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사람에게 ‘스위스’라는 글자는 매우 흥미롭다. 그들에게 스위스는 산(스)과 산(스) 사이에 창을 들고 서 있는 사람(위)처럼 보이나 보다. 써보니 마치 그림처럼 그럴듯하다. 그들에게 한글은 그림 같은 글자가 아닐까 싶다.
한글은 위대하기도 하다. 농담이 아니다. ‘젉댏삾먺짒많셇욝’라는 말을 아무리 구글 번역기로 돌려봐도 번역이 안 된다. 외국 여행에서 이상한 과일이나 음식을 먹고 남긴 후기 중 하나다. 절대 사 먹지 마세요!라는 메시지에 애교가 듬뿍 묻어 있다. 하기야 애교도 우리만 느끼는 정서라고 하던데, 이 느낌 이 기분을 우리만 이해한다 싶으니 꽤 기분이 좋다.
한글은 칭찬에도 아주 특징적이다. 좋은 그림을 보고는 “와, 사진 같아요!”라고 하고, 잘 찍은 사진을 보고는 “와, 그림 같아요!” 한단다. 사람을 보고는 ‘인형 같다’ 고 하고, 인형 보고는 ‘사람 같다’고 한다. 누구는 이걸 칭찬 돌려막기란다.
한글에는 서양어의 기본적 내용인 주어, 동사, 목적어 하는 식의 분명한 구분이 없다. 가급적 주어를 사용하지 않는데 오히려 공감을 주는 식이다. “배고파~”하면 상대는 배가 부른 상태라도 같이 뭔가를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말이다. 굳이 주어를 쓴다면 ‘나’보다는 ‘우리’가 일반적이다. 우리 학교, 우리 집처럼 ‘나’를 익명성 속에 감춰두는 방식이랄까, 분명 나의 엄마가 맞지만 우리 엄마가 느낌상 딱이다.
익명성이라기 보단 보편성이라고나 할까, ‘우리’라는 말이 그렇다. 우리라는 집단 속에는 아버지, 어머니, 선배, 후배, 옆집 순이, 누렁이 다 들어있는, 마치 보자기 같은 함축성이다.
어릴 때 부르던 “학교 종이 땡 땡 땡~ 어서 모이자”하는 노래만 해도 그렇다. 명확한 걸 좋아하는 서양인이라면 선생님이 종을 치셨는지 종 스스로 쳤는지 헷갈릴 거다. 하지만 주체가 중요하지 않은 우리는 노래만 잘 따라 부른다. 우리는 논리보다 맥락에 더 반응하기 때문이다. 물에 빠졌을 때 우리는 ‘사람 살려~’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지금 인류(!)가 물에 빠졌는데 그를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우선 가치가 있냐는 식이다. ‘나를 살려(help me)’라는 명령조의 서양식 표현보다 더 호소력이 있다. 물론 문화에 우열은 없지만 말이다.
한국어는 가령 영어처럼 시간별 인사 표현이 따로 있지 않다. ‘안녕하세요?’ 하나면 다 된다. 영어는 아침(good morning), 오후(good afternoon), 저녁(good evening)으로 나누지만 우리는 차라리 식사 여부를 묻는 게 일반적이다. 외국인들이 흥미 있어 하는 우리네 인사법이다. “아침/점심/저녁 드셨어요?” 하는 인사에 “네, 비빔밥 먹었어요.”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반응에 당황해한다.
반면에 ‘수고하십시오’나 ‘잘 부탁드립니다’하는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인사는 영어권에는 없다. 수고했다는 의미의 영어식 표현으로 ‘do one’s best’가 있지만, 이는 능력은 부족한데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라서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다.
한국어의 인사 표현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편이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라도 시간이 좀 지나면 상대방에게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한다. 상대방의 외모에 대한 이런 식의 직접적인 언급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키(또는 발)가 크시군요’ 하는 식은 결코 근사한 칭찬이나 인사가 아니다. 우리식 인사법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문화적 차이를 말하는 거다. 우리가 자주 쓰는 ‘그간 편안하셨는지요?’라는 예의를 담은 정성스러운 인사도 그렇다.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들은 이런 표현도 있구나! 지평을 넓혀서 좋고, 우리도 우리식 인사법이 만국에 통용되는 건 아니구나! 문화적 상대성을 배울 수 있어 좋다.
아참, 한국어는 생략도 특징적이다. 그중 최고는 충청도식인데, “자네는 술 좀 마실 줄 아는가?”를 줄이고 줄여서 “술 혀?”란다. 세계 언어 문자의 기원을 그려놓은 지도를 보면, 거의가 이집트 상형문자 유래, 아니면 추정, 및 중국 갑골문자에서 유래한 것이란다. 전혀 근본이나 유래가 없는 독창적인 언어가 조그맣게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한글이란다. 한글은 여러 면에서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