다. ‘젉댏삾먺짒많셇욝’라는 말을 아무리 구글 번역기로 돌려봐도 번역이 안 된다. 외국 여행에서 이상한 과일이나 음식을 먹고 남긴 후기 중 하나다. 절대 사 먹지 마세요!라는 메시지에 애교가 듬뿍 묻어 있다. 하기야 애교도 우리만 느끼는 정서라고 하던데, 이 느낌 이 기분을 우리만 이해한다 싶으니 꽤 기분이 좋다. 한글은 칭찬에도 아주 특징적이다. 좋은 그림을 보고는 “와, 사진 같아요!”라고 하고, 잘 찍은 사진을 보고는 “와, 그림 같아요!” 한단다. 사람을 보고는 ‘인형 같다’ 고 하고, 인형 보고는 ‘사람 같다’고 한다. 누구는 이걸 칭찬 돌려막기란다. 한글에는 서양어의 기본적 내용인 주어, 동사, 목적어 하는 식의 분명한 구분이 없다. 가급적 주어를 사용하지 않는데 오히려 공감을 주는 식이다. “배고파~”하면 상대는 배가 부른 상태라도 같이 뭔가를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말이다. 굳이 주어를 쓴다면 ‘나’보다는 ‘우리’가 일반적이다. 우리 학교, 우리 집처럼 ‘나’를 익명성 속에 감춰두는 방식이랄까, 분명 나의 엄마가 맞지만 우리 엄마가 느낌상 딱이다. 익명성이라기 보단 보편성이라고나 할까, ‘우리’라는 말이 그렇다. 우리라는 집단 속에는 아버지, 어머니, 선배, 후배, 옆집 순이, 누렁이 다 들어있는, 마치 보자기 같은 함축성이다. 어릴 때 부르던 “학교 종이 땡 땡 땡~ 어서 모이자”하는 노래만 해도 그렇다. 명확한 걸 좋아하는 서양인이라면 선생님이 종을 치셨는지 종 스스로 쳤는지 헷갈릴 거다. 하지만 주체가 중요하지 않은 우리는 노래만 잘 따라 부른다. 우리는 논리보다 맥락에 더 반응하기 때문이다. 물에 빠졌을 때 우리는 ‘사람 살려~’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지금 인류(!)가 물에 빠졌는데 그를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우선 가치가 있냐는 식이다. ‘나를 살려(help me)’라는 명령조의 서양식 표현보다 더 호소력이 있다. 물론 문화에 우열은 없지만 말이다. 한국어는 가령 영어처럼 시간별 인사 표현이 따로 있지 않다. ‘안녕하세요?’ 하나면 다 된다. 영어는 아침(good morning), 오후(good afternoon), 저녁(good evening)으로 나누지만 우리는 차라리 식사 여부를 묻는 게 일반적이다. 외국인들이 흥미 있어 하는 우리네 인사법이다. “아침/점심/저녁 드셨어요?” 하는 인사에 “네, 비빔밥 먹었어요.”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반응에 당황해한다. 반면에 ‘수고하십시오’나 ‘잘 부탁드립니다’하는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인사는 영어권에는 없다. 수고했다는 의미의 영어식 표현으로 ‘do one’s best’가 있지만, 이는 능력은 부족한데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라서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다. 한국어의 인사 표현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편이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라도 시간이 좀 지나면 상대방에게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한다. 상대방의 외모에 대한 이런 식의 직접적인 언급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키(또는 발)가 크시군요’ 하는 식은 결코 근사한 칭찬이나 인사가 아니다. 우리식 인사법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문화적 차이를 말하는 거다. 우리가 자주 쓰는 ‘그간 편안하셨는지요?’라는 예의를 담은 정성스러운 인사도 그렇다.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들은 이런 표현도 있구나! 지평을 넓혀서 좋고, 우리도 우리식 인사법이 만국에 통용되는 건 아니구나! 문화적 상대성을 배울 수 있어 좋다. 아참, 한국어는 생략도 특징적이다. 그중 최고는 충청도식인데, “자네는 술 좀 마실 줄 아는가?”를 줄이고 줄여서 “술 혀?”란다. 세계 언어 문자의 기원을 그려놓은 지도를 보면, 거의가 이집트 상형문자 유래, 아니면 추정, 및 중국 갑골문자에서 유래한 것이란다. 전혀 근본이나 유래가 없는 독창적인 언어가 조그맣게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한글이란다. 한글은 여러 면에서 매력적이다.
원원사지는 사적 제46호로, 삼층석탑은 보물 제1429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 지정번호는 가치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지정 순서에 따라 부여한 숫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를 근거로 문화재를 서열화한다. 그래서 문화재청은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문화재 지정번호를 없애기로 했다. 원원사지 삼층석탑은 높이 7.0m의 쌍탑으로 가운데 석등을 중심으로 동서로 약 8.5m 떨어져 있다. 두 탑은 같은 구조와 양식인 2중 기단으로 하층기단 면석과 갑석 및 상층기단 면석은 각각 8매, 상층기단 갑석은 4매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양 탑 모두 옥개석 일부가 파손되고 상륜부는 노반과 앙화만 남아있다. 기단부의 하대갑석과 상대갑석 윗면에는 2단의 옥신굄과 중석받침이 새겨져 있다. 모서리에 표현된 우주와 2개의 탱주로 하여 각각 12면을 이루고 있는 상·하층기단 면석 중 하층기단 면석에는 별다른 조각이 없지만 상층기단 면석의 각 면에는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12지신상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북쪽에서부터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의 12지신상은 평상복장을 한 채 연화좌 위에 자유스러운 자세로 앉아 있는데, 머리는 동물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몸은 사람 형상이다. 옷자락을 천의처럼 머리 위로 흩날리듯 표현함으로써 마치 범종(梵鐘) 등에서 볼 수 있는 비천상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고 있다. 왕릉 등에서 보이는 무인 복장에 무기를 들고 서 있는 입상의 12지신상들과는 다른 형태이다. 이 상들의 얼굴은 모두 오른쪽을 향하고 있으나 소를 나타내는 축상만이 왼쪽을 향하고 있다. 신라 능묘의 둘레에는 12지신상이 배치된 예가 많지만 탑에 새겨진 예는 드문 편이다. 탑에 12지신상을 조각한 예로는 구례화엄사서오층석탑, 영양화천동삼층석탑, 영양현일동사층석탑, 안동임하동십이지삼층석탑 등이 있는데 모두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탑으로 알려져 있다. 이 12지신상은 약사여래의 권속인데 방위신이자 시간신으로 각자 맡은 방향과 주어진 시간에서 우주를 지킨다는 신으로, 여기서는 부처님의 사리를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초층 탑신에는 면마다 모서리에 우주를 만들고, 그 내부에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유난히 도드라지게 새겨진 사천왕상들 가운데 두 탑 모두 남쪽 면의 증장천왕상만이 깨어져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뿐, 나머지 동·서·북방의 상들은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동탑의 경우 동방의 지국천왕상은 오른손에 칼을 잡고 악귀를 밟고 정면을 향하고 있다. 서방의 광목천왕상 역시 악귀를 밟고 있는데, 왼손은 어깨까지 들어 올려 삼지창을 잡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있다. 북방의 다문천왕상은 오른손 위에는 복발형 탑을 얹고 있으며, 허리에 왼손을 대어 운동감을 부여하고 있지만 다소 경직되고 유연성이 결여되어 있다. 서탑의 경우 거의 완전한 형태로 악귀를 밟고 서 있는 동방의 지국천왕상은 정면향으로, 두 손으로는 칼을 잡고 있다. 얼굴과 왼쪽 가슴 부분이 모두 깨어진 서방의 광목천왕상은 일고저로 추정되는 무기를 들고 있는데, 정면향으로 똑바로 서 있다. 북방의 다문천왕상은 오른쪽으로 몸을 살짝 틀어 변화를 주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악귀 둘을 밟고 있다. 오른손에는 보주를 잡고 있으며, 왼손에는 방형의 보탑을 들고 있다. 초층 탑신에 비하여 급격히 줄어든 2층과 3층 탑신에는 모서리에 우주만이 새겨져 있을 뿐 아무런 조각도 없고, 옥개석 역시 탑신과 같은 비율로 축소되어 있다. 옥개석은 추녀 끝부분이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가고 아래로는 층급받침이 5단이다. 위로는 각형의 2단 탑신 괴임이 조각되어 있고 모서리를 둥글려 멋을 부리고 있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일반적 표현형식으로 보아 8세기 중엽에 조성된 석탑으로 추정되며, 또한 이전 시기의 석탑에 조각한 인왕상을 대신하여 사천왕상이 나타나 9세기 석탑에서 중심을 이루는 장엄의 선례로서 주목되고 있다. 아울러 학계에서는 12지신상을 최초로 배치하고, 석탑의 조각기법, 구조적 특징, 표현양식 등을 고려할 때 학술적, 미술사적 중요한 가치를 지닌 석탑으로 평가하고 있다. 동 서탑 사이에는 화사석이 결실된 석등이 있다. 사각의 지대석 위에 복련의 하대석과 앙련의 상대석 사이의 간주석은 팔각이다. 상대석 위에는 모서리 부분이 파손된 옥개석이 얹혀져 있다. 이 원원사지 동서삼층석탑은 장식성이 강한 대표적인 석탑으로 원원사의 창건보다 1세기 정도 지나 8세기 중후반 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만두꽃 고영민 늙은 어머니 목련나무 가지에 앉아 만두를 빚네 빚은 만두를 한 손 한 손 나뭇가지에 얹네 크고 탐스러운 만두는 한입에 다 먹을 수 없네 볼이 터져라 나는 만두를 욱여넣네 세상 모든 목련나무의 만두는 늙은 내 어머니가 빚어놓았으니 목련나무마다 잘 쪄낸 만두꽃이 피었네 어머니, 이제 그만 내려오세요 어머니 나무 그늘 밑으로 툭, 떨어지네 -목련에서 늙은 어머니가 쪄낸 만두를 보다 조상들의 식물 이름 명명법을 보면 눈물겨운 데가 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봄날에 핀 꽃들을 이팝(이팝나무), 조팝(조팝나무), 국수(국수나물)라 불렀을까? 근래에 한 시인도 “돌나물을 무쳐먹던 늦은 저녁밥때에는/한사발 하얀 고봉밥으로 환한 목련나무에게 가고 싶었다”(문태준, 「하늘궁전」) 고 말할 정도로 춘궁기의 모든 생물은 근원적인 식욕을 유발하나 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 시에서 목련나무에서 “잘 쪄낸 만두꽃”, 평생을 “빚은 만두를 나뭇가지에 얹”는 “늙은 어머니”의 손길을 만난다. 확실히 목련은 오므린 자태가 만두의 형상을 닮았다. 세상의 어머니는 식구들의 입에 더운 밥과 먹을 것 들어가는 것을 낙으로 사는 분이시다. 농본주의적 삶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대자연도 마찬가지다. 늘 이맘때가 되면 우리들 정신적 허기를 달래줄 한 그릇의 밥과 “크고 탐스러운 만두”를 두 손 모아 건네준다. 그러면 우리는 “볼이 터져라” 대지의 그 밥을 “욱여넣”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꽃들은 개인적이면서 대지모신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시인의 형이 서른셋에 사고로 세상을 떴을 때 시인의 어머니는 2년이 넘게 “매일 아들이 지냈던 방에 불을 밝혀놓았”고, “아버지가 병에 걸려 몸져누웠을 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끼 새 밥을 지어 올렸다”고 한다. 그 마음이 목련나무를 보는 시인에게 옮겨붙었으리라. “세상 모든 목련나무의 만두는/늙은 내 어머니가 빚어놓았으니”라는 말도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대지의 신은 영속하지만 현실의 어머니는 유한한 삶을 사신다. “이제 그만/내려오세요”라는 아들의 글썽이는 말에 “어머니 나무 그늘 밑으로/툭, 떨어”지실 수밖에 없다. 자식은 이제 어머니를 가슴에 묻고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해마다 어머니의 둥글고 자애로운 사랑은 또 피어나고 지기를 반복하고, 시인은 또 “늙은 내 어머니가 빚어놓은” “한입에 다 먹을 수 없는” 만두을 울컥이며 먹을 것이다. “활짝 핀 목련꽃을 표현하고 싶어/온종일 목련나무 밑을 서성였”지만 “봄에 면해 있는 목련꽃을 다 표현할 수 없”(고영민, 「목련에 기대어」)었다는 시인이 마침내 어머니 돌아가시고 얻은 「만두꽃」은 어머니라는 근원을 대지모신과 결합시켜 빚어낸 가편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