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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51호입력 : 2018년 07월 26일
↑↑ 박성철 교수
동국대 불교문화대학
정말 더운 올 여름, 모처럼 좋은 책 한 권을 읽었다. 모름지기 글이란 타인의 시선을 전제로 한 저작물이 아니던가. 자신만의 내밀한 일기(日記)가 아닌 이상 본인만의 숨결, 느낌이나 냄새를 정말 있는 그대로 타인에게 전하는 책을 손에 넣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독자가 아닌 저자(著者)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웬만한 자존감이나 삶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고서는 날것의 감정 그대로를 드러내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라는 책을 쓴 현재 전주 시내버스 기사인 허혁 님은 ‘상남자’이면서 ‘운전대를 잡은 시인’이다.

작가의 성격은 아주 고약하다. 버스 기사 생활 2년 만에 터득한 시내버스 최고의 덕목은 ‘닥치고 빨리 달리는 것’이고, 승객을 위한 최상의 서비스는 친절한 언행이 아니라 ‘과감한 신호위반’이란다. 그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버스를 운전을 한다는 것은 매번 시험에 드는 일이라고 했다. 도로는 가스레인지고, 버스는 압력솥이며, 운전기사는 추라고 묘사했다. 끊임없이 타고 내리는 승객들 중 소위 ‘진상손님’으로부터 열이 받는 압력밥솥의 추로 상징하는 그의 감각이 놀랍다.

하지만 속까지 까칠하지는 않다. 허 기사의 유일한 취미인 조기축구가 끝나면 같이 공을 찬 동료기사들하고 만 원씩 걷어 밥을 먹는다. 그 단골식당에서는 달걀 서른 개 한 판씩을 부쳐주곤 했단다. 그런데 ‘계란파동’이 나서 계란을 못 먹게 되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루 두 개 이상의 계란을 먹자는 목표(!)에 심각한 차질이 생기게 된 것이다. 달걀 후라이를 못 먹으니 본인 허벅지가 예전 같지 않단다. 엄살 같지만 본인은 심각했다. 원활한 달걀 공급을 받지 못한 본인의 허벅지를 보며 전주 시민의 안전을 걱정했다. 어째 눈까지 침침하다고 하니 까칠하지만 속 깊은 로맨티시스트가 틀림없다.

뿐만이 아니다. 지독한 겨울, 새벽 일찍 출근하는 여자 승객들이 손 시리고 귀 시릴까봐 입으로는 투덜대지만 삼십분 일찍 예열하는 걸 잊지 않는다. 첫 버스 놓칠까봐 벌써부터 나와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누이들이 버스에 오르면서 “아, 따뜻해!”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훈김을 빵빵하게 올려놓는다. 출근하는 동안만이라도 몸을 한껏 덥혀주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이다. 일터에 가서도 고무장갑 끼고 얼마나 춥고 어설플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단다. 이 정도의 감성이라면 조금 까칠해도 되지 않겠나 싶다.

버스 탈 때 도움되는 중요한 팁도 가르쳐준다. 자신이 탈 버스가 오면 가만히 서있지 말고 가볍게 손을 들 것을 권한다. 승강장에 무조건 버스를 세워야 마땅하지만, 버스처럼 덩치가 커 굼뜬 차들은 짧은 순간에 효과적으로 속도를 제어하기도, 또한 올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가끔 강아지 부르듯 손을 까딱이는 승객도 있는데 기분 겁나게(!) 나쁘니까 그저 가볍게 ‘나 타요’라는 메시지가 전달되게끔 손짓하면 된다. 젊은 사람이 노약자와 같이 버스에 오를 때는 맨 나중에 탈 것을 권한다. 젊은 사람이 오르는 동안 어르신이 좀 더 안정적인 자세로 버스에 안착할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하차 벨도 너무 빨리 누르거나 너무 늦게 눌러도 기사분들은 괴롭단다. 딴 짓하다 뒤늦게 내리는 승객인지 아닌지 룸미러로 체크를 하게 되니 전방을 더 주시하지 못해 위험하다는 말이다. 내릴 정류장은 이미 지나쳤는데 신호에 걸려 있으니 내려달라고 강짜를 부려도 곤란하다. 본인이야 오로지 내리는 것만 생각하겠지만 기사는 버스 주변상황을 다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배달 오토바이나 자전거, 심지어 차들도 틈만 나면 순식간에 버스 옆으로 파고들어 위험하다.

펜 대신 핸들을 잡은 음유(吟遊)시인이기도 한 허 기사 눈에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전주 시내버스의 주 고객은 노인 아니면 학생이란다. 버스 안 아이들이 무얼 보고, 들으며, 또 무얼 느끼는지 돈 벌러 바쁜 엄마아빠들은 모를 거란다. 그래서 버스를 ‘결손가정’이라고 했다. 그들이 음악을 듣기 위해서만 이어폰을 끼고 있는 건 아니라면서…. 슬프지만 또 있다. 시인 눈에는 버스라도 타야 하루가 쉬이 가는 승객도 보인다. 지독한 외로움을 달래려 버스에 오른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승객에게 ‘구조요청’을 하는 있다고 그는 노래한다.
경주신문 기자 / gjnews21@hanmail.net1351호입력 : 2018년 0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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