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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중인 경주읍성과 남문에 대한 회상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06호입력 : 2019년 09월 19일

↑↑ 오상욱 시민전문기자
경북고전번역연구원장
현재 복원이 한창인 경주읍성(慶州邑城)은 1012년 고려(현종 3) 때 축성된 것으로, 『동경통지』에 의하면 1378년(우왕 4)에 고쳐 쌓았는데 높이가 12척 7촌이라 기록한다. 조선전기에 이르러 태종과 세조 임금이 개축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병화(兵火)로 무너졌고, 1632년(인조 10) 경주부윤 김식(金湜)이 남문을 수리하고, 동문·서문·북문도 다시 세웠으며, 1746년(영조 22) 확장한 기록 등이 남아 있다.

읍성에는 동쪽 향일문(向日門)·서쪽 망미문(望美門)·남쪽 징례문(徵禮門)·북쪽 공진문(拱辰門) 등 4대문이 있었고, 그 가운데 징례문이 규모가 가장 컸다고 전하며, 현재 고증을 통해 향일문을 복원한 상태로 동쪽 성벽을 완성해 가고 있다.

경주성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경주부윤 사서(沙西) 전식(全湜,1563~1642,재임1631.12~1633.04)이 일찍이 경주부를 다스리며 징례문을 중수하고, 아들 규천(虯川) 전극항(全克恒,1590~1636)에게 상량문을 짓도록 명한 기록이 동계(東溪) 조형도(趙亨道,1567~1637)의 『동계집』권2,「등징례문」시에 실려있다. 조형도는 경부부윤 이안눌(재임1613.11~1614.09)과 교유하였고, 1629년에 경주 영장(營將)을 역임하며 경주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귀록(歸鹿) 조현명(趙顯命,1690~1752)은 1730년 경상도관찰사로 나가 영남의 남인을 위로하고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였으며, 1732년 친구인 경주부윤 김시형(金始烱,재임1730.11~1732.10)을 찾아가 진휼(賑恤)을 잘한 공을 치하하고 파진연(罷賑宴)에 참석해 그 일(「慶州罷賑宴記」)을 기록하고, 경주성 남루 기문(「慶州城 南樓記」) 등을 지었다.

경주선비 각헌(覺軒) 이능윤(李能奫,1824~1876)은 읍성의 징례문을 보고, 아치형 석조물 위에 세워진 문루(門樓)를 묘사하며 ‘고도남문(故都南門)’편액을 부연 기록하였고, 「고도남문유감(有感)」 시를 지었다.

농재 이언괄의 후손 학고(鶴皐) 이암(李壧,1641~1696)은 벼슬을 멀리하고 고향 경주에서 몽암 이채·매호 손덕승 등 뛰어난 문인들과 자주 만났고, 지역의 일에 지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징례문상량문(徵禮門上梁文) 경주성남문(慶州城南門)」 상량문은 경주 읍성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신라의 땅 경주에 고려의 문화유산이자 조선문화가 집약된 읍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경주의 또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 경주 시가지의 신라왕릉과 고분들 그리고 읍성의 견고한 문화공간 그리고 불국사(불교)와 양동마을(유교) 등은 경주만이 가진 차별화된 문화관광의 재미를 선사하고, 복원 중인 읍성은 훗날 경주관광의 랜드마크가 되리란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조선의 전극항은 부친이 다스리는 경주부의 남문을 중수하며 화려한 수식어로 건축물이 영원하길 기원하였다.

*전극항의 징례문 상량문(경주성 남문)
안은 탈해왕(脫解王)의 수도(首都)이지만, 실제는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세운 나라다. 언덕의 정자에서 바라보면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웅크린 듯한 여러 봉우리가 보이고, 세 갈래 마을에는 사방에서 개가 짖고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 옛 서라벌의 영토가 지금은 대도호(大都護)의 진영(鎭營)이고, 경주부 성곽의 남쪽 문루(門樓)는 우리나라의 옛 터인데, 어느 때에 건립되었던가? 그 옆으로 깎아지른 골짜기가 이어져 길게 뻗은 교외를 굽어보고, 문루의 길은 세 번을 쉬어야 하는데 은은한 성벽이 우뚝 솟아 있고, 사방의 뜨락과 길거리는 나는 듯 벼슬아치의 수레가 서로 따른다.

이곳은 영남의 요충지요, 진실로 강남의 아름다운 곳이다. 임천(林泉)이 어우러져 집집마다 동산의 꽃과 길가의 대나무요, 도서(島嶼)가 빙 둘러싸여 곳곳마다 언덕의 지초와 물가의 난초로다. 신령스런 터에 자리하여 빼어남을 얻어 아름다운 경치의 으뜸이 되었으니, 아마도 군자가 존대하게 있을 곳인 산택(山澤)에 사는 열선(列仙)의 뜰이 아니겠는가?

전쟁이 닥쳐 전란(戰亂)의 비운(否運)을 만나 흉측한 오랑캐가 겁탈하는 흉악한 음모를 당하여, 아름다운 집들이 맹렬한 불길에 모두 시뻘겋게 타버렸고, 수를 놓듯 조각된 대들보와 서까래는 차가운 잿더미로 변하여 다 검게 타버렸다. … 부친(전식)께서 임금의 걱정을 나누어 지방의 일을 맡아 경주의 부윤이 되었는데, 파릉(巴陵)으로 좌천되어 악양루(岳陽樓)를 개수(改修)한 등종량(滕宗諒)이요, 비로소 관사(官舍)를 수리하며 「희우정기(喜雨亭記)」를 지은 소동파(蘇東坡)의 격이다. … 이에 사간(斯干)의 시에서 옛 제도를 탐구하고, 주역의 대장(大壯) 괘에서 앞의 법식을 상고하여, 도사 용성(容成)은 역서(曆書)를 본받아 기둥을 세우며 택일(擇日)의 마땅함을 알았고, 영(郢) 땅의 장인(匠人)은 도끼를 휘둘러 재목을 택하며 바람을 일으키는 공교함을 바쳤다. 높은 곳을 따라 낮은 곳을 등지니 오늘날 높고 큰 것을 바라보며, 옛것을 버리고 새것에 나아가니 당시의 누추함을 비웃게 되었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406호입력 : 2019년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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