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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 세 젖무덤 중 하나는
경주신문 기자 /  1345호입력 : 2018년 06월 15일
삼릉, 세 젖무덤 중 하나는
-이종암
올봄 동네 친구들 계모임을 경주에서 했다
서울과 부산, 대전과 대구, 구미와 창원
그리고 청도와 밀양, 포항에서 온 친구들
불국사, 안압지, 첨성대를 보고 황룡사지
반월성도 올랐다가 포석정을 거치는 동안
누구는 원효와 요석공주가 되고 또 누구는
김춘추, 김유신, 선덕여왕이 되고 나는
피리 잘 불고 향가를 짓던 월명사 아니면
왕께 상서를 올리던 고운 선생이고 싶었다
남산 초입 삼릉솔밭에 이르러
칼국수와 파전, 돼지수육과 동동주로
신라 적 이야기와 어렸을 적 이야기
꽃은 더욱 피어나고 왁자지껄 그러다가
모두들 삼릉계곡 솔바람 쐬러 나갔는데
잠자코 말없던 점순이 삼릉 앞에서의 포즈
내가 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유방암 수술로 젖 하나 들어낸 점순이
삼릉의 세 개 젖무덤 중 하나 가져갔으면
싶은데, 둘레 소나무 가지 손을 뻗고 있다
그런데 삼릉 솔숲 안쪽의
석조여래좌상 머리는 누가 가져갔나?
-우주와의 화음 속에 선 ‘친구’들
전국 각지에서 온 친구들이 계모임을 경주에서 한다. 흥이 나서 불국사와 반월성을, 첨성대와 황룡사지를 걷는다. 그러면서 알 수 없는 경주의 공기에 감싸여 원효와 선덕이, 월명사와 고운 선생이 된다. 그들이 누구던가? 신라의 시간을 숨 쉬고 살았던 분들이 아니신가?
삼릉 솔밭 칼국수와 파전, 동동주와 돼지수육을 먹을 때는 이미 신라적 이야기와 그들의 어렸을 적 이야기는 어느 게 먼저랄 것도 없이 섞여버린다. 그들은 이미 유형과 무형, 산 자와 죽은 자, 인간과 자연이 서로의 호흡을 나누었던 ‘신라적 인간’의 초입에 들어간 것이다. 그렇다. 경주에서 산다는 건 ‘신라의 시간에서부터 오늘로 이어지는 긴 시간을 숨 쉬는 일’이고, ‘집안 장롱이나 밥상을 대하듯 불국사와 첨성대를 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식은 “유방암 수술로 젖 하나 들어낸 점순이/삼릉의 세 개 젖무덤 중 하나 가져갔으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없어진 친구의 젖을 신라의 젖무덤이 슬쩍 대치해 줄 거란 유쾌한 믿음! 그러나 웬걸? “둘레 소나무 가지”가 그걸 알고 “가지 손을 뻗고” 막아버린다. 신라의 젖무덤을 두고 나와 소나무 가지가 한바탕을 해야 할 판인가? 그런데 화자는 “삼릉 솔숲 안쪽의/석조여래좌상 머리는 누가 가져갔나?” 하면서 딴전을 부린다. 강점기 일본인, 혹은 교조적인 유학자들이 그랬다고 하지 않고 말이다. 그건 하늘의 일이라는 말이다.
오랜만에 우주와의 화음 속에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시편을 보는 일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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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 약력
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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